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어릿광대의견해

소설가의 죽음: '간지나는 이야기' 자판기

엔디 2007. 11. 23. 21:30
1

사람들은 왜 이야기를 읽을까? 또 왜 이야기를 쓸까? 내게 항상 관심을 끄는 말은 이런 것이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쓰면 소설책 몇 권은 된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술에 취해 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의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어쨌든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는 참 많다. 블로그나 까페가 붐비고, 인터넷 댓글이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다. 술에 취한 것처럼 다들 자기 이야기를 내뱉고,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는 욕을 '씨부리'는 것이다.

이청준은 일찍이 언어사회학서설이라는 연작 소설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 가운데 한 편은 「자서전들 쓰십시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코미디언 피문오 씨의 자서전 대필 작가 윤지욱이 자서전 쓰기를 그만두는 이야기를 골격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 자서전 대필 작가는'글팔이'로 묘사된다(이청준, 85):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는 지욱을 마음내키는 대로 매도해 대다 말고 피문오 씨는 무슨 생각을 해냈는지 갑자기 목을 잔뜩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청승맞도록 능청스런 목소리로 허공을 향해 외쳐대기 시작했다.

"고장난 시계나 라디오들 고칩니다아― 채권 삽니다아― 부서진 우산이나 빈 병 삽니다아― 자서전이나 회고록들 쓰십시다아―."

자서전 대필. 이 묘한 이율배반의 어구語句는, 지욱의 소설에서의 자괴와는 상관 없이, 지금 이 땅에서는 산문시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누구도 유명 정치인이나 연예인의 자서전을 직접 썼다고 믿는 일이 없다.


2

앙드레 브르통은 『초현실주의 선언』에서 자동기술법l'automatisme이라는 것을 말했다. 무의식(의 가능성)을 발견한 예술가들이 이성理性의 통제를 받지 않은 무의식을 그대로 원고지에 옮겨적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자동기술법이야말로 대필의 가장 완전한 대척점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자동기술법은 자주 '자아의 확대'라는 면에 초점이 맞추어져서 낭만주의와 쉽사리 연결된다. 실제로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에서 낭만주의란 '영혼'이라는 예술가의 자아가 너무 커서 '현실'과 불일치한 것을 가리킨다고 말하고 있다(Lukács, 146):

19세기의 소설에서는, 영혼과 현실 사이가 어쩔 수 없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관계를 갖는 또 다른 유형이 한층 더 중요하게 된다. 영혼과 현실 사이의 이러한 불일치성은, 영혼이 삶의 운명보다 더 넓고 더 크기 때문에 생겨나게 된다. […] 따라서 내적 현실과 외적 현실 사이의 동일성을 실현하려는 삶의 시도가 실패로 끝난다는 것이 이러한 소설 유형이 다루는 대상이 되고 있다.

확실히 이런 예술가의 자아가 가장 화려하게 펼쳐진 것은 20세기 후반이었던 것이 아닐까. 적어도 지금은 더 이상 아닌 것 같다.


3

예술이 계량화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돈을 주고 나만의 이야기를 살 수 있게 된다. 글쓰기가 가내 수공업처럼 판매되던 '대필 작가 시대'가 20세기 말 ~ 21세기 초라면, 앞으로 대량생산 레디메이드 이야기가 언젠가 나오지 않을까. 사람마다 삶과 경험이 다르지 않은가, 하고 반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34년 이후로 우리네 삶은 모두 '레디메이드 인생'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지고한 예술이 과연 돈으로 계량화될 것인가라고 묻는 사람은 있을까? 역시 회의적이다. 심심찮게 나오는 소더비서울옥션의 미술품 경매장 소식을 보자. 그리고 오규원의 다음 시를 보자:

―― MENU ――
샤를르 보들레르



800원
칼 샌드버그



800원
프란츠 카프카



800원
 




이브 본느프와



1,000원
에리카 종



1,000원
 




가스통 바쉴라르



1,200원
이하브 핫산



1,200원
제레미 리프킨



1,200원
위르겐 하버마스



1,200원

시를 공부하겠다는
미친 제자와 앉아
커피를 마신다
제일 값싼
프란츠 카프카

- 오규원, 「프란츠 카프카」

소설도 언젠가 자판기처럼 몇 글자 입력하면 완제품이 나오는 구조가 될 것이다. 인터넷에서 뭔가 미칠듯이 간지나는 이야기는 만든 사람이나 이용하는 사람이나 짧게 그 유치함을 비웃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 혐의가 짙지만, 미래의 입장에서 볼 때 소설 자판기의 시조始祖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TV 드라마는 처음 몇 회만 보면 전체 구조를 대략 짐작할 수 있고, 미소년과 얽히는 여주인공--꼭 여주인공이라야 한다--의 이야기도 쉽게 구조화·유형화가 가능하다. 이 시대에 프로프V. Propp같은 사람이 있다면 아주 쉽게 TV 드라마와 트렌디 소설을 분석해 몇 개의 요소로 나눌 것이다.

기술복제된 예술작품에는 아우라Aura가 없다고 베냐민W. Benjamin이 말했다고 하는데, 이 자판기용 소설은 처음 시작부터 아우라 따윈 없다.

-----
이청준. 2000. 『자서전들 쓰십시다』. 이청준 문학전집 연작소설1. 열림원.
Lukács, Georg. 1989. 『소설의 이론』. 중판. 반성완 옮김. 심설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