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1.02 계급과 민족주의: 민주노동당 분당론에 관하여 (2)
  2. 2007.07.09 올림픽과 국가주의
1. 민족과 계급

민족이냐 계급이냐 하는 문제는 한국적 상황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이슈가 되어왔다. 식민지 시절에 맑시즘을 받아들이고, 분단 시대를 거쳐 이를 정교화하는 과정을 겪어온 까닭이다. 민족의 독립이, 그리고 민족의 통일이 오랫동안 지상과제였던 시절, 계급을 들먹이는 것은 반역이나 개인주의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항상 있었다. 권력을 장악하려는 음모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민족주의자 백범은 자서전에서 이렇게 적는다(김구 1997, 313-314):

국민대회가 실패한 후 상해에서는 통일이란 미명美名하에 공산당 운동이 끊어지지 않고 민족운동자들을 종용하였다. 공산당 청년들은 여전히 양파로 나뉘어 동일한 목적과 동일한 명칭으로 '재在중국청년동맹'과 '주住중국청년동맹'을 조직하고, 상해의 우리 청년들을 앞다투어 포섭하여 독립운동을 공산운동화하자고 절규하였다.

그러던 중 레닌은 공산주의자들에게 "식민지운동은 복국운동復國運動이 사회운동보다 우선한다"고 발표하였다. 이 말이 한번 떨어지자 어제까지 민족운동 즉 복국운동을 비난·조소하던 공산당원들이 돌변하여 독립·민족운동을 공산당의 당시黨是로 주창하였다. 여기에 민족주의자들이 자연 찬동하고 나서서 '유일독립당촉성회唯一獨立黨促成會'를 성립시켰다. 그런데 내부에서는 의연히 공산당 양파의 권리쟁탈전이 음양으로 치열하게 대립되어 한 걸음도 진전되기 어려웠다. 민족운동자들도 차차 깨우쳐 공산당의 속임수에서 벗어나 결국 유일독립당촉성회는 해산되고 말았다.

백범일지
백범은 공산운동을 '절규'하다가 레닌의 한 마디에 민족운동으로 뛰어드는 공산주의자들을 조소하고 있다. 또한, 그들의 권력 지향적인 모습을 드러내어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는 당시 공산주의 운동이나 사회주의 운동에서 민족의 독립을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았고(강만길 1994, 80-90), 아나키스트였던 신채호 역시 민족 운동에 일생을 바친 것을 살펴보면 공산주의자 및 사회주의자들을 무턱대고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계급 혁명을 민족 해방에 우선시 한다는 사실은 헤게모니를 장악한 민족주의자들이 공산주의자들을 비난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 글을 인용한 것은, 백범의 진단은 현 상황에서 민노당의 모습을 조망하는 데 꽤나 유용한 도구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 민노당의 분당론

민주노동당의 분당론은 꽤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본격적인 분당론은 17대 대선을 위한 경선 과정에서 NL들이 보였던 행태 때문에 드러난 것 같다. 경선 직후 박노자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민노당, 분당 이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글을 올려 분당론의 운을 뗐고, 수많은 민노당 지지자들은 NL이 지지했던 권영길 후보를 응원하면서도 비난을 아끼지 않았다. 이른바 '비난적 지지'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권영길 후보는 영국의 무상 의료, 무상 교육이라는 소중한 정책보다는 (아마도) NL의 입김이 들어간 '코리아 연방 공화국'이라는 생경한 정책만 떠들다가 사라졌다. 박노자는 권영길 후보께 삼가 충고드립니다라는 포스팅을 통해 점잖게 충고했고, 백무현 화백은 만평에서 이렇게 그렸다:

백무현 서울 만평 2007년 11월 27일

백무현 서울 만평 2007년 11월 27일


민노당 입장에서 이번 17대 대선은 명박한명백한 패배이다. 중선관위 집계에 따르면 16대 대선 당시 3.9%였던 득표율은 3.0%로 떨어졌다. 5년 만에 1/4의 지지자를 잃은 것이다. 16대 때 이른바 '정몽준 폭탄' 사건으로 민노당 지지자 일부가 노무현을 찍은 사례가 많았다고 판단되므로 실제 잃은 지지자 수는 훨씬 더 많은 셈이다. 4월에 있을 총선에도 밝은 미래는 없다: 중선관위의 지역별 득표 집계(IE only)에 따르면 민주노동당의 권영길은 자신의 지역구인 창원에서 7.9%, 현대차 노조가 있는 울산에서 8.4%의 득표를 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창원에서 51.7%, 울산에서 54.0%의 득표를 했다.)

17대 대선 후보별 득표율 (중앙선거관리위원회)

17대 대선 후보별 득표율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권영길의 생경한 정책과 일부 NL들의 시대착오적 행태, 그리고 당권욕 등이 대선 참패의 원인이라고 진단한 대중적 좌파 지식인들은 분당론을 확산시켰다. 박노자, 홍세화, 진중권은 블로그를 통해서, 인터뷰를 통해서, 그리고 기고문을 통해서 터뜨리듯이 NL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조승수 전 의원과 주대환 전 당 정책위의장은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면서까지 NL들을 맹비난했다. 비판과 비난의 핵심은 그들이 당의 미래가 아닌 '김정일'의 미래를 더 생각한다는 점과 그들이 민노당 당권에 지나치게 연연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진중권이 3년 전에 쓴 민주노동당의 죽음이라는 글에서 이미 드러났다. 이번 대선과 관련해서는, 우석훈이 투표와 탈당에 대한 결심이라는 글을 통해 권영길이 실은 당대표에 대한 욕심에서 출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나타내면서도 일단은 투표하겠다는 일종의 '비난적 지지' 선언을 했다.

여기서 보이는 일련의 과정이, 백범이 과거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조금은 편협하게) 묘사한 내용과 상당히 닮아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민노당 내에서 NL들은 비록 한미 FTA 반대나 신자유주의 반대 등 맥을 같이 하는 부분에서 열심히 투쟁하였음에도 기본적으로는 그들이 당권을 장악하려고 했던 전례가 있고, 이북의 김씨 정권의 명령만을 추종한다는 점에서 백범이 묘사한 과거의 얼치기 공산주의자들과 유사성을 찾기는 아주 쉬운 것이다.

민노당에서 NL을 '잘라내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실제로 어렵기도 하고, 적어도 몇 가지 사안에 있어서 그들의 도움이 절실한 부분도 있다. 또 지지층이 갈리는 것은 어쨌든 바람직한 일이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주사파처럼 철학 없는 '추종자'들과의 연대 역시 바람직한 일이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사태를 너무 나이브하게 바라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민노당의 모든 NL이 주사파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민족주의는 내가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주의주장이지만, 민족주의 자체를 비난할 권리는 없다. 계급적 의식이 있는 민족주의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실제로 분단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민족의 미래는 계급의 미래와 개개인의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분단 시대는 국방 예산 등 엄청난 비용 지출을 필요로 하고,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라 할 (이산) 가족의 만남을 가로막고 있다.)


3. 분당론에서 염려되는 것

분당론에서 염려되는 것은 소중한 민주노동당의 토대가 와해되고, 지지층이 분산 및 이반되는 것이다. 지난 2002년의 프랑스 대통령 선거 때에는 사회당Parti Socialiste의 조스뺑이 국민전선Front National의 르 뻰에게 밀려나는 사건이 있었다. 결국 결선투표에서 시라끄가 80% 이상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전체적으로 좌파 정권을 지지하는 프랑스인들이 많았음에도 우파 시라크가 대통령이 된 것은 1차 투표 때 좌파 연합의 표가 분산된 까닭이 크다. 1차 투표에서 시라끄가 19.88%, 사회당의 조스뺑이 16.18%를 얻었지만, 여타 좌파 정당들인 노동자 투쟁당Lutte Ouvrière이 5.72%, 혁명적공산주의동맹Ligue Commuiste Révolutionnaire이 4.25%, 그리고 프랑스 공산당Parti Commuiste Français이 3.37%를 얻었다. 물론 사회당과 뜨로쯔끼주의자들, 그리고 공산당이 한 정당이 되리라고 예상하기는 힘들지만, 이들이 후보 단일화를 잘 수행했다면 수학적으로 충분히 좌파 정권 창출이 가능했을 약 30%의 지지율을 얻을 수 있다. (5.5% 가량의 표를 얻은 녹색당까지 고려하면 실제 효과는 그 이상일 수 있다.) 2002년 당시 좌파 후보들은 무려 7명이나 될 만큼 '난립'하였던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분당이 이와 같은 사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은 현실 정치의 면에서 극히 우려스럽다. 하지만, 분당을 통해 주사파들의 털고 가면 바로 그 점 때문에 민노당 지지를 유보해왔을 새로운 지지층을 흡수할 수 있을 뿐아니라, 바라건대는 한국사회당이나 녹색당 등과의 연대도 꾀할 수 있다는 희망도 보인다. 하지만 현실 정치적인 면 이외에도, 이 땅에 계급 의식에 기초한 어엿한 원내 정당이 있고 그 원내 정당이 '좌우의 날개로 나는' 한국을 이루어내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자부심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소중하다고 보겠다.

박노자 교수는 확실히 이 점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민노당 분당 - 필요하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제하의 포스팅에서 '분당 이후'를 이미 통찰하고 있었다:

"김빠"들이 걸러진 뒤에 "정파"들은 혁파돼야 합니다. 우리가 "사민주의자와 조합주의자와 트로츠키주의자들의 느슨한 연합체"가 아닌, 진정한 계급 정당을 만들자면 정파 소속보다 당소속이 우선돼야 되지요. 당에서 정파적 이익을 배타적으로 추구하는 행위들은 부끄러운 행위가 돼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컨대 "다함께" 회원이면서도 당적을 보유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일단 당에서 투표할 때에 "다함께"의 의견보다 당의 이익과 전망, 그리고 넓게는 한국과 세계노동계급의 이익을 먼저 의식하고 소신 투표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마음은 아파도 진보정당을 구할 길은 이 길밖에 없습니다에서 볼 수 있듯이 분당해야 하는 까닭을 무엇보다도 대중정당의 건설이라는 확실한 목표 하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주장에 쉽게 찬동하고 신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덧) 웹서핑 중 현단계의 상황을 가장 명쾌하게 정리한 글이 있어 소개한다:
민주노동당 : 이건 분당이 아니라 파당이다.
트랙백도 걸었다. 일독을 권한다.
명쾌한 정리라고는 하지만, 정리가 명쾌할수록 마음은 무겁다.
2008. 1. 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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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강만길. 1994. 『고쳐 쓴 한국현대사』. 서울:창작과비평사.
김구[도진순 주해]. 1997. 『백범일지: 백범 김구 자서전』. 서울:돌베개.

고쳐 쓴 한국현대사 상세보기
강만길 지음 | 창작과비평사 펴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한국현대사 개설서 <고쳐 쓴 한국현대사>. 1984년에 출간된『한국현대사』를 전면적으로 증보하여 내놓은 책이다. 이번 2판에서는 1판이 출간된 이래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을 반영하여 내용을 추가하거나 수정하였다. 또한 사진이나 도판을 새롭게 실어 시각적인 효과를 높였으며, 각 장을 요약한 도입부에 그 시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파노라마식 사진을 배치하였다. 이 책은 한국사 개설서로
백범일지(보급판) 상세보기
김구 지음 | 돌베개 펴냄
백범 김구 자서전. 『백범일지』는 친필 원본은 물론 등사본과 필사본, 여러 가지 출간본 등 여러 저본을 일일이 면밀하게 검토, 대조했다. 또한 사전류는 물론 고전, 규장각 자료 등의 고문서, 수많은 회고록, 일본, 중국 등 해외의 임정 관계 자료까지 두루 활용하고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자문을 받아 원본의 미흡한 점과 착오 등을 수정, 보완했다. 27년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어온 민족독립운동가이자, 자신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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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라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대한민국을 노래했을 때, 나는 대한민국의 일원임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동남아시아나 인도 따위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불쌍하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네들은 그런 나라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대학 시절 나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그 명제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별다른 고생을 하지 않고 살아온 내 20년도 나름 꽤나 괴로운 시간이었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도록 해주지도 않고, 해줄 수도 없는 나라라는 생각이었다.

저 노랫말의 의미를 지금은 조금 깨달을 것 같다: 저 명제는 확실히 참이고, 다만 교묘하게 주체를 숨겼을 뿐이다. 대한민국은 어떤 사람에게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나라인 것이다. 그리고 그 어떤 사람과 그렇지 않은 다른 많은 사람들간의 격차를 고착화시킨 것이 바로 1988년의 서울 올림픽인 것이다.


1

1988년은 신기한 일이 많이 일어난 해였다: 전국민 직선제에 의해 뽑힌 '보통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고, 월북 또는 납북된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출판 금지 조처가 해제되었고, 백무산의 『만국의 노동자여』가 출간되었다. 그리고 서울 올림픽이 열렸다.

솔직히 서울 올림픽에 대한 기억은 이제 거의 없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개막식 행사 마지막 부분의 굴렁쇠 굴리는 소년, 세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성화를 점화하는 모습, 그 때 날아오른 흰 비둘기들, 가장 먼저 입장한 '가나'라는 나라와 '대한민국'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이름을 달고 맨 마지막으로 등장한 한국, 김수녕을 비롯한 여자 양궁수들의 개인전 금·은·동 '싹쓸이', 칼 루이스의 당시 100미터 달리기 세계 신기록 9초86, 벤 존슨의 도핑 테스트 양성 반응 소식, 금메달 12개로 세계 4위에 오른 한국의 성적... 정수라가 부른 '아, 대한민국'... 그 정도다.

아마 다른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보여지는 것'에 민감한 한국인의 속물 근성 때문에 밀려나야 했던 판잣촌의 사람들. 분명 서울 올림픽 유치 소식에 함께 기뻐했음이 틀림없는 그들은, 난장이였기 때문에 기쁨 대신 슬픔을 얻었을 것이 분명한. ...88 올림픽은 시작부터가, 80년 5월 사건을 거쳐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이 밀어붙인 3S 정책의 일환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야기가 더 쉬워질는지도 모른다.

최근 영국 일간지 가디언 기사에서 올림픽과 개발 그리고 소외에 대한 기사가 있었나보다.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서 해당 기사를 번역하여 올렸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엄청난 성공을 거둔 대회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군사독재 세력은 올림픽을 통해 민중들이이 소유한 토지를 빼앗아 소수의 엘리트가 주인이 되는 기업도시로 서울을 만드는 기회로 이용했다. 72만명의 주민들이 자기 집에서 쫓겨났고 거기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폭력배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구금됐다. 세입자들은 사전 공지도 없이 퇴거조치 됐고 일부는 고속도로의 뚝 밑에 굴을 파서 살게 됐다. 노점상은 금지됐고, 노숙자, 알코올중독자, 거지, 정신장애자들은 한데 모아져 수용소에 갇혔다. 세계는 그런 장면을 보지 못했다. 단지 번듯한 사람들이 활보하는 번듯한 새 도시만 보았다." (프레시안)

어쨌든 그 한두 해 뒤 정태춘은 다른 '아, 대한민국'을 발표한다.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이 뛰어난 곡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곡은 사람들이 보지 못한... 혹은 보려 하지 않은 한국 사회의 이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이색적이라는 것이다.



정태춘 - 아, 대한민국 가사 열기


노래를 듣다보면 우리는 아주 익숙함을 느낄 수 있는데, 뉴스나 신문의 사회면과 노래 가사가 닮아 있다. 그러므로 이 노래는 계몽적이지 않다. 불어에 기반을 둔 '계몽enlightenment'이란 낱말이 진리가 없는 어두운 곳에 빛lumière을 비추이는 것이라면, 정태춘의 이 노래는 사람들이 다 아는 사건들을 몽타주 식으로 이어붙인 것에 불과하다. 누구나 사회면을 보고 잊어버리는 것들을 상기시키는 효과를 보여주는데,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올림픽의 화려한 모습에 비해 그런 사건들을 쉬이 잊어버리고 산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2

러시아 태생의 박노자 교수는 소치 "승리"를 한탄한다...라는 글에서 소치의 동계올림픽 유치 소식을 비보로 받아들인다. 그는 소치라는 땅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 땅의 아름다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데, 이제 곧 그 땅이 사라지는 것이다. 가령 침엽수림의 나이테로 가늠했던 소치의 나이는 이제 철근과 콘크리트의 녹과 부식 정도로나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3

평창도 그렇다. 나는 평창에 누가 살고 있는지, 어떤 생태가 있는지 모르지만... 아름다운 설원에서 눈의 아름다움보다는 돈의 아름다움이나 정권의 아름다움만을 보고 있다는 생각에만은 치가 떨린다.

그러니까 말이지, 이 땅에는 참 많은 천성산 도롱뇽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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