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책

무협지와 80년대: 김영하 『무협 학생운동』, 유하 『무림일기』

엔디 2010. 1. 4. 21:55

90년대 끝무렵에 대학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세기말 학번'이라고 했다. 당시 내가 있던 대학의 총학생회은 이른바 '비(운동)권'이었고, 단과대 학생회는 NL(민족자주)이었다. 별로 개의치 않았다. 새터(신입생수련회)에서 단대학생회가 주는 가방을 받았다. '통일'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었고 보라색과 회색이 있었는데, 나는 바라던 회색 가방을 받아서 내심 기뻤다. 학생회는 신입생들에게 IMF를 주제로 촌극을 만들라고 했다. 우리는 각 과/반별로 모여 촌극을 준비했고, 한국이가 대학 들어가서 공부 안 하고 놀다가 결국 F 학점을 받지만(I am F!=IMF),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열심히 공부해 A로 올라선다는 진부한 스토리의 우리 과/반 촌극은 전체 2위를 차지했다. 그게 다였다.

우리네 동기들은 세기말의 데카당스보다는 춘삼월 소주의 데카당스에 빠져 있었고, IMF의 우울함보다는 매년 4월 신입생들에게 찾아오는--대학생들이 4월병이라 부르는--존재론적 우울증에 침윤되어 있었다. 성적性的 문제보다는 성적成績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고. 그게 다였다.

의식화 교육이나 인식론적 충격 같은 건, 단언하건데 없었다.

맑스에 대한 논의, 내지 집착이
언제까지 대학 캠퍼스를 특징짓는 하나의
강한 열기로 남아 있을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이것은 분명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것이고
나는 이 시대 학생들이 하는 고민과 방황은
맑스가 잊혀지는 시대가 되어도 후배 학생들에게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중고교 시절에 보수적인 교육, 특히 반공 이데올로기나
발전 이데올로기에 찌든 교육을 받아온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여 1,2년 동안 열성적으로
'맑스 학습'을 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한다.
요즘처럼 관심의 폭이 좁고 쉽게 싫증을 내며 사고의
호흡이 짧은 대학생들이라면 '맑스 읽기'는
분명 그들의 사고의 폭을 넓히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책 읽기 중 하나이다. 젊은이들의 외로움에 지친 모습들,
지성적이기를 포기한, '휴거설'을 퍼뜨리고 국수주의적
전통부활을 외치는 모습이 캠퍼스에 늘어가면 갈수록
상대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조(한)혜정(84-85) 선생이 1992년에 펴낸 책에서 언급한 이 글은 분명 '의식화 교육'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로부터 4년 뒤에 있은 소위 '한총련 사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7년 뒤의 대학에서 그런 '의식화 교육'은 (전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학생들의 관심의 폭은 모르긴 몰라도 훨씬 더 좁아졌고, 싫증은 훨씬 더 잘 낼 것이며, 사고의 호흡은 전보다 더더욱 짧아졌을 것이 분명하다. 2008년 오늘의 대학은 역시 잘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그 경향이 더 심해진 모습으로 비쳐진다.

독두마왕 '전두'와의 사투: 김영하 『무협 학생운동』#

어느 날 나는 시를 공부한답시고 술을 퍼마시고는, 차가 끊겨 귀가를 못해 한 선배의 집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 NL 출신의 그 선배는, 학생회 일을 맡을 무렵 도망치듯 군에 입대한, 곡절의 주인공이었다. 술에 취하면 "그래도 나는 내셔널리스트야."라고 종종 되뇌이면서도 끝없이 서정시를 써냈던 그의 책꽂이에는 시집과 평론집이 꽂혀 있었다. 그 한편으로 '학생운동'이라는 제목의 책이 보였다. 학생운동에 대한 연구서일까, 연대기일까, 아니면 어떤 종류의 금서禁書일까; 그게 아니라 『무협 학생운동』이라는 무협지였다. 지은이는 김영하. 당시는 아직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보기 전이었고, 지은이의 이름은 꽤나 낯이 설었다. 책장을 열자, 열한 장으로 구성된 소설이었다. 첫장의 제목은 '중원에 불어오는 피바람'. 전형적이다; 가만 보면 서두의 문장도 그러하다(7):

하늘엔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었다. 류는 아마도 진눈깨비가 내리려나보다 생각하였다. 날씨는 점점 추워졌고 중원 백성들의 가슴에는 재앙의 기운이 내려앉고 있었다.
류는 박통의 장례행렬을 내려다보며 희망보다는 앞날에 대한 염려가 앞섰다.
'중원에 또다시 피바람이 몰아치겠구나…'

1979년 짧은 서울의 봄과 길고 긴 겨울의 80년대를 맞는 예감이라는 것이, 무협지의 전형적인 시작과 흡사하다는 것부터가 80년대를 무협지적 세계관으로 서술하려는 것이 아주 그릇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책은 '계엄진법(계엄령)'과 '긴조진법(긴급조치)'에 능했던 박통이 승상 재귀에게 살해당한 이후부터 시작하고 있다. '서울의 봄'이 아주 짧게 끝날 것이라는 점은 이런 배경 설정을 알아보면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제왕이 승상에게 살해당한 마당에 어찌 '봄'이 오겠는가. 그러나 무사들(학생들)은 그런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천연스럽게 '조로가朝露歌(아침이슬)'를 부른다.

서울의 봄은 독두禿頭(대머리)마왕 '전두'가 '육사방陸士幇' 동문인 '노갈'에게 보낸 서찰 한 통으로 그 끝을 예고한다(14):

박통께서 서거한 뒤, 중원의 혼란은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지경이네. 자네도 알다시피 박통께서 다스리던 시절, 실로 중원은 태평성대였네. […]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나서야겠네. 왕궁만 장악하고 아메대왕님의 윤허만 얻는다면 중원의 평정은 그리 어렵지 않을걸세.

이 책은 12.12가 미국(아메대왕)의 묵인을 염두에 둔 군사 쿠데타임을 벌써부터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이 때를 즈음해 무사들은 장안성 광장에 모였지만, 왕궁으로 가자는 이들의 주장을 묵살하고 한 '장문인'은 '오늘 우리의 의사를 조정에 충분히 전달했다, 이만 해산하도록 하자'고 말한다. 유명한 심재철의 80년 5월 15일 서울역회군 사건이 이 책에 고스란히 재현돼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 책의 장점은 만만찮았던 80년대의 수많은 사건을 빠짐없이 책 한 권에 담아낸 것이다. '서울역 회군' 이후 자객 '공수단'이 '광조성'에서 만행을 저지르고, 어디서나 '백건단白巾團(백골단)'이 정파 무사들을 사로잡으려 기승을 부린다. 자민방(NL)에 속한 주인공 류의 사제인 민민방(ND)의 초아는 '문귀'라는 자에게 성고문을 당한다. 문귀동이라는 자가 저지른, 지금은 부천서 성고문 사건으로 알려진 사건의 재현이다.

이 시기에 나오는 정파 무사 편의 '영웅'들도 만만치 않다. 자민방의 '강철대사'는 "이 모든 것은 아메마황의 탓"이라 주장하며 등장하고, 민민방의 '초민선사'는 전두마왕을 꺾어 평화를 찾아야 한다고 나타난다. 이들은 물론 '강철서신'으로 유명한 NL의 강철 김영환과 ND(민족민주) 최민의 소설적 변용이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강철이 제자 류에게 주는 비서秘書가 『기발旗發』이라는 점이다(62). '깃발'은 ND 민추위의 것으로 소설에서라면 초민선사의 것이라야 온당하기 때문이다.)

당시 논쟁했던 '사구체(사회구성체)논쟁'도 강철과 초민의 '논검'으로 그려져 있고, 강철 김영환의 밀입북도 보안파 무사에게 쫓기던 강철선사가 의식을 잃고 일성천존一星天尊이 다스리는 나라로 간다는 내용으로 그려져 있다(238-239):

"안심하십시오. 이곳은 중원의 사람들이 올 수 없는 땅입니다. 이곳은 일성천존一星天尊께서 다스리는 나라로 아메마황조차 범접할 수 없는 곳입니다."

강철은 탄성을 질렀다. 이 나라에 대한 얘기는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었다. 중원에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신비의 나라로 붉은 마귀와 늑대들이 살고 있다고 전해져 오는 나라였다. 그러나 강철이 둘러보니 붉은 마귀와 늑대는 보이지 않고 사람들은 아주 온화하고 친절하였다.

[…]

"이곳은 옛날 아메마황의 침략으로 쑥대밭이 되었던 적이 있소. 하여 가족 중 한두 명은 아메마황과 그 부하들에게 죽지 아니한 집이 없소. 그래서 일성천존께선 아메마황을 물리친 이후, 모든 백성에게 주사신공主思神功이라는 독특한 무공을 전수하여 주셨소. […]"

반면 초민선사는 서역으로 가서 '변증창'과 '유물검', 그리고 마극사馬克思와 은격사恩格斯가 지은 무림 최대 비급 『자본강요』, 『공생당선언』, 『서역이념』이라는 책 세 권을 얻는다. 물론 변증법적 유물론과 『자본론』, 『공산당선언』, 『독일이데올로기』의 변용일 것이다.

물론 '국본대방(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설립과 '열(이한열 열사)'의 죽음, 그리고 그것이 도화선이 된 6월항쟁과 '노갈'의 선언(6.29 선언)도 초보적이나마 언급돼 있다.

6.29 선언이라는 '승리 아닌 승리'를 거두고 나서 류는 초아에게 이렇게 말한다(260-261):

"초아, 어쩌면 우리가 겪었던 칠 년보다 더 어려운 세월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 역시 두렵지 않소. 이제 다시 새로운 시작이오. 아마도 우린 중원의 앞날을 두고 다시 쟁패할 지도 모르지만 이전처럼 무기력하게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오."

무협지까지 금서로 만드는 전대미문의 세상: 유하 『무림일기』#

『무협 학생운동』보다 3년 앞서 1989년에 출간된 유하의 첫 시집 『무림일기』도 80년대를 무협지적 세계관으로 읽어낸 텍스트다. 당연하게도 『무협 학생운동』과 마찬가지로 '서울의 봄'과 그 경고로 시작한다(9):

온 세상이 다 노랗다
봇물 터지듯 만발한
개나리꽃
시대의 노란 신호등
해빙의 봄일수록
돌아가시오
돌아가시오
한다

- 「개나리꽃 ―여는 시」전문全文

『무림일기』는 시집이라는 면도 있고, 해서 『무협 학생운동』보다 더 종합적이거나 더 단편적이다.

가령 '무림일기' 연작의 첫 작품인 「무력武歷 18년에서 20년 사이」는 '무림패왕 천마대제 만박'(박정희)이 '천상옥음 냉약봉'(심수봉) 등이 그의 진기를 분산시킨 사이 '낙성천마 금규'(김재규)에게 불의의 일장을 맞고 척살되자 '광두일귀 동문혹'(전두환)이 나타나 중원을 평정하고 '칠청단'(삼청교육대)을 동원해 무고한 백성을 괴롭힌 이야기며,  '공수무극파천장'(공수부대)으로 '하남'(광주) 땅 민초들의 항쟁을 짓밟은 대혈겁 이야기가 고작 37행에 정리돼 나타나 있다. 그러는 사이 유하는 "무협신문들은 […] / 강력한 무공의 소유자가 중원을 다스려야 한다고 / 수심에 가득찬 기사를 썼지만 대부분 인면수심들이었다"거나 "무력武歷은 무력武力으로밖에 지킬 수 없다" 따위로 희극과 비극 사이를 삼투시키는 말놀이를 동원한다.

'무림일기' 연작의 일곱 번째 작품인 「정통종합검법」은 당시 수험생들의 필독서였던 송성문의 영어 학습서 『정통종합영어』--후에 『성문종합영어』로 개칭된--에 빗댄 표현으로, 시인은 책 속에 실린 명사名詞검법의 '붓은 검보다 강하다, 검약필강'의 구결(표현)을 뽑아내 "중원무림의 젊은이들이 / 검약필강의 은밀한 구결을 뼛속 깊이 해독해내는 날 / 붓의 무형강기가 그 어떤 초식보다 날카롭게 / 중원무림을 정통으로 꿰뚫으리라 / 중원은 정통성을 되찾으리라"고 예언한다. 더 단편적인 것에서 더 종합적인 내용을 뽑아내는 시의 묘미다.

당시의 보도지침을 무협지 형식으로 꾸며낸 시 「오늘의 전서구」도 짧지만 강렬하다(44):

무림맹은 다음과 같은 전갈을 보낸다

무림 비무대회가 열리면
무림제일문보다 소림파나 무당파가 우세
불쾌한 표현이니 비판하라

오늘있는 공심대사와 하남일존의 비무사진은
싣지 말 것

신무림방에 소림파 제자들 화염장풍 쏘다
보도 보류 바람

분근착골 육골분시 같은 과격한 표현보단
단순한 혈도제압이라 순화시켜 쓸 것

중원에 애이주愛夷酒 환자 일만명
사실무근이므로 보도하지 말 것

사천표국 색마 검귀의 채음보양술 사건은
단순히 차력음영대법이라 쓸 것

죽엽청과 삶은 만두 먹는
무림맹주 존영 크게 실을 것

(말 안듣는 무협신문은 고량주 광고 잔뜩 줄 것)

- 「오늘의 전서구 ―무림일기5」

물론, 공심대사는 김영삼, 하남일존은 김대중이다. 애이주는 물론 에이즈를 일컫는 말일 테고, 색마 검귀의 채음보양술은 앞서도 언급했던 부천서 성고문 사건인 듯하다. 이 시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광고가 무기였던 당시 신문산업의 일단까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시인·작가로서 자신의 고뇌가 엿보이는 작품은 단연 「무협지 작가와의 대화」이다(37-38):

그는 대학을 하산한 뒤 기껏 무협지를 쓰고 있었다
어제는 백명 죽이고
오늘은 고민 고민하다가 이백명 죽였어
죽엽청이 거나하게 들어가자 그는
귀기어린 안광을 번득이며 전음입밀의 수법으로 말했다
사형은 아마도 하남의 혈겁에 대해 쓰는 것 같았다
[…]
하지만 사형, 소설은 현실의 복사가 아니잖소? 절제가……
무슨 닭뼈다귀 같은 소리냐
무협소설은 무림을 그대로 드러내는 데 그뜻이 있어
내일도 모레도 애꿏은 자들
몇 백명 더 죽어야 내가 쓰는 무협지가 끝이 날지……

거친 대로 '리얼리즘 논쟁'의 출발점을 보여주는 이 짧은 시는, 그에게서 무협지란 문학이라는 것의 제유提喩라는 것을 말해준다. 실제로 유하는 자신의 두번째 시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에 실린 「무림武林 파천황破天荒」에서 대학 시절 장당 50원에 무협지 쓰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을 쓰고 있다(55-57). 거기서 그는 과다한 섹스 신과 유치한 문장들의 강요보다 자신을 더 곤란하게 했던 것은 대량살육이었다고 고백한다; 실은 그가 쓰고 싶었던 것은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초점으로 한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무림 파천황」은 1981년 있었던 무협지 『무림 파천황』 필화 사건을 소재로 한 시다. 당시 학생이었던 박영창이 쓴 『무림 파천황』이라는 무협지에 정파와 사파의 대립을 변증법적으로 종합(지양)하는 내용이나, 주인공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만난 노인이 '영혼 따윈 없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유물변증법에 관한 내용을 한두 페이지 넣었던 것이 문제가 되어 국가보안법에 걸렸다. 물론 그 책은 금서가 됐다.

그러나 정작 새로운 세상을 연 자들은 바로 그들이었다 만화방의 무협지까지 금서로 만드는 전대미문의 세상
어디에도 혼돈은 없었다 선과 악의 획일화, 절대악이 사자후하고 있었기에 너무 쉽게 절대선이 가능했다

80년대는 그런 '전대미문의 세상'이었다.

무협지와 21세기: MB시대#

절대선과 절대악이 가능했던 시대가 80년대라고 한다면, 그 시대는 필연적으로 무협지를 우리 앞으로 호출하고 있는 셈이다. 김영하 역시 『무협 학생운동』의 존립 근거를 거기에서 찾고 있다. 『무협 학생운동』의 「작가 후기」에서 그는 5공화국의 무협지성을 간단하게 말한다(264):

온갖 정견과 정파가 스팩트럼화하는 지금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5공화국 시절은 그래도 선악의 구도가 명확한 시기였고 아타의 근별도 훨씬 수월했던 시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하가 말한 '절대선과 절대악'의 다른 표현이다. 이것이 사상적 측면의 무협지성이라면, 이어진 다음의 말은 무협지의 비실제성을 환기시킨다(264):

원시적인 고문이 횡행하고 수천명이 한꺼번에 감옥에 갇히는가 하면 기찻길 옆과 바닷가에서 의문의 주검들이 잇따라 발견되었다. 이런 야만적인 압제에 대항하여 수많은 젊은이들이 학생회관 옥상에서, 대강당 지붕에서 밧줄 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싸웠던 시절은 모더니즘적 세계관보다는 차라리 무협지적 세계관에 가깝다.

어쩌면 80년대 리얼리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드는 갸웃한 느낌이나 미진한 느낌은, 그 시대가 전혀 실재하지 않았던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그땐 그랬다'는 투의 서술이 제대한 복학생들이 서로 자신의 부대가 '빡세'다고 치기어린 자랑을 하면서 섞는 '구라' 같은 느낌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의 유명한 사진과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는 발언이 나올 수 있었던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이 어디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인가?

이어지는 90년대는 또 어떤가. 다른 사람도 아닌 유하가 『무림일기』의 '영화사회학' 연작과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에서 촘촘하게 묘사하는 것처럼 그 시대의 현실은 TV와 스크린 속의 부조리가 TV 바깥으로 나온 것 같은 시대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5.16 5.17 장군본색將軍本色은 한국판 느와르요?    - 「싸랑해요 밀키스, 혹은 주윤발論」中

뭐가 진실이냐? 칼릴 지브란의 시집을 사보는 국문과 대학생이
황지우가 누군지 모르고 정복자 펠레는 아예 브라질에서 축구를 하고
불가해함이 난해함으로 칭송받고, 이,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실추된 가장의 권위를 회복하는 내용의 영화가 '좋은 영화'로 선정되고
[…] 영구나 땡칠이로 도배를 하면서 저질 직배 영화 결사 반대! 이보시오 벗님네들,
―관객 사랑도 다 하기 나름이라구요    - 「수제비의 미학, 최진실論 ―안 이쁜 신부도 있나, 뭐」中

신라의 토착 종교 풍류風流에서, 그 신도들 후손의 피바람으로 이루어진
국풍國風 81, 김범룡의 바람 바람 바람, 바람자만 붙으면 붐붐 히트하는
최근 가요계 현상까지, 수천 년 변치 않고 이어지는 우리나라
거대한 바람의 계보, 바람잡는 역사    - 「바람의 계보학, 이지연論 ―바람아, 멈추어다오」中

그러고보면 유하는 「무림 파천황」에서 공심대사가 '구국의 결단'이라는 삼당합당을 통해 무림 시대를 종식한 뒤에도 장당 오십원짜리 무협지는 여전히 씌어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언젠가 빛을 발할 '검약필강'의 초식을 상찬하고 기다렸던 그가 "칼은 칼이요 붓은 붓"이라는 뼈아픈 현실 인식을 하며 '미증유의 검법'을 기다리는 동안 세상에는 무협지적인 비현실이 엄존했다.

지금은 어떤가? 철거 직전의 상가에서 여섯 철거민이 불타 죽고, 노벨 평화상을 받으며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낸 한 전직 대통령과 그를 이은 다음 대통령이 불과 몇 달 사이에 명을 달리하고, 기동대는 노조원들에게 전기가 통한다는 쇠침을 거침없이 발사하고, 여전히 분을 못 이긴 사람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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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달나라나 화성으로 소풍을 갈 거라고 했던 21세기, 지금 현재도 무협지는 끊임없이 되풀이 씌어지고 있는 셈이다. 장당 오십원이라는 단가는 아마 더 인상됐겠지만.

나는 용산 참사가 벌어진 남일당 건물 앞에서, 희생자들의 영정을 모신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밤을 지새우며 21세기의 비현실성과 선/악의 명확성을 다시금 깨닫는다. 저녁마다 나오는 뉴스가 무협지 같고, 짬짬이 훔쳐보던 무협지가 뉴스 같다. 사람들은 어느 사이 무협지의 텍스트 안쪽으로 들어와 있다. 그러나 정파 무사들은 여전히 한 줌인 듯하다.

시인의 통찰력일까. 유하는 소망교회 장로가 용산에, 광화문에, 평택에 불을 가져올 것을 알았는지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연작의 네 번째 시를 이렇게 (예언하듯) 쓴다(68):

소망교회 앞, 주 찬양하는 뽀얀 아이들의 행렬, 촛불을
들고 억센 바람 속을 걸어간다 태초에
불이 있나니라, 이후의 ―

[…]

불 같은 소망이 이 백야성을
만들었구나, 부릅뜬 눈의 식욕, 보기만 해도 눈에
군침이 괴는, 저 불의 부패 색色의 성찬盛饌을 보라
그저 불밝히기 위해서 심지 돋우던 시절은 지났다

[…]

불의 소망 근처에서
불의 구린내를 빠는 똥파리의
윙윙 날개 바람

바람 속으로 빽이 든든한
촛불들이 기쁘다 구주 기쁘다
걸어간다, 보무도 당당히, 오징어의 시커먼 눈들이
신바람으로 몰려가는, 불의 부페 파티장 쪽으로

-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4 ―불의 부페」

참고문헌#

김영하. 1992. 『무협 학생운동』. 아침의소설6. 서울:아침.
유하. 1989. 『무림일기』. 문예중앙 시인선1. 서울:중앙일보사.
―――. 1994(초판 1991).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문학과지성 시인선104. 서울:문학과지성사.
조(한)혜정. 1992.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 1:바로 여기 교실에서. 서울:또하나의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