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말한 것은 하이데거였다. 언어가 먼저인지 '존재'가 먼저인지가 '닭과 달걀의 변증법'과 같은 쓸모없는 싸움이라 일컫더라도, 우리 '근대'사 속에서 등장한 서구어의 번역어들을 보면 하이데거 쪽의 손을 은근히 들어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존재'나 '근대'가 바로 그 번역어들이다. '사회,' '개인,' '권리'와 같은 것들이 바로 그 번역어들이다. 이들 번역어들의 특징은 시쳇時體말로 '썰렁하다'는 것이다. 뜻과 맛은 다르지만 '지나치게 학구적이다'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서구어에서 être, moderne, société, individu, droit같은 낱말들은 평소에 자주 쓰이는 말들이다. 대표적으로 '사회'같은 낱말은 우리 현실에서는 거의 글말文語에서만 쓰인다고도 볼 수 있지만, 영어의 society는 입말口語과 글말에 두루 쓰이는 말인 것이다. 2003년 출간된 4판 『롱맨현대영어사전Longman Dictionary of Contemporary English』의 society 항목을 보면 이 낱말이 글말written에서 자주 쓰는 1000낱말 중의 하나인 동시에, 입말spoken에서 자주 쓰는 1000낱말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부터 생긴 것일까. 대개의 번역어들을 '근대' 일본에게 빚지고 있는 우리는 일본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바로 '근대' 일본에서 번역어들이 어떻게 생겨나고 정립되었는가를 추적하는 글이다. 말하자면 번역어의 계보학을 세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각 낱말의 세세한 계보는 책 자신에게 맡겨두고 그 맨 아래층에 깔린 저자의 생각을 읽어보면 이렇다. "일반적으로 어떤 번역어가 선택되고 남는가 하는 물음에 답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문자의 뜻으로 보아 가장 적절한 말이 남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가장 번역어다운 말이 정착한다." (177쪽)

지금은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한겨레 신문 이상수 기자는 『창작과 비평』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말 철학 용어에서 생소한 한자가 지나치게 많아 우리에게 '가짜 어려움'을 주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최근에 '우리말로 철학하기'의 운동이 일고 있는 것도 실로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윤구병 선생 같은 분도 싸르뜨르의 L'Être et le néant의 우리말 제목은 '있음과 없음'이 훨씬 더 적합하고 원어의 뜻에도 가까운데 『존재存在와 무無』로만 옮겨지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고민은 사실 일본에서도 일찍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를 소개하고 있다. 후쿠자와는 그의 벗과 대화하면서 "자네와 같은 이들은 서양 원서를 번역하는 데 한결같이 네모난 문자(한자를 뜻함)만 사용하려 하는데 그것은 어째서인가?"(45-46쪽)라고 물으며 서양어를 자연스러운 일본어로 옮겨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했던 것이다.

우리도 '피투성被投性의 존재'같은 말을 버리고 '던져진 존재'로 가려고 하고 있다. 후쿠자와는 후년에 할 수 없이 스스로의 소신을 꺾고 '사람들이 많이 쓰는' 번역으로 전회했다고 하는데 우리의 이번 시도는 어떨까. 언젠가 우리말을 대상으로한 '번역어가 생긴 유래'라는 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번역어 성립 사정
야나부 아키라 지음, 서혜영 옮김/일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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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의 사회도 근대 이전의 사회만큼이나 소수자가 억압된 사회이다. 여기서 근대가 시대를 가르는 기준이 되는 것은, 그 시기가 스스로를 '이성理性의 시기'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는 이성에 윗점을 찍으면서 그것이 중심이 되면 '인권'과 같은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고 믿는다. 꽁뜨 이후의 이성중심주의 혹은 과학주의는 '사실fait'을 중요시하게 되고, 필연적으로 '실증성'을 강조하게 된다.

그것은 역사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실증주의자들은 "역사가들이 도달한 결론은 자연과학자들이 도달한 결론과 마찬가지의 객관성을 지녀야 한다고 믿고 있"어 일종의 '과학적 역사관'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차하순, 62). 물론 학자가 사료를 접했을 때에는 '사료검증'을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상식에 속하는 것이고, 김영한 교수도 같은 글에서 "실증사학과 실증주의 사학과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하며 "우리나라에서 흔히 '실증사학'이라고 말할 때의 '실증'은 […] 사료와 문헌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라는 단순한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채택하는 입장이 '문서사료 중심주의'(우에노 찌즈꼬, 158; 앞으로 쪽수만 기입)인 만큼 '실증사학'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차하순, 61, 276-277).

그러나 실증주의가 붙잡고 있던 '사실'이라는 것이 실상은 유럽·백인·남성 위주로 편향된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글쓴이 자신이 말하고 있듯이 "역사란 항상 현재로부터의 '재심'의 대상"(우에노, 1)이므로 "일단 '정사(正史)'나 '정설(定說)'이 씌어졌다고 해도 그것으로 마무리되는 일은 없"(우에노, 2)다. 상대주의사관의 입장에서 보면 '원래 있던 그대로'의 역사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록이니 사료니 하는 것도 결국은 생기했던 사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기보다 […] 영상이나 관념을 정신 속에 가졌던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차하순, 127). 바로 이런 점에서 마이너리티의 역사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지점이 상대주의이다. 글쓴이 스스로도 "니힐리즘이라기 보다는 그렇기 때문에 소리 높이는 것을 단념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마이너리티의 권한을 위한 주장"(우에노, x)이라고 역설力說하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마이너리티는, 제목에서 나타내고 있는 바대로, '민족' 혹은 '여성'으로 환원되어버리는 '나'를 체험하는 사람들이다.

마이너리티의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했다. 글쓴이는 I장에서 '전후사의 패러다임 전환', '여성사의 패러다임 전환' 등이 절을 따로 마련해 '사학 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고찰했다. 또 II장에 와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패러다임들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그 안의 가부장적 요소들을 정밀하게 지적하는 작업을 해냈다. 그러나 이러한 패러다임들을 글쓴이가 살피면서 느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페미니즘은 역사상 국민 국가를 초월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우에노, vi)는 것이었다.

'국민 국가nation state'라는 개념은 역시 근대의 소산으로 '하나의 네이션nation'을 전제하고 있다. 민족이나 국민에 대한 관념은 절대로 마이너리티를 고려하지 않으므로 그 안에서 모든 마이너리티는 전체 속으로 귀속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는 본질적으로 가부장제와 그 패러다임을 같이 하고 있으므로 여성의 정체성은 더욱 억압된다. 가령, '위안부' 피해 여성의 개인청구권을 '국가'가 '남편이나 부친'의 역할을 하여 '가해자'와 합의했다는 것을 이유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우리는 국민 국가가 가부장제의 국가적인 확대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성'이야말로 근대=시민 사회=국민 국가가 만들어 낸 바로 그 '창작'이라고. '여성의 국민화', 즉 국민 국가에 '여성'으로 '참가'하는 것은 그것이 분리형이든 참가형이든 '여성≠시민'이라는 배리를 짊어진 채 국민 국가와 운명을 함께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우에노, 95)는 주장이나 "개인 청구권 논리는 국가가 개인(의 이해)을 대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국민 국가를 초월하는 성질을 갖는다. 따라서 피해 여성과 그 지원 그룹이 싸워야 할 상대는 동시에 한일 양국의 가부장제이기도 하다"(우에노, 108)는 글쓴이의 지적은 이에 대한 부연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글쓴이가 "근대·가부장제·국민 국가라는 틀 안에서 '남녀 평등'이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우에노, 94)다고 했을 때, 그는 이음동의어를 세 번 이야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민족'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개념이다. 르낭(64-79)은 민족 개념이 종족, 언어, 종교, 이익공동체, 지리의 어느 것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단언하며 조목조목 그 반례를 든다. 르낭은 민족을 만들어진 것이라고 단언한다(81).

저는 조금 전에 '고통을 함께하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함께하는 고통은 기쁨보다 훨씬 더 사람을 단결시킵니다. 민족적인 추억이라는 점에서 애도가 승리보다 낫습니다. 애도의 기억들은 의무를 부과하며, 고통의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민족은 이미 치러진 희생과 여전히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 희생의 욕구에 의해 구성된 거대한 결속입니다.

비록 르낭은 일단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긍정하고 이를 이용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 개념을 고찰하고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민족이라는 개념이 순간순간 변하는 의지와 관련되어 있음을 지적한 것은 뛰어난 의견이라 할 만하다.

강상중(160-163)도 민족과 에스니시티를 다루는 자리에서 "이들 '인민'의 형태가 지닌 공통점은 '과거의 기억'이라는 정체성"이라고 발언하고 곧 이를 발리바르의 '상상의 기억imaginary memory',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월러스틴의 '과거의 기억', 그리고 사이드의 '심상역사imaginative history'와 연관시킨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민족 혹은 국민의 개념이 게마인샤프트적인 모습을 지닌다는 것이다. 국민 국가는 의심할 수 없는 근대의 산물인데, 그 전제가 되는 네이션은 합리성을 강조하는 근대에 걸맞지 않게 게마인샤프트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근대가 지지하는 이성중심주의 혹은 과학중심주의가 얼마나 허구에 기초하고 있는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근거가 될 것이다.

모든 이데올로기는, 그것이 이데올로기인 한은 절대로 보편적일 수 없다. 민족 혹은 국민에 대한 이데올로기도 마찬가지로 절대로 보편적이지 않다. 이데올로기는 필연적으로 마이너리티를 억압하는 기제로서 작용한다. 임지현(79)은 한영우와 소설가 이인화의 민족주의가 "유신적 민족주의와 에토스를 같이함으로써 박정희의 민중 억압적 조국 근대화론에 대한 역사적 정당화에 기여하고 있다"며 민족주의 담론에서 '민중'이 배제되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중'이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에서 배제된 것이 아니라 '민족'이라는 개념 아래 복속되는 형태로 배제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근대화 시기에 서양인들이 조선 여성을 교육하는 것에 대한 조선 남성의 반발은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김진송(207)은 "「서양인의 조선여자교육방침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라」에서 오천석은 서양인이 조선여자를 교육하는 것에 대하여 '감사感謝의 염念과 수치羞恥의 염念'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고 적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가 "'민족의 치욕'이라는 가부장제 패러다임"(우에노, 103)으로 가장 먼저 해석된 것은 텍스트에도 제시된 것이지만, 서양인의 조선여성교육까지도 '수치의 염'을 느껴야 하는 가부장제의 패러다임은 근대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세계관을 주지는 않는다는 뼈저린 인식을 가능하게 해 준다. 물론, 이광수의 『무정』에서 여성해방의 중요한 일단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것도 결국은 "여성을 여성적인 것으로부터 거세시키면서 끈내 개화 사상의 이념 구현의 대행자로서만 장치시키려 들고 있는 것"이며, 역시 남성 입장에서 여성에게 교육을 '주는' 것이다(이재선, 229). 근대화 조선 남성들이 가졌던 이런 의식들은 민족 속에 여성을 귀속시키면서 동시에 혹은 귀속시킴으로써 여성을 배제했던 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여성은 '근대주의'를 거부해야 하고 그 소산인 국민 국가를 초월해야 하는 것이다. 글쓴이도 "페미니즘은 국가를 초월해야 하며, 초월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우에노, 93)다고 쓰고 있다. '페미니즘이 국민 국가를 초월해야 한다'는 명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두 국민 국가간의 패러다임이 모두 가부장제 패러다임의 변종이거나 최소한 가부장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던 점에서 명백해졌다. 문제는 '페미니즘이 국민국가를 초월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부분인데, 텍스트에서 우리는 희망적인 언설들을 많이 볼 수 있게 된다.

글쓴이는 "더 이상 누구도 "자매 연대의 전지구화Sisterhood is global"라는 낙천적 보편주의 입장에 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가진 상징성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페미니즘이 마이너리티로서의 여성에 대한 연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나 억압받는 자 모두를 대변하는 모습으로 확대될 수 있다면 '국민국가의 초월'은 더 이상 구호로서만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여성들은 그 일을 해내고 있다. WAW(Women Against War)는 최근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들』이라는 책을 냈다.(
링크:일다로ildaro) 그들은 "그동안 전쟁이나 평화, 국가에 대한 이야기들은 언제나 남성의 것이었다. 여성과 소수자의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목소리들은 없었던 것으로 여겨지거나, 흩어져 버렸다."며 여성의 눈으로 전쟁을 바라보는 것의 중요함을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여성'과 '소수자'가 혼용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에코페미니즘은 생태적인 것에 대한 여성적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나희덕(56)은 "생태적 지향을 지닌 시들조차 계몽적 한계로부터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 가운데서도 "근대적 의식의 견고한 외피를 뚫고 내려가 자신의 무의식 속에서 새로운 현실을 발굴해낸 여성시인들의 활동은 그 한계를 넘어설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할 만하다"며 에코페미니즘과 관련해 여성생태시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더구나 "'여성'의 해체"를 주장하는 페미니즘은 그 자체로 "'남성'의 해체와도 같은 것이다."(우에노, 96) 왜냐하면 "'위안부' 문제가 여성의 '인권 침해'라는 언설로 구성된다고 한다면 '병사'로서 국가를 위해 살인자가 된 것 또한 남성의 '인권 침해'라고 입론하는 것도 가능"(우에노, 207)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의 궁극적인 목적은 다만 '남녀동권주의'가 아니라 '나'의 해방이다. 나를 구성하는 것은 "'국민'도 아니고 '개인'도 아니다. '나'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젠더나 국적, 직업, 지위, 인종, 문화, 에스니시티 등 각양 각색으로 존재하는 관계성의 집합이다. '나'는 그 어느 것도 피할 수 없지만 그 어느 하나만으로도 환원되지 않는다."(우에노, 205)

글쓴이는 I장과 II장에서 2차 대전 당시의 일본내 페미니즘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국민 국가와 젠더를 분석하였다. 그리고 III장에 이르러 ''기억'의 정치학'을 주장하면서 실증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과 상대화를 시도하였다. 하지만 글쓴이도 인식하고 있듯이 상대주의는 늘 니힐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모든 역사가 진실일 수 있다면 모든 역사가 허구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다면 다수자의 입장이 항상 더 힘이 셀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이 책에서 III장은 가장 큰 공헌이기도 하고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다.

역사적 상대주의만 가지고는 다수자의 입장이 더 셀 수밖에 없다면, 페미니즘은 "정사(正史)라는 이름의 남성사"(우에노, 185)를 오히려 뒤집어엎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뒤집어엎는다'고 할 때의 근거는 또다시 모호하다. 이성과 합리성으로 그것이 성공할 수 있을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그것은 결국 또다시 근대에의 종속일 수밖에 없다. 국민 국가 안에서의 페미니즘이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 이 책 I장의 진단은 정확하지만, 이 책 이후에도 페미니즘은 여전히 딜레마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참고문헌

1. 단행본
강상중. 1997.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이경덕·임성모 옮김. 서울:이산.
김진송. 1999.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 서울:현실문화연구.
르낭, 에르네스트. 2002. 『민족이란 무엇인가』, 신행선 옮김. 서울:책세상.
이재선. 2000. 『한국소설사―근.현대편I』. 서울:민음사.
임지현. 1999.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서울:소나무.
차하순 엮음. 1980. 『史觀이란 무엇인가』. 증보판. 서울:청람.

2. 연속간행물
나희덕. 2000. 「생태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그리고 시」, 『창작과 비평』 110호.

3. Referenced Web Site
일다로



내셔널리즘과 젠더
우에노 치즈코 지음 | 이선이 옮김/박종철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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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Modern." 근대로 혹은 현대로 일컬어지는 말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가 "모던"일까? 언제부터가 "현대(혹은 근대)"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시대일까? 현대성의 형성이라는 이 테마는 울분섞인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비단 우리의 근·현대사상 문제일뿐만 아니라 "양이洋夷"의 침범에 무릎꿇고 말았던 동아시아 전체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얼마 전, 사이덴스티커Edward Seidensticker가 쓴 『도쿄이야기(原題:Low City, High City)』 가 출간되었다. 야마노테(동경 중심부)와 시타마치(동경 외곽의 서민 거주지)를 나누어, 메이지유신과 메이지 천황으로 상징되는 일본의 근대화를 작은 문화상文化象에서부터 그려내고 있었다. 당시 일인들이 개항을 받아들이는 태도에는 데카당스decadence한 것들이 묻어나 있기도 하였고, 전통에 대한 혐오로까지 전이된 근대화에로의 열망같은 것도 나타나 있었다. 예를 들어 도쿄에 대지진이 났을 때, 어느 작가는 이렇게 생각했다고도 하였다:

나는 그 대지진 때에, 자신이 살았다고 깨달은 찰나 요코하마에 있는 처자의 안부를 걱정했지만 거의 같은 순간에 '어이쿠, 이제는 도쿄가 좋아지겠구나!' 하는 환희가 솟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샌프란시스코는 10년이 지나자 예전보다 훌륭한 도시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도쿄도 10년 뒤에는 멋지게 부흥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야말로 상하이 빌딩이나 마루노우치 빌딩처럼 외연한 대건축물로 전부 채워지게 될 것이다.
한데, 이러한 현재의 시각에서 본다면 상당히 삐뚤어진 듯한 시각은 도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서울에도 똑같은 모습이 있었다. 그것을 "현대성(근대성)"이라고 부른다면 1910-1930년대가 바로 우리에게 있어서의 "현대성(근대성)의 형성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광수의 『무정』에서 볼 수 있듯, 당시의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바로 모더나이제이션이였다. "신新", "신흥新興", "모던" 등에서 보여지는 모습이 바로 그런 것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근대화"라는 것이 제국주의를 통해 유입된 진보사관 때문인지 오로지 서구화만을 의미할 따름이었다. 당시의 개명한 사람들은 그래서 계몽적으로 그것들을 주입하기에 바빴고, 초조해하기까지 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저들을…… 저들이 아니라 우리들이외다. 저들을 구제할까요?"
하고 형식은 병욱을 본다. 영채와 선형은 형식과 병욱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병욱은 자신이 있는 듯이,
"힘을 주어야지요! 문명을 주어야지요!"
"그리하려면?"
"가르쳐야지요! 인도해야지요!"
"어떻게요?"
"교육으로, 실행으로."

이광수, 『무정』
영국에 『London』이 있는 셈으로 조선에 『서울』이 생긴 것을 나는 몹시 반가워하였다. 이 우연한 일이 아니오 뜻이 깊은 것이라 생각하였다. 이 무슨 이상한 좋은 징조가 아닌가 하였다.
< 서울>이여 <서울>이여. 네 부디 영국의 런던처럼 되어라. 너 <서울>로 말미암아 조선을 영국처럼 되게 하여라. 그를 문명과 자유와 평화로 뒤덮게 하여라. <서울>이여 <서울>이여 너는 하늘로 하강한 천사로다.

추호, 「서울잡감」, 『서울』1920년 4월호.
이러한 초조함의 원인은 무엇일까? 진화란, 진보란 어떤 종류이든 그 나아감evolution에 대한 근거를 갖게 마련인데, 그렇다면, 나아가는 대로 가만히 두면 될 것이 아닌가? 어째서 이렇게도 초조해하는가? 그것은 근대화가 제국주의 논리와 얽혀있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의 계몽운동이나 문명론은 "사회진화론이라는 사상을 간접적으로 수용한 측면"이 짙었다. 그런데, 이 "사회진화론"이라는 것이 사실 "제국주의에 침략의 논리를 제공했던 사상"이었다. 이에 따르면 "조선은 정복당해야 할 운명"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개화 지식인들은 조선의 문명화, 근대화를 급박하고 초조하게 이루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한 문명화, 근대화는 곧장 물질문명과 과학문명으로 나타났다. 중절모, 기차, 축음기, 자동차로부터 수풍댐으로 상징화되던 전기, 천리 밖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던 라디오 등은 물질-과학 문명의 총아로 생각되었다. 따라서 당시에는 마치 "우리의 살길은 과학"이라는 듯이 잡지에 하루가 멀다하고 과학 이론과 원리를 설명하는 글이 실렸다. 심지어 가장 최첨단이라 할 수 있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相對律公理)까지 실렸다. (당시는 아직 히로시마 원폭 이전이었다.) 1922년 6월 『신생활』에 실린 신태악의 「대화 신흥물리」에서는 정치인과 과학자를 대비시켜 과학자의 우월함을 내비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학문물과 신문기사들은 과학을 받아들이고 대중화하는데 성공했지만, 그러나 그 근본적인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그것은 "자생적인 물질의 생산과 과학에 대한 연구가 부진했던 식민지적 상황 속에서 현대가 주었던 가장 놀랍고 찬란한 빛은 항상 밖으로부터 비추어지기만 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서양에 경도되기만 할 꺼리일 뿐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식인들은 소위 데카당스에 빠져 허우적대기 일쑤였다. "식민지 지식인"이라는 명패가 주어진 그들은 "치자痴者, 약자弱子, 비겁한 자, 무능력한 자"라는 욕을 들으면서도 "이 세상에는 나 이상의 재자才子도 없고 강자强者도 업다"고는 "혼잣말"로밖에 중얼거릴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반면 대중은 이미 물질 문명에 중독되어 "활동사진 배우의 프로필"이 그들 대화의 중심이었으며 식민 지배자들은 이런 상황에 맞게 이데올로기 전파의 수단으로 활동사진을 활용했다.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되 하위 문화에만 침윤되어 있는 이 모습들에서 서구에 대한 오도를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의 서구란 「모던 심청전」에서 보여지듯 하나의 "색향色鄕"일 따름이었다.

여성의 경우에는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해 교육을 받은 탓인지, 서구에 대한 위와 같은 오도는 적은 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도 페미니즘을 수용하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그 근원지인 서양을 지나치게 동경하고 우러러본 탓으로 서양을 과대평가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나혜석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구미여자는 대체에 있어서 동양여자에 비하여 색이 희고 키가 크고 코가 높고 눈이 깊으며 그 행동은 분명하고 진취성이 많으며 행동이 많고 상식이 풍부하며 매사에 총명하다... 동양남성은 딱딱하고 거칠은 반대로 서양남성은 부드럽고 친절하다. 동양여성은 의지가 박약한 반대로 서양여성은 의지가 강하다. 동양남성이나 여성은 몰상식한 반대로 서양남성이나 여성은 상식이 풍부하다.

나혜석, 「반도여성에게」, 『삼천리』1935년.

한국 여성 해방의 기수라 할 만한 나혜석의 이 글에서 강조된 부분을 보면 당시의 신여성들이 서양을 얼마나 환상적이고 유토피아적으로 인식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는 탄원서는 몇 가지 점에 있어서 당시의 사회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첫째, 기생과 다방마담 등을 포함한 새로운 인간군들이 지녔던 첨예한 현대적 의식과 행동. 둘째, 현대화를 위한 투쟁의 대상이 봉건왕족이나 보수적 권력이 아닌 식민통치자였다는 비참한 현실. 셋째, 현대화의 준거가 분명히 서구(혹은 일본)에 있었다는 점이다. 이 중, 첫째와 둘째는 해방 이후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할 수 있지만 세 번째의 경우는 아직까지도 계속되는 점들이 보여진다.


20세기초의 우리 사회의 여러 상황들을 살펴보다 보면 놀라우리만치 현재와 닮아있다. 그러니까 20세기초의 근대와 오늘의 우리, 즉 현대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발견된다. 그것은 몇 가지 특징적인 것으로 요약가능한데 첫째로는 준거 집단reference group이 구미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서양 나라의 도시들과 서울을 비교하는 것에서부터 서양의 남녀가 우리 남녀보다 우등하다고 느끼는 것에까지 퍼져있었던 사상이다. 그것은 오늘날까지도 없어지지 않고 소위 "선진국"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는 것이 보여진다. 그것은 다음 인용한 기사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연세대의 경우 9월경 두뇌한국21사업단장 등 7명으로 인사평가위원회를 설치해 연구업적에 따른 보상제도를 실시키로 했다. 또 승진기준을 강화해 부교수의 경우 해외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수를 현행 2편 이상에서 10편 이상으로, 정교수는 3편 이상에서 20편 이상으로 각각 높이기로 했다.

『동아일보』, 1999년 7월 26일.
인용문의 요지는 "해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으로 교수를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즉 "선진국"의 학자들이 보는 잡지에 논문을 많이 게재하면 우수한 교수이고 그렇지 않으면 우수하지 못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논문의 "게재수"로 교수를 평가하겠다는 것은 얼치기 서양 흉내내기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학자들이 지난 5년간 발표한 논문 가운데 70퍼센트는 발표 후 한번도 인용되지 않았다."(연세춘추 2000년 11월 20일)

둘째로는, 지식인들의 계몽주의이다. 이광수의 『무정』이후로 "몽매"를 깨우기 위한 지식인들의 지난한 노력은 문맹률이 3%라는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다. 학자들은 외국의 이론을 배워와서 이론의 "선교사" 노릇을 하고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자기가 아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책을 낸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관념적 개조론을 부르짖던 1900년대 초반처럼 학생들의 "정신을 개조"하려고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셋째로는, 대중들의 하위 문화에의 깊은 침윤이다. 당시 지식인들의 안타까움 속에서도 대중들이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것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당시의 여학생들처럼 지금의 여학생들도 영화배우·가수 등의 "꿈의 직업"을 장래 희망으로 쓰고 있다.
영화가 보다 대중적인 장르로 확산되자 '조선의 나이어린 여성들은 하등의 민족적으로나 계급적 의식이 없이 공상적 푸치뿌르(쁘디 부르주아) 심리에서 스크린에 나타나는 미모와 고흔 목소리에 유혹되여' 영화배우로 나서려 했다.

김진송,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 현실문화연구, 1999, 164쪽.
MBC 청소년 라디오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가 최근 서울 중고교생 5백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학생들 47%가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개성 발휘 62% △화려해서 27% △짧은 시간에 큰 돈을 벌어서 9% 순.

『동아일보』1997년 12월 8일.
이러한 키치Kitsch에 대한 집착은 상당부분 첫째의 서구문화에 대한 경도에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그것도 당시와 현재의 공통점이며 둘을 잇는 끈이다. 이에 관련하여 지식인들은 그때도 지금도 키치 비판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를 통하여 살펴본 것은 흔히 "근대"라고 불리는 1900년대 초반의 모습과 "현대"로 구분짓기도 하는 현재의 모습이 실상은 놀랄만큼 똑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에 우리가 가졌던 근대의 이미지는 '척화비', '불평등조약', '개항', '시민의식의 성장', '자본주의 문물의 수입'이라는 문구와 말로 대표되는 매우 추상적인 모습이었다. 현대와 구별되고 그렇다고 봉건시대인 중세나 근세와도 같지 않은 정체불명의 시대였다. 현재까지의 근대화, 현대화에 대한 연구는 이런 현상들과 담론들을 그대로 담아내지 못하였다.

최근 '신문화사the new cultural history'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역사 연구의 바람이 불고 있다. 실제로 우리 역사의 근대는 어떤 관점에서는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의 비분강개한 흐느낌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황성신문』에 줄기차게 반복된 비로드와 중절모의 광고라는 또다른 코드로 주목되는 것이 마땅하게 느껴진다. 기존에 다루어졌던 근대화의 코드는 매우 논리적이지만, 또 관념적이기도 하기 때문에(관념과 논리 또한 근대화의 한 양상이다) 실제적인 사회학적 시각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보다는 오히려 "되도록 일상적이며, 구체적인 현상들에 대한, 시답지 않게 보이거나 시시껄렁한 것으로 취급되는 … 글자료"가 "근대성"을 더 잘 말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근대성"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대성"과 이음동의어로 취급될 수 있으므로 그들 "글자료"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현재를 바라보는 코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피터 버거도 역사학과 사회학의 구별은 매우 어렵다고 말하고 있기도 한데, 그것은 아마도 과거와 현재의 보이지 않는 끈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김진송 지음/현실문화연구(현문서가)

Posted by 엔디
1.

인위적인 10진법의 수를 가지고 시대를 구분하는 일이란 항상 무리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일년year과 십년decade과 백년century이라는 단위가 실제 사람들의 시간 인식에 보편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으므로 10진법을 기준으로 한 시대 구분도 타당한 면을 지니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버릇삼아 '여성의 시대'라 일컬어지는 21세기가 왔다.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다.'라는 명제를 기준으로 20세기(와 그 이전 시대)를 바라보면 20세기(와 그 이전 시대)는 '남성의 시대'가 된다. 오랜 기간 동안 남성 우월주의(혹은 남성 중심주의)의 한 형태인 가부장제에 여성은 눌려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세기에 들어오면서 페미니즘의 노력으로 가부장제라는 옳지 못한, 억압적인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시도되었다.

한편, 20세기는 남성의 시대이면서 동시에 '국민 국가'의 시대였다. '제 2차 세계대전'으로 극명하게 나타나듯이 내셔널리즘이 활개를 치는 시대였던 것이다. 제국주의 열강(동맹국)과 연합국, 그리고 피해국 또는 식민지국가로 나뉘어지는 국민 국가의 시대에 내셔널리즘이라는 이데올로기는 국가와 개인의 방향을 한 길로 잡아버렸다.

그렇다면 기존의 억압적인 상태와 내셔널리즘의 관계를 알아보고 이것을 '젠더'와 연관시켜 살펴보는 시각이 생기는 것은 '여성학' 또는 '여성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당연한 일일 것이다. 국민 국가의 성립과 그에 따른 '국민화 프로젝트'에서 보여지는 내셔널리즘과 '젠더'로 일컬어지는 페미니즘의 입장이 그간 어떻게 협력되는지 혹은 갈라졌는지.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문제점을 가지는지. 또 그것이 현재에 이르러 갖는 의미는 무엇이며 현재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 문제들은 현재의 페미니즘 담론에서 중심에 위치하는 문제들일 것이다. 더욱이 2차 대전과 '젠더'를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문제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지어 20세기의 페미니즘과 내셔널리즘을 고찰하는 것은 현 상황에서 필수적인 문제라고도 보여진다.

2.

우에노 찌즈꼬 『내셔널리즘과 젠더』는 이와 같은 입장 속에서 '젠더사'라고 불리는 '역사 재해석historical revision'에 성공하고 있다. 저자는 먼저 일본 페미니즘사를 고찰하였다. 일찍이 서양문물을 들여온 일본에서는 페미니즘의 역사도 길었다(우에노 찌즈꼬 1999, 4). 하지만 근대 일본의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을 정리해보고 고찰해본 결과 '유감'스러울 정도로 참담한 결론이 내려졌다. 그것은 "일본의 페미니즘은 역사상 국민 국가를 초월한 적이 없었다"라는 것이다(우에노 찌즈꼬 1999, vi). 아마도 그 사실은 근대 일본의 위치와 관련되어 있을 듯 싶다. 일본은 당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이기고 "신세기를 구미 열강과 어깨를 겨룰 동양의 유일한 신흥국"으로서의 흥분과 열광에 싸여 있었다(백영서 1999, 8). 그러한 분위기가 일본과 일본인을 내셔널리즘에로 과도하게 기울게 하였고 페미니스트들도 결국 이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의 내셔널리즘이라는 것은 최근에 와서 '역사의 재심'이 이루어지면서 조망받게 된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의 전쟁협력이 최근 '텍스트 다시 읽기'를 통해 속속 발견되고 있다. 이치카와 후사에, 히라츠카 라이쵸, 다카무레 이츠에 등 일본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일본부인단체연맹'을 통해 전쟁에 협력하거나 '우생優生 사상'에 기초한 글이나 이나 '천황 찬미 문장'을 쓰면서 사상가로서 전쟁에 협력하였던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러한 페미니스트들의 궤적은 크게 '참가형integration'과 '분리형segregation'으로 나뉘어지는데, 그 둘 모두가 내셔널리즘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설정된 것이기 때문에 결국 진정한 의미의 여성 해방과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갖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분리형'은 동맹국들이 취했던 방식으로 '젠더'를 중심으로 총력전 체제하에서도 남녀의 역할분담을 무너뜨리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남성과 여성으로 국민 국가에서의 젠더 경계를 명확하게 함으로써 여성을 국민 국가의 '2류 시민'으로 묶어두게 된다. 즉, "'국가를 위해 죽을 수 있는 명예를 가진 사람'과 '국가를 위해 죽을 수 있는 명예를 갖지 못한 사람'으로 나뉘어, 전자만이 '국민' 자격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일본의 경우 여성 위생병이나 정신대를 통한 여성의 '봉사 기회'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후방 지원 등의 보조 업무를 위한 것이었다. 페미니스트들 중에서도 '차이파'는 '차이 있는 평등 different but equal'이라는 수사에서 보여지는 바대로 '분리형'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가형'은 연합국에서 적극적으로 채용했고 여성 또한 이에 응했다. '참가형'은 여성 징병이라는 특정한 제도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여성이 전투에 참가함으로써 '국가를 위해 죽을 수 없는 2류 시민'에서 '국가를 위해 죽을 수 있는 명예를 가진 진정한 국민'으로 위치를 바꾸려는 시도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전투에 참가하는 것으로 전시 중의 젠더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이것이 옳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참가형'의 한계는 분명하다. '남성과 동등하게'를 표방하는 '참가형' 입장에서는 기존의 남성 권력적인 억압형태에 편입되는 것으로 '1급 시민'이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저자에 따르면, 그렇게 된다 해도 스스로의 '여성성'의 상실이라는 크나큰 손해를 입게 되므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여성해방'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바로 여기서 '참가형'과 '분리형'의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는 페미니즘의 딜레마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 딜레마가 생겨나게 되는 원인을 저자는 내셔널리즘으로 보고 있다. 국민 국가라는 틀 속에서의 여성해방이라는 개념은 필연적으로 '국가에 참가함' 통해 '국가에 통합'되어버린 일본 페미니즘 역사의 전철을 밟게 될 뿐이다.

저자는 "그러므로 페미니즘의 목적은 '국민 국가의 초월'"이라고 보고 있다. 그것은 "'근대·가부장제·국민국가'라는 틀 속에서는 '남녀 평등'이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다 궁극적인 목적은 '여성'의 해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젠더' 경계를 허무는 것을 뜻하므로 '남성'의 해체와도 같은 뜻이 된다.

그러한 일본의 페미니즘 역사와 관련하여 가장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은 바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이다. 기존에 '위안부'는 범죄로 인식되지 않았거나 '젠더' 개념을 빼고 '민족' 개념만을 적용한 범죄로 인식되었다. 그러한 인식이 나타나게 된 배경에는 '가부장제' 아래의 한일 내셔널리즘이 관계하고 있다. 또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패러다임들이 제시되어 '위안부' 문제를 왜곡시키거나 축소시켰다.

대표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민족의 치욕'이라고 인식하는 '가부장제 패러다임'이 있다. 이 패러다임은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인식하여 '위안부' 여성들을 일본의 '전리품'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다. 이런 패러다임 하에서 한국 남성들은 '위안부' 문제를 '창피한 과거'로 인식하여 '위안부' 여성들이 과거의 사실을 말하는 것에 대해서 '민족적 자존심이 상처받는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 반대하는 경향조차 있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가부장제 패러다임'의 전형적인 모습이며 그 자체로 '위안부'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또하나의 성폭력이라 할 수 있다. 또, 이 패러다임 하에서는 '위안부' 여성들의 개인보상조차도 불가능하게 된다. 일본 정부가 "1965년 한일 조약으로 보상이 모두 해결되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의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스스로에게 속한다는 주체성이 인지됨에 따라 '가부장제 패러다임'의 모순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 밖에도 '위안부' 문제를 "우발적이고 비조직적인 '전시 강간'"으로 파악한 '전시 강간 패러다임', '강제 징용' 여부와 '위안부' 여성들의 '금전 수수'에만 초점을 두고 이를 '매매춘賣買春'으로 왜곡시킨 '매춘 패러다임', '매춘 패러다임'에 대항하려다 피해자의 '임의성'을 부인하는 딜레마에 빠진 '성 노예제 패러다임' 등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패러다임도 '위안부' 문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집어내지는 못하였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위안부'가 일본군에 '봉사'하였다고 인식하기도 하였다.

저자는 "그렇다면 이 '위안부' 문제의 '진실'은 무엇인가"를 묻고 그에 답하기를

단지 하나의 '정사(正史)'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역사 속의 소수자, 약자, 억압당한 자, 버림받은 자들……. 그것이 단 한 사람일지라도 '또 하나의 역사'는 씌어질 수 있다.

라고 말한다. 즉, '진실'이라고 여겼던 '위안부'를 보는 기존의 시각들에는 일정부분 모순이 있음이 여기서 밝혀졌다는 것이고, 이제 '위안부' 여성들의 증언에 따라 새롭게 씌어지는 '역사'가 등장할 차례라는 것이다. 이 부분이야말로 역사의 '재심'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여성사에 대해 기술할 때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젠더'이다. 어떤 사람은 '여성사'가 지나치게 '편향적'이라는 지적을 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현재까지의 역사 기술은 모두 남성 중심적으로 '젠더화'된 시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모든 역사는 '편향적'이고 '정치적'이다."라는 명제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얼핏 보기에 '정사'란 '젠더 중립적'인 역사를 이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남성 중심성이 있다. 그러나, 여성사의 패러다임 전환 이후 여성이 '역사의 주체'로 인식되면서 여성의 '가해 책임'이 문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가해자 사관' 조차도 국민 국가를 초월하지 못하여 매저키즘으로 끝나버리게 될 수도 있다.

저자는 이런 의미에서 "내셔널리즘은 극복되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너무 쉽게 개인과 국민 국가를 동일시하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것은 '순수한 감상'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그보다는 '다른 회로'를 발견해야할 필요가 있다. 개인과 국가의 동일시란 내셔널리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우리"라는 개념은 하나의 억압 구조로 작용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지속해서 페미니즘의 국민 국가 초월을 주장해온 저자는 마지막으로 "페미니즘은 근대의 산물이 아니라 근대를 물어 찢고 나온 '근대의 이단아'이므로 '일국 페미니즘'을 지양하고 국가를 초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자매 연대의 전지구화 Sisterhood is global'이라는 낙천적 보편주의는 비현실적인 것이지만 "내"가 집단과 대비해 갖고 있는 수많은 "차이"에 대한 생각을 통해 '여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것처럼 '국민'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나"를 인식하는 것이 스스로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며 적어도 그런 인식이 보편화되어가는 것이 약자 또는 소수의 입장에 서는 페미니즘의 입장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3.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한 저자의 논의의 방식은 시의적절하고도 명쾌하다. 그러한 논의의 중심에는 '젠더' 개념과 '내셔널리즘'이 위치하고 있다. 그간 지속적으로 '젠더 중립성의 신화'를 깨기도 하고 '내셔널리즘'을 집요하게 비판해온 저자의 입장이 전체를 관통하고 있어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돋보인다.

그러한 논의방식으로 저자는 일본군 '위안부'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모든 패러다임을 다양한 논리로 비판하는가 하면, 그런 패러다임에 반대하여 나온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도 '가부장제'의 요소를 찾아 비판하고 있다. 그러한 비판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실천성이다. 저자가 "여성학은 이론 그 자체가 실천"이라는 말을 하고 있기도 하지만, 저자의 논조는 더더욱 실천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것은 그가 "'위안부' 문제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일"이라고 하는 데서도 충분히 짐작해 낼 수 있는 내용이다. 역사학자가 아닌 사회학자로서의 저자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방법론상에서 보여지는 저자의 역사관은 "상대주의" 사관이라고 보여진다. 소위 '역사적 진실'이라는 것이 절대성을 가지지 않고 '역사의 재심'을 통해 상대화될 수 있다는 시각은 적어도 '위안부'와 관련하여 알려진 '진실'에 관해서는 적절한 대응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오럴 히스토리'가 '문헌 자료'보다 열등한 종류의 자료가 아니라는 것을 조목조목 반증함으로서 '위안부' 여성들의 '증언'에 무게를 실어준 점도 저자의 공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내셔널리즘에 대한 비판에서도 저자의 뛰어난 인식은 잘 드러난다. 극단적으로는, 흔히 말하는 집단주의의 일종이라고도 볼 수 있는 내셔널리즘에 대한 고찰을 통해 저자는 내셔널리즘 그 자체야말로 여성을 포함한 약자나 소수집단의 인권을 침해할 공산이 크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흔히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로 번역되는 내셔널리즘은 "나"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우선 순위에 놓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말은 "우리"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으며 "우리"라는 말 속에는 필연적으로 다수집단 중심의 세계인식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거대담론 앞에서 "나"의 인권은 온전히 살아남지 못한다(정현백 2000, 100). 이러한 입장은 이미 사회주의 페미니즘에서의 "여성 문제가 계급 문제에 종속된다"는 주장에서 익히 경험했던 여성 문제에 대한 경시이다(한국여성연구소 1999, 41-44). 저자는 어떠한 종류의 억압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여성학자이면서 끊임없이 마이너리티에 관심하는 저자의 방향성이 잘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다.

4.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내셔널리즘과 젠더』는 아주 민감한 사안을 다루고 있다. '위안부' 문제가 관련된다면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듯이 '역사의 재심'이 그 첫 번째 문제라 할 수 있다. 저자의 집요한 논증과 근거 제시에 "정사(正史)"가 상대화되었다. 그러면서 "어떠한 마이너리티도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유(類)의 말을 저자는 하고 있다. 상대주의란 소수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아주 필요한 것이고 인권적인 것이라 할 만하지만, 지나친 상대주의는 어떤 면에서 비인권적인 부분까지도 인정하는 오점을 남길 수 있다. 즉, 현재까지 정사(正史)라고 믿어져 왔던 것들이 상대화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 자리에 '새로운, 마이너리티를 위한 역사'가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동시에 기존의 '정사(正史)'까지도 부정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 진실'이 상대화될 수 있다는 명제 하나에만 지나치게 이끌려 '역사 재심' 그 자체에만 경도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 상대주의는 니힐리즘으로 빠질 수 있는 위험한 사상이기도 하다. '어떠한 역사도 옳을 수 있다'는 명제는 결국 '어떠한 역사도 옳지 못할 수 있다'는 명제로 환원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는 「서문」에서 이에 대해 "니힐리즘이라기보다는 그렇기 때문에 소리 높이는 것을 단념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마이너리티의 권한을 위한 주장이었습니다."라고 나름의 변명을 내세우고는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더 심각하다. '소리 높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결국 소수집단이나 약자보다는 다수집단이나 강자의 논리(소리)가 더 잘(크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본의 아니게, 기존 체제의 유지를 돕는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저자는 제국주의의 내셔널리즘은 물론, 피해국(한국)의 '대항 내셔널리즘'조차도 비판하고 있는데, 저자 나름대로는 "내셔널리즘이란 '이룰 수 없는 약속'으로 마이너리티를 동원하기 위한 상징"이므로 '대항 내셔널리즘' 내에서도 여성이란 마이너리티에 지나지 않는다는 저자의 인식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민족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당위적으로 그것보다 우위에 있어야 할 민주주의나 약소집단의 인권 등이 과소평가될 위험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동아시아에 있어서는 '민족 문화'라는 이름으로 가부장제와 봉건적 유제를 포함한 지난한 과거의 인습들이 재현되거나 강화될 수도 있다(정현백 2000, 100-101). 하지만 "민족"이 가진 힘의 효과라는 것도 또한 엄청나다는 것이 20세기를 통하여 밝혀진 것도 무시 못할 사실이다. 그 가장 큰 예로 동서 독일의 통일을 들 수 있다. 그들이 통합의 즈음에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다 Wir sind ein Volk'라는 구호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저자도 들고 있는 예이지만, 그만큼 민족이라는 개념이 할 수 있는 일은 엄청나다는 것이다. 또, 공통의 언어·문화·경험·상징·역사 등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사회적 의사소통 능력을 보더라도 저자의 탈민족주의는 민족주의의 폭발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강만길 외 2000, 53-57). 민족주의의 폭발력이 엄청나다면 민족의 그 폭발력의 방향을 바꾸어 여성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이 지나친 희망적 언설이라고는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5.

마이너리티는 어느 집단에서고 있게 마련이다. 수천 수백 년간 역사의 마이너리티가 바로 '여성'임을 생각할 때 저자가 노력하고 있는 젠더사에 대한 의의는 분명하다. 성의 구별없이 전 정사(正史)를 '젠더화'하려는 노력이 결실을 맺어 그간의 역사란 모두 남성사였다는 것이 밝혀진 참이다. 역사적으로 보이는 '젠더 중립성의 신화'가 깨어진 것이다. 또, 20세기 근대 내셔널리즘 하에서의 마이너리티이기도 한 '여성'의 입장에서는 '내셔널리즘을 젠더화Engendering nationalism'하는 입장을 취하여 근대 국민 국가에서의 '젠더 중립성의 신화'를 격파하였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그 중에서도 역사의 끊임없는 현재성을 강조하였던 점은 무엇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21세기를 살아갈 여성이 고민해야 할 가장 큰 부분이 바로 '내셔널리즘'과 '젠더'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 책의 의의는 새삼스럽게 다가올 것이다.


참고서적

우에노 찌즈꼬. 1999. 『내셔널리즘과 젠더』. 이선이 옮김. 박종철 출판사.

강만길 외. 2000. 「좌담: 통일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창작과비평』 2000년 가을호.
백영서. 1999. 「20세기형 동아시아 문명과 국민국가를 넘어서 - 한민족 공동체의 선택」. 『창작과비평』 1999년 겨울호.
정현백. 2000. 「통일운동과 여성주의」. 『창작과비평』 2000년 가을호.
한국여성연구소. 1999. 『새 여성학 강의』. 동녘.



내셔널리즘과 젠더
우에노 치즈코 지음 | 이선이 옮김/박종철출판사

Posted by 엔디
꽤나 두꺼운 책을 가지고 몇 번 낑낑대다가, 엊그제서야 다 읽었다. 이 책을 추천했던 학교 앞 서점 '오늘의책'의 리뷰誌나 여러 신문 서평들의 저자들과는 달리 나는 이 책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체 게바라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전혀 모르는, 이른바 '문외한'이었다. 때문에 '체'라는 이름이 그들에게 가져다 줄 향수를 나는 공유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장 꼬르미에는 그런 나에게도 배려를 했던가보다. 게바라의 삶에 나는 깊은 감동을 지고, 이 감동은 아마도 꼬르미에에게 빚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꾸바의 혁명에 뛰어든 에르네스또 게바라의 용기와 신념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미 제국주의의 사주를 받은 바띠스따 정권을 몰아내기 위해 지병인 천식에도 불구하고 체는 혁명 전선에 뛰어들었다. 처음에 의사신분으로 참전했던 그는 특유의 성실성과 탁월한 전략 등에 힘입어 대장의 계급까지 올라가게 된다.

그러나 그의 혁명 투쟁은 그에 그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의 혁명 성공의 기준은, 국민 의식의 변화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진정 농민들과 함께 살아 가는 사람이었다. 게릴라 시절 체가 몇 번 농민들에게 속아, 적의 침입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것은 명백히 실수라 할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이것이 오히려 그가 진정 농민을 아끼고 함께 살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게릴라들이 농민을 '이용'하려 했던 것과는 차이가 보인다.


마오쩌둥의 대장정에서 그는 농민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밥을 얻어 먹었거든 마을에 우물을 파주고 오라는 식으로 농민에게 부당한 신세를 지는 걸 막았다. 그런 점에서 체는 마오의 사상적 적자이다. 하지만, 마오가 자국의 안녕에 치우쳐 타국을 도울 여념이 없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체는 내셔널리즘을 뛰어넘은 위인이다. 그의 편지 말미에 항상 적혀 있던 문구는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영원히 전진

이었다. 그러나, 이 편지는 그가 꾸바의 장관으로써 보냈던 편지이다. 그가 태어난 것은 아르헨티나인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아마도 그의 고향은 라띤 아메리까 전체... 그리고 크게는 전 세계였던 것이다. 홍세화씨가 만난 사람중에 가짜 인종주의자가 있다고 하는데, 그는 자기는 철저한 인종주의자이지만, 세상에 한 종류의 인종밖에 안 보인다고 말했단다. 바로 인류라는 인종이란다. 체의 마음속에는 분명 세계라는 조국이 있고 인간이라는 민족이 있을 뿐일 것이다.
체를 따라 외쳐본다.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영원히 전진!

작년 여름에 썼던 이 글을 다시 읽고서...



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실천문학사

Posted by 엔디
TAG 서평,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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