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말 '쟝르genre'는 본래 다만 '종류'를 뜻하는 말이다. 이를테면 "J'aime ce genre de fille."라고 하면 "나는 이런 유의 여자를 좋아합니다."라는 뜻이다. 프랑스말 '쟝르'가 현재의 "문예 작품의 형태상의 분류"라는 뜻을 가진 국제어, 장르로 더 많이 인식되면서 말의 쓰임은 상당한 정도로 변한 셈이다. 그러나 프라이의 지적대로라면 "장르의 비평이론에 손을 댈 때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기고 간 그 이론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음을 발견한다."(64쪽) 우리가 이 지금 '장르의 이론'을 보아야 하는 이유는, 세미나 꺼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르의 이론이 프라이의 비평이론의 씨눈이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의 문장에서 홀로 이름씨固有名詞를 지우고 그 문장을 일반화시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도 주목에 값한다. 유기룡은 국어국문학회가 엮은 『국어국문학과 구미이론』에 실린 「신화문학론의 수용과 그 과제」의 둘째 장章에서 "이 신화적 원형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신화 가운데서도 가장 전형적 신화가 문학의 관례인 장르를 이루게 된다는 관점에서 문학 장르의 이론까지 확대하게 된다."고 적고 있다.

비평을 스스로 선 인문과학의 하나로 세우기 위한 프라이의 의도는 원시적인, 소박한 귀납법에서 이른바 '귀납적 비약'을 거쳐 보다 연역적인 면모를 갖추어야 한다는 데까지 나아간다.(67-69쪽) 그는 가장 연역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쓸모있는 수학을 예로 들어 "수학에서 우리는 세 개의 사과에서부터 '3'으로, 또 직사각인 밭에서부터 '작사각형'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653쪽)이라고 말한다. 하므로 그가 『비평의 해부』의 도식적인 성격을 무릅쓰고 "비평에도 분류가 필요하다"(92쪽)고 말하는 데에까지 이르면 그의 비평이론에서 '장르의 이론'이 얼마나 높은 위치를 갖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이상섭은 『문학 연구의 방법』의 「신화 비평의 방법」의 둘째 마디節에서 "신화 비평은 최대의 중요성을 부여하는 종류의 개념, 즉 쟝르(genre=종류)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그러나 역사주의에서 말하는 쟝르의 개념과는 무척 다르다. <쏘넷>, <2막극>, <단편소설> 등등 역사적 쟝르는 단지 외형적 관례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라고 풀이한다.


프라이는 스스로의 '장르의 이론'을 '수사비평'이라고 이름했다. 그 점 말해주는 바 크다. 그의 장르론은 "기본적인 제시의 방식에 의거하고 있"(470쪽)다. 그러나 네 장르―에포스, 산문(즉, '픽션'), 극, 서정시―를 설명할 때 그는 리듬 분석으로 일관한다. 아마도 리듬이 '제시의 기본형식radical of presentation'과 반드시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 옛 문학과도 얼마쯤 관련되어 있다. 상허尙虛 이태준은 『문장강화』 제1강의 「이미 있어온 문장작법」에서 "활판술이 유치하던 시대에 있어서는, 오늘처럼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 자연히 한 사람이 읽되 소리를 내어 읽어 여러 사람을 들리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소리를 내어 읽자니 문장이 먼저 낭독조로 써지어야 할 필요가 생긴다. […] 쓰는 사람은 내용보다 먼저 문장에 난조투어(亂調套語)를 대구체로 많이 넣어 […] 아뭏든 낭독자의 목청에 흥이 나도록 하기에 주의하였을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3・4, 4・4조 낭독조의 우리 옛 문학이 투박하나마 특수한 한 예例가 되어주는 바, 리듬과 '제시의 기본형식'의 관련성은 시인・지은이作者와 듣는이聽者/聽衆・읽는이讀者의 관계양상에 의지한다고 프라이는 보고 있다. 극의 경우는 "작자가 청중의 눈으로부터 숨어 있"고, 에포스에서는 "작자가 직접 청중과 대면하며, 작중의 가상적인 인물은 숨겨"지고, 씌어진 문학記錄文學/written literature(즉, '픽션')에서는 "작자도 작중 인물도 독자로부터 숨겨져 있"(이상 473쪽)고, 서정시는 "청중이 시인으로부터 숨겨진 경우"(474쪽)라는 식이다. 장르들 사이에서 보이는 중요한 변화는 시인・지은이의 듣는이・읽는이에 대한 태도이다. 그 태도에 따라 에포스는 '계기되풀이recurrence의 리듬', 산문(즉, '픽션')은 '지속continuity의 리듬', 극은 '데코럼걸맞음decorum의 리듬', 서정시는 '연상association의 리듬'으로 갈리는 것이다.

그것은 장르에 따라 글투文體가 흔히 바뀌는 모습에서 잘 볼 수 있다. 뷔퐁Buffon이 "글은 사람이다Le style est l'homme même."라고 말했을 때, 그는 글투의 중요함을 말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프라이는 "장식적인 변론과 설득적인 변론"을 수사修辭가 처음부터 가진 두 뜻이라고 말하면서 "장식적인 수사는 문학 자체―그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가설적인 언어구조라고 우리가 일컫는 것―로부터 분리될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장식적인 수사야말로 시의 렉시스, 즉 말의 결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생각된다."라고 높이 추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학적인 문학 연구로서의 비평이 결국은 '장르의 이론'으로 나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 같다. (장식적) 수사는 리듬과 가장 큰 관계를 갖는데, 그 수사가 문학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면 문학 연구에서 리듬의 연구는 무척 큰 범위를 가질 것이다. 그리고, 리듬은 장르와 연관되므로 문학 연구는 장르와 관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운문과 산문의 관계에 있어서도 셰익스피어가 하층신분의 등장인물은 산문으로 말하게 하고 상층신분 등장인물은 운문으로 말하게 하고, 상층신분 등장인물이라도 술에 취해 있을 때나 정신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에는 산문으로 말하게 하고 있다고 유종호가 「스타일 분리에서 혼합으로」의 '걸맞음' 항목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시극詩劇이라는 장르와 엮이어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문학에서의 글투를 중요시하여 리듬을 강조한다고 했을 때, 음악적인 면은 그런대로 풀리겠지만 실제 문학이 갖고 있는 시각적(미술적)인 면은 어떻게 풀이될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의 여섯 요소'에서도 영어로는 spectacle로, 우리말로는 장경場景 또는 영상으로 옮겨지는 옵시스ὄφις가 있음에도 프라이는 이에 대해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것 같다. 다만 "고전시에서는 음의 패턴 즉 음의 장단은 반복적인 요소이며 따라서 시의 멜로스의 일부였는데, 현대에서 그것은 옵시스의 일부가 되고 있다"고 한 번 그것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이며, 그나마도 근거는 함께 쓰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또 프라이가 말하고 있는 옵시스의 리듬은 무엇일까.

프라이의 이론이 도식적이라는 것은 그 비판자들은 물론이고 프라이 스스로도 인정한 바이다. 사실 연구를 위해서는 얼마쯤 추상화와 도식화를 피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도식화가 비판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은, 그 도식에서 벗어난 사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준오는 그의 유고집 『문학사와 장르』의 「원형적 방법과 다원적 체계 시학」의 둘째 장章에서 "토도로프는 프라이의 장르론을 '이론적 장르theoretical genre'라고 규정하고 그의 이론의 연역적 성격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 토도로프에 의하면 장르는 순전히 사변적으로 연역적으로 규정된 이론적 장르의 개념과 구체적 작품을 관찰한 결과로서 귀납적으로 규정되는 '역사적 장르historical genre'라는  두 개념이 있다"는 말로 일면 프라이의 한계를 지적했다.

또한 리듬에 관해서도, 김준오 역시 지적한 바이지만, "운문과 산문의 차이가 그대로 장르의 구분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471쪽)고 말하고 있으면서도 에포스를 결국 운문일 수밖에 없는 '되풀이의 리듬'으로 설명하고 '픽션'을 산문이기가 쉬운 '지속의 리듬/의미의 리듬semantic rhythm'으로 설명하는 것은 그의 이론의 혼란된 면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픽션'이라는 말로 가리키기도 하고 때때로 '기록문학'이라고 일컫기도 하는 "서적을 통해서 독자에게 이야기를 거는 장르"(472쪽)를 '산문'이라고도 바꾸어 쓰고 있음을 보아도 그렇다.


프라이가 도식적이라는 것은, 또다른 뜻으로서 그가 형식주의적이라는 뜻도 될 것 같다. 그가 '서술적 작품'과 '주제적 작품'을 나누고는 있지만 실제로 주제에 대해 깊이 파고드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문학에서 큰 부분을 갖는 상상력과의 관련성은, 원형상징archetype을 다루는 신화와의 관련성에도 불구하고, 프라이의 『비평의 해부』와 그 '장르의 이론'의 논지가 거의 갖지 못하고 있는 부분인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표면적으로만 그런 것일까, 실제로도 그런 것일까. 만약 실제로 그런 것이라면 「도전적 서론」에서 우려한 대로 비평은 문학과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엉뚱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네번째 에세이, 「수사비평: 장르의 이론」만을 대상으로 한 글입니다.



덧말> 프라이가 "아리스토텔레스도 『시학』에서 렉시스의 문제에 이르게 될 때, 이 문제는 수사학에 속하는 것이 한층 더 적당하다고 말하고 있다."(467쪽)고 한 부분은 오류인 것 같다. 천병희가 옮긴 『시학』의 6장에서는 "제 3은 사상이다. 사상이란 상황에 따라 해야 할 말과 적당한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대사에 관한 한, 이 능력은 정치학과 수사학의 연구분야에 속한다."(1450b)고 하고 있으며 19장에서는 "사상에 관해서는 «수사학»에서 말한 바를 여기서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자. 왜냐하면 사상에 관한 연구는 시학보다는 수사학의 연구분야에 속하기 때문이다."(1456a)라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보다 수사학에 적합하다고 말한 것은 렉시스가 아니라 디아노이아이다.

프라이가 464쪽에서 밝힌, 아리스토텔레스가 섬긴 비극의 여섯 요소는 뮈토스, 에토스, 디아노이아, 멜로스, 렉시스lexis/言辭, 옵시스인데 천병희는 이것을 플롯, 성격, 사상, 노래, 조사措辭, 장경으로 옮기고 있다. 보다 확실하게 말하자면, 천병희는 그가 옮긴 『시학』 52쪽 본문 아래의 옮긴이 주註에서 "조사의 원어는 λέξις인데 대부분의 영역본에서는 「diction」으로 번역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구텐베르크 기획(http://www.gutenberg.net/)' 에서 새뮤얼 버틀러Samuel Butler가 영어로 옮긴 Poetics를 찾아봐도 6장의 것은 "Third in order is Thought,--that is, the faculty of saying what is possible and pertinent in given circumstances. In the case of oratory, this is the function of the Political art and of the art of rhetoric"이라고 되어 있고 19장의 것은 "Concerning Thought, we may assume what is said in the Rhetoric, to which inquiry the subject more strictly belongs."라고 되어 있다.


비평의 해부
노스럽 프라이 지음, 임철규 옮김/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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