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6 3

한국적 '시추에이션'과 차별-'역차별'의 역학관계

[박은주의 '발칙 칼럼'] '여자'라서 유리하다고? '역차별'은 차별의 반댓말이 아니다. '역차별'이라는 말이 제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앞의 '역'이라는 접두어가 자취를 감출 수 있어야 한다. '역차별'론은 대개 가해자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29일자 조선일보에는 박은주 기자의 '역차별'론이 실렸다. 그는 "슬프게도 ... 자주 있었"기에 너무나도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시추에이션'을 이야기했다. 그가 이야기한 이 '시추에이션'은 하나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어떤 전형type이다. 적어도 '역차별'이라는 낱말은 그 전형을 딛고서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흑인에 대한 차별은 스스로를 드러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한다. 그 말은 백인·남성은 그 사회에서 알게 그리고 모르게 혜택..

과학적 사고와 열등감

열등감이니 콤플렉스니 하는 말이 화제다. 그 말만큼 폭력적인 말이 없다. 김현 선생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지금의 독서 대중에게 폭력이 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적이 있다. 어쨌든 한 번 '열등감'이나 '콤플렉스'로 낙인찍히면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그게 평생 아니면 영원히 간다. 정신분석 전문가도 아니고, 주치의도 아닌데, 본인도 모르는 콤플렉스를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잘 집어내는 것일까. 이 열등감론이나 콤플렉스론의 무서운 점은, 상대가 반발하면 반발할수록 꼭 신빙성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필승의 법칙이다. 그러나 그 논지는 대개의 경우 과학적이지 못하다. 상당한 사람들이 당나라 황제가 선덕(여)왕¹에게 모란꽃 그림과 꽃씨를 보냈다고 알고 있다. 선덕왕은 대뜸 그 꽃에 향기가 없을 것이라 ..

사회적 약자와 국가주의

국민국가는 항상 '보통인'을 지향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이용한다.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인 박세호 씨가 "전 군대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는 여러분은 축복받은 것입니다. 국방의 의무는 곧 축복입니다."라고 말한 건 그런 의미에서 국민국가의 농간이다. 과거 일본이 '대일본제국'을 칭할 때, 일본부인회가 여성 참전을 놓고 둘로 갈라져 싸운 일이 있다. 군대를 갈 수 없는, 따라서 국가를 지킬 수 없는 여성들은 항상 남성보다 못한 2등 국민으로 머물러야 했던 사정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아니, 거기까지 갈 일도 없다. 군가산점제의 위헌성을 알린 여성들을 남성들이 '이화 5적'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하고, 자신들이 군대에서 겪은 고난을 가지고 유세하는 장면은 아직 현재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