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어릿광대의견해

국어 교과서 조심!

엔디 2007. 8. 23. 02:58
“국어교과서, 정권정당화 수단으로 이용돼” : 책 : 문화 : 뉴스 : 한겨레

지금 초등학교 5학년 국어 교과서에는 예전 같으면 좀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 두 편이나 실려 있다. 하나는 1학기 교과서에 실려 있는 '우리 집 우렁이 각시'라는 글이고, 다른 하나는 2학기 교과서에 실린 '엄마는 파업 중'이라는 글이다. '우리 집 우렁이 각시'는 평소 일상 속에서 권위적이었던 아버지가 실직한 이후 가족들 몰래 집안일을 한다는 내용이고, '엄마는 파업 중'은 집안 일이 엄마에게만 떠맡겨지자 엄마가 집 뒤뜰의 나무 위에 올라가 파업이라며 시위를 한다는 내용이다. 어른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쉽게 깨기 어렵고, 이야기를 꺼내기도 어려운 성 역할에 대한 내용과 주부 파업에 대한 내용이 눈길을 끈다. 아마 김대중 정부(국민의 정부)와 노무현 정부(참여 정부)의 등장이 교과서 필진들에게 미친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어쨌거나, 주부의 역할을 포함한 성 역할 고정이라는 문제점을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국어 교과서는, 사회나 과학 교과서와는 달리 기의signifié보다는 기표signifiant가 더 강조될 수밖에 없다. 언어학적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회나 과학은 흔히 '암기 과목'이라고 불리는 만큼 외도 될 만한 사실fait만을 적어야 하므로 그 내용인 기의에 방점이 찍힌다. 그 기의가 사회나 과학 교과서의 학습 목표인 셈이다. 반면, 국어 교과서는 학습 목표에 따라 (이론적으로) 아무 글이나 실어 놓아도 학습이 가능하다. 가령 글을 발단-전개-절정-결말로 나누는 요령을 배우는 것이 학습 목표라고 했을 때, 해당 단원에는 이문열이나 이인화의 소설부터 황석영의 소설까지 실을 수 있고, 마광수, 장정일, 또는 사드나 마조흐의 소설이라고 실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소설로도 글을 단락을 나누는 방법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어 교과서는 지문의 완성도보다는 지문의 가치나 교육성, 정치성을 소중히 여긴다. 그런데 여기서 정치성은 또 그렇다 하더라도, 가치나 교육성을 따지는 것에 상존하는 문제는 쉽게 간과된다. 이것들은 상대적인 것이라 보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기준이 없다는 것은 권력에 이용당하기가 그만큼 쉽다는 뜻이다. 위에서 언급한 '엄마는 파업 중'이라는 동화는 보기에 따라서는 '교육상 부적합'하다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 공산당에 저항하다 죽은 이야기는 어떤 사회에서는 이데올로기 문제와 폭력성 문제로 교육상 부적합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또 (과거의 한국과 같은) 어떤 사회에서는 아주 교육적이고 훌륭한 이야기라고 생각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독재 정권이 교과서의 내용에 개입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국어 교과서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교과서도 쉽게 안심할 수 없다. 언제 어느 부분에 애국주의나 민족주의, 전체주의가 자리잡아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민족'과 관련된 몇 가지 상황을 생각해 보면 분명히 한국인의 성장의 어느 한가운데에 '민족'에 대한 비정상적인 강조의 코드가 분명 어디 숨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국어 교과서야말로 가장 긴장하며 읽어야 하는 책이 되고 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