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책/비평&인문

합리성의 보루와 그 한계: 복거일『소수를 위한 변명』

엔디 2003. 4. 15. 04:22
2, 3일간 틈나는 대로 복거일의 『소수를 위한 변명』을 읽었다. 아마 출판해인 1997년 이전에 신문이나 잡지에 게제된 글을 모은 책일 것이고, 그런 글들이 시사時事적인 부분과 관련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현재적으로도 꽤나 중요한 글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각각 독립된 글들이라 중복되는 부분도 얼마간 있었지만 책 전체를 꿰뚫는 생각은 자유주의와 합리성이었다.

모든 분야를 경제적 자유주의와 합리주의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일관성이 있고, 끌리기까지 했다. 교장의 권위주의적인 태도가 문제가 되어 기간제 교사가 피해자인 것이 분명한 사건임에도 죽음 앞에서는 시야가 흐릿해지는 사회를 보면서 많이 답답해져 있던 터라 그런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화는 더 잘 이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거부감이 드는 측면도 있었다. 교육도 수능점수를 토대로한 배급제에서 완전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나, 대통령 후보로 외국인은 어떤가 하는 의견들은 쉽사리 받아들여질 수 없는 부분이다. 사회의 구성원들을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합리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경제인으로만 구분짓는 것 같아서 조금 기분이 나쁜 면도 있었다.

아마 그의 '영어공용어화'는 그런 의미에서 접근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어를 배우는데 엄청난 비용이 듦에도 그것이 국제사회에서의 통용율은 거의 0%에 가까운 상황이니 경제적인 측면만 생각하면 그것은 낭비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 것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거기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합리적인 사고인 이상 비판할 수는 있지만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런 선택은 그가 제목으로 내세운 '소수'를 배제하기 쉽다는 생각은 든다. 어떤 재화가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만 소비된다는 것은 그 재화가 효율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재화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적은 것이다. 때문에 수익성만을 가지고 그것을 재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닐까 한다. 물론 그는 그렇다면 그 수요가 적은 재화는 가격을 올리면 된다고 시장의 논리를 말하겠지만, 생필품이 아닌 이상 그 재화가 가격탄력성이 적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정치나 사회준거에 관계된 글들은 무척 재미있게, 탄복하면서 읽었지만 뒤로 갈수록 경제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와 지루하긴 했다. 그것은 내가 경제에 무관심하다기보다는 무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때가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복거일의 『소수를 위한 변명』은 약간의 거부감을 인정하고서라도 좋은 책이고 이 시점에서 꼭 필요한 책이라고 하고 싶다.

소수를 위한 변명
복거일 지음/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