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무어Michael Moore의 «화씨 911»은 다 알다시피 깐느에서 처음으로 황금종려상la palme d'or을 받은
첫 기록documentaire 영화다. 드림웍스의 야심작 «슈렉»조차 빈 손으로 돌려보낸 '오만한' 깐느가 선택한 기록 영화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그 속에 엄청나게 극적인dramatique 폭로가 있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재기하지 못하도록 만들
정도일까. 혹은 이라크 침공의 도덕적·절차적 문제를 조목조목 파고들어 부시 대통령이 직접 그 영화를 보더라도 승복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을까.
아니다. 이 영화에 가득찬 것은 반어와 풍자다. 여러 번 기사화된 무어 감독의 발언에서 짐작할 수 있는 그의 비판방식 그대로를 이 영화에 담은 것이다. 그리고, 그 비판방식은 사실 길고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파네스에서 몰리에르를 거쳐 지금까지 내려온 이 흥미로운 양식은, 그러나 신뢰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것이니, 꼭 민감한 폭발물같은 것이다. 가령 우리는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에 동의하기 힘든 것이다.
무어 감독은 여기서 20세기 후반 이후에야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비디오 편집을 사용하는데, 이것이 특히 미국의 대통령과 행정부에 대한 비판에 무척 적절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보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찍은 수많은 홍보비디오나 기자회견, 국무위원들의 답변, 보좌관의 발언, 국제회의에서의 주장 등의 자료 수집은 그 자체로 비판의 일부로 기능했다. 왜냐하면 부시 행정부가 너무도 자주 말을 바꾸고 있음을, 그 자료는 여실如實히, 아니 사실 그 자체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풍자 양식은 ‘그들’의 양복에 담긴 권위주의적 신뢰성을 무너뜨리는 데도 상당부분 공헌하고 있다. 양복을 입은 채 기자회견실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signifié와 상관없이 어떤 특정한 모양signfiant을 갖는다. 우리에게 신뢰감을 주는 것은 그 모양이다. 그러므로 권위주의적인 그 모양을 깨기 위해서는 그 내용을 특정한 발화상황과 떼어놓고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풍자는 여기서 큰 힘을 발휘한다.
이상하게도 실패하지 않았던 사업가로서의 조지 W. 부시와 미국의 대통령으로서의 조지 W. 부시 사이의 '유착관계' 역시 감독이 공들여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는 의혹제기 수준이므로 결코 성공적이랄 수는 없다. 풍자 영화는 바로 이런 부분에서 조심해야 한다. 부시 반대파들끼리 웃고 즐기려고 영화를 만든 게 아니라면, 이건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설득은 오히려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건 이 영화의 장점이자 약점일 수도 있는데, 그것은 이라크전 참전 군인들에 대한, 그리고 이라크전 전사자의 가족들에 대한 인터뷰다. 이 인터뷰들은 상당히 감정적이어서 감독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조차도 스스로의 입장을 지킬 수 없게 만드는 면이 있고, 더구나 거대담론에 흡수되어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을 개개인의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복원해서, 보다 삶에 밀착한 관점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더구나 그것이 부시의 관점이 아니라는 점까지도 말이다. “부모나 형제, 또는 친척을 잃는 슬픔이 어떤 것인지 나는 잘 모르지만, ……슬프군요it pains me.”
그러나 이 영화의 기법과 방식은 무척 단순한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영화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들조차 돈만 있다면 만들 수 있는 수준의 영화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의 이 평가가 이 영화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나는 내 스스로의 평가를 보며 오히려 대학생들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대학생 때의 정신으로 돌아간다면. 무어 감독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이 영화는 내게 내가 오래 간직하고 싶은 대학생 정신l’esprit universitaire을 생각나게 하는 영화였다.
덧. 이 영화에서 가장 가슴아픈 부분은, 미국의 ‘대량살상무기’에 의해 숨진 이라크 아기의 모습도, 전사한 미군의 모습도 아니다. 세계무역센터 빌딩의 희생자도, 희생자 가족도 아니다. 전쟁에 참전해 전쟁의 실상을 알게 된, 스스로를 오랫동안 공화당지지자였던 사람이라고 소개한 한 상이 군인이, 앞으로는 민주당 열성당원이 되겠다고 스스로에게, 그리고 기자에게 다짐하는 부분이었다. 그에게는 그 둘 외에 다른 선택이 없는 것이다. Où se trouve la démocratie?
아니다. 이 영화에 가득찬 것은 반어와 풍자다. 여러 번 기사화된 무어 감독의 발언에서 짐작할 수 있는 그의 비판방식 그대로를 이 영화에 담은 것이다. 그리고, 그 비판방식은 사실 길고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파네스에서 몰리에르를 거쳐 지금까지 내려온 이 흥미로운 양식은, 그러나 신뢰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것이니, 꼭 민감한 폭발물같은 것이다. 가령 우리는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에 동의하기 힘든 것이다.
무어 감독은 여기서 20세기 후반 이후에야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비디오 편집을 사용하는데, 이것이 특히 미국의 대통령과 행정부에 대한 비판에 무척 적절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보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찍은 수많은 홍보비디오나 기자회견, 국무위원들의 답변, 보좌관의 발언, 국제회의에서의 주장 등의 자료 수집은 그 자체로 비판의 일부로 기능했다. 왜냐하면 부시 행정부가 너무도 자주 말을 바꾸고 있음을, 그 자료는 여실如實히, 아니 사실 그 자체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풍자 양식은 ‘그들’의 양복에 담긴 권위주의적 신뢰성을 무너뜨리는 데도 상당부분 공헌하고 있다. 양복을 입은 채 기자회견실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signifié와 상관없이 어떤 특정한 모양signfiant을 갖는다. 우리에게 신뢰감을 주는 것은 그 모양이다. 그러므로 권위주의적인 그 모양을 깨기 위해서는 그 내용을 특정한 발화상황과 떼어놓고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풍자는 여기서 큰 힘을 발휘한다.
이상하게도 실패하지 않았던 사업가로서의 조지 W. 부시와 미국의 대통령으로서의 조지 W. 부시 사이의 '유착관계' 역시 감독이 공들여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는 의혹제기 수준이므로 결코 성공적이랄 수는 없다. 풍자 영화는 바로 이런 부분에서 조심해야 한다. 부시 반대파들끼리 웃고 즐기려고 영화를 만든 게 아니라면, 이건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설득은 오히려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건 이 영화의 장점이자 약점일 수도 있는데, 그것은 이라크전 참전 군인들에 대한, 그리고 이라크전 전사자의 가족들에 대한 인터뷰다. 이 인터뷰들은 상당히 감정적이어서 감독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조차도 스스로의 입장을 지킬 수 없게 만드는 면이 있고, 더구나 거대담론에 흡수되어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을 개개인의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복원해서, 보다 삶에 밀착한 관점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더구나 그것이 부시의 관점이 아니라는 점까지도 말이다. “부모나 형제, 또는 친척을 잃는 슬픔이 어떤 것인지 나는 잘 모르지만, ……슬프군요it pains me.”
그러나 이 영화의 기법과 방식은 무척 단순한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영화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들조차 돈만 있다면 만들 수 있는 수준의 영화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의 이 평가가 이 영화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나는 내 스스로의 평가를 보며 오히려 대학생들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대학생 때의 정신으로 돌아간다면. 무어 감독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이 영화는 내게 내가 오래 간직하고 싶은 대학생 정신l’esprit universitaire을 생각나게 하는 영화였다.
덧. 이 영화에서 가장 가슴아픈 부분은, 미국의 ‘대량살상무기’에 의해 숨진 이라크 아기의 모습도, 전사한 미군의 모습도 아니다. 세계무역센터 빌딩의 희생자도, 희생자 가족도 아니다. 전쟁에 참전해 전쟁의 실상을 알게 된, 스스로를 오랫동안 공화당지지자였던 사람이라고 소개한 한 상이 군인이, 앞으로는 민주당 열성당원이 되겠다고 스스로에게, 그리고 기자에게 다짐하는 부분이었다. 그에게는 그 둘 외에 다른 선택이 없는 것이다. Où se trouve la démocrat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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