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48

합리성의 보루와 그 한계: 복거일『소수를 위한 변명』

2, 3일간 틈나는 대로 복거일의 『소수를 위한 변명』을 읽었다. 아마 출판해인 1997년 이전에 신문이나 잡지에 게제된 글을 모은 책일 것이고, 그런 글들이 시사時事적인 부분과 관련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현재적으로도 꽤나 중요한 글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각각 독립된 글들이라 중복되는 부분도 얼마간 있었지만 책 전체를 꿰뚫는 생각은 자유주의와 합리성이었다. 모든 분야를 경제적 자유주의와 합리주의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일관성이 있고, 끌리기까지 했다. 교장의 권위주의적인 태도가 문제가 되어 기간제 교사가 피해자인 것이 분명한 사건임에도 죽음 앞에서는 시야가 흐릿해지는 사회를 보면서 많이 답답해져 있던 터라 그런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근간으로 ..

상상력의 재미, 즐거움: Goscinny & Uderzo『아스테릭스』

"만화를 왜 읽는가" 하는 것은 어리석은 물음이다. 묻는이가 만화를 한 번도 읽지 않았다면 모르되 그도 만화가 재미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화가 왜 재미있는가' 하는 물음은 쉽게 대답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프랑스 만화 '아스테릭스'에는 유쾌한 재미가 있다. 그 재미는, 우데르조의 표현대로라면, 대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데서 얻어지는 재미이다. 누가 만화가 상상력을 저하시킨다고 했던가? '아스테릭스'의 즐거운, 뒤집힌 상상력은 창조적 사고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아스테릭스'의 특징은 무엇보다 명언과 속담과 관련된 언어유희와 역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행하는 패러디, 그리고 캐릭터 강한 인물들의 반복되는 행동에 있다고 생각된다. "'아스테릭스'가 왜 재미있는가" 에 대한 ..

어눌한 달변: 이문열『젊은 날의 초상』

'작가 이문열'의 이름이 씌어진 소설을 사는 것은 내게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옛적에 읽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금시조」따위의 소설들의 화려한 내용들 사이에서도 상상력을 결한 그의 작품들은 내게 관념을 주입하기에는 이로웠을 지 모를 정도의 소설이었다. 실제로 「금시조」를 가지고 '미학입문'강의에서 B정도의 학점을 따낸 기말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매 수업시간마다 잠을 자고 노트필기는 커녕 교재도 제대로 읽지 않은데다가 기말시험에 30분이나 늦었던 것을 헤아린다면 내 보고서가 강의자의 마음에 썩 비켜가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 보고서는 하드디스크 오류로 사라져버렸다.) 실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가진 허무함 때문에 오랫동안 이문열 독서를 기피해왔었다. 그것은 내게 어떤 빚으로 자리잡았던..

아름다움으로서의 시: 서정주의 초기시

- 정소남은 난의 노근을 드러내어 亡宋의 한을 그렸고, 조맹부는 훼절하여 元에 출사했지만, 정소남의 난초만 홀로 향기롭고 조맹부의 송설체가 비천하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未堂徐廷柱西紀二千年十二月二十四日聖誕節前夜死去. 當時我年二十一也. 서정주는 흔히 '생명파'로 명명되는 시인이다. 과연 그의 시에서는 생명에 대한 집착과 열의가 지속적으로 나온다. 생명이라는 것에 대한 계속되는 탐구는 우리 삶의 의미를 밝혀줄 것도 같다. 그의 초기시에 보이는 여러 시어들은 젊은 날들의 타오르는 생명에서 점차로 나이먹어가는 생명의 모습을 보여준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기퍼도 오지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뿐이었다. 어매는 달을두고 풋살구가 꼭하나만 먹고 싶다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밑..

타오르는책/詩 2001.04.25

빛과 그림자, 근대성의 형성: 김진송『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

Ⅰ "모던Modern." 근대로 혹은 현대로 일컬어지는 말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가 "모던"일까? 언제부터가 "현대(혹은 근대)"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시대일까? 현대성의 형성이라는 이 테마는 울분섞인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비단 우리의 근·현대사상 문제일뿐만 아니라 "양이洋夷"의 침범에 무릎꿇고 말았던 동아시아 전체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얼마 전, 사이덴스티커Edward Seidensticker가 쓴 『도쿄이야기(原題:Low City, High City)』 가 출간되었다. 야마노테(동경 중심부)와 시타마치(동경 외곽의 서민 거주지)를 나누어, 메이지유신과 메이지 천황으로 상징되는 일본의 근대화를 작은 문화상文化象에서부터 그려내고 있었다. 당시 일인들이..

탁석산 선생님께: 탁석산『한국의 정체성』

** 이 글은 『한국의 정체성』(책세상)을 읽고 저자인 탁석산 氏에게 보낸 메일입니다. 메일을 보내고 한참동안 답이 없어 결국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홈페이지(폐쇄됨)"회원 게시판"에도 올렸으나 탁석산 氏는 "지쳤다"고 하시며 아직 답이 없으십니다. 탁석산 氏가 빨리 회복되시길 빌며, 오늘 갑자기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제목: 탁석산 선생님, 『한국의 정체성』을 읽고 질문드립니다. 참 늦게 읽었습니다. 요즘들어 한국적인 것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와 한국인으로서 한국적인 것에 대한 궁금함이 없을 리 없기에 무엇 하나 집어들고 싶었던 차에 선생님 책이 나왔습니다. 진작 읽었어야 했는데, 이 책을 누군가가 저에게 선물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늦게 읽게 되었습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다만, 한두 가지..

근대와 20세기를 넘어서: 우에노 찌즈꼬『내셔널리즘과 젠더』

1. 인위적인 10진법의 수를 가지고 시대를 구분하는 일이란 항상 무리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일년year과 십년decade과 백년century이라는 단위가 실제 사람들의 시간 인식에 보편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으므로 10진법을 기준으로 한 시대 구분도 타당한 면을 지니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버릇삼아 '여성의 시대'라 일컬어지는 21세기가 왔다.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다.'라는 명제를 기준으로 20세기(와 그 이전 시대)를 바라보면 20세기(와 그 이전 시대)는 '남성의 시대'가 된다. 오랜 기간 동안 남성 우월주의(혹은 남성 중심주의)의 한 형태인 가부장제에 여성은 눌려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세기에 들어오면서 페미니즘의 노력으로 가부장제라는 옳지 못한, 억압적인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

진정한 내셔널리스트: Cormier『체 게바라 평전』

꽤나 두꺼운 책을 가지고 몇 번 낑낑대다가, 엊그제서야 다 읽었다. 이 책을 추천했던 학교 앞 서점 '오늘의책'의 리뷰誌나 여러 신문 서평들의 저자들과는 달리 나는 이 책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체 게바라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전혀 모르는, 이른바 '문외한'이었다. 때문에 '체'라는 이름이 그들에게 가져다 줄 향수를 나는 공유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장 꼬르미에는 그런 나에게도 배려를 했던가보다. 게바라의 삶에 나는 깊은 감동을 지고, 이 감동은 아마도 꼬르미에에게 빚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꾸바의 혁명에 뛰어든 에르네스또 게바라의 용기와 신념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미 제국주의의 사주를 받은 바띠스따 정권을 몰아내기 위해 지병인 천식에도 불구하고 체는 혁명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