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안이 의결되었다. 대통령의 몇몇 말과 행동이 탄핵 사유가 되느냐 안 되느냐는, 탄핵이 발의된 때에 이미 쓸모없게 된
질문이었다. 『한겨레』는 헌법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내용을 12일자 머릿기사로 실었지만, 의미가 없지는 않을지 몰라도
최선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겨레)
하지만, 탄핵소추안이 의결되고, 헌법재판소의 공판만이 남아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이와 같은 의견들이 새로운 국면을 예고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여론과 공론을 수렴하여 스스로 판단을 내릴 것이다. 그 판단은 그들에게 맡겨두자. 우리에게는 우리의 할 일이
있다.
대선 이전에는 서로 으르렁거리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두고 서로 의기투합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회가 하나가 되어 반드시 통과시키는 것은 '세비인상' 밖에 없다는 농담을 두고 보면, 노대통령 탄핵과 세비인상이 어떤 공통점이 있지 않나 하는 당찮은of non-sense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일단 이번 탄핵도 표면적으로는 '국가를 위해서' 발의하고 의결한 것이다. 이른바 '국익'이라는 것은 '부안 사태'와 '이라크 파병', '노조 파업' 등의 상황에서 가장 우선시된 것이다. 그러고보면 노무현의 '참여정부'에 와서도 국익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지고至高의 가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국가가 국익을 추구하는 것은 그릇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국익의 개념이다.
국익은, 따지고보면 이완용이나 이광수에서부터 리승만과 박정희를 거쳐온, 무척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국익의 개념은 지나치게 짧다. 긴 안목에서 국가의 (혹은 국민의) 이익을 따져보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미봉책彌縫策과 같은 국익만이 정략적으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원자력발전을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단기적인 필요만을 바라보며 그것을 '국익'이라고 포장하여, 국민의 뜻을 소위 님비NIMBY로 몰아세우는 모습이 그렇다(이필렬,「지속가능한 발전과 생태적 전환」, 『창작과비평』2003년 겨울호 참조); 이라크 파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파병에 대한 북의 의견이나 벌써 가시화된 아랍권의 테러 위험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USA의 압력에 그대로 굴복한 모습으로까지 비칠 수 있는 단기적인 방법일 뿐이다; 노조 파업의 경우에도 장기적인 안정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초단기적 대응을 보여주었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그것은 정부와 국회에 공통되는 것이었다. 국회의 절대다수당인 한나라당은 늘 '국민'의 입장과 '국익'을 대변한다고 스스로 이야기해왔던 것이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사회를 혼란하게 만들고 있다고 이야기했고, 그 사회혼란이야말로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 위축을 가져온다고 늘 이야기했다. 그래서 이라크 파병안에 동의한 것도 결국은 한나라당(출석 145명 중 찬성 118명, 반대 22명, 기권 5명)과 민주당(출석 96명 중 찬성 49명, 반대 43명, 기권 4명)이 아닌가? 가만히 살펴보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 위축"을 한나라당이 자주 거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말에 한나라당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탄핵소추 의결과 관련해보면 좀더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된다. 늘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를 위축시키지 않을 것"을 지고의 가치로 여겨왔던 한나라당이 의결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으면 출당조치까지 시킬 것이라고까지 밝히고 나온 것이다. 이것이 이례적인 이유는, 탄핵이야말로 정국의 혼란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줄 가능성이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직무 대행중인 고건 총리는 벌써 "국가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행정 각부가 흔들림없이 국정수행에 임해달라"면서 "경제안정이 최우선 과제이므로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고, 경제정책도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민생과 금융시장 안정에 혼신의 노력을 다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주가지수나 환율에는 이같은 상황이 즉각 반영되었다. (연합뉴스) 이런 면에서 볼 때, 그들이 진정 '국익'을 우선으로 생각한다면 대통령 탄핵소추안도 '거국적'인 결단을 내려 철회했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분석에 기초해본다면 한나라당이 실은 거의 이익집단에 가까운 면모를 갖고 있다는 점이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국익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것은 가정일뿐 그것이 옳다는 말은 아니다.)
더욱이 중요한 점은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무기로 대통령의 '사과'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전혀 사과하지 않았고, 거기에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이나 민주당 추미애 의원 등의 생각이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섰다. 그것은 당론에 반대하기 어려워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의 실질적 죄목이 '괘씸죄'라는 데에 있다. 그것은 그들이 탄핵 반대에서 탄핵 찬성으로 돌아선 시기가 대통령의 기자회견 직후라는 데서 알 수 있다. (조선일보) 그것은 송두율에게 15년을 구형하면서 검찰이 밝힌 그의 죄목, '전혀 반성하는 기미가 없다'와도 유사하다. (조선일보) 송두율이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면 정확한 사실관계의 조사·수사를 통해 이를 밝혀내는 것으로 족하지,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 '반성'은 이미 밝혀지고 스스로도 혐의를 인정하는 죄에 대해서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회 안팎으로 논란이 있는 탄핵요건을 두고 "대통령 회견 내용이 너무 실망스럽다(추미애)"는 근거로 탄핵안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서는 것은, 말[馬] 앞에 수레를 걸어둔 격이라 할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74.9%가 탄핵안 가결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연합뉴스) 방송 3사의 여론조사 결과도 69-70%가 탄핵안 가결을 잘못한 일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연합뉴스) 이렇듯 국회 다수당과 국민의 의견이 엇갈리는 이유는 국회가 지금 임기 말이기 때문이다. 국회는 국민의 대리가 아니라 대표이긴 하지만, 임기를 한 달 남겨둔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와 같은 큰 사건을 일으킨 것은 국민의 뜻을 왜곡하는 일이다. 최병렬 대표는 "국민을 안심시키"겠다고 하임꼴使動形을 썼고, 조순형 대표는 "국론 분열을 치유"하겠다며 다양성을 '병病'으로 규정했다. (경향신문) 자신들이 옳고 국민들이 그르다는 것을 무엇으로 자신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선결조건인 자기증명을 결缺한 판단은 '안심'이나 '치유'는 커녕 혼란과 갈등만 깊게 할 뿐이다.
대선 이전에는 서로 으르렁거리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두고 서로 의기투합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회가 하나가 되어 반드시 통과시키는 것은 '세비인상' 밖에 없다는 농담을 두고 보면, 노대통령 탄핵과 세비인상이 어떤 공통점이 있지 않나 하는 당찮은of non-sense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일단 이번 탄핵도 표면적으로는 '국가를 위해서' 발의하고 의결한 것이다. 이른바 '국익'이라는 것은 '부안 사태'와 '이라크 파병', '노조 파업' 등의 상황에서 가장 우선시된 것이다. 그러고보면 노무현의 '참여정부'에 와서도 국익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지고至高의 가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국가가 국익을 추구하는 것은 그릇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국익의 개념이다.
국익은, 따지고보면 이완용이나 이광수에서부터 리승만과 박정희를 거쳐온, 무척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국익의 개념은 지나치게 짧다. 긴 안목에서 국가의 (혹은 국민의) 이익을 따져보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미봉책彌縫策과 같은 국익만이 정략적으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원자력발전을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단기적인 필요만을 바라보며 그것을 '국익'이라고 포장하여, 국민의 뜻을 소위 님비NIMBY로 몰아세우는 모습이 그렇다(이필렬,「지속가능한 발전과 생태적 전환」, 『창작과비평』2003년 겨울호 참조); 이라크 파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파병에 대한 북의 의견이나 벌써 가시화된 아랍권의 테러 위험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USA의 압력에 그대로 굴복한 모습으로까지 비칠 수 있는 단기적인 방법일 뿐이다; 노조 파업의 경우에도 장기적인 안정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초단기적 대응을 보여주었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그것은 정부와 국회에 공통되는 것이었다. 국회의 절대다수당인 한나라당은 늘 '국민'의 입장과 '국익'을 대변한다고 스스로 이야기해왔던 것이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사회를 혼란하게 만들고 있다고 이야기했고, 그 사회혼란이야말로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 위축을 가져온다고 늘 이야기했다. 그래서 이라크 파병안에 동의한 것도 결국은 한나라당(출석 145명 중 찬성 118명, 반대 22명, 기권 5명)과 민주당(출석 96명 중 찬성 49명, 반대 43명, 기권 4명)이 아닌가? 가만히 살펴보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 위축"을 한나라당이 자주 거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말에 한나라당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탄핵소추 의결과 관련해보면 좀더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된다. 늘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를 위축시키지 않을 것"을 지고의 가치로 여겨왔던 한나라당이 의결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으면 출당조치까지 시킬 것이라고까지 밝히고 나온 것이다. 이것이 이례적인 이유는, 탄핵이야말로 정국의 혼란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줄 가능성이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직무 대행중인 고건 총리는 벌써 "국가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행정 각부가 흔들림없이 국정수행에 임해달라"면서 "경제안정이 최우선 과제이므로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고, 경제정책도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민생과 금융시장 안정에 혼신의 노력을 다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주가지수나 환율에는 이같은 상황이 즉각 반영되었다. (연합뉴스) 이런 면에서 볼 때, 그들이 진정 '국익'을 우선으로 생각한다면 대통령 탄핵소추안도 '거국적'인 결단을 내려 철회했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분석에 기초해본다면 한나라당이 실은 거의 이익집단에 가까운 면모를 갖고 있다는 점이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국익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것은 가정일뿐 그것이 옳다는 말은 아니다.)
더욱이 중요한 점은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무기로 대통령의 '사과'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전혀 사과하지 않았고, 거기에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이나 민주당 추미애 의원 등의 생각이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섰다. 그것은 당론에 반대하기 어려워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의 실질적 죄목이 '괘씸죄'라는 데에 있다. 그것은 그들이 탄핵 반대에서 탄핵 찬성으로 돌아선 시기가 대통령의 기자회견 직후라는 데서 알 수 있다. (조선일보) 그것은 송두율에게 15년을 구형하면서 검찰이 밝힌 그의 죄목, '전혀 반성하는 기미가 없다'와도 유사하다. (조선일보) 송두율이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면 정확한 사실관계의 조사·수사를 통해 이를 밝혀내는 것으로 족하지,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 '반성'은 이미 밝혀지고 스스로도 혐의를 인정하는 죄에 대해서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회 안팎으로 논란이 있는 탄핵요건을 두고 "대통령 회견 내용이 너무 실망스럽다(추미애)"는 근거로 탄핵안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서는 것은, 말[馬] 앞에 수레를 걸어둔 격이라 할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74.9%가 탄핵안 가결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연합뉴스) 방송 3사의 여론조사 결과도 69-70%가 탄핵안 가결을 잘못한 일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연합뉴스) 이렇듯 국회 다수당과 국민의 의견이 엇갈리는 이유는 국회가 지금 임기 말이기 때문이다. 국회는 국민의 대리가 아니라 대표이긴 하지만, 임기를 한 달 남겨둔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와 같은 큰 사건을 일으킨 것은 국민의 뜻을 왜곡하는 일이다. 최병렬 대표는 "국민을 안심시키"겠다고 하임꼴使動形을 썼고, 조순형 대표는 "국론 분열을 치유"하겠다며 다양성을 '병病'으로 규정했다. (경향신문) 자신들이 옳고 국민들이 그르다는 것을 무엇으로 자신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선결조건인 자기증명을 결缺한 판단은 '안심'이나 '치유'는 커녕 혼란과 갈등만 깊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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