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주의 '발칙 칼럼'] '여자'라서 유리하다고? '역차별'은 차별의 반댓말이 아니다. '역차별'이라는 말이 제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앞의 '역'이라는 접두어가 자취를 감출 수 있어야 한다. '역차별'론은 대개 가해자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29일자 조선일보에는 박은주 기자의 '역차별'론이 실렸다. 그는 "슬프게도 ... 자주 있었"기에 너무나도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시추에이션'을 이야기했다. 그가 이야기한 이 '시추에이션'은 하나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어떤 전형type이다. 적어도 '역차별'이라는 낱말은 그 전형을 딛고서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흑인에 대한 차별은 스스로를 드러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한다. 그 말은 백인·남성은 그 사회에서 알게 그리고 모르게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