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의 여러 한국어판 번역본들과 불어판 또는 영어판을 비교해 보면 조금 이상한 부분을 찾을 수 있다. (아마도 쓸쓸했던 날의) 어린 왕자가 자기 행성 B612에서 본 해넘이의 수가 한국어판과 불어판 또는 영어판이 다른 것이다 한국어판은 대개 마흔세 번으로, 영어나 불어판은 마흔네 번으로 기록하고 있다:
« Un jour, j'ai vu le soleil se coucher quarante-quatre fois! »
- 갈리마르Gallimard 출판사 폴리오folio 문고판, 31쪽. (1999년 문고판 간행)

"One day," you said to me, "I saw the sunset forty-four times!"
- 하비스트북A Harvest Book하코트 브레이스Harcourt Brace판 캐서린 우즈Katherine Woods 옮김본, 21쪽.

"언젠가는 마흔 세 번이나 해지는 걸 봤지."
- 구舊 문예출판사판 김현 옮김본, 32쪽. (1973년 초판 간행)

「어느 날, 난 마흔 세번이나 석양을 보았어!」
- 혜림출판사판 황현산 옮김본, 29쪽. (1986년 초판 간행)

「어느 날인가는, 해 지는 걸 마흔 세 번이나 봤지요!」
- 고려원판 오증자 옮김본, 28쪽. (1987년 초판 간행)

"어느 날 나는 해가 지는 걸 마흔세 번이나 보았어!"
- 신新 문예출판사판 전성자 옮김본, 26쪽. (1999년 간행)

"어느 날은 해 지는 걸 마흔세 번이나 본 적도 있어."
- 문학동네판 김화영 옮김본, 35쪽. (2007년 간행)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1999년 출간된 갈리마르 출판사의 폴리오folio 문고판에는 이런 일러두기avertissement가 붙어 있다: "우리는, 앙뚜안 갈리마르와 함께, 폴리오 문고판의 하나로 출간하게 되어서, 그리고 어린 왕자의 완전판l'édition intégrale을 처음으로 출간하게 되어서 기쁘다." ...무슨 소리인가. 『어린 왕자』는 1943년 작가가 살아 있을 당시에 이미 초판이 간행되었는데!

1943년 쌩떽쥐뻬리는 미국에 있었고, 아마 전시戰時였기 때문이겠지만 프랑스 출판 편집자들과는 연락을 취할 길이 없었다. 해서 그는 '레이날과 히치콕Reynal & Hitchcock'이라는 출판사에서 『어린 왕자』의 초판을 발간하게 된다. 정작 프랑스에서는 약 3년 뒤 1945년에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첫 판이 발간된다. 문제는 이 때 갈리마르에서는 작가의 원본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상태에서 작업했다는 것이다.

폴리오 문고판의 일러두기는 그래서 그간 불어판에 있었던 오류의 목록을 보여주고 있다: 천문학자가 망원경을 통해 바라보는 별이 사라져 있고, 사업가와 천문학자의 노트나 그림에 차이가 있으며, 어린 왕자 목도리의 윤곽에서부터 꽃들의 꽃잎과 꽃받침, 가로등 아래의 태양 광선, 바오밥 나무의 뿌리에서부터 야자수의 가지가 다르다; 또한 어린 왕자가 본 해넘이의 횟수가 다르다.

한편, The Publication History of The Little Prince는 각국의 번역 판본들과 떽스뜨, 이미지의 차이를 상세하면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폴리오 문고판에서 지적하지 않은 두 가지 사항들을 더 지적하고 있다: 하나는 어린왕자가 입은 가운의 색깔이 초록색green이냐, 어두운 파랑dark blue이냐, 아니면 바다색navy blue이냐 하는 논란이 있어왔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소행성 B612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천문학자들이 별에 이름을 붙이는 방식을 설명하면서 '소행성325'를 예로 드는데 이 숫자가 일부에서는 '소행성3251'로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린왕자의 가운 색깔

불어판과 영어판, 그리고 두 한국어역본 사이의 가운 색깔이 모두 다르다


Il l'appelle par exemple : « l'astéroïde 325 ».
- 갈리마르 출판사 폴리오 문고판, 22쪽.

He might call it, for exemple, "Asteroid 325."
- 하코트 브레이스판 캐서린 우즈 옮김본, 11쪽.

예를 들자면 <소혹성(小惑星) 3251>하는 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 구舊 문예출판사판 김현 옮김본, 23쪽.

이를테면, '소혹성 3251호'라는 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 신新 문예출판사판 전성자 옮김본, 17쪽.

가령, '소혹성 제325호'라는 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 문학동네판 김화영 옮김본, 23쪽.

어린 왕자가 해가 지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는가와 '나'가 예로 든 소행성 이름이 무엇이었는가는 그래도 단순한 편집 판본 상의 차이일 뿐이다: 마흔 세 번과 마흔 네 번이라는 차이가 작품 내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상한 일은 '신원'이라는 출판사에서 내 놓은 책은 엉뚱하게도 어린 왕자가 본 해넘이의 수를 "46번"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민한 작가가 언젠가 고쳐 쓴 뒤 어느 판본에 적용을 하지 않았거나 무던한 편집자가 실수를 했거나 했을 것이다. 물론, 어린 왕자에게 있어서 해넘이가 갖는 의미는 무척 각별하다. 슬픈 날에 마흔 몇 번이나 해넘이를 보았다는 것이나, 왕이 소원을 빌라고 하자 망설임 없이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싶다고 한 것, 그리고 24시간 동안 해가 1440번 진다는 이유로 점등인의 별을 떠나고자 하지 않은 점, 그리고 조종사인 '나'에게 해지는 것을 보러 가자고 무의식 중에 떼를 쓴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텍스트를 자세히 살펴보면 어린 왕자가 해넘이를 43번이 아니라 44번 보았다는 것을 확정해주는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 어린 왕자는 별들이 즉각 복종한다는 왕의 권능을 부러워하며 이렇게 생각했다고 화자는 전한다:

어린 왕자는 그토록 대단한 권능에 감탄했다. 만약 자기에게도 이러한 권능이 있었다면 의자를 뒤로 물려놓을 것도 없이 해지는 광경을 하루 마흔네 번만이 아니라 일흔두 번, 아니 백 번 이백 번이라도 구경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문학동네판 김화영 옮김본, 55쪽.)

그럼에도 이것은 작자가 처음에 의도한 해넘이의 숫자를 밝혀주는 것일 뿐 44라는 숫자 자체가 어떤 고도의 시적 울림이나 상징성을 가진 유의미한 것이 아님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에 있어서는 문제가 좀 다르다: 그림이 좀더 바랜 것에서 시작해서 그림 자체에 있어야 할 것이 빠진 것도 있다. 이는 작가의 원판 그림이 미국 출판사들에서 프랑스 출판사들로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문학자①"

천문학자가 망원경을 통해 별을 보고 있는 것이 맞는 그림인데, 별이 아예 빠져서 편집되어 있다.

"천문학자

천문학자가 설명하는 칠판의 도형이 조금 다르다. 가령 원의 중점에서 1사분면으로 나가는 선의 각도가 누락되어 있다.

"바오밥나무"

바오밥나무의 뿌리가 좀더 단순화되어 있다.

"점등인"

가로등 아래의 태양광선 하나가 없다.

서점에서 살펴본 결과, 해넘이 떽스뜨와는 달리 대부분의 책에서 작가가 그린 그림의 문제는 없었다. 몇몇 번역 판본이 예전 그림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어린 왕자가 해넘이를 마흔세 번 보았나 마흔네 번 보았나가 아니라, 어린 왕자의 떽스뜨가 어떻게 정확히 확정될 것인가이다. 마흔세 번과 마흔네 번이 갖는 차이는 크지 않겠지만, 어린 왕자가 느꼈을 쓸쓸함을 표현하기 위해 마흔 몇 번을 100번이나 200번으로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어린 왕자 - 8점
생 텍쥐페리 지음, 김화영 옮김/문학동네

어린왕자 - 8점
생 텍쥐페리 지음, 전성자 옮김/문예출판사

Posted by 엔디
원제는 그저 Metamorphoses일 뿐이다. 변신이야기라는 제목은 아마도 일본어판인 『轉身物語』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인 신화학자 중에는 가장 유명한 이윤기가 펭귄판으로부터 옮겨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판을 읽었다. 이윤기는 일러두기에서 몇 가지를 고백하고 있는데, 먼저 라틴어 원문은 2인칭이며 운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어판은 3인칭 산문으로 되어 있다.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대신, 해석은 매끄러웠고 모난 곳은 없었다. (단국대 천병희 선생이 번역한 『변신이야기』가 작년에 나왔다. 라틴어에서 바로 옮겼고, 행갈이를 하여 운문의 형태를 하고 있다.)



1

1권과 달리 2권은 좀 지루하다. 그것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아이네이아스나 로물루스-레무스 이야기, 그리고 왠지 낯간지러운 카에사르와 아우구스투스에 대한 직접적인 아부 때문만은 아니다. 1부에서 등장한 신들의 이야기가 점차 영웅의 이야기나 인간의 이야기로 옮겨오면서 '변신'의 사례가 줄고 있기 때문만도 아니다. 원문의 문제인지 펭귄판의 문제인지 이윤기의 문제인지 한 문단의 길이는 점점 길어졌고, 산문화한 것은 똑같지만 그 안에서 아직 감지할 수 있었던 운문의 맛은 줄었기 때문이다. 1권이 산문시에 가깝다면 2권은 그냥 산문에 가깝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1권의 첫 서사序詞는 거의 시라고 해도 무방하다.

마음의 원願에 쫓기어 여기 만물의 변신 이야기를 펼치려 하오니, 바라건대 신들이시여, 만물을 이렇듯이 변신하게 한 이들이 곧 신들이시니 내 뜻을 어여쁘게 보시어 우주가 개벽할 적부터 내가 사는 이날 이때까지의 이야기를 온전하게 풀어갈 수 있도록 힘을 빌려주소서. (1:15)

이 부분은 본래 기도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지만, 다음 인용하는 구절들은 번역의 거름망을 통과하고 있는 시적 성취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아폴로가 이런 약속을 하자 월계수는 가지를 앞으로 구부리고 잎을 흔들었다. 고개를 끄덕이듯이…… (1:49)


나르키소스는 푸른 풀을 베고 누웠다. 곧 죽음이 찾아와 아름답던 그의 눈이 감기었다. 사자死者들의 나라로 간 뒤에도 그는 계속해서 스튁스 강에 비치는 제 모습을 바라보았다. 케피소스 강 요정들은 동생인 나르키소스의 죽음을 애도하느라 머리를 모두 깎아 그의 죽음에 바쳤다. 숲의 요정들도 울었다. 에코는 이들의 울음소리를 숲 하나 가득하게 되울렸다. (1:138)

반면 2권은 몇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글이 무척 산문적이다. 묘사적인 부분을 일부러 찾아봐도 그렇다.

이윽고 신사神蛇는 빛나는 신전 계단을 기어내려와 뒤를 돌아다보았다. 떠나기에 앞서 정든 제단을 뒤돌아본 것이었다. 정들었던 집인 신전과 작별 인사를 나눈 이 거대한 신사는 자기에게 바쳐진 무수한 꽃다발 위를 기어 도시 한복판을 지나 방파제 있는 곳으로 갔다. 방파제에 이르렀을 때는 고개를 돌려 군중을 바라보았다. 배웅하러 나온 군중과의 작별을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산사는 이탈리아 배에 올랐다. 배는 신사의 무게가 무거웠던지 용골이 잠길 정도로 내려앉았다. (2:326)

짧은 문단에 '이윽고'를 두 번이나 썼다든가, 이별의 모습이 지나치게 장황하여 연설을 듣는 것 같다든가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은 잘 다듬으면 훌륭한 시적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도, 아쉬움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2

한편 아부에 관해서라면, 나는 색다른 실망감을 맛보았다: 로마 최고 시인 반열에 오른 오비디우스의 아부 실력을 보고 싶었지만, 그런 것은 나타나 있지 않았다. 최고 시인의 아부는 무척 거칠고 직접적이어서 왠지 불쌍해보이기까지 했던 것이다. 역자 후기에서 이윤기는 이 아부를 용비어천가에 빗대고 있지만, 나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용가는 두줄 남짓한 글귀 속에서 중국 고사와 이성계 가문을 잘 맞대면서 훌륭한 시적 성취를 드러내고 있다; 정치적 의미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지라도 시적으로는 최고의 찬사를 받아 아깝지 않다. 고교 시절 배웠던 용가의 발췌문들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참신한 울림을 주고 있다.

『변신』의 아부는 그렇지 아니하니, 가령 다음 구절을 보자:

…… 그러나 카에사르는 당신의 나라에서 신이 되신 분이시다. 마르스 신의 직분인 전쟁은 물론이고 평화를 정착시키신 것은, 이 분께서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끄셨고, 평화시에는 많은 업적을 쌓으셨으며 엄청난 명성을 얻으셨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옳다. 카에사르의 공적 가운데 이 분을 아드님으로 삼으신 것 이상으로 빛나는 공적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329)

여기서는 죽어 혜성이 된 카이사르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양자인 아우구스투스를 대놓고 칭찬하고 있다. 카이사르의 수많은 업적보다 "프린캡스 폐하"의 존재 자체가 더 훌륭하다는 투다. 카이사르 대 아우구스투스의 관계가 사투르누스와 유피테르의 관계와 같다는 식의 표현도 등장한다. 그뿐이 아니다. 영원한 아부의 소재, 장수長壽 역시 빠뜨리지 않는다:

신들께 기도를 드리오니, 아우구스투스 폐하께서, 당신께서 다스리시던 이 땅을 떠나 하늘에 오르시고, 그 높은 곳에서 인자하시게도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루어지게 하시는 날이 더디오게 하소서, 다음 세기에나 오게 하소서. (2:336)

오비디우스의 꿈은, 그러나 당대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변신』의 결사結詞는 이렇게 끝난다:

내 육체밖에는 앗아가지 못할 운명의 날은 언제든 나를 찾아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내 이승의 삶을 앗아갈 것이다.
그러나 육체보다 귀한 내 영혼은 죽지 않고 별 위로 날아오를 것이며 내 이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로마가 정복하는 땅이면 그 땅이 어느 땅이건, 백성들은 내 시를 읽을 것이다.
시인의 예감이 그르지 않다면 단언하기니와, 명성을 통하여 불사不死를 얻은 나는 영원히 살 것이다. (2:336)

그러고보면 카이사르가 신이 되었다든가, 아우구스투스가 신이 되었다는 그의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들은 지금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살고 있다. 오비디우스 역시 그런 영생을 누린다. 그는 무사이 여신들에게 늘 빌고 있지만, 지금 그 스스로가 시신詩神이 되어 수많은 시인들에게 다시금 영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신'은 과거 신화의 시대에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변신 이야기 1
오비디우스 지음, 이윤기 옮김/민음사

Posted by 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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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飜譯語成立事情』
『번역어성립사정』
柳父章, 서혜영 옮김, 일빛.
2003년 4월 1일 초판.

<ㅉ=5>글머리에

이 책에서 다루는 '사회' '개인' '근대' 등의 번역어는 학문과 사상의 기본 용어이면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나 신문지면 등에도 자주 나오는 말이다. 그런데도 가정의 거실에서 가족들끼리 또는 직장 동료들끼리 편하게 대화를 할 때에는, 이런 말은 보통 사용하지 않는다. 상당히 교육 정도가 높은 사람의 가정이라 하더라도 그럴 것이다. 만약 편안한 자리에서 누군가가 이러한 말을 입에 올린다면, 주위 사람들이 얼른 자세를 고쳐 앉거나 자리가 썰렁해질지도 모른다. 즉 이런 말은 사용되는 장소가 한정돼 있어서, 일상 생활의 장에서가 아니라, 학교나 활자 속의 세계 혹은 집안이라 해도 공부방에서만 사용된다. 일상어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다른 세계의 말이다. 우리들은 생활 속에서 각각의 장면에 따라 이러한 말을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난해한 책을 많이 읽은 젊은이라 하더라도 교실이나 친구와 토론하는 자리에서는 어렵고 딱딱한 어감의 말을 자주 입에 올릴지 몰라도, 어머니 앞에서는 그런 말투를 사용하지 않는다.

일본의 학문과 사상의 기본 용어가 일상어와 따로 놀면서 이 책 곳곳에서 지적한 바 여러 가지 왜곡이 따르게 되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렇게 언어가 따로 놀게 된 데에는 한자를 수용하기 시작한 이래 형성된 뿌리 깊은 배경이 있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번역어가 일상어와 동떨어져 있는 덕에 근대 이후 서<ㅉ=6>구 문명의 학문과 사상 등을 빨리 받아들일 수 있었던 측면도 있다.

이와 같은 우리들의 숙명적인 사실을 놓고 좋으냐 나쁘냐를 가르기보다는, 우선 사실 그 자체를 알았으면 한다. 그것은 의외로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 책을 쓴 이유이다.

이 책 앞부분에서 다룬 여섯 개의 용어인 '사회' '개인' '근대' '미' '연애' '존재'는 바쿠후(幕府) 말기에서 메이지(明治) 시대에 걸쳐 번역 과정에서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혹은 실질적으로 신조어와 동등한 말이다. 그 뒤에 다른 네 개의 용어, 즉 '자연' '권리' '자유' '그' ('그녀'는 신조어)는 원래부터 사용되던 일본어로 일상어 속에 살아 있던 말인데, 번역어로서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 것들이다. 이상 두 가지 경우 번역어가 갖는 문제는 서로 약간의 차이가 있다. 특히 후자와 같이 전래된 일본어를 번역어로 사용했을 경우에는, 서로 다른 뜻이 혼재하면서 상호 충돌하는 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양자 모두 번역어 특유의 효과로 인해 뜻을 알기 힘들거나 의미를 혼동하게 하는 등의 문제를 똑같이 안고 있다.

번역어의 문제를 다루는 나의 기본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본문 속의 여러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것을 모두 모아 '근대'의 제2절 부분에서 종합하여 설명하였다.

이 책에서 다룬 번역어에 대해서는 다른 지면에서도 이야기를 한 바 있다. 그 중 이 책에서 다룬 주제가 처음 나온 문헌은 다음과 같다.

<ㅉ=7>'사회'  저서 『번역이란 무엇인가』, 호세 대학(法政大學) 출판부. 1976년.

'개인'  『문학』1980년 12월호,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

'근대'  『도서』1981년 1~3월호, 이와나미쇼텐

'미'     『도서』1981년 5~7월호

'연애'  『번역의 세계』1979년 10월호, 일본번역가양성센터

'존재'  『번역의 세계』1980년 8~9월호

'자연'  저서 『번역의 사상』, 헤이본샤(平凡社), 1977년

'권리' '자유' '그, 그녀'  저서『번역이란 무엇인가』

이 책에서는 나의 번역론에서 단어론을 총정리한다는 생각으로 각각의 논문을 상당 부분 손질했다. 또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쓰기 위해 노력했다.

이 책이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기까지는, 이와나미쇼텐 편집부의 사카마키 카츠미(坂卷克巳) 씨께 도움 받은 바가 크다.

1982년 1월
야나부 아키라
Posted by 엔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말한 것은 하이데거였다. 언어가 먼저인지 '존재'가 먼저인지가 '닭과 달걀의 변증법'과 같은 쓸모없는 싸움이라 일컫더라도, 우리 '근대'사 속에서 등장한 서구어의 번역어들을 보면 하이데거 쪽의 손을 은근히 들어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존재'나 '근대'가 바로 그 번역어들이다. '사회,' '개인,' '권리'와 같은 것들이 바로 그 번역어들이다. 이들 번역어들의 특징은 시쳇時體말로 '썰렁하다'는 것이다. 뜻과 맛은 다르지만 '지나치게 학구적이다'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서구어에서 être, moderne, société, individu, droit같은 낱말들은 평소에 자주 쓰이는 말들이다. 대표적으로 '사회'같은 낱말은 우리 현실에서는 거의 글말文語에서만 쓰인다고도 볼 수 있지만, 영어의 society는 입말口語과 글말에 두루 쓰이는 말인 것이다. 2003년 출간된 4판 『롱맨현대영어사전Longman Dictionary of Contemporary English』의 society 항목을 보면 이 낱말이 글말written에서 자주 쓰는 1000낱말 중의 하나인 동시에, 입말spoken에서 자주 쓰는 1000낱말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부터 생긴 것일까. 대개의 번역어들을 '근대' 일본에게 빚지고 있는 우리는 일본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바로 '근대' 일본에서 번역어들이 어떻게 생겨나고 정립되었는가를 추적하는 글이다. 말하자면 번역어의 계보학을 세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각 낱말의 세세한 계보는 책 자신에게 맡겨두고 그 맨 아래층에 깔린 저자의 생각을 읽어보면 이렇다. "일반적으로 어떤 번역어가 선택되고 남는가 하는 물음에 답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문자의 뜻으로 보아 가장 적절한 말이 남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가장 번역어다운 말이 정착한다." (177쪽)

지금은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한겨레 신문 이상수 기자는 『창작과 비평』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말 철학 용어에서 생소한 한자가 지나치게 많아 우리에게 '가짜 어려움'을 주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최근에 '우리말로 철학하기'의 운동이 일고 있는 것도 실로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윤구병 선생 같은 분도 싸르뜨르의 L'Être et le néant의 우리말 제목은 '있음과 없음'이 훨씬 더 적합하고 원어의 뜻에도 가까운데 『존재存在와 무無』로만 옮겨지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고민은 사실 일본에서도 일찍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를 소개하고 있다. 후쿠자와는 그의 벗과 대화하면서 "자네와 같은 이들은 서양 원서를 번역하는 데 한결같이 네모난 문자(한자를 뜻함)만 사용하려 하는데 그것은 어째서인가?"(45-46쪽)라고 물으며 서양어를 자연스러운 일본어로 옮겨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했던 것이다.

우리도 '피투성被投性의 존재'같은 말을 버리고 '던져진 존재'로 가려고 하고 있다. 후쿠자와는 후년에 할 수 없이 스스로의 소신을 꺾고 '사람들이 많이 쓰는' 번역으로 전회했다고 하는데 우리의 이번 시도는 어떨까. 언젠가 우리말을 대상으로한 '번역어가 생긴 유래'라는 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번역어 성립 사정
야나부 아키라 지음, 서혜영 옮김/일빛

Posted by 엔디
이문열 평역 삼국지의 잘못옮긴 부분을 지적하고, 삼국지와 관련된 속설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책 자체의 목적이 앞의것에 있었고 서문이나 책겉의 광고글도 모조리 앞엣것에 대한 것이지만, 뒤엣것도 사실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특히 『유세명언喩世明言』이라는 소설집에 실렸다는, 사마모가 한나라 건국시의 영웅들을 삼국시대에 등장시켰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있는 이야기거리다. 이를테면, 한 고조를 도와 한나라의 건국공신이 되었던 한신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으니 후한 말에 조조로 다시 태어나게 하고, 한 고조 유방은 헌제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고 사마모가 염라대왕을 대신하여 판결한다는 식이다.

책의 앞부분은 역시 이문열 삼국지의 틀린 부분을 지적하는데 많은 힘을 쏟는다. 이문열이 터무니없게 옮긴 부분은 생각보다 많았다. 가령, 고대 중국어에서 "무장대소撫掌大笑"는 본래 박장대소와 같은 뜻인데 이를 "손바닥을 쓸며 크게 웃었다"라고 옮긴 부분은 현대 중국어에서도 무撫가 애무愛撫와 같이 "쓰다듬다"는 뜻으로 자주 쓰이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춘추 시대 초나라의 성득신成得臣을 "일껏 얻은 신하"라고 한다든가, "예양중인국사지론豫襄衆人國士之論"은 "예양의 중인국사론"이라는 뜻인데 "국사國士"를 아예 빼먹고 "예·양 땅의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고 옮긴 것 등은 옮기는 이의 성실성을 망각한 처사라 할 만하다. 성득신이라는 사람은 본래 중국 역사나 역사소설을 그다지 많이 읽지 않은 나는 모르니까 뭐라고 할 말이 없지만, 예양은 사마천 『사기史記』 '자객열전'에 나오는 가장 유명한 인물인데 이를 잘못 옮긴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유종호 선생은 『시란 무엇인가』의 「숨어있는 부호」에서 '숨어있는 부호'를 읽지 못하면 "두세 겹의 목소리와 울림"을 읽지 못한다고 했다. 유종호 선생이 직접 예를 들고 있듯이 그리스도가 "엘리엘리라마사박다니"한 것을 당시 사람도 못 알아들었는지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마태복음 27:47)라고 하지만, 사실은 시편 22편 1절의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 말을 알지 못하면 이성복의 「정든 유곽에서」의 "엘리, 엘리 죽지 말고 내 목마른 裸身에 못박혀요 / 얼마든지 죽을 수 있어요 몸은 하나지만 / 참한 죽음 하나 당신이 가꾸어 꽃을 / 보여 주세요 엘리, 엘리 당신이 昇天하면 / 나는 죽음으로 越境할 뿐 더럽힌 몸으로 죽어서도 / 시집 가는 당신의 딸, 당신의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다.

또, 나귀의 얼굴에 '제갈자유諸葛子瑜'라고, 얼굴이 길기로 유명했던 제갈근의 성과 자字를 써놓으니 그 아들인 제갈각이 거기다 "지려之驢"라고 써서 아버지의 명예를 구했다는 것이, 나귀를 노새라고 옮기는 바람에 성적인 농담이 되어버렸다는 것도 흥미있는 이문열의 오류다.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저자는 전문 한학자도 아니고 대학을 나온 사람도 아니지만, 삼국지를 열렬히 좋아하는 재중동포라는 조건이 읽기 괜찮은 책을 낼 수 있게 한 듯 싶다. 사실관계를 밝히거나 새로운 것을 알려주는 책에 적극적인 의미의 '평評'을 하기는 힘들다. 장점이라면, 지나치게 긴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원문을 소상히 인용하여 오류를 지적함으로써 독자가 어느 부분이 잘못 옮겨진 부분인지를 쉽게 알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상투적인 비유나 과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눈감아줄만한 정도다.


삼국지가 울고 있네
리동혁 지음/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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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도 유행을 따르는 것 같다. 아니, 내가 헤아려 보건대 출판이야말로 유행에 가장 민감한 분야 중 하나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셜록홈즈 전집이나 뤼팽 전집이 시일에 큰 차이를 두지 않고 두세 출판사에서 중복 출판된 것이 하나의 예가 될 것이며, 또 얼마 전의 '쥘 베른'의 중복 출판도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유행은 '삼국지'다. 소설가 황석영이 『삼국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질 때 즈음하여 다른 출판사들은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삼국지』로 가장 많은 상업적 성공을 본 민음사나 정역正譯의 자부심이 넘치는 솔출판사의 온-오프라인 서점 마케팅은 꽤나 살벌했다. 그 와중에 나는 글 한편 '이링공 뎌링공' 만들어 '당첨'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기분은 그렇게 깔끔하고 깨끗하지 않다. '삼국지'라…. 상식적인 것부터 잠시 보자면 우리가 흔히 '삼국지'라 불리는 것은 진수가 쓴 동명同名의 역사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나관중이 각색한 『삼국지연의』를 말하는 것인데, 『삼국지연의』는 『수호지』, 『서유기』(혹은 『홍루몽』), 『금병매』 등과 함께 중국의 4대기서四大奇書의 하나다. 다시 말해 재미있는 소설작품이다. 그 안에서 삶의 지혜나 처세의 능란함을 배우기도 한다. 재미있으면서 지혜나 능란함을 배울 수 있다면 분명히 좋은 책이다. 그런데, 그것도 정도程度문제다.

다른 글에도 내가 썼듯이, 무명의 번역자가 옮긴 것이나 아동용 다이제스트판, 번역자도 표시되지 않은 '해적판' 등을 제외하고 중국문학자나 문인, 적어도 문文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의 번역만도 열을 헤아린다. 박태원, 이문열(민음사), 김홍신(대산출판사), 구용 김영탁(솔), 김동리·황순원·허윤석(박영사), 장정일(문화일보 연재), 황병국(범우사), 월탄 박종화(어문각/대현출판사), 정비석(고려원), 조성기(열림원), 연변대학삼국연의번역조(청년사)까지.

10여 개의 번역본을 헤아리면서 누구인들 한 가지 의심 하나 가지지 않을 수 있으랴. 모두가 정역正譯을 뽑내고, 자신의 『삼국지』가 진짜 '삼국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차라리 이문열은 "쓸모없는 노력의 중복"을 막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많이 반영시켜 평역評譯을 한다고 밝혔으니, 그 평가는 차치하고서라도, 솔직하다고 하겠다.

황석영의 『삼국지』가 나온 것은 바로 이 시점이다. 듣자하니 창비의 수장(?) 백낙청 교수까지 황석영을 독려하여 번역작업을 진착시켰다고 한다. 입술 끝에서 씁쓸함을 느꼈던 것은 그 말을 듣고서가 아니었나 싶다.

황석영 자신도 중복출판에 대한 부담감은 그대로 떠앉지 않았을까 싶다. 모든 '삼국지' 번역자가 그러하듯이 황석영도 변명조의 역자 서문을 실었다. 역자는 말한다.

『삼국지』의 줄거리는 원래 정통역사서에서 출발해 여러 시대에 걸친 민중들의 구전설화와 재담, 연희·연극 등의 공연예술, 작가·문인들의 창작이 덧붙여져서 이루어진 것이다. 열 중에 일곱이 사실이라면 나머지 셋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이 나머지 셋이야말로 각 시대를 통해 끈질기게 이어져내려온 민중들의 꿈과 소망이 반영되어 있는 부분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보다 더욱 중요한 역사의식이다.

특히 원작자인 나관중의 정치적 입장은 당대 민중의 인의론(仁義論)과 한족 정통성에 근거를 둔 것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나관중은 이민족 원나라에 항거하는 농민봉기에도 가담했으며, 그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장사성(張士誠)과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천하통일의 기초가 된 조조의 위나라보다 유비의 촉한을 중심으로 줄거리가 서술되고 있는 당연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조조는 귀족이었고 손권도 강남 명문제후의 후손이었지만, 촉한의 유비·관우·장비는 물론 제갈량까지도 당대 백성들과 거의 같은 몰락한 선비거나 지방 무뢰배에 지나지 않았다. 유비가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의리를 지키느라고 여포에게 여러 차례 시달린다든가, 세력의 근거지가 될 한중땅을 단번에 차지할 수 있는데도 도덕적 대의명분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가까스로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을 보면 『삼국지』가 당대 민중들과 더불어 추구하려 했던 가치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관운장이 온갖 영예를 뿌리치고 조조를 떠나 필마단기로 유비를 찾아가는 과정이나 선주 유비와의 약속 때문에 어리석은 유선을 보좌하다가 위나라 정벌을 떠나기에 앞서 제갈량이 「출사표」를 올리는 대목 등에서 우리는 뜨거운 감동과 함께 눈물에 젖는다. 그러나 인덕과 의리를 추구한 유비 삼형제와 제갈량 등의 촉한은 실패한다.

의(義)를 추구했지만 현실에서 실패하고 좌절한 영웅을 기리는 백성들의 풍조는 동서고금이 다 같은데, 일본에서는 오히려 조조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때로는 그를 중심으로 『삼국지』의 기본 줄거리를 전개하는 작품도 있다. 이는 패권과 현실에서의 힘을 추구하는 가치관에서 비롯한 것이다. 나는 저러한 이른바 '현대적 해석'에 대해서 백성들의 보편적인 염원을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축이다. 따라서 나는 원본의 관점과 흐름에 적극 찬동했고, 이것이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의 『삼국지』에 대한 일관된 애정의 원천이기도 하다.

고전은 무엇보다도 원문대로 전달이 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누구나 그것을 읽고 나름대로의 가치관에 따라 해석하고 비판하고 재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고전의 정신이야말로 무한한 재생산의 보고이다. 『삼국지』의 형성과정이 그렇듯이, 천여년 동안 여러 시대와 나라를 거치면서 투영된 당대 백성들의 소망이며 꿈은 역사적으로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변명과 추측이 난무하여 일관성을 결하고 있는 이 옮긴이의 말은 『장길산』작가의 번역이라는 이미지에 그야말로 밀려나고 있다. 그는 나관중이 원에 항거하는 농민봉기와 그 지도자인 장사성과 관계가 있다는 '설說'을 근거랍시고 들며 "위나라보다 유비의 촉한을 중심으로 줄거리가 서술되고 있는 당연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하고, "인의론(仁義論)과 한족 정통성"에 근거를 둔 정치적 입장을 견지했다고 하다가 유비 등이 "무뢰배"였다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민중과의 유대는 황석영이 '힘'의 심볼로만 파악한 조조의 위魏나라에서 더 잘 보인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위진남북조시대'라고 부를 때, 우리는 촉蜀과 오吳의 존재를 깡그리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동양사학계가 '위'를 삼국의 대표격으로 본 이유는, 조비가 헌제의 양위를 받았다는 것도 작용했겠지만, 역사의 정통성을 당대 민중과의 유대와 민중을 위한 정책의 유무로 판단하기도 하는 사정 때문이다. 당시 위는 한나라 때부터 있었던 '둔전제'를 발전시킨 '전농부 둔전제'를 시행하였는데, 빈농貧農에게는 토지뿐만 아니라 밭갈이 소와 농기구, 그리고 종자까지 대여해 허창 주변에서 둔전시키기도 하였다.

더구나 인의론이란 무엇인가. 『삼국지연의』의 서두에 등장하는 '고조참백사'는 유劉씨가 황제가 되어야 한다는 내포를 담고 있다. 유비가 결국 황제가 된 것도 (적어도 명분상으로는) 백성들의 열망과 염원과는 별 관계없이 그가 옛 왕족의 후손이라는 것 때문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보편적인 염원을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축"이라서 나관중의 역사인식에 찬동한다는 것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무지의 소치所致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고전은 원문대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그의 변辨에 대해서도 우리는 충분히 반박할 수 있다. 그것은 『월탄 삼국지』나 '이문열『삼국지』'는 또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정역正譯을 표방하며 나왔고 어느 정도 인정도 받고 있는 '구용『삼국지』'의 존재를 깡그리 무시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구용『삼국지』'의 비교우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럴 뜻도 없지만 그럴 능력도 없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황석영이 구용의 작품이 있음에도 새롭게 '삼국지'를 낸다면 구용의 작품에 대해서도 어떤 입장 정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황석영 삼국지에 의의가 전혀 없지는 않다. 중국 고대 인물화의 권위자라는 왕훙시의 삽화를 실었다는 점 이외에도 흔히 번역대본으로 삼는 '모종강본'을 버리고 원본인 '나관중본'을 번역텍스트로 삼았다는 점이 그렇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창작과비평사'와 같은 출판사가 『삼국지』를 출간하는 것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민음사 관계자가 "본래 영웅사관에 입각해 있는 삼국지는 '민중작가' 황석영과는 어울리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말한 것은, 더구나 그 지면이 조선일보이고 보면, 속이 뒤틀리는 대목이긴 하지만 어쨌든 맞긴 맞는 이야기다. 『삼국지』의 원본이 여기 있는데, 창비의 원본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삼국지 1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왕훙시 그림/창비(창작과비평사)

Posted by 엔디
"'삼국지'는 없다"고 누군가가 자신의 '삼국지' 번역본 서문에서 말했다. '삼국지'는 홍수처럼 많이 출간되지만 진짜 '삼국지'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이문열, 김홍신을 대표로 하여 정비석, 박종화, 조성기는 물론이고 멀리는 박태원 가까이는 황석영까지 당대의 글쟁이와 문장가는 삼국지 번역을 한 번씩 해보려는 욕심이 있는 모양이다. 이문열이 그 서문에서 말한 의미로 "쓸모없는 노력의 중복"이 없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들 모두는 '역자 서문'에서 출간의 변辨을 한 마디씩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출간의 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번역본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김구용 선생의 삼국지이다. 이문열은 '평역 삼국지' 서문에서 김구용 선생의 삼국지를 "거의 대역이 가능할 정도로" 모본을 충실히 따랐다고 하고 있고, 조성기는 "삼국지는 없다"고 쓰면서도 이례적으로 하나의 예외를 두고 있다. 그만큼 김구용 선생의 '삼국지'는 시기적으로도 선구적이지만, 내용의 충실도에 있어서도 결코 이후의 번역본에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앞선다.

솔판 『삼국지연의』의 표지를 열면 진수의 '삼국지'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의 차이에 대해 설명하는 글이 나온다.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역사'가 아니라 '역사소설'이라는 점이다. 그 조어造語는 '역사'보다 '소설'에 방점을 찍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렇다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모름지기 한 편의 문학작품이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김구용 선생의 '삼국지'가 응당 대접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번역의 대상인 원텍스트를 아무런 가감加減없이 그대로 옮겼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가 '삼국지연의'를 하나의 문학작품이라고 보는 이상 우리는 그것의 완전성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다른 모든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삼국지연의'의 텍스트도 열려있다. 그러나 그 열림은 외부로 향한 열림이지 내부로 역류하는 열림은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삼국지'의 첫머리에 나오는 고조참백사高祖斬白蛇의 고사만 해도 그렇다. "한나라는 한 고조가 흰 뱀을 죽이고 대의를 일으킨 데서 시작하여 마침내 천하를 통일한 것"이라는 역사인식은 '삼국지연의'의 전개에서는 지극히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수의 '삼국지'와의 근본적인 차이점, 촉한정통론을 담보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당수의 다른 번역본에서는 이 중요한 부분이 삭제되어 있거나 대체되어 있다. 우리는 유비가 사금을 모아 산 차茶를 강에다 내다 버리는 유비의 어머니 이야기에 알게모르게 길들여져 있다. 이문열의 삼국지에서도 '고조참백사'의 장면은 아예 없고, 상황 설정도 무척 자의적이다.

김구용 선생의 삼국지는 '삼국지연의'의 보다 정확한 이해를 담보시켜 줄 것이다. 그것은 어지러운 홍수의 흙탕물 속에 하나의 정수가 되어 줄 것이다.

삼국지연의 1
나관중 지음, 김구용 옮김/솔출판사

Posted by 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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