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한자어나 외래어의 사용은 분명히 언어의 양극화를 심화시켜 정보의 불균형을 낳는다. 정보가 민주적으로 배포되지 않는 곳에서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때문에 한자어나 서양 외국어 독해에 어려움을 겪는 대중들에게 외래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운동은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이를테면, '국어순화' 운동의 가장 큰 성과로 생각되는 '갓길'이 그렇다. 숄더shoulder나 노견路肩이라고 하면 썩 잘 다가오지 않는 개념이 갓길이라고 하면 한눈에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게다가 갓길은 숄더나 노견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말이다. 정과리(1998, 38)는 "'노견'이라는 가금家禽 종자 같은 이름을 벗어던지고 새로 차려 입은 우리말이 상큼한 여성성을 연상케"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우리말 다듬기 사이트에서는 매주 외래어 하나씩을 골라 한국어 갈음말(대체어)을 내놓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갈음말이 그대로 표준어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이 말이 널리 쓰이면 표준어의 지위를 획득하여 사전에 실리게 되는데, 이 때 최초 제안자의 이름도 함께 넣는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낱말들은 이미 상당한 정도로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댓글reply이나 누리꾼netizen, 다시 보기vod 등은 일반은 물론 몇몇 언론에서도 쓰이고 있으며, 영화헤살꾼spoiler이나 참살이well-being, 늘찬배달quick service도 적지 않게 사용되고 있다.

아름다운 말과 알맹이가 없는 말

문제는 우리말 다듬기에서 다듬은 말 가운데 '갓길'처럼 아름다운 말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갓길이 아름답다는 것은 단지 그 말의 말맛語感이 좋다는 뜻만은 아니다. 갓길은 그 사이시옷의 매력을 한껏 돋우는 발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번 들으면 누가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무엇을 말하는지 알 만한 직관성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설명적이지 않고, 길이도 짧다.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자랑차게 뽐내는 낱말로 손색이 없다.

우리말 다듬기에서 '갓길'처럼 아름다운 말을 찾으라면 '댓글'이나 '다시 보기' 따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댓글'은 직관적이고 짧으면서도 '댓거리'처럼 알려진 말과 조화가 맞는다. '다시 보기'는 VOD보다 긴 듯하지만, 음절 수는 같으며 video on demand로 풀지 않으면 의미를 알 수 없는 VOD에 비해 훨씬 직관적이다. 또 AOD를 '다시 듣기'로 표현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등 활용도도 높다. 하지만 이런 낱말들은 기실 우리말 다듬기에서 순화하기 이전에도 널리 쓰였던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말 다듬기의 존재 의의는 상당히 축소된다.

어떤 말은 외양은 화려한데 알맹이가 없는 것도 있다. '행사빛냄이'가 그렇다. 한국인들이 격식을 차릴 때 주로 쓰는 '(자리를) 빛내다'라는 동사를 써서 꽤나 화려해보이는 말이지만, 사실 저 말은 '레이싱걸'을 순화한 말이다. 무엇보다 레이싱걸이 행사를 빛내는 사람인지는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 '-이' 접사를 국립국어원도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본래 '-이' 접사는 명사나 용언의 어간, 어근, 의성·의태어 뒤에 붙어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다. 절름발이는 명사 뒤에 붙은 예이고, 높이는 형용사 어간 뒤에, 먹이는 동사 어간 뒤에, 홀쭉이는 의태어 뒤에, 딸랑이는 의성어 뒤에 '-이'가 붙은 예이다. 요즘 흔히 보이는 '지킴이'나 우리말 다듬기에서 선정한 '…빛냄이'처럼 용언의 명사형에 '-이'가 붙는 경우는 없다. 외래어를 우리말로 아름답게 다듬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알맹이가 사라지거나 규칙이 무분별하게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규칙이 무시되는 것이 외래어의 유입보다 한국어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외래어는 한국어 속으로 들어오면서 기존 언어의 규칙보다는 한국어의 규칙 속에 편입된다. 이 경우 외래어는 어휘 수준에서 한국어 속으로 편입되지만, 형태론적 차원이나 통사론적 차원에서는 한국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가령 영어 동사인 lead가 이미 '이끌다'는 뜻을 가진 동사임에도 한국어 내에서는 '리드하다'는 식으로 '-하다'를 붙여서 나타난다. '픽업하다', '프린트아웃하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 '내츄럴하게'에서 볼 수 있듯이 natural은 본래 영어에서의 부사접미사인 -ly를 포기하고 한국어의 문법을 따라 '-하게'라는 어미를 채용하게 된다. 때문에 외래어의 유입이 한국어의 문법을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all-in을 '다걸기'로 옮긴 것도 문제가 있다. 보통 '올인하다'라는 동사형으로 쓰이는 이 말을 '다걸기'라고 옮기면 '올인해'는 '다걸기해'가 된다는 말인가? '다 걸어'면 족할 일이다. 국어의 형태론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순화의 사례라고 하겠다.

깁더와 붙갈이소리

해방 이전에 주시경 선생의 제자로 외솔 선생과 쌍벽을 이루었던 김두봉은 아름다우면서도 정확한 말을 만드는 데 뛰어났다. 그는 자신이 지은 문법책 『조선말본』의 증보판增補版을 내면서 『깁더 조선말본』이라 이름붙였다. '깁더'는 '깁고 더한'을 줄인 말이다. 이 '깁더'라는 말은 2007년 김진우 선생이 『언어: 이론과 그 응용』의 새판을 『언어: 이론과 그 응용 깁더본』이라 이름하면서 후대에 이어지기도 했다.

김두봉이 지은 다른 말로는 붙갈이소리가 있다. 언어학의 음운론 용어인데, 파찰음破擦音을 토박이말로 바꾼 것이다. 붙었다가 터지면서 소리가 나지만, 완전히 터지지 않고 갈아서 나는 소리인 'ㅈ', 'ㅉ', 'ㅊ'을 일컫는 말이다. 파찰음보다 얼마나 더 쉽고 얼마나 더 아름다운지 보라.

푸른 바다의 은유와 샹글릴라의 이상향

우리말 다듬기가 다듬었다는 말 가운데 정말 실소를 금할 수 없는 것은 대안시장이라는 말이다. 대안시장은 연전에 널리 인기를 끌었던 블루오션을 다듬은 말이다. 블루오션 전략은 모두 알다시피 경쟁이 많은 피바다 레드오션이 아니라 경쟁이 없는 푸른 바다 블루오션을 찾자는 마케팅 전략이다. 블루오션 전략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은 대안시장이 블루오션 전략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는 있지만, 전체를 갈음하기는 어렵다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대안시장이란 마치 기존의 시장과는 전혀 다른 시장을 말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블루오션 전략은 '비고객을 고객으로 만들라'고 주문하는 등 '대안시장'과 전혀 관계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블루오션 전략의 적지 않은 부분은 기존 고객의 많은 수가 별로 신경쓰지 않는데 원가만 많이 드는 고정관념 속의 재화나 용역을 버리고 고객의 진정한 필요를 찾아 거기에 투자하라는 데에 바쳐진다. 가령 태양의 서커스라는 시르크 뒤 솔레이유는 서커스에서 동물이 등장하는 부분을 버리고 이야기와 곡예를 강화하거나 창조하여 새로운 서커스를 만들어내어 세계적인 인기를 끈다는 식이다. 그러므로 블루오션이 전혀 다른 새로운 대안 시장을 만들어내는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블루오션은 어떻게 한국어로 다듬으면 좋을까? 영어를 처음 배우는 초등학생에게 물어봐도 답은 금방 나온다. '푸른 바다'다. '블루오션 전략'은 '푸른 바다 전략'이라고 부르면 된다. 본래 '블루오션 전략'은 가치혁신value innovation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었던 전략인데,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가 책을 내면서 은유적인 의미를 더해 '블루오션 전략'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이것을 다시 '대안시장'으로 다듬는다면 원뜻에서 한참 멀어지고 만다. '국어순화' 운동이 이런 간단한 은유조차 담지 못하는 것은 확실히 문제다. 원어에서 은유가 도입되었다면 갈음말에서도 은유를 쓰는 것이 당연하다.

또, 아름다운 이름의 고유명사 샹그릴라를 굳이 '꿈의 낙원'이라는 설명적인 용어로 바꾼 것도 문제다. 샹그릴라는 무릉도원, 유토피아, 엘도라도, 그리고 율도국과 함께 사람들이 오래 생각한 이상향의 한 종류인데, 저 이상향들은 각기 다른 문화적 전통과 초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샹그릴라는 샹그릴라일 뿐이다.

맺음말: 민족주의와 심미주의

말이란 관념이나 이념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가는 곳이 곧 길이 되듯, 모든 말무리言衆들이 쓰는 것이 곧 말이다. 외래어를 '순화'시켜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상허 이태준으로 되돌아가 보아야 한다(이태준 1988, 27):

그는 클락에서 캡을 찾아 들고 트라비아타를 휘파람으로 날리면서 호텔을 나섰다. 비 개인 가을 아침, 길에는 샘물같이 서늘한 바람이 풍긴다. 이제 식당에서 마신 짙은 커피 향기를 다시 한번 입술에 느끼며 그는 언제든지 혼자 걷는 남산 코스를 향해 전차길을 걷는다.

이 문장에서 클락, 캡, 트라비아타, 호텔, 커피, 코스 등의 외래어를 굳이 안 쓴다고 해보라. 이 외에 무슨 말로 '그'라는 현대인의 생활을 묘사해낼 것인가? […]

새 말을 만들고, 새 말을 쓰는 것은 유행이 아니라 유행 이상 엄숙하게, 생활에 필요하니까 나타나는 사실임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커피를 먹는 생활부터가 생기고, 퍼머넨트 식으로 머리를 지지는 생활부터가 생기니까 거기에 적응한 말 즉 커피, 퍼머넨트가 생기는 것이다.

말은 말무리의 것인데, '국어순화'론자들은 말을 민족의 것으로 치환해버린다. 한국어가 한국어 말무리들의 것이 아니라 민족의 것이 되면, 한국어는 외래어나 한자어를 배격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말을 아름답게 만들려는 심미적 욕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민족주의는 너무나도 무겁고 심각하기 때문이다.

가령 김우창(1977, 385-386, 388-389)은 '얼'이나 '슬기'와 같은 민족주의적 고유어가 강요하는 외경감에 대해 말한다. '얼'이라는 말 한 마디에서 우리는 자랑스러운 한민족임을 느끼면서 자못 종교적인 열락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이런 민족주의 열락에 빠지게 되면 고유어는 하나의 가짜 '심미화'를 형성하게 된다. 발터 베냐민에게 '정치의 심미화'가 그랬던 것처럼(신형기 2003, 180), '얼'이라는 억압적인 말이 가짜 아우라를 갖게 되면서 우리는 그 억압적인 말과 화해하게 된다. 여기서 '얼'이 본래 '어리석어 빠지다'는 뜻의 '얼빠지다'를 잘못 분석해서 생긴 말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민족주의의 가짜 '심미화'에서 벗어나 진짜 한국어의 아름다운 맛을 느낄 수 있는 언어 운동이 생기기를 바란다. 뷔퐁이 "문체(스타일)는 곧 그 자신이다Le style est l'homme même."라고 말한 것은 그저 한 말이 아니다. 언어 심미주의야말로 언어 운동에서 가장 소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우창. 1977. "말과 現實: 國語醇化運動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수록처: 『궁핍한 시대의 詩人』. 김우창전집1. 서울:민음사. 378-390쪽.
신형기. 2003. "남북한 문학과 '정치의 심미화'". 수록처: 『민족 이야기를 넘어서』. 동시대인 총서12. 서울:삼인. 171-197쪽.
이태준. 1988. 『문장강화』. 창비교양문고10. 서울:창작과비평사.
정과리. 1998. "대한국인이 갓길을 침범할 때". 수록처: 『문명의 배꼽』. 문지스펙트럼4-009. 서울:문학과지성사. 38-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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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엔디

흔히 뉴라이트 역사교과서라고 불리는 교과서포럼『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가 내세우는 것은 실증주의다. 그들은 기존의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되어 있다고 비판하면서 교과서포럼 창립선언문을 통해 이렇게 자신들의 지향점을 밝혔다:

<교과서포럼>은 대한민국의 과거를 미화하지도 않겠지만, 비하하지도 않을 것이다. 당연히 우편향도 아니고 좌편향도 아니다. 오로지 있는 그대로 우리가 치열하게 살아온 과거를 맑은 거울에 비추어보는 것처럼 진솔하게 보고자 한다. ‘실사구시(實事求是)’야말로 <교과서포럼>이 지향하고 있는 교과서철학이다.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좌편향'과 '우편향'을 벗어나겠다는 주장은 오래도록 우파의 논리였던 '탈정치'와 다를 바가 없고, '실사구시'라고 하는 것도 우파들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가 밝혀진 지금에 와서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오히려 문제는 여기서 "있는 그대로", "맑은 거울에 비추어보는 것처럼 진솔하게"와 같은 말이다. 요컨대 교과포럼의 주장은 '사실事實이란 사실史實이어야 하며 특히 사료적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은 믿지 않겠다는 말이다.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출간을 알리면서, 교과서포럼은 그들의 주장을 한 단어로 요약해서 소개했다. 바로 '실증주의'라는 방법론이다:

4. 이상과 같은 문제의식과 새로운 시각에서 저의 교과서포럼은 《대안교과서》의 서론에서 밝힌 대로 다음과 같은 방법론을 채택하였다.

1) 첫째는 철저한 실증주의이다. 현행 교과서는 물론, 종래의 한국 근ㆍ현대사 서술은 너무나 많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숨겨왔다. 민족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는 예민한 문제들이 의도적으로 회피되어 왔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대안교과서》는 역사 서술에 어떠한 터부를 두지 않고, 모든 역사를 있었던 그대로 충실하게 기술하고자 노력하였다. 역사에 대한 궁극적인 판단은 역사가가 아니라 일반 독자의 몫이다. 역사가는 역사를 충실히 묘사할 뿐이며, 그 기본 책무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2) 종래 지나치게 강조되어 온 민족주의사관을 누그러뜨리려고 노력하였다. […]

실증주의는 일곱 가지 방법론들 가운데 가장 먼저 등장하고 있으며, 그 앞에 '철저한'이라는 꾸밈말까지 붙어 있다. 이 책에서 실증주의라는 가치가 차지하는 위상이 얼마나 높은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그 바로 아래에는 '민족주의사관'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시사함으로써 실증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립 양상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실증주의와 사료#

실증實證이란 실제로 증거를 댈 수 있는 것을 이른다. 증거를 댈 수 없는 것은, 곧 허구이거나 거짓말 또는 상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실증을 신봉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실증은 객관적 인식이자 과학정신이다. 그런데 오귀스뜨 꽁뜨가 실증주의positivisme를 들고 나왔을 때 그가 했던 말은 이상하게도 '진보'였다(김영한 1990, 63):

꽁트에 의하면 인간 정신의 진보는 3단계 법칙에 따르고 있다. 이 법칙은 ① 신학적神學的 또는 가상적假想的 단계, ②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또는 추상적抽象的 단계, ③ 과학적科學的 또는 실증적實證的 단계로 되어 있으며 이것은 바로 필연적 역사 법칙의 불가피한 결과들을 반영해 주는 것이다.

실증주의는 결국 옛 정신으로부터의 진보를 이름이었다. 이 '진보'의 이름으로 실증주의가 학문의 발전에 미친 영향은 작지 않다. 실제로 오랫동안 인간들은 잘못된 신학이나 잘못된 형이상학의 영향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잘못된 학문들의 하위 학문이었던 의학의 예를 보면 이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무엇이 사실인지,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니 생명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병이 나면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바슐라르(1977, 63)는 생명이 잉태될 때 어떻게 성별이 정해지는가를 '설명'한,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17세기의 글을 소개하고 있고, 플로베르(1997, 47)는 황열병을 치료한답시고 피를 너무 많이 뽑아 환자를 죽게 한 일화를 쓰고 있다:

삐에르 쟝 파브르 의사는 1636년에 남성과 여성의 탄생에 관한 이론을 개진한다. "하나이며 모든 부분이 똑같으며, 동일한 기질을 갖고 있는 씨가 자궁 속에서 분리되어 하나는 오른편으로 다른 하나는 왼편으로 빠진다면, 그 씨의 분리 자체에서 형태나 모양에 있어서 뿐만이 아니라 성性에 있어서까지도 하나는 남성, 하나는 여성이라는 식으로 대단한 차이가 야기된다. 씨의 힘과 기력과 열기를 유지할 보다 따뜻하고 보다 힘있는 육체의 부분이므로, 오른편으로 빠진 씨의 부분에서 남성이 생겨날 것이고, 인체의 보다 차디찬 부분인 왼편으로 빠진 다른 부분은 씨의 힘을 훨씬 감소시키고 약화시킬 찬 특질을 받아들이게 되어, 거기에서 여성이 생겨날 것인데, 그것도 원천에서는 남성적이다." (원주=파브르, 《화학비밀개요》)

더 나아가기 전에, 객관적 경험과는 최소한도의 관련도 맺고 있지 않는, 그 단언의 완전히 근거없음을 강조해야만 하겠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빅토르가 탔던 배의 선장으로부터 직접 조카가 어떻게 죽었는지 듣게 되었다. 황열병黃熱病을 치료한다고 병원에서 너무 피를 많이 뽑았다는 것이었다. 네 명의 의사가 동시에 그에게 매달렸지만, 그는 곧 사망했고, 주임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제기랄! 또 하나가 갔네!"

그래도 더 객관적일 것으로 기대되는 자연과학, 그 가운데서도 인간의 삶과 직결되는 의학이 이럴진대 다른 학문이 겪고 있던 비논리성은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실증주의의 등장 이후로 이와 같은 난센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실험을 통해 증명된 것만 믿고, 검증을 통해 확정된 것만 신뢰하는 과학적 태도는 이제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역사에 대한 서술도 있는 사실을 그냥 그대로 적어내기만 하면 된다.'라고는 그러나, 말할 수가 없다. 김영한은 실증주의 역사학이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김영한 1990, 60-61):

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 많이 쓰이는 '실증적'이라는 말과 '실증주의적'이라는 말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실증적'이라는 말은 사료史料의 객관적 취급, 이른바 랑케가 말하는 "사실을 과거에 있었던 그대로 재생하는 것"(wie es eigentlich gewesen)을 뜻하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 같다. 이와 같은 과거 사실의 충실한 확인과 복원은 일면에서는 실증주의의 정신과 부합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곧 실증주의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실의 정확성과 정밀성은 실증주의가 추구하는 첫 단계의 과정에 불과하며 실증주의의 최종적 목표는 어디까지나 경험에 입각한 법칙성과 예측성을 찾는 데 있기 때문이다. […]

[…] 자료의 객관적 취급이나 사실의 정확성을 추구하는 것은 따지고보면 실증주의자들에게만 고유한 특성은 아닐 것이다. 관념론자나 상대주의론자를 막론하고 모든 역사가가 사실을 정확히 확인하는 것은 그들의 제1차적 의무이며 필요조건인 것이다. 다만 문제의 발단과 견해의 차이는 이와 같은 사실의 확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확정된 사실에 대한 해석과 설명 방식으로부터 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에서 흔히 '실증사학'이라고 말할 때의 '실증'의 개념이 사료와 문헌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라는 단순한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 한, 이것은 역사 연구의 특정한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실증사학實證史學과 서양에서의 실증주의實證主義 사학史學과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하며

좀 긴 인용문이지만, 요약하면 실증주의란 법칙을 세우기 위한 방법론이지, 결코 사실을 그냥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역사를 있었던 그대로 충실하게 기술하고자 노력하였다. 역사에 대한 궁극적인 판단은 역사가가 아니라 일반 독자의 몫이다. 역사가는 역사를 충실히 묘사할 뿐이며, 그 기본 책무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천명한 교과서포럼의 역사 교과서는, 실증이라는 단어에만 집착했지 실증주의의 기본적인 개념에 대해서도 잘 몰랐기 때문에 법칙을 세우는 실증주의의 '기본 책무에 소홀했다'고 말할 수 있다.

『가즈오의 나라』와 민족주의 사관#

가즈오의 나라
대중적 민족주의자라 할 만한 김진명이 주로 관심 갖는 것은 한국의 고대사와 근·현대사다. 그로서는 찬란한 한국의 고대사가 일제의 침략을 받은 근·현대 시기에 말소되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함으로써 한국인들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다. (그의 글에서 중세사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곧 그는 주로 일본과의 관계 속에서 한국이라는 나라 혹은 민족의 정체성을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실증주의는 식민사관에서 나온 자학사관인 것처럼 보인다. 그는 두 번째 소설에서 실증주의에 대한 "싫증"을 토로하고 있다(김진명 1995, 268-269):

"왜 단군 신화를 역사로 보지 않는 겁니까? 왜 이야기 정도로 치부하는 겁니까? 일본인들은 자기네 역사를 올리지 못해 안달인데 왜 우리는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입니까?"

상훈에게는 참으로 가슴에 와닿는 얘기였다. 에이지의 사건을 추적하면서 뼈저리게 느끼던 부분이었다.

"실증이 안 되고 있잖아요."

"밤낮 그놈의 실증 실증 하지 마십시오. 정말 싫증납니다. […] 이 나라 학생들은 제 나라 시조를 유치원에서 이야기 정도로나 배우라는 겁니까?"

"학문이란 그런 것이 아니오. 교과서에는 고증된 것만을 실어야지."

"일본이 수천 권의 역사서를 불태우고 말살해버린 한국의 고대사는 시시한 사서에 한 줄만 있는 사실도 애지중지하며 키워내야 합니다. 그런데 삼국사기 같은 정사에 있는 기록도 못 믿겠다고 교과서에서 빼버리면 우리나라 역사를 어디로 끌고 가겠다는 겁니까? 왜 과거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하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겁니까?"

학자들은 눈에 띄게 조선사편수회 시절부터 내려오던 뿌리 깊은 식민사관을 극복해내고 있었다.

소설에서 민족주의자들은 실증주의의 옷을 입은 식민주의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들의 논리는 일본이 사료 자체를 말살한 마당이니 실증주의라는 것도 허구가 아니냐는 것이다. 실증주의는 그 사료중심성 때문에 일제에 의해 조작된 사료에 휘둘려 식민주의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문영 님의 일제는 20만 권의 사서를 태웠나에서 볼 수 있듯이 일제가 태운 역사 관련 책은 51종에 불과하다:

서희건 저 <잃어버린 역사> 1권 11쪽에는 <제헌국회사>와 <군국일본조선강점 36년>이라는 책을 인용해 일제가 핀매금지하고 수거한 책은 총 51종 20여만 권이라고 밝히고 있다. <군국일본조선강점36년>을 쓴 사람은 일제시대 군수를 지낸 골수 친일파 문정창이라는 재야사가인데, 이 재야사가는 이외에도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많이 지어낸 인물이다. 바로 이런 사람이 주장한 내용이 일제가 20여만 권의 사서를 불태웠다고 주장한 것이다.

한국인들은 오래도록 반일 감정을 교육받았기 때문에 사실을 적확하게 지적하지 않기로 마음먹으면 한국인들을 도발하기는 무척 쉽다. 어쨌든 사료 말살설을 애지중지 키우면 "한국의 고대사는 시시한 사서에 한 줄만 있는 사실도 애지중지하며 키워내야" 한다는 주장으로 바뀐다. 실증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라 할 수는 없지만, '실증'의 정신은 찾아볼 수 없다. ('시시한 사서에 한 줄만 있는 사실'을 자꾸 키워내려다 보니 '고대 삼국은 한반도가 아닌 중국에 있었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게 된다. 대체로 출전이 없는 주장이지만, 간혹 출전이 있더라도 문외한이 보더라도 무리한 적용이 많다. 실제로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상세하고 논리적인 비판이 나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주인공격인 상훈은 때로 일본의 제국주의 역사학자들의 논리를 깨기 위해 실증주의를 주창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상훈은 제국주의자들의 역사관을 "황국사관"이라고 부르며, "학계의 양심"에 호소한다(김진명 1995, 222-223):

말은 삼국 학계라 하고 있었지만 결론은 일본을 제외한 중국과 한국의 역사기술을 옳지 못하다고 나무라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 올바른 토론이라기 보다는 한국과 중국의 역사학계에 대한 성토장이 되고 있었다. 누군가 상훈의 의견을 물어오자 상훈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일본 학계의 대표들이기 때문이었다.

"본인은 동양 삼국의 역사를 올바로 기술하기 위하여 삼국의 사서를 대조하고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을 위주로 하여 이제까지처럼 자국중심의 역사기술 태도를 버리고 철저히 사료에 입각하여 역사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고대사 중에서 한일간에 쟁점이 되어 있는 임나일본부에 대한 일본의 역사기술은 여전히 황국사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 점에 있어서 학계의 양심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앞으로는 "자국중심의 역사기술 태도를 버리고 철저히 사료에 입각하여 역사를 재구성"하라는 것이다. 곧 실증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후 상훈은 주로 광개토대왕비에 대한 해석, 그 중에서도 『일본서기』의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일본 역사학자들을 압도한다. 사실과 전설을 구분해야 하며, 광개토대왕비에서도 과장된 부분은 인정해야 하며, 『일본서기』의 사료적 가치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토론 과정에서 또다서 등장하는 것이 역시 '분서焚書'론이다. 한국의 국수주의자들은 일제가 고대사 사료들을 말살했다고 주장하고, 일본의 황국사관에 빠진 사람들은 한국이 '임나일본부설'은 부끄러운 역사라 관련 사료를 다 없애버렸다고 주장한다(김진명 1995, 233):

"결국 한 점의 자료도 찾지 못하자 한반도의 사람들이 치욕적인 사실이라 기록을 모두 없애버렸다고 주장하기도 했지요. […] 세계 역사상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4·5세기 경이면 양국간에 사신 한번 왔다 간 것도 모두 사료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2세기에 걸쳐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한 것이 겨우 일본서기의 기록 한 줄로 압축될 수 있습니까? […]"

한 소설에 실린 두 분서론은 자국중심주의적 역사관이 얼마나 쉽게 허구가 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이 소설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의 주장을 깨뜨릴 때에는 '실증주의'를 종용하고, 한국의 역사를 기술할 때에는 "시시한 사서에 한 줄만 있는 사실"을 키워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국 민족주의의 두 얼굴이다.

실제로 식민주의와 민족주의는 같은 논리를 가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겠다. 차하순(1990, 188-196)은 식민주의 사관을 세 가지로 구분하여 ① 인종적 식민주의 사관 ② 진화론적 식민주의 사관 ③ 문화적 식민주의 사관 등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식민주의자들이 타국을 침략할 때 "우리가 우월하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이 인종적 식민주의 사관이고, 그와 거의 구별할 수 없지만 굳이 가르자면 "우리가 더 진화되었으니 너희는 도태되어도 되므로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은 진화론적 식민주의 사관이다. 또, "우리 문명이 더 위대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문명을 주겠다"고 말하는 것은 문화적 식민주의 사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세 가지 식민주의 사관은 그대로 한국 민족주의에도 적용된다.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이라는 주장이나 한국의 찬란한 고대사만을 강조하는 주장이 문제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구술사와 '기억'의 정치학#

교과서포럼이 '실증'적 태도를 견지하기 위해 취했던 것은 전적으로 사료에만 의존하는 방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관점에 전연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자들의 황당무계한 주장을 그들로서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관찬 사서'라고 할 만한 중·고등학교 국사 책에조차 부족한 근거로 한국과 한민족을 치켜세우는 표현이나, 과장된 표현들이 적지 않게 나온다. 때문에 교과서포럼 역시 일정 부분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볼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이 철저하게 사료--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공문서--에만 의존하면서 간과한 부분도 적지 않다. 가령 동학농민운동은 "남겨진 실증적인 사료에 관한 한" 농민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 일으킨 보수적 농민 봉기로 평가된다. 이 교과서는 일제의 토지 수탈을 위한 토지조사에 대해서도 농민이 근거를 제출하면 땅을 돌려주었다는 식으로 기록하고 있고, 일본군 '위안부' 역시 '속아서 제발로 돈 벌러 갔다'는 취지로 쓰기도 했다. 이와 같은 '묘사'는 아마 그들이 택한 사료가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료였기 때문일 것이다. 공문서 중심의 태도는 필연적으로 개개인의 발언을 무시한다. 피해자들이 아무리 내가 피해자라고 증언해도 그 증언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가해자의 양심선언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속아서 제발로 돈 벌러 갔다'는 주장은 그런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셔널리즘과 젠더
우에노 찌즈꼬(1999, 149-154)는 1996년 12월에 발족한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주장을 네 가지로 요약했다: ① '위안부' 강제 연행을 뒷받침할 실증 자료가 없다. ② 실증 사학의 입장에서는 피해자의 증언이 신뢰성을 의심받는다(구두 증언은 신뢰성이 없다). ③ 성性의 어두운 면을 중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④ 국민적 자존심을 회복해야 한다.

우에노는 넷째가 그들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이라고 했지만, '기억'을 말하는 역사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첫번째와 두번째 주장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우에노는 그들의 주장에 약간 흥분한 듯하지만, 사실은 매우 차분하게 반박한다. 먼저 첫번째 주장에 대한 반박을 보자:

언뜻 보기에 이 주장은 문서 사료 지상주의인 실증 사학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네오 나찌의 논리와 다를 바 없다. 네오 나찌는 유태인 말살을 지시했던 히틀러가 사명한 문서 자료가 없다는 논거로 유태인 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문서 사료 지상주의가 안고 있는 위험은 누가 보아도 명백하다. 패전국이 전후 처리에 앞서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자료를 폐기 처분했다는 사실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나 교과서포럼이 택하고 있는 '실증주의'라는 것의 맹점이 나타나는 부분이다. 이들은 사료가 없다면 어느 무엇도 확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고, 그 사료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문서 사료에 한정된다. 문서 사료가 당대에 거쳐야 할 필연적인 숙명인 '검열'을 고려하지 않은 연구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우에노는 이어서 "실증 사학이라는, 언뜻 보기에 '과학적'인 방법론을 채용하는 것이 어떤 함정에 빠질 수 있는가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함으로써 이들이 '과학화'를 부르짖음으면서도 결국 궁극적으로는 '비과학화'로 나아가고 있다는 주장을 편다.

실증 사학에서는 문서 사료, 고고학적(물적) 사료, 그리고 구두 사료를 사료로 인정하는데, 이 가운데 구두 사료보다는 나머지 둘의 사료 가치가 더 높다. 또 문서 사료 가운데에서도 공문서가 사문서보다 가치가 높다. 그런데 문제는 "'공'문서란 '관官'에서 사태를 어떻게 '관리'했는가를 나타내는 자료"라는 점이다. 따라서 공문서는 언제든지 관의 판단에 따라서 수정되거나 삭제될 수 있는 문서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공문서만을 신봉하는 태도는 일견 불편부당不偏不黨한 태도로 보이지만, 사실은 당시 권력을 점하고 있던 쪽에 편향된 판단을 내리게 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 주장에 대한 반박을 보자:

'위안부' 문제의 특질은 지금까지 누구나 그 존재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침묵함으로써 피해자가 없는 범죄가 되어 왔다는 것이다. […] '위안부' 문제는 '위안부'를 경험했던 여성들을 침묵하게 하는 일에 성공했다. 그 피해자들이 간신히 무거운 입을 열고 자신들의 체험을 증언하는데, 구두 증언은 역사 자료로서 신뢰성이 없다는 이유로 피해 자체를 부인하려 한다.

무분별하게 '실증'을 신봉하는 태도는 '말'을 신뢰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고민은 사실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여성사 일반에 적용된다. "여성사는 '씌어진 역사'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역시 구술사oral history뿐이다(우에노 찌즈꼬 1999, 169-175).



MBC TV에서 3월 29일 방영한 뉴스후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구술사를 강조했다

구술사는 분명 몇 가지 문제가 있다: ① 망각이나 잘못된 기억 ② 비일관성 ③ 기억의 선택성 ④ 회상이라는 시점이 그것들이다. 곧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기억이란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고, 이야기의 앞뒤 줄거리가 종종 맞지 않는다. 또, 기억은 항상 선택적인 것이어서 기억되는 것이 있고 잊혀지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게다가 편년체적으로 당대의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후일 인터뷰를 통해 사건에 대해 말하는 것이므로 현재의 처지가 과거의 기억을 윤색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씌어진 역사'인 '정사'에서도 구술사의 문제점은 다 나타난다: ① '정사'에서도 씌어지지 않은 기록이나 지워진 기록, 잘못된 기억이 있다. ② 정사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앞뒤가 맞는 역사'는 오히려 더 위험한 역사이다. 딱 맞아떨어지는 역사는 목적론적으로 '편집된 역사'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③ '정사' 역시 권력자의 시각에서 취사선택된 것만 기록한다. ④ 역사는 본래 당대에 어떤 기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끊임없는 '재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역사는 '회상'이다.

'씌어진 역사'만을 신봉하는 태도는 오히려 우리를 사실事實로부터 멀어지게 함은 물론, 그럼으로써 진실에 다가가는 것을 방해하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공식 문서뿐 아니라 작은 화장실의 낙서와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증언이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실증적인 태도 그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실증주의'는 현대 학문science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정보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판단력 그 자체이다. '씌어진 역사'만을 신봉하는 '실증주의'는 반쪽 실증주의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프레베르가 썼듯이 당대의 '위대한 사람'이란 후손을 위해 제 몸의 치수를 재게 마련이기 때문이다(Prévert 1986, 120):

위대한 사람
Le grand homme

석공의 집에서
난 그를 만났지
그는 제 몸의 칫수를 재고 있었어
후손을 위해서.

결론#

역사학자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사랑과는 별개로 학문의 연구는 객관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실증주의다. 실증주의라는 방법론은 당연히 항상 유효하다. 중요한 것은 '실증'의 근거를 무엇으로 잡는가이다. 공문서 중심의 담박한 서술이 역사 교과서의 임무라고 믿는다면, 역사학자라는 사람이 있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 집필진에 역사학자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역사적 사실은 항상 미스테리일 수밖에 없으며, 다만 우리는 진실에 점근선으로 다가갈 수 있을 따름이다. 가령 식민지 근대화론이 완전히 허구인지 어느 정도의 진실성이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든 적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도 마찬가지다. 이들 증언은 하나하나가 소중한 구술사이다. 물론 우리가 그들의 주장을 덮어놓고 100% 신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의 주장이 상당한 진실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판단된다면 거기에 대한 연구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성실한 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교과서포럼의 '담박한 서술'은 실제로는 철저히 편향된 시각에 불과하게 될 뿐이다.

참고문헌#

김영한. 1990. "實證主義史觀". 실린곳: 차하순 엮음. 『史觀이란 무엇인가』. 청람논단1. 증보7쇄. 서울:청람. 57-76쪽.
김진명. 1995. 『가즈오의 나라』. 2권. 서울:프리미엄북스.
차하순. 1990. "植民主義史觀". 실린곳: 차하순 엮음. 『史觀이란 무엇인가』. 청람논단1. 증보7쇄. 서울:청람. 181-197쪽.
우에노 찌즈꼬. 1999. 『내셔널리즘과 젠더』. 이선이 옮김. 비판총서3. 서울:박종철출판사.
Bachelard. 1977. 『불의 精神分析』. 김현 옮김. 삼중당신서11. 서울:삼중당.
Flaubert, Gustave. 1997. "순박한 마음". 실린곳: 『세 개의 짧은 이야기』. 김연권 옮김. 문지스펙트럼2-008. 서울:문학과지성사. 13-76쪽.
Prévert, Jacques. 1986. 『붉은 말』. 함정숙 옮김. 세계문제시인선집3. 서울: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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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엔디

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가벼운 이야기로 우리는 이지형의 장편소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를 알고 있다. 문학평론가 도정일이 "만화적 상상력"이라고 부른 이지형의 '모던 보이' 이야기는 무척 유쾌했다. 40년대의 경성도 30년대만큼 날렵했을까. 대동아 전쟁이 발발하고, 반도에서는 소위 민족 말살정책이 서슬퍼렇던 그 총력전의 시대에? 하지만 이 실용주의의 시대에 그런 실증주의적 분석은 허랑하다. 확실히 사람들은 민족이니 독립이니 하는 무게감을 뺀, 날렵한 시대물을 원하는 면이 있다.

정용기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은 그런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만한 영화다. 독립운동의 비장함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독립운동을 빙자한 도둑질이나, 희화화된 독립운동가들만이 남아 있다. 이 영화 속에서 소위 독립운동가라고 하는 친구들은 지나치게 우둔하거나, 지나치게 영리하다.


1-1. 안티내셔널리즘? - 우둔한 독립운동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이름을 딴 카페 상호가 무색하게도, 이 까페의 사장과 요리사는 영화에서 가장 우둔한 쪽에 속한다. 이들은 까페를 운영하여 번 돈을 상부(아마 임정)에 독립운동 자금으로 갖다 바치는 한편, 종종 내려오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일제 유력 인사나 중요 시설에 대한 태러를 감행(시도)한다.


이를테면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넣는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식의 허무한 계획을 세우고서 엄청난 테러를 기획하는 그들의 모습은, 독립운동이라는 큰 거대담론 자체를 희화화시키고 만다. 거기서 독립운동의 존재이유는 사라지고, 우리편/상대편 식의 단순한 2분법과 웃음만 남는다. 여기서 웃음이 유발되는 요인은 '거대담론'이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져버리는가에 있다. 김기림(1988, 142)은 '비소법比小法bathos'을 통한 '유머'를 단순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가령

"군대는 새벽거리를 국경으로 향하여 이동하기 시작했다. 중화기重火器가 이에 따르고 치중부대가 뒤를 따랐다"고 말하여 무슨 비상 사태인 줄만 알게 해놓고 끝에 가서 "이리하여 군대는 연습지로 향하였다"

라고 하는 식이다. "상부에서 '동방의 빛' 고것을 탈취해 오랴." "계획은 있고?" 계획이 있을 리가 없다. "뭐 별로 계획할 것두 없겠구먼." 이런 식이다.

예고편에서는 사장은 열혈 독립투사로, 요리사는 '생계형 독립운동가'로 소개되었지만, 실상은 사장이나 요리사나 모두 빠듯한 생계生計 곧 살 궁리 속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 그것은 요리사 희봉의 "그럼 이번에는 다이아만 훔치고, 정무총감은 담에 한가할 때 좀 죽이면 워뗘?"와 같은 대사나 사장의 "해서 독립운동도 까먹지 않게끔 좀 정기적으로 꾸준히 해야 되는겨."에서 잘 드러난다.


1-2. 안티내셔널리즘? - 영리한 독립운동

봉구는 지나치게 영리하고, 제멋대로인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온갖 문화재들을 일본인들에게 고가를 받고 팔아넘긴다. 영화에서 액션 장면을 가장 많이 보여주는 그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테러리즘을 통한 독립운동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아니,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는 독립운동가연한 적이 없다. 그가 독립운동에 관련이 있었음을 보여준 것은 오로지 그가 가져온 금괴 10궤짝이 독립운동 자금 대신 건국 자금으로 쓰이게 되었다고 말하는 내레이션뿐이다.

그러나 봉구라는 캐릭터는 코미디 영화의 등장인물로서 상당히 매력적인데,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1999, 31, 1448a)가 말한 대로 "희극은 실제 이하의 악인을 모방하려 하고, 비극은 실제 이상의 선인을 모방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가 문화재를 팔아넘기는 것에 대해 전당포 주인은 "그게 다 민족혼인데." 하고 혀를 찬다. 하지만 봉구는 태연하게 말한다: "민족혼이 밥 멕여 줍니까. 오까네お金가 아리마센ありません인데."

봉구가 외모나 체격, 그리고 영리함 등 많은 면에서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우월한 캐릭터임에도 그의 행동이 코미디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은, 그가 도덕률에 있어 우리보다 낮은 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가령 "저는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은 아니에요. 전 불의를 보면 그냥 쭉 봐요."라고 장난스럽게 대답해서 웃음을 유발한 한 잘생긴 연예인처럼, 봉구도 모든 면에서 멀쩡한 사람이 문화재 뒷거래를 한다는 것, 그러면서도 쿨한 답변을 할 줄 안다는 것이 코미디의 조건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1-3. 안티내셔널리즘? - 춘자와 하루꼬와 해당화의 사이

춘자는 미네르빠에서 인기 있는 가수이면서, 해당화라는 이름을 걸고 일본인이나 친일파의 사저를 뒤지는 도둑이다. 그는 "한국인이지?"라는 질문에도 "일본인이지?"라는 질문에도 도리질을 한다. 식민지인과 내지인 사이에서 태어난 상황은 한 여자의 삶을 이중적으로 만들어냈다. 가수/도둑의 사이, 한국인/일본인의 사이, 곧 춘자/하루꼬/해당화의 사이에 그가 존재한다.

특히 유명한 테러리스트 독립운동가인 안중근의 마디 없는 손도장과 해당화라는 이름은 춘자가 독립운동가일 것이라는 심증을 굳게 하지만, 그건 시쳇말로 낚시다. 여기서도 역시 춘자의 존재는 독립운동이라는 거대담론을 우습게 만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1-4. 안티내셔널리즘 < 내셔널리즘

하지만 이런 세목들에서 내셔널리즘이 희화화되는 중에도 오히려 관객은 복류하는 내셔널리즘의 강력함을 체험하게 된다. 미네르빠의 사장과 요리사는 결국 정무총감을 암살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내용이나, 봉구가 빼돌린 돈이 결국은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였으며, '동방의 빛' 사건으로 빼돌린 돈은 건국 자금으로 쓰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장면이 그렇다. 여기서 미네르빠의 사장과 요리사는 단순한 마음의 소유자로 방법은 졸렬하지만 우직한 충성심을 가진 그들 나름대로 탁월한 독립운동가라고 다시 자리매김하게 된다. 봉구 역시 탁월한 사기꾼 기질을 독립을 위해 쓴 것이었다는 사실이 직소퍼즐의 완성을 통해 밝혀지면서 그에 대해 가졌던 관객의 의구심은 풀리고 만다. 그는 기지 넘치는 독립운동가의 자금책으로 재포장된다. 열 궤짝의 금괴를 '해방된 조국'에 그대로 갖다바쳤다는 설정은 잠깐 스치듯이 지나가지만, 현재 정치권의 부패에 질린 관객들에게는 반드시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에서 보여주는 내셔널리즘의 희화화는 관객들이 내셔널리즘에 침윤되어 있을 때라야 빛을 발하는 이중 장치라는 것이 밝혀진다. 가령 봉구의 경우를 보자: 민족혼을 팔아먹는 그의 윤리 의식이 웃음을 유발할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객들은 그보다 고상한 윤리 수준, 곧 좀더 강한 내셔널리즘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주인공 봉구가 악한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말미에 금괴 열 궤짝을 건국 자금으로 바쳤다는 설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미네르빠의 사장과 요리사도 역시 희화화된 테러리즘적 독립운동에서 웃음을 유발하지만, 그들이 실패한 독립운동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무총감 테러에 성공하여 '해피 엔딩'을 만들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춘자에 이르면 좀더 재미있어진다.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니라는 춘자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그에게서는 경계인의 눈물 자국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니라던 춘자는 결국 해방 이후에도 별다른 설명 없이 조선, 아니 미군들이 모인 남쪽의 한국에 남는다. 패전국 일본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승전국 로시아로 가서 멋진 재즈 바를 차리지도 않고 말이다. 그도 아니면 로시아에 더 가까운 이북이나 김기림이 "아라사의 소문이 자주 들리는 곳"이라고 노래했던 곳으로도 가지 않고 말이다. 바로 몇 분 전까지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그 '사이'에 있으면서 내셔널리즘을 비웃을 준비를 하고 있던 춘자는, 조금의 고민도 보이지 않고 '해방된 조국' 남한을 택한다. 걸출한 도둑이었던 해당화가 어느 새 의존적 여성 춘자가 된 것은, 그가 '사이'에서 '남한'으로 삼투되는 것과 때를 같이 한다. 그런데 관객들은 그런 춘자의 변화를 별다른 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데, 여기서 작용하는 것이 내셔널리즘이다. 한국인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춘자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 하고 놀랐을 것이다. 춘자春子라는 촌스러운 이름부터가 그렇다. 본인이 아무리 하루꼬春子라고 불러 달라고 애써도 민족혼을 들먹이는 전당포 주인은 그를 춘자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엔딩 크레딧에서조차 하루꼬가 아니라 춘자로 등장한다.)

춘자와 하루꼬 사이, 혹은 그 둘과 해당화 사이에서 머물던 그는 어느 사이인게 해당화를 먼저 지워버리고, 그 다음에는 하루꼬를 지워버렸다. 그렇게 그는 안티내셔널리즘에서 내셔널리즘으로 자연스럽게 편입된다.


2. 전당포의 자본주의

《원스 어폰 어 타임》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전당포이다. 모든 음모는 전당포를 기점으로 시작되고, 독립운동이라든가 하는 중요한 의제는 전당포에서 드러난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위기 상황 역시 전당포에서 드러난다. 그 말은, 이 영화가 자본주의를 밑바탕에서부터 깔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

자본주의를 세상의 모든 것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간명하게 정의한다면, 전당포야말로 초기 자본주의의 총아라고 할 만한 것이다; 온갖 물품들이 금액, 곧 숫자로 환산되어 나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박태원(1987, 56)의 「피로」와 오장환(1989, 24)의 「古典」은 전당포를 이렇게 언급한다:

나는 그 고무장화의 피곤한 행진을 보며, 그것을 응당 물로 닦고 솔질을 할 그들의 가엾은 아낙들을 생각하고, 또 그들의 아낙들이 가끔 드나들어야만 할 전당포를 생각하고, 그리고 그곳에 '삶'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전당포에 고물상이 지저분하게 늘어슨 골목에는 가로등도 켜지지는 않았다. 죄금 높다란 포도鋪道도 깔리우지는 않었다. 죄금 말쑥한 집과 죄금 허름한 집은 모조리 충충하여서 바짝바짝 친밀하게는 늘어서 있다. 구멍 뚫린 속내의를 팔러 온 사람, 구멍 뚫린 속내의를 사러 온 사람. 충충한 길목으로는 검은 망또를 두른 쥐정꾼이 비틀거리고, 인력거 위에선 차車와 함께 이미 하반신이 썩어가는 기녀들이 비단 내음새를 풍기어가며 가느른 어깨를 흔들거렸다.

그런데 《원스 어폰 어 타임》의 전당포는 박태원이나 오장환이 언급한 곳보다 더 다이내믹한 공간, 곧 장물아비의 집으로 묘사된다. 확실히 "민족혼이 밥 먹여 줍니까. 오까네가 아리마센인데."라고 봉구가 전당포에서 말했을 때 그는 도굴꾼의 마인드로 자신을 위장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독립운동을 위한 운동 자금을 위해 문화재를 팔아 넘겼던 것으로 드러난다. 여기서 드러나는 당연한 결론은 독립에도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기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독립운동가들은 기본적으로 운동의 자금책이었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미네르빠의 수익금은 분명 임정으로 들어가고 있고, 전당포 주인의 역할 역시 마찬가지다. 봉구는 문화재를 팔아먹거나 사기를 쳐서 운동 자금을 모금하고 있다.

여기서 그들의 저항적 내셔널리즘과 자본주의의 끊지 못할 인연이 드러난다. 미네르빠의 사장과 요리사가 남쪽에 남은 것은 임정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에서 충분히 보이지만, 봉구와 춘자가 남쪽에 남은 것 역시 이와 같은 자본주의와의 연관 관계를 통해 이미 드러나 있던 것이라는 점이다.


내셔널리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원스 어폰 어 타임
《원스 어폰 어 타임》은 1940년대를 정확하게 그리지 못하고 있다. 이 영화는 시대물도 아니며, 비장한 각오로 봐야 하는 영화도 아니고, 그저 오락꺼리일 뿐이다. 문제는 그런 영화일수록 관객들의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시장 논리다. 영화의 포스터는 "독립군의 시대는 가고 사기꾼의 시대가 왔다!"고 우스꽝스럽게 주장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독립군의 내셔널리즘에서 한 발짝도 옮기지 않고 있다. 더구나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라는 극단적 자본주의가 횡행하는 21세기 초 남한의 관점을 그대로 영화에 투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영화에서 1940년대의 경성이 아니라 2000년대 첫 10년의 서울을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영화에서 내셔널리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긴밀한 커넥션을 느낄 수 있다면, 그대와 나 역시 자본주의의 총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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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김기림. 1988. 『金起林 全集』. 4: 文章論. 서울:심설당.
박태원. 1987. 『小說家 仇甫氏의 一日』. 기민근대소설선10. 천안:기민사.
오장환[최두석 엮음]. 1989. 『오장환 전집』. 1: 詩. 서울:창작과비평사.
Aristoteles et al.. 1999. 『詩學』. 천병희 옮김. 서울:문예출판사.

Posted by 엔디
진중권 “‘디 워’ 비평할 가치도 없어”…네티즌 ‘발끈’ : 영화·애니 : 문화 : 뉴스 : 한겨레

'디 워'에 대해 처음 쓴다. 나는 '디 워'를 보지 않았지만, 그 애국심 마케팅과 관련하여 내셔널리즘 문제와 파시즘 문제, 그리고 감독 스스로의 코멘트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관련 기사나 블로그 포스팅은 유심히 살펴보았다.

'디 워'를 혹평하는 평론가들에게 옹호자들이 했던 말은, 이 영화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 가족들이 함께 즐겁게 보는 영화이니 그런 식의 비평은 하지 말라, 는 것이었다. 즉, 영화에는 즐기기 위한 영화와 예술로서의 영화가 있는데 '디 워'는 예술로서의 영화가 아니라 즐기기 위한 영화이므로 '예술로서의 비평'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심 감독이 열심히 만들었고 한국 영화로서 이 만한 CG를 갖춘 영화가 없으니 재미있고 뛰어나다, 는 비평(?)만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리꾼들이 진중권의 "'디 워' 비평할 가치 없다'는 발언에 발끈했다는 기사를 보고 조금 어이가 없어졌다. '100분 토론'을 보지는 않았지만, 진중권은 옹호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했을 뿐이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가 아니므로 그런 비평을 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을 뿐이다. 왜냐하면 진중권은 마케터가 아니라 미학자美學者이며 평론가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엔디
근대 이후의 사회도 근대 이전의 사회만큼이나 소수자가 억압된 사회이다. 여기서 근대가 시대를 가르는 기준이 되는 것은, 그 시기가 스스로를 '이성理性의 시기'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는 이성에 윗점을 찍으면서 그것이 중심이 되면 '인권'과 같은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고 믿는다. 꽁뜨 이후의 이성중심주의 혹은 과학주의는 '사실fait'을 중요시하게 되고, 필연적으로 '실증성'을 강조하게 된다.

그것은 역사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실증주의자들은 "역사가들이 도달한 결론은 자연과학자들이 도달한 결론과 마찬가지의 객관성을 지녀야 한다고 믿고 있"어 일종의 '과학적 역사관'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차하순, 62). 물론 학자가 사료를 접했을 때에는 '사료검증'을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상식에 속하는 것이고, 김영한 교수도 같은 글에서 "실증사학과 실증주의 사학과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하며 "우리나라에서 흔히 '실증사학'이라고 말할 때의 '실증'은 […] 사료와 문헌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라는 단순한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채택하는 입장이 '문서사료 중심주의'(우에노 찌즈꼬, 158; 앞으로 쪽수만 기입)인 만큼 '실증사학'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차하순, 61, 276-277).

그러나 실증주의가 붙잡고 있던 '사실'이라는 것이 실상은 유럽·백인·남성 위주로 편향된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글쓴이 자신이 말하고 있듯이 "역사란 항상 현재로부터의 '재심'의 대상"(우에노, 1)이므로 "일단 '정사(正史)'나 '정설(定說)'이 씌어졌다고 해도 그것으로 마무리되는 일은 없"(우에노, 2)다. 상대주의사관의 입장에서 보면 '원래 있던 그대로'의 역사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록이니 사료니 하는 것도 결국은 생기했던 사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기보다 […] 영상이나 관념을 정신 속에 가졌던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차하순, 127). 바로 이런 점에서 마이너리티의 역사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지점이 상대주의이다. 글쓴이 스스로도 "니힐리즘이라기 보다는 그렇기 때문에 소리 높이는 것을 단념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마이너리티의 권한을 위한 주장"(우에노, x)이라고 역설力說하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마이너리티는, 제목에서 나타내고 있는 바대로, '민족' 혹은 '여성'으로 환원되어버리는 '나'를 체험하는 사람들이다.

마이너리티의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했다. 글쓴이는 I장에서 '전후사의 패러다임 전환', '여성사의 패러다임 전환' 등이 절을 따로 마련해 '사학 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고찰했다. 또 II장에 와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패러다임들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그 안의 가부장적 요소들을 정밀하게 지적하는 작업을 해냈다. 그러나 이러한 패러다임들을 글쓴이가 살피면서 느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페미니즘은 역사상 국민 국가를 초월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우에노, vi)는 것이었다.

'국민 국가nation state'라는 개념은 역시 근대의 소산으로 '하나의 네이션nation'을 전제하고 있다. 민족이나 국민에 대한 관념은 절대로 마이너리티를 고려하지 않으므로 그 안에서 모든 마이너리티는 전체 속으로 귀속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는 본질적으로 가부장제와 그 패러다임을 같이 하고 있으므로 여성의 정체성은 더욱 억압된다. 가령, '위안부' 피해 여성의 개인청구권을 '국가'가 '남편이나 부친'의 역할을 하여 '가해자'와 합의했다는 것을 이유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우리는 국민 국가가 가부장제의 국가적인 확대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성'이야말로 근대=시민 사회=국민 국가가 만들어 낸 바로 그 '창작'이라고. '여성의 국민화', 즉 국민 국가에 '여성'으로 '참가'하는 것은 그것이 분리형이든 참가형이든 '여성≠시민'이라는 배리를 짊어진 채 국민 국가와 운명을 함께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우에노, 95)는 주장이나 "개인 청구권 논리는 국가가 개인(의 이해)을 대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국민 국가를 초월하는 성질을 갖는다. 따라서 피해 여성과 그 지원 그룹이 싸워야 할 상대는 동시에 한일 양국의 가부장제이기도 하다"(우에노, 108)는 글쓴이의 지적은 이에 대한 부연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글쓴이가 "근대·가부장제·국민 국가라는 틀 안에서 '남녀 평등'이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우에노, 94)다고 했을 때, 그는 이음동의어를 세 번 이야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민족'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개념이다. 르낭(64-79)은 민족 개념이 종족, 언어, 종교, 이익공동체, 지리의 어느 것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단언하며 조목조목 그 반례를 든다. 르낭은 민족을 만들어진 것이라고 단언한다(81).

저는 조금 전에 '고통을 함께하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함께하는 고통은 기쁨보다 훨씬 더 사람을 단결시킵니다. 민족적인 추억이라는 점에서 애도가 승리보다 낫습니다. 애도의 기억들은 의무를 부과하며, 고통의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민족은 이미 치러진 희생과 여전히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 희생의 욕구에 의해 구성된 거대한 결속입니다.

비록 르낭은 일단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긍정하고 이를 이용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 개념을 고찰하고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민족이라는 개념이 순간순간 변하는 의지와 관련되어 있음을 지적한 것은 뛰어난 의견이라 할 만하다.

강상중(160-163)도 민족과 에스니시티를 다루는 자리에서 "이들 '인민'의 형태가 지닌 공통점은 '과거의 기억'이라는 정체성"이라고 발언하고 곧 이를 발리바르의 '상상의 기억imaginary memory',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월러스틴의 '과거의 기억', 그리고 사이드의 '심상역사imaginative history'와 연관시킨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민족 혹은 국민의 개념이 게마인샤프트적인 모습을 지닌다는 것이다. 국민 국가는 의심할 수 없는 근대의 산물인데, 그 전제가 되는 네이션은 합리성을 강조하는 근대에 걸맞지 않게 게마인샤프트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근대가 지지하는 이성중심주의 혹은 과학중심주의가 얼마나 허구에 기초하고 있는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근거가 될 것이다.

모든 이데올로기는, 그것이 이데올로기인 한은 절대로 보편적일 수 없다. 민족 혹은 국민에 대한 이데올로기도 마찬가지로 절대로 보편적이지 않다. 이데올로기는 필연적으로 마이너리티를 억압하는 기제로서 작용한다. 임지현(79)은 한영우와 소설가 이인화의 민족주의가 "유신적 민족주의와 에토스를 같이함으로써 박정희의 민중 억압적 조국 근대화론에 대한 역사적 정당화에 기여하고 있다"며 민족주의 담론에서 '민중'이 배제되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중'이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에서 배제된 것이 아니라 '민족'이라는 개념 아래 복속되는 형태로 배제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근대화 시기에 서양인들이 조선 여성을 교육하는 것에 대한 조선 남성의 반발은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김진송(207)은 "「서양인의 조선여자교육방침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라」에서 오천석은 서양인이 조선여자를 교육하는 것에 대하여 '감사感謝의 염念과 수치羞恥의 염念'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고 적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가 "'민족의 치욕'이라는 가부장제 패러다임"(우에노, 103)으로 가장 먼저 해석된 것은 텍스트에도 제시된 것이지만, 서양인의 조선여성교육까지도 '수치의 염'을 느껴야 하는 가부장제의 패러다임은 근대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세계관을 주지는 않는다는 뼈저린 인식을 가능하게 해 준다. 물론, 이광수의 『무정』에서 여성해방의 중요한 일단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것도 결국은 "여성을 여성적인 것으로부터 거세시키면서 끈내 개화 사상의 이념 구현의 대행자로서만 장치시키려 들고 있는 것"이며, 역시 남성 입장에서 여성에게 교육을 '주는' 것이다(이재선, 229). 근대화 조선 남성들이 가졌던 이런 의식들은 민족 속에 여성을 귀속시키면서 동시에 혹은 귀속시킴으로써 여성을 배제했던 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여성은 '근대주의'를 거부해야 하고 그 소산인 국민 국가를 초월해야 하는 것이다. 글쓴이도 "페미니즘은 국가를 초월해야 하며, 초월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우에노, 93)다고 쓰고 있다. '페미니즘이 국민 국가를 초월해야 한다'는 명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두 국민 국가간의 패러다임이 모두 가부장제 패러다임의 변종이거나 최소한 가부장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던 점에서 명백해졌다. 문제는 '페미니즘이 국민국가를 초월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부분인데, 텍스트에서 우리는 희망적인 언설들을 많이 볼 수 있게 된다.

글쓴이는 "더 이상 누구도 "자매 연대의 전지구화Sisterhood is global"라는 낙천적 보편주의 입장에 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가진 상징성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페미니즘이 마이너리티로서의 여성에 대한 연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나 억압받는 자 모두를 대변하는 모습으로 확대될 수 있다면 '국민국가의 초월'은 더 이상 구호로서만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여성들은 그 일을 해내고 있다. WAW(Women Against War)는 최근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들』이라는 책을 냈다.(
링크:일다로ildaro) 그들은 "그동안 전쟁이나 평화, 국가에 대한 이야기들은 언제나 남성의 것이었다. 여성과 소수자의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목소리들은 없었던 것으로 여겨지거나, 흩어져 버렸다."며 여성의 눈으로 전쟁을 바라보는 것의 중요함을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여성'과 '소수자'가 혼용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에코페미니즘은 생태적인 것에 대한 여성적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나희덕(56)은 "생태적 지향을 지닌 시들조차 계몽적 한계로부터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 가운데서도 "근대적 의식의 견고한 외피를 뚫고 내려가 자신의 무의식 속에서 새로운 현실을 발굴해낸 여성시인들의 활동은 그 한계를 넘어설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할 만하다"며 에코페미니즘과 관련해 여성생태시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더구나 "'여성'의 해체"를 주장하는 페미니즘은 그 자체로 "'남성'의 해체와도 같은 것이다."(우에노, 96) 왜냐하면 "'위안부' 문제가 여성의 '인권 침해'라는 언설로 구성된다고 한다면 '병사'로서 국가를 위해 살인자가 된 것 또한 남성의 '인권 침해'라고 입론하는 것도 가능"(우에노, 207)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의 궁극적인 목적은 다만 '남녀동권주의'가 아니라 '나'의 해방이다. 나를 구성하는 것은 "'국민'도 아니고 '개인'도 아니다. '나'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젠더나 국적, 직업, 지위, 인종, 문화, 에스니시티 등 각양 각색으로 존재하는 관계성의 집합이다. '나'는 그 어느 것도 피할 수 없지만 그 어느 하나만으로도 환원되지 않는다."(우에노, 205)

글쓴이는 I장과 II장에서 2차 대전 당시의 일본내 페미니즘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국민 국가와 젠더를 분석하였다. 그리고 III장에 이르러 ''기억'의 정치학'을 주장하면서 실증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과 상대화를 시도하였다. 하지만 글쓴이도 인식하고 있듯이 상대주의는 늘 니힐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모든 역사가 진실일 수 있다면 모든 역사가 허구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다면 다수자의 입장이 항상 더 힘이 셀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이 책에서 III장은 가장 큰 공헌이기도 하고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다.

역사적 상대주의만 가지고는 다수자의 입장이 더 셀 수밖에 없다면, 페미니즘은 "정사(正史)라는 이름의 남성사"(우에노, 185)를 오히려 뒤집어엎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뒤집어엎는다'고 할 때의 근거는 또다시 모호하다. 이성과 합리성으로 그것이 성공할 수 있을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그것은 결국 또다시 근대에의 종속일 수밖에 없다. 국민 국가 안에서의 페미니즘이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 이 책 I장의 진단은 정확하지만, 이 책 이후에도 페미니즘은 여전히 딜레마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참고문헌

1. 단행본
강상중. 1997.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이경덕·임성모 옮김. 서울:이산.
김진송. 1999.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 서울:현실문화연구.
르낭, 에르네스트. 2002. 『민족이란 무엇인가』, 신행선 옮김. 서울:책세상.
이재선. 2000. 『한국소설사―근.현대편I』. 서울:민음사.
임지현. 1999.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서울:소나무.
차하순 엮음. 1980. 『史觀이란 무엇인가』. 증보판. 서울:청람.

2. 연속간행물
나희덕. 2000. 「생태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그리고 시」, 『창작과 비평』 110호.

3. Referenced Web Site
일다로



내셔널리즘과 젠더
우에노 치즈코 지음 | 이선이 옮김/박종철출판사

Posted by 엔디
1.

인위적인 10진법의 수를 가지고 시대를 구분하는 일이란 항상 무리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일년year과 십년decade과 백년century이라는 단위가 실제 사람들의 시간 인식에 보편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으므로 10진법을 기준으로 한 시대 구분도 타당한 면을 지니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버릇삼아 '여성의 시대'라 일컬어지는 21세기가 왔다.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다.'라는 명제를 기준으로 20세기(와 그 이전 시대)를 바라보면 20세기(와 그 이전 시대)는 '남성의 시대'가 된다. 오랜 기간 동안 남성 우월주의(혹은 남성 중심주의)의 한 형태인 가부장제에 여성은 눌려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세기에 들어오면서 페미니즘의 노력으로 가부장제라는 옳지 못한, 억압적인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시도되었다.

한편, 20세기는 남성의 시대이면서 동시에 '국민 국가'의 시대였다. '제 2차 세계대전'으로 극명하게 나타나듯이 내셔널리즘이 활개를 치는 시대였던 것이다. 제국주의 열강(동맹국)과 연합국, 그리고 피해국 또는 식민지국가로 나뉘어지는 국민 국가의 시대에 내셔널리즘이라는 이데올로기는 국가와 개인의 방향을 한 길로 잡아버렸다.

그렇다면 기존의 억압적인 상태와 내셔널리즘의 관계를 알아보고 이것을 '젠더'와 연관시켜 살펴보는 시각이 생기는 것은 '여성학' 또는 '여성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당연한 일일 것이다. 국민 국가의 성립과 그에 따른 '국민화 프로젝트'에서 보여지는 내셔널리즘과 '젠더'로 일컬어지는 페미니즘의 입장이 그간 어떻게 협력되는지 혹은 갈라졌는지.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문제점을 가지는지. 또 그것이 현재에 이르러 갖는 의미는 무엇이며 현재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 문제들은 현재의 페미니즘 담론에서 중심에 위치하는 문제들일 것이다. 더욱이 2차 대전과 '젠더'를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문제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지어 20세기의 페미니즘과 내셔널리즘을 고찰하는 것은 현 상황에서 필수적인 문제라고도 보여진다.

2.

우에노 찌즈꼬 『내셔널리즘과 젠더』는 이와 같은 입장 속에서 '젠더사'라고 불리는 '역사 재해석historical revision'에 성공하고 있다. 저자는 먼저 일본 페미니즘사를 고찰하였다. 일찍이 서양문물을 들여온 일본에서는 페미니즘의 역사도 길었다(우에노 찌즈꼬 1999, 4). 하지만 근대 일본의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을 정리해보고 고찰해본 결과 '유감'스러울 정도로 참담한 결론이 내려졌다. 그것은 "일본의 페미니즘은 역사상 국민 국가를 초월한 적이 없었다"라는 것이다(우에노 찌즈꼬 1999, vi). 아마도 그 사실은 근대 일본의 위치와 관련되어 있을 듯 싶다. 일본은 당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이기고 "신세기를 구미 열강과 어깨를 겨룰 동양의 유일한 신흥국"으로서의 흥분과 열광에 싸여 있었다(백영서 1999, 8). 그러한 분위기가 일본과 일본인을 내셔널리즘에로 과도하게 기울게 하였고 페미니스트들도 결국 이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의 내셔널리즘이라는 것은 최근에 와서 '역사의 재심'이 이루어지면서 조망받게 된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의 전쟁협력이 최근 '텍스트 다시 읽기'를 통해 속속 발견되고 있다. 이치카와 후사에, 히라츠카 라이쵸, 다카무레 이츠에 등 일본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일본부인단체연맹'을 통해 전쟁에 협력하거나 '우생優生 사상'에 기초한 글이나 이나 '천황 찬미 문장'을 쓰면서 사상가로서 전쟁에 협력하였던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러한 페미니스트들의 궤적은 크게 '참가형integration'과 '분리형segregation'으로 나뉘어지는데, 그 둘 모두가 내셔널리즘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설정된 것이기 때문에 결국 진정한 의미의 여성 해방과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갖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분리형'은 동맹국들이 취했던 방식으로 '젠더'를 중심으로 총력전 체제하에서도 남녀의 역할분담을 무너뜨리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남성과 여성으로 국민 국가에서의 젠더 경계를 명확하게 함으로써 여성을 국민 국가의 '2류 시민'으로 묶어두게 된다. 즉, "'국가를 위해 죽을 수 있는 명예를 가진 사람'과 '국가를 위해 죽을 수 있는 명예를 갖지 못한 사람'으로 나뉘어, 전자만이 '국민' 자격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일본의 경우 여성 위생병이나 정신대를 통한 여성의 '봉사 기회'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후방 지원 등의 보조 업무를 위한 것이었다. 페미니스트들 중에서도 '차이파'는 '차이 있는 평등 different but equal'이라는 수사에서 보여지는 바대로 '분리형'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가형'은 연합국에서 적극적으로 채용했고 여성 또한 이에 응했다. '참가형'은 여성 징병이라는 특정한 제도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여성이 전투에 참가함으로써 '국가를 위해 죽을 수 없는 2류 시민'에서 '국가를 위해 죽을 수 있는 명예를 가진 진정한 국민'으로 위치를 바꾸려는 시도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전투에 참가하는 것으로 전시 중의 젠더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이것이 옳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참가형'의 한계는 분명하다. '남성과 동등하게'를 표방하는 '참가형' 입장에서는 기존의 남성 권력적인 억압형태에 편입되는 것으로 '1급 시민'이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저자에 따르면, 그렇게 된다 해도 스스로의 '여성성'의 상실이라는 크나큰 손해를 입게 되므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여성해방'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바로 여기서 '참가형'과 '분리형'의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는 페미니즘의 딜레마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 딜레마가 생겨나게 되는 원인을 저자는 내셔널리즘으로 보고 있다. 국민 국가라는 틀 속에서의 여성해방이라는 개념은 필연적으로 '국가에 참가함' 통해 '국가에 통합'되어버린 일본 페미니즘 역사의 전철을 밟게 될 뿐이다.

저자는 "그러므로 페미니즘의 목적은 '국민 국가의 초월'"이라고 보고 있다. 그것은 "'근대·가부장제·국민국가'라는 틀 속에서는 '남녀 평등'이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다 궁극적인 목적은 '여성'의 해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젠더' 경계를 허무는 것을 뜻하므로 '남성'의 해체와도 같은 뜻이 된다.

그러한 일본의 페미니즘 역사와 관련하여 가장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은 바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이다. 기존에 '위안부'는 범죄로 인식되지 않았거나 '젠더' 개념을 빼고 '민족' 개념만을 적용한 범죄로 인식되었다. 그러한 인식이 나타나게 된 배경에는 '가부장제' 아래의 한일 내셔널리즘이 관계하고 있다. 또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패러다임들이 제시되어 '위안부' 문제를 왜곡시키거나 축소시켰다.

대표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민족의 치욕'이라고 인식하는 '가부장제 패러다임'이 있다. 이 패러다임은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인식하여 '위안부' 여성들을 일본의 '전리품'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다. 이런 패러다임 하에서 한국 남성들은 '위안부' 문제를 '창피한 과거'로 인식하여 '위안부' 여성들이 과거의 사실을 말하는 것에 대해서 '민족적 자존심이 상처받는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 반대하는 경향조차 있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가부장제 패러다임'의 전형적인 모습이며 그 자체로 '위안부'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또하나의 성폭력이라 할 수 있다. 또, 이 패러다임 하에서는 '위안부' 여성들의 개인보상조차도 불가능하게 된다. 일본 정부가 "1965년 한일 조약으로 보상이 모두 해결되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의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스스로에게 속한다는 주체성이 인지됨에 따라 '가부장제 패러다임'의 모순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 밖에도 '위안부' 문제를 "우발적이고 비조직적인 '전시 강간'"으로 파악한 '전시 강간 패러다임', '강제 징용' 여부와 '위안부' 여성들의 '금전 수수'에만 초점을 두고 이를 '매매춘賣買春'으로 왜곡시킨 '매춘 패러다임', '매춘 패러다임'에 대항하려다 피해자의 '임의성'을 부인하는 딜레마에 빠진 '성 노예제 패러다임' 등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패러다임도 '위안부' 문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집어내지는 못하였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위안부'가 일본군에 '봉사'하였다고 인식하기도 하였다.

저자는 "그렇다면 이 '위안부' 문제의 '진실'은 무엇인가"를 묻고 그에 답하기를

단지 하나의 '정사(正史)'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역사 속의 소수자, 약자, 억압당한 자, 버림받은 자들……. 그것이 단 한 사람일지라도 '또 하나의 역사'는 씌어질 수 있다.

라고 말한다. 즉, '진실'이라고 여겼던 '위안부'를 보는 기존의 시각들에는 일정부분 모순이 있음이 여기서 밝혀졌다는 것이고, 이제 '위안부' 여성들의 증언에 따라 새롭게 씌어지는 '역사'가 등장할 차례라는 것이다. 이 부분이야말로 역사의 '재심'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여성사에 대해 기술할 때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젠더'이다. 어떤 사람은 '여성사'가 지나치게 '편향적'이라는 지적을 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현재까지의 역사 기술은 모두 남성 중심적으로 '젠더화'된 시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모든 역사는 '편향적'이고 '정치적'이다."라는 명제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얼핏 보기에 '정사'란 '젠더 중립적'인 역사를 이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남성 중심성이 있다. 그러나, 여성사의 패러다임 전환 이후 여성이 '역사의 주체'로 인식되면서 여성의 '가해 책임'이 문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가해자 사관' 조차도 국민 국가를 초월하지 못하여 매저키즘으로 끝나버리게 될 수도 있다.

저자는 이런 의미에서 "내셔널리즘은 극복되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너무 쉽게 개인과 국민 국가를 동일시하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것은 '순수한 감상'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그보다는 '다른 회로'를 발견해야할 필요가 있다. 개인과 국가의 동일시란 내셔널리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우리"라는 개념은 하나의 억압 구조로 작용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지속해서 페미니즘의 국민 국가 초월을 주장해온 저자는 마지막으로 "페미니즘은 근대의 산물이 아니라 근대를 물어 찢고 나온 '근대의 이단아'이므로 '일국 페미니즘'을 지양하고 국가를 초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자매 연대의 전지구화 Sisterhood is global'이라는 낙천적 보편주의는 비현실적인 것이지만 "내"가 집단과 대비해 갖고 있는 수많은 "차이"에 대한 생각을 통해 '여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것처럼 '국민'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나"를 인식하는 것이 스스로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며 적어도 그런 인식이 보편화되어가는 것이 약자 또는 소수의 입장에 서는 페미니즘의 입장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3.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한 저자의 논의의 방식은 시의적절하고도 명쾌하다. 그러한 논의의 중심에는 '젠더' 개념과 '내셔널리즘'이 위치하고 있다. 그간 지속적으로 '젠더 중립성의 신화'를 깨기도 하고 '내셔널리즘'을 집요하게 비판해온 저자의 입장이 전체를 관통하고 있어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돋보인다.

그러한 논의방식으로 저자는 일본군 '위안부'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모든 패러다임을 다양한 논리로 비판하는가 하면, 그런 패러다임에 반대하여 나온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도 '가부장제'의 요소를 찾아 비판하고 있다. 그러한 비판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실천성이다. 저자가 "여성학은 이론 그 자체가 실천"이라는 말을 하고 있기도 하지만, 저자의 논조는 더더욱 실천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것은 그가 "'위안부' 문제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일"이라고 하는 데서도 충분히 짐작해 낼 수 있는 내용이다. 역사학자가 아닌 사회학자로서의 저자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방법론상에서 보여지는 저자의 역사관은 "상대주의" 사관이라고 보여진다. 소위 '역사적 진실'이라는 것이 절대성을 가지지 않고 '역사의 재심'을 통해 상대화될 수 있다는 시각은 적어도 '위안부'와 관련하여 알려진 '진실'에 관해서는 적절한 대응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오럴 히스토리'가 '문헌 자료'보다 열등한 종류의 자료가 아니라는 것을 조목조목 반증함으로서 '위안부' 여성들의 '증언'에 무게를 실어준 점도 저자의 공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내셔널리즘에 대한 비판에서도 저자의 뛰어난 인식은 잘 드러난다. 극단적으로는, 흔히 말하는 집단주의의 일종이라고도 볼 수 있는 내셔널리즘에 대한 고찰을 통해 저자는 내셔널리즘 그 자체야말로 여성을 포함한 약자나 소수집단의 인권을 침해할 공산이 크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흔히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로 번역되는 내셔널리즘은 "나"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우선 순위에 놓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말은 "우리"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으며 "우리"라는 말 속에는 필연적으로 다수집단 중심의 세계인식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거대담론 앞에서 "나"의 인권은 온전히 살아남지 못한다(정현백 2000, 100). 이러한 입장은 이미 사회주의 페미니즘에서의 "여성 문제가 계급 문제에 종속된다"는 주장에서 익히 경험했던 여성 문제에 대한 경시이다(한국여성연구소 1999, 41-44). 저자는 어떠한 종류의 억압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여성학자이면서 끊임없이 마이너리티에 관심하는 저자의 방향성이 잘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다.

4.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내셔널리즘과 젠더』는 아주 민감한 사안을 다루고 있다. '위안부' 문제가 관련된다면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듯이 '역사의 재심'이 그 첫 번째 문제라 할 수 있다. 저자의 집요한 논증과 근거 제시에 "정사(正史)"가 상대화되었다. 그러면서 "어떠한 마이너리티도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유(類)의 말을 저자는 하고 있다. 상대주의란 소수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아주 필요한 것이고 인권적인 것이라 할 만하지만, 지나친 상대주의는 어떤 면에서 비인권적인 부분까지도 인정하는 오점을 남길 수 있다. 즉, 현재까지 정사(正史)라고 믿어져 왔던 것들이 상대화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 자리에 '새로운, 마이너리티를 위한 역사'가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동시에 기존의 '정사(正史)'까지도 부정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 진실'이 상대화될 수 있다는 명제 하나에만 지나치게 이끌려 '역사 재심' 그 자체에만 경도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 상대주의는 니힐리즘으로 빠질 수 있는 위험한 사상이기도 하다. '어떠한 역사도 옳을 수 있다'는 명제는 결국 '어떠한 역사도 옳지 못할 수 있다'는 명제로 환원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는 「서문」에서 이에 대해 "니힐리즘이라기보다는 그렇기 때문에 소리 높이는 것을 단념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마이너리티의 권한을 위한 주장이었습니다."라고 나름의 변명을 내세우고는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더 심각하다. '소리 높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결국 소수집단이나 약자보다는 다수집단이나 강자의 논리(소리)가 더 잘(크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본의 아니게, 기존 체제의 유지를 돕는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저자는 제국주의의 내셔널리즘은 물론, 피해국(한국)의 '대항 내셔널리즘'조차도 비판하고 있는데, 저자 나름대로는 "내셔널리즘이란 '이룰 수 없는 약속'으로 마이너리티를 동원하기 위한 상징"이므로 '대항 내셔널리즘' 내에서도 여성이란 마이너리티에 지나지 않는다는 저자의 인식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민족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당위적으로 그것보다 우위에 있어야 할 민주주의나 약소집단의 인권 등이 과소평가될 위험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동아시아에 있어서는 '민족 문화'라는 이름으로 가부장제와 봉건적 유제를 포함한 지난한 과거의 인습들이 재현되거나 강화될 수도 있다(정현백 2000, 100-101). 하지만 "민족"이 가진 힘의 효과라는 것도 또한 엄청나다는 것이 20세기를 통하여 밝혀진 것도 무시 못할 사실이다. 그 가장 큰 예로 동서 독일의 통일을 들 수 있다. 그들이 통합의 즈음에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다 Wir sind ein Volk'라는 구호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저자도 들고 있는 예이지만, 그만큼 민족이라는 개념이 할 수 있는 일은 엄청나다는 것이다. 또, 공통의 언어·문화·경험·상징·역사 등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사회적 의사소통 능력을 보더라도 저자의 탈민족주의는 민족주의의 폭발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강만길 외 2000, 53-57). 민족주의의 폭발력이 엄청나다면 민족의 그 폭발력의 방향을 바꾸어 여성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이 지나친 희망적 언설이라고는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5.

마이너리티는 어느 집단에서고 있게 마련이다. 수천 수백 년간 역사의 마이너리티가 바로 '여성'임을 생각할 때 저자가 노력하고 있는 젠더사에 대한 의의는 분명하다. 성의 구별없이 전 정사(正史)를 '젠더화'하려는 노력이 결실을 맺어 그간의 역사란 모두 남성사였다는 것이 밝혀진 참이다. 역사적으로 보이는 '젠더 중립성의 신화'가 깨어진 것이다. 또, 20세기 근대 내셔널리즘 하에서의 마이너리티이기도 한 '여성'의 입장에서는 '내셔널리즘을 젠더화Engendering nationalism'하는 입장을 취하여 근대 국민 국가에서의 '젠더 중립성의 신화'를 격파하였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그 중에서도 역사의 끊임없는 현재성을 강조하였던 점은 무엇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21세기를 살아갈 여성이 고민해야 할 가장 큰 부분이 바로 '내셔널리즘'과 '젠더'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 책의 의의는 새삼스럽게 다가올 것이다.


참고서적

우에노 찌즈꼬. 1999. 『내셔널리즘과 젠더』. 이선이 옮김. 박종철 출판사.

강만길 외. 2000. 「좌담: 통일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창작과비평』 2000년 가을호.
백영서. 1999. 「20세기형 동아시아 문명과 국민국가를 넘어서 - 한민족 공동체의 선택」. 『창작과비평』 1999년 겨울호.
정현백. 2000. 「통일운동과 여성주의」. 『창작과비평』 2000년 가을호.
한국여성연구소. 1999. 『새 여성학 강의』. 동녘.



내셔널리즘과 젠더
우에노 치즈코 지음 | 이선이 옮김/박종철출판사

Posted by 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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