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이니 콤플렉스니 하는 말이 화제다. 그 말만큼 폭력적인 말이 없다. 김현 선생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지금의 독서 대중에게 폭력이 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적이 있다. 어쨌든 한 번 '열등감'이나 '콤플렉스'로 낙인찍히면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그게 평생 아니면 영원히 간다.

정신분석 전문가도 아니고, 주치의도 아닌데, 본인도 모르는 콤플렉스를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잘 집어내는 것일까. 이 열등감론이나 콤플렉스론의 무서운 점은, 상대가 반발하면 반발할수록 꼭 신빙성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필승의 법칙이다. 그러나 그 논지는 대개의 경우 과학적이지 못하다.

상당한 사람들이 당나라 황제가 선덕(여)왕¹에게 모란꽃 그림과 꽃씨를 보냈다고 알고 있다. 선덕왕은 대뜸 그 꽃에 향기가 없을 것이라 예언하고, 그것은 당나라 황제가 짝이 없다고 자신을 비웃는 것이라고 했다는 일화이다. 이것은 삼국유사에서 비롯한다. 하지만, 삼국사기를 보면 당나라가 신라에 모란꽃 그림과 꽃씨를 보낸 것은 전왕인 진평왕 때다(前王時 得自唐來牡丹花圖幷花子).²

*¹ 삼국사기에는 다만 선덕왕善德王이라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² 물론, 이는 지은이들의 잘잘못은 아니다. 김부식은 역사 서술에 철저했을 뿐이고, 일연 스님도 설화에 충실했을 뿐이다. 둘의 생각은 각기 이와 달랐다. 김부식은 선덕왕편 마지막의 논평論을 통해 "신라는 여자를 도와 세워 왕위에 두었으니新羅扶起女子 處之王位 […]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國之不亡幸也"라고 한 반면, 일연 스님은 선덕왕이 세 가지를 예견한 것을 중요한 기사로 다루고 있다.

삼국유사가 본래 설화들을 수집해서 엮고 쓴 책이라는 점을 기억해본다면 역사 기록으로서는 삼국사기가 더 신빙성이 있다. 선덕왕에게 열등감이 있을 것이라는 건 당대의 혹은 후세의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선덕왕은 있지도 않은 콤플렉스를 가진 불우한 왕이 되고 만 것이다.

거칠게 말한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일인데도, 남의 속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곡된 것은 말의 '진의'가 아니라 먼저 지레짐작하는 속셈이다. 그리고 그 속셈은 우월감에서 나온다. 말씀 단속 생각 단속 잘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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