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가 지구로 다시 돌아왔다. 그의 별에 어쩌다 호랑이가 머물게 되었고, 호랑이 때문에 양과 장미가 위협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린왕자는 호랑이 사냥꾼을 찾고 있다.

워낙 쌩떽쥐뻬리의 『어린왕자』는 동화로 씌어진 것이다. 동화가 소설보다 수준낮은 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리라. 쌩떽쥐뻬리는 심지어 『어린왕자』를 어른인 레옹 베르뜨에게 헌정하는 것을 어린이들에게 사과하고 있기까지 하다. 쌩떽쥐뻬리가, 혹은 그의 어린왕자가 경멸했던 것은 '버섯'같은 어른들의 사고방식이다.

『다시 만난 어린왕자』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어린왕자는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별(사실은 행성)을 떠나 지구로 오는 길에 만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려지는지를 보면 금방 나타난다. 어린왕자는 차례로 환경주의자, 광고기획자, 통계학자, 관리인, 편갈라 싸우는 사람, 그리고 소녀, 지구에 와서는 문학평론가를 만난다. 물론, 소녀를 빼고는 모두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그건 쌩떽쥐뻬리의 플롯을 그대로 따온 것이지만, 다비뜨의 묘사는 보다 우리 시대에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다.

김정란은 해설에서 쌩떽쥐뻬리의 '모던'함과 다비뜨의 '포스트모던'함이 어디서 차이를 보이는지 세목들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다비뜨의 글에서 '모던'에 대한 반발이 많이 읽히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생텍쥐페리 선생님, 선생님께서 전에 출간하신 책을 읽어보니까, 선생님께선 비행사의 피를 가지고 계셨더군요. 선생님이셨다면, 그냥 휙 날아가셨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공기보다 더 무거운 걸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게 별로 내키질 않아요. 하늘 높이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세상은 너무나 조그마해서, 마치 지도가 펼쳐지는 것같이 느껴지지요. 어떨 때는 지도를 보는 것보다도 못해요. 풍경은 양떼처럼 흩어져버리고, 형태를 알 수 없는 구름 낀 산정밖엔 보이질 않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구체적인 것입니다. 물과 땅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 그들과 하나가 되는 것, 제가 원하는 건 그런 것입니다. (12-13쪽)

그러나 이 책의 단점을 꼽으라면, 그것은 내가 보기에 아주 치명적인 단점인데, 어린이보다는 어른을 위한 글이라는 점이다. 광고기획자나 편갈라 싸우는 사람 정도는 어린이가 읽어서 이해할만하다고 볼 수 있지만, 환경주의자나 통계학자, 지구의 문학평론가에 대한 내용을 어린이들이 읽어서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오히려, 뻔한 사실을 '어린이'의 입장에서 본다는 의미의 '낯설게 하기'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말이다. 『어린왕자』와 비교해보면 그런 차이는 한눈에 보인다. 해서 결과적으로는, '지식인'과 '무식쟁이'의 경계를 허물고 '고급'과 '저급'의 갈림을 모호하게 만드는 '포스트모던'한 글쓰기로서는 어느 정도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다시 만난 어린왕자
장 피에르 다비트 지음, 김정란 옮김/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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