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시계, 최초의 달력은 사람의 눈이었다. 사람들은 태양과 달의 모양과 움직임, 물의 흐름을 보고 세월歲月과 시간時間과 촌음寸陰을 알았다.

박주택의 시집 『시간의 동공』은 시인의 눈을 따라 시간의 흐름을 꿰뚫어보고, 눈이 보았던 기억과 그 속에 숨어있는 계급을 살펴보는 시집이다.

시인의 눈은 먼저 "문을 닫은 지 오랜 상점"을 바라본다. 불빛이 없어 어두운 그곳에는 발가벗겨진 채 갇혀 있는 인형이 보인다. 시인은 문득 섬뜩함을 느낀다. 그리고 사뭇 달랐던, 처음 그곳에 갔을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때는 허리춤이 드러난 한 여자가 물을 뿌리며 창을 닦고 있었고, 사랑스러운 아이와 고요한 커피 잔도 시인의 눈에 들어왔다. 아마 인형도 그 때는 옷을 걸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인은 그 먼 기억과 다른 괴기한 광경만 볼 뿐이다. 시 '폐점'의 내용이다.

기억은 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무엇인가를 기억하는 행위는 과거와 지금이 같은지 다른지 비교하게 하고, 그 사이 수많은 시간의 물결과 주름을 알아보게 한다. 문제는 이 물결과 주름이 만드는 숫자의 흐름에는 어떤 정치적인 함의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간이란 계급을 재편성하는 과정이란 느낌이 들 때
햄버거는 입속에서 혈관을 터뜨리고 커피는 저녁처럼 어두워졌다
순환하는 인간들, 청춘은 중년이 되고 또 다른 청춘은
이곳을 가득 메우며 노년에 이르게 됨을 눈치채지 못한다

- 「강남역」부분.

여름 저녁 강남역 인근의 번화가를 지나다보면 젊음이 하나의 계급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땀 냄새가 가득한 그 청춘의, 여름의 계급은 「여름들」에서 보듯 자꾸 무엇인가를 소유하려고 하고, 무엇인가를 불러들이려 한다.

그러나 그 계급은 결국에는 부질없이 지고 마는 계급이다. 여름이었던 시간은 어느새 가을로, 가을이었던 시간은 금세 겨울로 변해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깨달은 것일까. 시인은 「여름 말 사전」에서 "여름이 갈 때 용서하자"고 노래한다. 이어 「가을 말 사전」에서는 "빈 들에 서서 서서히 가라앉는 것을 본다." 이어 눈보라가 치고 종소리가 울리면 그제서야 "여름이 겨울처럼 늙어가 이제는 울음조차" 시인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소년이었을 때」).

사실 겨울이 지나면 이승에 남는 것은 없다.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성서의 예언처럼 모두 본래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이제 남은 것들은 자신으로 돌아가고
돌아가지 못하는 것들만 바다를 그리워한다

- 「시간의 동공」부분.

하지만 망각만이 남아 있을 것 같은 겨울 이후에도 여전히 기억은 끈질기게 깨어 있다. 시인은 그것을 '미련'이라고 부른다.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은 기억되려는 욕망 속에서 무덤이라는 것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곳은 미련의 둥지다
저마다 지붕을 틀고
게걸스러웠던 입을 다문 채 죽은 것처럼
누워, 햇빛을 쬔다
[...]
죽어서도, 끝끝내
버리지 못하는 미련의 노란 창문이다.

- 「묘지」부분

물론 이런 기억이 갖고 있는 미련은 마냥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땅 속에 묻힌 무덤은 뿌리이지만, 줄기와 여름의 꽃잎들은 한 나무의 가지가 되기 때문이다. 조선 3대 태종 부부와 23대 순조 부부가 나란히 묻힌 헌인릉에서 노는 아이와 부모들을 보고 반 세기를 살아온 1959년생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뿌리들은 어느 마음의 끝 땅속에 내려
이토록 질긴 목숨으로 얽혀 있을까
바람이 지나가면 그 흔들림만큼 흙 속을 엉켜드는
목숨들 두 번의 생이 있다면 아름다움이 다투어 묶이는
창문에 나가 동터오는 집의 입구를 바라볼 것이다

- 「헌인릉 가서」부분

삶의 성(城)은 언젠가 조금씩 몰락해가는 것이지만 계속해서 다시 지어지는 것이며, 그 모든 주름져가는 과정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시간의 동공 - 10점
박주택 지음/문학과지성사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Posted by 엔디
1. 민족과 계급

민족이냐 계급이냐 하는 문제는 한국적 상황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이슈가 되어왔다. 식민지 시절에 맑시즘을 받아들이고, 분단 시대를 거쳐 이를 정교화하는 과정을 겪어온 까닭이다. 민족의 독립이, 그리고 민족의 통일이 오랫동안 지상과제였던 시절, 계급을 들먹이는 것은 반역이나 개인주의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항상 있었다. 권력을 장악하려는 음모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민족주의자 백범은 자서전에서 이렇게 적는다(김구 1997, 313-314):

국민대회가 실패한 후 상해에서는 통일이란 미명美名하에 공산당 운동이 끊어지지 않고 민족운동자들을 종용하였다. 공산당 청년들은 여전히 양파로 나뉘어 동일한 목적과 동일한 명칭으로 '재在중국청년동맹'과 '주住중국청년동맹'을 조직하고, 상해의 우리 청년들을 앞다투어 포섭하여 독립운동을 공산운동화하자고 절규하였다.

그러던 중 레닌은 공산주의자들에게 "식민지운동은 복국운동復國運動이 사회운동보다 우선한다"고 발표하였다. 이 말이 한번 떨어지자 어제까지 민족운동 즉 복국운동을 비난·조소하던 공산당원들이 돌변하여 독립·민족운동을 공산당의 당시黨是로 주창하였다. 여기에 민족주의자들이 자연 찬동하고 나서서 '유일독립당촉성회唯一獨立黨促成會'를 성립시켰다. 그런데 내부에서는 의연히 공산당 양파의 권리쟁탈전이 음양으로 치열하게 대립되어 한 걸음도 진전되기 어려웠다. 민족운동자들도 차차 깨우쳐 공산당의 속임수에서 벗어나 결국 유일독립당촉성회는 해산되고 말았다.

백범일지
백범은 공산운동을 '절규'하다가 레닌의 한 마디에 민족운동으로 뛰어드는 공산주의자들을 조소하고 있다. 또한, 그들의 권력 지향적인 모습을 드러내어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는 당시 공산주의 운동이나 사회주의 운동에서 민족의 독립을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았고(강만길 1994, 80-90), 아나키스트였던 신채호 역시 민족 운동에 일생을 바친 것을 살펴보면 공산주의자 및 사회주의자들을 무턱대고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계급 혁명을 민족 해방에 우선시 한다는 사실은 헤게모니를 장악한 민족주의자들이 공산주의자들을 비난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 글을 인용한 것은, 백범의 진단은 현 상황에서 민노당의 모습을 조망하는 데 꽤나 유용한 도구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 민노당의 분당론

민주노동당의 분당론은 꽤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본격적인 분당론은 17대 대선을 위한 경선 과정에서 NL들이 보였던 행태 때문에 드러난 것 같다. 경선 직후 박노자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민노당, 분당 이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글을 올려 분당론의 운을 뗐고, 수많은 민노당 지지자들은 NL이 지지했던 권영길 후보를 응원하면서도 비난을 아끼지 않았다. 이른바 '비난적 지지'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권영길 후보는 영국의 무상 의료, 무상 교육이라는 소중한 정책보다는 (아마도) NL의 입김이 들어간 '코리아 연방 공화국'이라는 생경한 정책만 떠들다가 사라졌다. 박노자는 권영길 후보께 삼가 충고드립니다라는 포스팅을 통해 점잖게 충고했고, 백무현 화백은 만평에서 이렇게 그렸다:

백무현 서울 만평 2007년 11월 27일

백무현 서울 만평 2007년 11월 27일


민노당 입장에서 이번 17대 대선은 명박한명백한 패배이다. 중선관위 집계에 따르면 16대 대선 당시 3.9%였던 득표율은 3.0%로 떨어졌다. 5년 만에 1/4의 지지자를 잃은 것이다. 16대 때 이른바 '정몽준 폭탄' 사건으로 민노당 지지자 일부가 노무현을 찍은 사례가 많았다고 판단되므로 실제 잃은 지지자 수는 훨씬 더 많은 셈이다. 4월에 있을 총선에도 밝은 미래는 없다: 중선관위의 지역별 득표 집계(IE only)에 따르면 민주노동당의 권영길은 자신의 지역구인 창원에서 7.9%, 현대차 노조가 있는 울산에서 8.4%의 득표를 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창원에서 51.7%, 울산에서 54.0%의 득표를 했다.)

17대 대선 후보별 득표율 (중앙선거관리위원회)

17대 대선 후보별 득표율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권영길의 생경한 정책과 일부 NL들의 시대착오적 행태, 그리고 당권욕 등이 대선 참패의 원인이라고 진단한 대중적 좌파 지식인들은 분당론을 확산시켰다. 박노자, 홍세화, 진중권은 블로그를 통해서, 인터뷰를 통해서, 그리고 기고문을 통해서 터뜨리듯이 NL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조승수 전 의원과 주대환 전 당 정책위의장은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면서까지 NL들을 맹비난했다. 비판과 비난의 핵심은 그들이 당의 미래가 아닌 '김정일'의 미래를 더 생각한다는 점과 그들이 민노당 당권에 지나치게 연연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진중권이 3년 전에 쓴 민주노동당의 죽음이라는 글에서 이미 드러났다. 이번 대선과 관련해서는, 우석훈이 투표와 탈당에 대한 결심이라는 글을 통해 권영길이 실은 당대표에 대한 욕심에서 출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나타내면서도 일단은 투표하겠다는 일종의 '비난적 지지' 선언을 했다.

여기서 보이는 일련의 과정이, 백범이 과거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조금은 편협하게) 묘사한 내용과 상당히 닮아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민노당 내에서 NL들은 비록 한미 FTA 반대나 신자유주의 반대 등 맥을 같이 하는 부분에서 열심히 투쟁하였음에도 기본적으로는 그들이 당권을 장악하려고 했던 전례가 있고, 이북의 김씨 정권의 명령만을 추종한다는 점에서 백범이 묘사한 과거의 얼치기 공산주의자들과 유사성을 찾기는 아주 쉬운 것이다.

민노당에서 NL을 '잘라내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실제로 어렵기도 하고, 적어도 몇 가지 사안에 있어서 그들의 도움이 절실한 부분도 있다. 또 지지층이 갈리는 것은 어쨌든 바람직한 일이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주사파처럼 철학 없는 '추종자'들과의 연대 역시 바람직한 일이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사태를 너무 나이브하게 바라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민노당의 모든 NL이 주사파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민족주의는 내가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주의주장이지만, 민족주의 자체를 비난할 권리는 없다. 계급적 의식이 있는 민족주의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실제로 분단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민족의 미래는 계급의 미래와 개개인의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분단 시대는 국방 예산 등 엄청난 비용 지출을 필요로 하고,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라 할 (이산) 가족의 만남을 가로막고 있다.)


3. 분당론에서 염려되는 것

분당론에서 염려되는 것은 소중한 민주노동당의 토대가 와해되고, 지지층이 분산 및 이반되는 것이다. 지난 2002년의 프랑스 대통령 선거 때에는 사회당Parti Socialiste의 조스뺑이 국민전선Front National의 르 뻰에게 밀려나는 사건이 있었다. 결국 결선투표에서 시라끄가 80% 이상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전체적으로 좌파 정권을 지지하는 프랑스인들이 많았음에도 우파 시라크가 대통령이 된 것은 1차 투표 때 좌파 연합의 표가 분산된 까닭이 크다. 1차 투표에서 시라끄가 19.88%, 사회당의 조스뺑이 16.18%를 얻었지만, 여타 좌파 정당들인 노동자 투쟁당Lutte Ouvrière이 5.72%, 혁명적공산주의동맹Ligue Commuiste Révolutionnaire이 4.25%, 그리고 프랑스 공산당Parti Commuiste Français이 3.37%를 얻었다. 물론 사회당과 뜨로쯔끼주의자들, 그리고 공산당이 한 정당이 되리라고 예상하기는 힘들지만, 이들이 후보 단일화를 잘 수행했다면 수학적으로 충분히 좌파 정권 창출이 가능했을 약 30%의 지지율을 얻을 수 있다. (5.5% 가량의 표를 얻은 녹색당까지 고려하면 실제 효과는 그 이상일 수 있다.) 2002년 당시 좌파 후보들은 무려 7명이나 될 만큼 '난립'하였던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분당이 이와 같은 사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은 현실 정치의 면에서 극히 우려스럽다. 하지만, 분당을 통해 주사파들의 털고 가면 바로 그 점 때문에 민노당 지지를 유보해왔을 새로운 지지층을 흡수할 수 있을 뿐아니라, 바라건대는 한국사회당이나 녹색당 등과의 연대도 꾀할 수 있다는 희망도 보인다. 하지만 현실 정치적인 면 이외에도, 이 땅에 계급 의식에 기초한 어엿한 원내 정당이 있고 그 원내 정당이 '좌우의 날개로 나는' 한국을 이루어내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자부심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소중하다고 보겠다.

박노자 교수는 확실히 이 점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민노당 분당 - 필요하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제하의 포스팅에서 '분당 이후'를 이미 통찰하고 있었다:

"김빠"들이 걸러진 뒤에 "정파"들은 혁파돼야 합니다. 우리가 "사민주의자와 조합주의자와 트로츠키주의자들의 느슨한 연합체"가 아닌, 진정한 계급 정당을 만들자면 정파 소속보다 당소속이 우선돼야 되지요. 당에서 정파적 이익을 배타적으로 추구하는 행위들은 부끄러운 행위가 돼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컨대 "다함께" 회원이면서도 당적을 보유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일단 당에서 투표할 때에 "다함께"의 의견보다 당의 이익과 전망, 그리고 넓게는 한국과 세계노동계급의 이익을 먼저 의식하고 소신 투표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마음은 아파도 진보정당을 구할 길은 이 길밖에 없습니다에서 볼 수 있듯이 분당해야 하는 까닭을 무엇보다도 대중정당의 건설이라는 확실한 목표 하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주장에 쉽게 찬동하고 신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덧) 웹서핑 중 현단계의 상황을 가장 명쾌하게 정리한 글이 있어 소개한다:
민주노동당 : 이건 분당이 아니라 파당이다.
트랙백도 걸었다. 일독을 권한다.
명쾌한 정리라고는 하지만, 정리가 명쾌할수록 마음은 무겁다.
2008. 1. 2. 17:30


-----
참고문헌

강만길. 1994. 『고쳐 쓴 한국현대사』. 서울:창작과비평사.
김구[도진순 주해]. 1997. 『백범일지: 백범 김구 자서전』. 서울:돌베개.

고쳐 쓴 한국현대사 상세보기
강만길 지음 | 창작과비평사 펴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한국현대사 개설서 <고쳐 쓴 한국현대사>. 1984년에 출간된『한국현대사』를 전면적으로 증보하여 내놓은 책이다. 이번 2판에서는 1판이 출간된 이래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을 반영하여 내용을 추가하거나 수정하였다. 또한 사진이나 도판을 새롭게 실어 시각적인 효과를 높였으며, 각 장을 요약한 도입부에 그 시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파노라마식 사진을 배치하였다. 이 책은 한국사 개설서로
백범일지(보급판) 상세보기
김구 지음 | 돌베개 펴냄
백범 김구 자서전. 『백범일지』는 친필 원본은 물론 등사본과 필사본, 여러 가지 출간본 등 여러 저본을 일일이 면밀하게 검토, 대조했다. 또한 사전류는 물론 고전, 규장각 자료 등의 고문서, 수많은 회고록, 일본, 중국 등 해외의 임정 관계 자료까지 두루 활용하고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자문을 받아 원본의 미흡한 점과 착오 등을 수정, 보완했다. 27년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어온 민족독립운동가이자, 자신의 전
Posted by 엔디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