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 찌즈꼬는 국민국가의 틀 안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젠더 중립성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것은 국민국가가 국민 혹은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고, 그 요구는 '국방의 의무'로 대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남성과 여성에게 똑같이 병역의 의무를 지우는 경우는 없다. 흔히 양성공동병역의무제의 사례로 이야기되는 이스라엘에서조차 여성의 복무기간이 남성의 복무기간에 비해 훨씬 짧다. 이같은 상황 때문에 군으로 위문오는 선교단체들은 항상 젊은 여자를 앞세워 "여러분들 덕분에 저희가 안전하게 사는 거죠?"하고 묻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에서 "남성이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기는 것이다.

이 인식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옳다. 남성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성만 군대라는 곳에 가겠는가. 왜 군에 가기 직전의 남성이 돈을 주고 여성을 사는지의 의문도 여기서 풀린다. 그 남성은 그 여성을 지키기 위해 군에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제국주의 일본 당시의 '위안부'와 소위 말하는 '사창가'의 공통점이 있다. 여성들은 왜 자신들을 지키러 이 사내들이 군에 간다고 생각하는가. 자신들은 자녀를 낳아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국가 체제의 가장 주된 속성은 영속하려고 하는 욕망이다. 그 영속의 욕망이 '국방의 의무'를 만들어낸다. 그 '국방의 의무'는 다시 '병역의 의무'와 '출산의 의무'를 만들어냈다. '병역의 의무'가 보다 성문법적이고 '출산의 의무'가 보다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국민국가 체제가 개인을 억압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보다 너무나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그건 인구정책을 통해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가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가 되고, 그것이 또다시 "한 집 걸러 한 집 낳기"와 같은 캠페인을 낳았다면, 그것은 국가에 의한 출산 통제의 아주 기본적인 문맥이다. 당시의 예비군들이 공짜로 정관을 묶는 수술을 받고 당일의 훈련을 면제받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지금은 보다시피 정관수술은 이제 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다. 국민국가는 교묘하게 우리의 육체를 조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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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엔디

제국주의 서구열강이 저질렀던 식민지 침탈이 2차 대전이 끝나면서 마감되고, 제도로서의 백호주의白濠主義가 호주에서 1970년대에 마지막을 고했다. 그러나 아직도 '평등'은 멀기만 하다. 우리가 바라는 평등은 제도에 있어서의 평등만은 아닌 까닭이다. 희고 늘씬한 '미녀'들이 TV와 거리를 동시에 오르내리고 있는 이 시대는, 서구를 좇아가려고 기를 쓰던 근대 초기의 우리 모습과 너무 닮아있기 때문이다. 이때 다룰 중요한 말머리[話頭]로는 흰 얼굴과 흰 살갗에 대한 편집광적인 집착을 들 수 있다.

사람의 살갗 빛깔을 가지고 백인종이니 흑인종이니 황인종이니 홍인종이니를 굳이 구별하는 것은 크게 의미있는 일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보더라도 살갗 빛깔과 여러 특징들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아리아 인종'과 같은 모호한 개념이 아닌 한에서는, 인종을 나누는 것이 크게 문제되는 행위는 아니라고 여겨진다. 중요한 것은 거기서 가치판단을 빼는 일이다. 우리 안에 있는 백호주의白好主義가 문제되는 이유는 호好라는 글자 속에 이미 들어있는 '가치판단'적인 태도 때문이다. 우리에게 흰색은 어느새 아름다움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1

이를테면 장정일 소설에서 등장하는 '<은행원>'이 "국민학교도 채 졸업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1. 나는 연상의 여자와 결혼할 거다.
2. 나는 여배우와 결혼할 거다.
3. 나는 백인과 결혼할 거다.

라는 기준의 선언문(장정일 1992, 47)이나 마광수의 '사라'가 자신에 대해

그렇다고 해서 내 키가 형편없이 작다거나 얼굴이 평균 이하로 못생겼다는 말은 아니다. 내 키는 168센티미터이고 체격도 그만하면 팔등신에 가깝게 늘씬하다(욕심 같아선 키가 170센티미터 이상이면 더욱 좋겠지만 이 정도로 큰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입시에 합격하자마자 엄마를 졸라 서울에서 제일 잘한다는 성형외과에 가서 쌍꺼풀 수술(그것도 넓고 깊게, 그리고 기름기까지 빼고)을 한 탓인지, 내가 보기에도 내 얼굴은 서양 여자 못지않게 예뻐 보인다. 피부 색깔도 하얀 편이고 코도 작지만 적당한 높이로 오똑 솟아 있어서 남들이 보면 꼭 튀기인 줄 아는 것이다.

라고 하는 부분(마광수 1992, 17)은 흰 살갗에 대한 집착의 어떤 극단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흰 살갗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유럽보다 더한 면이 있다. 유럽에서도 이를테면 남부유럽에서는 때로 검은 살갗을 예찬하기도 하는 것이다. 로르까에게서 "검은 천사들Angeles negros"(「입씨름Reyerta」)이나 "경이로운 가무잡잡한 여인Morena de maravilla"(「성 가브리엘San Gabriel」)과 같은 표현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Lorca 1995, 84-85).

그러나 우리 문학에서는 살갗이 검은 여성이 부정적으로 그려지기가 일쑤이다. 장정일의 시 「충남 당진 여자」에서 "스물 세 해째 방어한 동정을 빼앗고 매독을 선사한" '충남 당진 여자'는 "[…] 당진 화력 발전소 / 화력기 속에 무섭게 타오르는 석탄처럼 까만 / 여자 얼굴 충남 당진여자 얼굴 그 얼굴"과 같은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장정일 1997, 60-63).

이런 흰 살갗의 작품 속 기능은 수동성이나 연약함이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사디슴sadisme적인 폭력성과도 관련될 수 있다. 흰 살갗의 여성은 부서질 것같은 연약함이나 창백한 모습으로, 심약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것은 검은 살갗을 가져, 발전소 화력기같은 '충남 당진 여자'가 "나를 범하고 나를 버린" 여자로,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두 사람이 누울 자리는 필요없다고" 말하는 적극적인 여성상으로 그려지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그리고 지극히 마초적으로 사회화된 인식 속에서 적극적 여성인 '충남 당진 여자'는 부정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흰 살갗의 여성은 긍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보이는

누군가 밖에서 문을 세 번쯤 똑똑똑, 두드렸다. 인기척이 없자, 길게 생머리를 한 여학생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담한 키에 목이 길며, 눈이 크고 깊은 여자였다.

그녀는 만지면 부서질 것같이 한없이 연약해 보였다. 그녀는 프로스펙스 운동화, 물이 약간 날아간 청바지에 고동색 통가죽 벨트, 온통 빨간 바탕에 시몬느 베이유의 얼굴이 까맣게 찍힌 티를 입고 있었다.

와 같은 묘사(박일문 1992, 40)나 윤대녕의 「銀魚」에서 보이는

그녀는 시체처럼 창백해 보였다. 그녀에게선 가을 저녁 들판의 냄새가 났다.

는 진술(윤대녕 1994, 16), 그리고 역시 윤대녕의 「국화 옆에서」에 나타난

한데 내 눈에는 그녀의 미모조빛 뺨과 […] 등이 낚싯대에 걸려 올라오는 물고기처럼 생생하게 튀어들어왔다.

이런 살갗을 통한 적극성/수동성의 환기(윤대녕 1994, 140)는, 보다 광범위하게 연구해볼 주제라고 여겨진다. 그것은 성행위 장면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윤대녕 1994, 23): 윤대녕 「銀魚」의 "시체처럼 창백한" '그녀'는 섹스 도중에 소리친다. "영원히 변치 말아줘요, 네? 내 곁에 있어줘요, 네?" '그녀'의 수동성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가령 '그녀'의 섹스는 '나'에게 종속되어 있는 양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 소리를 들어서인가. 나는 정신이 확 밝아지며 이내 몸이 얼어붙어버렸다.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들어서인가. 마침내 나는 포기해야 했고 그녀는 어쩔 줄을 몰라하며 숨이 끊기듯 베개 너머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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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이런 흰 살갗의 용모가 우리 관상법에 비춰보았을 때 그다지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내에서 출간된 몇몇 관상과 관련된 책자를 살펴보면 그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가진 통념과는 달리 대부분의 관상책은 흰 얼굴을 주로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왜냐하면 흰색은 병病이나 죽음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가령 도변정邊正은 '연분홍색'을 "건강색"으로 규정하면서, 백색은 폐결핵과 연관시키고 있다(도변정 1993, 95-96). 정현우도 "얼굴에 분홍색이 나타나면 길조"라고 규정하며, "하양이 우수와 이변"이라고 쓰고 있다(정현우 1994, 85-57). 김성헌은 "빛깔(氣色)"을 '관상의 3요소'로까지 부르며 특히 빛깔론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여기서도 백색은 "상(喪)을 입는 등 슬픔이 있고 신병으로 운이 위축되어 가난해지는 빛깔"이라고 규정되고 있다(김성헌 1992, 41-42).

3

관상이란 본래 많은 사람들이 이상理想으로 치는 용모를 좋게 묘사하기 쉽다. 그것은 또다시 이야기나 문학작품 속에 투영되어 피드-백된다. 발자끄나 스땅달이 라바터의 '관상학'을 원용했던 것처럼(설혜심 2002, 275-276), 우리 고전소설 속의 여성상은 국내의 관상서들이 으뜸으로 치는 여성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우리 고전소설에서 여성의 용모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대개는 '어디어디 땅에 이름난 미인이 있으니'나 '곱게 단장한 한 여인이 홀연히 나타나'와 같은 방식으로 여성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몇몇 작품들이 간략하게나마 묘사하는 중에 드러난 여성의 용모는 대체로 국내 관상서에서 볼 수 있는 붉은 빛 계열이다.

이옥의 「심생沈生」에서는 보자기로 얼굴을 가린 여성이 등장하는데, "돌개바람旋風"에 보자기가 걷히자 "[복]숭아빛 뺨에 버들잎 눈섭桃□柳眉"이 드러났다는 표현이 보인다(이우성·임형택 1976, 261). 또 신광한의 「안빙몽유록安憑夢遊錄」에는 "반희가 이름을 알려 오니 풍염한 얼굴은 약간 붉고, 푸른 눈썹은 산을 모을 듯하며, 가냘프고 짙은 고운 바탕은 붉은 비단보다 훨씬 나았다"는 표현이 있다(윤병로 1995, 73).

분홍빛의 혹은 붉은 빛의 얼굴과 관련한 미의식은 삼국시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설총이 「화왕계花王戒」에서 '장미'를 등장시킬 적에 "문득 한 가인佳人이 붉은 얼굴에 백옥 같은 이로써忽有一佳人 朱顔玉齒" 나타나는 것으로 묘사하는데, 여기서 이미 붉은 얼굴이 (위험하리만큼)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김부식 1997, 410).

「열녀츈향슈절가라(京板 17장본)」에서 춘향이 등장할 때도, "이때 마침 본읍 기생 춘향이 추천차로 의복단장 치레할새, 아리따운 고운 양자 팔자청산을 춘색으로 반분대 다스리고"와 같이 흔히 연분홍색으로 표상되는 '춘색'을 춘향의 색으로 삼고 있음을 볼 수 있다(설성경 1986, 146-147). 김만중의 「구운몽」에서도

팔선녀가 다리 위에 앉아 물을 굽어보니, 여러 골짜기의 물이 다리 아래에 모여 넓은 못을 이루었는데 광능땅 보배로운 거울을 새로 닦은 것처럼 차고 맑아, 푸른 눈썹과 붉은 단장(丹粧)이 물 속에 비친 모습은 마치 주방(周昉)이 그린 한 폭의 미인도 같았다.

와 같은 표현이 보인다(김만중 2003, 10).

붉은 살갗이 아름답다고 여겨졌다는 것은, 일종의 '건강미'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도변정 등의 의견과 같이 연분홍색이 "건강색"으로 여겨졌다면, 붉은 살갗은 '생산성'을 보여주는 지표index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고전소설에서 '생산성'은 삶의 의미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것은 대개의 고전소설이 "파뿌리가 되도록 해로했고 자녀도 많았다白首偕老 多産子女"와 같이 끝나는 이유가 된다. 그것은 가문을 중요시하는 문화나,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농경사회의 특성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우리 옛 문학에도 흰 살갗에 대한 예찬 또한 있다. 바깥 출입을 하지 않은 여성의 살갗이 남성들보다 흴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춘향 역시 '흰색'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춘향젼(完板 33장본)」에서는 방자가 춘향에게

추천을 할 양이면 네 집 후원에서 할 것이지 탄탄대로에 나와 […] 박 속 같은 네 살결이 백운간에 힛득힛득하니 도련님 네 태도 잠간 보고 정신이 희미하여 너를 급히 부르시니

라고 꾸짖는 부분이 있다(설성경 1986, 42-43). 그네를 뛰는 춘향의 모습이 이몽룡에게는 선녀와 같이 비쳤던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 문학에 있어서 여성의 아름다움은 결코 흰색에 있지 않았다. '미인'이 때로 흰 살갗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것은 붉은 바탕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안정복安鼎福의 가전체소설假傳體小說 「여용국전女容國傳」에서는 동원청銅圓淸(거울)의 열다섯 신하를 설명하면서 붉은 색과 흰색을 "태부(太傅)인 주연(朱鉛;연지), 소부(少傅)인 백광(白光;분) 太傅朱鉛少傅白光"의 순서로 언급하고 있다(민제 1996, 76). 여기서 바탕되는 빛깔이 붉은 색임은 명백하다.

4

한데, 이것은 서양과는 정반대되는 모습이다. 서양에서는 중세 때부터 흰색이 아름다움의 색으로 통했다. 하의징아에 따르면, 토마스 아퀴나스는 '완전성과 완벽성', '정확한 비례와 조화'와 함께 '명도'를 아름다움의 세 조건으로 들었다(Huizinga 1988, 328-331). 또 샤르트뢰라는 사람은 아름다움을 빛과 동일시했고, 프로아사르라는 이는 함대와 금속무기에 반사된 햇빛에 감탄했다. 그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빛을 아름답게 여기는 모습이 보인다. 아퀴나스를 필두로 함에서 알아챌 수 있듯이, 그것은 기독교를 그 배경으로 한다. 때문에 그때의 색채 구분은 가치판단을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런 가치판단은 미인을 가려내는 기준으로도 작용하여 "밝고 푸른 눈, 눈처럼 하얀 피부, 그 피부를 돋보이게 하는 붉은 볼" 등의 틀로 고정되었다(설혜심 2002, 156). 여기서 볼의 붉은 빛은 다만 "[하얀] 피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르네상스 시기에는 여성의 아름다움이 글로 정립된다. 오까다 아쓰시岡田溫司가 옮긴 아뇨르 피렌추올라의 「여성의 미에 대한 대화」와 페데리코 루이지니의 「아름다운 여성의 서」에서 그것은 명백하게 드러난다. 피렌추올라는 이마는 "넓고 높고, 순백으로 빛[나]"는 것을, 목덜미는 "둥글고, 가녀리고, 희고 얼룩이 없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하고, 또 "가슴은 특히 희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볼에 대해서는,

이마보다 약간 덜한 흰빛이 바람직하다. 즉, 조금 다소곳한 빛남이다.

주위는 눈처럼 순백이지만 흡사 구릉처럼 차츰 볼의 살이 부풀어오름에 따라 피부색(incarnadine)을 늘려간다. 그리고 정상에 이르러 흡사 날씨 좋은 날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 남는 여광(餘光)처럼, 붉은 기를 띠어가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그것은, 선홍색으로 물든 순백에 다름아니다.

고 규정하고 있다(岡田溫司 1999, 68-73). 여기서도 흰색이 중심이 됨은 말할 것도 없다. 여성의 얼굴은 여전히 순백이되, 다만 "선홍색으로 물든 순백"일 뿐이다. 루이지니는 이마는 "넓고 높고 빛나며, 그리고 신비로움을 담고 있"어야 하며 목덜미는 "그 순백색이 백조, 백합 또한 눈보다도 뛰어날 만큼", 또 "젖빛보다도 더욱", 그리고 "상아처럼" 하얗기를 바랬다. 가슴은 "라우라의 가슴처럼 순백인 것이 좋다"고 했다. 루이지니에게서는 볼에서도 그다지 붉은 빛을 찾을 수 없다. 루이지니는 이상적인 볼을

매끈하고 흰 젖과도 비슷하며, 부드럽고 매끄럽다. 그렇지 않으면 때로는 이른 아침에 피어나는 장미처럼 산뜻한 색채와도 견줄 수 있는 볼이 바람직하다.

흰 백합, 붉은 장미, 담홍색 히야신스, 그리고 순백의 쥐똥나무를 찾아볼 수 있을 듯한 볼이 바람직하다.

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岡田溫司 1999, 78-82).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 이후에도 이러한 규정은 여전히 효력을 발휘했다. 푹스에 따르면 여전히 "창백한 얼굴이 아름답게 여겨졌으므로 18세기에 들어오자 백분을 머리에 뒤집어쓰는 것이 유행했다."(Fuchs 1987, 7) 설혜심은 "얼굴에 백분을 바르면 사람들은 언제나 한결같은 젊은 얼굴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믿었다"고 지적하고 있다(설혜심 2002, 243). 그것은 1715년 당시에 발간된 『숙녀 사전』이라는 책에서

무슈, 즉 애교점은 검은 호박직(琥珀織)을 크고 작게 여러가지 모양으로 자른 것이다. 귀부인들은 그러한 것을 얼굴이나 유방 위에 붙여 살갗이 더욱 하얗게, 더욱 귀엽게 보이도록 했다.

고 쓰고 있는 데서 증명된다(Fuchs 1987, 7). 그러나 여기서도 우리가 주목할 것은 "화장한 그림들의 얼굴빛은 건강한 붉은빛을 띤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얼굴은 최대한 창백해야 했다."(설혜심 2002, 243) 주지하다시피, 그것은 우리 문학에서 보이는 육체적으로 건강해보이는 붉은 얼굴의 여성상과는 다르다.

5

그러면 언제부터 우리 옛 문학의 아름다움이 전혀 보이지 않게, 서구적 미의 코드가 덧칠해진 것일까. 그것은 전체적으로 거의 '새것 콤플렉스'라는 용어로 환원될 수 있을, 우리의 근대 초기인 것으로 짐작된다. 근대문학의 효시로 드는 이광수의 『무정無情』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이광수 2003, 703-704):

하로밤 비에 모든 것을 일허바리고 발발 떠는 그네들이 엇지보면 가련하기도하지만은 또 엇지보면 너머약하고 어리석어보힌다 […] 져대로 내어버려두면 맛참내 북해도에 아이누가 다름업는죵자가되고말것같다

져들에게 힘을 쥬어야하겟다 지식을 주어야하겟다 그리해셔 생활의 근거를 안젼하게 하여쥬어야하겟다

「과학科學! 과학!」 하고 형식은 려관에 돌아와 안져서 혼자 부르지졋다.

나라를 구한답시고 각기 동경으로 미국으로 유학가던 길의 대화다. 끊임없이 구미歐美를 좇았던 근대 초기에 보이는 '2등국' 백성의 열등의식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말하자면 일본에서도 때로 '토인土人'이라고 지칭되는 '아이누족'처럼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거기에는 벌써 '구미열강-일본-조선-토인/아이누'라는 도식이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설정 속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관념도 그대로 받아들였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지스트 시인 정지용의 시 「우리나라 여인들은」에서 붉은 빛과 흰빛이 섞여있음을 볼 수 있다(정지용 1988, 70):

여인들 은 山果實 처럼 붉 도다
[…]
여인들 은 팔구비 가 둥글 도다. 이마 가 희 도다.

또, 이광수만 하더라도 형식이 선형을 맨 먼저 대하는 장면에서 선형을

고개를 슉엿스매 눈은 보이지안이하나 난대로 내어바린 감은 눈셥이 하얏코 넓줏한 니마에 뛰렷이 츈산을 그리고 기름도 아니바른 깜한 머리는 언졔나 비셧는가 허트러진 두어올이가 볼그레 복송아 꽃같흔 두뺨을 가리어 바람이 부는대로 하느젹하느젹 꼭 다믄 입슐을 때리고 깃좁은 가는 모시적삼으로 혈색조흔 고은 살이 몽롱하게 비쵸이며 무릅우헤 걸어노흔 두손은 옥으로 깎근 듯 불빗에 다히면 투명할듯하다

고 묘사하고 있다(이광수 2003, 47). 박태원의 「진통」에서는 우리나라 관상학 서적들이 그것 때문에 백색을 부정적으로 보았던 그 폐병이 오히려 아름다움의 코드로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박태원 1987, 153):

[…] 순간에 제몸이 절망의 구덩이에 빠지는 듯도 싶었으나, 번개같이 여자의 그렇게도 투명한 피부를 생각하고, 그의 아픈 페를 생각하고

이러한 여성 이미지는 이상에게 와서는 더욱 심화되어 소설 「종생기終生記」에서는

저의 最後까지 더럽히지 않은 것을 先生님께 드리겠읍니다. 저의 히멀건 살의 魅力이 이렇게 다섯 달 동안이나 놀고 [있]는 것은 참 무었이라고 말할 수 없이 아깝습니다.

로(이상 2001, 159), 다시 소설 「날개」에서는

十八가구에 각기 밸너들은 송이송이 꽃들 가운데서도 내 안해는 특히 아름다운 한 [떨]기의 꽃으로 이 함석 집웅 밑 볓 안 드는 지역에서 어디까지든지 찬란하였다.

로(이상 2001, 71-72), 시 「狂女의 告白」에서는

蒼白한여자
얼굴은여자의履歷書이다. […] 온갖밝음의太陽들아래여자는참으로맑은물과같이떠돌고있었는데참으로고요하고매끄러운表面은조약돌을삼켰는지아니삼켰는지항상소용돌이를갖는褪色한純白色이다.

와 같이 묘사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이상 1978, 43). 『李想詩全作集』을 교주校註한 이어령은 「狂女의 告白」의 "蒼白한여자"에 "小說<失花>에서 姸에 대한 묘사에서도 나타나 있듯이 女子의 蒼白性은 性的인 것, 그리고 그 秘密을 나타내는 이미지로 많이 쓰이고 있다"고 주석을 달고 있다(이상 1978, 43). 이와 같은 모습은 서구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과 함께, 전근대사회의 생산지향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반면, 같은 근대작품이라도 농촌을 묘사한 이광수의 『흙』에서는, 물론 흰 살갗의 여성도 아름답게 묘사되지만 그와 동시에, 검은 살갗의 여성도 주인공의 눈에 아름답게 비쳐지는 것을 볼 수 있다(이광수 1990, 5):

「어쩌면 유 순이가 그렇게 크고 어여뻐졌을까.」

하고 숭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럴 때에 숭의 앞에는 유 순(兪順)의 모양이 나타났다. 그는 통통하다고 할 만하게 몸이 실한 여자였다. 낯은 자외선 강한 산지방의 볕에 글어서 가무스름한 빛이 도나 눈과 코와 입이 다 분명하고, 그리고도 부드러운 맛을 잃지 아니한 처녀다. […] 그는 맨발이었다. 발등이 까맣게 볕에 글었다. 그의 손도, 팔목도, 목도, 짧은 고쟁이와 더 짧은 치마 밑으로 보이는 종아리도 다 볕에 글었다. 마치 여름의 햇볕이 그의 아름답고 건장한 살을 탐내어 빈틈만 있으면 가서 입을 맞추려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이것은 배경이 도시가 아닌 만큼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농촌에서 보자면, 박태원이나 이상이 주목했던 여성은 '불모의 여인'으로 보일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광수의 『흙』은, 그러므로 근본적 의미로는 서구화인 도시화가 얼마나 흰 살갗에 집착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여기'서도 여전히 작동하는 오리엔탈리즘이다. 시쳇時體말로 '쭉쭉빵빵'이라고 하는 희고 늘씬한 '미녀'들이 TV와 거리를 여전히 오르내리는 한에서는 말이다. 우리의 감각은 거의 본능적이라고 여겨질만큼 빠르게 흰 살갗에 반응한다. 심지어 한때는(가끔은 지금도) '최루성' TV드라마나 영화의 결말이 항상 백혈병인 적도 있었다. 사람들은 '여주인공의 비극'에 눈물을 뿌리면서도 그 아름다움에 도취했던 것이다. 가령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에서의 초희의 이미지나 「가을 동화」]의 은서의 이미지가 사회적으로 어떤 반향을 일으켰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듯 집요한 흰 살갗에 대한 집착이 실은 서구적인, 어떤 면에서는 서구보다도 더 서구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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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우리는 다시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인 붉은 빛과 연분홍빛의 미학으로 되돌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흼과 늘씬함의 잣대만으로 여성을 파악하는 것이 식민주의의 잔재라면, 붉은 빛과 연분홍빛으로 여성을 규정짓는 것은 내셔널리즘의 잔재다. 내셔널리즘 자체를 고찰하는 것은 여기서 논외로 하더라도, 식민주의 자체가 실은 내셔널리즘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내셔널리즘이 가진 허구성을 우리는, 긴 설명 없이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흰 얼굴이 아름답고 섹시해보이는가? 아무리 해도 그렇게 보이는가? 그렇다면 아름답다고 생각하라. 거기에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 다만 아름답다고만 생각하라. 그리고 결코 그것을 '사랑'이라고 이름붙이지 말라. 우리 고전 소설이나 현대 문학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허망하게 사랑을 구하는지 보라. 거의 기계적이지 않은가? 연분홍빛 얼굴, 하얀 얼굴이 보이면 거의 기계적으로 반하지 않는가? 기계적인 '반함'에 앞서 한 번만 '생각'해보라. '愛'와 '思'가 한때 한글자였다는 것과, 사랑이 '思量'에서 왔다는 설을 다시 한 번만 생각해보라. 계속해서 주입된 가치관 속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한 번 아름다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보겠는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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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의 사회도 근대 이전의 사회만큼이나 소수자가 억압된 사회이다. 여기서 근대가 시대를 가르는 기준이 되는 것은, 그 시기가 스스로를 '이성理性의 시기'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는 이성에 윗점을 찍으면서 그것이 중심이 되면 '인권'과 같은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고 믿는다. 꽁뜨 이후의 이성중심주의 혹은 과학주의는 '사실fait'을 중요시하게 되고, 필연적으로 '실증성'을 강조하게 된다.

그것은 역사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실증주의자들은 "역사가들이 도달한 결론은 자연과학자들이 도달한 결론과 마찬가지의 객관성을 지녀야 한다고 믿고 있"어 일종의 '과학적 역사관'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차하순, 62). 물론 학자가 사료를 접했을 때에는 '사료검증'을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상식에 속하는 것이고, 김영한 교수도 같은 글에서 "실증사학과 실증주의 사학과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하며 "우리나라에서 흔히 '실증사학'이라고 말할 때의 '실증'은 […] 사료와 문헌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라는 단순한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채택하는 입장이 '문서사료 중심주의'(우에노 찌즈꼬, 158; 앞으로 쪽수만 기입)인 만큼 '실증사학'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차하순, 61, 276-277).

그러나 실증주의가 붙잡고 있던 '사실'이라는 것이 실상은 유럽·백인·남성 위주로 편향된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글쓴이 자신이 말하고 있듯이 "역사란 항상 현재로부터의 '재심'의 대상"(우에노, 1)이므로 "일단 '정사(正史)'나 '정설(定說)'이 씌어졌다고 해도 그것으로 마무리되는 일은 없"(우에노, 2)다. 상대주의사관의 입장에서 보면 '원래 있던 그대로'의 역사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록이니 사료니 하는 것도 결국은 생기했던 사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기보다 […] 영상이나 관념을 정신 속에 가졌던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차하순, 127). 바로 이런 점에서 마이너리티의 역사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지점이 상대주의이다. 글쓴이 스스로도 "니힐리즘이라기 보다는 그렇기 때문에 소리 높이는 것을 단념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마이너리티의 권한을 위한 주장"(우에노, x)이라고 역설力說하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마이너리티는, 제목에서 나타내고 있는 바대로, '민족' 혹은 '여성'으로 환원되어버리는 '나'를 체험하는 사람들이다.

마이너리티의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했다. 글쓴이는 I장에서 '전후사의 패러다임 전환', '여성사의 패러다임 전환' 등이 절을 따로 마련해 '사학 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고찰했다. 또 II장에 와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패러다임들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그 안의 가부장적 요소들을 정밀하게 지적하는 작업을 해냈다. 그러나 이러한 패러다임들을 글쓴이가 살피면서 느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페미니즘은 역사상 국민 국가를 초월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우에노, vi)는 것이었다.

'국민 국가nation state'라는 개념은 역시 근대의 소산으로 '하나의 네이션nation'을 전제하고 있다. 민족이나 국민에 대한 관념은 절대로 마이너리티를 고려하지 않으므로 그 안에서 모든 마이너리티는 전체 속으로 귀속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는 본질적으로 가부장제와 그 패러다임을 같이 하고 있으므로 여성의 정체성은 더욱 억압된다. 가령, '위안부' 피해 여성의 개인청구권을 '국가'가 '남편이나 부친'의 역할을 하여 '가해자'와 합의했다는 것을 이유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우리는 국민 국가가 가부장제의 국가적인 확대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성'이야말로 근대=시민 사회=국민 국가가 만들어 낸 바로 그 '창작'이라고. '여성의 국민화', 즉 국민 국가에 '여성'으로 '참가'하는 것은 그것이 분리형이든 참가형이든 '여성≠시민'이라는 배리를 짊어진 채 국민 국가와 운명을 함께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우에노, 95)는 주장이나 "개인 청구권 논리는 국가가 개인(의 이해)을 대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국민 국가를 초월하는 성질을 갖는다. 따라서 피해 여성과 그 지원 그룹이 싸워야 할 상대는 동시에 한일 양국의 가부장제이기도 하다"(우에노, 108)는 글쓴이의 지적은 이에 대한 부연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글쓴이가 "근대·가부장제·국민 국가라는 틀 안에서 '남녀 평등'이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우에노, 94)다고 했을 때, 그는 이음동의어를 세 번 이야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민족'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개념이다. 르낭(64-79)은 민족 개념이 종족, 언어, 종교, 이익공동체, 지리의 어느 것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단언하며 조목조목 그 반례를 든다. 르낭은 민족을 만들어진 것이라고 단언한다(81).

저는 조금 전에 '고통을 함께하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함께하는 고통은 기쁨보다 훨씬 더 사람을 단결시킵니다. 민족적인 추억이라는 점에서 애도가 승리보다 낫습니다. 애도의 기억들은 의무를 부과하며, 고통의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민족은 이미 치러진 희생과 여전히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 희생의 욕구에 의해 구성된 거대한 결속입니다.

비록 르낭은 일단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긍정하고 이를 이용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 개념을 고찰하고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민족이라는 개념이 순간순간 변하는 의지와 관련되어 있음을 지적한 것은 뛰어난 의견이라 할 만하다.

강상중(160-163)도 민족과 에스니시티를 다루는 자리에서 "이들 '인민'의 형태가 지닌 공통점은 '과거의 기억'이라는 정체성"이라고 발언하고 곧 이를 발리바르의 '상상의 기억imaginary memory',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월러스틴의 '과거의 기억', 그리고 사이드의 '심상역사imaginative history'와 연관시킨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민족 혹은 국민의 개념이 게마인샤프트적인 모습을 지닌다는 것이다. 국민 국가는 의심할 수 없는 근대의 산물인데, 그 전제가 되는 네이션은 합리성을 강조하는 근대에 걸맞지 않게 게마인샤프트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근대가 지지하는 이성중심주의 혹은 과학중심주의가 얼마나 허구에 기초하고 있는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근거가 될 것이다.

모든 이데올로기는, 그것이 이데올로기인 한은 절대로 보편적일 수 없다. 민족 혹은 국민에 대한 이데올로기도 마찬가지로 절대로 보편적이지 않다. 이데올로기는 필연적으로 마이너리티를 억압하는 기제로서 작용한다. 임지현(79)은 한영우와 소설가 이인화의 민족주의가 "유신적 민족주의와 에토스를 같이함으로써 박정희의 민중 억압적 조국 근대화론에 대한 역사적 정당화에 기여하고 있다"며 민족주의 담론에서 '민중'이 배제되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중'이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에서 배제된 것이 아니라 '민족'이라는 개념 아래 복속되는 형태로 배제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근대화 시기에 서양인들이 조선 여성을 교육하는 것에 대한 조선 남성의 반발은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김진송(207)은 "「서양인의 조선여자교육방침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라」에서 오천석은 서양인이 조선여자를 교육하는 것에 대하여 '감사感謝의 염念과 수치羞恥의 염念'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고 적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가 "'민족의 치욕'이라는 가부장제 패러다임"(우에노, 103)으로 가장 먼저 해석된 것은 텍스트에도 제시된 것이지만, 서양인의 조선여성교육까지도 '수치의 염'을 느껴야 하는 가부장제의 패러다임은 근대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세계관을 주지는 않는다는 뼈저린 인식을 가능하게 해 준다. 물론, 이광수의 『무정』에서 여성해방의 중요한 일단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것도 결국은 "여성을 여성적인 것으로부터 거세시키면서 끈내 개화 사상의 이념 구현의 대행자로서만 장치시키려 들고 있는 것"이며, 역시 남성 입장에서 여성에게 교육을 '주는' 것이다(이재선, 229). 근대화 조선 남성들이 가졌던 이런 의식들은 민족 속에 여성을 귀속시키면서 동시에 혹은 귀속시킴으로써 여성을 배제했던 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여성은 '근대주의'를 거부해야 하고 그 소산인 국민 국가를 초월해야 하는 것이다. 글쓴이도 "페미니즘은 국가를 초월해야 하며, 초월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우에노, 93)다고 쓰고 있다. '페미니즘이 국민 국가를 초월해야 한다'는 명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두 국민 국가간의 패러다임이 모두 가부장제 패러다임의 변종이거나 최소한 가부장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던 점에서 명백해졌다. 문제는 '페미니즘이 국민국가를 초월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부분인데, 텍스트에서 우리는 희망적인 언설들을 많이 볼 수 있게 된다.

글쓴이는 "더 이상 누구도 "자매 연대의 전지구화Sisterhood is global"라는 낙천적 보편주의 입장에 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가진 상징성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페미니즘이 마이너리티로서의 여성에 대한 연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나 억압받는 자 모두를 대변하는 모습으로 확대될 수 있다면 '국민국가의 초월'은 더 이상 구호로서만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여성들은 그 일을 해내고 있다. WAW(Women Against War)는 최근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들』이라는 책을 냈다.(
링크:일다로ildaro) 그들은 "그동안 전쟁이나 평화, 국가에 대한 이야기들은 언제나 남성의 것이었다. 여성과 소수자의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목소리들은 없었던 것으로 여겨지거나, 흩어져 버렸다."며 여성의 눈으로 전쟁을 바라보는 것의 중요함을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여성'과 '소수자'가 혼용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에코페미니즘은 생태적인 것에 대한 여성적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나희덕(56)은 "생태적 지향을 지닌 시들조차 계몽적 한계로부터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 가운데서도 "근대적 의식의 견고한 외피를 뚫고 내려가 자신의 무의식 속에서 새로운 현실을 발굴해낸 여성시인들의 활동은 그 한계를 넘어설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할 만하다"며 에코페미니즘과 관련해 여성생태시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더구나 "'여성'의 해체"를 주장하는 페미니즘은 그 자체로 "'남성'의 해체와도 같은 것이다."(우에노, 96) 왜냐하면 "'위안부' 문제가 여성의 '인권 침해'라는 언설로 구성된다고 한다면 '병사'로서 국가를 위해 살인자가 된 것 또한 남성의 '인권 침해'라고 입론하는 것도 가능"(우에노, 207)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의 궁극적인 목적은 다만 '남녀동권주의'가 아니라 '나'의 해방이다. 나를 구성하는 것은 "'국민'도 아니고 '개인'도 아니다. '나'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젠더나 국적, 직업, 지위, 인종, 문화, 에스니시티 등 각양 각색으로 존재하는 관계성의 집합이다. '나'는 그 어느 것도 피할 수 없지만 그 어느 하나만으로도 환원되지 않는다."(우에노, 205)

글쓴이는 I장과 II장에서 2차 대전 당시의 일본내 페미니즘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국민 국가와 젠더를 분석하였다. 그리고 III장에 이르러 ''기억'의 정치학'을 주장하면서 실증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과 상대화를 시도하였다. 하지만 글쓴이도 인식하고 있듯이 상대주의는 늘 니힐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모든 역사가 진실일 수 있다면 모든 역사가 허구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다면 다수자의 입장이 항상 더 힘이 셀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이 책에서 III장은 가장 큰 공헌이기도 하고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다.

역사적 상대주의만 가지고는 다수자의 입장이 더 셀 수밖에 없다면, 페미니즘은 "정사(正史)라는 이름의 남성사"(우에노, 185)를 오히려 뒤집어엎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뒤집어엎는다'고 할 때의 근거는 또다시 모호하다. 이성과 합리성으로 그것이 성공할 수 있을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그것은 결국 또다시 근대에의 종속일 수밖에 없다. 국민 국가 안에서의 페미니즘이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 이 책 I장의 진단은 정확하지만, 이 책 이후에도 페미니즘은 여전히 딜레마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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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Referenced Web Site
일다로



내셔널리즘과 젠더
우에노 치즈코 지음 | 이선이 옮김/박종철출판사

Posted by 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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