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가 시에 대해 가진 생각은 아주 독특하다. 문학과 예술의 무용성無用性을 강조하는 일군의 예술가와는 달리 브레히트는 문학 역시 써먹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브레히트의 첫 시집인 『가정기도서』는 "이 가정기도서는 독자들이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이 시집은 아무 의미없이 처먹혀서는 안된다"라는 사용지침서를 가지고 있다. 브레히트가 시의 사용가치를 중요시하는 것은 그의 서사극 이론의 핵심인 '낯설게하기효과Verfremdungseffekt'와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사실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이 책의 소중한 점 가운데 하나는, 모든 면에서 신비주의를 배격한 브레히트가 시인들에게 하는 충고이다. 책의 표제로도 쓰인 '시의 꽃잎을 뜯어내는 일'은 시를 하나하나 분석하는 일이다. 그는 꽃이 꽃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꽃잎을 뜯어내도 하나하나가 다 아름다운 것처럼 시도 그렇다고 말한다. 이 책에 실린 그의 어떤 분석이 수준 미달인 것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를 꼼꼼히 분석하려는 태도는 시인이 가져야할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또 그는 시인이 논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옳다. 시에 논리가 없다면 온갖 비약이 시라는 이유만으로 허용되고 말 것이다. 그러면 어떤 시가 좋은 시고 어떤 시가 좋지 못한 시인지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몇 가지 논거는, 당시의 사정은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은 대체로 다 통용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내려오다 교내 어느 문학회에서 시화전을 여는 것을 보았다. 브레히트도 시와 그림을 따로 전시하는 기획을 한 일이 있다. 그러나 그는 시화와는 다르게 시 따로, 그림 따로 전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고유의 예술을 지키면서 두 예술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이것과 관련해 연인과 얘기를 나눴다. 가령, 블레이크의 경우에 대해서.

시의 꽃잎을 뜯어내다
시의 꽃잎을 뜯어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이승진 옮김/한마당

Posted by 엔디
나는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이라는 전작 저술이 있는줄로 알았다. 전에 한두페이지 읽다가 치우고 읽다가 치운 책을 이틀에 걸쳐 읽었다. 글이 씌어질 당시의 정황이나 다른 희곡 작품들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글들도 조금 있어서 수월치는 않았다.

전체적으로는 지루했다. 전작 저술이 아닌 까닭에, 같은 내용이 여러 편의 논문이나 강연록에 자주 비슷한 형태로 노출되었다. 지속적으로 그가 강조하는 것은 '감정이입'에 대한 비판과 '낯설게 하기 효과Verfremdungseffekt'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감정이입에 대해서 그가 가진 불만은 이렇다. 배우가 연기를 잘하면 잘 할수록 관객들은 그 역할에 감정이입되어 자기가 '그'인 것으로 느끼기 때문에 여러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관객은 자기가 같이 느낀느 주인공이 보는 만큼만 볼 수 있을 것이다."(59) "관객이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이 되도록 그는 가능한 한 개인적인 특성을 갖지 않는 유형적인 인물이어야 했네. […] 감정 이입을 위해 준비된 인물(주인공)은 관객의 감정 이입을 위해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있어 상당한 손상을 입게 되네."(168) "자네들이 자네 관객들을 이미 파블로프의 개처럼 병들게 해놓았단 말이네."(177)

브레히트는 감정 이입을 일종의 최면이나 마약으로 취급한다. 그의 주장에 공감이 가는 것은―당시 연극도 연극이지만―요즘의 영화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는 점점 싫어하고 아무 생각없이 듣기만 할 수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생활이 하도 각박하고 힘들어서 극장에서조차 '박터지게' 생각하는 것은 너무 잔혹하다는 사람도 만나보았다. 그들은 정말 파블로프의 개가 된 것이 아닌가. 한차례 울어주고(Katharsis!), 나와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답답하다.

브레히트는 감정이입의 대안으로 낯설게 하기 효과(생소화生疎化효과)를 든다. "새로운 기법의 원칙은 감정이입 대신에 관객에게 생소감(Verfremdung)을 불러 일으키는 데 있다."(61) 그것은 관객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려는 의도이다. 낯설게 하기 효과가 잘 발휘될 때, 관객은 왜 주인공은 '이렇게 행동하지 않고 저렇게 행동할까'를 고민하게 된다. 때문에 '새로운 기법'은 관객을 직접적으로 염두에 두게 된다. 기존의 연극은 '제 4의 벽vierte Wand'이라 하여 무대의 뚫린 면, 즉 무대와 관객 사이의 공간에 벽이 있어서 나머지 세 막힌 면처럼 교류가 없다고 전제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브레히트는 이 '제 4의 벽'을 없애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가 낯설게 하기 효과를 위해 제안한 새로운 연기기법은 이렇다. "1. 3인칭 화법의 도입, 2. 과거 화법의 도입, 3. 지문과 주석도 함께 읽기"(72)

배우는 관객에게 직접 말해야지 과거처럼 능청스럽게 '독백'을 해서는 안 되고, 그 자신이 맡은 역할에 몰아沒我하게 되면 안 된다. 그는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해 "반대 의견을 표하는 자세"를 취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그는 "그가 하지 않는 행동이 그가 하고 있는 행동 속에 포함되"(71)도록 해야한다.

브레히트가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작가나 배우 스스로가 작품에 대해 코멘트하는 것과 관계있지 않을까 싶다. 가령, 그의 교육극「예외와 관습」의 마지막 코러스는 "여행 이야기는 / 그렇게 끝납니다. / 당신들은 듣고 보았지요. / 일상적인 일, 늘상 일어나는 일을 당신들은 보았지요. / 우리는 그러나 당신에게 요청합니다. / 생소하지 않은 일을 의아하게 생각하시오! / 평범한 일을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시오! / 일상적인 일이 당신들에게 놀라움을 자아내야 하오. / 관습으로 알려진 일이 악습임을 깨달으시고 / 그리하여 악습을 깨달은 곳에서는 / 구제책을 강구하시오!"이다. 일상적이고 관습적인 일을 모사한 이 극은 그것을 낯설게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작가는 거기에 대해서 '이게 이런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과연 좋은 효과만을 낼까? 극이나 영화가 소설보다 대중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효과들은 소설에서도 적용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렇다면, 소설에서도 이런 코멘트들을 적용해야할까? 그것은 예술성의 희생이 아닐까? 브레히트가 실제 연극에 적용한 것들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볼 일이다. 그것이 예술성의 상실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다른 부분에서도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서사극 이론
마리안네 케스팅 외 지음, 김기선 옮김/한마당

Posted by 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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