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7.08.23 국어 교과서 조심!
  2. 2004.08.06 체계적인 독서방법 가르쳐야
  3. 2001.05.21 "보다 나은" 교육개혁을 위하여
“국어교과서, 정권정당화 수단으로 이용돼” : 책 : 문화 : 뉴스 : 한겨레

지금 초등학교 5학년 국어 교과서에는 예전 같으면 좀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 두 편이나 실려 있다. 하나는 1학기 교과서에 실려 있는 '우리 집 우렁이 각시'라는 글이고, 다른 하나는 2학기 교과서에 실린 '엄마는 파업 중'이라는 글이다. '우리 집 우렁이 각시'는 평소 일상 속에서 권위적이었던 아버지가 실직한 이후 가족들 몰래 집안일을 한다는 내용이고, '엄마는 파업 중'은 집안 일이 엄마에게만 떠맡겨지자 엄마가 집 뒤뜰의 나무 위에 올라가 파업이라며 시위를 한다는 내용이다. 어른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쉽게 깨기 어렵고, 이야기를 꺼내기도 어려운 성 역할에 대한 내용과 주부 파업에 대한 내용이 눈길을 끈다. 아마 김대중 정부(국민의 정부)와 노무현 정부(참여 정부)의 등장이 교과서 필진들에게 미친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어쨌거나, 주부의 역할을 포함한 성 역할 고정이라는 문제점을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국어 교과서는, 사회나 과학 교과서와는 달리 기의signifié보다는 기표signifiant가 더 강조될 수밖에 없다. 언어학적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회나 과학은 흔히 '암기 과목'이라고 불리는 만큼 외도 될 만한 사실fait만을 적어야 하므로 그 내용인 기의에 방점이 찍힌다. 그 기의가 사회나 과학 교과서의 학습 목표인 셈이다. 반면, 국어 교과서는 학습 목표에 따라 (이론적으로) 아무 글이나 실어 놓아도 학습이 가능하다. 가령 글을 발단-전개-절정-결말로 나누는 요령을 배우는 것이 학습 목표라고 했을 때, 해당 단원에는 이문열이나 이인화의 소설부터 황석영의 소설까지 실을 수 있고, 마광수, 장정일, 또는 사드나 마조흐의 소설이라고 실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소설로도 글을 단락을 나누는 방법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어 교과서는 지문의 완성도보다는 지문의 가치나 교육성, 정치성을 소중히 여긴다. 그런데 여기서 정치성은 또 그렇다 하더라도, 가치나 교육성을 따지는 것에 상존하는 문제는 쉽게 간과된다. 이것들은 상대적인 것이라 보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기준이 없다는 것은 권력에 이용당하기가 그만큼 쉽다는 뜻이다. 위에서 언급한 '엄마는 파업 중'이라는 동화는 보기에 따라서는 '교육상 부적합'하다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 공산당에 저항하다 죽은 이야기는 어떤 사회에서는 이데올로기 문제와 폭력성 문제로 교육상 부적합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또 (과거의 한국과 같은) 어떤 사회에서는 아주 교육적이고 훌륭한 이야기라고 생각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독재 정권이 교과서의 내용에 개입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국어 교과서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교과서도 쉽게 안심할 수 없다. 언제 어느 부분에 애국주의나 민족주의, 전체주의가 자리잡아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민족'과 관련된 몇 가지 상황을 생각해 보면 분명히 한국인의 성장의 어느 한가운데에 '민족'에 대한 비정상적인 강조의 코드가 분명 어디 숨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국어 교과서야말로 가장 긴장하며 읽어야 하는 책이 되고 말는 것이다.
Posted by 엔디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방학이나 휴가철을 맞은 사람들이 꼭 책읽기 다짐을 둔다. 오래 벼르던 대하소설 읽기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전을 통해 스스로를 뒤돌아보려는 사람도 있고, 역사책이나 교양과학 책을 읽으며 견문을 넓히려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어떤 대학생들은 긴 방학을 이용해서 사상서 원전 읽기를 통해 스스로의 지적 토대를 마련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해서 이제 행복한 책읽기의 계절은 가을이 아니라 여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다짐과 시도 속에서는 책읽기의 즐거움보다 책읽기의 괴로움, 부담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는 위인의 말씀을 우리는 하루라도 빼놓지 않고 귀에 새길듯이 들어왔다. 그 금언의 무게는 아무래도 학생들이 가장 무겁게 느끼게 마련이고, 그 부담은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추천도서목록으로 집약된다. 대개 일리아드나 방법서설, 또는 논어나 열하일기로 시작되는 그 목록은 선인들이 세상에 남긴 서 말의 구슬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다. 하지만 문제는 목록 어디를 봐도 그 구슬을 어떻게 꿰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물론, 가짜 구슬을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지에 대한 언급조차 전혀 없다는 것이다. 얼마쯤은 이 막막함이 아직 옥석을 구분할 수 없는 우리 학생들이 진 부담의 무게를 더 무겁게 하는 것이다. 이만하면 학생들로서는, 괴테는 드 네르발의 번역으로 읽고 에드가 포우는 보들레르의 번역으로 읽는다고 되어있는 프랑스의 독서전통과 지성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는 서구유럽의 교육방식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보다 올바르고 책임 있는 도서목록이라면 추천할 만한 책을 정확하게 가리켜야 한다. 책의 본질은 제목에서가 아니라 그 내용을 담은 한 문장, 한 문장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연관되는 여러 책들을 잘 안배하여 보다 체계적인 독서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책들은 서로 이야기 나누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많게는 20여종이 넘는, 같은 제목의 책들 사이에서 방황하고, 그 책을 넘어서면 또다시 다가오는 거대한 책의 산 앞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다. 교육자와 연구자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한국일보 2030 오피니언 란
Posted by 엔디
TAG 교육, 사회
- 이정우「교육개혁, 무엇이 잘못되었나」, 『창작과 비평』2001년 봄호

이정우 씨의 「교육개혁, 무엇이 잘못되었나」는 비전공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훌륭한 글이라 생각한다. 교육론은 이상적理想的일 수 있어도, 교육정책은 이상적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급한 몇 가지 개혁'부분을 관심있게 읽었다. 거시적 개혁보다 크기는 작으면서도 매우 중요한 개혁들을 내어놓고 있었는데, 현실적인 개혁들이 많이 눈에 띄어서 공감이 많이 갔다. 다만, 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조금 간과한 측면이 있어 안타까웠다.

논리력, 추리력, 상상력, 창의력, 감수성 등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문학 교육은 천편일률적인 현재의 교육을 보완하는 것으로 필수적이다. "언제나 옳은" 답만을 배워온 대학 신입생들의 리포트들은 주장이 서로 대동소이하면서 논리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즉, 창의력과 논리력이 결여되어 있다. 그럼에도 지금 중·고등학교의 문학수업은 거의 잘못되어 있는 실정이다. "또 하나의 암기과목"으로서가 아닌, 제대로 된 문학교육은 시급하다. 뿐만 아니라, 국어는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고 남의 생각을 잘 이해하는 데에도 꼭 필요하다. 최근 서울대에서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한 시험의 결과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현재 고교졸업자의 국어능력은 심각한 정도다. 국어능력 없이는 무언가를 '배운다'거나 '토론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말'과 '글'을 통하지 않는 의사소통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논술의 폐지'만 해도 그렇다. 현재 논술 고사에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뚜렷한 개선방안이 없다면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긍정적인 측면도 생각해야 한다. 실제로 논술 모의고사 등의 시험을 통해, 정형화된 것이긴 하지만,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연습을 하게 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논술의 부정적 측면이 너무 크기 때문에 무시되기 쉬운 이런 장점은, 그럼에도 중요하다. 이런 사정 때문에, 논술을 폐지할 때에는 국어 과목에 대한 더 큰 배려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정우 씨의 다른 제안들은 현실성과 실효성을 함께 가진, 중요한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수행평가, 제 2외국어, 논술 및 면접에 대한 부분들은 평소에 절실하게 느끼고 있던 터였다. 위에서 지적한 몇 가지 문제도 "보다 나은" 교육개혁을 위한 생각일 따름이다. 이정우 씨의 글을 시작으로, 최근 일반적으로 더욱 관심이 고조된 교육개혁 문제에 대해 『창비』에서도 '좌담' 등을 통해 여러 사람의 의견 교환을 통해 더 나은 대안을 찾는 과정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가장 나은" 교육정책보다는 "보다 나은" 교육정책을 찾는 데는 역시 대화와 토론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창작과 비평』2001년 여름호 '독자의 편지' 10-11쪽
Posted by 엔디
TAG 교육,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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