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ogies with the totality of laws are reproduced exactly in the tiniest leaf.
아날로지는 법칙의 총체성과 함께 가장 작은 나뭇잎에서도 완벽히 재현된다.

Art does not reproduce visible, rather it makes visible.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 올림픽 공원 내 소마 미술관
파울 클레Paul Klee 전 : 눈으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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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엔디

Als das Kind Kind war...
아이가 아이였을 때…




《베를린 천사의 시》의 원제는 '베를린의 하늘Der Himmel über Berlin'이다. 영어 제목은 '욕망의 날개Wings of desire'다. 아무데나 詩를 갖다붙이는 행태는 비난받을 것이지만, 이 영화의 번역과 이 당시의 영화제목의 번역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내용과도 잘 부합하고 있다. 적어도 《식스 센스》, 《나씽 투 루즈》, 《어댑테이션》따위보다는 훨씬 낫다.

역사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던 천사는, 영화에서 색맹이다. 그들은 지하철, 도서관, 누군가의 집, 길거리…… 어디에나 있지만 사실은 아무 데도 없다. 가령 그들에겐 모든 역사가 TV이다, 환상이다. 감정도 얼마간 가질 수 있고 사람들의 생각도 마음대로 읽어내지만 그걸로 끝이다. "우린 역사의 방관자가 아니야!" 그들은 역사의 방관자다.



천사는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 마천루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을 보고, 그의 생각을 읽어내고, 그는 떨어지고, 다만 "안돼Nein!!!"라고 소리칠 뿐이다. 그들은 왜 있는 것일까? 그들은 왜 영원한 것일까? 그들은 죽을 수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미엘Damiel이라는 한 천사(Bruno Ganz 扮)가 강림했다. 그의 강림은 전혀 신비롭지 않았다. 아마 높은 곳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그의 갑옷이 그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그가 사람이 되면서 제일 먼저 느낀 것이 아픔이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가 아픔을 기뻐하기 때문이다. 그는 뒤통수에 흐르는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고("맛이 좋군.") 행인에게 묻는다. "이게 빨간색?"

아이가 아이였을 때,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나는 왜 나이고, 네가 아닌가.
왜 나는 여기에 있으면서, 저기에 있을 수 없는가.
내가 아직 나이기 전에, 나는 무엇이었는가.
언젠가는 나란 존재는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천사가 천사였을 때,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알기를 바랐다.
천사가 천사였을 때, 영원한 삶을 가졌다.
그럼에도 그는 살기를 바랐다.

그가 인간이 되었을 때 가장 중요한 변화는 색깔이 아니다. 감각도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표면적인 변화에 불과하다. 그는 영생을 넘어서는, 순간에 바야흐로 직면한 것이다. 그가 느끼는 순간은 다만 순간으로서가 아니라, 놀라워라, 영원으로 있는 것이다. 그가 영원이었을 때 이리저리 표류하던 이미지와 사건들이 그가 순간이 되자 하나의 극점을 향해 나름의 배열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와의 사랑을 시작하면서 마리온Marion(Solveig Dommartin 扮)은 말한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라, 무언가의 화신이고……"



영화에는 한 시인이 나온다. 머리터럭이 거의 빠진, 주름살이 온 얼굴을 덮은, 지팡이 짚은 노시인이다. 시인의 일은 물론 시를 쓰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시로 쓰는가. 인생을? 슬픔을? 죽음을?

앞으로 달려가던 미개인이 돌을 던졌다. 그리고 그것이 전쟁의 시작이 되었다.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전쟁의 역사, '늙.은.' 시인은 아마도 그것을 쓸 것이다. 그곳 베를린에서. 히틀러는 단지 히틀러가 아니라 무언가의 화신이고, 2차대전은 단지 2차대전이 아니라 무언가의 화신이고, 시인은 그리고 그것을 쓰는 시인이고…….

아이가 아이였을 때 산딸기를 따러 높은 곳에 올라갔고,
지금도 그렇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낯선 사람 앞에서 쑥스러워했고,
지금도 그렇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창던지기도 했고,
그때 꽂힌 창이 지금도 흔들리고 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가 바로 '지금jetzt'이다. '지금'이 영원보다 영원한 것이다.

Lied vom Kindsein
Song of Childhood
어린 시절의 노래

Posted by 엔디
『페터 카멘친트』는 헤세의 데뷔작이다. 나는 그래서 이 작품이 정돈되기 보다는 거칠은 어떤 것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그런 것을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 작품은 깨끗했다.

데뷔작에서부터 우리가 흔히 '헤세적'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잘 드러나고 있었다. 가령 자연 친화, 기독교적 신의 거부, 민중적 삶에 대한 애착 등이 여기서 페터 카멘친트라는 인물을 통해 제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아마 이것들은 이미 그의 유년기에 형성된 것이기가 쉽다. 인도 선교사였던 그의 아버지와 동양학자였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상상해 볼 수 있겠다.

카멘친트는 '촌뜨기'다. 그는 도회지에서 사교생활을 해보지만 결국 그는 촌뜨기로서 시골로 돌아간다. 줄거리만 가지고는 『수레바퀴 아래서』와 비슷한 면이 있는, 소박한 소설인듯 싶지만 실제로는 교양소설이나 예술가소설의 범주에 넣을 수도 있을 정도로 카멘친트의 생각의 궤적들이 잘 형상화되어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헤세와 화해할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 곧 '시골주의'를 발견해냈다. 『수레바퀴 아래서』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보여준 그런 생각들이 여기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이 소설은 그의 가장 도시적인 소설이라 할 수 있는 『황야의 이리』와는 대척점에 있었다. 가령 그가

산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은 오랫동안 철학과 자연 과학을 공부해서 옛날의 신을 다시 버렸을지라도, 푄을 다시 한 번 느끼거나 눈사태가 나무를 부러뜨리는 소시를 듣게 되면, 그는 가슴이 철렁 떨리고 다시 신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법이다. (19쪽)

라고 말할 때, 나는 이를 인정하고 수긍하면서도 '그렇다면 소설은 도회지 삶에 대한 도피처 정도로 되고 말 수도 있다, 소설은 오히려 사람들의 삶을 더 드러내야 한다'고 아직은 어설픈 반대입장을 내놓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적 신에 대한 그의 입장은 변한 적이 없는데, 내 입장은 자꾸 변했다. 처음에는 그토록 적대시한 그의 신관神觀을 나는 이제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언젠가 헤세는 중고생용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지만, 나는 거기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소설에 담긴 그의 사상들은 현재까지도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는 점은 다른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는, 그의 깊은 사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페터 카멘친트
헤르만 헤세 지음, 원당희 옮김/민음사



인상깊은 구절들

Posted by 엔디
살아남은 자의 슬픔
김광규 시인이 옮긴『살아남은 자의 슬픔』(한마당)을 읽었다. 널리 알려진 그의 여러 시편들보다 오히려 내 마음을 끄는 것은 다른 것들이었다. 「울름의 재단사」는 몇 달 전에 읽고서 멋지다고 생각해오던 것이지만, 오늘은 새로운 좋은 시를 발견(!)했다. 시가 좋다는 것은, 함축성이 뛰어나 여러 가지로 읽힐 수 있다는 뜻이다. 그뿐 아니라, 그 수많은 읽힘이 모두 타당하도록 진실성이 있다는 뜻이다.

나의 어머니Meiner Mutter (1920)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 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여기서 '가볍다'는 것은 물리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물리적인 것에 대해서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는 물론 시인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에 임해서 쓴 시이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땅에 묻힌다는 것은 무언가의 상징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어머니는, 꽃과 나비를 키운다. 그럼으로써 그녀가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그녀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내가 보기에는, '그녀'가 땅과 동일시되고 있는 듯하다...
Posted by 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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