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9 3

눈보라와 기다림, 그 가능성: 황동규의 초기시

자신을 '바람'이라고 부르던 兄이 있었다. 그는 발소리도 없이 나타났다가, 인기척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그는 어쩌면 자유로웠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제 '바람'으로서의 그가 많이 외로웠으리라고 짐작한다. 겨울의 문턱 즈음에 태어난 그가 스스로를 '바람'이라고 부를 때, 산뜻한 봄바람이 연상되는 경우는 없었다. 나는 매년 가을 경에 요절한 시인의 시비詩碑에 앉아 시를 읽곤 했다. 그때마다, 그때마다, 바람이 불었다. 황동규에게 '바람'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그의 시는 항상 바람 부는 곳에서 있고, 그 바람은 또한 항상 비바람 아니면 눈보라다. 때문에 그의 바람은 "산 위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도, 더운 여름날 여자들의 치마 끝자락을 살짝 들어올리는 가벼운 바람도 아니다. 그의 바람은 늘 습윤濕潤하고,..

타오르는책/詩 2005.09.26

비평의 뿌리되는 문제로서의 장르의 이론: Frye『비평의 해부』

프랑스말 '쟝르genre'는 본래 다만 '종류'를 뜻하는 말이다. 이를테면 "J'aime ce genre de fille."라고 하면 "나는 이런 유의 여자를 좋아합니다."라는 뜻이다. 프랑스말 '쟝르'가 현재의 "문예 작품의 형태상의 분류"라는 뜻을 가진 국제어, 장르로 더 많이 인식되면서 말의 쓰임은 상당한 정도로 변한 셈이다. 그러나 프라이의 지적대로라면 "장르의 비평이론에 손을 댈 때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기고 간 그 이론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음을 발견한다."(64쪽) 우리가 이 지금 '장르의 이론'을 보아야 하는 이유는, 세미나 꺼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르의 이론이 프라이의 비평이론의 씨눈이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의 문장에서 홀로 이름씨固有名詞를 지우고 그 문장..

경계의 시: 김록『광기의 다이아몬드』

흼과 검음의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물과 뭍의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아니, 어제와 오늘의 사이엔, 말과 말없음의 사이엔, 있음과 없음의 사이엔, 처음과 끝의 사이엔, 아니아니, 삶과 죽음의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대답할 수 없다, 그렇다면, 검음과 흼의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뭍과 물의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아니, 오늘과 어제의 사이엔, 말없음과 말의 사이엔, 없음과 있음의 사이엔, 끝과 처음의 사이엔, 아니아니, 죽음과 삶의,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말장난. 옳다, 하지만 당신들은 삶의 상징인(,) 혀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관찰해본 일이 있는가. 한 번도 시집을 거꾸로 읽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 물구나무서기를 해도 좋다. 「99.999999999」(158)는 100이 아니다. 곧,..

타오르는책/詩 2005.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