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어릿광대의견해

노무현이 말하는 '똘레랑스'

엔디 2003. 5. 22. 23:41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홍세화가 소개한 '똘레랑스tolérance'가 빠지지 않을 것이다. 홍세화가 인용한 바에 따르면 똘레랑스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¹이다. 민주주의는 한 사람이 아니라 많은(모든) 사람이 주인이라는 것이므로, 똘레랑스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토대중 하나라 할 것이다.

*¹ 홍세화,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창작과비평사(1995), 289쪽.

노무현 대통령은 한총련의 5.18.묘역 시위로 행사 입장이 20분 가량 늦어진 사태를 접하고 많은 곤욕을 치른 것 같다. 그는 "자기 주장에 맞지 않는다고 사람을 모욕하고 타도대상으로 삼는 것은 법대로 처벌해야 한다"며 "난동자에 대해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라"고 지시했다. 여기서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똘레랑스다. 그런데 실은 그릇 적용된 똘레랑스다.

노 대통령의 말은 물론 일면적으로는 옳다. 누구나 자기와 다른 주장에 대해 '모욕'할 권리는 없다. 설령 그가 파시스트라고 해도 그것은 그가 가진 주장으로서 인정해야 한다. 파시즘을 규제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파시즘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노 대통령의 말에서 '엄격한 법 적용'의 근거를 본다. 한총련은 정말 반미를 주장하며 다른 주장을 용인하지 못하는 반半 파쇼집단인 것도 같다.

하지만, 우리는 노 대통령의 말을 곧바로 뒤집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과 다른 주장'에 대한 똘레랑스을 말했다. 그의 말은, 그러므로, 한총련이 가진 '생각'에 죄를 묻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문제삼은 것은 다만 한총련의 '행동'이다. 노 대통령도 문자적으로는 '난동자'에 대한 처벌을 지시했지 시위한 사람에 대한 처벌을 지시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문제는 한총련의 '행동'이라고 국한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사건과 '한총련 합법화' 가능성을 연계시키는 것의 부적당함을 발견할 수 있다. 한총련이 '이적단체'가 된 까닭은 그들의 '과격한 행동'때문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생각'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에서 한총련은 사실 온건한 시위를 했다. 이번 시위와 관련하여 대부분의 보도는 '노무현 대통령의 행사장 입장 저지'에 맞추어져 있고 연합뉴스 정도가 '버스를 흔드는 난동'을 보도하고 있을 뿐이다. 과거처럼 화염병도 없고 난투극이 벌어진 것도 아니다. 한총련은 피켓팅을 하며 자리를 점거하고 있었던 정도라고 여겨진다. 집·시법 상에 어떻게 규정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정도가 문제가 된다면 오히려 집·시법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노 대통령이 말하는 '똘레랑스'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 지위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한총련들이 당일 피켓팅을 하며 입구를 점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자신들의 생각을 대통령에게 전달할 수 있었을까. 노무현 대통령이 분명히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 생각을 전달하려는 과정에서 그 시위는 한총련의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런 시위를 공권력의 힘으로 찍어누르겠다는 것은 노 대통령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과 주장이 다른 사람들'을 찍어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말이다.

5.18. 묘역에서 일어난 일이니 5.18.을 잠깐 생각해보자. 5.18. 민주화 운동도 단순화 시키면 사실 같은 사건 아닌가.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주장(생각)'이 달라서 시위를 벌였던 것이고 전 전 대통령은 이를 법에 따라 '엄정히' 처벌했을 따름인 것이다. 노 대통령의 논리대로 하자면 5.18. 민주화 운동 역시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할 것이다.

한국은 대의민주주의 국가이다. 직접민주정치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의민주주의는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사람의 생각이 국민의 의견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늘 위험이 따른다. 때문에 항상 이를 보완할 만한 것을 마련해두어야 한다. 국민투표가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행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불완전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총련은 피켓팅과 입장 저지 등의 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기를 희망한 것일 뿐이다. 이를 '똘레랑스 없음'으로 규정한 노무현 대통령은 대의민주주의야말로 최선의 정치라고 생각하고 있는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