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전 25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신까이 마꼬또《초속 5센티미터》

대학 시절, 습작을 쓸 때마다 나는 늘 무슨 말을 더할까를 생각했다. 내 몸 속에 왜 이다지도 말이 없을까 안달했다. 부족한 나의 시--그 중 나은 시들은, 그러나, 말의 뺄셈에서 나왔다는 것이 내 솔직한 고백이다, 지금. …가령, 이것저것들을 주워섬겨 아날로지analogie를 형성하면서도 정작 복판은 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나를 잘 알고 있거나, 나의 시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치지 않은 복판의 울림을 들을 것이라고. 신까이 마꼬또新海誠 감독의 단편 연작 애니메이션 《초속 5센티미터》를 보면서, 내가 계속 생각한 것도 말의 뺄셈이었다. 확실히 이 작품은 말을 아끼는 작품이고, 말하지 않은 것으로 말하는 작품이다. 이 말은 나오는 인물들의 대사가 적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이 애니메..

극장전 2007.07.06

기다림의 목적: 가오싱젠《버스 정류장》

이성복이 「다시 봄이 왔다」에서 "기다리던 것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가 누구의 목을 껴안 듯이 비틀었는가 나도 안다 돼지 목따는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이라고 울부짖었을 때도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도 기다림에 대한 연극이다. 이 작품이 자주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비교되는 이유는, 이 기다림의 시간이 흡사하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도와 버스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작품이 펼쳐지는 공간 또한 상당히 흡사하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고도를 기다리는 장소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시골이고, 《버스 정류장》 역시 '버스 정류장車站' 팻말이 서 있는 시골길이다. 또, 두 작품의 공간은 연극 내내 바뀌지 않는다; 두 작품의..

극장전 2006.11.09

극예술과 성격: Jaoui《룩앳미》

Non ! Rien de rien. Non ! Je ne regrette rien. Car ma vie, car mes joies aujourd'hui, ça commence avec toi!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내 삶도, 내 기쁨도 오늘, 시작되었으니까요, 당신과 함께! 아녜스 쟈우이Agnès Jaoui 감독의 첫 작품인 《타인의 취향Le goût des autres》의 대단원을 이루는 노래, 에디뜨 삐아프의 '아니요,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다. 그러나 그 영화 속에서 정작 중요하게 다루어진 것은, 다른 사람의 취향goût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다. 《타인의 취향》은 아주 많은 걸 말하고 있지만 여전히 말하지 않은 부분을 남겨둔 영화였고, 그 말하지 않은..

극장전 2005.01.25

책상은 책상이다: S. Coppola《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황당한 제목으로 개봉한 영화다. 원제는 《번역에서 잃어버리는 것들Lost in Translation》 정도가 맞겠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 영화가 좋다고 추천들이었다. 영화를 소개하는 인터넷 사이트들은 두 상처입은 영혼의 만남 어쩌고 하면서 떠들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이 영화를 '영혼의 만남' 운운하며 극찬하는 것이야말로 번역 과정에서 많은 걸 잃어버린 주제 같다. 영화평론가들의 문제점은, 항상 현실을 보지 않고 이데아를 보려고만 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번역에서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고 있긴 하지만, 그냥 '로맨스' 영화다. 밥Bob과 샤를롯Charlotte이 상처입은 영혼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그냥 그뿐이다. 그런 정도의 상처라면 우리 주변에 널..

극장전 2004.11.28

비논리적 설득: M. Moore 《화씨 9/11》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의 «화씨 911»은 다 알다시피 깐느에서 처음으로 황금종려상la palme d'or을 받은 첫 기록documentaire 영화다. 드림웍스의 야심작 «슈렉»조차 빈 손으로 돌려보낸 '오만한' 깐느가 선택한 기록 영화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그 속에 엄청나게 극적인dramatique 폭로가 있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재기하지 못하도록 만들 정도일까. 혹은 이라크 침공의 도덕적·절차적 문제를 조목조목 파고들어 부시 대통령이 직접 그 영화를 보더라도 승복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을까. 아니다. 이 영화에 가득찬 것은 반어와 풍자다. 여러 번 기사화된 무어 감독의 발언에서 짐작할 수 있는 그의 비판방식 그대로를 이 영화에 담은 것이다. 그리고, 그 비판방식은 사실 길고 긴 ..

극장전 2004.08.02

디테일의 힘: 홍상수《강원도의 힘》

홍상수의 영화는 건조하다. 영화가 줄거리삼은 것들이 결코 건조하지 않고 오히려 '질펀'하거나 축축한데도 건조하게 느껴지는 것은 '홍상수 어법'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이야기를 푸는 방식탓이다. 식당에서 날아드는 파리를 쫓는 모습이나 금붕어에게 가만가만 먹이를 주는 모습같이 아무렇지 않은 행동들 하나하나가 한 편의 영화를 지탱하는 힘이 되는 것 같다. 실제로 세밀한 언행, 혹은 그 기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오! 수정》은 이어서 보다 자세히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부터 이미 홍상수 감독의 중요한 관심거리였음이 분명하다. 《강원도의 힘》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것은 공간이다. 직소퍼즐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우리는 그 영화를 짜맞추어야 한다. 하지..

극장전 2004.01.06

거시기들의 힘: 이준익《황산벌》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 이용악「오랑캐꽃」 사투리를 줏대로 하여 황산벌 당시의 상황을 그려보겠다, 는 발상으로 만든 영화, 라는 문구가 《황산벌》의 주된 광고전략이었다.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황산벌》은 웃음을 주기 위한 오락영화에서 조금쯤 비켜서 있었다. 《황산벌》은 일단 무엇보다 '전쟁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몇몇 '리얼'하다는 전쟁영화에서 쓰인 '들고 찍기hand held'의 방법이 여기에서도 쓰였는데, 그것은 꽤 희화화 되긴 했지만 그 가운데서도 참혹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전쟁의 장면들을 자세히 그리고 있다. 희화화된 전쟁도 여전히 잔혹스러움을 드러내고 있으니, 그것은 온갖 성적인 코드들로 무장한 두 진영의 '욕' 싸움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어느 나라나 성적인 의..

극장전 2003.10.19

사랑의 확장: 미야자끼 하야오《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독일인의 사랑』의 마리아는 호메로스의 나우지카에서 사랑의 표본을 찾는다. 「옛날에는 달랐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호머가 나우지카 같은 사랑스럽고 건강하며 섬세한 여인을 만들어 낼 수 있었겠어요? […] 오늘날의 시인이라면 나우지카를 여자 베르테르로 만들어 버렸겠지요 […] 사람들은 오로지 취하게만 하는 묘약만 알 뿐, 생기를 주는 사랑의 샘물을 모르는 걸까요?」 -막스 뮐러『독일인의 사랑』신역판, 차경아 옮김, 문예출판사, 1987, 84-85쪽. 맥락은 다르지만 미야자끼의 애니메이션에서도 그 본질적인 것은 다르지 않다. 결국은 '사랑없음'이 모든 문제의 발단이고 '사랑'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다. 사랑이 진부한가? 아니다. 사랑이 진부하다면 성교性交도 식사食事도 수면睡眠도 모두 진부하..

극장전 2003.08.06

상상력과 자의식의 만화: Ocelot《프린스 앤 프린세스》

《왕자와 공주》는 '꿈과 희망의 공장'인 디즈니가 절대 넘볼 수 없는 수준의 새로운 아니마시옹이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전체적으로 하나의 우화적인 알레고리에 불과한 것이지만, 《왕자와 공주》는 상상력과 자의식이라는 부분을 겹쳐놓은 풍부한 두께를 가지고 있었다. 비록 그 안에 소속된 단편들은 유럽의 고전 동화들의 세계관에서 유달리 나아진 것이 없지만, 그런 상징들을 그들이 체현體現하는 과정은 전혀 새로운 방식이었던 것이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내지는 '믿음대로 되니라'라는 표현에 기초해볼 때 이 영화는 피그말리온의 '믿음'과도 관련될 것이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자신을 향해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은 피그말리온적인 나르시시즘이다. 자신이 극의 주인공이고 싶어하는 것은 사실 아이들이 흔히 가지는, 잘 ..

극장전 2003.06.27

대사의 리듬: 임영웅《고도를 기다리며》

극단 산울림의 《고도…》가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다는 소리도 들은 바 있고 해서 기대를 상당히 했는데, 그 기대가 전혀 깨어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의 흠도 없이 진행된 연극은, 거의 세 시간이나 되는 긴 연극이었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예상과는 무척 다른 연극이긴 했다. 그건 나의 고정관념 때문에 텍스트를 잘못 읽어서 생긴 문제였다. '실험극', '부조리극' 따위의 말 때문에 나는 이 연극이 으례 지루하고, 시종 비장감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베케트의 '고도…'는 비장한 극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희극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라고 이 연극을 보고 동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이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형식이다. 비극적인 희극 혹은 희극적인 비극. 연극은 거의 완전히 원작을..

극장전 2003.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