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담은 위즈덤하우스임프린트 출판사로, 예담판 『어린 왕자』는 디자인 문구류 회사인 아르데코7321이 '어린 왕자'의 상표권 계약을 체결한 후 국내 시장을 거의 독점하려는 의도로 위즈덤하우스와 함께 낸 책이다. (세계일보의 조정진 기자는 예담판이 곧 아르데코7321과 계약 하에 낸 것이라는 점을 모르고 스캔들마케팅이라는 딴소리를 하고 있다.)아르데코7321은 상표권을 취득한 후 각 출판사와 서점에 공문을 보내 서점에 깔린 『어린 왕자』 중 (자신들이 상표권 라이센스를 얻은) 특정 삽화 및 서체를 사용한 책을 모두 서점에서 철수시키라고 고지했고 각 출판사는 반발하고 있는 상태다. 여기에는 저작권 또는 상표권과 관련한 복잡한 문제가 있다.

예담판 『어린 왕자』는 불문학 박사이자 전문 번역가인 강주헌이 번역했다. 강주헌은 이미 2001년에 문예당에서 『어린 왕자』를 번역 출판한 적이 있지만, 이번에 옛 번역본을 상당 부분을 새롭게 손질하여 출간했다. 이 책은 겉표지에 "어린왕자 오리지널 삽화가 들어간 정식 한국어판"이라고 명시하고 있고, 표지 안쪽과 속표지면에 "이 책은 국내 최초로 생텍쥐페리의 원본 삽화 저작권을 갖고 있는 프랑스 Sogex사와의 계약을 통한 정식 한국어판입니다."라고 쓰고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전반적으로 예담-아르데코7321판은 기존 번역본과 큰 차이가 없어보이고, 부분적으로 기존 번역본의 오류를 개선한 부분이 있지만, 많은 면에서 기존 번역본에 못 미치는 점이 있다. 그 세목들을 삽화 및 텍스트의 정확성과 문체의 성실성, 그리고 번역의 적확성 면에서 살펴보자. 이를 위해서 원문인 프랑스 갈리마르Gallimard 출판사의 폴리오Folio 문고판과 전성자가 옮긴 문예출판사판, 김화영이 옮긴 문학동네판, 그리고 지금 문제가 되는 예담-아르데코7321판을 함께 살펴보자. 이해를 돕기 위해 영어판인 하코트-브레이스판도 종종 함께 인용할 것이다. (이 글에 인용된 모든 글은 생떽쥐뻬리의 『어린 왕자』 원텍스트와 그 번역본들이므로, 편의상 인용문의 저자 이름은 생략하고 발행년과 쪽수만 명기한다. 대신 인용문의 끝에 출판사의 이름을 밝힌다. 번역본을 지칭할 때에도 번역자의 이름보다는 출판사의 이름으로 부르기로 한다.)


개악된 삽화와 부정확한 텍스트#

『어린 왕자』의 삽화와 텍스트는 오래도록 어려움을 겪어왔다. 전쟁 중이었던 탓도 있고 해서, 저자인 생떽쥐뻬리가 제대로 살피지 못한 탓일 터다. 그래서 오래도록 잘못된 삽화와 잘못된 텍스트가 실려 있었다. 그것은 프랑스 갈리마르판 『어린 왕자Le Petit Prince』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갈리마르 출판사는 1999년 폴리오 문고판으로 이 책을 새로 내면서 삽화와 텍스트에 있었던 그간의 오류를 교정했다. 이러한 저간 사정이 폴리오 문고판 앞머리에 작자의 유족으로 보이는 프레데리끄 다게이Frédéric d'Agay가 쓴 "일러두기avertissement"에 나와 있다. 최근에 국내에서 출간된 『어린 왕자』는 대개 1999년 판본을 반영한 것으로 그런 오류가 대개 눈에 띄지 않지만, 아직까지 개정되지 않은 부분도 많다.

예담-아르데코7321판도 이른바 '정식 계약판'답게 오류가 거의 없다. 하지만, 삽화에서 하나, 텍스트에서 하나의 문제가 눈에 띈다. 삽화의 경우 천문학자가 천체망원경으로 우주를 바라보는 그림에서 별이 빠져 있다는 문제가 있다(1999, 22; 2007a, 17; 2007b, 22: 2008, 23):


한편, 텍스트의 경우 '나'가 소행성의 이름을 짓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예로 든 소행성의 이름이 잘못 기재되어 있다는 문제가 보인다(1999, 22; 2007a, 17; 2007b, 23; 2008, 22):

Il l'appelle par exemple : « l'astéroïde 325 ». (갈리마르)

이를테면, '소혹성 3251호'라는 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문예출판사)

가령, '소혹성 제325호'라는 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문학동네)

천문학자는 […] '소행성 3251호'라는 식으로 번호를 붙인다. (예담-아르데코7321)

갈리마르의 정본에서 분명히 '325호'라고 씌어 있는 것이 예담-아르데코7321판에서는 3251호로 바뀌어 있다. 단순히 별 이름의 사례를 든 것이므로 '325호'라고 하거나 '3251호'라고 하거나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이 '소행성 325호'는 별 뜻 없이 나온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가 세 봉우리의 화산과 한 봉오리의 꽃을 남겨두고 자기 별을 떠나 처음 도착한 곳이 왕이 살고 있는 '소행성 325호'이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에서 '소행성 325호'는 단지 이름의 사례이거나 혹은 어딘가 있기는 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곳이 아니라, 어린 왕자가 직접 다녀간 소설의 한 중요한 무대인 것이다. 참고로, 영어판 『어린 왕자The Little Prince』에서도 아래와 같이 정확하게 쓰고 있다(1971, 11).

He might call it, for example, "Asteroid 325."

개악된 문체#

예담-아르데코7321판은 비교적 유려한 문체를 사용하고 있다. 흔히 하는 말로 이 책은 '읽히'며, 특히 어린이들을 고려한 듯 비교적 쉬운 말을 사용해서 원문을 옮기려고 한 점이 돋보인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문제가 있다: 어린 왕자가 사용하는 말이 반말tutoyer이거나 높임말vouvoyer이거나 무조건 높임말로 옮겼다는 점이다.

먼저 어린 왕자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보자(Saint-Exupéry 1999, 15; 2007a, 10; 2007b, 13; 2008, 12):

« S'il vous plaît... dessine-moi un mouton !
-- Hein !
-- Dessine-moi un mouton... » (갈리마르)

"양 한 마리를 그려 줘!"
"뭐라구?"
"양 한 마리를 그려 줘." (문예출판사)

"저기…… 나 양 한 마리만 그려줘."
"응?"
"나, 양 한 마리만 그려줘." (문학동네)

"미안하지만, 양 한 마리만 그려줘!"
"뭐라고?"
"양 한 마리만 그려줘." (예담-아르데코7321)

갈리마르판에서 보듯이 어린 왕자는 '나'에게 반말을 하고 있다. 여기서 dessine-moi라고 하면 분명히 너tu에 대한 명령문으로 반말이며, 높임말로 vous에 대한 명령문이 되기 위해서는 dessinez-moi라고 해야 한다. 문예출판사판이나 문학동네판은 이를 모두 반말로 옮기고 있지만, 예담판만은 이상하게도 높임말을 쓰고 있다. '나'가 아저씨뻘이므로 높임말을 쓸 것 같지만 실제로 어린 왕자는 '나'를 tu라고 부른다(1999, 18; 2007a, 13; 2007b, 15; 2008, 15):

« Tu vois bien... ce n'est pas un mouton, c'est un bélier. Il a des cornes... » (갈리마르)

"…… 이건 양이 아니라 염소잖아. 뿔이 있으니까……." (문예출판사)

"아이 참…… 그건 양이 아니라 염소잖아. 뿔이 달렸으니까……." (문학동네)

"아저씨…… 이건 양이 아니고 염소에요. 뿔이 있잖아요." (예담-아르데코7321)

'Tu vois bien'은 직역하면 '네가 보다시피' 정도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린 왕자는 버릇이 없어서 누구에게나 너tu라고 부르고, 누구에게나 반말tutoyer을 쓰는 것일까? 혹은 어린 왕자는 너무나 어려서 반말과 높임말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께도 동네 아저씨에게도 반말을 쓰던 경험이 있으니까 말이다. 소행성 B612에서 혼자 살던 어린 왕자에게는 누구도 그런 높임말을 가르쳐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어린 왕자는 무척이나 분명하게 너tu라고 부를 사람과 당신vous이라고 부를 사람을 구분하고 있다. 가령 어린 왕자는 소행성 325호에서 만난 왕을 분명히 당신vous이라고 부르고 높임말vouvoyer을 쓰고 있다(1999, 43; 2007a, 42; 2007b, 54; 2008, 56):

« Sire, lui dit-il... je vous demande pardon de vous interroger...
-- Je t'ordonne de m'interroger, se hâta de dire le roi.
-- Sire... sur quoi régnez-vous ?
-- Sur tout, répondit le roi, avec une grande simplicité
-- Sur tout ? » (갈리마르)

"폐하, 한 가지 여쭈어 봐도 좋을까요……."
"네게 명하노니, 질문을 하라."
"폐하…… 폐하는 무엇을 다스리고 계신지요?"
"모든 것을 다스리노라."
퍽이나 간단히 왕이 대답했다.
"모든 것을요?" (문예출판사)

"폐하…… 한 가지 여쭈어봐도 될는지요……"
"짐이 명하노니 질문을 하라." 왕이 서둘러 말했다.
"폐하…… 폐하께서는 무엇을 다스리고 계십니까?"
"모든 것을 다스리노라." 왕은 극히 간단하게 대답했다.
"모든 것을요?" (문학동네)

"폐하,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어린 왕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왕이 대답했다.
"네게 명하노니, 질문을 허락하노라."
"폐하…… 폐하는 무엇을 다스리고 계시나요?"
왕은 아주 간단히 대답했다.
"모든 것!"
"모든 것을요?" (예담-아르데코7321)

첫 줄에서 어린 왕자는 왕을 당신vous이라고 부르고 있고, 셋째 줄에서 당신vous에 대한 명령문인 régnez-vous를 쓰고 있다. 어린 왕자는 왕에게 일관되게 높임말vouvoyer을 쓰고 있다. 어린 왕자는 왕 이외에도 허영쟁이와 지리학자에게는 높임말을 쓰고,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반말을 쓴다. 특정 사람에게 높임말을 쓰는 것은 (떽스뜨 속에서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그들의 나이를 고려한 것일 수도 있고, 그들의 지위를 따진 것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상대방이 바라는 바를 환기시켜 주는 것일 수도 있다. 말하자면, 왕에게 높임말을 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할 것이고, 허영쟁이에게는 높임말을 써 주면 좋아할 것이다. 지리학자도 권위의식이 있는 학자로서 높임말에 걸맞는다. 이유야 어쨌든 번역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왜 이들에게 높임말을 쓰는가보다는, 이들에게 높임말을 쓴다는 사실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런데 예담-아르데코7321판은 왕자가 하는 모든 대화를 높임말로 옮기고 있다. 어린이가 어른에게 높임말을 써야 한다는 당위 때문이었는지 혹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강주헌이 옮긴 2001년판 『어린 왕자』에서는 반말/높임말의 층위가 정확하게 구분되어 있으니 이상한 노릇이다. 독자들로서는 어린 왕자가 하는 말의 층위를 잘 전달받을 권리를 잃은 것이다.

한편 예담-아르데코7321판의 또다른 문제점은 원문의 괄호를 모조리 풀어놓았다는 것이다. 종종 번역 과정에서 글의 흐름을 고려해서 괄호를 푸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원문의 모든 괄호를 풀어놓았다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독자들은 괄호를 통해 글에서 좀더 주된 부분과 부차적인 부분을 구분할 수 있으므로 이는 무척 위험한 결정이다. 예를 들어, 생떽쥐뻬리가 레옹 베르뜨에게 바치는 헌사에서도 그런 문제점이 나타난다(1999, 11; 2007a, 5; 2007b, 5; 2008, 5):

Tous les grandes personnes ont d'abord été des enfants. (Mais peu d'entre elles s'en souviennent.) (갈리마르)

어른들은 누구나 다 처음엔 어린아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그다지 많지 않다.) (문예출판사)

어른들은 누구나 다 처음엔 어린아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문학동네)

어른들도 처음에는 모두 어린아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예담-아르데코7321)

여기서 생떽쥐뻬리가 '어른도 다 어린이였다'는 것을 언급하는 이유는 그가 이 책을 레옹 베르뜨라는 어른에게 바치는 것에 대해서 어린이들에게 이해를 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어른도 다 어린아이였다'라는 대전제를 언급함으로써 생떽쥐뻬리는 이 책을 레옹 베르뜨라는 사람의 어린 시절에 바칠 수 있는 면죄부를 받게 된 것이다.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는 언급은 역시 부차적인 문제로, '어른도 다 어린아이였다'라는 대전제에 대한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예상되는 반발을 미리 수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문장은 역시 괄호로 묶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담-아르데코7321은 이처럼 괄호를 빼버림으로써 주된 부분과 부차적인 부분을 구분할 수 없도록 하였는데, 그럼으로써 한편으로는 또한 원 문장의 매력과 맛조차도 잃어버린 경우가 많다.

예담-아르데코7321판에서 보이는 세 번째 문제점은 올바르지 않은 강조 부사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사실은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너무'라는 말을 한국인들은 너무 많이 쓴다. '너무'는 불어로 trop, 영어로 too much의 뜻을 가진 부사로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는 것이다. 최근에 연예인들을 포함한 한국인들이 '너무 감사합니다'처럼 어법에 맞지 않게 자주 쓰면서 퍼졌지만, 이는 분명 틀린 것으로 "정말 감사합니다"처럼 '정말', '매우', 또는 '무척' 등으로 바꾸어 쓰는 것이 맞다. 그런데 예담-아르데코7321판은 이 '너무'라는 부사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2008, 17-18, 28, 44, 82):

나는 어린 왕자에게 내가 날아다닌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너무 자랑스러웠다.

"아! 너무 잘됐다!"

아! 정말이었다. 너무너무 예쁜 꽃이었다.

"할아버지의 별은 너무 아름다워요. 바다도 있나요?"

'너무'의 노출은 매스컴을 통해 잘못 알려진 문법을 그대로 고착화시킨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 이런 문제점은 다른 번역본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번역자뿐 아니라 편집자의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못한 책이라는 느낌을 준다. 편집자의 실력에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상표권 분쟁과 관련한 특정 시기에 책을 내려는 의도로 무리한 일정을 추진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개악된, 번역의 정확성#

예담-아르데코7321판은 분명히 몇몇 지점에서 기존 번역의 오류를 고치고 있다. 후발 주자인 덕도 있고, 강주헌이라는 옮긴이의 능력 덕도 있을 것이다. 가령 문학동네판에 이르기까지 고쳐지지 않은, 어린 왕자가 본 해넘이의 횟수는 예담-아르데코7321판에서는 정확하게 '개선'된다(1999, 31; 1971, 21; 2007a, 28; 2007b, 35; 2008, 36):

« Un jour, j'ai vu le soleil se coucher quarante-quatre fois! » (갈리마르)

"One day," you said to me, "I saw the sunset forty-four times!" (하코트 브레이스)

"어느 날 나는 해가 지는 걸 마흔세 번이나 보았어!" (문예출판사)

"어느 날은 해 지는 걸 마흔세 번이나 본 적도 있어." (문학동네)

"언젠간 하루에 해가 지는 걸 마흔네 번이나 보았어요!" (예담-아르데코7321)

어린 왕자에게 있어서 해넘이는 무척 중요한 것이고, 떽스뜨에서 어린 왕자가 갖는 감수성의 원천이라고도 볼 수 있는 만큼 이 부분은 상당한 중요성을 갖는다. 어린 왕자는 '나'에게 해지는 걸 보러 가자고 떼를 썼고, 소원을 말해보라는 왕에게는 해더러 지금 당장 지라고 명령해 달라고까지 한다. 가로등 켜는 사람의 별에서 떠나면서, 24시간 동안 1440번이나 해가 지는 축복받은 별를 끝내 잊지 못할 것이라고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생각하기도 한다. 어린 왕자가 해지는 것을 마흔세 번이 아니라 마흔네 번 보았다는 것은 떽스뜨의 다른 곳에서도 나온다.

어쨌든 예담-아르데코판이 삽화나 확정 떽스뜨의 문제 그리고 문체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을 정확하게 옮긴 공로는 실은 번역자 강주헌에게 돌려야 옳다. 강주헌의 옛 번역본, 2001년에 출간된 문예당판 『어린 왕자』에도 그 부분은 원문에 충실하게 실려 있기 때문이다(53):

"어느 날 나는 해가 지는 걸 마흔네 번이나 보았어!"

또, 일부 번역본에서 착오 탓인지 '낮'을 '밤'으로 잘못 옮긴 부분도 예담-아르데코7321판에서는 바르게 옮겨져 있다(1999, 20; 1971, 9; 2007a, 16; 2007b, 19; 2008, 19):

« Ce qui est bien, avec la caisse que tu m'as donnée, c'est que, la nuit, ça lui servira de maison.
-- Bien sûr. Et si tu es gentil, je te donnerai aussi une corde pour l'attacher pendant le jour. Et un piquet. »  (갈리마르)

"The thing that is so good about the box you have given me is that at night he can use it as his house."
"That is so. And if you are good I will give you a string, too, so that you can tie him during the day, and a post to tie him to." (하코트브레이스)

"아저씨가 준 상자가 밤에는 집이 될 테니까 잘 됐어."
"그렇고말고. 그리고 네가 착하게만 하면, 밤에 양을 매 놓을 수 있는 굴레를 줄게. 말뚝도 주고." (문예출판사)

"아저씨가 준 상자가 좋은 건 그게 밤에는 양의 집이 될 수 있다는 거야."
"그렇고말고. 네가 착하게 굴기만 하면 낮에 양을 매어둘 고삐도 그려줄게. 그리고 말뚝도." (문학동네)

"아저씨가 준 상자가 밤에는 양의 집으로 쓰일 테니 참 잘됐어요."
"물론이란다. 그리고 네가 착하게 있으면 낮에 양을 묶어놓을 수 있는 고삐도 만들어줄게. 말뚝도 주고." (예담-아르데코7321)

그러나 보다 많은 부분에서 예담-아르데코7321판본의 오류가 눈에 띈다. 먼저 낱말을 잘못 옮긴 것이 종종 있다. 먼저 시적詩的이라는 낱말을 웬일인지 '상징적'이라고 옮긴 부분이 있다(1999, 52; 1971, 46; 2007a, 54; 2007b, 69; 2008, 72):

C'est amusant, […] C'est assez poétique. (갈리마르)

"It is entertaining," […] "It is rather poetic. […]" (하코트브레이스)

그것 재미있는데. 아주 시적(詩的)이고. (문예출판사)

'재미있는데' […] '상당히 시적인걸. […]' (문학동네)

그거 재미있군. 그런데로 상징적이고 말이야. (예담-아르데코7321)

상징이 시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시적이라는 것과 상징적이라는 것은 같은 것이라고 보기가 힘들다. 이 말은 어린 왕자가 실업가의 별을 방문했을 때 했던 생각인데, 그 실업가는 별을 '상징적'으로 소유한다기보다는 '실질적'으로 자신이 소유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실질적인 '믿음'이 어린 왕자의 눈에는 우스꽝스러웠고, 낭만적이었기 때문에 시적으로 보였던 것 같다. 어쨌든 이상한 것은 강주헌의 이전 번역(2001, 74)에서는 "제법 시적이고."라고 정확히 옮겨져 있었다는 점이다. 편집자나 최종 결재자의 눈에 '시적'이라는 말이 뜬금없는 것으로 보였던 것일까?

다른 부분을 보자. 배움과 연습은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어린 왕자의 원문에 분명히 '배운다'고 되어 있는 부분이 번역문에서는 '연습하다'로 뒤바뀐 부분이 많다(1999, 16; 1971, 4; 2007a, 10; 2007b, 13; 2008, 12):

je n'avais rien appris à dessiner (갈리마르)

I never learned to draw anything (하코트브레이스)

아무것도 그리는 연습을 하지 않았으니까 (문예출판사)

그림 그리는 것을 배워본 일이 없었으니 (문학동네)

그림 그리는 연습을 전혀 하지 않았으니까 (예담-아르데코7321)

불어의 apprendre나 영어의 learn에 '익히다'라는 뜻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연습하다'라고 하려면 exercice/exercise나 practice를 쓰는 것이 보통이다. 게다가 여기에서 '연습하다'가 나오면 '나'가 일관되게 끌어온 그림과 관련된 정체성이 깨지게 된다. '나'는 그림 1호와 2호가 실패한 이후, 결국 비행기 조종하는 법을 "배웠appris"기 때문이다(1999, 14; 2008, 9). 여기서 '나'는 그림을 배우는 '대신' 비행기 조종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문학동네판을 따라 옮기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문장 내지는 구가 몽땅 틀린 경우도 있다. 이 부분은 낱말의 선택이 문제가 아니라 문장 구조를 잘못 파악하거나 문법을 잘 몰라서 잘못 번역하는 경우로, 명백한 잘못이다. 가령 "그림 그리는 것을 배워본 일이 없"는 '나'가 어린 왕자의 초상화를 두고 '최고로 멋진 초상화'라고 지칭하는 이상한 번역을 보자(1999, 16; 1971, 4; 2007a, 10; 2007b, 13; 2008, 12):

Voilà le meilleur portrait que, plus tard, j'ai réussi à faire de lui. (갈리마르)

Here you may see the best portrait that, later, I was able to make of him. (하코트브레이스)

훗날 내가 그를 그린 그림 중에서 가장 잘 된 것이 여기 있다. (문예출판사)

여기 있는 그림은 훗날 내가 그의 모습을 그린 그림들 중에서 가장 잘된 것이다. (문학동네)

훗날 나는 그 아이를 모델로 하여 최고로 멋진 초상화를 그렸다. (예담-아르데코7321)

여기서 '가장 잘 된le meilleur portrait/the best portrait'은 que/that절 이하의 수식어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해당 부분은 '최고로 멋진 초상화'가 아니라 내가 그린 것 중에서 제일 나은 것이란 뜻이 맞다. 특히 '나'는 스스로 그림을 잘 못 그린다고 떽스뜨 전체를 통하여 고백하고 있기 때문에 '최고로 멋진 초상화'라는 것이 올바른 번역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떽스뜨 전체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지금 해당 본문만을 솜솜 뜯어보면 '그를 그린 것 중에'라기보다는 '그를 그리는 데 성공한 것 중에' 내지는 '그를 그릴 수 있었던 것 중에' 정도로 해석하게 되는데, 이것은 '나'의 능력상 그를 그리는 것이 무척이나 힘든 일이거나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음을 시사한다. 한편 "Voilà"나 "Here you may see"는 모두 상대에게 눈앞의 어떤 그림을 가리키며 하는 말인데, 유독 예담-아르데코7321판에서만 이 부분에서 지칭의 동사들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그런데 역시 여기서도 이상한 부분이 있는데, 강주헌의 옛 번역본에서는 "훗날 내가 그르르 그린 것 중 가장 잘 된 그림이 여기 있다."로 정확하게 옮겨져 있다는 점이다(2001, 38).

마찬가지로 문장 자체를 잘못 옮긴 경우로 어린 왕자의 별 B612에 대한 문장이 있다(1999, 24; 1971, 13-14; 2007a, 19; 2007b, 25; 2008, 25):

Mais si vous leur dites : « La planète d'où il venait est l'astéroïde B 612 », alors elles seront convaincues, et elles vous laisseront tranquille avec leurs questions. (갈리마르)

But if you said to them: "The planet he came from is Asteroid B-612," then they would be convinced, and leave you in peace from their questions. (하코트 브레이스)

그러나 "그가 떠나온 별은 소혹성 B612호입니다"라고 말하면 수긍을 하고 더 이상 질문을 해대며 귀찮게 굴지도 않을 것이다. (문예출판사)

그러나 "어린 왕자가 떠나온 별이 B612호 소혹성입니다"라고 하면 어른들은 수긍이 간다는 듯 더이상 질문을 해대며 귀찮게 굴지 않을 것이다. (문학동네)

그러나 "그는 소행성 B612호에서 왔습니다"라고 말하면 어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질문으로 조용히 넘어갈 것이다. (예담-아르데코7321)

B612는 어린 왕자가 살던 별의 이름이지만, '나'에 따르면 그 이름은 별로 중요한 것이 못된다. 적어도 어린이들에게는 그렇다. 하지만 어른들에게는 B612라는 그 숫자가 바로 본질적인 부분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여기서 laisser는 '내버려 두다'라는 뜻이고 tranquille은 '조용한'이라는 뜻이므로 이 부분 역시 '질문을 하면서 성가시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맞다. 특히 여기서 어른들은 숫자가 본질이라고 믿기 때문에 B612호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더 이상의 질문을 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강주헌의 문예당판은 이 부분을 아래와 같이 바르게 옮겼다(2001, 46):

그러나 "그가 떠나온 별은 소혹성 B612호입니다."라고 말하면 이해를 하고 더 이상 질문을 하면 귀찮게 굴지도 않을 것이다.

또, 불어 특유의 접속법을 잘못 해석하여 완전히 반대의 문장이 된 경우도 있다(1999, 37; 1971, 29; 2007a, 36; 2007b, 46; 2008, 47):

Cette histoire de griffes, qui m'avait tellement agacé, eût dû m'attendrir... (갈리마르)

This tale of claws, which disturbed me so much, should only have filled my heart with tenderness and pity. (하코트브레이스)

그 발톱 이야기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실은 가엾게 여겼어야 옳았던 거야……. (문예출판사)

그 발톱 이야기에 너무 약이 올랐었거든. 사실은 가엾게 여겼어야 했는데 말이야……. (문학동네)

그 가시 이야기가 짜증스럽기는 했지만 내게는 측은한 마음을 들게 했던 거예요……. (예담-아르데코7321)

프랑스어 원문의 eût dû의 주어는 3인칭인 '그 발톱 이야기cette histoire de griffes'다. 영어에서 must에 해당하는 devoir 동사의 3인칭 접속법 대과거형이 바로 eût dû이다. 접속법 대과거는 과거 사실에 대한 소원을 말하는 것이다. 이 문장을 직역하면 "그 발톱 이야기는 […] 나를 측은해지게 했어야 하는데." 정도가 되는 것이다. 즉, 어린 왕자는 그 때 장미꽃의 '발톱 이야기'를 듣고 그다지 측은해하지 않았고, 지금 그것을 후회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예담-아르데코7321판은 거꾸로 측은한 마음을 들게 했다고 말한다. 완전히 반대의 번역인 셈이다. 역시 강주헌의 문예당판은 이 부분을 아래와 같이 비교적 정확하게 옮기고 있다(2001, 59):

그 가시 이야기에 눈살을 찌푸렸으나 오히려 그것 때문에 그를 더 가엾게 생각해야 했어…….

결론을 대신하여#

완벽하고 꼼꼼하지는 않지만 국내 세 출판사의 번역본을 비교함으로써 예담-아르데코7321판이 일부 개선되었음에도 실상은 개악판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법적 논란이 분분한 상표권을 '무기' 삼아 서점에서 경쟁 제품을 뺀 다음, 자사의 책으로 서점가에 진출하는 행태는 도덕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고, 생떽쥐뻬리와 어린 왕자의 정신에도 맞지 않는다. 게다가 독점 시장의 지위를 누릴 때의 특수를 노려서 억지로 일정을 맞추어 책을 내는 행위는 생떽쥐뻬리의 이름값에 먹칠을 하는 행위다. 이를 통해 얻은 수익금으로 어린 왕자 박물관을 낸다 한들, 저작자의 글 하나 제대로 못 내는 출판사-문구점의 입장에서 그것이 홍보효과 이외에 또 무엇이겠나 하고 생각해 보면 씁쓸하기만 하다.


어린 왕자 - 2점
생 텍쥐페리 지음, 강주헌 옮김/예담

참고문헌#

Saint-Exupéry, Antoine de. 1943, 1971. The Little Prince. Orlando:Harcourt Brace & Company
---. 1999. Le Petit Prince. Paris:Gallimard.
---. 2001. 『어린 왕자』. 강주헌 옮김. 서울:문예당.
---. 2007a. 『어린 왕자』. 전성자 옮김. 에버그린북스01. 서울:문예출판사.
---. 2007b. 『어린 왕자』. 김화영 옮김. 파주:문학동네.
---. 2008. 『어린 왕자』. 강주헌 옮김. 서울:예담(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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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엔디

얼마 전에 쓴 어린 왕자를 소비하는 사회: 어린 왕자 상표권 분쟁에서 나는 "아르데코7321이나 유족 재단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고 적었다. 나는 정말 몰랐다; 그래서 나는 "기존의 출판사들이 생떽쥐뻬리의 명예를 높였으며, 아르데코7321의 매출도 높여 주었을 것"이라고 너무 순진하게 진단했던 듯하다. 그리고 얼마 전 '새 『어린 왕자』'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계일보의 조정진 기자는 예담(위즈덤하우스)판 『어린 왕자』가 아르데코7321과 관련되어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스캔들마케팅이란 글을 쓴 것 같다. 서점에 가서 책 표지만 한 번 봐도 아르데코7321이라는 글자를 볼 수 있었을 텐데. 2008. 5. 6. 11:48 추가)

아르데코7321 측은 처음부터 기존의 책들을 모두 서점에서 몰아낸 다음, 서점에 자신들의 책을 깔 심산이었던 것 같다. 평소에 저작권이 만료되어 공공영역public domain에 편입된 앨리스나 도로시 등 캐릭터 상품을 팔았던 때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아르데코7321의, 문제의 공지사항#

아르데코7321은 최근의 저작권 또는 상표권 논란이 부담스러운 듯, 당사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장문의 글을 남겼다. 그 글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소설’어린왕자’는 퍼블릭도메인으로 어느 누구나 소설’어린왕자’를 활용하여 책을 만들 수 있고 제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단, 글(Text)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소젝스(SOGEX)사는 생택쥐페리의 조카인 올리버 다게이(Oliver d’Agay)와 가족이 운영하고 있는 재단으로서, 영리의 목적보다는 ’어린왕자’가 세상에 소중하게 남아 있기를 바라면서 세계 여러나라에 ’어린왕자 박물관’과 같은 ’가치있는 어린왕자의 보전’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미 프랑스와 일본의 하꼬네에 박물관을 오픈하였고 한국에도 곧 박물관이 들어 올 예정입니다.
위와 같은 가치있는 사업을 위하여 소젝스사에서는 일부 영리목적의 수익사업을 하고 있으며, 소젝스사의 가치있는 사업에 부응하기 위하여 아르데코7321™은 소젝스사와 디자인문구 관련 상품과 서적에 대해서 독점 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사실 관계는 두 가지다: 먼저 『어린 왕자』의 텍스트 저작권은 만료되었다는 것과, 아르데코7321은 소젝스 사와 디자인문구 관련 상품과 서적에 대한 상표권 관련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어린 왕자』 텍스트와 삽화의 저작권#

『어린 왕자』의 텍스트 저작권이 (한국 내에서) 만료되었다는 것은 당연하다. 생떽쥐뻬리는 1944년 사망했고, 한국의 저작권법은 저작자 사후 50년까지 저작권을 보호한다; 생떽쥐뻬리의 저작물은 한국 내에서 1994년까지 보호받을 수 있다. (실제로는 베른 조약 가입 시기 및 저작권법 개정 역사와 관련하여 한국 내에서는 그보다 훨씬 먼저 저작권이 소멸되었다.)

문제는 아르데코7321이 『어린 왕자』의 텍스트만 저작권이 만료되었고, 그림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저작권법에는 글과 그림(삽화)의 저작권 보호 기간을 다르게 규정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으므로 이 주장은 사실 관계를 완전히 오도하는 내용이 된다. 이상한 것은 아르데코7321 측의 주장이 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이 회사 홈페이지의 질문답변 게시판에 앨리스나 도로시 등 퍼블릭 도메인으로 장사해놓고 이제 와서 퍼블릭 도메인을 사용한 출판사들의 책을 서점에서 몰아내는 행태를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고, 아르데코7321은 이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이번 조선일보의 보도로 인해서 발단이 된 어린왕자 상표권분쟁은 저작권과는 별도로 다른 내용입니다.
먼저 저작권은 한국이 베른조약에 1996년 부터 가입한 이후부터 국제저작권법의 영향을 받아서 작가 사후 50년동안 저작권을 보호 받는 다는 내용으로 그 이 후 부터는 퍼브릭 도메인으로 분류됩니다.
고객님께서 말씀하시는 앨리스와 도로시, 어린왕자는 모두 저작권으로부터 자유로운 퍼블릭도메인입니다.
그리고 이번 사태는 저작권이 아닌 상표권 분쟁으로 아르데코7321이 프랑스의 소젝스사와 디자인문구 관련제품과 출판에 대해서 독점계약을 한 후 소젝스사의 에이전트인 GLI 건설팅으로 부터 소젝스사의 어린왕자 등록 상표를 부당하게 사용하고 있는 출판사들과 이들의 책을 판매하고 있는 유통사에게 판매를 하지 말아 달라는 편지내용 전달하고 나서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위에서 인용한 글과는 분명히 조금 다른 내용이다. 위에서 인용한 글은 텍스트의 저작권만 만료되었다는 내용이지만, 이 성난 고객에 대한 답변에서 아르데코7321은 이건 저작권 문제가 아니라 상표권 문제이므로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

먼저 지난번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르데코7321은 처음부터 공지사항을 통해 "국내 최초로 저작권 구입과 함께 / 새롭게 태어난 어린왕자를 / 아르데코 7321에서 만나보세요~"라고 홍보했고, 언론에도 비슷한 내용의 보도자료를 돌린 듯 서울경제, 연합뉴스(네이버 링크), 매거진 정글의 보도에서도 상표권이라는 말은 아주 찾아볼 수 없고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했다는 내용만 읽을 수 있다. (아르데코7321은 이후 공지사항에서 '저작권'이라는 말을 '라이센스'라는 낱말로 바꾸었다.)

어린왕자 오리지널 삽화가 들어간 정식 한국어판SAMSUNG Electronics | Anycall SPH-B5000 | Normal program | Average | f2.82 | +0.56EV | No Flash | 2008:05:01 21:51:42
그뿐 아니다. 최근 출간된 예담(위즈덤하우스)·아르데코7321 판 『어린 왕자』는 표지에 "어린왕자 오리지널 삽화가 들어간 정식 한국어판LE CHEF D'ŒUVRE DE SAINT-EXUPERY AVEC SES ILLUSTRATION D'ORIGINE"이라는 표시를 금박을 붙여 표시하고 있다.

또, 표지 안쪽과 속표지면에는 "이 책은 국내 최초로 원본 삽화 저작권을 갖고 있는 / 프랑스 Sogex사와의 계약을 통한 정식 한국어판입니다. / LE PETIT PRINCE TM ⓒ SUCCESSION ANTOINE DE SAINT-EXUPERY 2008"이라고 적고 있다(강조 는 인용자).

이 책은 국내 최초로 원본 삽화 저작권을 갖고 있는 / 프랑스 Sogex사와의 계약을 통한 정식 한국어판입니다.SAMSUNG Electronics | Anycall SPH-B5000 | Normal program | Average | f2.82 | +0.56EV | No Flash | 2008:05:01 21:52:23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면 아르데코7321 측은 일단 '정식 저작권 계약'이라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해서 자사 상품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저작권법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항의하는 경우에만 사실은 문제가 되는 것이 저작권이 아니라 상표권이라는 것을 밝히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것이 회사의 내부 정책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드러난 모양새가 그렇다.

(그게 아니라면 아르데코7321측도 처음에는 문제가 상표권인지 저작권인지 잘 몰랐을 거라는 가정도 해볼 수 있다. 설마 그런 단순한 것을 몰랐을까 싶지만, 그간 아르데코7321측의 행동을 보면 그런 가정도 가능하다. 특히 2007년 10월 이후 거의 6개월이나 '저작권'이라고 표시되어 있던 공지사항의 '저작권'이란 낱말을 4월달에 문제가 불거지자 '라이센스'란 낱말로 바꾼 점이나, '저작권' 관련 이슈로 다룬 기사들을 해당 공지사항 아래 링크한 점, 한번 출간되면 돌이킬 수 없는 책에까지 '상표권' 또는 '라이센스'가 아니라 '저작권'이라는 말을 적은 점 등을 보면 특히 그렇다.)

아르데코7321은 한 술 더 떠서 어린왕자를 법정에 세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글을 공지사항에 올렸다. 여기서 아르데코7321은 자신과 소젝스사의 정당성을 한번 더 주장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국내 출판사들을 법질서를 어지럽힌 당사자들로 몰아붙인다:

세계적으로 어린왕자 도서를 살펴보면 미국 2개(Harcourt , Gallimard), 유럽 1개(Gallimard), 대만 1개, 일본 20개의 출판사에서 어린왕자 도서를 출판하고 있습니다. 어린왕자 책이 한국에서 600여 개 출판사에서 출간했다고 하는데 전세계 출판사를 모두 합쳐도 어린왕자를 출간한 한국의 출판사의 수에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남의 것 이라고 함부로 훼손, 도용하고 또, 법질서를 무시하고 ’그 동안 저작권을 한번도 내지 않고 사용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주욱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라고 생때를 쓰면서 한국의 특허청을 상대로 상표등록 취하소송을 하겠다고 하는 소수의 대형 출판사의 행태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아르데코7321은 사실 관계를 호도한다. 한국의 출판사들, 특히 '소수의 대형 출판사'들은 『어린 왕자』와 관련하 저작권법을 위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출판사들이 이익만을 바라보고 그간 중복 출판 관행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남의 것 이라고 함부로 훼손, 도용하고 또, 법질서를 무시"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아르데코7321은 긴 잘못을 비로소 척결한 혁명군처럼 정의를 전유해버린다. 그리고 그 다음은?

책 출간을 통한 이윤 창출이다.

아르데코7321의 『어린 왕자』 서적 상표권 계약#

맨 위에 인용한 글에서 아르데코7321은 처음부터 서적에 대한 상표권 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무척 중요한 문제다. 이 회사가 처음 상표권 계약을 맺을 당시부터 서점가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책을 출간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상표권은 동일 범주 내의 상품에만 적용된다. 즉, 나이키라는 상표가 신발이나 스포츠용품 관련 상표로 등록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나이키라는 이름의 스넥이나 아이스크림을 출시할 때에는 아무런 법적 영향력이 없다는 뜻이다. 만약 아르데코7321이 서적 관련 상표권 계약을 맺지 않고 문구류 관련 상표권만 맺었다면, 대행사에 요청해서 서점에서 기출간된 책을 빼달라고 요청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아르데코7321은 앞으로 자신들이 책을 출간하겠다는 내용은 빼놓고, 일단 기존 출판사들의 책을 정리하고 기존 출판사들을 비난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장이 혼란한 것을 틈타 새 책을 내놓았다. '새 『어린 왕자』'의 번역자인 강주헌이 「옮긴이의 말」을 쓴 것이 2008년 2월이고, 그 글에서 『어린 왕자』 번역 부탁을 받은 것은 "올해 초"라고 말하고 있다. 아르데코7321의 공지사항에 따르면 아르데코7321측이 계약을 맺은 것이 2007년 10월이므로, 예담(위즈덤하우스)과 출간 관련 계약을 따로 맺은 시간을 고려하면 대략 시간이 맞아떨어진다.

실업가와 어린 왕자#

어린 왕자가 만난 실업가
『어린 왕자』의 지적재산권 분쟁을 바라보면서 생각난 것은 어린 왕자가 만난 실업가였다. 불어에서도 마땅한 말이 없어 생떽쥐뻬리도 businessman이라고 쓸 수밖에 없었던 이 지극히 미국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Saint-Exupéry 2007, 53; Saint-Exupéry 1999, 52):

"물론이지. 임자 없는 다이아몬드는 그걸 발견한 사람의 소유가 되는 거지. 임자가 없는 섬을 네가 발견하면 그건 네 소유가 되는 거고. 네가 어떤 좋은 생각을 제일 먼저 해냈으면 특허를 받아야 해. 그럼 그것이 네 소유가 되는 거야. 그래서 나는 별들을 소유하고 있는 거야. 나보다 먼저 그것들을 소유할 생각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

Bien sûr. Quand tu trouves un diamant qui n'est à personne, il est à toi. Quand tu trouve une île qui n'est à personne, elle est à toi. Quand tu as une idée le premier, tu la fais breveter : elle est à toi. Et moi je possède les étoile, puisque jamais personne avant moi n'a songé à les posséder.

물론, 이 구절이 생떽쥐뻬리 유족들이 모든 저작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럴 가능성이 없을 뿐더러 옳은 일도 아니다. 그러나 생떽쥐뻬리의 어린 왕자가 무언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이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어린 왕자가 소유하는 것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는 별을 소유한다는 실업가의 말을 듣고 그것이 '아주 시적assez poétique'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곧 무언가를 소유하려면 그 대상에게 유익해야être utile 한다고 자신만의 '소유 철학'을 편다(Saint-Exupéry 2007, 54):

"나는 말이야, 꽃을 한 송이 소유하고 있는데 매일 물을 줘. 세 개의 화산도 소유하고 있어서 매주 그을음을 청소해 주곤 하지. 불이 꺼진 화산도 청소해 주니까 세 개란 말이야.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거든. 내가 그들을 소유하는 건 내 화산들에게나 내 꽃에게 유익한 일이야. 하지만 아저씨는 별들에게 유익하지 않잖아……."

어린 왕자가 다시 돌아와 이 땅에 선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생떽쥐뻬리는 분명히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어른들은 참 이상하군."

어린왕자 - 10점
생 텍쥐페리 지음, 전성자 옮김/문예출판사

어린 왕자 - 10점
생 텍쥐페리 지음, 김화영 옮김/문학동네

어린 왕자 - 2점
생 텍쥐페리 지음, 강주헌 옮김/예담


참고문헌#

Saint-Exupéry, Antoine de. 1999. Le Petit Prince. Paris:Édition Gallimard.
------, 2007. 『어린 왕자』. 에버그린북스02. 전성자 옮김. 서울:문예출판사.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Posted by 엔디
『어린 왕자』의 여러 한국어판 번역본들과 불어판 또는 영어판을 비교해 보면 조금 이상한 부분을 찾을 수 있다. (아마도 쓸쓸했던 날의) 어린 왕자가 자기 행성 B612에서 본 해넘이의 수가 한국어판과 불어판 또는 영어판이 다른 것이다 한국어판은 대개 마흔세 번으로, 영어나 불어판은 마흔네 번으로 기록하고 있다:
« Un jour, j'ai vu le soleil se coucher quarante-quatre fois! »
- 갈리마르Gallimard 출판사 폴리오folio 문고판, 31쪽. (1999년 문고판 간행)

"One day," you said to me, "I saw the sunset forty-four times!"
- 하비스트북A Harvest Book하코트 브레이스Harcourt Brace판 캐서린 우즈Katherine Woods 옮김본, 21쪽.

"언젠가는 마흔 세 번이나 해지는 걸 봤지."
- 구舊 문예출판사판 김현 옮김본, 32쪽. (1973년 초판 간행)

「어느 날, 난 마흔 세번이나 석양을 보았어!」
- 혜림출판사판 황현산 옮김본, 29쪽. (1986년 초판 간행)

「어느 날인가는, 해 지는 걸 마흔 세 번이나 봤지요!」
- 고려원판 오증자 옮김본, 28쪽. (1987년 초판 간행)

"어느 날 나는 해가 지는 걸 마흔세 번이나 보았어!"
- 신新 문예출판사판 전성자 옮김본, 26쪽. (1999년 간행)

"어느 날은 해 지는 걸 마흔세 번이나 본 적도 있어."
- 문학동네판 김화영 옮김본, 35쪽. (2007년 간행)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1999년 출간된 갈리마르 출판사의 폴리오folio 문고판에는 이런 일러두기avertissement가 붙어 있다: "우리는, 앙뚜안 갈리마르와 함께, 폴리오 문고판의 하나로 출간하게 되어서, 그리고 어린 왕자의 완전판l'édition intégrale을 처음으로 출간하게 되어서 기쁘다." ...무슨 소리인가. 『어린 왕자』는 1943년 작가가 살아 있을 당시에 이미 초판이 간행되었는데!

1943년 쌩떽쥐뻬리는 미국에 있었고, 아마 전시戰時였기 때문이겠지만 프랑스 출판 편집자들과는 연락을 취할 길이 없었다. 해서 그는 '레이날과 히치콕Reynal & Hitchcock'이라는 출판사에서 『어린 왕자』의 초판을 발간하게 된다. 정작 프랑스에서는 약 3년 뒤 1945년에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첫 판이 발간된다. 문제는 이 때 갈리마르에서는 작가의 원본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상태에서 작업했다는 것이다.

폴리오 문고판의 일러두기는 그래서 그간 불어판에 있었던 오류의 목록을 보여주고 있다: 천문학자가 망원경을 통해 바라보는 별이 사라져 있고, 사업가와 천문학자의 노트나 그림에 차이가 있으며, 어린 왕자 목도리의 윤곽에서부터 꽃들의 꽃잎과 꽃받침, 가로등 아래의 태양 광선, 바오밥 나무의 뿌리에서부터 야자수의 가지가 다르다; 또한 어린 왕자가 본 해넘이의 횟수가 다르다.

한편, The Publication History of The Little Prince는 각국의 번역 판본들과 떽스뜨, 이미지의 차이를 상세하면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폴리오 문고판에서 지적하지 않은 두 가지 사항들을 더 지적하고 있다: 하나는 어린왕자가 입은 가운의 색깔이 초록색green이냐, 어두운 파랑dark blue이냐, 아니면 바다색navy blue이냐 하는 논란이 있어왔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소행성 B612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천문학자들이 별에 이름을 붙이는 방식을 설명하면서 '소행성325'를 예로 드는데 이 숫자가 일부에서는 '소행성3251'로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린왕자의 가운 색깔

불어판과 영어판, 그리고 두 한국어역본 사이의 가운 색깔이 모두 다르다


Il l'appelle par exemple : « l'astéroïde 325 ».
- 갈리마르 출판사 폴리오 문고판, 22쪽.

He might call it, for exemple, "Asteroid 325."
- 하코트 브레이스판 캐서린 우즈 옮김본, 11쪽.

예를 들자면 <소혹성(小惑星) 3251>하는 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 구舊 문예출판사판 김현 옮김본, 23쪽.

이를테면, '소혹성 3251호'라는 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 신新 문예출판사판 전성자 옮김본, 17쪽.

가령, '소혹성 제325호'라는 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 문학동네판 김화영 옮김본, 23쪽.

어린 왕자가 해가 지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는가와 '나'가 예로 든 소행성 이름이 무엇이었는가는 그래도 단순한 편집 판본 상의 차이일 뿐이다: 마흔 세 번과 마흔 네 번이라는 차이가 작품 내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상한 일은 '신원'이라는 출판사에서 내 놓은 책은 엉뚱하게도 어린 왕자가 본 해넘이의 수를 "46번"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민한 작가가 언젠가 고쳐 쓴 뒤 어느 판본에 적용을 하지 않았거나 무던한 편집자가 실수를 했거나 했을 것이다. 물론, 어린 왕자에게 있어서 해넘이가 갖는 의미는 무척 각별하다. 슬픈 날에 마흔 몇 번이나 해넘이를 보았다는 것이나, 왕이 소원을 빌라고 하자 망설임 없이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싶다고 한 것, 그리고 24시간 동안 해가 1440번 진다는 이유로 점등인의 별을 떠나고자 하지 않은 점, 그리고 조종사인 '나'에게 해지는 것을 보러 가자고 무의식 중에 떼를 쓴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텍스트를 자세히 살펴보면 어린 왕자가 해넘이를 43번이 아니라 44번 보았다는 것을 확정해주는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 어린 왕자는 별들이 즉각 복종한다는 왕의 권능을 부러워하며 이렇게 생각했다고 화자는 전한다:

어린 왕자는 그토록 대단한 권능에 감탄했다. 만약 자기에게도 이러한 권능이 있었다면 의자를 뒤로 물려놓을 것도 없이 해지는 광경을 하루 마흔네 번만이 아니라 일흔두 번, 아니 백 번 이백 번이라도 구경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문학동네판 김화영 옮김본, 55쪽.)

그럼에도 이것은 작자가 처음에 의도한 해넘이의 숫자를 밝혀주는 것일 뿐 44라는 숫자 자체가 어떤 고도의 시적 울림이나 상징성을 가진 유의미한 것이 아님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에 있어서는 문제가 좀 다르다: 그림이 좀더 바랜 것에서 시작해서 그림 자체에 있어야 할 것이 빠진 것도 있다. 이는 작가의 원판 그림이 미국 출판사들에서 프랑스 출판사들로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문학자①"

천문학자가 망원경을 통해 별을 보고 있는 것이 맞는 그림인데, 별이 아예 빠져서 편집되어 있다.

"천문학자

천문학자가 설명하는 칠판의 도형이 조금 다르다. 가령 원의 중점에서 1사분면으로 나가는 선의 각도가 누락되어 있다.

"바오밥나무"

바오밥나무의 뿌리가 좀더 단순화되어 있다.

"점등인"

가로등 아래의 태양광선 하나가 없다.

서점에서 살펴본 결과, 해넘이 떽스뜨와는 달리 대부분의 책에서 작가가 그린 그림의 문제는 없었다. 몇몇 번역 판본이 예전 그림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어린 왕자가 해넘이를 마흔세 번 보았나 마흔네 번 보았나가 아니라, 어린 왕자의 떽스뜨가 어떻게 정확히 확정될 것인가이다. 마흔세 번과 마흔네 번이 갖는 차이는 크지 않겠지만, 어린 왕자가 느꼈을 쓸쓸함을 표현하기 위해 마흔 몇 번을 100번이나 200번으로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어린 왕자 - 8점
생 텍쥐페리 지음, 김화영 옮김/문학동네

어린왕자 - 8점
생 텍쥐페리 지음, 전성자 옮김/문예출판사

Posted by 엔디
어린왕자가 지구로 다시 돌아왔다. 그의 별에 어쩌다 호랑이가 머물게 되었고, 호랑이 때문에 양과 장미가 위협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린왕자는 호랑이 사냥꾼을 찾고 있다.

워낙 쌩떽쥐뻬리의 『어린왕자』는 동화로 씌어진 것이다. 동화가 소설보다 수준낮은 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리라. 쌩떽쥐뻬리는 심지어 『어린왕자』를 어른인 레옹 베르뜨에게 헌정하는 것을 어린이들에게 사과하고 있기까지 하다. 쌩떽쥐뻬리가, 혹은 그의 어린왕자가 경멸했던 것은 '버섯'같은 어른들의 사고방식이다.

『다시 만난 어린왕자』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어린왕자는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별(사실은 행성)을 떠나 지구로 오는 길에 만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려지는지를 보면 금방 나타난다. 어린왕자는 차례로 환경주의자, 광고기획자, 통계학자, 관리인, 편갈라 싸우는 사람, 그리고 소녀, 지구에 와서는 문학평론가를 만난다. 물론, 소녀를 빼고는 모두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그건 쌩떽쥐뻬리의 플롯을 그대로 따온 것이지만, 다비뜨의 묘사는 보다 우리 시대에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다.

김정란은 해설에서 쌩떽쥐뻬리의 '모던'함과 다비뜨의 '포스트모던'함이 어디서 차이를 보이는지 세목들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다비뜨의 글에서 '모던'에 대한 반발이 많이 읽히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생텍쥐페리 선생님, 선생님께서 전에 출간하신 책을 읽어보니까, 선생님께선 비행사의 피를 가지고 계셨더군요. 선생님이셨다면, 그냥 휙 날아가셨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공기보다 더 무거운 걸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게 별로 내키질 않아요. 하늘 높이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세상은 너무나 조그마해서, 마치 지도가 펼쳐지는 것같이 느껴지지요. 어떨 때는 지도를 보는 것보다도 못해요. 풍경은 양떼처럼 흩어져버리고, 형태를 알 수 없는 구름 낀 산정밖엔 보이질 않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구체적인 것입니다. 물과 땅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 그들과 하나가 되는 것, 제가 원하는 건 그런 것입니다. (12-13쪽)

그러나 이 책의 단점을 꼽으라면, 그것은 내가 보기에 아주 치명적인 단점인데, 어린이보다는 어른을 위한 글이라는 점이다. 광고기획자나 편갈라 싸우는 사람 정도는 어린이가 읽어서 이해할만하다고 볼 수 있지만, 환경주의자나 통계학자, 지구의 문학평론가에 대한 내용을 어린이들이 읽어서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오히려, 뻔한 사실을 '어린이'의 입장에서 본다는 의미의 '낯설게 하기'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말이다. 『어린왕자』와 비교해보면 그런 차이는 한눈에 보인다. 해서 결과적으로는, '지식인'과 '무식쟁이'의 경계를 허물고 '고급'과 '저급'의 갈림을 모호하게 만드는 '포스트모던'한 글쓰기로서는 어느 정도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다시 만난 어린왕자
장 피에르 다비트 지음, 김정란 옮김/이레

Posted by 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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