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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됨'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고, '이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기독교는 위험하다. 그리스도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언급했던 것은 두 사랑의 계명, 곧 여호와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사도 요한은 한 편지에서 다소 충격적인 발언을 한다(요일 4:20):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흔히 이웃 사랑에서 자주 인용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배울 필요가 있다. 도움이 필요한 소외된 자를 돕는 선한 사마리아인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모범이기 때문이다. 사마리아인이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 돈을 스스로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여호와의 것 혹은 최소한 공동체의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정치가 한정된 재화를 어떻게 나누는가를 정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할 때, 기독교의 정치는 그 재화가 본래 여호와로부터 온 것이라는 철저한 인식 속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1. 기독교와 사유재산

쟝 깔뱅은 그리스도인의 사유재산을 포함한 여러 가지 자유를 인정했다. 모든 신자가 수도원의 탁발승처럼 살 필요는 없고, 각자 자신이 있는 곳에서 여호와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소중한 소명이며, 그로써 정당하게 번 재산은 신의 선물이라는 것이다(Calvin 1994, 332):

분명히 상아나 금이나 재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선한 것이며,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허용되고 지정받기까지 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웃거나 배부르거나, 옛 조상의 재산에 새 것을 더하거나, 혹은 아름다운 가락을 즐기거나 포도주를 마시는 것들을 결코 금지당한 적이 없다.

이에 따라 막스 베버가 '독특한 부르조아 경제윤리'라고 부른 기독교 경제 윤리가 탄생한다(Weber 1987, 242-243):

그리하여 하나의 독특한 부르조아 경제윤리가 출현한 것이다. 부르조아 기업가는 신의 충만한 은혜 가운데 서서 그의 축복을 받고 있다고 느끼며, 그가 형식적인 올바름의 틀을 지키는 한, 그리고 그의 도덕생활이 깨끗하며 그의 재산이 온전하게 사용되는 한 금전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며, 또한 그가 그렇게 해야 할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기독교의 측면에서 보면 그 사유재산이라는 것 역시 '나의 것'이 아니라 '신의 것'을 맡아두고 있다는 의식이 중요하다. 이런 의식의 발전된 형태로 사도행전이 보고하는 위대한 기독교 공산주의 혁명을 들 수 있을 것이다(행 2:44-45; 4:32):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주었다.

그 많은 신도들이 다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사도행전 1장은 다락에 모인 그리스도인들의 수가 120명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2장에서 성령이 임한 오순절 사건 이후 41절은 3000명의 제자가 늘었다고 보고 하고 있으며, 4장에서 말씀을 들은 자 가운데 5000명의 남자가 새로 믿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 당시에는 성인 남자만 세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므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보수적으로 잡아도 족히 2만 명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2만 명의 공동체가 사유재산 없이 서로 필요에 따라 물건을 통용했던 것이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의 정치라면 이 정도의 이상은 꿈꾸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자본주의의 시대를 접고, 기독교 공산주의의 시대로 나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한국의 깔뱅주의 프로테스탄트라면 재산과 관련해서 세속 법이 규정하는 것 이상으로 엄격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가령 깔뱅 역시 사유재산은 인정했지만 무차별적인 재산권 행사의 자유는 그르다고 보았으며, 이자利子는 인정했지만 무차별적인 취리는 옳지 못하다고 보았다(손봉호, 칼빈의 사회 사상).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이고, 첫 내각의 상당수가 재산과 관련하여 엄청난 비리가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대학 등록금도 없던 이명박 대통령의 가계는 현대건설을 거치면서 믿을 수 없을 만큼 탄탄해졌다. 개발독재 시대의 건설사에 몸담고 있으면서 땅값의 시세차익으로 얻어진 부다. 그는 이 부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대통령 후보시절 선언했지만,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면 지키려는지 아직까지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한 장관 내정자는 땅 투기 의혹에 "땅을 사랑했을 뿐 투기는 아니다"라는 군색한 변명을 내밀었고, 다른 장관도 투기 의혹이 불거지자 한겨울에 트렉터를 끌고 밭을 가는 쇼를 했다. 굳이 헌법에 명시된 '밭 가는 자가 밭을 소유한다耕者有田'는 원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앞서 희년과 나그네됨: 이명박과 예레미야서 ①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런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율법 규정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수많은 노동자가 다치고 죽어가는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명시적으로 부자를 위한 정치, 기업가를 위한 정치를 시작하려 하고 있다. 당선자 시절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전경련이라는 점이나, 최근 기업가들을 위한 직통 핫라인을 개설한 점 등만 봐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점이다. 이 땅의 나그네들을 소외시키고, 재산을 여호와의 것이 아니라 기업가의 것 혹은 자신의 것으로 고착화시키려는 시도이다.

요컨대, 이명박이 펴려는 정치는 단순히 가진 자의 정치나 우파의 정치는 될 수 있어도 그리스도인의 정치라고는 결코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대에 훨씬 못미쳤을 망정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가 (그들 자신의 종교와는 관계 없이) 그나마 더 여호와의 뜻에 합당한 정치였다.


2. 이명박과 예레미야서

많은 교회가 '기독교인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선거 과정에서 알게 혹은 모르게 이명박을 지지했고,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감사 기도를 드린 곳도 많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적籍을 두고 있는 소망교회에서는 주일 낮 예배에 "이명박 장로를 대통령에 당선시켜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올리고, 매주 수요일에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을 기원하는 기도회가 열린다(『한겨레21』 제699호).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생략된 것은 이명박이 과연 올바른 그리스도인이냐 하는 평가와 과연 항상 그리스도인이 대통령이 되는 것만이 여호와의 뜻인가 하는 판단이다. 이명박이 올바른 그리스도인인가 혹은 그의 정부가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정부인가 하는 문제의 해답은 앞서의 절을 통해서 어느 정도 밝혀졌다고 보고, 과연 항상 그리스도인이 대통령이 되는 것만이 여호와의 뜻인가 하는 판단에 대해서 살펴보자.

선지자 예레미야는 분열왕국 남유다가 망하는 것을 지켜본 예언자이다. 슬픔 가득한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언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남유다가 망할 것이며 다윗의 왕위가 폐하여질 것이고, 여호와의 도성인 예루살렘이 무너지리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예레미야가 남유다의 백성들에게 권고한 것은 여호와의 도성을 지키고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바빌로니아에 항복하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라는 것이다(렘 27:8-10).

그러니 바빌론 왕이 씌워주는 멍에를 메어라. 그 왕 느부갓네살을 섬겨라. 그러지 않는 민족과 나라가 있으면, 나는 그 민족을 전쟁과 기근과 염병으로 벌하여서라도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겨주고 말 것이다.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너희의 예언자들과 박수들과 해몽가들과 점쟁이들과 마술사들이, 우리가 바빌론 왕을 섬기게 될 리 없다고 하더라도 곧이듣지 마라. 그자들이 하는 예언은 거짓이다. 그 말을 듣다가는 고향을 멀리 떠나게 되며, 나에게 쫓겨나 망하고 말 것이다.

남유다의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았고, 다윗의 왕위가 공고하리라는 거짓 예언만을 믿었다. 그러나 패역하고 여호와의 뜻에서 돌아선 남유다의 왕좌는 유지되지 못하였고, 바빌로니아에 결국 멸망하고 만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유다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여호와가 그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구약의 세계관에서 바빌로니아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여호와는 바빌로니아의 왕을 종從이라고 부르며, 유다가 영원히 망할 것이 아니라 70년 후에 귀향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기도 하다(렘 25:9, 12):

나는 내 종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을 시켜 북녘의 모든 족속들을 거느리고 쳐들어와 이 땅에 사는 사람들과 주위에 있는 모든 민족을 전멸시키고 이 땅을 영원히 쑥밭으로 만들게 하리라. 사람마다 그 끔찍한 모습을 보고 빈정거리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 그 칠십 년이란 시한이 차면 나는 바빌론 왕과 그 민족의 죄를 벌하여 바빌론 땅을 영원히 쑥밭으로 만들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적어도 당시 남유다에게 있어서는 다윗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 아니었고, 죄악의 상징 바빌로니아가 그들을 지배하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어느 대통령 후보가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혹은 장로라고 해서 앞뒤 재지 않고 그에게 표를 주는 몰지각한 시민의식이 여호와의 관점에서도 옳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태도는 솔로몬처럼 선과 악을 분별할 지혜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로가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서는 안 되고, 여호와의 뜻에 합당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을 혼동하면 예레미야 시절의 남유다 백성으로부터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하게 되고 만다.


보유

이명박 장로는 결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절차와 의혹이야 어떻든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이것 역시 여호와의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체념하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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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손봉호. '칼빈의 사회 사상'. 실린 곳: http://lloydjones.org.
Calvin, Jean. 1994. 『기독교 강요(초판)』. 12판. 세계기독교고전14. 양낙흥 옮김. 서울:크리스챤다이제스트.
Weber, Max. 1987.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학술총서1. 박종선 옮김. 서울:두리.

Posted by 엔디
1. 민족과 계급

민족이냐 계급이냐 하는 문제는 한국적 상황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이슈가 되어왔다. 식민지 시절에 맑시즘을 받아들이고, 분단 시대를 거쳐 이를 정교화하는 과정을 겪어온 까닭이다. 민족의 독립이, 그리고 민족의 통일이 오랫동안 지상과제였던 시절, 계급을 들먹이는 것은 반역이나 개인주의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항상 있었다. 권력을 장악하려는 음모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민족주의자 백범은 자서전에서 이렇게 적는다(김구 1997, 313-314):

국민대회가 실패한 후 상해에서는 통일이란 미명美名하에 공산당 운동이 끊어지지 않고 민족운동자들을 종용하였다. 공산당 청년들은 여전히 양파로 나뉘어 동일한 목적과 동일한 명칭으로 '재在중국청년동맹'과 '주住중국청년동맹'을 조직하고, 상해의 우리 청년들을 앞다투어 포섭하여 독립운동을 공산운동화하자고 절규하였다.

그러던 중 레닌은 공산주의자들에게 "식민지운동은 복국운동復國運動이 사회운동보다 우선한다"고 발표하였다. 이 말이 한번 떨어지자 어제까지 민족운동 즉 복국운동을 비난·조소하던 공산당원들이 돌변하여 독립·민족운동을 공산당의 당시黨是로 주창하였다. 여기에 민족주의자들이 자연 찬동하고 나서서 '유일독립당촉성회唯一獨立黨促成會'를 성립시켰다. 그런데 내부에서는 의연히 공산당 양파의 권리쟁탈전이 음양으로 치열하게 대립되어 한 걸음도 진전되기 어려웠다. 민족운동자들도 차차 깨우쳐 공산당의 속임수에서 벗어나 결국 유일독립당촉성회는 해산되고 말았다.

백범일지
백범은 공산운동을 '절규'하다가 레닌의 한 마디에 민족운동으로 뛰어드는 공산주의자들을 조소하고 있다. 또한, 그들의 권력 지향적인 모습을 드러내어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는 당시 공산주의 운동이나 사회주의 운동에서 민족의 독립을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았고(강만길 1994, 80-90), 아나키스트였던 신채호 역시 민족 운동에 일생을 바친 것을 살펴보면 공산주의자 및 사회주의자들을 무턱대고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계급 혁명을 민족 해방에 우선시 한다는 사실은 헤게모니를 장악한 민족주의자들이 공산주의자들을 비난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 글을 인용한 것은, 백범의 진단은 현 상황에서 민노당의 모습을 조망하는 데 꽤나 유용한 도구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 민노당의 분당론

민주노동당의 분당론은 꽤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본격적인 분당론은 17대 대선을 위한 경선 과정에서 NL들이 보였던 행태 때문에 드러난 것 같다. 경선 직후 박노자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민노당, 분당 이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글을 올려 분당론의 운을 뗐고, 수많은 민노당 지지자들은 NL이 지지했던 권영길 후보를 응원하면서도 비난을 아끼지 않았다. 이른바 '비난적 지지'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권영길 후보는 영국의 무상 의료, 무상 교육이라는 소중한 정책보다는 (아마도) NL의 입김이 들어간 '코리아 연방 공화국'이라는 생경한 정책만 떠들다가 사라졌다. 박노자는 권영길 후보께 삼가 충고드립니다라는 포스팅을 통해 점잖게 충고했고, 백무현 화백은 만평에서 이렇게 그렸다:

백무현 서울 만평 2007년 11월 27일

백무현 서울 만평 2007년 11월 27일


민노당 입장에서 이번 17대 대선은 명박한명백한 패배이다. 중선관위 집계에 따르면 16대 대선 당시 3.9%였던 득표율은 3.0%로 떨어졌다. 5년 만에 1/4의 지지자를 잃은 것이다. 16대 때 이른바 '정몽준 폭탄' 사건으로 민노당 지지자 일부가 노무현을 찍은 사례가 많았다고 판단되므로 실제 잃은 지지자 수는 훨씬 더 많은 셈이다. 4월에 있을 총선에도 밝은 미래는 없다: 중선관위의 지역별 득표 집계(IE only)에 따르면 민주노동당의 권영길은 자신의 지역구인 창원에서 7.9%, 현대차 노조가 있는 울산에서 8.4%의 득표를 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창원에서 51.7%, 울산에서 54.0%의 득표를 했다.)

17대 대선 후보별 득표율 (중앙선거관리위원회)

17대 대선 후보별 득표율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권영길의 생경한 정책과 일부 NL들의 시대착오적 행태, 그리고 당권욕 등이 대선 참패의 원인이라고 진단한 대중적 좌파 지식인들은 분당론을 확산시켰다. 박노자, 홍세화, 진중권은 블로그를 통해서, 인터뷰를 통해서, 그리고 기고문을 통해서 터뜨리듯이 NL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조승수 전 의원과 주대환 전 당 정책위의장은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면서까지 NL들을 맹비난했다. 비판과 비난의 핵심은 그들이 당의 미래가 아닌 '김정일'의 미래를 더 생각한다는 점과 그들이 민노당 당권에 지나치게 연연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진중권이 3년 전에 쓴 민주노동당의 죽음이라는 글에서 이미 드러났다. 이번 대선과 관련해서는, 우석훈이 투표와 탈당에 대한 결심이라는 글을 통해 권영길이 실은 당대표에 대한 욕심에서 출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나타내면서도 일단은 투표하겠다는 일종의 '비난적 지지' 선언을 했다.

여기서 보이는 일련의 과정이, 백범이 과거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조금은 편협하게) 묘사한 내용과 상당히 닮아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민노당 내에서 NL들은 비록 한미 FTA 반대나 신자유주의 반대 등 맥을 같이 하는 부분에서 열심히 투쟁하였음에도 기본적으로는 그들이 당권을 장악하려고 했던 전례가 있고, 이북의 김씨 정권의 명령만을 추종한다는 점에서 백범이 묘사한 과거의 얼치기 공산주의자들과 유사성을 찾기는 아주 쉬운 것이다.

민노당에서 NL을 '잘라내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실제로 어렵기도 하고, 적어도 몇 가지 사안에 있어서 그들의 도움이 절실한 부분도 있다. 또 지지층이 갈리는 것은 어쨌든 바람직한 일이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주사파처럼 철학 없는 '추종자'들과의 연대 역시 바람직한 일이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사태를 너무 나이브하게 바라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민노당의 모든 NL이 주사파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민족주의는 내가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주의주장이지만, 민족주의 자체를 비난할 권리는 없다. 계급적 의식이 있는 민족주의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실제로 분단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민족의 미래는 계급의 미래와 개개인의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분단 시대는 국방 예산 등 엄청난 비용 지출을 필요로 하고,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라 할 (이산) 가족의 만남을 가로막고 있다.)


3. 분당론에서 염려되는 것

분당론에서 염려되는 것은 소중한 민주노동당의 토대가 와해되고, 지지층이 분산 및 이반되는 것이다. 지난 2002년의 프랑스 대통령 선거 때에는 사회당Parti Socialiste의 조스뺑이 국민전선Front National의 르 뻰에게 밀려나는 사건이 있었다. 결국 결선투표에서 시라끄가 80% 이상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전체적으로 좌파 정권을 지지하는 프랑스인들이 많았음에도 우파 시라크가 대통령이 된 것은 1차 투표 때 좌파 연합의 표가 분산된 까닭이 크다. 1차 투표에서 시라끄가 19.88%, 사회당의 조스뺑이 16.18%를 얻었지만, 여타 좌파 정당들인 노동자 투쟁당Lutte Ouvrière이 5.72%, 혁명적공산주의동맹Ligue Commuiste Révolutionnaire이 4.25%, 그리고 프랑스 공산당Parti Commuiste Français이 3.37%를 얻었다. 물론 사회당과 뜨로쯔끼주의자들, 그리고 공산당이 한 정당이 되리라고 예상하기는 힘들지만, 이들이 후보 단일화를 잘 수행했다면 수학적으로 충분히 좌파 정권 창출이 가능했을 약 30%의 지지율을 얻을 수 있다. (5.5% 가량의 표를 얻은 녹색당까지 고려하면 실제 효과는 그 이상일 수 있다.) 2002년 당시 좌파 후보들은 무려 7명이나 될 만큼 '난립'하였던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분당이 이와 같은 사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은 현실 정치의 면에서 극히 우려스럽다. 하지만, 분당을 통해 주사파들의 털고 가면 바로 그 점 때문에 민노당 지지를 유보해왔을 새로운 지지층을 흡수할 수 있을 뿐아니라, 바라건대는 한국사회당이나 녹색당 등과의 연대도 꾀할 수 있다는 희망도 보인다. 하지만 현실 정치적인 면 이외에도, 이 땅에 계급 의식에 기초한 어엿한 원내 정당이 있고 그 원내 정당이 '좌우의 날개로 나는' 한국을 이루어내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자부심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소중하다고 보겠다.

박노자 교수는 확실히 이 점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민노당 분당 - 필요하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제하의 포스팅에서 '분당 이후'를 이미 통찰하고 있었다:

"김빠"들이 걸러진 뒤에 "정파"들은 혁파돼야 합니다. 우리가 "사민주의자와 조합주의자와 트로츠키주의자들의 느슨한 연합체"가 아닌, 진정한 계급 정당을 만들자면 정파 소속보다 당소속이 우선돼야 되지요. 당에서 정파적 이익을 배타적으로 추구하는 행위들은 부끄러운 행위가 돼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컨대 "다함께" 회원이면서도 당적을 보유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일단 당에서 투표할 때에 "다함께"의 의견보다 당의 이익과 전망, 그리고 넓게는 한국과 세계노동계급의 이익을 먼저 의식하고 소신 투표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마음은 아파도 진보정당을 구할 길은 이 길밖에 없습니다에서 볼 수 있듯이 분당해야 하는 까닭을 무엇보다도 대중정당의 건설이라는 확실한 목표 하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주장에 쉽게 찬동하고 신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덧) 웹서핑 중 현단계의 상황을 가장 명쾌하게 정리한 글이 있어 소개한다:
민주노동당 : 이건 분당이 아니라 파당이다.
트랙백도 걸었다. 일독을 권한다.
명쾌한 정리라고는 하지만, 정리가 명쾌할수록 마음은 무겁다.
2008. 1. 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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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강만길. 1994. 『고쳐 쓴 한국현대사』. 서울:창작과비평사.
김구[도진순 주해]. 1997. 『백범일지: 백범 김구 자서전』. 서울:돌베개.

고쳐 쓴 한국현대사 상세보기
강만길 지음 | 창작과비평사 펴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한국현대사 개설서 <고쳐 쓴 한국현대사>. 1984년에 출간된『한국현대사』를 전면적으로 증보하여 내놓은 책이다. 이번 2판에서는 1판이 출간된 이래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을 반영하여 내용을 추가하거나 수정하였다. 또한 사진이나 도판을 새롭게 실어 시각적인 효과를 높였으며, 각 장을 요약한 도입부에 그 시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파노라마식 사진을 배치하였다. 이 책은 한국사 개설서로
백범일지(보급판) 상세보기
김구 지음 | 돌베개 펴냄
백범 김구 자서전. 『백범일지』는 친필 원본은 물론 등사본과 필사본, 여러 가지 출간본 등 여러 저본을 일일이 면밀하게 검토, 대조했다. 또한 사전류는 물론 고전, 규장각 자료 등의 고문서, 수많은 회고록, 일본, 중국 등 해외의 임정 관계 자료까지 두루 활용하고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자문을 받아 원본의 미흡한 점과 착오 등을 수정, 보완했다. 27년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어온 민족독립운동가이자, 자신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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