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5

이 어두운 극장 밖에선 도대체…: 『작은 연못』

그래, 먼저 가만히 작고 어두운 영화관 하나를 떠올려보자. 시인 기형도가 죽었다던 허름한 종로의 극장도 좋고, 사람들이 데까메론을 알건 모르건 매년 그해의 '보카치오'를 동시상영으로 마구 틀어댔던 동네의 3류 극장도 좋다. 예술영화를 자주 틀어주는, 그래서 관객은 별로 없는 조용한 극장도 괜찮다. 사실 꼭 작고 어두운 극장일 필요도 없다. 푹신푹신한 의자에 음료 거치대까지 있는 최신식 멀티플렉스 영화관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내가, 당신이, 그리고 사람들이 영화를 본다는 것이다. 자, 영화가 끝났다. 영화란 건 늘 금세 끝나는 법이니까.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 대다수 극장에서는 환하게 불도 켜준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어디로? 세상으로. 커다란 박스 속에 들어가 한두 시간을 어둠 속에 머..

극장전 2010.04.12

미국 국경선을 따라 쌓은 담이 생태를 위협하다

US border fences 'an eco-danger' 미국에서 멕시코와의 국경선을 따라 담fences을 쌓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 담은 700마일(1125킬로미터)에 이르고, 센서나 강한 빛 등의 첨단 감시 장치도 달려 있을 거라는 것이다. 멕시코 환경부는 이 행동이 국경지대의 생태를 파괴한다고 반발했다. 그 국경지대 중에는 소노라Sonora 사막과 같이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사막 생태계도 포함된다고 한다. 멕시코 정부는 이 건으로 국제 사법 재판소에의 재판 회부도 준비중이다. 전문가들과 미국·멕시코 양국의 생태 활동가들이 멕시코 정부를 위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그 담이 동물들을 보다 작은 그룹으로 묶게 되어 유전적 다양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이다. 재규어나 멕시코 흑곰, 영양의 일종..

상황Situations 2007.08.01

자동차와 군수기계의 나라, 미국의 토테미즘: Michael Bay《트랜스포머》

1 어린 시절, 누구나 내 주위의 모든 것이 살아있다고 믿는다. 내가 자고 있을 때 내 장난감들이나 인형이 살아 움직일 것이라는 상상력은 상당히 많은 동화나 만화의 기본적인 설정으로 되어 있다. 특히 철강과 거대 기계가 찬양받던 지난 세기에는 일단 무엇이든 로봇으로 변하는 독특한 생각이 만화영화의 기반 상상력이 되었다. 전투기나 탱크에서 라이터까지 로봇으로 변신했고, 초능력으로 불러내는 존재도 귀여운 여자친구나 다정한 말벗이기보다는 로봇이었다. 언젠가부터 만화 영화들은 거대 로봇 만들기를 그쳤다. (아마도 일본) 경제에서 '중후장대重厚長大' 시대가 가고 '경박단소輕薄短小'의 시대가 온 탓이다. 워크맨이라고 불리는 소형 카세트라디오가 그 신호탄이었다면 작고 가벼운 mp3 플레이어와 얇은 휴대전화는 나름대로..

극장전 2007.07.07

긴 호흡의 정치

창비주간논평 언젠가 나는, 마이클 무어의 《화씨911》을 보면서, 공화당이 불만이면 민주당, 민주당이 불만이면 공화당으로 갈 수밖에 없는 미국인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두 정당으로부터 '표밭'으로만 인식되지 '국민'이나 '시민'으로 인식되는 것 같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 공화당에게 실망한 미국인들이 민주당으로 몰려드는 모습은 마치 레밍쥐들의 이동 같았다. 하지만 한국의 실정은 또 어떤가. 내 보기에 한국의 정당 정치에는 전통이라는 게 없다. 김수영은 "전통傳統은 아무리 더러운 傳統이라도 좋다"고 했는데, 한국의 정당 정치에는 그 전통이라는 것이 도무지 없다. 말장난을 하자면, 전통이 없다는 것이 전통일 정도다. 여당은 야당을 끌어모아 합당하거나 표지갈이만 한 신당을 창당하고..

비논리적 설득: M. Moore 《화씨 9/11》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의 «화씨 911»은 다 알다시피 깐느에서 처음으로 황금종려상la palme d'or을 받은 첫 기록documentaire 영화다. 드림웍스의 야심작 «슈렉»조차 빈 손으로 돌려보낸 '오만한' 깐느가 선택한 기록 영화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그 속에 엄청나게 극적인dramatique 폭로가 있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재기하지 못하도록 만들 정도일까. 혹은 이라크 침공의 도덕적·절차적 문제를 조목조목 파고들어 부시 대통령이 직접 그 영화를 보더라도 승복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을까. 아니다. 이 영화에 가득찬 것은 반어와 풍자다. 여러 번 기사화된 무어 감독의 발언에서 짐작할 수 있는 그의 비판방식 그대로를 이 영화에 담은 것이다. 그리고, 그 비판방식은 사실 길고 긴 ..

극장전 2004.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