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이 싫어요' 기사는 가필한 것"

이승복이 공산당에게 죽으면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했느냐 안 했느냐 하는 진위 여부가 지금까지도 논의 대상인가보다. 최근 대법원 확정 판결이 있었고, 조선일보는 신이 나서 판결문을 실었다. 일부 언론은 또한 이승복 사건이 날조 내지는 가필된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국가적으로 유명해진 사건이기 때문에, 이를 제목으로 뽑으면 독자들의 이목이 집중될 것이라는 예측도 이 사건을 지속적으로 이슈화시키는 데 한몫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승복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는지 외치지 않았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우리가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날조된 것이라면, 조선일보가 지탄받아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좀더 깊이 생각하면, 그 책임이 조선일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기사가 인기를 끌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사회는 이미 정상적인 사회가 아닌 것이다. 국가라는 시스템이, 아니 그보다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가 한 어린이의 생명보다 중요하다는 암묵적 동의가 국가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반공을 기치로 내세운 당시 독재 정권은 이를 통해 효과적으로 시민들을 '국민'들로 만들 수 있었다. 이는 일종의 반공 의식화 교육이다. 신문과 방송의 통제를 통한 간접 교육 말이다. 이와 더불어, 각급 학교에서는 '이승복 어린이'를 기념하는 웅변 대회, 독후감 대회, 포스터 그리기 대회 등을 지속적으로 개최했으니, 이는 보다 직접적인 교육이라 할 만하다.

그럼, 이승복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정말 외쳤다면 우리가 다르게 생각할수 있을까? 과연한 어린이가 죽음을 앞두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이데올로기적 발언을 하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일까?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린이들까지 반공 이데올로기로 철저히 무장된 사회는 결코 개인을 존중하는 사회가 아니며,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는 결코 민주주의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이데올로기로 똘똘 뭉친 전체주의 사상을 어린이에게까지 주입하는 사회에서만 어린이가 그런 이데올로기적 외침을 내뱉을 수 있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 북한에서도 자아 비판할 때 빠지지 않는 항목이 '개인주의'와 '소부르주아적 근성'이라고 한다. 남북이 어쩌면 이렇게 똑같이 전체주의적인가. (그 이유는 20세기 냉전은 일종의 총력전total war이었고, 그 가장 직접적인 대치가 이루어진 곳이 한반도였다는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간과하기 쉬운 것은, 그들이 줄기차게 경고해 온 '공비'가 내려와 어린이를 비롯한 가족을 모두 몰살시킬 동안, 군과 경찰은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알려진 이승복 사건이 진실이라면, 그 책임은 일차적으로 잘못된 교육에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경에게도 있다. 음모론적으로 사고한다면,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사실을 은폐하거나 적어도 그쪽에 주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이승복을 영웅으로 만들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것 역시 음모론 자체의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아무도 그 사건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조선일보에서는 보도된 사건이 진실 그대로라고 주장한다. (소송까지 거쳤다.) 그것이 단지 언론으로서 '진실'을 그대로 전달한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직업윤리상 당연한 항변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해당 사안에 대해 때로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볼 때, 조선일보가 단지 객관적인 사실 전달만을 위해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조선일보는,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좌경화' 되어가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해당 사안을 다시 이슈화시키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바라는 세상이 한 어린이가 죽음을 앞두고 이데올로기적 발언을 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나는 그 조선일보라는 언론을 더이상 신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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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요정’ 김연아 어쩌나

김연아 '올인'에 대해서 우려했던 사태가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 나는 황우석 사건과 비교하여 김연아 올인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했었는데(링크), 그때만 해도 '그럴 우려가 있으니 조심하자' 정도였지 정말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선택과 집중'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 비근한 주식 투자만 해도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금언인데도, 다른 부분에서는 흔히 무시된다.

김연아 선수에 대한 '올인'은 그런 '대박 기대 투자'와는 또다른 해묵은 문제 하나를 더 갖고 있으니: 이는 스타 만들기다. 전체주의가 강한 국가일수록 스타 만들기에 전념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모쪼록 김 선수의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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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올인’…딴 요정은 어쩌나 : 스포츠일반 : 스포츠 : 뉴스 : 한겨레

빙상연맹이 김연아 선수에 대해 '무한 지원'을 약속하면서, 다른 선수들에게는 지원금을 전혀 지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스포츠에서도 '선택과 집중'은 중요하다. 아마추어가 아닌 바에는 소질이 있는 선수를 집중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여기서 '형평성'이나 평등이라는 가치를 들고나올 생각은 없다. 다만 나는 '경험'에 대해서 한 마디 하려고 하는 것이다.

국가 대표 선수 한 사람에게 지원금 '올인'이라. 가만,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연전에 우리는 '국가 과학자'라는 명목으로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에게 어마어마한 연구비가 지급되었으며 앞으로도 지급될 것이라는 소리를 매일 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황 전 교수가 뭔가 큰일을 해낼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도대체 황 전 교수의 그 큰일이 자신과 무슨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러나 황 전 교수의 실험은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것임이 드러났고, 자신들이 '국민'이라고 믿는 시민들은 당혹해했으며, 그 사이에서 기자들만 취재열을 올렸다.

나는 김연아 선수가 황우석 전 교수처럼 '사기'를 쳤다거나, (그런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앞으로 갑자기 다쳐서 선수 생활이 어려워지거나, 갑자기 결혼을 발표하고 선수 생활을 접는다거나 할 것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결혼을 했다고 선수 생활을 접는 것은 더더구나 옳지 않은 선택이다.) 다만 나는 '경험'에 대해 한 마디 하려고 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이미 황 전 교수와 관련된 '진실'을 들은 탓에 과학에 대한 무기력증을 경험하고 있다. 그 무기력증은 지금 이미 도를 넘어서 "그래도 황우석이 대단했는데." 내지는 "그래도 국가를 위해서는 황우석 다 용서하고 재기용해서 투자해야 하는데." 따위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로서는 황 전 교수가 최선이라는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황 전 교수가 최고인 이유는 수년간 나라에서 대는 과학 연구 지원금이 황우석 전 교수에게 '올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과학 유망주'들은 설 자리가 없었다.

게다가 국가 연구비 지원 당시는 현실적으로 황우석 전 교수의 연구가 상당한 의학적 실용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되므로, 국내외 대기업에서 상당한 수준의 지원을 이끌어내기도 쉬운 상황이었다. 또, 그 인도주의적 유용성 덕분에 상당한 기부금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의 지원금은 늘어만 갔으니, 아무리 '선택과 집중'이라고 해도 그 정도가 지나쳤던 것이다. 그건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단편적인 지원이자, 대표적인 전시 행정일 뿐이다.

내가 염려하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는 자주 '전시 행정'을 경험한다. 김연아 선수 정도면 스폰서를 구하기도 어렵지 않을 것인데, 김 선수에게만 '올인' 투자한다며 이는 예산 낭비이자 전시 행정이 아닐까? 만약 김 선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빙상 연맹의 '올인' 투자는 '오링'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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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이니 콤플렉스니 하는 말이 화제다. 그 말만큼 폭력적인 말이 없다. 김현 선생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지금의 독서 대중에게 폭력이 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적이 있다. 어쨌든 한 번 '열등감'이나 '콤플렉스'로 낙인찍히면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그게 평생 아니면 영원히 간다.

정신분석 전문가도 아니고, 주치의도 아닌데, 본인도 모르는 콤플렉스를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잘 집어내는 것일까. 이 열등감론이나 콤플렉스론의 무서운 점은, 상대가 반발하면 반발할수록 꼭 신빙성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필승의 법칙이다. 그러나 그 논지는 대개의 경우 과학적이지 못하다.

상당한 사람들이 당나라 황제가 선덕(여)왕¹에게 모란꽃 그림과 꽃씨를 보냈다고 알고 있다. 선덕왕은 대뜸 그 꽃에 향기가 없을 것이라 예언하고, 그것은 당나라 황제가 짝이 없다고 자신을 비웃는 것이라고 했다는 일화이다. 이것은 삼국유사에서 비롯한다. 하지만, 삼국사기를 보면 당나라가 신라에 모란꽃 그림과 꽃씨를 보낸 것은 전왕인 진평왕 때다(前王時 得自唐來牡丹花圖幷花子).²

*¹ 삼국사기에는 다만 선덕왕善德王이라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² 물론, 이는 지은이들의 잘잘못은 아니다. 김부식은 역사 서술에 철저했을 뿐이고, 일연 스님도 설화에 충실했을 뿐이다. 둘의 생각은 각기 이와 달랐다. 김부식은 선덕왕편 마지막의 논평論을 통해 "신라는 여자를 도와 세워 왕위에 두었으니新羅扶起女子 處之王位 […]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國之不亡幸也"라고 한 반면, 일연 스님은 선덕왕이 세 가지를 예견한 것을 중요한 기사로 다루고 있다.

삼국유사가 본래 설화들을 수집해서 엮고 쓴 책이라는 점을 기억해본다면 역사 기록으로서는 삼국사기가 더 신빙성이 있다. 선덕왕에게 열등감이 있을 것이라는 건 당대의 혹은 후세의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선덕왕은 있지도 않은 콤플렉스를 가진 불우한 왕이 되고 만 것이다.

거칠게 말한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일인데도, 남의 속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곡된 것은 말의 '진의'가 아니라 먼저 지레짐작하는 속셈이다. 그리고 그 속셈은 우월감에서 나온다. 말씀 단속 생각 단속 잘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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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사회
국민국가는 항상 '보통인'을 지향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이용한다.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인 박세호 씨가 "전 군대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는 여러분은 축복받은 것입니다. 국방의 의무는 곧 축복입니다."라고 말한 건 그런 의미에서 국민국가의 농간이다.


과거 일본이 '대일본제국'을 칭할 때, 일본부인회가 여성 참전을 놓고 둘로 갈라져 싸운 일이 있다. 군대를 갈 수 없는, 따라서 국가를 지킬 수 없는 여성들은 항상 남성보다 못한 2등 국민으로 머물러야 했던 사정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아니, 거기까지 갈 일도 없다. 군가산점제의 위헌성을 알린 여성들을 남성들이 '이화 5적'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하고, 자신들이 군대에서 겪은 고난을 가지고 유세하는 장면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여전히 2등 국민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군대와 2등 국민은 한국인에게 특별한 아픔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춘원과 미당으로 대표되는 일제부역日帝扶役¹ 문인들이 무엇보다도 대동아 전쟁과 태평양 전쟁에의 참전을 종용했다는 점에서다. 특히 춘원은 모든 조선인들이 일제에 협력하고 일본 덴노우天皇에 충성하게 되면 진정한 의미에서 내선일체內鮮一體가 될 것으로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랬더라도 조선인은 일본 제국주의가 유지되는 한 2등 국민이었을 것이다.

(*¹ 흔히 '친일親日'이라고 쓰는 뜻으로 쓴 말이다. '친한파'나 '지한파'라는 용어가 한국인의 것이듯이 '친일'은 일본의 입장을 대변한 용어라는 주장이 있다. '반민족反民族'이라고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너무 짙은 민족주의적 성격 때문에 쓰기가 망설여진다. '일제부역'은 민족주의적 용어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비교적 객관적인 용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한편,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부시 대통령이 테러의 배후를 찾는다는 미명하에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할 살상을 준비하는 동안, 테러 현장에서는 흑인 합창단이 '별을 뿌려놓은 깃발The Star-spangled Banner'이라는 미국 국가를 불렀다. 오랜 인종 갈등이 국가의 '공적公敵'이 나타나자 시침질假縫된 것이다.

박세호 씨의 착각도 그와 같은 차원이다. 국방의 의무는 축복이 아니다. 박세호 씨가 그렇게 느낀다는 건, 그가 당한 차별이 2등 국민으로서의 차별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그가 차별을 당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 때문이지 군대를 갔다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원인을 잘못 판단한 것이다.

국방의 의미는 결코 축복²이 아니다. 그것은 적어도 다섯 가지 측면에서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² 축복祝福은 그 한자를 뜯어보면 알 수 있듯이 '복을 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는 '축복'이 아니라 '복'이다. 마찬가지로 "신이시여, 우리를 축복하소서"처럼도 본래 쓸 수 없다. 신은 복을 주는 주체이지, 다른 누군가에게 복을 비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은 기독교 용어로 '하나님이 복을 내림'이라는 뜻을 수용하고 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잘못 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추측컨대 이런 오류는 영어의 bless를 일률적으로 축복으로 번역하는 데서 온 것이 아닐까 싶다.)

먼저 국방의 의무가 복이라는 인식은, 국방의 의무가 보편적일 것이라는 잘못된 전제를 깔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일본 부인회가 2등 국민에서 1등 국민으로 '신분 상승'하기 위해 참전을 고심했지만, 징병제가 없는 지금의 일본인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1등 국민, 아니 그냥 국민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징병제는 특수한 상황과 특수한 정책이 만든 여러 국방 정책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결코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유럽의 예를 들자면, 유럽에서 징병제가 의무인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달리 말하면, 징병제는 국민을 1등과 2등으로 나누는 옳지 못한 제도라는 함의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법 앞에 평등해야 할 국민을 남성/여성, 비장애인/장애인의 구도로 나누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단순한 차이를 넘어선 차별이다. 장애인에 국한시켜 말하자면, 이같은 주장은 오히려 장애인 차별의 첨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 장애인/비장애인 차별을 고착화시킬 수 있다.

둘째로 "국방의 의무는 복"이라는 말 속에는 이미 근거 없는 은유법이 방치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이미 명제가 아닌 것이다. 어떤 말이 옳거나 틀리려면, 그 말이 참/거짓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다시 말해 명제여야 하는데 "국방의 의무는 복"이라는 말은 거기서부터 이미 틀어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은유가 제국주의자나 국가사회주의자에 의해 오용되기 쉽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셋째로 "국방의 의무는 복"이라는 주장은 과도한 국가중심주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국가는 실체實體가 아니다. 국가는, 말하자면 우리의 믿음과 지지로 탄생한 시뮐라시옹smulation이다. 그러므로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지를 먼저 생각하라"는 케네디의 주문은 당찮은 말nonsense이다. 국가라는 허상虛像의 시스템이 개인이라는 실체를 압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넷째로 "국방의 의무는 복"이라는 말이 단지 '징병제'에 대한 예찬으로만 쓰인다는 문맥도 문제다. 사실 세금을 성실하게 내는 여성은 이미 국방의 의무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상 국방의 의무는 모든 국민이 지는 것이고, 국방의 의무 가운데 하나인 병역의 의무를 남성이 이행하고 있는 것인데 이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다섯째로 "국방의 의무는 복"이라는 주장은 "국방의 의무"를 다른 의무와 구별하고 신성시하게 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국가 전체를 두고 볼 때 80여만명에 달하는 군인이 있는 나라에서 징집 거부자, 집총 거부자, 병역 기피자는 극소수다. 반면, 대기업부터 영세 자영업자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탈세했거나 탈세의 혐의가 있는데도 "납세의 의무는 복"이라는 주장은 없다. 국방의 의무는 한국 국민의 4대 의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물론 이같은 발언은 박세호 씨의 잘못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그도 국가와 징병제, 그리고 이를 신성시하게 만드는 '국민교육헌장'의 희생자다. 그것을 감안하고 그의 말을 솜솜 뜯어보면 누구나 알고 있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국방의 의무는 복"이라는 그의 발언은 국방의 의무는 복이 아니라는 것을 방증한다. 완전히 단합된 집단에서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가 굳이 없어도 되는 이치와 같다. 박세호 씨의 의식 속에서 아니면 무의식 속에서, '국방의 의무'는 달갑지 않은 것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받을 수 있는 그 반대급부(차별 없음)가 끌렸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장애인이 국방의 의무를 찬양하면 차별받던 장애인이 1등 국민으로 '신분상승'할 수 있다는 해묵은 착각을 반복한 것은 아닐까? 둘 중 어느 것이어도, 둘 다이어도, 혹은 둘 다 아니어도 그 궁극적 원인은 하나다: 한국 사회가 장애인을 너무 차별하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징병제는 폐기되어야 마땅할 제도다. 징병제는 차별을 고착화시키거나 차별을 조장하는 제도가 되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국민국가 자체가 이같은 차별을 양산하는 원흉이지만, 국민국가의 해체는 요원한 일이라고 한다면 일단 징병제의 폐지가 급선무다. 더구나 징병제는, 논지를 흐릴 각오를 하고 말하자면, 비슷한 의미로 사회적 약자인 대다수 남성들을 '징병'하여 착취한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징병제를 둘러싼 양성간 대립도 시스템이 조장한 약자 대 약자의 싸움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국가주의는 사회적 약자를 이렇게 효율적으로 통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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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찌즈꼬는 국민국가의 틀 안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젠더 중립성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것은 국민국가가 국민 혹은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고, 그 요구는 '국방의 의무'로 대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남성과 여성에게 똑같이 병역의 의무를 지우는 경우는 없다. 흔히 양성공동병역의무제의 사례로 이야기되는 이스라엘에서조차 여성의 복무기간이 남성의 복무기간에 비해 훨씬 짧다. 이같은 상황 때문에 군으로 위문오는 선교단체들은 항상 젊은 여자를 앞세워 "여러분들 덕분에 저희가 안전하게 사는 거죠?"하고 묻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에서 "남성이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기는 것이다.

이 인식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옳다. 남성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성만 군대라는 곳에 가겠는가. 왜 군에 가기 직전의 남성이 돈을 주고 여성을 사는지의 의문도 여기서 풀린다. 그 남성은 그 여성을 지키기 위해 군에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제국주의 일본 당시의 '위안부'와 소위 말하는 '사창가'의 공통점이 있다. 여성들은 왜 자신들을 지키러 이 사내들이 군에 간다고 생각하는가. 자신들은 자녀를 낳아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국가 체제의 가장 주된 속성은 영속하려고 하는 욕망이다. 그 영속의 욕망이 '국방의 의무'를 만들어낸다. 그 '국방의 의무'는 다시 '병역의 의무'와 '출산의 의무'를 만들어냈다. '병역의 의무'가 보다 성문법적이고 '출산의 의무'가 보다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국민국가 체제가 개인을 억압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보다 너무나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그건 인구정책을 통해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가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가 되고, 그것이 또다시 "한 집 걸러 한 집 낳기"와 같은 캠페인을 낳았다면, 그것은 국가에 의한 출산 통제의 아주 기본적인 문맥이다. 당시의 예비군들이 공짜로 정관을 묶는 수술을 받고 당일의 훈련을 면제받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지금은 보다시피 정관수술은 이제 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다. 국민국가는 교묘하게 우리의 육체를 조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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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엔디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방학이나 휴가철을 맞은 사람들이 꼭 책읽기 다짐을 둔다. 오래 벼르던 대하소설 읽기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전을 통해 스스로를 뒤돌아보려는 사람도 있고, 역사책이나 교양과학 책을 읽으며 견문을 넓히려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어떤 대학생들은 긴 방학을 이용해서 사상서 원전 읽기를 통해 스스로의 지적 토대를 마련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해서 이제 행복한 책읽기의 계절은 가을이 아니라 여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다짐과 시도 속에서는 책읽기의 즐거움보다 책읽기의 괴로움, 부담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는 위인의 말씀을 우리는 하루라도 빼놓지 않고 귀에 새길듯이 들어왔다. 그 금언의 무게는 아무래도 학생들이 가장 무겁게 느끼게 마련이고, 그 부담은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추천도서목록으로 집약된다. 대개 일리아드나 방법서설, 또는 논어나 열하일기로 시작되는 그 목록은 선인들이 세상에 남긴 서 말의 구슬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다. 하지만 문제는 목록 어디를 봐도 그 구슬을 어떻게 꿰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물론, 가짜 구슬을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지에 대한 언급조차 전혀 없다는 것이다. 얼마쯤은 이 막막함이 아직 옥석을 구분할 수 없는 우리 학생들이 진 부담의 무게를 더 무겁게 하는 것이다. 이만하면 학생들로서는, 괴테는 드 네르발의 번역으로 읽고 에드가 포우는 보들레르의 번역으로 읽는다고 되어있는 프랑스의 독서전통과 지성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는 서구유럽의 교육방식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보다 올바르고 책임 있는 도서목록이라면 추천할 만한 책을 정확하게 가리켜야 한다. 책의 본질은 제목에서가 아니라 그 내용을 담은 한 문장, 한 문장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연관되는 여러 책들을 잘 안배하여 보다 체계적인 독서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책들은 서로 이야기 나누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많게는 20여종이 넘는, 같은 제목의 책들 사이에서 방황하고, 그 책을 넘어서면 또다시 다가오는 거대한 책의 산 앞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다. 교육자와 연구자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한국일보 2030 오피니언 란
Posted by 엔디
TAG 교육, 사회

1

나는 아무래도 참을 수가 없다. 아프간 전戰에 이어 이라크 전戰이 터지면서 인터넷에는 시가 아니라 구호인 것들이 시인 척 하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심정에 십분 공감하면서도 그들의 시에는 이상하게도 거부반응이 드는 것이었다. 그런 모습은 아래 임화의 시를 다시 보면서 더욱 증폭되었다.

 노름꾼과 강도를
 잡던 손이
 위대한 혁명가의
 소매를 쥐려는
 욕된 하늘에
 무슨 旗빨이
 날리고 있느냐

 同胞여!
 일제히
 旗빨을 내리자

 가난한 동포의
 주머니를 노리는
 外國商館의
 늙은 종들이
 廣木과 통조림의
 密賣를 의론하는
 廢 王宮의
 상표를 위하여
 우리의 머리 우에
 國旗를 날릴
 필요가 없다

 同胞여
 일제히
 旗빨을 내리자

 殺人의 自由와
 약탈의 神聖이
 晝夜로 방송되는
 南部朝鮮
 더러운 하늘에
 무슨 旗빨이
 날리고 있느냐

 同胞여
 일제히
 旗빨을 내리자

- 임화, 「旗빨을 내리자」전문全文
(유종호『시란 무엇인가』민음사(1995), 219-221쪽에서 다시 따옴.)

유종호 선생은 비록 이 시에 대해 "판에 박힌 상투성이 특징을 이루고 있다"고 낮추어보고 있지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반전시反戰詩'들보다는 백배나 나은 듯이 보이는 이 시는, 얼마나 오래 전에 쓰여진 것인가!

그러니 이제 솔직해지자, 구호로 외칠 것은 구호로 외치고 시는 시로 그대로 놓아두자. 이것은 시를 신성시해서가 아니라 '시는 다만 시일뿐'임을 알아서다. 전쟁을 반대하려면 으레 시를 써야되는 줄로 아는 사람들이야말로 시가 어떤 신비로운 힘을 갖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인 것이다. 시는 전쟁을 찬양할 수도 있고, 전쟁을 혐오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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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구호는 또 어떠한가. 2004년 연세대학교 총학생회가 '소집'한 연세 학생총회의 구호는 "오라 연세로, 가자 신촌으로"였다. "오라 서울로, 가자 세계로"라는, 도대체 왜 서울로 와야 하며 왜 세계로 가야하는지 모르겠는, 시시한 대구對句를 고스란히 표절하면서 그 단점까지 너그러이 품어준 저 '새로운' 문구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café chair revolutionist'가 되지 않기 위해, 말보다 행동이 훠얼씬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 일부러 적당히 만들어놓은 말인가. 등록금 동결과 총장 불신임, 성폭력을 막기 위한 학칙(일명 반성폭력학칙反性暴力學則) 개정을 위한 모임과 저 문구는 또 어떤 상관관계가 있단 말인가.

4.15 총선의 문구는 또 어떠한가.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참신했었었었던 근 50년 전의 문구가 되살아났으니, '갈리'는 대상이 "갈아봤자 별수없다"를 들고나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아니, 적어도 그걸 들고나오지 않은 것만은 그쪽이 좀더 '진보'한 것일까.

프랑스 68혁명의 구호들을 살펴보자.

"5월의 정신l'esprit de mai";

"상상은 가능성(혹은 힘, 권력)을 갖고 있다L'imagination prend le pouvoir";

"진실을 위해 욕망을 품어라Prenez vos désirs pour des réalités";

"금지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Il est interdit d'interdire";

"사실적이 되면서도 불가능을 요구하자Soyez réalistes, demandez l'impossible";

"이 보도블럭 아래에는 바다가 있네Sous les pavés, la plage";

"달려라 동지여, 낡은 세계가 네 뒤에 있다Cours camarade, le vieux monde est derrière toi";

"혁명을 하면 할수록, 더 섹스하고 싶어진다Plus je fais la révolution, plus j'ai envie de faire l'amour";

"우리는 모두 독일의 유태인들이다Nous sommes tous des Juifs allemands";

"행동은 충분하다, 이젠 말이다Assez d'actes, des mots";

"혁명은 역사의 환희다";

"손가락이 달을 가리킬 때 어리석은 사람은 손가락만 본다(중국 속담)";

"사회는 마음대로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조화造花다";

"보육학교와 대학과 다른 모든 감옥의 문을 열어라";

"우리는 맨 마지막 관료의 창자로 맨 마지막 자본가의 목을 매달 것이다! 욱!";

"상아탑의 그림자 속에서 어떻게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겠는가?";

"공동체의 상상력을 방어하라";

"외쳐라";

"동지들을 석방하라";

"거리에서 나는 살아있네";

"생활의 편의는 민중의 아편";

"행동은 반응이 아니라 창조다";

"팔레스타인 사람의 눈물은 하느님의 과즙이다";

"나는 내 욕망의 현실성을 믿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욕망을 지닌다".

(구호들은 Ross Steele, Civilisation progressive du français, CLE International(2002), p. 48과 타리크 알리·수잔 왓킨스『1968: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안찬수·강정석 옮김, 삼인(2002), 145쪽에서 뽑은 것으로, 68년 당시 본래는 건물의 벽이나 땅바닥에 낙서로 있었던 것임.)


"금지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Il est interdit d'interdire"라는 말이 가진 반복의 시적 울림이나 국내에 체 게바라 열풍이 불면서 함께 소개된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Soyez réalistes, demandez l'impossible"라는 표어만으로도 우리는 그 혁명에서 말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알 수 있다. 아니 "행동은 충분하다, 이젠 말이다Assez d'actes, des mots"라는 구호가 가진 역설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68혁명이 그렇게 커지진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이 보도블럭 아래에는 바다가 있네Sous les pavés, la plage"라는 구호는 얼마나 아름다우면서도 이성적이고, 혁명적인가. 그들은 새로운 구호를 창조하기도 했고, 기존의 구호들을 적절히 변형할 줄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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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의 노회찬 사무총장은 TV 프로그램에서 "1번과 2번이 망친 나라를 12번이 살리겠습니다"라든가 "50년 동안 한 판에서 계속 삼겹살을 구워먹어서 판이 이젠 새까맣게 됐습니다. 이젠 삼겹살 판을 갈아야 합니다"라는 등의 참신한 표현들을 썼다. 그것이 결국 '판갈이' 운동으로 바뀌면서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초대 대통령 유령 모셔오는 소리로도 바뀌었지만, 나는 저 말들 속에 진실이 숨어있는다고 믿는다. 좋은 구호는 시가 되려하고, 좋은 시는 진정한 구호를 암시한다. 그렇다면, "행동은 충분하다, 이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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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서구열강이 저질렀던 식민지 침탈이 2차 대전이 끝나면서 마감되고, 제도로서의 백호주의白濠主義가 호주에서 1970년대에 마지막을 고했다. 그러나 아직도 '평등'은 멀기만 하다. 우리가 바라는 평등은 제도에 있어서의 평등만은 아닌 까닭이다. 희고 늘씬한 '미녀'들이 TV와 거리를 동시에 오르내리고 있는 이 시대는, 서구를 좇아가려고 기를 쓰던 근대 초기의 우리 모습과 너무 닮아있기 때문이다. 이때 다룰 중요한 말머리[話頭]로는 흰 얼굴과 흰 살갗에 대한 편집광적인 집착을 들 수 있다.

사람의 살갗 빛깔을 가지고 백인종이니 흑인종이니 황인종이니 홍인종이니를 굳이 구별하는 것은 크게 의미있는 일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보더라도 살갗 빛깔과 여러 특징들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아리아 인종'과 같은 모호한 개념이 아닌 한에서는, 인종을 나누는 것이 크게 문제되는 행위는 아니라고 여겨진다. 중요한 것은 거기서 가치판단을 빼는 일이다. 우리 안에 있는 백호주의白好主義가 문제되는 이유는 호好라는 글자 속에 이미 들어있는 '가치판단'적인 태도 때문이다. 우리에게 흰색은 어느새 아름다움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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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장정일 소설에서 등장하는 '<은행원>'이 "국민학교도 채 졸업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1. 나는 연상의 여자와 결혼할 거다.
2. 나는 여배우와 결혼할 거다.
3. 나는 백인과 결혼할 거다.

라는 기준의 선언문(장정일 1992, 47)이나 마광수의 '사라'가 자신에 대해

그렇다고 해서 내 키가 형편없이 작다거나 얼굴이 평균 이하로 못생겼다는 말은 아니다. 내 키는 168센티미터이고 체격도 그만하면 팔등신에 가깝게 늘씬하다(욕심 같아선 키가 170센티미터 이상이면 더욱 좋겠지만 이 정도로 큰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입시에 합격하자마자 엄마를 졸라 서울에서 제일 잘한다는 성형외과에 가서 쌍꺼풀 수술(그것도 넓고 깊게, 그리고 기름기까지 빼고)을 한 탓인지, 내가 보기에도 내 얼굴은 서양 여자 못지않게 예뻐 보인다. 피부 색깔도 하얀 편이고 코도 작지만 적당한 높이로 오똑 솟아 있어서 남들이 보면 꼭 튀기인 줄 아는 것이다.

라고 하는 부분(마광수 1992, 17)은 흰 살갗에 대한 집착의 어떤 극단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흰 살갗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유럽보다 더한 면이 있다. 유럽에서도 이를테면 남부유럽에서는 때로 검은 살갗을 예찬하기도 하는 것이다. 로르까에게서 "검은 천사들Angeles negros"(「입씨름Reyerta」)이나 "경이로운 가무잡잡한 여인Morena de maravilla"(「성 가브리엘San Gabriel」)과 같은 표현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Lorca 1995, 84-85).

그러나 우리 문학에서는 살갗이 검은 여성이 부정적으로 그려지기가 일쑤이다. 장정일의 시 「충남 당진 여자」에서 "스물 세 해째 방어한 동정을 빼앗고 매독을 선사한" '충남 당진 여자'는 "[…] 당진 화력 발전소 / 화력기 속에 무섭게 타오르는 석탄처럼 까만 / 여자 얼굴 충남 당진여자 얼굴 그 얼굴"과 같은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장정일 1997, 60-63).

이런 흰 살갗의 작품 속 기능은 수동성이나 연약함이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사디슴sadisme적인 폭력성과도 관련될 수 있다. 흰 살갗의 여성은 부서질 것같은 연약함이나 창백한 모습으로, 심약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것은 검은 살갗을 가져, 발전소 화력기같은 '충남 당진 여자'가 "나를 범하고 나를 버린" 여자로,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두 사람이 누울 자리는 필요없다고" 말하는 적극적인 여성상으로 그려지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그리고 지극히 마초적으로 사회화된 인식 속에서 적극적 여성인 '충남 당진 여자'는 부정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흰 살갗의 여성은 긍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보이는

누군가 밖에서 문을 세 번쯤 똑똑똑, 두드렸다. 인기척이 없자, 길게 생머리를 한 여학생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담한 키에 목이 길며, 눈이 크고 깊은 여자였다.

그녀는 만지면 부서질 것같이 한없이 연약해 보였다. 그녀는 프로스펙스 운동화, 물이 약간 날아간 청바지에 고동색 통가죽 벨트, 온통 빨간 바탕에 시몬느 베이유의 얼굴이 까맣게 찍힌 티를 입고 있었다.

와 같은 묘사(박일문 1992, 40)나 윤대녕의 「銀魚」에서 보이는

그녀는 시체처럼 창백해 보였다. 그녀에게선 가을 저녁 들판의 냄새가 났다.

는 진술(윤대녕 1994, 16), 그리고 역시 윤대녕의 「국화 옆에서」에 나타난

한데 내 눈에는 그녀의 미모조빛 뺨과 […] 등이 낚싯대에 걸려 올라오는 물고기처럼 생생하게 튀어들어왔다.

이런 살갗을 통한 적극성/수동성의 환기(윤대녕 1994, 140)는, 보다 광범위하게 연구해볼 주제라고 여겨진다. 그것은 성행위 장면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윤대녕 1994, 23): 윤대녕 「銀魚」의 "시체처럼 창백한" '그녀'는 섹스 도중에 소리친다. "영원히 변치 말아줘요, 네? 내 곁에 있어줘요, 네?" '그녀'의 수동성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가령 '그녀'의 섹스는 '나'에게 종속되어 있는 양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 소리를 들어서인가. 나는 정신이 확 밝아지며 이내 몸이 얼어붙어버렸다.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들어서인가. 마침내 나는 포기해야 했고 그녀는 어쩔 줄을 몰라하며 숨이 끊기듯 베개 너머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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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이런 흰 살갗의 용모가 우리 관상법에 비춰보았을 때 그다지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내에서 출간된 몇몇 관상과 관련된 책자를 살펴보면 그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가진 통념과는 달리 대부분의 관상책은 흰 얼굴을 주로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왜냐하면 흰색은 병病이나 죽음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가령 도변정邊正은 '연분홍색'을 "건강색"으로 규정하면서, 백색은 폐결핵과 연관시키고 있다(도변정 1993, 95-96). 정현우도 "얼굴에 분홍색이 나타나면 길조"라고 규정하며, "하양이 우수와 이변"이라고 쓰고 있다(정현우 1994, 85-57). 김성헌은 "빛깔(氣色)"을 '관상의 3요소'로까지 부르며 특히 빛깔론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여기서도 백색은 "상(喪)을 입는 등 슬픔이 있고 신병으로 운이 위축되어 가난해지는 빛깔"이라고 규정되고 있다(김성헌 1992, 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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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이란 본래 많은 사람들이 이상理想으로 치는 용모를 좋게 묘사하기 쉽다. 그것은 또다시 이야기나 문학작품 속에 투영되어 피드-백된다. 발자끄나 스땅달이 라바터의 '관상학'을 원용했던 것처럼(설혜심 2002, 275-276), 우리 고전소설 속의 여성상은 국내의 관상서들이 으뜸으로 치는 여성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우리 고전소설에서 여성의 용모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대개는 '어디어디 땅에 이름난 미인이 있으니'나 '곱게 단장한 한 여인이 홀연히 나타나'와 같은 방식으로 여성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몇몇 작품들이 간략하게나마 묘사하는 중에 드러난 여성의 용모는 대체로 국내 관상서에서 볼 수 있는 붉은 빛 계열이다.

이옥의 「심생沈生」에서는 보자기로 얼굴을 가린 여성이 등장하는데, "돌개바람旋風"에 보자기가 걷히자 "[복]숭아빛 뺨에 버들잎 눈섭桃□柳眉"이 드러났다는 표현이 보인다(이우성·임형택 1976, 261). 또 신광한의 「안빙몽유록安憑夢遊錄」에는 "반희가 이름을 알려 오니 풍염한 얼굴은 약간 붉고, 푸른 눈썹은 산을 모을 듯하며, 가냘프고 짙은 고운 바탕은 붉은 비단보다 훨씬 나았다"는 표현이 있다(윤병로 1995, 73).

분홍빛의 혹은 붉은 빛의 얼굴과 관련한 미의식은 삼국시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설총이 「화왕계花王戒」에서 '장미'를 등장시킬 적에 "문득 한 가인佳人이 붉은 얼굴에 백옥 같은 이로써忽有一佳人 朱顔玉齒" 나타나는 것으로 묘사하는데, 여기서 이미 붉은 얼굴이 (위험하리만큼)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김부식 1997, 410).

「열녀츈향슈절가라(京板 17장본)」에서 춘향이 등장할 때도, "이때 마침 본읍 기생 춘향이 추천차로 의복단장 치레할새, 아리따운 고운 양자 팔자청산을 춘색으로 반분대 다스리고"와 같이 흔히 연분홍색으로 표상되는 '춘색'을 춘향의 색으로 삼고 있음을 볼 수 있다(설성경 1986, 146-147). 김만중의 「구운몽」에서도

팔선녀가 다리 위에 앉아 물을 굽어보니, 여러 골짜기의 물이 다리 아래에 모여 넓은 못을 이루었는데 광능땅 보배로운 거울을 새로 닦은 것처럼 차고 맑아, 푸른 눈썹과 붉은 단장(丹粧)이 물 속에 비친 모습은 마치 주방(周昉)이 그린 한 폭의 미인도 같았다.

와 같은 표현이 보인다(김만중 2003, 10).

붉은 살갗이 아름답다고 여겨졌다는 것은, 일종의 '건강미'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도변정 등의 의견과 같이 연분홍색이 "건강색"으로 여겨졌다면, 붉은 살갗은 '생산성'을 보여주는 지표index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고전소설에서 '생산성'은 삶의 의미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것은 대개의 고전소설이 "파뿌리가 되도록 해로했고 자녀도 많았다白首偕老 多産子女"와 같이 끝나는 이유가 된다. 그것은 가문을 중요시하는 문화나,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농경사회의 특성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우리 옛 문학에도 흰 살갗에 대한 예찬 또한 있다. 바깥 출입을 하지 않은 여성의 살갗이 남성들보다 흴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춘향 역시 '흰색'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춘향젼(完板 33장본)」에서는 방자가 춘향에게

추천을 할 양이면 네 집 후원에서 할 것이지 탄탄대로에 나와 […] 박 속 같은 네 살결이 백운간에 힛득힛득하니 도련님 네 태도 잠간 보고 정신이 희미하여 너를 급히 부르시니

라고 꾸짖는 부분이 있다(설성경 1986, 42-43). 그네를 뛰는 춘향의 모습이 이몽룡에게는 선녀와 같이 비쳤던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 문학에 있어서 여성의 아름다움은 결코 흰색에 있지 않았다. '미인'이 때로 흰 살갗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것은 붉은 바탕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안정복安鼎福의 가전체소설假傳體小說 「여용국전女容國傳」에서는 동원청銅圓淸(거울)의 열다섯 신하를 설명하면서 붉은 색과 흰색을 "태부(太傅)인 주연(朱鉛;연지), 소부(少傅)인 백광(白光;분) 太傅朱鉛少傅白光"의 순서로 언급하고 있다(민제 1996, 76). 여기서 바탕되는 빛깔이 붉은 색임은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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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이것은 서양과는 정반대되는 모습이다. 서양에서는 중세 때부터 흰색이 아름다움의 색으로 통했다. 하의징아에 따르면, 토마스 아퀴나스는 '완전성과 완벽성', '정확한 비례와 조화'와 함께 '명도'를 아름다움의 세 조건으로 들었다(Huizinga 1988, 328-331). 또 샤르트뢰라는 사람은 아름다움을 빛과 동일시했고, 프로아사르라는 이는 함대와 금속무기에 반사된 햇빛에 감탄했다. 그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빛을 아름답게 여기는 모습이 보인다. 아퀴나스를 필두로 함에서 알아챌 수 있듯이, 그것은 기독교를 그 배경으로 한다. 때문에 그때의 색채 구분은 가치판단을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런 가치판단은 미인을 가려내는 기준으로도 작용하여 "밝고 푸른 눈, 눈처럼 하얀 피부, 그 피부를 돋보이게 하는 붉은 볼" 등의 틀로 고정되었다(설혜심 2002, 156). 여기서 볼의 붉은 빛은 다만 "[하얀] 피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르네상스 시기에는 여성의 아름다움이 글로 정립된다. 오까다 아쓰시岡田溫司가 옮긴 아뇨르 피렌추올라의 「여성의 미에 대한 대화」와 페데리코 루이지니의 「아름다운 여성의 서」에서 그것은 명백하게 드러난다. 피렌추올라는 이마는 "넓고 높고, 순백으로 빛[나]"는 것을, 목덜미는 "둥글고, 가녀리고, 희고 얼룩이 없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하고, 또 "가슴은 특히 희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볼에 대해서는,

이마보다 약간 덜한 흰빛이 바람직하다. 즉, 조금 다소곳한 빛남이다.

주위는 눈처럼 순백이지만 흡사 구릉처럼 차츰 볼의 살이 부풀어오름에 따라 피부색(incarnadine)을 늘려간다. 그리고 정상에 이르러 흡사 날씨 좋은 날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 남는 여광(餘光)처럼, 붉은 기를 띠어가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그것은, 선홍색으로 물든 순백에 다름아니다.

고 규정하고 있다(岡田溫司 1999, 68-73). 여기서도 흰색이 중심이 됨은 말할 것도 없다. 여성의 얼굴은 여전히 순백이되, 다만 "선홍색으로 물든 순백"일 뿐이다. 루이지니는 이마는 "넓고 높고 빛나며, 그리고 신비로움을 담고 있"어야 하며 목덜미는 "그 순백색이 백조, 백합 또한 눈보다도 뛰어날 만큼", 또 "젖빛보다도 더욱", 그리고 "상아처럼" 하얗기를 바랬다. 가슴은 "라우라의 가슴처럼 순백인 것이 좋다"고 했다. 루이지니에게서는 볼에서도 그다지 붉은 빛을 찾을 수 없다. 루이지니는 이상적인 볼을

매끈하고 흰 젖과도 비슷하며, 부드럽고 매끄럽다. 그렇지 않으면 때로는 이른 아침에 피어나는 장미처럼 산뜻한 색채와도 견줄 수 있는 볼이 바람직하다.

흰 백합, 붉은 장미, 담홍색 히야신스, 그리고 순백의 쥐똥나무를 찾아볼 수 있을 듯한 볼이 바람직하다.

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岡田溫司 1999, 78-82).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 이후에도 이러한 규정은 여전히 효력을 발휘했다. 푹스에 따르면 여전히 "창백한 얼굴이 아름답게 여겨졌으므로 18세기에 들어오자 백분을 머리에 뒤집어쓰는 것이 유행했다."(Fuchs 1987, 7) 설혜심은 "얼굴에 백분을 바르면 사람들은 언제나 한결같은 젊은 얼굴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믿었다"고 지적하고 있다(설혜심 2002, 243). 그것은 1715년 당시에 발간된 『숙녀 사전』이라는 책에서

무슈, 즉 애교점은 검은 호박직(琥珀織)을 크고 작게 여러가지 모양으로 자른 것이다. 귀부인들은 그러한 것을 얼굴이나 유방 위에 붙여 살갗이 더욱 하얗게, 더욱 귀엽게 보이도록 했다.

고 쓰고 있는 데서 증명된다(Fuchs 1987, 7). 그러나 여기서도 우리가 주목할 것은 "화장한 그림들의 얼굴빛은 건강한 붉은빛을 띤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얼굴은 최대한 창백해야 했다."(설혜심 2002, 243) 주지하다시피, 그것은 우리 문학에서 보이는 육체적으로 건강해보이는 붉은 얼굴의 여성상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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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언제부터 우리 옛 문학의 아름다움이 전혀 보이지 않게, 서구적 미의 코드가 덧칠해진 것일까. 그것은 전체적으로 거의 '새것 콤플렉스'라는 용어로 환원될 수 있을, 우리의 근대 초기인 것으로 짐작된다. 근대문학의 효시로 드는 이광수의 『무정無情』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이광수 2003, 703-704):

하로밤 비에 모든 것을 일허바리고 발발 떠는 그네들이 엇지보면 가련하기도하지만은 또 엇지보면 너머약하고 어리석어보힌다 […] 져대로 내어버려두면 맛참내 북해도에 아이누가 다름업는죵자가되고말것같다

져들에게 힘을 쥬어야하겟다 지식을 주어야하겟다 그리해셔 생활의 근거를 안젼하게 하여쥬어야하겟다

「과학科學! 과학!」 하고 형식은 려관에 돌아와 안져서 혼자 부르지졋다.

나라를 구한답시고 각기 동경으로 미국으로 유학가던 길의 대화다. 끊임없이 구미歐美를 좇았던 근대 초기에 보이는 '2등국' 백성의 열등의식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말하자면 일본에서도 때로 '토인土人'이라고 지칭되는 '아이누족'처럼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거기에는 벌써 '구미열강-일본-조선-토인/아이누'라는 도식이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설정 속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관념도 그대로 받아들였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지스트 시인 정지용의 시 「우리나라 여인들은」에서 붉은 빛과 흰빛이 섞여있음을 볼 수 있다(정지용 1988, 70):

여인들 은 山果實 처럼 붉 도다
[…]
여인들 은 팔구비 가 둥글 도다. 이마 가 희 도다.

또, 이광수만 하더라도 형식이 선형을 맨 먼저 대하는 장면에서 선형을

고개를 슉엿스매 눈은 보이지안이하나 난대로 내어바린 감은 눈셥이 하얏코 넓줏한 니마에 뛰렷이 츈산을 그리고 기름도 아니바른 깜한 머리는 언졔나 비셧는가 허트러진 두어올이가 볼그레 복송아 꽃같흔 두뺨을 가리어 바람이 부는대로 하느젹하느젹 꼭 다믄 입슐을 때리고 깃좁은 가는 모시적삼으로 혈색조흔 고은 살이 몽롱하게 비쵸이며 무릅우헤 걸어노흔 두손은 옥으로 깎근 듯 불빗에 다히면 투명할듯하다

고 묘사하고 있다(이광수 2003, 47). 박태원의 「진통」에서는 우리나라 관상학 서적들이 그것 때문에 백색을 부정적으로 보았던 그 폐병이 오히려 아름다움의 코드로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박태원 1987, 153):

[…] 순간에 제몸이 절망의 구덩이에 빠지는 듯도 싶었으나, 번개같이 여자의 그렇게도 투명한 피부를 생각하고, 그의 아픈 페를 생각하고

이러한 여성 이미지는 이상에게 와서는 더욱 심화되어 소설 「종생기終生記」에서는

저의 最後까지 더럽히지 않은 것을 先生님께 드리겠읍니다. 저의 히멀건 살의 魅力이 이렇게 다섯 달 동안이나 놀고 [있]는 것은 참 무었이라고 말할 수 없이 아깝습니다.

로(이상 2001, 159), 다시 소설 「날개」에서는

十八가구에 각기 밸너들은 송이송이 꽃들 가운데서도 내 안해는 특히 아름다운 한 [떨]기의 꽃으로 이 함석 집웅 밑 볓 안 드는 지역에서 어디까지든지 찬란하였다.

로(이상 2001, 71-72), 시 「狂女의 告白」에서는

蒼白한여자
얼굴은여자의履歷書이다. […] 온갖밝음의太陽들아래여자는참으로맑은물과같이떠돌고있었는데참으로고요하고매끄러운表面은조약돌을삼켰는지아니삼켰는지항상소용돌이를갖는褪色한純白色이다.

와 같이 묘사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이상 1978, 43). 『李想詩全作集』을 교주校註한 이어령은 「狂女의 告白」의 "蒼白한여자"에 "小說<失花>에서 姸에 대한 묘사에서도 나타나 있듯이 女子의 蒼白性은 性的인 것, 그리고 그 秘密을 나타내는 이미지로 많이 쓰이고 있다"고 주석을 달고 있다(이상 1978, 43). 이와 같은 모습은 서구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과 함께, 전근대사회의 생산지향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반면, 같은 근대작품이라도 농촌을 묘사한 이광수의 『흙』에서는, 물론 흰 살갗의 여성도 아름답게 묘사되지만 그와 동시에, 검은 살갗의 여성도 주인공의 눈에 아름답게 비쳐지는 것을 볼 수 있다(이광수 1990, 5):

「어쩌면 유 순이가 그렇게 크고 어여뻐졌을까.」

하고 숭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럴 때에 숭의 앞에는 유 순(兪順)의 모양이 나타났다. 그는 통통하다고 할 만하게 몸이 실한 여자였다. 낯은 자외선 강한 산지방의 볕에 글어서 가무스름한 빛이 도나 눈과 코와 입이 다 분명하고, 그리고도 부드러운 맛을 잃지 아니한 처녀다. […] 그는 맨발이었다. 발등이 까맣게 볕에 글었다. 그의 손도, 팔목도, 목도, 짧은 고쟁이와 더 짧은 치마 밑으로 보이는 종아리도 다 볕에 글었다. 마치 여름의 햇볕이 그의 아름답고 건장한 살을 탐내어 빈틈만 있으면 가서 입을 맞추려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이것은 배경이 도시가 아닌 만큼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농촌에서 보자면, 박태원이나 이상이 주목했던 여성은 '불모의 여인'으로 보일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광수의 『흙』은, 그러므로 근본적 의미로는 서구화인 도시화가 얼마나 흰 살갗에 집착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여기'서도 여전히 작동하는 오리엔탈리즘이다. 시쳇時體말로 '쭉쭉빵빵'이라고 하는 희고 늘씬한 '미녀'들이 TV와 거리를 여전히 오르내리는 한에서는 말이다. 우리의 감각은 거의 본능적이라고 여겨질만큼 빠르게 흰 살갗에 반응한다. 심지어 한때는(가끔은 지금도) '최루성' TV드라마나 영화의 결말이 항상 백혈병인 적도 있었다. 사람들은 '여주인공의 비극'에 눈물을 뿌리면서도 그 아름다움에 도취했던 것이다. 가령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에서의 초희의 이미지나 「가을 동화」]의 은서의 이미지가 사회적으로 어떤 반향을 일으켰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듯 집요한 흰 살갗에 대한 집착이 실은 서구적인, 어떤 면에서는 서구보다도 더 서구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6

그렇다고 우리는 다시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인 붉은 빛과 연분홍빛의 미학으로 되돌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흼과 늘씬함의 잣대만으로 여성을 파악하는 것이 식민주의의 잔재라면, 붉은 빛과 연분홍빛으로 여성을 규정짓는 것은 내셔널리즘의 잔재다. 내셔널리즘 자체를 고찰하는 것은 여기서 논외로 하더라도, 식민주의 자체가 실은 내셔널리즘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내셔널리즘이 가진 허구성을 우리는, 긴 설명 없이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흰 얼굴이 아름답고 섹시해보이는가? 아무리 해도 그렇게 보이는가? 그렇다면 아름답다고 생각하라. 거기에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 다만 아름답다고만 생각하라. 그리고 결코 그것을 '사랑'이라고 이름붙이지 말라. 우리 고전 소설이나 현대 문학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허망하게 사랑을 구하는지 보라. 거의 기계적이지 않은가? 연분홍빛 얼굴, 하얀 얼굴이 보이면 거의 기계적으로 반하지 않는가? 기계적인 '반함'에 앞서 한 번만 '생각'해보라. '愛'와 '思'가 한때 한글자였다는 것과, 사랑이 '思量'에서 왔다는 설을 다시 한 번만 생각해보라. 계속해서 주입된 가치관 속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한 번 아름다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보겠는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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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무료로 배포되는 《메트로》 4월 28일자에는 한국인의 '콩글리시'에 대한 비웃음이 실렸다. 론 샤프릭이라는 성균관 대학교 영어강사의 글이었는데 그의 글을 읽고서 나는 부아가 났다.

론 샤프릭의 글 보기


그 글을 읽으며 내가 느낀 것은 그의 오만이었다. 그의 말대로 우리나라가 영어 제국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이북 사람들과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그의 '충고'와 '고견'에는 완전히 동의할 수 없다. 우리가 쓰는 영어는 이미 완전히 이땅의 영어, 한국식 영어이기 때문이다.

그는 간판이나 자막, CD케이스 등에 잘못된 영어가 많으니 사용할 때는 반드시 원어민에게 물어보고 사용하라고 충고한다. 영어는 (안타깝지만) 이미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말이다. 영어는 각 지방에서 토착어와 융합되기도 하고 적절히 변형되기도 한다. 때문에 그 나라에서만 쓰이는 영어가 따로 있는 것이고, 그것은 별로 부끄러운 일은 아닌 듯 싶다. 물론 올바른 영어를 쓰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영어가 이미 국제어라면 각각의 영어가 다 대접을 받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흔히 "영국식 영어", "미국식 영어"라고 하면서 영어를 구분한다. 예를 들면 영국에서 colour라고 새기는 단어를 미국에서는 color라고 새긴다. 영국인들이 미국인들에게 철자가 틀렸다고 무어라 할 수 있겠는가? 미국에서는 지하철을 subway라고 하고 지하도를 underground라고 한다. 영국에서는 지하철을 underground라고 한고 지하도를 subway라고 한다. 틀린 단어를 쓴다고 미국인과 영국인이 맞서겠는가? 영어는 각 지방별로 조금씩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끼리도 이렇게 다른데 영어의 일부를 외래어로 받아들인 나라나 외국어로 쓰는 나라에서는 당연히 다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샤프릭은 "Food Bank"라는 곳은 캐나다나 미국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공짜 식당이라고 하면서 그 이름을 쓴 우리나라 분식점을 비웃는다. 그것은 북아메리카 영어권의 특수한 경우일 뿐이다. Food Bank는 Food와 Bank의 합성어일 뿐이다. Bank라는 단어 자체에 '공짜'라는 의미가 들어있지 않은 이상 그것은 다른 문화권에서 충분히 다르게 쓸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영국에서 Food Bank라는 식당이 생겼어도 그가 비웃었을까?

"hooter's"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영어사전에서 hooter를 찾으면 "① 야유하는 사람 ② 올빼미 ③ 기적, 경적, 사이렌 ④《영俗》코" 정도로 나온다. hooter's가 미국에서 스트립쇼를 하는 곳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미국 내에 있는 상호일 뿐이다. 그런 논리라면 미국에서 'Reader'라는 이름의 도서대여점이 있다면 한국에서도 'Reader'는 도서대여점의 상호로만 쓰여야만 할 것이고, 미국에서 PLAYBOY가 누드잡지이므로 한국에서도 PLAYBOY는 누드잡지여야만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용인하지 못하는 듯 하다. 샤프릭은 아무런 필연적 연관이 없는 것을 필연적인 것으로 오인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이자 번역가인 안정효 선생도 OK Corral이나 "-Barn"같은 식당을 보면서 영어도 모르고 만들었다고 비웃은 적이 있다. 가축우리corral에서 밥을 먹는다느니 헛간barn에서 밥을 먹는다느니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안정효 선생의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것이다. OK Corral은 정작 미국계 레스토랑 체인점이고, 미국에도 Angus Barn같은 식당이 있었던 것이다. 또, 3대 피자 체인의 하나인 피자헛의 'hut'역시 '오두막'이나 '군용 임시 막사'라는 뜻에서 '교도소의 독방'이라는 뜻까지 가지고 있는데, 3억의 미국인들은 교도소 독방에서 피자를 먹는 셈이 되고 말 것인가?

'우리 은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Woori와 Worry는 충분히 다른 것인데도 "Woori More Card는 더욱 걱정스러운 카드"라고 엉터리 번역까지 해가며 비웃는 데에까지 이르면 우리는 거의 그의 교양 수준까지 의심하게 된다. 하긴, 샤프릭 같은 교양수준의 사람들이 미국에 많을 것이므로 이를 염려하여 그의 '고견'대로 'Our Bank'로 표기하는 것이 좀더 나았을 것 같기는 하다. 일찍이 '쌍용'이 'Double Dragon'을 포기하고 'SSANGYONG'으로 표기하고 '쿨피스'가 'Cool Piss'를 포기했듯이 말이다.

다 알다시피 말은 '언중言衆'들의 것이다. 영어가 한국으로 왔다면 한국의 언중들에 의해 일정부분 변화를 거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영국의 영어가 미국로 가면서 변화를 겪었듯이 말이다. 비록 본래의 문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특정 지역 내에서만 사용된다면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다. 언어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갖지 않은 수준의 사람이 이땅에서 대학 영어 강사를 하고 있는 것은 영어 제국주의 시대의 슬픈 현실이다. 영어를 가르친다면 적어도 영미 문학이나 언어학에 대한 기초적인 소양정도는 있어야 할텐데 말이다. 더구나 그런 이가 우리를 오만하게 비웃기까지 한다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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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도전과 자유는 좋아한다. 특히나 그것이 이룰 수 없는 것일 때에는 '누가 그걸 이룰 수 없다고 했나'하며 거기에 더 도전하는, 나도 역시 젊은인가보다. 역사는 많은 젊은이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최소한 내가 어릴 적에 읽은 40권짜리 계몽사 세계위인전은 어린 내게 '젊음'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첫 번째 글이 되었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너와 나는 태양처럼 젊었다>를 부르고 <젊은 그대>를 응원가로 외치는 대학생이다.

계몽사 세계위인전에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ristoforo Colombo가 들어있었다. 그는 신대륙을 발견하려고하는 도전정신과 자유정신으로 꽉 차 있는 사람이었고, 성급하고 겁많으면서 무지하기까지한 사람들의 폭동을 무릅쓰고서 계속 서쪽으로 달려가 서인도제도를 발견한 영웅이었다. 생각해보았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지구가 네모나다고 믿었던 그 당시에 말이다. 그 네모의 끝으로 가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면 어쩌지...? 이 사람은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구나... 그런데도 사람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콜럼버스를 흉봤겠다? 멍청한 사람들. 계란도 제대로 못 세우는 주제에...

그러다 어떤 글을 보게 되었다. 콜럼버스 1000여년 전에 노르만 인들이 이미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서 나는 꽤 오랫동안 생각했는데, 그때는 이미 콜럼버스에 대한 존경심이 노르만인에게로 넘어가는 그런 생각은 아니었다. 여담이지만, 당시에 나는 창조론이라는 것에 대해 어떤 초보적인 관심이 있었고, 때에 마침 받은 고등학교 철학 교과서의 '신의 존재에 대한 우주론적 증명'¹이라는 것을 꽤나 열심히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나는 당시 어떤 근원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노르만인 이전에 누군가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고, 또 그 이전에도 누가, 또 그이전에도 누가... 이런 생각의 끝은... 바로 거기 사는 사람들! 콜럼버스든 노르만인이든 또 누구든 그들이 발견하기 전에 거기 사는 사람이 분명히 있었던 것이 문득 생각났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발견한 것이 콜럼버스를 비하하는 글이었다. 그 글에서는 콜럼버스가 빠른 두뇌회전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목숨까지 거는 배포를 바탕으로한 출세욕을 가진 속물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스페인 왕실에 '신대륙'을 발견하는 조건으로 기사 작위와 'Don'이라는 귀족 호칭과 '대양제독'의 호칭, 그리고 '서인도 제도'의 총독과 발견한 땅의 제독자리를 줄 것을 요구했다. 게다가 향료와 황금의 1/10을 달라고까지. 그러나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에는 향료도 황금도 없었다. 그는 스페인왕실로 이런 서신을 보냈다. "이곳에는 성(聖)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팔 수 있는 노예가 있습니다. 폐하께서 명령만 내리신다면 원주민 모두를 아주 쉽게 노예로 보낼 수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전혀 무기를 다룰 줄 모릅니다." 그래야 자신이 발견한 땅의 가치가 인정되는 거니까.


1492Miles라는 이름의 브랜드가 있다. 그 회사의 홍보 컨셉은 대략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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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란 COLUMBUS가 AMERICA 대륙을 발견한 해로서 탐험가의 도전정신을 상징하며 거리단위인 'MILES'와 결합하여 진취적인 모습과 실용적이며 편안한 AMERICAN STYLE을 추구한다.

IMAGE AMERICA의 상징인 자유 속에서 젊음이 나타내는 편안하고 깨끗하고 심플한 이미지의 캐주얼을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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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의 도전정신? 거리단위는 어째서 Miles라야 할까? 편안한 아메리칸 스타일? 아메리카의 상징인 자유? '도전' '자유' '편안'은 나도 좋아하는 말들이다. 그런데도 왜 이리 거부감이 드는 것일까? 어머니 대지를 사고파는 서구출신 미국인들에게만 아메리카가 자유로운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곳에 원래 있던 '원주민'들은 지금 그 곳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자유는 가짜인 것이다. 도전? '원주민'들이 본래의 자기 자리를 찾으러 '도전'한다면? 그건 순식간에 '도전'이 아니라 '반란'이 되어버릴 것이다. 편안? 인디언 보호구역에서는 인디언들이 편할까?... 노암 촘스키Noam Chomsky는 1993년 『501년 정복은 계속된다 Year 501: The Conquest Continues라는 책을 썼다. 1993-501=1492이다.


얼마 전, 학교의 가을 정기전엘 응원하러 갔더니 동료들이 모두 1492Miles의 손수건(?)을 손에 감고, 두건으로 쓰고, 목에 휘감고 있었다. 웬일일까. 아마 홍보차 나눠줬겠지... 1492Miles의 물결 속에서 박두진의 「해야」를 부르는 그 모습은 안타깝다못해 처연해보였다.(이것은 어떤 포스트콜로니얼리즘적인 것에 바탕을 둔 생각은 아니다. 사이드Edward Said의 오리엔탈리즘을 집에 사두고도 아직 읽지 못한 나는 거기에 어떤 빚을 지고 있다고 느끼기는 하지만, 이건 순전히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일 뿐이다.)

이를테면 이런 생각을 해보았던 것이다, 나는. 일본에서 '1910里' 따위의 브랜드가 유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우리가 듣는다면 어떻게 될까? 모르긴 해도, 아마 1492Miles에 그토록이나 열광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보다 더 대한민국의 열성신도가 되어 일본을 매도하고 일본열도가 가라앉기를 100일 기도하며, 일본의 수십개 화산이 동시 폭발하기를 바라 108배를 드릴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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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우「교육개혁, 무엇이 잘못되었나」, 『창작과 비평』2001년 봄호

이정우 씨의 「교육개혁, 무엇이 잘못되었나」는 비전공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훌륭한 글이라 생각한다. 교육론은 이상적理想的일 수 있어도, 교육정책은 이상적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급한 몇 가지 개혁'부분을 관심있게 읽었다. 거시적 개혁보다 크기는 작으면서도 매우 중요한 개혁들을 내어놓고 있었는데, 현실적인 개혁들이 많이 눈에 띄어서 공감이 많이 갔다. 다만, 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조금 간과한 측면이 있어 안타까웠다.

논리력, 추리력, 상상력, 창의력, 감수성 등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문학 교육은 천편일률적인 현재의 교육을 보완하는 것으로 필수적이다. "언제나 옳은" 답만을 배워온 대학 신입생들의 리포트들은 주장이 서로 대동소이하면서 논리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즉, 창의력과 논리력이 결여되어 있다. 그럼에도 지금 중·고등학교의 문학수업은 거의 잘못되어 있는 실정이다. "또 하나의 암기과목"으로서가 아닌, 제대로 된 문학교육은 시급하다. 뿐만 아니라, 국어는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고 남의 생각을 잘 이해하는 데에도 꼭 필요하다. 최근 서울대에서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한 시험의 결과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현재 고교졸업자의 국어능력은 심각한 정도다. 국어능력 없이는 무언가를 '배운다'거나 '토론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말'과 '글'을 통하지 않는 의사소통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논술의 폐지'만 해도 그렇다. 현재 논술 고사에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뚜렷한 개선방안이 없다면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긍정적인 측면도 생각해야 한다. 실제로 논술 모의고사 등의 시험을 통해, 정형화된 것이긴 하지만,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연습을 하게 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논술의 부정적 측면이 너무 크기 때문에 무시되기 쉬운 이런 장점은, 그럼에도 중요하다. 이런 사정 때문에, 논술을 폐지할 때에는 국어 과목에 대한 더 큰 배려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정우 씨의 다른 제안들은 현실성과 실효성을 함께 가진, 중요한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수행평가, 제 2외국어, 논술 및 면접에 대한 부분들은 평소에 절실하게 느끼고 있던 터였다. 위에서 지적한 몇 가지 문제도 "보다 나은" 교육개혁을 위한 생각일 따름이다. 이정우 씨의 글을 시작으로, 최근 일반적으로 더욱 관심이 고조된 교육개혁 문제에 대해 『창비』에서도 '좌담' 등을 통해 여러 사람의 의견 교환을 통해 더 나은 대안을 찾는 과정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가장 나은" 교육정책보다는 "보다 나은" 교육정책을 찾는 데는 역시 대화와 토론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창작과 비평』2001년 여름호 '독자의 편지' 10-11쪽
Posted by 엔디
TAG 교육,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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