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아무래도 참을 수가 없다. 아프간 전戰에 이어 이라크 전戰이 터지면서 인터넷에는 시가 아니라 구호인 것들이 시인 척 하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심정에 십분 공감하면서도 그들의 시에는 이상하게도 거부반응이 드는 것이었다. 그런 모습은 아래 임화의 시를 다시 보면서 더욱 증폭되었다.

 노름꾼과 강도를
 잡던 손이
 위대한 혁명가의
 소매를 쥐려는
 욕된 하늘에
 무슨 旗빨이
 날리고 있느냐

 同胞여!
 일제히
 旗빨을 내리자

 가난한 동포의
 주머니를 노리는
 外國商館의
 늙은 종들이
 廣木과 통조림의
 密賣를 의론하는
 廢 王宮의
 상표를 위하여
 우리의 머리 우에
 國旗를 날릴
 필요가 없다

 同胞여
 일제히
 旗빨을 내리자

 殺人의 自由와
 약탈의 神聖이
 晝夜로 방송되는
 南部朝鮮
 더러운 하늘에
 무슨 旗빨이
 날리고 있느냐

 同胞여
 일제히
 旗빨을 내리자

- 임화, 「旗빨을 내리자」전문全文
(유종호『시란 무엇인가』민음사(1995), 219-221쪽에서 다시 따옴.)

유종호 선생은 비록 이 시에 대해 "판에 박힌 상투성이 특징을 이루고 있다"고 낮추어보고 있지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반전시反戰詩'들보다는 백배나 나은 듯이 보이는 이 시는, 얼마나 오래 전에 쓰여진 것인가!

그러니 이제 솔직해지자, 구호로 외칠 것은 구호로 외치고 시는 시로 그대로 놓아두자. 이것은 시를 신성시해서가 아니라 '시는 다만 시일뿐'임을 알아서다. 전쟁을 반대하려면 으레 시를 써야되는 줄로 아는 사람들이야말로 시가 어떤 신비로운 힘을 갖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인 것이다. 시는 전쟁을 찬양할 수도 있고, 전쟁을 혐오할 수도 있다.


2

그러나 구호는 또 어떠한가. 2004년 연세대학교 총학생회가 '소집'한 연세 학생총회의 구호는 "오라 연세로, 가자 신촌으로"였다. "오라 서울로, 가자 세계로"라는, 도대체 왜 서울로 와야 하며 왜 세계로 가야하는지 모르겠는, 시시한 대구對句를 고스란히 표절하면서 그 단점까지 너그러이 품어준 저 '새로운' 문구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café chair revolutionist'가 되지 않기 위해, 말보다 행동이 훠얼씬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 일부러 적당히 만들어놓은 말인가. 등록금 동결과 총장 불신임, 성폭력을 막기 위한 학칙(일명 반성폭력학칙反性暴力學則) 개정을 위한 모임과 저 문구는 또 어떤 상관관계가 있단 말인가.

4.15 총선의 문구는 또 어떠한가.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참신했었었었던 근 50년 전의 문구가 되살아났으니, '갈리'는 대상이 "갈아봤자 별수없다"를 들고나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아니, 적어도 그걸 들고나오지 않은 것만은 그쪽이 좀더 '진보'한 것일까.

프랑스 68혁명의 구호들을 살펴보자.

"5월의 정신l'esprit de mai";

"상상은 가능성(혹은 힘, 권력)을 갖고 있다L'imagination prend le pouvoir";

"진실을 위해 욕망을 품어라Prenez vos désirs pour des réalités";

"금지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Il est interdit d'interdire";

"사실적이 되면서도 불가능을 요구하자Soyez réalistes, demandez l'impossible";

"이 보도블럭 아래에는 바다가 있네Sous les pavés, la plage";

"달려라 동지여, 낡은 세계가 네 뒤에 있다Cours camarade, le vieux monde est derrière toi";

"혁명을 하면 할수록, 더 섹스하고 싶어진다Plus je fais la révolution, plus j'ai envie de faire l'amour";

"우리는 모두 독일의 유태인들이다Nous sommes tous des Juifs allemands";

"행동은 충분하다, 이젠 말이다Assez d'actes, des mots";

"혁명은 역사의 환희다";

"손가락이 달을 가리킬 때 어리석은 사람은 손가락만 본다(중국 속담)";

"사회는 마음대로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조화造花다";

"보육학교와 대학과 다른 모든 감옥의 문을 열어라";

"우리는 맨 마지막 관료의 창자로 맨 마지막 자본가의 목을 매달 것이다! 욱!";

"상아탑의 그림자 속에서 어떻게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겠는가?";

"공동체의 상상력을 방어하라";

"외쳐라";

"동지들을 석방하라";

"거리에서 나는 살아있네";

"생활의 편의는 민중의 아편";

"행동은 반응이 아니라 창조다";

"팔레스타인 사람의 눈물은 하느님의 과즙이다";

"나는 내 욕망의 현실성을 믿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욕망을 지닌다".

(구호들은 Ross Steele, Civilisation progressive du français, CLE International(2002), p. 48과 타리크 알리·수잔 왓킨스『1968: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안찬수·강정석 옮김, 삼인(2002), 145쪽에서 뽑은 것으로, 68년 당시 본래는 건물의 벽이나 땅바닥에 낙서로 있었던 것임.)


"금지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Il est interdit d'interdire"라는 말이 가진 반복의 시적 울림이나 국내에 체 게바라 열풍이 불면서 함께 소개된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Soyez réalistes, demandez l'impossible"라는 표어만으로도 우리는 그 혁명에서 말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알 수 있다. 아니 "행동은 충분하다, 이젠 말이다Assez d'actes, des mots"라는 구호가 가진 역설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68혁명이 그렇게 커지진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이 보도블럭 아래에는 바다가 있네Sous les pavés, la plage"라는 구호는 얼마나 아름다우면서도 이성적이고, 혁명적인가. 그들은 새로운 구호를 창조하기도 했고, 기존의 구호들을 적절히 변형할 줄도 알았다.


3

민주노동당의 노회찬 사무총장은 TV 프로그램에서 "1번과 2번이 망친 나라를 12번이 살리겠습니다"라든가 "50년 동안 한 판에서 계속 삼겹살을 구워먹어서 판이 이젠 새까맣게 됐습니다. 이젠 삼겹살 판을 갈아야 합니다"라는 등의 참신한 표현들을 썼다. 그것이 결국 '판갈이' 운동으로 바뀌면서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초대 대통령 유령 모셔오는 소리로도 바뀌었지만, 나는 저 말들 속에 진실이 숨어있는다고 믿는다. 좋은 구호는 시가 되려하고, 좋은 시는 진정한 구호를 암시한다. 그렇다면, "행동은 충분하다, 이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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