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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위상과 반면교사

정용섭 대구성서아카대미 원장 설교비평 책 눈길 열왕기하 2장 23-24절은, 자신을 보고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하고 외친 아이들을 저주하며 곰을 불러 찢어 죽이는 선지자 엘리사를 묘사하고 있다. 때때로 이 장면은 목회자의 권위를 보여준 사례로 인용되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성경을 찬찬히 읽어보면 그것과는 별반 관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목회자의 권위를 보여준다는 쪽은 아이들의 놀림에서 '대머리'에만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엘리사는 대머리였다고 하는 주석을 본 바도 있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한 요소는 아닌 것 같다; 만약 중요했다면 (일부) 주석이 아니라 본문에 나와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놀림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올라가라'는 부분이다. 열왕기하의 바로 앞 부분을 ..

소금인형

과거의 '시운동' 동인의 한 명이었던 안재찬이 어느 날 갑자기 류시화가 되었다. 상상력에 주목한 '시인동' 동인에서 명상가로 옮겨간 그를 보면 상상력이 명상과 얼마나 가까운지, 그리고 시가 명상으로 떨어지기가 얼마나 쉬운지 알 수 있다. 나는 명상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라, 명상이란 본시 말을 벗어나는 것이므로 말을 붙잡아야 하는 시로서는 후퇴라고 말하는 것이다. 김현 선생은 안재찬이라는 시인을 주목하여 "그의 시세계를 받침하고 있는 것은 '나에게는 할 말이 없다'라는 쓰디쓴 자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의 담백하고 좋은 시 '소금인형'은 긴 말 하지 않는다. 워낙 담백한 시고, 그래서 독자는 일순 당황하지만 그 다음 자기-없음의 이 상태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안치환의 소금인형은 일반적인 노래의 길..

우리은행의 결단

우리銀 비정규직 전원 정규직 전환 - NO.1 경제포털 :: 매일경제 국가 공무원도 비정규직으로 뽑는 이 나라에서 한 은행이 꽤 훌륭한 결심을 했다. 우리은행이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임금도 기존 정규직과 순차적으로 맞춰가겠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비정규직이 있어야 노동 유연성이 높아져 오히려 취업 시장이 활성화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런 거시적인 안목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 한 사람(과 그 가족)이 어떻게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가이다.

김연아 올인과 황우석

‘김연아 올인’…딴 요정은 어쩌나 : 스포츠일반 : 스포츠 : 뉴스 : 한겨레 빙상연맹이 김연아 선수에 대해 '무한 지원'을 약속하면서, 다른 선수들에게는 지원금을 전혀 지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스포츠에서도 '선택과 집중'은 중요하다. 아마추어가 아닌 바에는 소질이 있는 선수를 집중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여기서 '형평성'이나 평등이라는 가치를 들고나올 생각은 없다. 다만 나는 '경험'에 대해서 한 마디 하려고 하는 것이다. 국가 대표 선수 한 사람에게 지원금 '올인'이라. 가만,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연전에 우리는 '국가 과학자'라는 명목으로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에게 어마어마한 연구비가 지급되었으며 앞으로도 지급될 것이라는 소리를 매일 들었다. 많은 사람들..

샴푸의 요정

빛과 소금의 샴푸의 요정이다. 장정일의 시를 잘 변형하여 만든 이 노래를 오래 좋아했다. 다소 몽환적인 분위기를 즐겼던 것일까? 항상 노래와 영화를 대할 때면 시와 소설을 생각했다. 현대의 대표적인 서정 문학은 시가 아니라 노래이며, 현대 서사문학은 소설이 아니며 영화가 아닐까? 하지만 나는 거기에 쉽게 녹아들 수가 없었다. 노래에 대해 시의 우위를, 영화에 대해 소설의 우위를 항상 느꼈기 때문이다. 가령, 빛과 소금의 '샴푸의 요정'에는 장정일의 시에서 볼 수 있는 이율배반적인 애증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매트릭스 안의 모든 것이 조작된 것임을 알면서도 매트릭스를 동경하는 것으로, 나는 키치Kitsch 시인들 모두에게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노래나 영화에서는 볼 수가 없다...

긴 호흡의 정치

창비주간논평 언젠가 나는, 마이클 무어의 《화씨911》을 보면서, 공화당이 불만이면 민주당, 민주당이 불만이면 공화당으로 갈 수밖에 없는 미국인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두 정당으로부터 '표밭'으로만 인식되지 '국민'이나 '시민'으로 인식되는 것 같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 공화당에게 실망한 미국인들이 민주당으로 몰려드는 모습은 마치 레밍쥐들의 이동 같았다. 하지만 한국의 실정은 또 어떤가. 내 보기에 한국의 정당 정치에는 전통이라는 게 없다. 김수영은 "전통傳統은 아무리 더러운 傳統이라도 좋다"고 했는데, 한국의 정당 정치에는 그 전통이라는 것이 도무지 없다. 말장난을 하자면, 전통이 없다는 것이 전통일 정도다. 여당은 야당을 끌어모아 합당하거나 표지갈이만 한 신당을 창당하고..

기다림의 목적: 가오싱젠《버스 정류장》

이성복이 「다시 봄이 왔다」에서 "기다리던 것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가 누구의 목을 껴안 듯이 비틀었는가 나도 안다 돼지 목따는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이라고 울부짖었을 때도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도 기다림에 대한 연극이다. 이 작품이 자주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비교되는 이유는, 이 기다림의 시간이 흡사하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도와 버스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작품이 펼쳐지는 공간 또한 상당히 흡사하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고도를 기다리는 장소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시골이고, 《버스 정류장》 역시 '버스 정류장車站' 팻말이 서 있는 시골길이다. 또, 두 작품의 공간은 연극 내내 바뀌지 않는다; 두 작품의..

극장전 2006.11.09

노시인老詩人의 오만: 정현종의 북핵 시

짧게 쓴다. "오오 노시인들이란 늙기까지 시를 쓰는 사람들, 늙기까지 시를 쓰다니! 늙도록 시를 쓰다니! 대한민국 만세(!)"라고 외쳤던 건 서른 살의 정현종이었다. (김현에 따르면) 그는 김광섭 선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선생의 시제詩祭에 찾아갔던 것이다. 그런 그가 이제 이렇게 말한다: "의외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저절로 쓰게 됐다. 시란 이런 것이다. 절실하면 터져나오는 것이다. 앞 부분 대여섯 행에서 몇몇 표현만 다듬었다." 시를 쓰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도대체 시인이 시를 어떻게 보는 것인가. 절실해서 터져나왔다는 그 시란, '핵실험에 부쳐'라는 부제를 단 「무엇을 바라는가」라는 글이다. 나는 이런 종류의 글을 마주할 때마다 임화를 생각한다. 임화의 시를..

타오르는책/詩 2006.10.29

현재 진행형의 변신: Ovidius『변신 이야기』

원제는 그저 Metamorphoses일 뿐이다. 변신이야기라는 제목은 아마도 일본어판인 『轉身物語』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인 신화학자 중에는 가장 유명한 이윤기가 펭귄판으로부터 옮겨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판을 읽었다. 이윤기는 일러두기에서 몇 가지를 고백하고 있는데, 먼저 라틴어 원문은 2인칭이며 운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어판은 3인칭 산문으로 되어 있다.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대신, 해석은 매끄러웠고 모난 곳은 없었다. (단국대 천병희 선생이 번역한 『변신이야기』가 작년에 나왔다. 라틴어에서 바로 옮겼고, 행갈이를 하여 운문의 형태를 하고 있다.) 1 1권과 달리 2권은 좀 지루하다. 그것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아이네이아스나 로물루스-레무스 이야기, 그리고 왠지 낯간지러운 카에사르와 아우..

타오르는책/詩 2006.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