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에 바란다>“출판은 국민정신 발전체제의 큰 동력”

'이명박에 바란다'류의 칼럼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출판 분야의 요구 사항도 있다. 당선자가 궁금해 하는 것은 국민들의 요구 사항needs이고, 요구 사항이 적절할 경우 정책에 반영해야 할 것이므로 이런 칼럼들의 존재 의의는 분명하다. 게다가 이명박 당선자에게 흔히 부족한 부분으로 지적되는 것이 문화 부분이다. 경영학과라는 이유도 있고, 대기업 건설사 CEO 출신이라는 이유도 있다. 공약의 맨 앞자리를 경부 운하 등 건설 쪽에 배당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선입견일는지 모른다. 어쨌든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문화 분야를 챙기는 것은 무척 중요하고, 그 가운데 출판은 문화의 핵심이라는 자부심은 물론 매출 규모에 있어서도 '문화 산업' 가운데 '가장 큰 파이'이므로 당선자로서 꼭 챙겨야 한다. (2004년 기준 문화 산업 전체의 매출액은 19조5684억5700만원이고, 그 가운데 출판의 매출액은 15조3003억1600만원으로 전체의 78.2%에 달한다. 참고로 영화의 매출액은 2조6384억300만원이다.)



1. 출판계의 요구 사항

앞서 선입견 이야기를 했지만, 나로서는 이명박 당선자의 출판 관련 정책이 사람들의 기대처럼 되리라고 믿기는 힘들다. 그러기에는 이명박은 지나치게 거대담론에 매몰되어 있고 수치와 규모의 경제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숙경 이가서 대표의 다음 요구는 그저 허공에 흩어질 가능성이 크다:

우선 국가의 도서관 수를 확대해서 성실히 좋은 책을 만드는 출판사들의 책은 도서관에서 기본적으로 소화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외국은 작은 마을마다 도서관을 효율적으로 운영한다. 기본적인 생존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존심을 가지고 책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소신을 가진 출판사들이 대자본과의 싸움에서 경쟁할 수 있게 유통구조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으로 편법이 통용되지 않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

출판계에서 요구하는 것은 항상 정해져있다. 하나는 도서관의 확충이고, 다른 하나는 출판진흥위원회의 설립이다. 두 요구의 지향점은 한 가지인데, 결국 안정적인 매출인 셈이다. 출판이 '문화 산업' 가운데 가장 큰 매출 규모를 보이고 있음에도 출판계 입장에서는 '파이'의 크기 이외에도 개별 출판사의 안정적인 매출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아직까지 한국 출판계는 좋은 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여전히 많은 출판사들은 '많이 팔리는 책'의 이윤을 '좋은 책'을 만드는 데 쓰려는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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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알다시피 책은 편집자의 기획력이 가치를 좌우하는, 일종의 장인 제품이다. 따라서 규모가 큰 대형 출판사들의 책이라고 항상 좋거나 항상 잘 팔리는 것이 아니고, 규모가 작은 이른바 1인 출판사의 책이라고 해서 조악하거나 시장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몇 년 전 35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높였던 『창가의 토토』는 당시 1인 출판사였던 프로메테우스가 펴낸 첫 책이었다. 프로메테우스의 신충일 사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후에도 직원을 단 두 명만 채용했다면서 그 이유를 출판은 "결국 (소규모) '대장간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흔히 '문화 산업' 하면 먼저 떠오르는 영화와는 사뭇 다른 사고 방식이다. 영화의 경우는 '한류 열풍' 등의 요인에 힘입어 '많이 팔리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공식이 빠르게 자리잡았지만, 책의 경우 '베스트셀러가 좋은 책'이라는 등식에 전적으로 공감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영화 한 편을 찍는 데 드는 인력과 비용이 책 한 권을 펴내는 데 드는 것보다 현저히 많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블록버스터 영화'는 있어도 '블록버스터 책'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 하에서라면 영화는 파레토 법칙을 따르는 것이, 출판은 롱테일 법칙을 따르는 것이 유용할 것이며 두 '문화 상품'의 구매처인 멀티플렉스 극장과 대형 서점의 상영/진열 방식을 보면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마 두 '문화 상품'의 제작 시점에서도 마찬가지의 법칙을 따르고 있을 것이다.


2. 문화 vs. 문화 산업

앞서 했던 이야기를 종합하면, 전반적으로 출판인들이 바라는 문화 인프라는 '문화 산업 인프라'가 아니라 '문화 인프라'라는 것이다. 도서관을 늘려달라거나 출판진흥 기구를 설립해달라고 하는 것은 출판을 산업으로서가 아니라 문화 자체로 봐 달라는 것이다.

물론, 출판사도 하나의 회사이며 이윤 추구는 출판사의 중요한 목표다. 이윤이 없으면 출판사가 더이상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의 정당한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은 무척 기쁘고 당연한 일일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느 출판사든지 기획 단계에서 판매 예상 부수와 예상 손익을 점검해보게 마련이다. 하지만 출판사는 자동사로서의 출판을 하기도 한다. 이것이 일반 회사와는 다른 점이다.

가령, 편집자가 보기에 정말 훌륭한 책이 있는데 이 책의 예상 손익이 '제로'라면 그 책은 어떻게 될까? 수익만 따진다면 내도 그만, 안 내도 그만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나본 어느 출판사의 대표도 그랬고, 내가 믿는 대로라면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모두 그 책을 낸다, 고 답할 것이다. 출판사는 (좋은) 책을 내기 위해 존재한다고 그들은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출판사가 앞으로의 이익을 위한 홍보 효과를 내기 위해 내는 것이 아니고, 또 다른 대박 책을 찾을 때까지 출판사를 계속 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는 책도 아니다. 그 점이 회사와 출판사의 차이이며, 문화가 '문화산업'으로만 환원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3. 이명박 당선자와 문화 산업

그러나 문화일보 기사에 따르면 대통령 후보 시절 이명박 당선자는 문화 분야의 활성화를 일컬으면서 실은 문화 산업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출판과 관련해서는 도서관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정동영 후보가 '지역밀착문화예술복합도서관 1000곳 조성', '도서구입비에 대한 문화비소득공제 제도 도입' 등의 공약을 내건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당시 내건 것은 "투자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콘텐츠진흥기금 조성을 정책적으로 검토"하는 것과 "출판진흥위원회 설립도 적극 추진하겠다"는 것뿐이었다.

문화 관련 발언이 '투자'로부터 시작된다는 데서부터 이명박 당선자의 문화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에게 있어 문화는 해외로 뻗어나가는 한류이자 미국 땅에서 2000여 개 개봉관을 둥지 삼아 부활한 '드래곤'이 이끄는 전쟁터에 불과한 것이다.

그나마 투자 이야기는 아마 한 건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와 관련한 것일테고, 결국 출판과 관련해서는 출판진흥위의 설립 하나만을 이야기한 셈이다.


4. 출판진흥위원회와 그 방향성

최봉규 지상사 대표는 <이명박에 바란다> "독서는 국가의 미래"에서 출판진흥위원회 설립 추진 공약을 환영하며 이렇게 적었다:

당선자께서는 출판진흥위원회 설립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출판진흥기구는 어제 오늘에 거론된 이슈가 아니고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어느 정부도 못해 왔다. 공약으로 내 건 일인 만큼 큰 기대를 걸며, 지식산업의 핵심인 출판산업을 진흥시켜 우리나라를 지식강국으로 실현시켜 주길 바란다.

이를 보면 출판인들이 그래도 아직 이명박 후보의 발언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출판진흥위가 설립되어 문화일보 기사에서 이명박 당선자가 말한 대로 "출판정책 방향을 기존의 규제 중심에서 진흥과 육성으로 과감히 전환"할 수 있다면 이는 출판계에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출판진흥위도 큰 출판사 위주로 진행되거나, 팔릴 책만 지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간다면 그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이명박 당선자는 아직 취임 전이다. 그 전에 이 글의 결론을 낼 수도 없고 내서도 안 된다. 이 글은 이제 시작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판과 문화와 관련하여 앞으로 어떤 정책을 펴는지 모두가 지켜봐야 한다. 이 글은 그런 다짐으로 씌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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