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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누구나 내 주위의 모든 것이 살아있다고 믿는다. 내가 자고 있을 때 내 장난감들이나 인형이 살아 움직일 것이라는 상상력은 상당히 많은 동화나 만화의 기본적인 설정으로 되어 있다. 특히 철강과 거대 기계가 찬양받던 지난 세기에는 일단 무엇이든 로봇으로 변하는 독특한 생각이 만화영화의 기반 상상력이 되었다. 전투기나 탱크에서 라이터까지 로봇으로 변신했고, 초능력으로 불러내는 존재도 귀여운 여자친구나 다정한 말벗이기보다는 로봇이었다.

언젠가부터 만화 영화들은 거대 로봇 만들기를 그쳤다. (아마도 일본) 경제에서 '중후장대重厚長大' 시대가 가고 '경박단소輕薄短小'의 시대가 온 탓이다. 워크맨이라고 불리는 소형 카세트라디오가 그 신호탄이었다면 작고 가벼운 mp3 플레이어와 얇은 휴대전화는 나름대로 그 문화의 첨단이라고 할 만하다.

영화 《트랜스포머》가 나온 건 그 시점이다. 이 영화는 나오자마자 '키덜트 무비kidult movie'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변신 로봇이 나오는 영화가 어째서 '키드 무비kid movie'가 아니라 '키덜트 무비'일까.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간단하다: 경박단소 키드의 머릿속에는 저런 변신로봇이 없기 때문이며, 장난감으로 이제 자동차를 소유한 '마이카my car' 족들을 명백한 타겟으로 정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엉뚱하게도 나는 이 영화에서 미국의 정신을 좀 찾아보고 싶다. 250년 동안 미국을 키운 건 '팔할'이 강철왕 카네기와 자동차왕 포드였고, 미국이 경제 대국이 된 것은 유럽 대륙의 큰 전쟁에 군수 기계와 물자를 대면서였던 것이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일본은 자동차와 전투기로 변신하는 로봇 '트랜스포머' 장난감을 만들어 거대 시장 미국에 팔았던 것이다. 영화 속에서 "분명히 일제일 거야."라는 대사가 있다.) 그래서 이들 '트랜스포머'와 미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각별한 사이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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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테미즘이나 애니미즘은 주술 신앙이다. 주술 신앙은 합리주의와도 다르고 마법과도 크게 다른데, 근본적으로 상대를 대화의 대상으로 여기고 하나의 인격으로 대한다는 점이 바로 차이점이다. 가령 우리가 시계를 사서 손목에 차고 다니면서, 그것을 시각을 알려주는 기계라고만 생각해버리면 우리는 일종의 합리주의적 사고를 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시계를 자신의 종이나 거래의 당사자로 여기고 시계에게 주문spell을 외거나 시계--또는 시계(시간)의 신--에게 영혼을 판다면 우리는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주술은 대상을 신이나 대화 상대자로 여기는데 기우제를 지낼 때 하늘에 대고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기도를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트랜스포머》에서 나타나는 주술 신앙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일어나는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 범블비가 아직 로봇이 되기 전, 샘 윗위키가 미카엘라를 태우고 가다가 멈추는 상황에서 그렇다. 윗위키는 자동차에게 부탁ask을 한다: 제발 움직여라. 범블비는 그 부탁에 반응하고, 그래서인지 그날의 데이트(?)는 꽤나 성공적이게 된다. 누구나 한두 번쯤 겪음직한 이 일은 이 영화가 근본적으로 주술적인 신앙에 기대고 있다는 증거로 꽤나 중요한 것이다. ('고물차' 운운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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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라는 낱말로 시작되는 텍스트는 언제나 그만큼의 무게와 부담감을 갖게 마련이다. 그런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신앙심이 강한 사람이거나 어린 아이다. 이 이야기는 어린 아이 같은 감성과 똑 그만큼의 지성을 갖춘 윗위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 속에 아직도 미국을 닮아가려는 욕망이 있다. 특히 거대한 군수 기계들이나 자동차를 보면서 미국의 힘에 혀를 내두르는 일은 적지 않다. (MS나 구글, 애플과 같은 회사에 대한 동경은 좀 별개의 문제이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 일종의 미국교에 대한 영화이다. 미국은 이 영화를 통해 자동차를 비롯한 많은 기계가 자신들로부터 만들어졌다고 공포한다. 거대화, 대형화라는 미국의 이데올로기가 여기서 주술 신앙으로 바뀌어 사람들에게 이식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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