2004/09 2

나르시시슴과 그 확장: 김혜순 시 다섯 편의 분석

김혜순의 시는 '몸의 시'이다. 인간이 육체와 욕망을 발견하게 된 것이 르네상스 이후라고 한다면 그때부터 생산되었을 수많은 시들에 몸의 묘사나 언급이 안 나올 리 없지만, 김혜순의 시를 '몸의 시'라고 하는 것은 그보다 더 나아간 의미에서이다. 대개의 경우, 시에서 나타나는 몸은 주체이거나 대상이다. 1인칭의 몸이 다른 대상을 욕망할 때, 그 '몸'은 주체의 몸이다. 또 1인칭이 3인칭의 몸을 욕망할 때, 그 '몸'은 대상의 몸이다. 그런데, 김혜순의 시에서 '몸'은 주체이자 곧 대상이다. 이 강렬한 나르시시슴narcissisme, 그것이 김혜순 시의 본질이다. 김혜순 시에서는 특징적으로 물의 이마쥬가 무척 강렬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거기서 물의 이마쥬는 자세히 살펴보..

타오르는책/詩 2004.09.04

신발의 문제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는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를 묘사하며 "신발보다도 자주 나라를 바꾸"었던 시대라는 표현을 썼다. 이 구절이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쉽게 닳아 바꾸어야 하는 신발의 속성 때문이다. 그리고 신발이 그런 속성을 지닌 것은, 신발이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 곧 범인凡人의 것이기 때문이다. 신발을 얻기 위해 달리는 소년의 모습이나, 새 직장을 구하기 위해 떨어진 신발 밑창을 감추는 실업자의 모습이 영화 속에 종종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가 경제 생활에 종사해야 한다면, 다시 말해 '먹고 살아야' 한다면, 신발은 필수적인 것이다. 모세가 만난 신神은 그래서 모세에게 "이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신神은 신발이 상징하는 '천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