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어릿광대의견해

언론은 언론 시장에서 판단받는다?

엔디 2003. 4. 9. 22:52
노무현 대통령이 4월 초 국정연설에서 '족벌언론', '견제받지 않은 권력'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일부 언론들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은 물론이고 비교적 '친노'했던 언론들까지도 일제히 비판의견을 냈다. '일부 언론'들에서는 언론학자들을 동원해 '언론은 독자와 시청자들로부터 매일 심판을 받는다'는 인용까지 하면서 노무현의 의견을 비판했다. 맞는 말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옳은 말이다. 문제는, 그게 실험실에서만 그렇다는 것이다.

"물은 0℃에서 얼고 100℃에서 끓는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실제로는 물이 0℃에서 얼지도 않고 100℃에서 끓지도 않는 경우도 많다.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등산이라도 한 번 해본 사람은 그 차이를 더욱 잘 알고 있다. 이 경우, 물이 100℃에서 끓는다는 사실은 그렇게 큰 의미가 없다.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생활공간에서 물은 늘 100℃ 못미쳐서 끓는다. 그들이 학교에 다닌다면 물이 100℃에서 끓는다는 걸 배울 것이다. 우리가, 바로 그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들이다.

언론이 늘 시장에서 검증받으려면, 자유경쟁이 되어야 한다. '일부 신문'의 경품 및 사은품 제공 등의 몰상식한 행태는 언론이 늘 시장에서 검증받는다는 자신들의 논조에 가장 큰 반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공정거래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늘 우리 독자들로부터 평가받고 있다"고 말하는 건 자기기만에 불과하다.

언론사들의 발행부수 늘리기 경쟁은 우리가 익히 들어온 바다. 세계신문협회는 메이져 종합일간지인 조선·중앙·동아일보의 발행부수를 210만 부에서 243만 부에 육박하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한국언론재단) 반면 유료부수는 그에 못미쳐 조선일보가 180만 부이고, 중앙일보가 그보다 30-40만 부 적고, 동아일보가 10만 부 더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간조선2002. 10. 24. 1725호) 즉, 발행부수와 유료부수가 60-70만부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공정한 경쟁과는 관계없이 조선·중앙·동아일보를 도처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일간지를 비교분석하여 가장 정확한 정보와 정확한 논지를 펴는 신문을 선택할 만한 구조가 이미 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언론사들이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굳이 유료구독을 하지 않더라도 모든 기사들을 다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인터넷으로 여러 신문의 기사들을 비교분석하고 비판적인 안목을 키우려고 노력해 본 일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신문 하나를 꼼꼼히 읽는데만도 시간이 좋이 30분-1시간은 걸린다. 그런데 여러 신문을 다 읽는다? 언론에 관계하는 사람이나 학자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실제로 가정에서 유료구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신문을 한 부만 구독하고 있다.(한국언론재단) 그 이유는 다른 신문과 비교분석하기가 실질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절대로 구독하고 있는 신문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 아니다. 매체별 신뢰도 조사에서 중앙일간지는 라디오, 공중파TV, 인터넷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한국언론재단) 그나마 5위인 케이블TV와의 격차도 극미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언론은 매일매일 독자로부터 평가받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설령 이 모든 상황을 인정하고서라도 언론은 독자로부터 늘 평가받으며 이 결과들은 평가의 결과라고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가정에서 구독하는 신문이 하나뿐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알게모르게 그 신문에 길들여지기가 쉽기 때문이다.

언론이 독자들을 길들이고 장악하기 쉬운 이유는 그들이 각자의 논조를 가지고 있으면서 정보전달의 역할까지 겸한다는 이유이다. 언론이 없다면 독자들은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 때문에 정보를 얻는 데는 온전히 언론에만 의지해야한다. 그런데 언론은 각자의 논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알릴 정보도 그 논조에 유리한 정보만을 걸러내서 알릴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 정부가 도입하려는 브리핑룸 제와 비슷한 점이 없지 않다. 이에 대해 언론사에서는 정부가 정보공개를 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고 대응했다. 정부에서는 성실히 정보를 전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성실히 정보를 전하겠다고-전하고 있다고 늘 광고에서 말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정보는 늘 필터링된다. 정부의 브리핑룸 제는 업무의 효율성과 언론의 지나친 경쟁을 막기 위해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정보를 전달할 의무가 있는 언론에서의 지나친 기사 필터링은 과연 옳은 것인지가 의문이다. 적어도 언론사들은 정부가 자신들의 치적만을 내세우게 될 것이라는 지적과 우려를 할 자격이 없다.)

그렇다면 한 신문을 계속 보던 사람은 그 신문의 논조를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신문에서 정보를 많이 얻기 때문에 정보와 함께 그 논조까지도 흡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 언론을 객관적으로 보기란 이미 불가능하다. 유력 언론은 독자들의 판단까지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언론이 언론 시장에서 판단받는다는 말은 그래서 때때로 옳지 않을 수 있는 것이고, 불행히도 지금이 바로 그런 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