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이 싫어요' 기사는 가필한 것"
이승복이 공산당에게 죽으면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했느냐 안 했느냐 하는 진위 여부가 지금까지도 논의 대상인가보다. 최근 대법원 확정 판결이 있었고, 조선일보는 신이 나서 판결문을 실었다. 일부 언론은 또한 이승복 사건이 날조 내지는 가필된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국가적으로 유명해진 사건이기 때문에, 이를 제목으로 뽑으면 독자들의 이목이 집중될 것이라는 예측도 이 사건을 지속적으로 이슈화시키는 데 한몫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승복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는지 외치지 않았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우리가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날조된 것이라면, 조선일보가 지탄받아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좀더 깊이 생각하면, 그 책임이 조선일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기사가 인기를 끌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사회는 이미 정상적인 사회가 아닌 것이다. 국가라는 시스템이, 아니 그보다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가 한 어린이의 생명보다 중요하다는 암묵적 동의가 국가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반공을 기치로 내세운 당시 독재 정권은 이를 통해 효과적으로 시민들을 '국민'들로 만들 수 있었다. 이는 일종의 반공 의식화 교육이다. 신문과 방송의 통제를 통한 간접 교육 말이다. 이와 더불어, 각급 학교에서는 '이승복 어린이'를 기념하는 웅변 대회, 독후감 대회, 포스터 그리기 대회 등을 지속적으로 개최했으니, 이는 보다 직접적인 교육이라 할 만하다.
그럼, 이승복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정말 외쳤다면 우리가 다르게 생각할수 있을까? 과연한 어린이가 죽음을 앞두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이데올로기적 발언을 하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일까?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린이들까지 반공 이데올로기로 철저히 무장된 사회는 결코 개인을 존중하는 사회가 아니며,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는 결코 민주주의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이데올로기로 똘똘 뭉친 전체주의 사상을 어린이에게까지 주입하는 사회에서만 어린이가 그런 이데올로기적 외침을 내뱉을 수 있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 북한에서도 자아 비판할 때 빠지지 않는 항목이 '개인주의'와 '소부르주아적 근성'이라고 한다. 남북이 어쩌면 이렇게 똑같이 전체주의적인가. (그 이유는 20세기 냉전은 일종의 총력전total war이었고, 그 가장 직접적인 대치가 이루어진 곳이 한반도였다는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간과하기 쉬운 것은, 그들이 줄기차게 경고해 온 '공비'가 내려와 어린이를 비롯한 가족을 모두 몰살시킬 동안, 군과 경찰은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알려진 이승복 사건이 진실이라면, 그 책임은 일차적으로 잘못된 교육에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경에게도 있다. 음모론적으로 사고한다면,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사실을 은폐하거나 적어도 그쪽에 주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이승복을 영웅으로 만들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것 역시 음모론 자체의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아무도 그 사건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조선일보에서는 보도된 사건이 진실 그대로라고 주장한다. (소송까지 거쳤다.) 그것이 단지 언론으로서 '진실'을 그대로 전달한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직업윤리상 당연한 항변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해당 사안에 대해 때로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볼 때, 조선일보가 단지 객관적인 사실 전달만을 위해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조선일보는,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좌경화' 되어가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해당 사안을 다시 이슈화시키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바라는 세상이 한 어린이가 죽음을 앞두고 이데올로기적 발언을 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나는 그 조선일보라는 언론을 더이상 신뢰할 수 없다.
이승복이 공산당에게 죽으면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했느냐 안 했느냐 하는 진위 여부가 지금까지도 논의 대상인가보다. 최근 대법원 확정 판결이 있었고, 조선일보는 신이 나서 판결문을 실었다. 일부 언론은 또한 이승복 사건이 날조 내지는 가필된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국가적으로 유명해진 사건이기 때문에, 이를 제목으로 뽑으면 독자들의 이목이 집중될 것이라는 예측도 이 사건을 지속적으로 이슈화시키는 데 한몫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승복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는지 외치지 않았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우리가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날조된 것이라면, 조선일보가 지탄받아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좀더 깊이 생각하면, 그 책임이 조선일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기사가 인기를 끌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사회는 이미 정상적인 사회가 아닌 것이다. 국가라는 시스템이, 아니 그보다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가 한 어린이의 생명보다 중요하다는 암묵적 동의가 국가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반공을 기치로 내세운 당시 독재 정권은 이를 통해 효과적으로 시민들을 '국민'들로 만들 수 있었다. 이는 일종의 반공 의식화 교육이다. 신문과 방송의 통제를 통한 간접 교육 말이다. 이와 더불어, 각급 학교에서는 '이승복 어린이'를 기념하는 웅변 대회, 독후감 대회, 포스터 그리기 대회 등을 지속적으로 개최했으니, 이는 보다 직접적인 교육이라 할 만하다.
그럼, 이승복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정말 외쳤다면 우리가 다르게 생각할수 있을까? 과연한 어린이가 죽음을 앞두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이데올로기적 발언을 하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일까?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린이들까지 반공 이데올로기로 철저히 무장된 사회는 결코 개인을 존중하는 사회가 아니며,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는 결코 민주주의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이데올로기로 똘똘 뭉친 전체주의 사상을 어린이에게까지 주입하는 사회에서만 어린이가 그런 이데올로기적 외침을 내뱉을 수 있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 북한에서도 자아 비판할 때 빠지지 않는 항목이 '개인주의'와 '소부르주아적 근성'이라고 한다. 남북이 어쩌면 이렇게 똑같이 전체주의적인가. (그 이유는 20세기 냉전은 일종의 총력전total war이었고, 그 가장 직접적인 대치가 이루어진 곳이 한반도였다는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간과하기 쉬운 것은, 그들이 줄기차게 경고해 온 '공비'가 내려와 어린이를 비롯한 가족을 모두 몰살시킬 동안, 군과 경찰은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알려진 이승복 사건이 진실이라면, 그 책임은 일차적으로 잘못된 교육에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경에게도 있다. 음모론적으로 사고한다면,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사실을 은폐하거나 적어도 그쪽에 주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이승복을 영웅으로 만들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것 역시 음모론 자체의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아무도 그 사건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조선일보에서는 보도된 사건이 진실 그대로라고 주장한다. (소송까지 거쳤다.) 그것이 단지 언론으로서 '진실'을 그대로 전달한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직업윤리상 당연한 항변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해당 사안에 대해 때로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볼 때, 조선일보가 단지 객관적인 사실 전달만을 위해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조선일보는,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좌경화' 되어가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해당 사안을 다시 이슈화시키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바라는 세상이 한 어린이가 죽음을 앞두고 이데올로기적 발언을 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나는 그 조선일보라는 언론을 더이상 신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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