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서 돈 냄새가 났으면 좋겠다”고 최영미 시인은 말했지만, 송경동의 시에서는 무슨 냄새가 날까.

광주천을 붉다고 쓴 시 때문에 얻어맞아 얼얼한 볼을 한 채로 맡은 봄 향기일까, 눅눅한 잡부 숙소의 때 절은 이부자리에서 나는 피 섞인 정액 냄새일까, 아니면 가끔 비정규직 일터인 지하로 내려오던 어느 아름다운 정규직 여 직원에게서 끼쳐오던 향수 냄새일까, 그도 아니면 아들과 놀이터 삼아 가던 사우나의 수증기 냄새일까.

『꿈꾸는 자 잡혀간다』는 운문의 제약에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롭게 쓰인 그의 줄글을 모은 책이다. 시집 속에서 그는 어쩔 수 없는 시인이었지만, 이 산문 속에서 그는 시인이기도 하고 시인이 아니기도 하다. 시인이 아닐 때 그는 노동자이자 투사이기도 하지만, 아버지이자 남편이자 아들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그는 아주 견고한 성벽을 쌓고 있는 그의 시집에서와 달리, 여기서 무방비 상태로 자신을 내보인다.

가령 학생들이 별 생각 없이 광주천을 붉다고, 날개를 달고 이 땅을 떠나고 싶다고 쓴 시를 공안 검사의 눈으로 바라보던 교감 선생님과 문예반 선생님의 ‘취조’ 사건은 그의 시에서였다면 단단한 껍데기에 싸여 고정돼 있었겠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핸드헬드카메라’처럼 흔들흔들, 거칠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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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IMG_4415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내가 그를 처음 본 것은 ‘용산 참사’ 현장인 남일당 빌딩이었다. 차디찬 겨울,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는 모닥불 곁에서 그는 성명 같은 시를 읽었다. 도무지 시 같이 느껴지지 않았고, 어쩐지 어색하게도 뭉툭한 모습이었다. 추위에 내가 너무 얼어 있었기 때문일까.

다시 참 쓸쓸한 겨울 공화국이다. 언론의 입에 재갈이 물리고, 사람들의 양심은 얼어붙고, 광장은 봉쇄당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보수화되고, 가진 자들은 인면수심의 짐승이 되어가고 있다. 사회가 닫혀가고 있다.

-「시대의 망루, 용산」

그러다 창비에서 나온 시집이 눈에 띄었고, 그 시집에서 그는 좀더 단단한 사고의 언어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쩌면 남일당 빌딩 앞에서 들었던 시와 같은 시였는지도 모르지만, 시집 속에 정련된 활자는 적어도 말들을 더욱 단단하게 보이게 하는 재주가 있는지도 모른다. 브레히트나 엘뤼아르의 어떤 번역시들을 연상하게 하는 그의 시는 세련되지 않은 매력이 있었다.

말하자면 백무산처럼 강하지 않으면서 단단하고, 박노해처럼 비장하지 않으면서 쓸쓸했다.

자꾸 뭔가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묵은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려봐도
진보단체 사이트를 이리저리 뒤져봐도
(…)
분명히 내가 잃어버린 게 한가지 있는 듯한데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혁명」

그리고 이번 산문집에서 그는 뭉툭하지도 단단하지도 않은 말랑말랑하고 흔들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그는 영웅도 위인도 아니었고, 평범한 사람이거나 어쩌면 그보다 더 못한 사람이었다. 꿈과 희망을 품고 있지만, 한 때는 욕망에 매몰됐던 사람이었다.

일을 받지 못한 날은 힘이 쭉 빠졌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생활이기에 타격이 컸다. 생활의 타격보다 일조차 할 수 없는 인생이라는 설움이 자학의 늪으로 청년을 끌어당겼다. 그런 날이면 청년은 텅 빈 잡부 숙소에 누워 종일 몇 번씩이고 자위를 하곤 했다. 어떤 땐 허물이 벗겨진 그곳에서 핏물이 배어 나오기도 했다.

-「그 잡부 숙소를 잊지 못한다」

그러나 그 말랑말랑함은 책을 읽어나갈수록 조금씩 뼈를 얻어간다.

1부~5부의 소제목으로 말하자면, ‘꿈꾸는 청춘’ ‘가난한 마음들’에서 물렁거렸던 것들이 ‘이상한 나라’에서 굳고, ‘잃어버린 신발’을 거쳐 ‘CT85호와 희망버스’에서는 점차 우리가 아는 송경동의 얼굴로 빚어진다.

이를테면 우리는 우리가 아는 그의 얼굴을 대하면서 조금씩 마음이 놓인다.

2003년 6월 11일, 김주익은 최후의 결단을 한다. 폭우가 쏟아지는 새벽, 혼자 100톤짜리 지브 크레인, 35미터 상공의 ‘85호 크레인’으로 올라갔다. ‘나의 무덤은 85호 크레인이다. 너희가 내 목숨을 달라고 하면 기꺼이 바치겠다’라는 절박한 호소였다. 하지만 그 결의를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경찰은 공권력을 수시로 투입했고, 국민의 정부를 넘어 참여정부라는 정권 역시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못 박았다. 힘을 받은 사측은 김주익이 목숨을 걸고 크레인에 올라 있는 동안에 단 한 번도 교섭에 나오지 않았다.

(…)

2011년 1월 6일 새벽 3시. 한 늙은 여성노동자가 김주익의 영혼이 아직 내려오지 못하고 있는 85호 크레인의 차가운 난간을 붙잡고 올랐다. 사측이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하기 전날이었다.

-「김진숙과 ‘85호 크레인’」

그래, 여기서 우리는 ‘구속당한 시인’인 송경동의 얼굴을 비로소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추도시 낭독이 폭력 행위가 되는 나라에서 그는 시인 직함을 단 투사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누가 내게 이 산문집의 매력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1부와 2부의 글을 읽어줄 것이다. 그가 투사나 시인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안다는 것은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 다시 그의 시에서는 무슨 냄새가 날까. 어쩌면 아무 냄새도 안 나지 않을까. 왜냐하면 자기 자신의 냄새는 아무도 맡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꿈꾸는 자 잡혀간다 - 8점
송경동 지음/실천문학사

Posted by 엔디

90년대 끝무렵에 대학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세기말 학번'이라고 했다. 당시 내가 있던 대학의 총학생회은 이른바 '비(운동)권'이었고, 단과대 학생회는 NL(민족자주)이었다. 별로 개의치 않았다. 새터(신입생수련회)에서 단대학생회가 주는 가방을 받았다. '통일'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었고 보라색과 회색이 있었는데, 나는 바라던 회색 가방을 받아서 내심 기뻤다. 학생회는 신입생들에게 IMF를 주제로 촌극을 만들라고 했다. 우리는 각 과/반별로 모여 촌극을 준비했고, 한국이가 대학 들어가서 공부 안 하고 놀다가 결국 F 학점을 받지만(I am F!=IMF),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열심히 공부해 A로 올라선다는 진부한 스토리의 우리 과/반 촌극은 전체 2위를 차지했다. 그게 다였다.

우리네 동기들은 세기말의 데카당스보다는 춘삼월 소주의 데카당스에 빠져 있었고, IMF의 우울함보다는 매년 4월 신입생들에게 찾아오는--대학생들이 4월병이라 부르는--존재론적 우울증에 침윤되어 있었다. 성적性的 문제보다는 성적成績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고. 그게 다였다.

의식화 교육이나 인식론적 충격 같은 건, 단언하건데 없었다.

맑스에 대한 논의, 내지 집착이
언제까지 대학 캠퍼스를 특징짓는 하나의
강한 열기로 남아 있을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이것은 분명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것이고
나는 이 시대 학생들이 하는 고민과 방황은
맑스가 잊혀지는 시대가 되어도 후배 학생들에게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중고교 시절에 보수적인 교육, 특히 반공 이데올로기나
발전 이데올로기에 찌든 교육을 받아온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여 1,2년 동안 열성적으로
'맑스 학습'을 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한다.
요즘처럼 관심의 폭이 좁고 쉽게 싫증을 내며 사고의
호흡이 짧은 대학생들이라면 '맑스 읽기'는
분명 그들의 사고의 폭을 넓히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책 읽기 중 하나이다. 젊은이들의 외로움에 지친 모습들,
지성적이기를 포기한, '휴거설'을 퍼뜨리고 국수주의적
전통부활을 외치는 모습이 캠퍼스에 늘어가면 갈수록
상대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조(한)혜정(84-85) 선생이 1992년에 펴낸 책에서 언급한 이 글은 분명 '의식화 교육'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로부터 4년 뒤에 있은 소위 '한총련 사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7년 뒤의 대학에서 그런 '의식화 교육'은 (전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학생들의 관심의 폭은 모르긴 몰라도 훨씬 더 좁아졌고, 싫증은 훨씬 더 잘 낼 것이며, 사고의 호흡은 전보다 더더욱 짧아졌을 것이 분명하다. 2008년 오늘의 대학은 역시 잘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그 경향이 더 심해진 모습으로 비쳐진다.

독두마왕 '전두'와의 사투: 김영하 『무협 학생운동』#

어느 날 나는 시를 공부한답시고 술을 퍼마시고는, 차가 끊겨 귀가를 못해 한 선배의 집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 NL 출신의 그 선배는, 학생회 일을 맡을 무렵 도망치듯 군에 입대한, 곡절의 주인공이었다. 술에 취하면 "그래도 나는 내셔널리스트야."라고 종종 되뇌이면서도 끝없이 서정시를 써냈던 그의 책꽂이에는 시집과 평론집이 꽂혀 있었다. 그 한편으로 '학생운동'이라는 제목의 책이 보였다. 학생운동에 대한 연구서일까, 연대기일까, 아니면 어떤 종류의 금서禁書일까; 그게 아니라 『무협 학생운동』이라는 무협지였다. 지은이는 김영하. 당시는 아직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보기 전이었고, 지은이의 이름은 꽤나 낯이 설었다. 책장을 열자, 열한 장으로 구성된 소설이었다. 첫장의 제목은 '중원에 불어오는 피바람'. 전형적이다; 가만 보면 서두의 문장도 그러하다(7):

하늘엔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었다. 류는 아마도 진눈깨비가 내리려나보다 생각하였다. 날씨는 점점 추워졌고 중원 백성들의 가슴에는 재앙의 기운이 내려앉고 있었다.
류는 박통의 장례행렬을 내려다보며 희망보다는 앞날에 대한 염려가 앞섰다.
'중원에 또다시 피바람이 몰아치겠구나…'

1979년 짧은 서울의 봄과 길고 긴 겨울의 80년대를 맞는 예감이라는 것이, 무협지의 전형적인 시작과 흡사하다는 것부터가 80년대를 무협지적 세계관으로 서술하려는 것이 아주 그릇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책은 '계엄진법(계엄령)'과 '긴조진법(긴급조치)'에 능했던 박통이 승상 재귀에게 살해당한 이후부터 시작하고 있다. '서울의 봄'이 아주 짧게 끝날 것이라는 점은 이런 배경 설정을 알아보면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제왕이 승상에게 살해당한 마당에 어찌 '봄'이 오겠는가. 그러나 무사들(학생들)은 그런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천연스럽게 '조로가朝露歌(아침이슬)'를 부른다.

서울의 봄은 독두禿頭(대머리)마왕 '전두'가 '육사방陸士幇' 동문인 '노갈'에게 보낸 서찰 한 통으로 그 끝을 예고한다(14):

박통께서 서거한 뒤, 중원의 혼란은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지경이네. 자네도 알다시피 박통께서 다스리던 시절, 실로 중원은 태평성대였네. […]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나서야겠네. 왕궁만 장악하고 아메대왕님의 윤허만 얻는다면 중원의 평정은 그리 어렵지 않을걸세.

이 책은 12.12가 미국(아메대왕)의 묵인을 염두에 둔 군사 쿠데타임을 벌써부터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이 때를 즈음해 무사들은 장안성 광장에 모였지만, 왕궁으로 가자는 이들의 주장을 묵살하고 한 '장문인'은 '오늘 우리의 의사를 조정에 충분히 전달했다, 이만 해산하도록 하자'고 말한다. 유명한 심재철의 80년 5월 15일 서울역회군 사건이 이 책에 고스란히 재현돼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 책의 장점은 만만찮았던 80년대의 수많은 사건을 빠짐없이 책 한 권에 담아낸 것이다. '서울역 회군' 이후 자객 '공수단'이 '광조성'에서 만행을 저지르고, 어디서나 '백건단白巾團(백골단)'이 정파 무사들을 사로잡으려 기승을 부린다. 자민방(NL)에 속한 주인공 류의 사제인 민민방(ND)의 초아는 '문귀'라는 자에게 성고문을 당한다. 문귀동이라는 자가 저지른, 지금은 부천서 성고문 사건으로 알려진 사건의 재현이다.

이 시기에 나오는 정파 무사 편의 '영웅'들도 만만치 않다. 자민방의 '강철대사'는 "이 모든 것은 아메마황의 탓"이라 주장하며 등장하고, 민민방의 '초민선사'는 전두마왕을 꺾어 평화를 찾아야 한다고 나타난다. 이들은 물론 '강철서신'으로 유명한 NL의 강철 김영환과 ND(민족민주) 최민의 소설적 변용이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강철이 제자 류에게 주는 비서秘書가 『기발旗發』이라는 점이다(62). '깃발'은 ND 민추위의 것으로 소설에서라면 초민선사의 것이라야 온당하기 때문이다.)

당시 논쟁했던 '사구체(사회구성체)논쟁'도 강철과 초민의 '논검'으로 그려져 있고, 강철 김영환의 밀입북도 보안파 무사에게 쫓기던 강철선사가 의식을 잃고 일성천존一星天尊이 다스리는 나라로 간다는 내용으로 그려져 있다(238-239):

"안심하십시오. 이곳은 중원의 사람들이 올 수 없는 땅입니다. 이곳은 일성천존一星天尊께서 다스리는 나라로 아메마황조차 범접할 수 없는 곳입니다."

강철은 탄성을 질렀다. 이 나라에 대한 얘기는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었다. 중원에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신비의 나라로 붉은 마귀와 늑대들이 살고 있다고 전해져 오는 나라였다. 그러나 강철이 둘러보니 붉은 마귀와 늑대는 보이지 않고 사람들은 아주 온화하고 친절하였다.

[…]

"이곳은 옛날 아메마황의 침략으로 쑥대밭이 되었던 적이 있소. 하여 가족 중 한두 명은 아메마황과 그 부하들에게 죽지 아니한 집이 없소. 그래서 일성천존께선 아메마황을 물리친 이후, 모든 백성에게 주사신공主思神功이라는 독특한 무공을 전수하여 주셨소. […]"

반면 초민선사는 서역으로 가서 '변증창'과 '유물검', 그리고 마극사馬克思와 은격사恩格斯가 지은 무림 최대 비급 『자본강요』, 『공생당선언』, 『서역이념』이라는 책 세 권을 얻는다. 물론 변증법적 유물론과 『자본론』, 『공산당선언』, 『독일이데올로기』의 변용일 것이다.

물론 '국본대방(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설립과 '열(이한열 열사)'의 죽음, 그리고 그것이 도화선이 된 6월항쟁과 '노갈'의 선언(6.29 선언)도 초보적이나마 언급돼 있다.

6.29 선언이라는 '승리 아닌 승리'를 거두고 나서 류는 초아에게 이렇게 말한다(260-261):

"초아, 어쩌면 우리가 겪었던 칠 년보다 더 어려운 세월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 역시 두렵지 않소. 이제 다시 새로운 시작이오. 아마도 우린 중원의 앞날을 두고 다시 쟁패할 지도 모르지만 이전처럼 무기력하게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오."

무협지까지 금서로 만드는 전대미문의 세상: 유하 『무림일기』#

『무협 학생운동』보다 3년 앞서 1989년에 출간된 유하의 첫 시집 『무림일기』도 80년대를 무협지적 세계관으로 읽어낸 텍스트다. 당연하게도 『무협 학생운동』과 마찬가지로 '서울의 봄'과 그 경고로 시작한다(9):

온 세상이 다 노랗다
봇물 터지듯 만발한
개나리꽃
시대의 노란 신호등
해빙의 봄일수록
돌아가시오
돌아가시오
한다

- 「개나리꽃 ―여는 시」전문全文

『무림일기』는 시집이라는 면도 있고, 해서 『무협 학생운동』보다 더 종합적이거나 더 단편적이다.

가령 '무림일기' 연작의 첫 작품인 「무력武歷 18년에서 20년 사이」는 '무림패왕 천마대제 만박'(박정희)이 '천상옥음 냉약봉'(심수봉) 등이 그의 진기를 분산시킨 사이 '낙성천마 금규'(김재규)에게 불의의 일장을 맞고 척살되자 '광두일귀 동문혹'(전두환)이 나타나 중원을 평정하고 '칠청단'(삼청교육대)을 동원해 무고한 백성을 괴롭힌 이야기며,  '공수무극파천장'(공수부대)으로 '하남'(광주) 땅 민초들의 항쟁을 짓밟은 대혈겁 이야기가 고작 37행에 정리돼 나타나 있다. 그러는 사이 유하는 "무협신문들은 […] / 강력한 무공의 소유자가 중원을 다스려야 한다고 / 수심에 가득찬 기사를 썼지만 대부분 인면수심들이었다"거나 "무력武歷은 무력武力으로밖에 지킬 수 없다" 따위로 희극과 비극 사이를 삼투시키는 말놀이를 동원한다.

'무림일기' 연작의 일곱 번째 작품인 「정통종합검법」은 당시 수험생들의 필독서였던 송성문의 영어 학습서 『정통종합영어』--후에 『성문종합영어』로 개칭된--에 빗댄 표현으로, 시인은 책 속에 실린 명사名詞검법의 '붓은 검보다 강하다, 검약필강'의 구결(표현)을 뽑아내 "중원무림의 젊은이들이 / 검약필강의 은밀한 구결을 뼛속 깊이 해독해내는 날 / 붓의 무형강기가 그 어떤 초식보다 날카롭게 / 중원무림을 정통으로 꿰뚫으리라 / 중원은 정통성을 되찾으리라"고 예언한다. 더 단편적인 것에서 더 종합적인 내용을 뽑아내는 시의 묘미다.

당시의 보도지침을 무협지 형식으로 꾸며낸 시 「오늘의 전서구」도 짧지만 강렬하다(44):

무림맹은 다음과 같은 전갈을 보낸다

무림 비무대회가 열리면
무림제일문보다 소림파나 무당파가 우세
불쾌한 표현이니 비판하라

오늘있는 공심대사와 하남일존의 비무사진은
싣지 말 것

신무림방에 소림파 제자들 화염장풍 쏘다
보도 보류 바람

분근착골 육골분시 같은 과격한 표현보단
단순한 혈도제압이라 순화시켜 쓸 것

중원에 애이주愛夷酒 환자 일만명
사실무근이므로 보도하지 말 것

사천표국 색마 검귀의 채음보양술 사건은
단순히 차력음영대법이라 쓸 것

죽엽청과 삶은 만두 먹는
무림맹주 존영 크게 실을 것

(말 안듣는 무협신문은 고량주 광고 잔뜩 줄 것)

- 「오늘의 전서구 ―무림일기5」

물론, 공심대사는 김영삼, 하남일존은 김대중이다. 애이주는 물론 에이즈를 일컫는 말일 테고, 색마 검귀의 채음보양술은 앞서도 언급했던 부천서 성고문 사건인 듯하다. 이 시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광고가 무기였던 당시 신문산업의 일단까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시인·작가로서 자신의 고뇌가 엿보이는 작품은 단연 「무협지 작가와의 대화」이다(37-38):

그는 대학을 하산한 뒤 기껏 무협지를 쓰고 있었다
어제는 백명 죽이고
오늘은 고민 고민하다가 이백명 죽였어
죽엽청이 거나하게 들어가자 그는
귀기어린 안광을 번득이며 전음입밀의 수법으로 말했다
사형은 아마도 하남의 혈겁에 대해 쓰는 것 같았다
[…]
하지만 사형, 소설은 현실의 복사가 아니잖소? 절제가……
무슨 닭뼈다귀 같은 소리냐
무협소설은 무림을 그대로 드러내는 데 그뜻이 있어
내일도 모레도 애꿏은 자들
몇 백명 더 죽어야 내가 쓰는 무협지가 끝이 날지……

거친 대로 '리얼리즘 논쟁'의 출발점을 보여주는 이 짧은 시는, 그에게서 무협지란 문학이라는 것의 제유提喩라는 것을 말해준다. 실제로 유하는 자신의 두번째 시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에 실린 「무림武林 파천황破天荒」에서 대학 시절 장당 50원에 무협지 쓰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을 쓰고 있다(55-57). 거기서 그는 과다한 섹스 신과 유치한 문장들의 강요보다 자신을 더 곤란하게 했던 것은 대량살육이었다고 고백한다; 실은 그가 쓰고 싶었던 것은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초점으로 한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무림 파천황」은 1981년 있었던 무협지 『무림 파천황』 필화 사건을 소재로 한 시다. 당시 학생이었던 박영창이 쓴 『무림 파천황』이라는 무협지에 정파와 사파의 대립을 변증법적으로 종합(지양)하는 내용이나, 주인공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만난 노인이 '영혼 따윈 없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유물변증법에 관한 내용을 한두 페이지 넣었던 것이 문제가 되어 국가보안법에 걸렸다. 물론 그 책은 금서가 됐다.

그러나 정작 새로운 세상을 연 자들은 바로 그들이었다 만화방의 무협지까지 금서로 만드는 전대미문의 세상
어디에도 혼돈은 없었다 선과 악의 획일화, 절대악이 사자후하고 있었기에 너무 쉽게 절대선이 가능했다

80년대는 그런 '전대미문의 세상'이었다.

무협지와 21세기: MB시대#

절대선과 절대악이 가능했던 시대가 80년대라고 한다면, 그 시대는 필연적으로 무협지를 우리 앞으로 호출하고 있는 셈이다. 김영하 역시 『무협 학생운동』의 존립 근거를 거기에서 찾고 있다. 『무협 학생운동』의 「작가 후기」에서 그는 5공화국의 무협지성을 간단하게 말한다(264):

온갖 정견과 정파가 스팩트럼화하는 지금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5공화국 시절은 그래도 선악의 구도가 명확한 시기였고 아타의 근별도 훨씬 수월했던 시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하가 말한 '절대선과 절대악'의 다른 표현이다. 이것이 사상적 측면의 무협지성이라면, 이어진 다음의 말은 무협지의 비실제성을 환기시킨다(264):

원시적인 고문이 횡행하고 수천명이 한꺼번에 감옥에 갇히는가 하면 기찻길 옆과 바닷가에서 의문의 주검들이 잇따라 발견되었다. 이런 야만적인 압제에 대항하여 수많은 젊은이들이 학생회관 옥상에서, 대강당 지붕에서 밧줄 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싸웠던 시절은 모더니즘적 세계관보다는 차라리 무협지적 세계관에 가깝다.

어쩌면 80년대 리얼리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드는 갸웃한 느낌이나 미진한 느낌은, 그 시대가 전혀 실재하지 않았던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그땐 그랬다'는 투의 서술이 제대한 복학생들이 서로 자신의 부대가 '빡세'다고 치기어린 자랑을 하면서 섞는 '구라' 같은 느낌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의 유명한 사진과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는 발언이 나올 수 있었던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이 어디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인가?

이어지는 90년대는 또 어떤가. 다른 사람도 아닌 유하가 『무림일기』의 '영화사회학' 연작과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에서 촘촘하게 묘사하는 것처럼 그 시대의 현실은 TV와 스크린 속의 부조리가 TV 바깥으로 나온 것 같은 시대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5.16 5.17 장군본색將軍本色은 한국판 느와르요?    - 「싸랑해요 밀키스, 혹은 주윤발論」中

뭐가 진실이냐? 칼릴 지브란의 시집을 사보는 국문과 대학생이
황지우가 누군지 모르고 정복자 펠레는 아예 브라질에서 축구를 하고
불가해함이 난해함으로 칭송받고, 이,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실추된 가장의 권위를 회복하는 내용의 영화가 '좋은 영화'로 선정되고
[…] 영구나 땡칠이로 도배를 하면서 저질 직배 영화 결사 반대! 이보시오 벗님네들,
―관객 사랑도 다 하기 나름이라구요    - 「수제비의 미학, 최진실論 ―안 이쁜 신부도 있나, 뭐」中

신라의 토착 종교 풍류風流에서, 그 신도들 후손의 피바람으로 이루어진
국풍國風 81, 김범룡의 바람 바람 바람, 바람자만 붙으면 붐붐 히트하는
최근 가요계 현상까지, 수천 년 변치 않고 이어지는 우리나라
거대한 바람의 계보, 바람잡는 역사    - 「바람의 계보학, 이지연論 ―바람아, 멈추어다오」中

그러고보면 유하는 「무림 파천황」에서 공심대사가 '구국의 결단'이라는 삼당합당을 통해 무림 시대를 종식한 뒤에도 장당 오십원짜리 무협지는 여전히 씌어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언젠가 빛을 발할 '검약필강'의 초식을 상찬하고 기다렸던 그가 "칼은 칼이요 붓은 붓"이라는 뼈아픈 현실 인식을 하며 '미증유의 검법'을 기다리는 동안 세상에는 무협지적인 비현실이 엄존했다.

지금은 어떤가? 철거 직전의 상가에서 여섯 철거민이 불타 죽고, 노벨 평화상을 받으며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낸 한 전직 대통령과 그를 이은 다음 대통령이 불과 몇 달 사이에 명을 달리하고, 기동대는 노조원들에게 전기가 통한다는 쇠침을 거침없이 발사하고, 여전히 분을 못 이긴 사람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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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0510_쌍용차분향소_51 by 참여연대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그러니 달나라나 화성으로 소풍을 갈 거라고 했던 21세기, 지금 현재도 무협지는 끊임없이 되풀이 씌어지고 있는 셈이다. 장당 오십원이라는 단가는 아마 더 인상됐겠지만.

나는 용산 참사가 벌어진 남일당 건물 앞에서, 희생자들의 영정을 모신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밤을 지새우며 21세기의 비현실성과 선/악의 명확성을 다시금 깨닫는다. 저녁마다 나오는 뉴스가 무협지 같고, 짬짬이 훔쳐보던 무협지가 뉴스 같다. 사람들은 어느 사이 무협지의 텍스트 안쪽으로 들어와 있다. 그러나 정파 무사들은 여전히 한 줌인 듯하다.

시인의 통찰력일까. 유하는 소망교회 장로가 용산에, 광화문에, 평택에 불을 가져올 것을 알았는지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연작의 네 번째 시를 이렇게 (예언하듯) 쓴다(68):

소망교회 앞, 주 찬양하는 뽀얀 아이들의 행렬, 촛불을
들고 억센 바람 속을 걸어간다 태초에
불이 있나니라, 이후의 ―

[…]

불 같은 소망이 이 백야성을
만들었구나, 부릅뜬 눈의 식욕, 보기만 해도 눈에
군침이 괴는, 저 불의 부패 색色의 성찬盛饌을 보라
그저 불밝히기 위해서 심지 돋우던 시절은 지났다

[…]

불의 소망 근처에서
불의 구린내를 빠는 똥파리의
윙윙 날개 바람

바람 속으로 빽이 든든한
촛불들이 기쁘다 구주 기쁘다
걸어간다, 보무도 당당히, 오징어의 시커먼 눈들이
신바람으로 몰려가는, 불의 부페 파티장 쪽으로

-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4 ―불의 부페」

참고문헌#

김영하. 1992. 『무협 학생운동』. 아침의소설6. 서울:아침.
유하. 1989. 『무림일기』. 문예중앙 시인선1. 서울:중앙일보사.
―――. 1994(초판 1991).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문학과지성 시인선104. 서울:문학과지성사.
조(한)혜정. 1992.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 1:바로 여기 교실에서. 서울:또하나의문화.


Posted by 엔디
최초의 시계, 최초의 달력은 사람의 눈이었다. 사람들은 태양과 달의 모양과 움직임, 물의 흐름을 보고 세월歲月과 시간時間과 촌음寸陰을 알았다.

박주택의 시집 『시간의 동공』은 시인의 눈을 따라 시간의 흐름을 꿰뚫어보고, 눈이 보았던 기억과 그 속에 숨어있는 계급을 살펴보는 시집이다.

시인의 눈은 먼저 "문을 닫은 지 오랜 상점"을 바라본다. 불빛이 없어 어두운 그곳에는 발가벗겨진 채 갇혀 있는 인형이 보인다. 시인은 문득 섬뜩함을 느낀다. 그리고 사뭇 달랐던, 처음 그곳에 갔을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때는 허리춤이 드러난 한 여자가 물을 뿌리며 창을 닦고 있었고, 사랑스러운 아이와 고요한 커피 잔도 시인의 눈에 들어왔다. 아마 인형도 그 때는 옷을 걸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인은 그 먼 기억과 다른 괴기한 광경만 볼 뿐이다. 시 '폐점'의 내용이다.

기억은 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무엇인가를 기억하는 행위는 과거와 지금이 같은지 다른지 비교하게 하고, 그 사이 수많은 시간의 물결과 주름을 알아보게 한다. 문제는 이 물결과 주름이 만드는 숫자의 흐름에는 어떤 정치적인 함의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간이란 계급을 재편성하는 과정이란 느낌이 들 때
햄버거는 입속에서 혈관을 터뜨리고 커피는 저녁처럼 어두워졌다
순환하는 인간들, 청춘은 중년이 되고 또 다른 청춘은
이곳을 가득 메우며 노년에 이르게 됨을 눈치채지 못한다

- 「강남역」부분.

여름 저녁 강남역 인근의 번화가를 지나다보면 젊음이 하나의 계급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땀 냄새가 가득한 그 청춘의, 여름의 계급은 「여름들」에서 보듯 자꾸 무엇인가를 소유하려고 하고, 무엇인가를 불러들이려 한다.

그러나 그 계급은 결국에는 부질없이 지고 마는 계급이다. 여름이었던 시간은 어느새 가을로, 가을이었던 시간은 금세 겨울로 변해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깨달은 것일까. 시인은 「여름 말 사전」에서 "여름이 갈 때 용서하자"고 노래한다. 이어 「가을 말 사전」에서는 "빈 들에 서서 서서히 가라앉는 것을 본다." 이어 눈보라가 치고 종소리가 울리면 그제서야 "여름이 겨울처럼 늙어가 이제는 울음조차" 시인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소년이었을 때」).

사실 겨울이 지나면 이승에 남는 것은 없다.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성서의 예언처럼 모두 본래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이제 남은 것들은 자신으로 돌아가고
돌아가지 못하는 것들만 바다를 그리워한다

- 「시간의 동공」부분.

하지만 망각만이 남아 있을 것 같은 겨울 이후에도 여전히 기억은 끈질기게 깨어 있다. 시인은 그것을 '미련'이라고 부른다.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은 기억되려는 욕망 속에서 무덤이라는 것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곳은 미련의 둥지다
저마다 지붕을 틀고
게걸스러웠던 입을 다문 채 죽은 것처럼
누워, 햇빛을 쬔다
[...]
죽어서도, 끝끝내
버리지 못하는 미련의 노란 창문이다.

- 「묘지」부분

물론 이런 기억이 갖고 있는 미련은 마냥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땅 속에 묻힌 무덤은 뿌리이지만, 줄기와 여름의 꽃잎들은 한 나무의 가지가 되기 때문이다. 조선 3대 태종 부부와 23대 순조 부부가 나란히 묻힌 헌인릉에서 노는 아이와 부모들을 보고 반 세기를 살아온 1959년생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뿌리들은 어느 마음의 끝 땅속에 내려
이토록 질긴 목숨으로 얽혀 있을까
바람이 지나가면 그 흔들림만큼 흙 속을 엉켜드는
목숨들 두 번의 생이 있다면 아름다움이 다투어 묶이는
창문에 나가 동터오는 집의 입구를 바라볼 것이다

- 「헌인릉 가서」부분

삶의 성(城)은 언젠가 조금씩 몰락해가는 것이지만 계속해서 다시 지어지는 것이며, 그 모든 주름져가는 과정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시간의 동공 - 10점
박주택 지음/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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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시 「'金日成萬歲'」를 읽었다. 제목만 봐도 어지간해서는 출간을 못했겠구나 싶은 시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 것이다. 이를테면, 텍스트가 가리키는 달이 분명 '한국의 언론 자유'라고 하더라도, 그 손가락인 텍스트가 너무 '섹시'했기 때문에 당국은 텍스트 자체를 모자이크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건 김수영 같은 시인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아름다운데다 달을 가리키기에 더이상 효과적인 수단을 찾을 수가 없었던 탓이다. 시를 읽어 보자(김수영 2008, 119):

'金日成萬歲'
韓國의 言論自由의 出發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韓國
言論의 自由라고 趙芝薰이란
詩人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金日成萬歲'
韓國의 言論自由의 出發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韓國
政治의 自由라고 張勉이란
官吏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1960.10.6.)

시적인 기교를 거의 부리지 않은 무척이나 담박한 시다. 김수영이 진실로 김일성을 추종하는 시인이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고, 오로지 무엇이든 말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검열의 왕국을 불평하고 있는 것이다.

김수영은 외로이 잠이 들었다가 깬다. 그는 함께 이야기할 말벗이 없다. 장면이라는 관리뿐 아니라 조지훈이라는 시인까지도 '자유'에 대한 '견해'가 달랐기 때문이다. 김수영은 그보다 일찍이 1956년에는 「눈」이라는 시를 통해 대나무숲에라도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을 쏟아놓기도 했다(김수영 1981a, 97):

기침을 하자
젊은 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1956)

4월혁명이 일어난 후, 김수영은 4월 26일 조간에 발표된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는 시를 통해 이제 '상식'이 된 민주주의와 자유를 부르짖는다. (그날 낮 1시 이승만은 하야를 발표한다.) 김수영은 "기침을 하자"에서 벗어나 하고 싶었던 말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운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제2공화국이 들어서자 김수영은 6월 30일 일기에서 비통하게 말한다(김수영 1981b, 333):

第二共和國!

너는 나의 적이다.
나는 오늘 나의 완전한 휴식을 찾아서 다시 뒷골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거기에는 어제의 나는 없어!
[­…]

오오, 자유. 오오, 휴식.
오오, 허망.
오오, 그럼 나의 벗들.

第二共和國!

너는 나의 적이다. 나의 완전한 휴식이다.
영광이여, 명성이여, 위선이여, 잘 있거라.

그가 이런 어조로 2공화국을 '까'는 이유는 무엇일까. 혁명 속에서 말의 자유를 만끽했던 김수영이 2공화국에서 어떤 훼방을 발견한 것이 아닐까? 분명히 2공화국은 최인훈의 『광장』을 용인했고, 대한민국 제2공화국 헌법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사전 허가 또는 검열제를 금지하는 등 자유권의 강화가 많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김수영은 한국의 언론 자유에 대해 '~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으로의 자유'가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 같다. 다시 김수영의 일기를 보자. 9월 20일자 일기다(김수영 1981b, 338-339):

언론자유나 사상의 자유는 헌법조항에 규정이 적혀있다고 해서 그것이 보장되었다고 생각해서는 큰 잘못이다. 이 두 자유가 진정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위선 자유로운 환경이 필요하고 우리와 같이 그야말로 이북이 막혀 있어 사상이나 언론의 자유가 제물로 위축되기 쉬운 나라에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이 두 개의 자유의 창달을 위하여 어디까지나 그것을 격려하고 도와주어야 하지 방관주의를 취한다 해도 그것은 실질상으로 정부가 이 두 자유를 구속하게 된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정부가 지금 할 일은 사회주의의 대두의 촉진 바로 그것이다. 학자나 예술가는 두말할 것도 없이 국가를 초월한 존재이며 불가침의 존재이다. 일본은 문인들이 중공이나 소련같은 곳으로 초빙을 받아 가서 여러가지로 유익한 점을 배우기도 하고 비판도 자유로이 할 수 있게 되어있다. 언론의 창달과 학문의 자유는 이러한 자유로운 비판의 기회가 국가적으로 보장된 나라에서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검열이란 정부 기관이나 영진위, 기윤실, 유림 따위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검열은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이미 존재하며, 자기 검열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검열이다. 글쓰는 사람이 조건반사처럼 글을 쓰면서, 심지어 혼자 생각에 잠겨 있을 때조차 스스로의 글과 생각을 제한해야 한다면, 거기엔 실질적인 검열이 없더라도 언론 자유가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가령 불평은 있지만 검열 때문에 불평을 말할 수 없는 오웰의 『1984』보다 불평 자체를 느끼지도 못하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더 끔찍한 세계다.

위 김수영의 일기를 읽고 놀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논리정연한 글에 고개를 끄덕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 「'金日成萬歲'」나 그 제목을 읽고서는 아마 한국인들의 대부분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김태권의 시사 책꽂이: 김수영전집

ⓒ시사인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81


10월 6일 이후, 이 시가 겪은 수난은 시인의 일기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여기에 옮겨 보자(김수영 1981b, 339-340, 342):

10월 6일

시 「잠꼬대」*를 쓰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썼는데, 현경한테 보이니 발표해도 되겠느냐고 한다.

이 작품은 단순히 〈언론자유〉에 대한 고발장인데, 세상의 오해여부는 고사하고, 《現代文學》지에서 받아줄는지가 의문이다. 거기다가 거기다가 趙芝薰도 이맛살을 찌푸리지 않는가?

* 이 작품의 최초의 제목은 「○○○○○」. 詩輯으로 내놓을 때는 이 제목으로 하고 싶다.

10월 18일

시 「잠꼬대」를 《自由文學》에서 달란다. 「잠꼬대」라고 제목을 고친 것만 해도 타협인데, 본문의 〈×××××〉를 〈×××××〉로(한글로--편집자 주) 하자고 한다.

집에 와서 생각하니 고치기 싫다. 더이상 타협하기 싫다.

허지만 정 안되면 할 수 없지. 〈      〉부분만 언문으로 바꾸기로 하지.

후일 시집에다 온전하게 내놓기로 기약하고.

한국의 언론자유? God damn이다!

[…]

10월 19일

[…]

시 「잠꼬대」는 無修正으로(언문 교체 없이) 내어밀자.

10월 29일

「잠꼬대」는 발표할 길이 없다. 지금같아서는 시집에 넣을 가망도 없다고 한다.

12월 25일

「永田絃次郞」과 「○○○○○」를 함께 월간지에 발표할 작정이다.

12월 25일

「○○○○○」는 〈인간본질에 대해서 설치된 諸制限을〉관찰하는 데 만족하고 있는 시이다.

김수영은 이 문제가 되는 시를 "아무렇지도 않게" 썼다고 했다. 그런데 아내에게 보여 주니 "발표해도 되겠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니 수영 자신도 은근히 걱정이 되는 모양인지 잡지에서 받아줄지 안 받아줄지 걱정한다. 《현대문학》이 받아주지 않았는지 《자유문학》으로 지면을 바꾸어 보지만 거기서 다시 타협을 요구하고, 김수영은 그걸 받을지 말지 고민한다. 결국 그가 《자유문학》에 내민 원고가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국 그 시는 발표할 지면을 찾지 못했다. 시집으로도 넣지 못한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김수영의 울분이 느껴지는 듯하다.

12월 25일자 두 일기의 「○○○○○」가 「'金日成萬歲'」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가타 겐지로永田絃次郞」 역시 월북 등 북한과 관련된 시이므로 「○○○○○」를 「'金日成萬歲'」로 보는 것에 문제는 없어 보인다. 김수영은 「○○○○○」가 단지 "인간본질에 대해서 설치된 제제한을 관찰하는 데 만족하"는 시라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다. 여기서는 '언론의 자유'라는 것을 넘어서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 설치된 모든 제한을 관찰하는 시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이유가 내부 검열 또는 자기 검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검열을 시작하게 되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김수영 1981a, 249-250):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五十원 짜리 갈비가 기름덩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려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1965. 11. 4.)

1965년이면 1963년 윤보선을 상대로 대선에 성공한 '민간인' 박정희가 군인들을 베트남으로 파병했던 시기이다. 아마 이 때쯤부터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가 더욱 공고해졌을 것이다. 사상의 통제는 더욱 심해졌을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김수영은 "왕궁의 음탕"에 대해 쓸 수 없었다. 그것을 쓰면 잡혀갔을 것이고, 그것을 쓴다고 해서 받아줄 잡지도 출판사도 없었다. 김수영이 스스로 반성하고 있는 이 시, 「어느날 古宮을 나오면서」를 읽을 때면, 그가 얼마나 소시민이었고 그가 얼마나 옹졸했는가를 생각하기보다는 그가 말을 하는 데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었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옳다.

김명인(2008, 168)은 "김수영에게 언론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문학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을 밝혀 쓰고 있고, 김현(1991, 399)도 마찬가지로 "그에게 있어서는 자유가 없는 곳에서의 시란 방랑이며 고초이며, 설사이다. 그것은 소음이다. 그러나 그는 그 소음을 더욱 크게 내지르려고 애를 쓴다. 그것은 저질의 참여시가 아니라, 높은 정신의 자기 학대이다."라고 쓰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김수영의 시 「'金日成萬歲'」를 그대로 실었을 경우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체제가 무너지거나 권위가 떨어지거나 했을 것인가 하는 가정이다. 이북의 1960년대는 이른바 '천리마 시대'였다. 천리마 시기가 되어 증산增産은 물론 사상의 통제도 더욱 심해졌다. 이 운동의 결과 북은 아마 상당 부분의 성과를 거두었던 것 같다. 김일성은 문예에 대해서도 천리마 운동이 필요하다고 교시한다. 그에 따르면 "문학과 예술은 언제나 현실보다 앞서"서 공산주의로 가는 투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작가들이 "천리마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비판한 모양이다(신형기·오성호 2000, 219-225).

한국 사회가 「'金日成萬歲'」를 용인하지 못했던 것은 자기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1960년대 당시에 김수영의 「'金日成萬歲'」가 발표될 수 있었다면 국가 체제는 물론이고 권위 역시 더욱 공고해졌을 것이다. 김수영은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시를 썼던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그 영민한 김수영이 과연 「'金日成萬歲'」라는 시가 지면을 찾지 못하리라는 것을 몰랐을까. 사람들이 달을 보지 못하고 '섹시'한 손가락만 바라볼 것이라는 걸 그가 몰랐을 리 없다. 나는 그가 더 먼 미래를 바라보고 이 시를 썼으리라고 생각한다. 4월 혁명보다 더 먼 미래를 말이다. 4월 혁명은 성공한 혁명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김수영은 「그 방을 생각하며」에서 이렇게 말한다(김수영 1981a, 160):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狂氣----
失望의 가벼움을 財産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歷史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財産으로 삼았다

[…]

방을 잃고 落書를 잃고 期待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1960. 10. 30.)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꾼 셈이 되었고, 언론 자유도 없어 펜은 녹이 슨 데다 이제 뼈와 광기만이 남은 상태다. 재산은 실망의 가벼움뿐이다. 이것이 시인의 현실 인식이다. 1960년 10월이면 『광장』이 발표된 때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자유로웠던 그 시기에 김수영은 이미 녹슨 펜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수영은,

그러나 수영은 언젠가 「'金日成萬歲'」를 출간할 날이 오리라고 믿었던 것일까. 그의 가슴은 그 때 무엇으로 풍성했던 것일까.

덧말) 정지창 교수는 다산연구소에 기고한 글, 「유언비어의 시대」에서 언론 자유가 없던 시절에 '유언비어'가 담당했던 기능에 대해 회고하고 있다. 그 시절 '유언비어'는 진실의 다른 이름이었다. 당시의 '유언비어'는 언론 통제를 공격하는 게릴라부대와 같다. 이제 '괴담'이라는 이름의 '유언비어'를 다시 통제하려고 하는 정권이 들어섰다. 김수영이 말했듯 민주주의와 자유는 이제 상식으로 되었다. '김일성만세'가 빤히 잡지에 실릴 수 있는 이 시대에, 언론 통제는 번연히 살아 있음을 본다. 방의 벽에라도, 인터넷 어느 구석에라도 나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 라고 낙서라도 꾹꾹 눌러서 하자.

참고문헌

김명인. 2008. "제 모습 되살려야 할 김수영의 문학세계: 김수영 미발표 유고 해제". 실린곳: 『창작과 비평』. 통권 140호. 서울:창비. 153-176쪽.
김수영. 1981a. 『김수영 전집』. 1:詩. 서울:민음사.
------. 1981b. 『김수영 전집』. 2:散文. 서울:민음사.
------. 2008. "'金日成萬歲'". 실린곳: 『창작과 비평』. 통권 140호. 서울:창비. 119쪽.
김현. 1991. "김수영을 찾아서". 실린곳: 김현. 1991. 『상상력과 인간/시인을 찾아서』. 김현문학전집3. 서울:문학과지성사. 392-399쪽. 처음실린곳: 『심상』. 1974년 3월호.
신형기·오성호. 2000. 『북한문학사: 항일혁명문학에서 주체문학까지』. 서울:평민사.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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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2008년 가을호(통권141호) '독자의 목소리'에 실린 요약:

김수영의 시 「‘金日成萬歲’」를 읽었다. 제목만 봐도 어지간해서는 발표 못했겠구나 싶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 것이다. 이를테면 텍스트가 가리키는 달이 분명 ‘한국의 언론자유’라 하더라도, 그 손가락인 텍스트가 너무 ‘쎅시’했기 때문에 텍스트 자체를 모자이크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읽어보면, 이 시는 기교를 거의 부리지 않은 무척이나 담백한 시다. 김수영이 진실로 김일성을 추종하는 시인이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고, 오로지 무엇이든 말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검열의 왕국을 불평하고 있는 것이다. 해제에서 김명인도 “김수영에게 언론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문학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밝혀 쓰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金日成萬歲’」를 그대로 실었다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체제가 무너지거나 권위가 떨어졌을 것인가 하는 가정이다. 한국사회가 이 시를 용인하지 못했던 것은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1960년대 당시에 이 시가 발표될 수 있었다면 국가체제는 물론이고 권위 역시 더욱 공고해졌을 것이다. 김수영은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시를 썼던 것이다.

김수영은 언젠가 「‘金日成萬歲’」가 발표될 날이 오리라 믿었던 것일까.

요약문을 보니 국가 체제와 관련된 부분에서 내 뜻과 달리 오해가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008. 08. 24. 00:41)

Posted by 엔디

예담은 위즈덤하우스임프린트 출판사로, 예담판 『어린 왕자』는 디자인 문구류 회사인 아르데코7321이 '어린 왕자'의 상표권 계약을 체결한 후 국내 시장을 거의 독점하려는 의도로 위즈덤하우스와 함께 낸 책이다. (세계일보의 조정진 기자는 예담판이 곧 아르데코7321과 계약 하에 낸 것이라는 점을 모르고 스캔들마케팅이라는 딴소리를 하고 있다.)아르데코7321은 상표권을 취득한 후 각 출판사와 서점에 공문을 보내 서점에 깔린 『어린 왕자』 중 (자신들이 상표권 라이센스를 얻은) 특정 삽화 및 서체를 사용한 책을 모두 서점에서 철수시키라고 고지했고 각 출판사는 반발하고 있는 상태다. 여기에는 저작권 또는 상표권과 관련한 복잡한 문제가 있다.

예담판 『어린 왕자』는 불문학 박사이자 전문 번역가인 강주헌이 번역했다. 강주헌은 이미 2001년에 문예당에서 『어린 왕자』를 번역 출판한 적이 있지만, 이번에 옛 번역본을 상당 부분을 새롭게 손질하여 출간했다. 이 책은 겉표지에 "어린왕자 오리지널 삽화가 들어간 정식 한국어판"이라고 명시하고 있고, 표지 안쪽과 속표지면에 "이 책은 국내 최초로 생텍쥐페리의 원본 삽화 저작권을 갖고 있는 프랑스 Sogex사와의 계약을 통한 정식 한국어판입니다."라고 쓰고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전반적으로 예담-아르데코7321판은 기존 번역본과 큰 차이가 없어보이고, 부분적으로 기존 번역본의 오류를 개선한 부분이 있지만, 많은 면에서 기존 번역본에 못 미치는 점이 있다. 그 세목들을 삽화 및 텍스트의 정확성과 문체의 성실성, 그리고 번역의 적확성 면에서 살펴보자. 이를 위해서 원문인 프랑스 갈리마르Gallimard 출판사의 폴리오Folio 문고판과 전성자가 옮긴 문예출판사판, 김화영이 옮긴 문학동네판, 그리고 지금 문제가 되는 예담-아르데코7321판을 함께 살펴보자. 이해를 돕기 위해 영어판인 하코트-브레이스판도 종종 함께 인용할 것이다. (이 글에 인용된 모든 글은 생떽쥐뻬리의 『어린 왕자』 원텍스트와 그 번역본들이므로, 편의상 인용문의 저자 이름은 생략하고 발행년과 쪽수만 명기한다. 대신 인용문의 끝에 출판사의 이름을 밝힌다. 번역본을 지칭할 때에도 번역자의 이름보다는 출판사의 이름으로 부르기로 한다.)


개악된 삽화와 부정확한 텍스트#

『어린 왕자』의 삽화와 텍스트는 오래도록 어려움을 겪어왔다. 전쟁 중이었던 탓도 있고 해서, 저자인 생떽쥐뻬리가 제대로 살피지 못한 탓일 터다. 그래서 오래도록 잘못된 삽화와 잘못된 텍스트가 실려 있었다. 그것은 프랑스 갈리마르판 『어린 왕자Le Petit Prince』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갈리마르 출판사는 1999년 폴리오 문고판으로 이 책을 새로 내면서 삽화와 텍스트에 있었던 그간의 오류를 교정했다. 이러한 저간 사정이 폴리오 문고판 앞머리에 작자의 유족으로 보이는 프레데리끄 다게이Frédéric d'Agay가 쓴 "일러두기avertissement"에 나와 있다. 최근에 국내에서 출간된 『어린 왕자』는 대개 1999년 판본을 반영한 것으로 그런 오류가 대개 눈에 띄지 않지만, 아직까지 개정되지 않은 부분도 많다.

예담-아르데코7321판도 이른바 '정식 계약판'답게 오류가 거의 없다. 하지만, 삽화에서 하나, 텍스트에서 하나의 문제가 눈에 띈다. 삽화의 경우 천문학자가 천체망원경으로 우주를 바라보는 그림에서 별이 빠져 있다는 문제가 있다(1999, 22; 2007a, 17; 2007b, 22: 2008, 23):


한편, 텍스트의 경우 '나'가 소행성의 이름을 짓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예로 든 소행성의 이름이 잘못 기재되어 있다는 문제가 보인다(1999, 22; 2007a, 17; 2007b, 23; 2008, 22):

Il l'appelle par exemple : « l'astéroïde 325 ». (갈리마르)

이를테면, '소혹성 3251호'라는 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문예출판사)

가령, '소혹성 제325호'라는 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문학동네)

천문학자는 […] '소행성 3251호'라는 식으로 번호를 붙인다. (예담-아르데코7321)

갈리마르의 정본에서 분명히 '325호'라고 씌어 있는 것이 예담-아르데코7321판에서는 3251호로 바뀌어 있다. 단순히 별 이름의 사례를 든 것이므로 '325호'라고 하거나 '3251호'라고 하거나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이 '소행성 325호'는 별 뜻 없이 나온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가 세 봉우리의 화산과 한 봉오리의 꽃을 남겨두고 자기 별을 떠나 처음 도착한 곳이 왕이 살고 있는 '소행성 325호'이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에서 '소행성 325호'는 단지 이름의 사례이거나 혹은 어딘가 있기는 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곳이 아니라, 어린 왕자가 직접 다녀간 소설의 한 중요한 무대인 것이다. 참고로, 영어판 『어린 왕자The Little Prince』에서도 아래와 같이 정확하게 쓰고 있다(1971, 11).

He might call it, for example, "Asteroid 325."

개악된 문체#

예담-아르데코7321판은 비교적 유려한 문체를 사용하고 있다. 흔히 하는 말로 이 책은 '읽히'며, 특히 어린이들을 고려한 듯 비교적 쉬운 말을 사용해서 원문을 옮기려고 한 점이 돋보인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문제가 있다: 어린 왕자가 사용하는 말이 반말tutoyer이거나 높임말vouvoyer이거나 무조건 높임말로 옮겼다는 점이다.

먼저 어린 왕자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보자(Saint-Exupéry 1999, 15; 2007a, 10; 2007b, 13; 2008, 12):

« S'il vous plaît... dessine-moi un mouton !
-- Hein !
-- Dessine-moi un mouton... » (갈리마르)

"양 한 마리를 그려 줘!"
"뭐라구?"
"양 한 마리를 그려 줘." (문예출판사)

"저기…… 나 양 한 마리만 그려줘."
"응?"
"나, 양 한 마리만 그려줘." (문학동네)

"미안하지만, 양 한 마리만 그려줘!"
"뭐라고?"
"양 한 마리만 그려줘." (예담-아르데코7321)

갈리마르판에서 보듯이 어린 왕자는 '나'에게 반말을 하고 있다. 여기서 dessine-moi라고 하면 분명히 너tu에 대한 명령문으로 반말이며, 높임말로 vous에 대한 명령문이 되기 위해서는 dessinez-moi라고 해야 한다. 문예출판사판이나 문학동네판은 이를 모두 반말로 옮기고 있지만, 예담판만은 이상하게도 높임말을 쓰고 있다. '나'가 아저씨뻘이므로 높임말을 쓸 것 같지만 실제로 어린 왕자는 '나'를 tu라고 부른다(1999, 18; 2007a, 13; 2007b, 15; 2008, 15):

« Tu vois bien... ce n'est pas un mouton, c'est un bélier. Il a des cornes... » (갈리마르)

"…… 이건 양이 아니라 염소잖아. 뿔이 있으니까……." (문예출판사)

"아이 참…… 그건 양이 아니라 염소잖아. 뿔이 달렸으니까……." (문학동네)

"아저씨…… 이건 양이 아니고 염소에요. 뿔이 있잖아요." (예담-아르데코7321)

'Tu vois bien'은 직역하면 '네가 보다시피' 정도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린 왕자는 버릇이 없어서 누구에게나 너tu라고 부르고, 누구에게나 반말tutoyer을 쓰는 것일까? 혹은 어린 왕자는 너무나 어려서 반말과 높임말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께도 동네 아저씨에게도 반말을 쓰던 경험이 있으니까 말이다. 소행성 B612에서 혼자 살던 어린 왕자에게는 누구도 그런 높임말을 가르쳐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어린 왕자는 무척이나 분명하게 너tu라고 부를 사람과 당신vous이라고 부를 사람을 구분하고 있다. 가령 어린 왕자는 소행성 325호에서 만난 왕을 분명히 당신vous이라고 부르고 높임말vouvoyer을 쓰고 있다(1999, 43; 2007a, 42; 2007b, 54; 2008, 56):

« Sire, lui dit-il... je vous demande pardon de vous interroger...
-- Je t'ordonne de m'interroger, se hâta de dire le roi.
-- Sire... sur quoi régnez-vous ?
-- Sur tout, répondit le roi, avec une grande simplicité
-- Sur tout ? » (갈리마르)

"폐하, 한 가지 여쭈어 봐도 좋을까요……."
"네게 명하노니, 질문을 하라."
"폐하…… 폐하는 무엇을 다스리고 계신지요?"
"모든 것을 다스리노라."
퍽이나 간단히 왕이 대답했다.
"모든 것을요?" (문예출판사)

"폐하…… 한 가지 여쭈어봐도 될는지요……"
"짐이 명하노니 질문을 하라." 왕이 서둘러 말했다.
"폐하…… 폐하께서는 무엇을 다스리고 계십니까?"
"모든 것을 다스리노라." 왕은 극히 간단하게 대답했다.
"모든 것을요?" (문학동네)

"폐하,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어린 왕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왕이 대답했다.
"네게 명하노니, 질문을 허락하노라."
"폐하…… 폐하는 무엇을 다스리고 계시나요?"
왕은 아주 간단히 대답했다.
"모든 것!"
"모든 것을요?" (예담-아르데코7321)

첫 줄에서 어린 왕자는 왕을 당신vous이라고 부르고 있고, 셋째 줄에서 당신vous에 대한 명령문인 régnez-vous를 쓰고 있다. 어린 왕자는 왕에게 일관되게 높임말vouvoyer을 쓰고 있다. 어린 왕자는 왕 이외에도 허영쟁이와 지리학자에게는 높임말을 쓰고,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반말을 쓴다. 특정 사람에게 높임말을 쓰는 것은 (떽스뜨 속에서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그들의 나이를 고려한 것일 수도 있고, 그들의 지위를 따진 것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상대방이 바라는 바를 환기시켜 주는 것일 수도 있다. 말하자면, 왕에게 높임말을 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할 것이고, 허영쟁이에게는 높임말을 써 주면 좋아할 것이다. 지리학자도 권위의식이 있는 학자로서 높임말에 걸맞는다. 이유야 어쨌든 번역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왜 이들에게 높임말을 쓰는가보다는, 이들에게 높임말을 쓴다는 사실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런데 예담-아르데코7321판은 왕자가 하는 모든 대화를 높임말로 옮기고 있다. 어린이가 어른에게 높임말을 써야 한다는 당위 때문이었는지 혹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강주헌이 옮긴 2001년판 『어린 왕자』에서는 반말/높임말의 층위가 정확하게 구분되어 있으니 이상한 노릇이다. 독자들로서는 어린 왕자가 하는 말의 층위를 잘 전달받을 권리를 잃은 것이다.

한편 예담-아르데코7321판의 또다른 문제점은 원문의 괄호를 모조리 풀어놓았다는 것이다. 종종 번역 과정에서 글의 흐름을 고려해서 괄호를 푸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원문의 모든 괄호를 풀어놓았다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독자들은 괄호를 통해 글에서 좀더 주된 부분과 부차적인 부분을 구분할 수 있으므로 이는 무척 위험한 결정이다. 예를 들어, 생떽쥐뻬리가 레옹 베르뜨에게 바치는 헌사에서도 그런 문제점이 나타난다(1999, 11; 2007a, 5; 2007b, 5; 2008, 5):

Tous les grandes personnes ont d'abord été des enfants. (Mais peu d'entre elles s'en souviennent.) (갈리마르)

어른들은 누구나 다 처음엔 어린아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그다지 많지 않다.) (문예출판사)

어른들은 누구나 다 처음엔 어린아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문학동네)

어른들도 처음에는 모두 어린아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예담-아르데코7321)

여기서 생떽쥐뻬리가 '어른도 다 어린이였다'는 것을 언급하는 이유는 그가 이 책을 레옹 베르뜨라는 어른에게 바치는 것에 대해서 어린이들에게 이해를 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어른도 다 어린아이였다'라는 대전제를 언급함으로써 생떽쥐뻬리는 이 책을 레옹 베르뜨라는 사람의 어린 시절에 바칠 수 있는 면죄부를 받게 된 것이다.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는 언급은 역시 부차적인 문제로, '어른도 다 어린아이였다'라는 대전제에 대한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예상되는 반발을 미리 수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문장은 역시 괄호로 묶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담-아르데코7321은 이처럼 괄호를 빼버림으로써 주된 부분과 부차적인 부분을 구분할 수 없도록 하였는데, 그럼으로써 한편으로는 또한 원 문장의 매력과 맛조차도 잃어버린 경우가 많다.

예담-아르데코7321판에서 보이는 세 번째 문제점은 올바르지 않은 강조 부사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사실은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너무'라는 말을 한국인들은 너무 많이 쓴다. '너무'는 불어로 trop, 영어로 too much의 뜻을 가진 부사로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는 것이다. 최근에 연예인들을 포함한 한국인들이 '너무 감사합니다'처럼 어법에 맞지 않게 자주 쓰면서 퍼졌지만, 이는 분명 틀린 것으로 "정말 감사합니다"처럼 '정말', '매우', 또는 '무척' 등으로 바꾸어 쓰는 것이 맞다. 그런데 예담-아르데코7321판은 이 '너무'라는 부사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2008, 17-18, 28, 44, 82):

나는 어린 왕자에게 내가 날아다닌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너무 자랑스러웠다.

"아! 너무 잘됐다!"

아! 정말이었다. 너무너무 예쁜 꽃이었다.

"할아버지의 별은 너무 아름다워요. 바다도 있나요?"

'너무'의 노출은 매스컴을 통해 잘못 알려진 문법을 그대로 고착화시킨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 이런 문제점은 다른 번역본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번역자뿐 아니라 편집자의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못한 책이라는 느낌을 준다. 편집자의 실력에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상표권 분쟁과 관련한 특정 시기에 책을 내려는 의도로 무리한 일정을 추진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개악된, 번역의 정확성#

예담-아르데코7321판은 분명히 몇몇 지점에서 기존 번역의 오류를 고치고 있다. 후발 주자인 덕도 있고, 강주헌이라는 옮긴이의 능력 덕도 있을 것이다. 가령 문학동네판에 이르기까지 고쳐지지 않은, 어린 왕자가 본 해넘이의 횟수는 예담-아르데코7321판에서는 정확하게 '개선'된다(1999, 31; 1971, 21; 2007a, 28; 2007b, 35; 2008, 36):

« Un jour, j'ai vu le soleil se coucher quarante-quatre fois! » (갈리마르)

"One day," you said to me, "I saw the sunset forty-four times!" (하코트 브레이스)

"어느 날 나는 해가 지는 걸 마흔세 번이나 보았어!" (문예출판사)

"어느 날은 해 지는 걸 마흔세 번이나 본 적도 있어." (문학동네)

"언젠간 하루에 해가 지는 걸 마흔네 번이나 보았어요!" (예담-아르데코7321)

어린 왕자에게 있어서 해넘이는 무척 중요한 것이고, 떽스뜨에서 어린 왕자가 갖는 감수성의 원천이라고도 볼 수 있는 만큼 이 부분은 상당한 중요성을 갖는다. 어린 왕자는 '나'에게 해지는 걸 보러 가자고 떼를 썼고, 소원을 말해보라는 왕에게는 해더러 지금 당장 지라고 명령해 달라고까지 한다. 가로등 켜는 사람의 별에서 떠나면서, 24시간 동안 1440번이나 해가 지는 축복받은 별를 끝내 잊지 못할 것이라고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생각하기도 한다. 어린 왕자가 해지는 것을 마흔세 번이 아니라 마흔네 번 보았다는 것은 떽스뜨의 다른 곳에서도 나온다.

어쨌든 예담-아르데코판이 삽화나 확정 떽스뜨의 문제 그리고 문체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을 정확하게 옮긴 공로는 실은 번역자 강주헌에게 돌려야 옳다. 강주헌의 옛 번역본, 2001년에 출간된 문예당판 『어린 왕자』에도 그 부분은 원문에 충실하게 실려 있기 때문이다(53):

"어느 날 나는 해가 지는 걸 마흔네 번이나 보았어!"

또, 일부 번역본에서 착오 탓인지 '낮'을 '밤'으로 잘못 옮긴 부분도 예담-아르데코7321판에서는 바르게 옮겨져 있다(1999, 20; 1971, 9; 2007a, 16; 2007b, 19; 2008, 19):

« Ce qui est bien, avec la caisse que tu m'as donnée, c'est que, la nuit, ça lui servira de maison.
-- Bien sûr. Et si tu es gentil, je te donnerai aussi une corde pour l'attacher pendant le jour. Et un piquet. »  (갈리마르)

"The thing that is so good about the box you have given me is that at night he can use it as his house."
"That is so. And if you are good I will give you a string, too, so that you can tie him during the day, and a post to tie him to." (하코트브레이스)

"아저씨가 준 상자가 밤에는 집이 될 테니까 잘 됐어."
"그렇고말고. 그리고 네가 착하게만 하면, 밤에 양을 매 놓을 수 있는 굴레를 줄게. 말뚝도 주고." (문예출판사)

"아저씨가 준 상자가 좋은 건 그게 밤에는 양의 집이 될 수 있다는 거야."
"그렇고말고. 네가 착하게 굴기만 하면 낮에 양을 매어둘 고삐도 그려줄게. 그리고 말뚝도." (문학동네)

"아저씨가 준 상자가 밤에는 양의 집으로 쓰일 테니 참 잘됐어요."
"물론이란다. 그리고 네가 착하게 있으면 낮에 양을 묶어놓을 수 있는 고삐도 만들어줄게. 말뚝도 주고." (예담-아르데코7321)

그러나 보다 많은 부분에서 예담-아르데코7321판본의 오류가 눈에 띈다. 먼저 낱말을 잘못 옮긴 것이 종종 있다. 먼저 시적詩的이라는 낱말을 웬일인지 '상징적'이라고 옮긴 부분이 있다(1999, 52; 1971, 46; 2007a, 54; 2007b, 69; 2008, 72):

C'est amusant, […] C'est assez poétique. (갈리마르)

"It is entertaining," […] "It is rather poetic. […]" (하코트브레이스)

그것 재미있는데. 아주 시적(詩的)이고. (문예출판사)

'재미있는데' […] '상당히 시적인걸. […]' (문학동네)

그거 재미있군. 그런데로 상징적이고 말이야. (예담-아르데코7321)

상징이 시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시적이라는 것과 상징적이라는 것은 같은 것이라고 보기가 힘들다. 이 말은 어린 왕자가 실업가의 별을 방문했을 때 했던 생각인데, 그 실업가는 별을 '상징적'으로 소유한다기보다는 '실질적'으로 자신이 소유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실질적인 '믿음'이 어린 왕자의 눈에는 우스꽝스러웠고, 낭만적이었기 때문에 시적으로 보였던 것 같다. 어쨌든 이상한 것은 강주헌의 이전 번역(2001, 74)에서는 "제법 시적이고."라고 정확히 옮겨져 있었다는 점이다. 편집자나 최종 결재자의 눈에 '시적'이라는 말이 뜬금없는 것으로 보였던 것일까?

다른 부분을 보자. 배움과 연습은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어린 왕자의 원문에 분명히 '배운다'고 되어 있는 부분이 번역문에서는 '연습하다'로 뒤바뀐 부분이 많다(1999, 16; 1971, 4; 2007a, 10; 2007b, 13; 2008, 12):

je n'avais rien appris à dessiner (갈리마르)

I never learned to draw anything (하코트브레이스)

아무것도 그리는 연습을 하지 않았으니까 (문예출판사)

그림 그리는 것을 배워본 일이 없었으니 (문학동네)

그림 그리는 연습을 전혀 하지 않았으니까 (예담-아르데코7321)

불어의 apprendre나 영어의 learn에 '익히다'라는 뜻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연습하다'라고 하려면 exercice/exercise나 practice를 쓰는 것이 보통이다. 게다가 여기에서 '연습하다'가 나오면 '나'가 일관되게 끌어온 그림과 관련된 정체성이 깨지게 된다. '나'는 그림 1호와 2호가 실패한 이후, 결국 비행기 조종하는 법을 "배웠appris"기 때문이다(1999, 14; 2008, 9). 여기서 '나'는 그림을 배우는 '대신' 비행기 조종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문학동네판을 따라 옮기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문장 내지는 구가 몽땅 틀린 경우도 있다. 이 부분은 낱말의 선택이 문제가 아니라 문장 구조를 잘못 파악하거나 문법을 잘 몰라서 잘못 번역하는 경우로, 명백한 잘못이다. 가령 "그림 그리는 것을 배워본 일이 없"는 '나'가 어린 왕자의 초상화를 두고 '최고로 멋진 초상화'라고 지칭하는 이상한 번역을 보자(1999, 16; 1971, 4; 2007a, 10; 2007b, 13; 2008, 12):

Voilà le meilleur portrait que, plus tard, j'ai réussi à faire de lui. (갈리마르)

Here you may see the best portrait that, later, I was able to make of him. (하코트브레이스)

훗날 내가 그를 그린 그림 중에서 가장 잘 된 것이 여기 있다. (문예출판사)

여기 있는 그림은 훗날 내가 그의 모습을 그린 그림들 중에서 가장 잘된 것이다. (문학동네)

훗날 나는 그 아이를 모델로 하여 최고로 멋진 초상화를 그렸다. (예담-아르데코7321)

여기서 '가장 잘 된le meilleur portrait/the best portrait'은 que/that절 이하의 수식어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해당 부분은 '최고로 멋진 초상화'가 아니라 내가 그린 것 중에서 제일 나은 것이란 뜻이 맞다. 특히 '나'는 스스로 그림을 잘 못 그린다고 떽스뜨 전체를 통하여 고백하고 있기 때문에 '최고로 멋진 초상화'라는 것이 올바른 번역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떽스뜨 전체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지금 해당 본문만을 솜솜 뜯어보면 '그를 그린 것 중에'라기보다는 '그를 그리는 데 성공한 것 중에' 내지는 '그를 그릴 수 있었던 것 중에' 정도로 해석하게 되는데, 이것은 '나'의 능력상 그를 그리는 것이 무척이나 힘든 일이거나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음을 시사한다. 한편 "Voilà"나 "Here you may see"는 모두 상대에게 눈앞의 어떤 그림을 가리키며 하는 말인데, 유독 예담-아르데코7321판에서만 이 부분에서 지칭의 동사들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그런데 역시 여기서도 이상한 부분이 있는데, 강주헌의 옛 번역본에서는 "훗날 내가 그르르 그린 것 중 가장 잘 된 그림이 여기 있다."로 정확하게 옮겨져 있다는 점이다(2001, 38).

마찬가지로 문장 자체를 잘못 옮긴 경우로 어린 왕자의 별 B612에 대한 문장이 있다(1999, 24; 1971, 13-14; 2007a, 19; 2007b, 25; 2008, 25):

Mais si vous leur dites : « La planète d'où il venait est l'astéroïde B 612 », alors elles seront convaincues, et elles vous laisseront tranquille avec leurs questions. (갈리마르)

But if you said to them: "The planet he came from is Asteroid B-612," then they would be convinced, and leave you in peace from their questions. (하코트 브레이스)

그러나 "그가 떠나온 별은 소혹성 B612호입니다"라고 말하면 수긍을 하고 더 이상 질문을 해대며 귀찮게 굴지도 않을 것이다. (문예출판사)

그러나 "어린 왕자가 떠나온 별이 B612호 소혹성입니다"라고 하면 어른들은 수긍이 간다는 듯 더이상 질문을 해대며 귀찮게 굴지 않을 것이다. (문학동네)

그러나 "그는 소행성 B612호에서 왔습니다"라고 말하면 어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질문으로 조용히 넘어갈 것이다. (예담-아르데코7321)

B612는 어린 왕자가 살던 별의 이름이지만, '나'에 따르면 그 이름은 별로 중요한 것이 못된다. 적어도 어린이들에게는 그렇다. 하지만 어른들에게는 B612라는 그 숫자가 바로 본질적인 부분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여기서 laisser는 '내버려 두다'라는 뜻이고 tranquille은 '조용한'이라는 뜻이므로 이 부분 역시 '질문을 하면서 성가시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맞다. 특히 여기서 어른들은 숫자가 본질이라고 믿기 때문에 B612호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더 이상의 질문을 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강주헌의 문예당판은 이 부분을 아래와 같이 바르게 옮겼다(2001, 46):

그러나 "그가 떠나온 별은 소혹성 B612호입니다."라고 말하면 이해를 하고 더 이상 질문을 하면 귀찮게 굴지도 않을 것이다.

또, 불어 특유의 접속법을 잘못 해석하여 완전히 반대의 문장이 된 경우도 있다(1999, 37; 1971, 29; 2007a, 36; 2007b, 46; 2008, 47):

Cette histoire de griffes, qui m'avait tellement agacé, eût dû m'attendrir... (갈리마르)

This tale of claws, which disturbed me so much, should only have filled my heart with tenderness and pity. (하코트브레이스)

그 발톱 이야기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실은 가엾게 여겼어야 옳았던 거야……. (문예출판사)

그 발톱 이야기에 너무 약이 올랐었거든. 사실은 가엾게 여겼어야 했는데 말이야……. (문학동네)

그 가시 이야기가 짜증스럽기는 했지만 내게는 측은한 마음을 들게 했던 거예요……. (예담-아르데코7321)

프랑스어 원문의 eût dû의 주어는 3인칭인 '그 발톱 이야기cette histoire de griffes'다. 영어에서 must에 해당하는 devoir 동사의 3인칭 접속법 대과거형이 바로 eût dû이다. 접속법 대과거는 과거 사실에 대한 소원을 말하는 것이다. 이 문장을 직역하면 "그 발톱 이야기는 […] 나를 측은해지게 했어야 하는데." 정도가 되는 것이다. 즉, 어린 왕자는 그 때 장미꽃의 '발톱 이야기'를 듣고 그다지 측은해하지 않았고, 지금 그것을 후회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예담-아르데코7321판은 거꾸로 측은한 마음을 들게 했다고 말한다. 완전히 반대의 번역인 셈이다. 역시 강주헌의 문예당판은 이 부분을 아래와 같이 비교적 정확하게 옮기고 있다(2001, 59):

그 가시 이야기에 눈살을 찌푸렸으나 오히려 그것 때문에 그를 더 가엾게 생각해야 했어…….

결론을 대신하여#

완벽하고 꼼꼼하지는 않지만 국내 세 출판사의 번역본을 비교함으로써 예담-아르데코7321판이 일부 개선되었음에도 실상은 개악판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법적 논란이 분분한 상표권을 '무기' 삼아 서점에서 경쟁 제품을 뺀 다음, 자사의 책으로 서점가에 진출하는 행태는 도덕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고, 생떽쥐뻬리와 어린 왕자의 정신에도 맞지 않는다. 게다가 독점 시장의 지위를 누릴 때의 특수를 노려서 억지로 일정을 맞추어 책을 내는 행위는 생떽쥐뻬리의 이름값에 먹칠을 하는 행위다. 이를 통해 얻은 수익금으로 어린 왕자 박물관을 낸다 한들, 저작자의 글 하나 제대로 못 내는 출판사-문구점의 입장에서 그것이 홍보효과 이외에 또 무엇이겠나 하고 생각해 보면 씁쓸하기만 하다.


어린 왕자 - 2점
생 텍쥐페리 지음, 강주헌 옮김/예담

참고문헌#

Saint-Exupéry, Antoine de. 1943, 1971. The Little Prince. Orlando:Harcourt Brace & Company
---. 1999. Le Petit Prince. Paris:Gallimard.
---. 2001. 『어린 왕자』. 강주헌 옮김. 서울:문예당.
---. 2007a. 『어린 왕자』. 전성자 옮김. 에버그린북스01. 서울:문예출판사.
---. 2007b. 『어린 왕자』. 김화영 옮김. 파주:문학동네.
---. 2008. 『어린 왕자』. 강주헌 옮김. 서울:예담(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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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엔디

얼마 전에 쓴 어린 왕자를 소비하는 사회: 어린 왕자 상표권 분쟁에서 나는 "아르데코7321이나 유족 재단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고 적었다. 나는 정말 몰랐다; 그래서 나는 "기존의 출판사들이 생떽쥐뻬리의 명예를 높였으며, 아르데코7321의 매출도 높여 주었을 것"이라고 너무 순진하게 진단했던 듯하다. 그리고 얼마 전 '새 『어린 왕자』'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계일보의 조정진 기자는 예담(위즈덤하우스)판 『어린 왕자』가 아르데코7321과 관련되어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스캔들마케팅이란 글을 쓴 것 같다. 서점에 가서 책 표지만 한 번 봐도 아르데코7321이라는 글자를 볼 수 있었을 텐데. 2008. 5. 6. 11:48 추가)

아르데코7321 측은 처음부터 기존의 책들을 모두 서점에서 몰아낸 다음, 서점에 자신들의 책을 깔 심산이었던 것 같다. 평소에 저작권이 만료되어 공공영역public domain에 편입된 앨리스나 도로시 등 캐릭터 상품을 팔았던 때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아르데코7321의, 문제의 공지사항#

아르데코7321은 최근의 저작권 또는 상표권 논란이 부담스러운 듯, 당사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장문의 글을 남겼다. 그 글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소설’어린왕자’는 퍼블릭도메인으로 어느 누구나 소설’어린왕자’를 활용하여 책을 만들 수 있고 제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단, 글(Text)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소젝스(SOGEX)사는 생택쥐페리의 조카인 올리버 다게이(Oliver d’Agay)와 가족이 운영하고 있는 재단으로서, 영리의 목적보다는 ’어린왕자’가 세상에 소중하게 남아 있기를 바라면서 세계 여러나라에 ’어린왕자 박물관’과 같은 ’가치있는 어린왕자의 보전’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미 프랑스와 일본의 하꼬네에 박물관을 오픈하였고 한국에도 곧 박물관이 들어 올 예정입니다.
위와 같은 가치있는 사업을 위하여 소젝스사에서는 일부 영리목적의 수익사업을 하고 있으며, 소젝스사의 가치있는 사업에 부응하기 위하여 아르데코7321™은 소젝스사와 디자인문구 관련 상품과 서적에 대해서 독점 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사실 관계는 두 가지다: 먼저 『어린 왕자』의 텍스트 저작권은 만료되었다는 것과, 아르데코7321은 소젝스 사와 디자인문구 관련 상품과 서적에 대한 상표권 관련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어린 왕자』 텍스트와 삽화의 저작권#

『어린 왕자』의 텍스트 저작권이 (한국 내에서) 만료되었다는 것은 당연하다. 생떽쥐뻬리는 1944년 사망했고, 한국의 저작권법은 저작자 사후 50년까지 저작권을 보호한다; 생떽쥐뻬리의 저작물은 한국 내에서 1994년까지 보호받을 수 있다. (실제로는 베른 조약 가입 시기 및 저작권법 개정 역사와 관련하여 한국 내에서는 그보다 훨씬 먼저 저작권이 소멸되었다.)

문제는 아르데코7321이 『어린 왕자』의 텍스트만 저작권이 만료되었고, 그림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저작권법에는 글과 그림(삽화)의 저작권 보호 기간을 다르게 규정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으므로 이 주장은 사실 관계를 완전히 오도하는 내용이 된다. 이상한 것은 아르데코7321 측의 주장이 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이 회사 홈페이지의 질문답변 게시판에 앨리스나 도로시 등 퍼블릭 도메인으로 장사해놓고 이제 와서 퍼블릭 도메인을 사용한 출판사들의 책을 서점에서 몰아내는 행태를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고, 아르데코7321은 이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이번 조선일보의 보도로 인해서 발단이 된 어린왕자 상표권분쟁은 저작권과는 별도로 다른 내용입니다.
먼저 저작권은 한국이 베른조약에 1996년 부터 가입한 이후부터 국제저작권법의 영향을 받아서 작가 사후 50년동안 저작권을 보호 받는 다는 내용으로 그 이 후 부터는 퍼브릭 도메인으로 분류됩니다.
고객님께서 말씀하시는 앨리스와 도로시, 어린왕자는 모두 저작권으로부터 자유로운 퍼블릭도메인입니다.
그리고 이번 사태는 저작권이 아닌 상표권 분쟁으로 아르데코7321이 프랑스의 소젝스사와 디자인문구 관련제품과 출판에 대해서 독점계약을 한 후 소젝스사의 에이전트인 GLI 건설팅으로 부터 소젝스사의 어린왕자 등록 상표를 부당하게 사용하고 있는 출판사들과 이들의 책을 판매하고 있는 유통사에게 판매를 하지 말아 달라는 편지내용 전달하고 나서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위에서 인용한 글과는 분명히 조금 다른 내용이다. 위에서 인용한 글은 텍스트의 저작권만 만료되었다는 내용이지만, 이 성난 고객에 대한 답변에서 아르데코7321은 이건 저작권 문제가 아니라 상표권 문제이므로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

먼저 지난번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르데코7321은 처음부터 공지사항을 통해 "국내 최초로 저작권 구입과 함께 / 새롭게 태어난 어린왕자를 / 아르데코 7321에서 만나보세요~"라고 홍보했고, 언론에도 비슷한 내용의 보도자료를 돌린 듯 서울경제, 연합뉴스(네이버 링크), 매거진 정글의 보도에서도 상표권이라는 말은 아주 찾아볼 수 없고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했다는 내용만 읽을 수 있다. (아르데코7321은 이후 공지사항에서 '저작권'이라는 말을 '라이센스'라는 낱말로 바꾸었다.)

어린왕자 오리지널 삽화가 들어간 정식 한국어판SAMSUNG Electronics | Anycall SPH-B5000 | Normal program | Average | f2.82 | +0.56EV | No Flash | 2008:05:01 21:51:42
그뿐 아니다. 최근 출간된 예담(위즈덤하우스)·아르데코7321 판 『어린 왕자』는 표지에 "어린왕자 오리지널 삽화가 들어간 정식 한국어판LE CHEF D'ŒUVRE DE SAINT-EXUPERY AVEC SES ILLUSTRATION D'ORIGINE"이라는 표시를 금박을 붙여 표시하고 있다.

또, 표지 안쪽과 속표지면에는 "이 책은 국내 최초로 원본 삽화 저작권을 갖고 있는 / 프랑스 Sogex사와의 계약을 통한 정식 한국어판입니다. / LE PETIT PRINCE TM ⓒ SUCCESSION ANTOINE DE SAINT-EXUPERY 2008"이라고 적고 있다(강조 는 인용자).

이 책은 국내 최초로 원본 삽화 저작권을 갖고 있는 / 프랑스 Sogex사와의 계약을 통한 정식 한국어판입니다.SAMSUNG Electronics | Anycall SPH-B5000 | Normal program | Average | f2.82 | +0.56EV | No Flash | 2008:05:01 21:52:23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면 아르데코7321 측은 일단 '정식 저작권 계약'이라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해서 자사 상품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저작권법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항의하는 경우에만 사실은 문제가 되는 것이 저작권이 아니라 상표권이라는 것을 밝히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것이 회사의 내부 정책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드러난 모양새가 그렇다.

(그게 아니라면 아르데코7321측도 처음에는 문제가 상표권인지 저작권인지 잘 몰랐을 거라는 가정도 해볼 수 있다. 설마 그런 단순한 것을 몰랐을까 싶지만, 그간 아르데코7321측의 행동을 보면 그런 가정도 가능하다. 특히 2007년 10월 이후 거의 6개월이나 '저작권'이라고 표시되어 있던 공지사항의 '저작권'이란 낱말을 4월달에 문제가 불거지자 '라이센스'란 낱말로 바꾼 점이나, '저작권' 관련 이슈로 다룬 기사들을 해당 공지사항 아래 링크한 점, 한번 출간되면 돌이킬 수 없는 책에까지 '상표권' 또는 '라이센스'가 아니라 '저작권'이라는 말을 적은 점 등을 보면 특히 그렇다.)

아르데코7321은 한 술 더 떠서 어린왕자를 법정에 세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글을 공지사항에 올렸다. 여기서 아르데코7321은 자신과 소젝스사의 정당성을 한번 더 주장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국내 출판사들을 법질서를 어지럽힌 당사자들로 몰아붙인다:

세계적으로 어린왕자 도서를 살펴보면 미국 2개(Harcourt , Gallimard), 유럽 1개(Gallimard), 대만 1개, 일본 20개의 출판사에서 어린왕자 도서를 출판하고 있습니다. 어린왕자 책이 한국에서 600여 개 출판사에서 출간했다고 하는데 전세계 출판사를 모두 합쳐도 어린왕자를 출간한 한국의 출판사의 수에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남의 것 이라고 함부로 훼손, 도용하고 또, 법질서를 무시하고 ’그 동안 저작권을 한번도 내지 않고 사용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주욱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라고 생때를 쓰면서 한국의 특허청을 상대로 상표등록 취하소송을 하겠다고 하는 소수의 대형 출판사의 행태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아르데코7321은 사실 관계를 호도한다. 한국의 출판사들, 특히 '소수의 대형 출판사'들은 『어린 왕자』와 관련하 저작권법을 위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출판사들이 이익만을 바라보고 그간 중복 출판 관행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남의 것 이라고 함부로 훼손, 도용하고 또, 법질서를 무시"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아르데코7321은 긴 잘못을 비로소 척결한 혁명군처럼 정의를 전유해버린다. 그리고 그 다음은?

책 출간을 통한 이윤 창출이다.

아르데코7321의 『어린 왕자』 서적 상표권 계약#

맨 위에 인용한 글에서 아르데코7321은 처음부터 서적에 대한 상표권 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무척 중요한 문제다. 이 회사가 처음 상표권 계약을 맺을 당시부터 서점가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책을 출간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상표권은 동일 범주 내의 상품에만 적용된다. 즉, 나이키라는 상표가 신발이나 스포츠용품 관련 상표로 등록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나이키라는 이름의 스넥이나 아이스크림을 출시할 때에는 아무런 법적 영향력이 없다는 뜻이다. 만약 아르데코7321이 서적 관련 상표권 계약을 맺지 않고 문구류 관련 상표권만 맺었다면, 대행사에 요청해서 서점에서 기출간된 책을 빼달라고 요청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아르데코7321은 앞으로 자신들이 책을 출간하겠다는 내용은 빼놓고, 일단 기존 출판사들의 책을 정리하고 기존 출판사들을 비난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장이 혼란한 것을 틈타 새 책을 내놓았다. '새 『어린 왕자』'의 번역자인 강주헌이 「옮긴이의 말」을 쓴 것이 2008년 2월이고, 그 글에서 『어린 왕자』 번역 부탁을 받은 것은 "올해 초"라고 말하고 있다. 아르데코7321의 공지사항에 따르면 아르데코7321측이 계약을 맺은 것이 2007년 10월이므로, 예담(위즈덤하우스)과 출간 관련 계약을 따로 맺은 시간을 고려하면 대략 시간이 맞아떨어진다.

실업가와 어린 왕자#

어린 왕자가 만난 실업가
『어린 왕자』의 지적재산권 분쟁을 바라보면서 생각난 것은 어린 왕자가 만난 실업가였다. 불어에서도 마땅한 말이 없어 생떽쥐뻬리도 businessman이라고 쓸 수밖에 없었던 이 지극히 미국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Saint-Exupéry 2007, 53; Saint-Exupéry 1999, 52):

"물론이지. 임자 없는 다이아몬드는 그걸 발견한 사람의 소유가 되는 거지. 임자가 없는 섬을 네가 발견하면 그건 네 소유가 되는 거고. 네가 어떤 좋은 생각을 제일 먼저 해냈으면 특허를 받아야 해. 그럼 그것이 네 소유가 되는 거야. 그래서 나는 별들을 소유하고 있는 거야. 나보다 먼저 그것들을 소유할 생각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

Bien sûr. Quand tu trouves un diamant qui n'est à personne, il est à toi. Quand tu trouve une île qui n'est à personne, elle est à toi. Quand tu as une idée le premier, tu la fais breveter : elle est à toi. Et moi je possède les étoile, puisque jamais personne avant moi n'a songé à les posséder.

물론, 이 구절이 생떽쥐뻬리 유족들이 모든 저작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럴 가능성이 없을 뿐더러 옳은 일도 아니다. 그러나 생떽쥐뻬리의 어린 왕자가 무언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이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어린 왕자가 소유하는 것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는 별을 소유한다는 실업가의 말을 듣고 그것이 '아주 시적assez poétique'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곧 무언가를 소유하려면 그 대상에게 유익해야être utile 한다고 자신만의 '소유 철학'을 편다(Saint-Exupéry 2007, 54):

"나는 말이야, 꽃을 한 송이 소유하고 있는데 매일 물을 줘. 세 개의 화산도 소유하고 있어서 매주 그을음을 청소해 주곤 하지. 불이 꺼진 화산도 청소해 주니까 세 개란 말이야.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거든. 내가 그들을 소유하는 건 내 화산들에게나 내 꽃에게 유익한 일이야. 하지만 아저씨는 별들에게 유익하지 않잖아……."

어린 왕자가 다시 돌아와 이 땅에 선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생떽쥐뻬리는 분명히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어른들은 참 이상하군."

어린왕자 - 10점
생 텍쥐페리 지음, 전성자 옮김/문예출판사

어린 왕자 - 10점
생 텍쥐페리 지음, 김화영 옮김/문학동네

어린 왕자 - 2점
생 텍쥐페리 지음, 강주헌 옮김/예담


참고문헌#

Saint-Exupéry, Antoine de. 1999. Le Petit Prince. Paris:Édition Gallimard.
------, 2007. 『어린 왕자』. 에버그린북스02. 전성자 옮김. 서울:문예출판사.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Posted by 엔디

서점에서 한동안 『어린 왕자』를 못 보게 될 거라고 한다. 이유인즉, 생떽쥐뻬리가 그린 그림 몇 장과 '어린 왕자'라는 한국어 제호, 그리고 'Le Petit Prince'라는 프랑스어 제호가 상표권 등록이 되어 있는데, 상표권 소유자인 SOGEX(생떽쥐뻬리 유족 재단)가 이를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그림과 제호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가장 먼저 이루어진 상표권 등록은 1996년부터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제서야 상표권을 문제 삼은 것은 최근 '아르데코7321'이라는 국내 업체가 해당 상표권 관련 독점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르데코7321은 각종 공예품과 공책, 메모장 등을 만드는 회사다. 최근 주변에 '어린 왕자'가 들어간 노트나 연습장을 쓰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 모두 이 회사의 것이었다. 해당 제품은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등 유수 인터넷 서점에 모두 상위로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아르데코7321이 상표권 관련 계약을 체결한 것은 지난 10월인 모양으로, 이 회사는 2007년 10월 10일 당사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통해 '저작권 계약' 사실을 다음과 같이 알렸다(현재는 '저작권'이라는 낱말을 모두 '라이센스'라는 낱말로 바꾼 상태다. 2008. 5. 4. 20:53 추가):

2007년 10월.
잊고 지내온 중요한 진실들을 깨워주는
순수한 어린왕자가 드디어 7321과 만났습니다.

ART DECO 7321이 어린왕자의 프랑스 정식 저작권 소유자인
SOGEX의 공식 라이센싱 에이전트(GLI컨설팅)를 통해
1년여의 긴 협의 끝에 계약을 체결,
국내 최초로 어린왕자 원화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10월 5일에는 작은 간담회를 개최하여
어린왕자와 7321의 시작을 알렸답니다.
국내 최초로 저작권 구입과 함께
새롭게 태어난 어린왕자를
아르데코 7321에서 만나보세요~

저작권인가 상표권인가#

앞서 언급한 조선일보 기사는 해당 사안이 저작권 문제가 아니라 상표권 문제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런데, 아르데코7321의 홈페이지에는 이상하게도 자신들이 "저작권 구입"을 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당사의 홈페이지에 링크된 서울경제, 연합뉴스(네이버 링크), 매거진 정글의 기사에서도 역시 아르데코7321이 '저작권 구입'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기사들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쓰여진 ‘어린왕자’ 디자인은 저작권 계약 없이 불법으로 쓰여졌다."거나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소개된 <어린왕자>가 그 어느 것 하나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제품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라고 쓰기도 서슴지 않는다. 해당 언론사들이 모두 아르데코7321의 보도자료를 받아서 기사를 썼을 것을 고려하면 아르데코7321의 주장은 조금 이상하다. 어쩌면 저작권인지 상표권인지 잘 구분하지 못한 것은 아르데코7321이 아닐까?

하지만, 어린 왕자의 경우 저작권과 관련하여 몇 가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린 왕자』 저작권의 문제#

먼저 조금 특이한 프랑스의 저작권 보호 기간을 살펴보자: 프랑스의 저작권법(영어)상 저작재산권의 만료 기한은 일반적으로 저작자 사후 70년이며, 1차 또는 2차 세계대전 중에 발표된 저작물의 경우 그 기한이 연장되는 것이었다. 이른바 전쟁 정회prorogation de guerre라고 부르는 것으로 1차 대전 중인 1914년 8월 2일에서 1921년 1월 1일 사이에 발표되었으며 1919년 2월 3일까지 저작권 만료domaine publique가 되지 않았다면 14년 272일이 연장되고, 1939년 9월 3일에서 1948년 1월 1일 사이에 발표되었으며 1941년 8월 13일까지 저작권 만료가 되지 않았으면 8년 120일이 연장되었다. 또 프랑스를 위해 죽은 저자를 위한 특별 정회라는 제도가 있어서 저작자가 '프랑스를 위해 죽었다mort pour la France'면 추가로en outre 30년이 연장된다. (다만 전쟁 정회 제도는 2007년 2월 27일 프랑스 최고법원인 취소법원la Court de Cassation의 결정으로 사라졌다.)

어쨌든 앙뚜안 드 생떽쥐뻬리의 경우에는 전쟁 정회와 특별 정회 두 가지 모두에 걸린다; 생떽쥐뻬리의 '어린 왕자'가 처음 출간된 것은 1943년 미국에서였고, 그가 비록 비시 정부를 위해 일하고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공군 정찰 임무를 수행하다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사라진 전쟁 정회 제도를 빼고 보더라도 프랑스법상 생떽쥐뻬리의 작품은 저자의 사후 100년(70년+30년)이 된다.

그러나 한국법상으로는 저작자 사후 50년까지밖에 보호하지 않기 때문에 저작권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더구나 50년은 베른 협약의 원칙에도 부합한다. 그런데, 문제는 생떽쥐뻬리의 사망한 해를 어떻게 추정하느냐 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생떽쥐뻬리는 1944년 실종되었다. 비록 "내가 그의 정찰기를 요격했다"는 독일군 전투기 조종사의 증언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가 사망한 해를 확정하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그렇지만 1944년에 실종되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돌아오지 않았음을 감안해 볼 때 길게 잡더라도 생떽쥐뻬리 작품의 저작권은 한국 내에서는 소멸되었다고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상표권 제도의 목적과 상표권의 존속기간#

결국 문제는 다시 상표권으로 돌아온다. 상표권이란 "일정한 사업자가 자기의 상품을 타사업자의 상품과 구별하기 위하여 문자·도형·기호·색채 등을 결합하여 만든 상징을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권리"이다(이한상 2001, 30). 상표권의 목적은 상표법 제1조에 드러나 있다:

이 법은 상표를 보호함으로써 상표사용자의 업무상의 신용유지를 도모하여 산업발전에 이바지함과 아울러 수요자의 이익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두 가지로 나누어 보면 먼저 "상표사용자의 업무상의 신용유지", 그리고 그 다음으로 "수요자의 이익 보호"이다. 흔히 '짜가'나 '짝퉁'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가령 '나이키'라는 회사의 정품이 아니라 '짜가'나 '짝퉁'이 시장에 유통되면 먼저 '나이키' 회사가 손해를 보는 것이 되고, 그 다음으로는 그 '짜가'나 '짝퉁'을 정품으로 알고 산 소비자 역시 손해를 보게 된다. 상표권을 법으로 보호하는 것은 그 두 가지 손해를 모두 막기 위해서다.

한편, 상표권은 저작권과 달라서 존속기간은 10년이지만, 존속기간갱신등록출원에 의해 10년간씩 갱신할 수 있다(상표법 42조). 상표권은  상표권자가 사망한 날부터 3년 이내에 상속인이 상표권의 이전등록을 하지 않으면 소멸된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상표권은 원칙적으로 영원히 소유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상표권이 영원해야 하는 것은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래야 사업자의 권리와 수요자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목적에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귀뚜라미'라는 보일러 회사가 있는데 일정 시기 이후에는 상표권이 소멸되어 아무 보일러 회사나 다 '귀뚜라미'라는 상표를 사용할 수 있다면, '귀뚜라미'사도 손해를 볼 것이고 '귀뚜라미'사의 제품인 줄 알고 보일러를 산 수요자도 피해를 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표권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상표권자가 원하는 대로 영원히 보장해주는 것이 맞다. 여기 한 사례를 보자.

웹스터 사전과 상표권#

웹스터Webster's 사전은 미국에서 손꼽히는 사전이다. 1806년 노아 웹스터Noah Webster가 출간한 『간략영어사전A Compendious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을 태두로 하는 웹스터 사전은 오래도록 권위를 인정받아 왔다. 그러나 1917년 법정에서 웹스터Webster라는 이름이 공공 영역public domain으로 규정되어 권리가 소멸되었다; 웹스터라는 이름은 아무 사전에나 다 붙일 수 있는 권리가 소멸된 상표genericized trademark가 된 것이다.

결국 오리지널 웹스터 사전을 만들던 G. & C. 머리엄 회사는 회사 이름을 머리엄-웹스터Merriam Webster로 바꾸게 된다. 머리엄-웹스터 사는 홈페이지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The net effect of the proliferation of Webster's dictionaries is a reference-book marketplace in which the consumer is either unaware of or confused about what differentiates these books.
웹스터 사전이 확산된 결과 참고도서 시장의 고객들은 (웹스터라는 제목을 단) 책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럽기만 하게 됐다.

이것이 머리엄-웹스터 사의 푸념만은 아닐 것이다. 대다수의 소비자는 분명히 웹스터라는 이름이 아니라 웹스터라는 기표signifiant 저 너머의 '150년 전통의 사전'을 원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표로서의 상표#

웹스터 사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상표는 기의signifié가 아니라 기표다. 이 명제는 상표의 특징에 관해 꽤 중요한 것을 담고 있다. 상표가 기표라면 우리는 드 소쉬르de Saussure를 원용하여 기표인 상표와 기의인 상품의 관계가 자의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게 된다. 자의적이라는 것은 어떤 상품을 다른 상표로 붙였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그 상품의 가치가 전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룰루' 비데가 '랄라' 비데였더라도 비데 자체의 기능이 달라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를테면 '거원'이라는 상표의 MP3 플레이어에서 우리가 기실 원하는 것은 '거원'이라는 상표 자체가 아니라, 그 상표를 달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그 MP3 플레이어라는 상품이다. 그래서 우리는 '거원'이라는 상표가 '코원'이라는 상표로 바뀌었을 때에도 '거원'이라는 이름을 단 제품과 똑같은 신뢰를 '코원'이라는 이름을 단 제품에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이 일반적으로 브랜드 네임 바꾸기를 꺼리고 브랜드 네임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브랜드 홍보의 용이성 때문이지, 그 브랜드 자체가 특별히 독창적이거나 뛰어나서가 아니다. 이한상(2001, 31)도 "상표보호의 본질은 창작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상표의 선택이나 구성에 있어서 신규성이나 독창성은 불필요하다."고 쓰고 있다.

독창성이 중요한 저작권의 경우 다른 사람의 생산물에 내 이름을 달아서 배포하는 '표절'이 중대한 범죄인 반면, 독창성이 중요하지 않은 상표권의 경우 거꾸로 나의 생산물에 다른 유명한 이름을 달아 배포하는 것이 중대한 범죄가 된다. 우리가 '버버리'라고 씌인 '짜가' 코트를 생산하여 판다고 했을 때, 우리는 '버버리'라는 독창적인 문양을 함부로 써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진짜 '버버리' 사에서 만든 제품보다 질이 떨어지는 제품에다 '버버리'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버버리' 사의 신용을 떨어뜨리고, '짜가' 상품을 산 소비자는 그 품질에 만족하지 못하므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어린 왕자와 상표권#

『어린 왕자』로 돌아가자: 우리는 상표권 보호의 목적에 비추어 출판사들이 '어린 왕자'라는 제호 또는 삽화를 씀으로써 생떽쥐뻬리의 유족 재단이나 아르데코7321의 신용에 피해를 입혔는지를 살펴보고, 출판사들이 '어린 왕자'라는 제호 또는 삽화를 씀으로써 소비자들의 상품 선택에 손해를 입혔는지를 보아야 할 것이다.

1973년 김현의 번역으로 처음 『어린 왕자』를 출간한 문예출판사를 필두로, 수많은 출판사에서 나온 『어린 왕자』들은 유족 재단의 명예를 높였고, 지금 아르데코7321에서 내는 '어린 왕자' 노트류가 잘 팔리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우리는 거의 의심 없이 말할 수 있다. 한편, 소비자들이 어린 왕자의 삽화나 제호 때문에 앞서 언급한 웹스터 사전과 같은 곤란을 겪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르데코7321이 기존의 출판사들이 일군 성과를 도용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온당할 것이다.

도서 『어린 왕자』에서 제호와 삽화는 기표가 아니라 기의이다.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며 그것들 스스로가 이미 '어린 왕자'를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책들이 해당 상표를 하나의 '상표'로 사용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아르데코7321의 상품에 끼칠 손해는 더더구나 없다.

나는 상표권 제정의 기본 목적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이 '어린 왕자' 관련 상표등록에 대한 취소가 온당하다고 믿는다. '어린 왕자' 캐릭터가 그려진 '짜가' 다이어리가 생겨날까 걱정된다면, 생떽쥐뻬리의 작품을 상표등록하기보다는 아르데코7321의 상표를 등록하는 것이 옳다. 실제로 아르데코7321은 앨리스와 도로시 등 이전 제품들의 경우 저작권 만료된 작품을 가지고 아르데코7321의 이름을 걸고 판매해서 좋은 효과를 얻기도 했기 때문에 이런 방식에 문제가 없다. 실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어린 왕자' 역시 한국 내에서 저작권이 만료되었기 때문이다. (2008. 4. 17. 13:36 추가)

결론을 대신하여: 상생의 경제학#

나는 아르데코7321이나 유족 재단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삽화와 표제에 대한 로열티를 바라는 것인지, 새로운 번역서 출간을 위한 것인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존의 출판사들이 생떽쥐뻬리의 명예를 높였으며, 아르데코7321의 매출도 높여 주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문구류는 도서 『어린 왕자』를 읽은 사람들이 사는 것이므로 이런 상생의 시너지 효과가 무척 활성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상표등록 취소와 관계 없이 아르데코7321와 유족 재단의 결단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는데, 만약 생떽쥐뻬리의 작품들이 저작권 시한 만료 후에도 상표권 등록을 통해 영원히 그 권리를 보장받게 된다면 다른 모든 저작물 역시 상표권 등록만 해 놓으면 영원히 그 재산권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는 문화 발전에 비추어 보아도 전혀 바람직하지가 못하다는 점이다.


참고문헌#

이한상. 2001. 『지식재산권의 생활법률』. 서울:제일법규.

Posted by 엔디
우화fable란 동물에게 사람의 속성을 투영한 이야기로 일종의 알레고리allegorie이다(이상섭, 210-210). 그래서 논자에 따라서는 우화를 의인소설擬人小說이라고 부르기도 한다(한용환, 333-336). 그런데 우화 가운데 인간이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럴 경우 대개 인간은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가령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인간은 사회주의 혁명 이전의 제정帝政 러시아를 의미한다. 또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은 좀더 직접적으로 옳지 못한 인간의 태도를 풍자하고 있다. 이처럼 동물이 등장인물인 이야기에서 인간이 쉽게 부정적으로 묘사된다는 것은, 적어도 문학적 상상력의 테두리 안에서 우리의 감정을 동물에 이입했을 때 인간이 추악한 존재라고 느끼기 쉽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나는 다소 딱딱하게 우화에 대해서 설명했는데, 세뿔베다의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를 단순히 우화라고 이름붙이기는 좀 망설여진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알레고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직접적인 사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갈매기와 고양이는 진짜 갈매기와 고양이이지, 갈매기와 고양이의 어떤 특징을 가진 인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갈매기와 고양이는 고통받고 있다... 조금 길지만 책을 읽어보기로 하자(27-29):

켕가는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 날개를 쭉 폈다. 그러나 커다란 판도가 몸 전체를 덮어버렸다. 가까스로 물 위로 떠오른 켕가는 머리를 힘차게 흔들어 젖혔다. 눈앞이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인 듯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켕가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자신이 앞을 볼 수 없는 것은 오염된 바닷물의 기름 탓이라는 사실을.

켕가는 날개에 묻은 기름을 물에 씻어보려고 했다. 머리를 물 속에 담갔다 뺐다 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허공에서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댄 뒤 다시 눈을 떠보았다. 온통 석유 기름으로 뒤덮인 그의 망막 사이로 마침내 가느다란 햇살 몇 줄기가 비치기 시작했다. 끈끈한 얼룩의 검은 기름은 눈에만 붙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날개와 몸통에도 뒤덮여 날개가 몸통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켕가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았다. 우선 검은 기름 띠의 한가운데서 빠져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헤엄을 빨리 치기 위해 다리를 힘껏 움직이기 시작했다.

[...]

켕가의 날개는 몸에 딱 달라붙어 있어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이러한 상태의 갈매기들은 커다란 물고기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결국은 천천히 질식해 죽게 될 것이다. 석유 기름이 깃털 사이사이로 파고들어 모든 기공을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켕가의 운명이었다. 그래서 켕가는 생각했다. 차라리 커다란 물고기의 입 속으로 빨리 없어져 버리는 것이 더 나으리라고.

검은 물결. 검은 역신.

켕가는 죽음의 종말을 기다리며 인간들을 원망했다. 그 외에 특별한 방법도 없었다.

물론, 최근 충남 태안 반도에서 일어난 원유 유출 사고 이야기는 아니다. 갈매기 켕가는 지금 태안이 아니라 북해의 앨바 강 어귀에서 석유 오염물질을 뒤집어쓰고 허우적거리고 있다. 켕가는 있는 힘을 다해 뭍으로 날아서는 어느 검은 고양이가 살고 있는 집에 추락해서 하얀 알 하나를 낳고는 죽을 것이다; 인간이 켕가를 죽인 것이다.

기름을 뒤집어쓴 채 죽어가는 뿔논병아리Canon | Canon EOS 5D | Aperture priority | Multi-Segment | 1/200sec | f2.8 | 0EV | 14mm | ISO-800 | Compulsory Flash | 2007:12:08 17:14:26

ⓒ최예용, 환경운동연합


검은 고양이 소르바스Zorbas는 동료 고양이들과 함께 하얀 알이 부화해서 어엿한 갈매기가 될 때까지 키운다. 작가 세뿔베다는 인간 대신 고양이에게 한 온전한 한 생명을 맡긴 셈이다. 고양이는 영리하고, 용감하며, 책임감이 있다. 따라서 죽음 이후에 태어난 하나의 삶을 아름답게 할 수 있는 권능이 고양이에게 주어진 셈이다. 소르바스가 어떤 인간들이 불운하다고 여기는 검은 고양이인 것은(20), 인간들의 위선을 지칭함으로써 그 추악함을 더 드러내보인다. 인간들의 편견과 달리 소르바스는 불운한 고양이가 아니라 행운의 고양이이다. 그래서 소르바스가 키운 어린 갈매기는 '행운아'라는 뜻의 아포르뚜나다Afortunada라고 이름붙여진다.

소르바스가 켕가에게 약속한 것은 세 가지였다: 알을 먹지 않는다, 새끼가 태어날 때까지 알을 보호한다, 그리고 새끼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다. 이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은 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알을 먹지 않는 것은 조금의 자제만으로 되는 일이고 알을 보호하는 것은 인간에게 들키지 않도록 잘 행동하면 되는 일이지만, 나는 법은 고양이들도 잘 몰랐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들의 '백과사전'을 신봉하는 사벨로또도라는 박물관 고양이도 역시 알을 어떻게 보호하고 어떻게 품는지는 알려줄 수 있었지만, 비행술에 대해서는 백과사전에서 정말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127):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단 말야. 비행 이론은 최선을 다해서 완벽하게 조사했는데. 기체역학에 관한 모든 사전을 다 뒤져가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론과 비교도 했지.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도 매번 실패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고! 세상에! 어째 이런 일이!"

결국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것은 소르바스의 부탁을 받은 한 시인이었다. 비바람이 치는 날 시인은 갈매기를 산 미겔 성당의 탑으로 데려가 폭풍우를 온몸으로 느낌으로써 나는 방법을 체득하게 한다. 여기서 시인은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일종의 샤먼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야기 속에서는 고양이들이 자신들의 금기를 깨고 인간의 언어로 시인과 대화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이것은 실상 자연과 함께 숨쉬고 생활하는 시인의 샤먼적 특성을 동화적 또는 우화적 감수성으로 풀어낸 것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인의 언어다.

소르바스는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줄 사람으로 시인을 지목했다. 왜 그랬느냐는 질문에 소르바스는 이렇게 답한다(135-137):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섰을 뿐입니다. 전에 자신의 글을 직접 낭독하는 걸 들어본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럴 때마다 항상 즐거웠고, 계속해서 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

"새의 날개로 나는 것에 대해서는 아마 모를지도 모르지. 그러나 내가 그의 시를 들을 때면 항상 그의 시구를 타고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는 느낌이 들었어."

여기서 소르바스는 일종의 역동적 상상력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슐라르는 하늘을 날아오르는 시적 몽상에 대해 역동적 상상력l'imagination dynamique이라고 이름붙이면서, "역동적 상상력은 의지의 꿈이며, 꿈꾸는 의지인 것"이라고 말했다(Bachelard, 177). 여기서 우리는 갈매기란 왜 하늘을 날아야 하는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갈매기는 갈매기이기 때문에 난다거나, 엄마 갈매기인 켕가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어린 갈매기가 날기를 원하기 때문에, 곧 그것이 어린 갈매기의 의지이기 때문이다(123-124):

아포르뚜나다는 전사의 모험담을 항상 재미있게 들었다. 그런데 그 날 따라 유난히 눈빛을 반짝이며 귀를 쫑긋 세우고 관심 있게 들었다.

"갈매기들은 진짜로 폭풍우 속에서도 날아다녀요?"

그가 질문했다.

"물론, 바다장어가 방전하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말씀! 갈매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새지. 갈매기보다 더 잘 나는 새는 없다고."

바를로벤또가 확언했다.

바다 전사의 이야기는 아포르뚜나다의 가슴에 깊이 스며들었다. 그의 발은 공연스레 흙을 이리저리 파헤치고 있었고, 부리는 매우 예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꼬마 아가씨! 아가씨도 날고 싶어요?"

소르바스가 지나가는 투로 묻자, 아포르뚜나다는 고양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마침내 대답했다.

"그래, 좋아요! 내게 나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순간 고양이들은 너무 기뻐서 환호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들은 고양이 특유의 인내심을 발휘해서 어린 갈매기가 날고 싶다는 의지를 직접 드러낼 때까지 끈덕지게 기다렸던 것이다. 왜냐하면 난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결정에 달린 문제라는 것을 고양이들은 조상들이 일러준 교훈을 통해 이미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강요나 억지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결정해야 할 문제였다.

어쨌든 백과사전 지식을 통해 나는 법을 가르치는 데 실패한 고양이들은 소르바스를 시인의 집으로 보낸다. 샤먼인 시인은 베르나르도 아트사가라는 시인의 시 한 편을 들려주는데, 여기서 소르바스는 시인을 온전히 신뢰하게 된다.

그의 작은 용기는
곡예사들의 그것과 같기에
늘 비를 가져오고
늘 해를 몰고 오는
저 어리석은 비 때문에
그토록 한숨을 쉬지는 않지요

갈매기는 이 시가 가르쳐주는 바에 따라, 곡예사의 용기를 가지고 비 속에서도 자유롭게 날 수 있었던 것이다. 시인은 이로써 샤먼의 역할을 끝내고 탑에서 내려간다. 샤먼이라 해도 결국은 인간이며, 인간은 자연 속에서 일반적으로 '방해'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세뿔베다의 글을 읽고 나서 세뿔뚜라를 떠올린다면 엉뚱할까? 세뿔베다의 이야기가 그래도 동화적인 외피를 갖고 따뜻하게 전개되다보니 그와 세뿔뚜라를 연결하기가 쉽지 않지만, 지구에 대한 문제의식은 둘이 함께 공유하는 것 같다. 칠레의 이야기꾼과 브라질의 스래시 메탈 밴드의 접합점은 단지 비슷한 이름뿐만은 아닌 것이다.

(▼ 잔인한 장면이 많으므로 주의하여 클릭하세요.)

(▲ 잔인한 장면이 많으므로 주의하여 클릭하세요.)

태안 반도의 원유 유출 사고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분명히 이것은 의도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사고이지만, 인간이 석유라는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한 언제나 문제가 될 수 있었던 사고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화석 연료라고는 전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이용할 때에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사고가 났을 때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 인간들 전체가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이다. (말하기가 조심스러운데, 책임이 인간들 전체라는 말은 책임의 분담分擔이 아니다; 모두가 태안 반도에 퍼진 원유 전체의 무게만큼의 짐이 있다는 것이다.)



자, 아래의 사이트에서 힘이든 돈이든 보태도록 하자. 우리가 시인처럼 한 갈매기를 날도록 하기는 힘들지만, 앞으로의 갈매기들이 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마침 곧 크리스마스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이 땅에 인간과 온갖 동식물과의 평화도 함께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태안 원유 유출 사고 관련 사이트:
환경운동연합
충청남도청
태안군청
Daum 희망모금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 
루이스 세뿔베다 지음/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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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섭. 1997. 『문학비평용어사전』. 신장판. 민음사.
한용환. 1992. 『소설학사전』. 고려원.
Bachelard, Gaston. 2000. 『공기와 꿈: 운동에 관한 상상력』. 정영란 옮김. 이학사.
Posted by 엔디
1

욕망이란 이 곳에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곳에 실재로서 현재하는 것을 바란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면 사실 '그대'는 곁에 없는 것이 아닌가 고민해 봐야 한다.

삶의 영원한 항등식처럼,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은 행복한 삶이다. 여기까지 인정한다면, 그 다음 행복의 각론에서 저마다의 차이를 인정해야 하는 순서가 남아 있다. 뒤라스의 『모데라토 칸타빌레』에서 안 데바레드 부인이 바랐던 것은 그가 속한 곳의 정원과 무도회와 파티에는 없는 것이었다. 데바레드 부인의 행복이란 무엇이었을까. 데바레드 부인은 무엇을 바랐고, 무엇을 욕망했을까.


2

르네 지라르는 모든 욕망은 주체와 대상 이외에 또다른 타자가 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중세의 기사들은 자신들의 롤 모델role model인 기사 이외에 스스로 숭배하는 부인dame이 제각기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시각각 자신의 승전보와 결투 결과를 부인에게 인편으로 알리기에 바빴던 기사들에게 있어서 부인이라는 타자는 무척 중요한 삼각형의 꼭짓점이 되는 것이다.

데바레드 부인에게 있어서 자신의 집은 감옥과 같은 것이다. 데바레드 부인은 그것을 약간 알고 있었다. '약간'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그가 아주 미약한 방법으로 그 감옥에서의 정기적인 탈주를 실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매일같이 엄마와 함께 그 도시를 돌아다니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고 화자는 말하고 있다. 데바레드 부인이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이 감옥이라고 느낀 보다 정확한 계기는 아이가 모데라토 칸타빌레로 피아노를 치고 있을 때 있었던 사건이다.아마 어떤 치정 사건에 관계된 살인 사건임이 분명한데, 어쨌든 이것이 삼각형의 한 꼭짓점이 되어 데바레드 부인의 곳의 감옥에 대한 자의식을 성장시키게 된다.

(여성의 자의식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샬롯 퍼킨스 길먼Charlotte Perkins Gilman의 「누런 벽지The Yellow Wallpaper를 알고 있다. 『모데라토 칸타빌레』에서의 데바레드 부인은 안락한 삶 속에서 '누런 벽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3

『모데라토 칸타빌레』가 아름다운 것은 한 부르주아 부인의 일탈이 온전히 말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부인은 한 사내에게 자신의 감옥에서의 일상을 말하고, 자신이 있는 감옥이 얼마나 아름답고 무서운지를 이야기한다(65-66):

"나무가 없는 도시에서 살아야만 해요 바람이 불면 나무들이 울부짖어요 여긴 언제나 줄곧 바람이 불죠 1년에 이틀을 빼놓곤 말이에요 제가 당신이라면 그래요 떠나가겠어요 여기 머물지 않겠어요 폭풍우가 지나간 뒤 바닷가에 죽어 있는 새들은 거의 다 바다새들이죠 폭풍우가 그치면 나무는 더 이상 울부짖지 않아요 목이 졸리는 것처럼 꽥꽥 비명을 지르는 새소리가 해변에서 들려와요 아이들은 무서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지만 전 아니에요 떠나가야겠어요."

마침표도 없이 이어진 문장에서 부인이 말하는 것은 자신의 감옥이다. 그것은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맺고 있으며, 더 이상의 일탈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부인의 생각은 끊임없이 피와 죽음과 사랑의 일탈로 치닫는데, 그걸 알아챈 쇼뱅이라는 사내는 이렇게 묻는다(66):

"혹시" 하고 그가 말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는 더 일찍 그 여자를 죽이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이미 말입니다. 말씀해보세요."



4

여자의 감옥은 7장에 가서 절정이 된다. 거기에서는 만찬이 벌어지고 있었고, 10년 동안 남의 입에 오르내린 적이 없는 여자는 술에 취해 만찬에 늦게 도착한다.

7장에서는, 다른 장에서와 달리, 여자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파티란 원래 그런 것이기도 하겠거니와, 여자의 변화나 그 날 밤의 이상한 행동들이 금세 소문이 되어 퍼지는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106-107):

안 데바레드는 조금 전 오리 요리를 사양했다. 그렇지만 음식 접시는 아직 그 여자 앞에 멈추어 있고, 그 짧은 순간은 추문이 시작되기에 충분하다. 그 여자는 예전에 배운 대로 거절 의사를 분명히 알리기 위해 손을 치켜든다. 더 이상 권하지 않는다. 식탁 주변에 침묵이 자리잡는다.

[…]

주방에서는 그 여자가 오렌지 소스를 곁들인 오리 요리를 거절했고, 몸이 아프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다른 이유가 있을 리 없다는 것이다.


5

여자의 일탈은 소설 마지막에 와서 완성된다; 여자는 자신을, 죽은 여자와 동일시한다. 두려움 속에서 그 여자가 한 일은 한 남자와 입을 맞추고는 언어적으로 죽는 일이다(118-120):

"전 두려워요." 안 데바레드가 속삭였다.
쇼뱅은 테이블로 다가가 그 여자를 더듬어 찾았다. 찾다가 포기해버렸다.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그 여자가 했다. 여자는 입술이 서로 닿을 만큼 가까이 남자에게 다가갔다. 차디찬 그들의 입술은 조금 전 그들의 손과 같이 죽음의 의식을 따라 서로 포개진 채 떨면서 그렇게 머물렀다. 이루어졌다.

[…]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쇼뱅이 말했다.
"그대로 되었어요." 안 데바레드가 말했다.

장-자끄 아노 감독의 영화 탓에 메콩 강가의 '독신자의 방'과도 오버랩되는 이 장면은, 하지만 이미 좀더 위험하고 에로틱한 분위기를 띄고 있다. 따옴표 안과 밖을 삼투시키는 문장 "그대로 되었다"는 역시 그대로 창세기의 첫 장을 연출하고 있다: "그대로 되니라."

세계의 시작과 소설의 끝, 그 지점에서 어떤 욕망은 끝나고 다른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


모데라토 칸타빌레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정희경 옮김/문학과지성사
Posted by 엔디
『어린 왕자』의 여러 한국어판 번역본들과 불어판 또는 영어판을 비교해 보면 조금 이상한 부분을 찾을 수 있다. (아마도 쓸쓸했던 날의) 어린 왕자가 자기 행성 B612에서 본 해넘이의 수가 한국어판과 불어판 또는 영어판이 다른 것이다 한국어판은 대개 마흔세 번으로, 영어나 불어판은 마흔네 번으로 기록하고 있다:
« Un jour, j'ai vu le soleil se coucher quarante-quatre fois! »
- 갈리마르Gallimard 출판사 폴리오folio 문고판, 31쪽. (1999년 문고판 간행)

"One day," you said to me, "I saw the sunset forty-four times!"
- 하비스트북A Harvest Book하코트 브레이스Harcourt Brace판 캐서린 우즈Katherine Woods 옮김본, 21쪽.

"언젠가는 마흔 세 번이나 해지는 걸 봤지."
- 구舊 문예출판사판 김현 옮김본, 32쪽. (1973년 초판 간행)

「어느 날, 난 마흔 세번이나 석양을 보았어!」
- 혜림출판사판 황현산 옮김본, 29쪽. (1986년 초판 간행)

「어느 날인가는, 해 지는 걸 마흔 세 번이나 봤지요!」
- 고려원판 오증자 옮김본, 28쪽. (1987년 초판 간행)

"어느 날 나는 해가 지는 걸 마흔세 번이나 보았어!"
- 신新 문예출판사판 전성자 옮김본, 26쪽. (1999년 간행)

"어느 날은 해 지는 걸 마흔세 번이나 본 적도 있어."
- 문학동네판 김화영 옮김본, 35쪽. (2007년 간행)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1999년 출간된 갈리마르 출판사의 폴리오folio 문고판에는 이런 일러두기avertissement가 붙어 있다: "우리는, 앙뚜안 갈리마르와 함께, 폴리오 문고판의 하나로 출간하게 되어서, 그리고 어린 왕자의 완전판l'édition intégrale을 처음으로 출간하게 되어서 기쁘다." ...무슨 소리인가. 『어린 왕자』는 1943년 작가가 살아 있을 당시에 이미 초판이 간행되었는데!

1943년 쌩떽쥐뻬리는 미국에 있었고, 아마 전시戰時였기 때문이겠지만 프랑스 출판 편집자들과는 연락을 취할 길이 없었다. 해서 그는 '레이날과 히치콕Reynal & Hitchcock'이라는 출판사에서 『어린 왕자』의 초판을 발간하게 된다. 정작 프랑스에서는 약 3년 뒤 1945년에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첫 판이 발간된다. 문제는 이 때 갈리마르에서는 작가의 원본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상태에서 작업했다는 것이다.

폴리오 문고판의 일러두기는 그래서 그간 불어판에 있었던 오류의 목록을 보여주고 있다: 천문학자가 망원경을 통해 바라보는 별이 사라져 있고, 사업가와 천문학자의 노트나 그림에 차이가 있으며, 어린 왕자 목도리의 윤곽에서부터 꽃들의 꽃잎과 꽃받침, 가로등 아래의 태양 광선, 바오밥 나무의 뿌리에서부터 야자수의 가지가 다르다; 또한 어린 왕자가 본 해넘이의 횟수가 다르다.

한편, The Publication History of The Little Prince는 각국의 번역 판본들과 떽스뜨, 이미지의 차이를 상세하면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폴리오 문고판에서 지적하지 않은 두 가지 사항들을 더 지적하고 있다: 하나는 어린왕자가 입은 가운의 색깔이 초록색green이냐, 어두운 파랑dark blue이냐, 아니면 바다색navy blue이냐 하는 논란이 있어왔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소행성 B612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천문학자들이 별에 이름을 붙이는 방식을 설명하면서 '소행성325'를 예로 드는데 이 숫자가 일부에서는 '소행성3251'로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린왕자의 가운 색깔

불어판과 영어판, 그리고 두 한국어역본 사이의 가운 색깔이 모두 다르다


Il l'appelle par exemple : « l'astéroïde 325 ».
- 갈리마르 출판사 폴리오 문고판, 22쪽.

He might call it, for exemple, "Asteroid 325."
- 하코트 브레이스판 캐서린 우즈 옮김본, 11쪽.

예를 들자면 <소혹성(小惑星) 3251>하는 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 구舊 문예출판사판 김현 옮김본, 23쪽.

이를테면, '소혹성 3251호'라는 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 신新 문예출판사판 전성자 옮김본, 17쪽.

가령, '소혹성 제325호'라는 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 문학동네판 김화영 옮김본, 23쪽.

어린 왕자가 해가 지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는가와 '나'가 예로 든 소행성 이름이 무엇이었는가는 그래도 단순한 편집 판본 상의 차이일 뿐이다: 마흔 세 번과 마흔 네 번이라는 차이가 작품 내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상한 일은 '신원'이라는 출판사에서 내 놓은 책은 엉뚱하게도 어린 왕자가 본 해넘이의 수를 "46번"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민한 작가가 언젠가 고쳐 쓴 뒤 어느 판본에 적용을 하지 않았거나 무던한 편집자가 실수를 했거나 했을 것이다. 물론, 어린 왕자에게 있어서 해넘이가 갖는 의미는 무척 각별하다. 슬픈 날에 마흔 몇 번이나 해넘이를 보았다는 것이나, 왕이 소원을 빌라고 하자 망설임 없이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싶다고 한 것, 그리고 24시간 동안 해가 1440번 진다는 이유로 점등인의 별을 떠나고자 하지 않은 점, 그리고 조종사인 '나'에게 해지는 것을 보러 가자고 무의식 중에 떼를 쓴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텍스트를 자세히 살펴보면 어린 왕자가 해넘이를 43번이 아니라 44번 보았다는 것을 확정해주는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 어린 왕자는 별들이 즉각 복종한다는 왕의 권능을 부러워하며 이렇게 생각했다고 화자는 전한다:

어린 왕자는 그토록 대단한 권능에 감탄했다. 만약 자기에게도 이러한 권능이 있었다면 의자를 뒤로 물려놓을 것도 없이 해지는 광경을 하루 마흔네 번만이 아니라 일흔두 번, 아니 백 번 이백 번이라도 구경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문학동네판 김화영 옮김본, 55쪽.)

그럼에도 이것은 작자가 처음에 의도한 해넘이의 숫자를 밝혀주는 것일 뿐 44라는 숫자 자체가 어떤 고도의 시적 울림이나 상징성을 가진 유의미한 것이 아님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에 있어서는 문제가 좀 다르다: 그림이 좀더 바랜 것에서 시작해서 그림 자체에 있어야 할 것이 빠진 것도 있다. 이는 작가의 원판 그림이 미국 출판사들에서 프랑스 출판사들로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문학자①"

천문학자가 망원경을 통해 별을 보고 있는 것이 맞는 그림인데, 별이 아예 빠져서 편집되어 있다.

"천문학자

천문학자가 설명하는 칠판의 도형이 조금 다르다. 가령 원의 중점에서 1사분면으로 나가는 선의 각도가 누락되어 있다.

"바오밥나무"

바오밥나무의 뿌리가 좀더 단순화되어 있다.

"점등인"

가로등 아래의 태양광선 하나가 없다.

서점에서 살펴본 결과, 해넘이 떽스뜨와는 달리 대부분의 책에서 작가가 그린 그림의 문제는 없었다. 몇몇 번역 판본이 예전 그림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어린 왕자가 해넘이를 마흔세 번 보았나 마흔네 번 보았나가 아니라, 어린 왕자의 떽스뜨가 어떻게 정확히 확정될 것인가이다. 마흔세 번과 마흔네 번이 갖는 차이는 크지 않겠지만, 어린 왕자가 느꼈을 쓸쓸함을 표현하기 위해 마흔 몇 번을 100번이나 200번으로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어린 왕자 - 8점
생 텍쥐페리 지음, 김화영 옮김/문학동네

어린왕자 - 8점
생 텍쥐페리 지음, 전성자 옮김/문예출판사

Posted by 엔디
데까르뜨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외쳤을 때, 그의 목소리에는 자못 흥분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그는 이성을 가지고 세계의 한 부분을 정확하게 설명했던 것이다. 헬라인처럼 로고스logos를 원했던(고전1:22) 데까르뜨는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거기서 보았던 것이다.

대학 시절, 박이문 선생님의 교양 철학 수업을 들을 때 참 의아했던 일이 있다. 이성의 신뢰자를 자청했던 그 수업의 이공계열 친구들이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세계의 모든 데이타를 알게 되면 이후 세계의 진행 방향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를테면, 그들은 목적론téléologie보다는 기계론méchanisme의 입장에 선 셈이었는데... 나를 의아하게 했던 것은 그들이 쓰는 서술어였다. 결국 그들은 객관적인 자료data를 필요로 한다고 하면서도 가장 주관적인 말 '믿습니다'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은 그들의 '믿음'을 이상하게 여기며 친구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관해 대화했다.) 라플라스나 하이젠베르크에 대한 수학사/과학사적 지식은 부족했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젊은 이공학도들의 열정이라 볼 수 있겠다.



여기 또다른 열정이 있다: 상상력의 열정이다. "합리주의가 이성에 의해 세계를 분석·파악하는 반면에 낭만주의는 상상력에 의한 세계 자체의 변모를 꾀한다."(23쪽) 상상력과 이미지는 세계를 이해하는 것을 뛰어넘어 세계를 변모시키려고 한다. 시인 브르통Breton의 말을 들어보자:

언젠가는 과학들이 처음 보기에는 자신들과 대립적으로 보이는 이 시적 정신에 접근할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지금 그 과학들의 쇠사슬을 끊고, 여러 측면에서 부드럽게 휩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바로 발명이라는 천재이다. (38-39쪽)

그는 일종의 돈오론을 설파하는데, 그에 따르면 "우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두 항의 접근에서 독특한 빛, 즉 이미지의 빛이 뿜어 나오는 것"(46쪽)이라는 것이다.

이미지는 상상력이 세계를 이해하는 도구가 된다. 가령 바슐라르는 객관적 인식의 정신분석la psychanalyse de la connaissance objective을 방해하는 이미지들을 배제하고 보다 정확한 세계 이해를 위한 책을 쓰다가 거꾸로 그 이미지들에 매혹당한다. 그는 『불의 정신분석』의 서문에서

우리는 불에 대한 직관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무거운 오류들에 억눌리고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줄 작정이다. 그 직관이야말로 경험과 측정만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 직접적인 확신을 형성하도록 우리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Bachelard, 11)

라고 쓰고 있으면서도 책의 끝부분에서는 그 이미지의 몽상에 빠질 것을 권하기도 한다(59쪽).

한편 곽광수 교수는 『가스통 바슐라르』에서 바슐라르의 『공기와 꿈』은 이미지에 의존하지 않은 상상력으로 나아가는 통로라고 보고 있기도 한데(곽광수, 49-50), 앞서의 '돈오론'과 연결시킬 수 있다면 이런 상상력은 열반nirvana의 경지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브르통과 바슐라르, 그리고 보들레르와 뒤랑을 읽어나가면서 상상력이라는 것이 삶을 이루는,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우리는 알아차리게 된다. 이 책의 매력은 바로 그 희망의 긍정이다. 우리는 상상력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 삶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어떤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잠에서 깨자마자 꿈을 기록했다고 하는데, 우리의 상상적 몽상rêverie도 매일 기록한다면 하나의 체계와 세계 이해의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것은 또 다른 상상력과 몽상의 열정이다.


Bachelard, Gaston. 1977. 불의 精神分析. 삼중당.
곽광수. 1995. 가스통 바슐라르. 민음사.


프랑스 문화와 상상력
박기현 지음/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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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을 통독한 것이 얼마만일까. 시 한 편을 읽을 여유도 없는 삶이 무척이나 삭막하다. 여유란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니까. 마음이 무겁다. 시를 읽는다는 것이 그렇게 누리는 호사는 아닐까. “의심하는 가운데 잠이 들었다.”


1. 밤/잠

  조영석의 시집 『선명한 유령』에서는 줄기차게 ‘밤/잠’이 등장한다. 시란 본래 꿈이고, 꿈은 대개 밤에 자면서 꾸는 것이니까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닐 수 있다. 통속적인 구분도 괜찮다면, 서정 시인은 밤에 시의 행을 늘려가고, 소설가는 낮에 ‘집필실’에서 원고지의 장수를 늘려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정 시인은 ‘밤’이라는 낱말을 지배한다. 시인은 골방에 들어가거나, 잠깐 눈을 감는 동안에도 밤을 불러낼 수 있는 것이다. 거기서 시인은 ‘지금/여기’가 아니라 ‘언젠가/다른 곳에서’를 상상할 수 있다: 밤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조영석의 시에서 밤은 불러서 오는 것이 아니고, 잠은 수동적인 것이다. “날이 새면 또 먼 길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39). 어디로 가는지 독자는 알 수 없다; 아마 시인도 모르기가 쉽다. 이인성이 “그때, 그가 돌아오려 했던 곳은 어디인가? 여기인가? 그렇다면, 여기서, 그가 여전히 돌아가려 했던 곳은 어디인가?”라고 인상적인 첫 연작 소설을 시작했던 것처럼, 그리고 프로스트R. Frost가 “Miles to go before I sleep, /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이라고 되풀이하여 되뇌었던 것처럼. 서정 시인들이 ‘밤’을 불러내어 ‘다른 곳’을 상상한다면, 조영석에게 ‘밤’은 오는 것이고, ‘다른 곳’은 가야 할 곳이다; 그의 시는 쓴 것이 아니라 쓰인 것이다. 그러므로 때로 그에게 잠은 ‘졸음’의 형태로 나타난다(42-43). 한국어의 관용구에서 나타나듯이 졸음은 ‘오는’ 것이다. 시인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그곳은 도달할 수 있는 곳일까?


2. 죽음

  잠과 죽음의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 열왕기는 왕의 죽음을 묘사하면서 “자다sleep”라는 움직씨動詞를 즐겨 사용한다: “다윗이 그 열조와 함께 누워자서 다윗성에 장사되니So David slept with his fathers, and was buried in the city of David(개역한글판/KJV).” 잠과 죽음의 유사성에 주목한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에게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그리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잠과 죽음의 가장 큰 공통점은 ‘오는 것’이라는 점, 곧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이다.

  시 「거대한 잠」은 시간에 묻혀 죽은 두 공룡에 대한 이야기이다: “육식 공룡 두 마리 / 얼굴을 마주 보며 잠들어간다.”라는 행들과 “그들만의 긴 빙하기 속으로 / 쓸쓸한 공룡 두 마리 얼어간다.”라는 행들은 분명히 같은 위상을 점하고 있다. 백악기가 끝나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등장하는 시기, 한 시대의 죽음을 시인은 그리고 있는 것이다. 공룡이 등장한 이유는 ‘지금/여기’에는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시집 전체를 통해 공룡의 변형을 우리는 많이 찾을 수 있다: 가령 시베리안허스키가 그렇다(30-31). 허스키는 거기서 아이를 죽인 죄로 처형된다. 허스키가 아장아장 다가온 아이를 물어 죽인 이유는 무엇일까? 햇볕이 너무 강렬해서? (그리하여 이방견은 삶의 부조리를 발견하고 끝내 처형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조영석의 시에서 죽음은 화장火葬이나 풍장風葬이 아니라 매장埋葬이다; 화장이 영혼을 자유롭게 날려 보내는 것이고, 풍장이--황동규에게서 보이듯이--삶/죽음의 경계를 지워 죽음의 고통을 극복하려는 것이라면, 매장은 일종의 가두는 행위이다. 사람은 죽는 순간 수인囚人이 되는 것이다: 땅의 수인. 그러므로 “매일 이 땅의 주인에게 사표를” 쓰지만 그 사표는 수리되지 않는다. 수리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스스로 찢어버린다(64-65).


3. 하강下降

  조영석의 시에서 죽음이란 매장이므로, 죽음이 하강의 이미지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 (불어에서 무덤tombe은 떨어지다tomber와 닮았다.) 앞에서 고찰한 잠에 대해 말하더라도, 한국어의 ‘곯아떨어지다’나 영어의 ‘fall asleep’에서 우리는 잠이 갖는 하강의 이미지를 밝히 알 수 있다. 그의 시는 바슐라르가 말하는 만큼 ‘역동적dynamique’이지 않다. 그의 시는 침잠하고 있다. “누이의 연애는 아름다워도 될까 / 의심하는 가운데 잠이 들었다.”

  때때로 상승을 뜻하는 낱말이 발견되지만, 오히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올라가는 것과 날아가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담배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다”(29), “주인 사내가 그물로 놈을 건져 올린다”(35), “씹다 버린 풀들이 바람에 실려 날아가고”(41), “살얼음을 깨고 썩지 않은 시체를 건져 올리는 날이면”(59), “뿌리를 통해 꾸역꾸역 올라오는 검은 물들이 보인다”(74). 그리고 날아오르는 것들은 결국 땅에 떨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물이 솟았다 떨어진다.”(110) 궁극적으로 상승을 가능케 하는 것, 모든 운동 에너지의 원천인 태양빛부터 적敵으로 설정되어 있다(30, 80).

  하강의 이미지는 무거움에 대한 상상력이다. 시집 맨 처음을 열면 생生이 얼마나 무거운가 하는 뼈아픈 자각이 있다. 작은 새를 보고, 불쌍히 여겨 새의 무게만큼 자기 몸을 내어주고 새를 살리려던 이가, 결국 자신의 온몸을 다 올리고서야 새와의 천칭의 균형이 맞았다는 불교의 설화를 우리는 알고 있다. 조영석의 시에서 새가 잠자리로 대치되어 있지만, 결국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생의 무게라는 것을 우리는 역시 알고 있다.

  시인이 이 생의 무게를 민감하게 느끼는 것은 그가 다른 별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는 본래 “지구보다 조금 가벼운 별”에서 살았다. 만유인력 인데, 여기서 G는 만유인력 상수이고 시인의 질량(m)은 같기 때문에, 만유인력 F는 행성 또는 별의 질량(M)에 비례한다. 지구보다 가벼운 별에서 살았다면 시인이 느끼는 만유인력의 크기는 아마 지금보다 작았을 것이다. 시인은 행성 지구에 살게 되면서 전에 없던 무거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인간은 결국 수인이다(43). 나는 처음에 조영석에게 시는 쓴 것이 아니라 쓰인 것이라고 말했다. 수인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쑥과 마늘을 100일 동안 먹어야 하는가(69). 소행성으로 돌아가야 하는가(65). 아니, 시를 써야 한다. 조영석에게 시는 인간으로서의 존재 이유raison d’être에 해당하는 것이다.


4. 무거움

  시인은 무거움을 항상 느낀다. 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돈에 대한 인식이다. 돈은 인간의 존재를 무겁게 만들며, 인간을 자기 아래에 복속시키고 수인으로 만든다(18, 29, 36-37, 89). 무거운 것은 값이 싸다(67). 시인은 이제 무거움의 사회적 차원을 느낀다. 돈에 의해 승부가 결정되는 사회는 권투와도 같은 경쟁 사회이다(88-90). 사실 권투는 쇼다; 각본이 정해져 있다는 뜻에서 쇼라는 것이 아니라, 그 경기 결과가 직접적으로 만드는 사회 현상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시인이 “이것은 쇼가 아니다”라고 두 번 강조한 것은 그 권투가 달이 아니라 손가락이라는 뜻이다. 경쟁 사회에서는 ‘나’는 없고, 오로지 ‘조직’만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거기에서 돈이 나오기 때문에 ‘조직’의 쓴맛을 보면서도 꾹 참고 경쟁한다. 조영석의 시에 때로 ‘가장家長’이 등장하는 이유도, 실제로 아직까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가부장제 아래에서는, 가장의 죽음이야말로 가장 작은 사회--가족--의 죽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94-95).

  여기에 이르러 조영석은 ‘지금/여기’의 문제로 되돌아오는 셈이다. 시 한 편을 읽을 여유도 없는 삭막한 삶이 조영석의 시 옆에서 추문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또다른, 시인의 존재 이유이다, 시를 쓸 이유이다.


선명한 유령
조영석 지음/실천문학사

Posted by 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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