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우석 감독의 데뷔작인 영화 '변호인'은 성공한 영화다. 개봉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관객 수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일반적인 서사 예술의 문법으로 봐도 변호인은 별다른 흠을 잡을 수 없는 영화다; 아니 흠을 잡을 필요가 없는 영화다. 학벌이나 환경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던 한 사내가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고, 그 다음에 보다 의미있는 일을 위해 사회적인 성공을 저버리는 이야기. 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 굳이 작은 흠을 찾자면 '속물 변호사' 송우석이 갑자기 '인권 변호사'가 되는 모습이 너무 급작스럽다는 점 정도가 될 것이지만 줄거리 자체는 수백 번도 더 들어본, 매끈한 것이다.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덧칠하는 순간 관객은 구름처럼 몰렸다.

지금까지 관객 1000만 명을 넘은 한국 영화는 모두 9편이지만, 그 가운데 감독의 데뷔작이었던 작품은 변호인 하나뿐이다. 이런 사실은 변호인이 이만큼 성공한 것이 단지 영화가 좋아서는 아닐 것 같다는 의심이 들게 한다. 노무현을 그리는 어떤 정치적 상황에 기댄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제작자인 최재훈 위더스필름 대표는 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전제조건이 '노 전 대통령의 색깔을 최대한 빼자'는 거였"다고 밝히고 있고, 조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주연배우인 송강호도 언급했듯이 출연진도 영화 제작발표회에서 노 전 대통령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느 중학생들이 만해 한용운의 시 '알 수 없어요'에서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라는 싯귀에 밑줄을 긋고 태연히 '님'이라고 해답을 적듯이 사람들은 너나없이 변호인이라는 영화 제목 아래 밑줄을 긋고는 아무 의심 없이 노무현이라고 해답을 적었던 것이다.

감독도 배우들도 이내 그 '해답'에 화답했다. 양 감독은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왜 노 전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그가 청문회에서 보여줬던 모습과 1992년 3당합당 때의 기억 때문이라고 답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출연진은 2014년 1월 23일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고 송강호는 방명록에 "영광이었습니다"라고 적었다.

제작진과 출연진은 이런 태도는 마치 변죽만 열심히 때리면서 관객이 직접 복판을 울리기를 기다린 것처럼 보인다. 한가운데는 놓아두고 둘레만 애무하는 것 같은 모양새다. 의도한 것이라면 뛰어난 마케팅이다.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조차 "변호인은 픽션 드라마이지 논픽션 드라마가 아니다"라고 발언해 영화사의 이런 마케팅에 도움을 준 셈이 됐다.

영화평론가 허지웅은 주간경향에 실은 글에서 "변호인을 감상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단점은 영화 외부로부터 발견된다"면서 변호인의 단점으로 '일베'의 존재와 '열성 노무현 팬덤'의 존재를 들었다.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고 잘 만들어졌지만 영화 바깥의 '어른의 사정'이 걱정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사실 일베의 존재와 열성 노무현 팬덤의 존재는 이미 변호인이 보유한 상업적 장점이다. 그리고 '어른의 사정'은 이미 영화 속에 있다.

변호인에서 가장 중심이자 영화의 클라이막스가 되는 부분은 역시 재판이다. 조선일보는 부림사건을 수사했던 고영주 당시 부산지검 공안검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 변호인이 실제 사건과 얼마나 달랐는지를 하나하나 지목하려 했고, 한겨레는 부림사건 피해자들인 고호석 씨와 송병곤 씨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변호인이 얼마나 실제 사건과 비슷한지를 보여주려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림사건이 실제 변호인과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가가 아니다. 실제 부림사건에서 문제가 됐던 책이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였든 무타이 리사쿠의 '현대의 휴머니즘'이었든, 내부고발자 군의관이 있었든 없었든, 국밥집 아들의 모델이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별로 상관 없다. 그 정도의 각색은 여느 영화에서나 다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노무현의 색깔을 최대한 빼려고 노력했다는 이 영화에서 노무현에 대한 미화가 있었다면 얘기가 다르다.

문학평론가 유종호(1998, 21-28)는 프랑스 시인 자끄 프레베르의 시 '위대한 사람'을 인용하면서 전기(자서전)을 고쳐 쓰는 일의 허영심을 지적한다. "내가 그를 만났던/ 돌 깎는 사람 집에서/ 그는 후세를 위하여/ 제 몸의 치수를 재고 있었다"는 '위대한 사람'처럼 제 몸의 치수 재기를 위해 자꾸 과거를 윤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유종호는 염상섭 만세전의 해방 이전 판본과 해방 이후 판본의 비교를 시도한다:

"요보말씀예요? 젊은 놈들은, 그래도 제법들이지만, 촌에 들어가면 대만의 생번(生蕃)보다 낫다면 나흘까, 인제 가서 보슈…… 하하하,"

'대만의 생번'이란 말에, 그 욕탕에 들어 앉었든 사람들이, 나만 빼어놓고는 모다 킥킥 웃었다. 나는 가만히 앉었다가 무심코 입살을 악물고 치어다 보았으나, 더운 김에 가리워서, 궐자(厥者)들에게는 자세히 보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말이지, 나는 그 우국의 지사는 아니다. 자기가 망국민족의 일분자이라는 사실은 자기도 간혹은 명료히 의식하는 바요, 따라서 고통을 감(感)하는 때가 없는 것은 아니나……

유종호는 이렇게 1924년판 만세전을 인용해놓고 1948년판과 비교하면서 "검열당국에겐 거슬리는 말이지만 그대로 나와 있고, 제4텍스트(1948년판)에서도 크게 바뀐 것은 없다"고 평가한다. 바꿔 말하면 해방 이전에도 할 말을 다 했고, 해방 이후에도 우국지사였던 양 윤색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장들은 어떨까: "증인이 말하는 국가는 이 나라 정권을 강제로 찬탈한 일부 군인들, 그 사람들 아니야?" "니는 애국자가 아이고, 죄 없고 선량한 국가를 병들게 하는 버러지고 군사정권의 하수인일 뿌이야."

부림사건의 희생자들이 당시 변호인이었던 노무현 변호사가 판사와 싸웠다는 증언을 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신군부의 서슬이 퍼렇던 1981년에, 모든 발언이 속기로 기록되는 재판장에서 노무현이 저런 단어까지 썼을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이런 발언은 이 영화가 1981년이 아니라 2013년에 개봉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대사이기가 쉽다. (더구나 극중 송우석은, 국밥집 난동 신에서 보듯, 저런 종류의 의식은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위험하다. 노무현은 분명 20세기말에서 21세기초 한국 사회의 한 문제적 개인이지만, '후세'가 알아서 그 몸의 치수를 다시 재서 윤색하는 것은 그 자신을 위해서도 나쁘다.

이 작품이 만약 부림 사건 재판이라는 시공간을 이용해 신군부 초기의 어떤 시대적 진실을 내보이려 했다면 일부 각색이 있었더라도 대체로 좋은 영화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변호인은 부림사건으로 끝맺지 않고 1987년 노무현에 대한 구속적부심에서 변호사 99명이 공동변호인단을 꾸린 장면을 마지막으로 하고 있다.

양 감독은 이런 결말에 대해 "송우석이 7년 뒤에도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이유를 밝혔지만, 이 부분도 이 영화가 '부림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니라 노무현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임을 드러내 주는 대목이다. 이 영화는 노무현의 색깔을 뺀 영화가 아니라 속속들이 노무현의 색깔로 채워진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전기영화는 대체로 흥행을 위해서 많은 사실을 각색하거나 윤색하고서는 영화 바깥에서는 '이 영화는 실화'라고 광고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 그대로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노무현은 부림 사건을 나서서 맡고 재판장에서 열심히 싸운 것만으로 이미 훌륭한 변호사다. 적어도 그 시점 그 공간에서 노무현이라는 개인은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다. 거기에 대한 덧칠이나 개칠은 오히려 그 작품을 훼손하는 일이 될 성 싶다.

참고문헌:

유종호. 1998. 문학이란 무엇인가. 서울:민음사. 증보판.

슬로우뉴스에 실린 글.

Posted by 엔디
"~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 하는 이명박 댓글 놀이가 유행이다. 알다시피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에 이은 두 번째 정치 패러디 댓글이다. 민노씨.네 블로그를 통해 이 댓글 문화에 대한 반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명박 댓글 놀이가 찌질한 이유는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 댓글이 이명박이 아니라 이명박을 찍은 유권자들을 향한 풍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찌질하다고 주장하는 글이다. 하지만 나는 이 논의에 동의할 수 없고, 이와 같은 댓글 놀이의 한계는 인정하고서라도 재미있으면서도 일말의 의미가 있는 이 놀이는 계속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표절하면 어때 책 많이 팔아서 경제 살리면 그만이지

경제 살리면 그만이지 댓글



1.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vs. "경제만 살리면 되지."

원문에서 "노무현 때문이다."가 수구 언론을 향한 것인 반면 "경제만 살리면 되지."가 유권자를 향한 것이라고 했는데 무엇보다 나는 거기에 100% 동의할 수 없다. 원문에서 두 풍자의 차이를 판단한 근거는 나타나 있지 않다. 추측컨대 "노무현 때문이다."의 문장에는 노무현이 들어가지만 실은 수구 언론을 향한 풍자인 반면, "경제만 살리면 되지."는 이명박의 언어 자체를 풍자의 대상으로 삼아서 언어의 객체와 풍자의 객체가 동일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추측이므로 확신할 수 없다.) 기실 지금껏 "노무현 때문이다."의 풍자성을 오독하고 실제로 그것이 노무현을 비난하는 것으로 인식한 사람들도 꽤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이명박 댓글 놀이를 해서는 안 될 이유는 될 수 없다. 무엇보다 "경제만 살리면 되지."가 이명박을 찍은 유권자를 향한 것이므로 찌질하다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역시 수구 보수 언론인 조중동을 구독하는 대다수의 국민들을 조롱하는 것이 될 뿐이기 때문에 그 민주주의적 마인드에서의 찝찝함은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두 풍자의 층위는 똑같은 것이다.


2. 풍자의 힘?

나는 풍자가 큰 힘을 갖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본래 풍자라는 것은 패배자의 소극적 저항일 뿐이다. 현실 정치에서 패배한 이가 승리자에 대하여, 그래도 나는 너보단 이러이러한 면에서 낫지, 하고 자위하는 것 정도가 일반적인 풍자의 모습이다. 이상섭 선생은 『문학비평용어사전』의 '풍자Satire' 항목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1997, 280-281):

이처럼 풍자하는 사람은 풍자의 대상에 대하여 우월한 태도를 유지한다.
[…]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의 도덕적, 지적 표준은 특수한 교리에 근거하거나 보통사람들이 올려다 보지 못할 만큼 높은 것은 아니다. 풍자가의 수준은 그의 독자들이 암암리에 자연스럽게 수긍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고, 그가 공격하는 대상은 독자들도 역시 불찬성, 경멸하는 대상이다. 즉 풍자가는 자신의 입장을 변호함이 없이 독자들을 자기 편으로 갖고 있다. 독자는 풍자가의 공격에 자연스럽게 기꺼이 합세한다.
[­…]
현실에 대한 도덕적 비판을 통하여 사회악을 제거시키겠다는 풍자의 목적은 실제로 실현되지는 않았으니, 그런 의미에서 풍자는 언제나 실패작인 셈이다.

즉 좀더 과격하게 말하자면, 풍자는 ① 내가 대상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에서 출발하지만 ② 실제로 풍자가인 내가 그렇게 높은 수준인 것은 아니고, ③ 풍자의 독자 역시 새로이 유입되기 보다는 같은 편끼리의 낄낄거림에 불과하며 ④ 그런 점에서 풍자는 현실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데에는 항상 실패한다는 것이다. (물론, 가령 『걸리버 여행기』와 같은 수준 높은 풍자 예술의 경우는 예외이다.)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 자신이 있는 정권은 풍자를 크게 탄압하지 않는다. 김지하가 김수영(1981, 184)의 「누이야 장하고나! - 新歸去來7」의 "누이야 / 풍자諷刺가 아니면 해탈解脫이다"를 (아마 의도적으로) 오독하여 「풍자諷刺냐 자살自殺이냐」를 씀으로써 풍자를 비장하게 만들어버렸지만(김지하 1993, 141-159), 사실 풍자는 잠깐의 웃음만 줄 뿐 전망이 부재한 양식이다. 그러니까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나 "경제만 살리면 되지." 모두 그런 풍자의 약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잠깐 촌철살인의 웃음이나 '썩소' 한 방 날려주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되는 것이 풍자다. 풍자의 역할은 거기에서 마치는 것이다. 전망을 보고 비전을 보려면, 미안하지만 누리꾼들 스스로가 풍자에서 더 나아가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3. 그럼에도 풍자의 힘!

쓰다보니 풍자를 너무 깎아내린 셈이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나로서는 이만한 풍자만으로도 일단 만족한다. 아직 누리꾼들이 (어느 정도는 재미로 빠져들기도 하겠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판단하고 있거나, 최소한 이 풍자 댓글 놀이를 통해 사후에라도 판단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쥐띠해인데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

ⓒ여름하늘, http://skysumm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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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김수영. 1981. 『김수영 전집』. vol. 1. 詩. 서울:민음사.
김지하. 1993.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시선집』. 개정판. 창비시선 33. 서울:창작과비평사.
이상섭. 1997. 『문학비평용어사전』. 신장판. 서울:민음사.
Posted by 엔디
1. 조선의 임금들

"정조의 시대"라고 한다. 정조와 관련된 책이 쏟아져 나오고, TV 드라마도 정조 열풍이다. 조선조의 임금 가운데 현대인들의 지지와 존경을 한몸에 받는 인물은 많지 않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과 영조의 뒤를 이어 개혁을 펼친 정조, 둘 뿐인 것 같다. 경국대전을 만든 성종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고, 사대주의를 탈피하기 위해 노력했던 광해군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다. 세조에 대한 심정적 거부와 이성적 칭찬은 이광수의 『단종애사』와 김동인의 『대수양』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세종대왕의 업적은 훈민정음 창제가 가장 빛나는 성과로 이야기되고 있다.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말하자면, 사람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처음 듣는 서양의 언어학자들과 작가들의 이름을 대면서 "그들이 칭찬했다"고 입을 모은다. 그 자신이 당대에 가장 훌륭한 언어학자였던 세종대왕에 대한 칭찬은, 그 가운데 엄청난 자위적 민족주의가 개입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나 역시 유보할 필요 없이 인정하고자 한다. 15세기에 (중국의 성운학聲韻學을 뛰어넘을 만한) 그만큼의 언어학적 지식을 갖추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백성들의 말글살이를 바꾸고자 했던 세종대왕은 진정한 하부구조의 개혁자였다.

정조는 어떠한가?


2. 정조 콤플렉스

사람들이 정조를 떠받드는 이유는 세 가지다: 그가 개혁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적 대안의 사례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의 '개혁'이 실패했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이유는 개혁적 정치 지도자들에게 일종의 콤플렉스가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개혁을 기치로 들고 나오는 대통령들은 알게모르게 정조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개혁자라는 것은 기존의 것을 뒤집을 만한 카리스마와 능력을 말하는 것이고,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적 대안이라는 것은 곧 민족주의 또는 국가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문제는 정조의 개혁이 중도에 그쳤다는 것이다. 여기서 정치가의 정조 콤플렉스는 절정에 이르는데, 그것은 실패한 혹은 미완의 개혁가들이 정조에 비견될 수 있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개혁적 이미지를 만든 정치가들에 있어서 정조는 하나의 보험이 된다.


3. 개혁자 정조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개혁의 이미지를 가장 확실하게 심어 준 두 대통령은 박정희와 노무현인데, 공교롭게도 정조와 겹쳐지는 '영광'을 입은 대통령도 그렇게 둘이다. 정조가 10년 더 살았다면에  따르면 정조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첫 소설은 이인화(류철균)의 『영원한 제국』이라고 한다. 이인화는 그 소설에서 정조를 시해하고자 하는 노론과 정조를 지키고자 하는 남인의 대립을 다룬다. 그 소설의 결론은 이렇다: 정조가 좀더 살았다면 자주적인 개혁과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이 땅에 뿌리박기 어려웠던 이유는 정조가 너무 일찍 '시해'되어 왕권 강화 정책이 미완에 그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굳이 이인화의 다음 작품인 『인간의 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여기서 정조가 박정희와 오버랩된다는 점을 알아채기는 어렵지 않다. 거의 임금과 같은 지위를 누리던 박정희가 김재규에 의해 너무 일찍 시해되는 바람에 오히려 군부독재가 더 길어졌다는 논리와 그 줄기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박정희 역시 처음부터 자신의 이미지를 개혁자로 만들었다. 그가 5·16 꾸데따를 '혁명'이라고 이름붙인 것부터가 이미지 메이킹의 일환이었다. 대통령 선거에 나올 때에는 팔다리를 걷고 농촌에 가서 '백성들'과 모도 함께 심었다. 그가 시해되었을 때 많은 '백성들'이 진심으로 울었다는 것은 그의 이미지 메이킹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월이 지나 노무현이 등장했다. 그에게서 소중한 가치는 역시 개혁이었다. 노무현은 취임 초기부터 백범 선생과의 비교를 굳이 거부하며, 자신의 벤치마킹 상대로 링컨을 꼽았다. 링컨의 정치 이력과 자신의 정치 이력이 실패 투성이였던 점이 닮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링컨이 가진 개혁자의 이미지를 빌어오려는 목적이 더 크지 않았을까. 정조가 10년 더 살았다면에 인용된, "<한성별곡>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많이 좋아하게 됐으며, 내 연기를 통해 사람들이 그 아픈 부분을 이해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는 탤런트 안내상씨의 발언은 노무현이 현재 처한 상황에 사람들이 정조를 오버랩시키는 일이 얼마나 쉬운가를 여실히 보여 준다. 돼지저금통을 모아 대통령이 된 사람은 이전에 없었기 때문이다. 개혁적 임금인 정조는 노론의 반대에 부딪혀서, 개혁적 대통령인 노무현은 한나라당을 비롯한 수구적인 기존 정치인들에 부딪혀 실패를 맞는다는 스토리다.


4. 근대적 민족주의자 정조

또 정조가 각광을 받는 것은 근대적 민족주의의 모습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조는 자유로운 상업을 발달을 위해 금난전권과 육의전을 철폐하였고, 정약용이 만든 거중기를 이용해 화성을 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와 더불어서 자본주의 맹아론 등 자생적 근대화론의 많은 부분이 정조 치세의 업적으로 평가된다. 그 자신이 책읽기를 좋아해 서양에서 들어온 안경을 끼었다는 기록도 있다(조선왕조실록):

상이 이르기를,
"나의 시력이 점점 이전보다 못해져서 경전의 문자는 안경이 아니면 알아보기가 어렵지만 안경은 2백 년 이후 처음 있는 물건이므로 이것을 쓰고 조정에서 국사를 처결한다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것이다."
上曰: "予之眼視, 漸不如前, 經傳文字, 非眼鏡則難以辦認, 而眼鏡乃二百年來初有之物也, 帶此臨朝, 有駭觀瞻。"
- 정조 52권, 23년( 1799 기미 / 청 가경(嘉慶) 4년) 7월 10일 병인 1번째기사

안경이란,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근대적인 것이라는 이미지를 전유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정조를 통한 근대화론은 좀더 심정적으로 대중에 의해 지지받게 마련이다. 서구 문물의 하나인 안경을 조선의 개혁적 임금이 쓰고 있었다는 사실은, 쇄국정책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는 흥선대원군과 친일파라는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김옥균을 동시에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식민지 근대화론과 자생적 근대화론의 어느 한 편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럴 의도는 물론, 그럴 능력도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대중은 둘 가운데 뒤엣것에 심정적으로 동조하고 있으며, 그것이 정조 신화 또는 정조 콤플렉스의 중요한 축이 된다는 것이다. 어쨌든 '정조-근대화'론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평가하는 하나의 시금석처럼 되어 있는 듯하다.

근대화론은 먼저 경제 성장을 가리킨다.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그의 새마을 운동의 활기를 떠올릴 것이고, 노무현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그가 국익을 위해 추진한 또는 추진 중인 여러 FTA 협정을 생각할 것이다.

한편 자생적 근대화론은 필연적으로 민족주의 감정을 호출하는데, 박정희와 노무현은 그것을 매우 적극적으로 이용한 대통령들이다: 박정희는 먼저 그 자신이 관동군 출신이라는 점을 철저히 숨기며 사람들의 반일감정을 오히려 이용했다. 또 1972년에는 이후락을 이북에 보내 김일성을 만나게 함으로써, 7·4 공동선언이라는 성과를 이루어낸다. 노무현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설치 등에서 반일감정을 자극시켰고, 그간 고조되었던 반미감정 역시 적절하게 이용해서 민족주의를 강화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에 이은 제 2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여기서 두 사람의 행보가 정조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은 이채로운 일이 아니다; 사실 그들이 정조를 따라한 것이 아니라, 개혁적 임금으로 존경받는 정조가 그 두 사람을 위해 호출되었다는 혐의가 크기 때문이다.


5. 정조 개혁의 한계와 실제

사람들이 정조의 개혁의 어디까지를 바라고 있는 것일까. 분명한 시대적 한계와 계급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정조 개혁의 핵심은 (영조를 계승하여) 탕평책蕩平策으로 대표되는 왕권 강화다. 탕평책은 『서경書經』 「홍범조洪範條」의 '무편무당無偏無黨하면 왕도탕탕王道蕩蕩하며, 무당부편無黨無偏하면 왕도평평王道平平하며'라는 글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정조와 남인의 철학은 왕도정치를 위한 왕권강화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그런데, 여기에 이르러 정조의 개혁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분명해지는 것이다: 정조의 개혁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의 개혁의 출발점이 왕권 강화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조는 모든 개혁의 출발점과 완성점을 자기 자신으로 잡았는데, 그것은 정조가 사라지는 순간 개혁의 이유와 지향점이 모두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정조가 시스템을 바꾸기보다 단순히 자기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개혁의 목표를 삼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개혁이라는 것은 노론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개혁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고, 진정한 하부구조의 개혁이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가령 금난전권 철폐만 하더라도 자유로운 시장 경제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노론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혐의가 짙다. 한편 하부구조의 개혁이라 할 만한 연암 박지원의 패관문학에 대해서는, 정조의 호된 질책이 뒤따른다. 노론인 박지원의 개혁적 언어관에 대해 정조는 육경六經만이 진정한 언어라고 하며 순정고문醇正古文으로 글을 지어 바치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널리 알려진 문체반정文體反正이다.

문체반정에서 조선조의 다른 역사를 기억해보는 것이 무리일까. 조선조에서 바를 정正 자가 사용된 것은 대개 개혁이라기보다는 옛것을 지키려는 보수주의의 발현인 경우가 많았다. 사대주의를 극복하고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뛰어난 외교 능력을 선보였던 광해군을 꾸데따로 몰아낸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반정'이라고 이름붙였다. 그들에게 있어 바를 정正이란 명에 대한 사대의식과 같은 구태의 것이었다. 한편, 조선 말의 위정척사도 새로운 것을 사邪로 몰아붙이고 옛것을 정正으로 이름붙인 것이다.

결국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정조의 개혁은 결국 왕권의 강화였고, 그것은 왕권이 절정에 달했던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는 것이었던 것에 불과하다.




6. 다시 정조 콤플렉스

정조와 남인 정약용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그들은 결국 전제왕정이라는 사상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 될 것이다. 대중들 사이에 정조 콤플렉스가 강하면 강할수록 대통령은 임금의 위치로 수렴될 것이며, 민족주의의 유령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결론은 늘 쉽다: 정조를 극복해야 한다.




글을 올린 뒤, 꼭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논지의 글이 나와서 링크를 걸어 둔다.
‘문체’만 부각시키는 게 문제다 : 문화일반 : 문화 : 뉴스 : 한겨레:
12월 4일 추가
Posted by 엔디
탄핵안이 의결되었다. 대통령의 몇몇 말과 행동이 탄핵 사유가 되느냐 안 되느냐는, 탄핵이 발의된 때에 이미 쓸모없게 된 질문이었다. 『한겨레』는 헌법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내용을 12일자 머릿기사로 실었지만, 의미가 없지는 않을지 몰라도 최선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겨레) 하지만, 탄핵소추안이 의결되고, 헌법재판소의 공판만이 남아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이와 같은 의견들이 새로운 국면을 예고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여론과 공론을 수렴하여 스스로 판단을 내릴 것이다. 그 판단은 그들에게 맡겨두자. 우리에게는 우리의 할 일이 있다.

대선 이전에는 서로 으르렁거리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두고 서로 의기투합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회가 하나가 되어 반드시 통과시키는 것은 '세비인상' 밖에 없다는 농담을 두고 보면, 노대통령 탄핵과 세비인상이 어떤 공통점이 있지 않나 하는 당찮은of non-sense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일단 이번 탄핵도 표면적으로는 '국가를 위해서' 발의하고 의결한 것이다. 이른바 '국익'이라는 것은 '부안 사태'와 '이라크 파병', '노조 파업' 등의 상황에서 가장 우선시된 것이다. 그러고보면 노무현의 '참여정부'에 와서도 국익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지고至高의 가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국가가 국익을 추구하는 것은 그릇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국익의 개념이다.

국익은, 따지고보면 이완용이나 이광수에서부터 리승만과 박정희를 거쳐온, 무척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국익의 개념은 지나치게 짧다. 긴 안목에서 국가의 (혹은 국민의) 이익을 따져보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미봉책彌縫策과 같은 국익만이 정략적으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원자력발전을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단기적인 필요만을 바라보며 그것을 '국익'이라고 포장하여, 국민의 뜻을 소위 님비NIMBY로 몰아세우는 모습이 그렇다(이필렬,「지속가능한 발전과 생태적 전환」, 『창작과비평』2003년 겨울호 참조); 이라크 파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파병에 대한 북의 의견이나 벌써 가시화된 아랍권의 테러 위험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USA의 압력에 그대로 굴복한 모습으로까지 비칠 수 있는 단기적인 방법일 뿐이다; 노조 파업의 경우에도 장기적인 안정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초단기적 대응을 보여주었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그것은 정부와 국회에 공통되는 것이었다. 국회의 절대다수당인 한나라당은 늘 '국민'의 입장과 '국익'을 대변한다고 스스로 이야기해왔던 것이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사회를 혼란하게 만들고 있다고 이야기했고, 그 사회혼란이야말로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 위축을 가져온다고 늘 이야기했다. 그래서 이라크 파병안에 동의한 것도 결국은 한나라당(출석 145명 중 찬성 118명, 반대 22명, 기권 5명)과 민주당(출석 96명 중 찬성 49명, 반대 43명, 기권 4명)이 아닌가? 가만히 살펴보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 위축"을 한나라당이 자주 거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말에 한나라당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탄핵소추 의결과 관련해보면 좀더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된다. 늘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를 위축시키지 않을 것"을 지고의 가치로 여겨왔던 한나라당이 의결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으면 출당조치까지 시킬 것이라고까지 밝히고 나온 것이다. 이것이 이례적인 이유는, 탄핵이야말로 정국의 혼란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줄 가능성이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직무 대행중인 고건 총리는 벌써 "국가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행정 각부가 흔들림없이 국정수행에 임해달라"면서 "경제안정이 최우선 과제이므로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고, 경제정책도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민생과 금융시장 안정에 혼신의 노력을 다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주가지수나 환율에는 이같은 상황이 즉각 반영되었다. (연합뉴스) 이런 면에서 볼 때, 그들이 진정 '국익'을 우선으로 생각한다면 대통령 탄핵소추안도 '거국적'인 결단을 내려 철회했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분석에 기초해본다면 한나라당이 실은 거의 이익집단에 가까운 면모를 갖고 있다는 점이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국익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것은 가정일뿐 그것이 옳다는 말은 아니다.)

더욱이 중요한 점은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무기로 대통령의 '사과'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전혀 사과하지 않았고, 거기에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이나 민주당 추미애 의원 등의 생각이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섰다. 그것은 당론에 반대하기 어려워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의 실질적 죄목이 '괘씸죄'라는 데에 있다. 그것은 그들이 탄핵 반대에서 탄핵 찬성으로 돌아선 시기가 대통령의 기자회견 직후라는 데서 알 수 있다. (조선일보) 그것은 송두율에게 15년을 구형하면서 검찰이 밝힌 그의 죄목, '전혀 반성하는 기미가 없다'와도 유사하다. (조선일보) 송두율이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면 정확한 사실관계의 조사·수사를 통해 이를 밝혀내는 것으로 족하지,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 '반성'은 이미 밝혀지고 스스로도 혐의를 인정하는 죄에 대해서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회 안팎으로 논란이 있는 탄핵요건을 두고 "대통령 회견 내용이 너무 실망스럽다(추미애)"는 근거로 탄핵안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서는 것은, 말[馬] 앞에 수레를 걸어둔 격이라 할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74.9%가 탄핵안 가결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연합뉴스) 방송 3사의 여론조사 결과도 69-70%가 탄핵안 가결을 잘못한 일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연합뉴스) 이렇듯 국회 다수당과 국민의 의견이 엇갈리는 이유는 국회가 지금 임기 말이기 때문이다. 국회는 국민의 대리가 아니라 대표이긴 하지만, 임기를 한 달 남겨둔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와 같은 큰 사건을 일으킨 것은 국민의 뜻을 왜곡하는 일이다. 최병렬 대표는 "국민을 안심시키"겠다고 하임꼴使動形을 썼고, 조순형 대표는 "국론 분열을 치유"하겠다며 다양성을 '병病'으로 규정했다. (경향신문) 자신들이 옳고 국민들이 그르다는 것을 무엇으로 자신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선결조건인 자기증명을 결缺한 판단은 '안심'이나 '치유'는 커녕 혼란과 갈등만 깊게 할 뿐이다.
Posted by 엔디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홍세화가 소개한 '똘레랑스tolérance'가 빠지지 않을 것이다. 홍세화가 인용한 바에 따르면 똘레랑스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¹이다. 민주주의는 한 사람이 아니라 많은(모든) 사람이 주인이라는 것이므로, 똘레랑스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토대중 하나라 할 것이다.

*¹ 홍세화,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창작과비평사(1995), 289쪽.

노무현 대통령은 한총련의 5.18.묘역 시위로 행사 입장이 20분 가량 늦어진 사태를 접하고 많은 곤욕을 치른 것 같다. 그는 "자기 주장에 맞지 않는다고 사람을 모욕하고 타도대상으로 삼는 것은 법대로 처벌해야 한다"며 "난동자에 대해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라"고 지시했다. 여기서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똘레랑스다. 그런데 실은 그릇 적용된 똘레랑스다.

노 대통령의 말은 물론 일면적으로는 옳다. 누구나 자기와 다른 주장에 대해 '모욕'할 권리는 없다. 설령 그가 파시스트라고 해도 그것은 그가 가진 주장으로서 인정해야 한다. 파시즘을 규제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파시즘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노 대통령의 말에서 '엄격한 법 적용'의 근거를 본다. 한총련은 정말 반미를 주장하며 다른 주장을 용인하지 못하는 반半 파쇼집단인 것도 같다.

하지만, 우리는 노 대통령의 말을 곧바로 뒤집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과 다른 주장'에 대한 똘레랑스을 말했다. 그의 말은, 그러므로, 한총련이 가진 '생각'에 죄를 묻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문제삼은 것은 다만 한총련의 '행동'이다. 노 대통령도 문자적으로는 '난동자'에 대한 처벌을 지시했지 시위한 사람에 대한 처벌을 지시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문제는 한총련의 '행동'이라고 국한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사건과 '한총련 합법화' 가능성을 연계시키는 것의 부적당함을 발견할 수 있다. 한총련이 '이적단체'가 된 까닭은 그들의 '과격한 행동'때문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생각'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에서 한총련은 사실 온건한 시위를 했다. 이번 시위와 관련하여 대부분의 보도는 '노무현 대통령의 행사장 입장 저지'에 맞추어져 있고 연합뉴스 정도가 '버스를 흔드는 난동'을 보도하고 있을 뿐이다. 과거처럼 화염병도 없고 난투극이 벌어진 것도 아니다. 한총련은 피켓팅을 하며 자리를 점거하고 있었던 정도라고 여겨진다. 집·시법 상에 어떻게 규정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정도가 문제가 된다면 오히려 집·시법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노 대통령이 말하는 '똘레랑스'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 지위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한총련들이 당일 피켓팅을 하며 입구를 점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자신들의 생각을 대통령에게 전달할 수 있었을까. 노무현 대통령이 분명히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 생각을 전달하려는 과정에서 그 시위는 한총련의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런 시위를 공권력의 힘으로 찍어누르겠다는 것은 노 대통령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과 주장이 다른 사람들'을 찍어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말이다.

5.18. 묘역에서 일어난 일이니 5.18.을 잠깐 생각해보자. 5.18. 민주화 운동도 단순화 시키면 사실 같은 사건 아닌가.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주장(생각)'이 달라서 시위를 벌였던 것이고 전 전 대통령은 이를 법에 따라 '엄정히' 처벌했을 따름인 것이다. 노 대통령의 논리대로 하자면 5.18. 민주화 운동 역시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할 것이다.

한국은 대의민주주의 국가이다. 직접민주정치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의민주주의는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사람의 생각이 국민의 의견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늘 위험이 따른다. 때문에 항상 이를 보완할 만한 것을 마련해두어야 한다. 국민투표가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행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불완전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총련은 피켓팅과 입장 저지 등의 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기를 희망한 것일 뿐이다. 이를 '똘레랑스 없음'으로 규정한 노무현 대통령은 대의민주주의야말로 최선의 정치라고 생각하고 있는것인가.
Posted by 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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