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에 바란다>“출판은 국민정신 발전체제의 큰 동력”

'이명박에 바란다'류의 칼럼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출판 분야의 요구 사항도 있다. 당선자가 궁금해 하는 것은 국민들의 요구 사항needs이고, 요구 사항이 적절할 경우 정책에 반영해야 할 것이므로 이런 칼럼들의 존재 의의는 분명하다. 게다가 이명박 당선자에게 흔히 부족한 부분으로 지적되는 것이 문화 부분이다. 경영학과라는 이유도 있고, 대기업 건설사 CEO 출신이라는 이유도 있다. 공약의 맨 앞자리를 경부 운하 등 건설 쪽에 배당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선입견일는지 모른다. 어쨌든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문화 분야를 챙기는 것은 무척 중요하고, 그 가운데 출판은 문화의 핵심이라는 자부심은 물론 매출 규모에 있어서도 '문화 산업' 가운데 '가장 큰 파이'이므로 당선자로서 꼭 챙겨야 한다. (2004년 기준 문화 산업 전체의 매출액은 19조5684억5700만원이고, 그 가운데 출판의 매출액은 15조3003억1600만원으로 전체의 78.2%에 달한다. 참고로 영화의 매출액은 2조6384억300만원이다.)



1. 출판계의 요구 사항

앞서 선입견 이야기를 했지만, 나로서는 이명박 당선자의 출판 관련 정책이 사람들의 기대처럼 되리라고 믿기는 힘들다. 그러기에는 이명박은 지나치게 거대담론에 매몰되어 있고 수치와 규모의 경제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숙경 이가서 대표의 다음 요구는 그저 허공에 흩어질 가능성이 크다:

우선 국가의 도서관 수를 확대해서 성실히 좋은 책을 만드는 출판사들의 책은 도서관에서 기본적으로 소화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외국은 작은 마을마다 도서관을 효율적으로 운영한다. 기본적인 생존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존심을 가지고 책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소신을 가진 출판사들이 대자본과의 싸움에서 경쟁할 수 있게 유통구조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으로 편법이 통용되지 않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

출판계에서 요구하는 것은 항상 정해져있다. 하나는 도서관의 확충이고, 다른 하나는 출판진흥위원회의 설립이다. 두 요구의 지향점은 한 가지인데, 결국 안정적인 매출인 셈이다. 출판이 '문화 산업' 가운데 가장 큰 매출 규모를 보이고 있음에도 출판계 입장에서는 '파이'의 크기 이외에도 개별 출판사의 안정적인 매출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아직까지 한국 출판계는 좋은 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여전히 많은 출판사들은 '많이 팔리는 책'의 이윤을 '좋은 책'을 만드는 데 쓰려는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Book Fair, South Bank, London, EnglandFUJIFILM | FinePixS1Pro | Shutter priority | Multi-Segment | f2.4 | 0EV | 0mm | ISO-0 | No Flash | 2002:06:23

This work is licensed under a Creative Commons Attribution-Noncommercial-No Derivative Works 3.0 License © 1998 - 2007, FreeFoto.com inc.



다 알다시피 책은 편집자의 기획력이 가치를 좌우하는, 일종의 장인 제품이다. 따라서 규모가 큰 대형 출판사들의 책이라고 항상 좋거나 항상 잘 팔리는 것이 아니고, 규모가 작은 이른바 1인 출판사의 책이라고 해서 조악하거나 시장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몇 년 전 35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높였던 『창가의 토토』는 당시 1인 출판사였던 프로메테우스가 펴낸 첫 책이었다. 프로메테우스의 신충일 사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후에도 직원을 단 두 명만 채용했다면서 그 이유를 출판은 "결국 (소규모) '대장간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흔히 '문화 산업' 하면 먼저 떠오르는 영화와는 사뭇 다른 사고 방식이다. 영화의 경우는 '한류 열풍' 등의 요인에 힘입어 '많이 팔리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공식이 빠르게 자리잡았지만, 책의 경우 '베스트셀러가 좋은 책'이라는 등식에 전적으로 공감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영화 한 편을 찍는 데 드는 인력과 비용이 책 한 권을 펴내는 데 드는 것보다 현저히 많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블록버스터 영화'는 있어도 '블록버스터 책'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 하에서라면 영화는 파레토 법칙을 따르는 것이, 출판은 롱테일 법칙을 따르는 것이 유용할 것이며 두 '문화 상품'의 구매처인 멀티플렉스 극장과 대형 서점의 상영/진열 방식을 보면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마 두 '문화 상품'의 제작 시점에서도 마찬가지의 법칙을 따르고 있을 것이다.


2. 문화 vs. 문화 산업

앞서 했던 이야기를 종합하면, 전반적으로 출판인들이 바라는 문화 인프라는 '문화 산업 인프라'가 아니라 '문화 인프라'라는 것이다. 도서관을 늘려달라거나 출판진흥 기구를 설립해달라고 하는 것은 출판을 산업으로서가 아니라 문화 자체로 봐 달라는 것이다.

물론, 출판사도 하나의 회사이며 이윤 추구는 출판사의 중요한 목표다. 이윤이 없으면 출판사가 더이상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의 정당한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은 무척 기쁘고 당연한 일일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느 출판사든지 기획 단계에서 판매 예상 부수와 예상 손익을 점검해보게 마련이다. 하지만 출판사는 자동사로서의 출판을 하기도 한다. 이것이 일반 회사와는 다른 점이다.

가령, 편집자가 보기에 정말 훌륭한 책이 있는데 이 책의 예상 손익이 '제로'라면 그 책은 어떻게 될까? 수익만 따진다면 내도 그만, 안 내도 그만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나본 어느 출판사의 대표도 그랬고, 내가 믿는 대로라면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모두 그 책을 낸다, 고 답할 것이다. 출판사는 (좋은) 책을 내기 위해 존재한다고 그들은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출판사가 앞으로의 이익을 위한 홍보 효과를 내기 위해 내는 것이 아니고, 또 다른 대박 책을 찾을 때까지 출판사를 계속 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는 책도 아니다. 그 점이 회사와 출판사의 차이이며, 문화가 '문화산업'으로만 환원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3. 이명박 당선자와 문화 산업

그러나 문화일보 기사에 따르면 대통령 후보 시절 이명박 당선자는 문화 분야의 활성화를 일컬으면서 실은 문화 산업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출판과 관련해서는 도서관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정동영 후보가 '지역밀착문화예술복합도서관 1000곳 조성', '도서구입비에 대한 문화비소득공제 제도 도입' 등의 공약을 내건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당시 내건 것은 "투자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콘텐츠진흥기금 조성을 정책적으로 검토"하는 것과 "출판진흥위원회 설립도 적극 추진하겠다"는 것뿐이었다.

문화 관련 발언이 '투자'로부터 시작된다는 데서부터 이명박 당선자의 문화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에게 있어 문화는 해외로 뻗어나가는 한류이자 미국 땅에서 2000여 개 개봉관을 둥지 삼아 부활한 '드래곤'이 이끄는 전쟁터에 불과한 것이다.

그나마 투자 이야기는 아마 한 건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와 관련한 것일테고, 결국 출판과 관련해서는 출판진흥위의 설립 하나만을 이야기한 셈이다.


4. 출판진흥위원회와 그 방향성

최봉규 지상사 대표는 <이명박에 바란다> "독서는 국가의 미래"에서 출판진흥위원회 설립 추진 공약을 환영하며 이렇게 적었다:

당선자께서는 출판진흥위원회 설립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출판진흥기구는 어제 오늘에 거론된 이슈가 아니고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어느 정부도 못해 왔다. 공약으로 내 건 일인 만큼 큰 기대를 걸며, 지식산업의 핵심인 출판산업을 진흥시켜 우리나라를 지식강국으로 실현시켜 주길 바란다.

이를 보면 출판인들이 그래도 아직 이명박 후보의 발언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출판진흥위가 설립되어 문화일보 기사에서 이명박 당선자가 말한 대로 "출판정책 방향을 기존의 규제 중심에서 진흥과 육성으로 과감히 전환"할 수 있다면 이는 출판계에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출판진흥위도 큰 출판사 위주로 진행되거나, 팔릴 책만 지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간다면 그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이명박 당선자는 아직 취임 전이다. 그 전에 이 글의 결론을 낼 수도 없고 내서도 안 된다. 이 글은 이제 시작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판과 문화와 관련하여 앞으로 어떤 정책을 펴는지 모두가 지켜봐야 한다. 이 글은 그런 다짐으로 씌어진 것이다.
Posted by 엔디
『어린 왕자』의 여러 한국어판 번역본들과 불어판 또는 영어판을 비교해 보면 조금 이상한 부분을 찾을 수 있다. (아마도 쓸쓸했던 날의) 어린 왕자가 자기 행성 B612에서 본 해넘이의 수가 한국어판과 불어판 또는 영어판이 다른 것이다 한국어판은 대개 마흔세 번으로, 영어나 불어판은 마흔네 번으로 기록하고 있다:
« Un jour, j'ai vu le soleil se coucher quarante-quatre fois! »
- 갈리마르Gallimard 출판사 폴리오folio 문고판, 31쪽. (1999년 문고판 간행)

"One day," you said to me, "I saw the sunset forty-four times!"
- 하비스트북A Harvest Book하코트 브레이스Harcourt Brace판 캐서린 우즈Katherine Woods 옮김본, 21쪽.

"언젠가는 마흔 세 번이나 해지는 걸 봤지."
- 구舊 문예출판사판 김현 옮김본, 32쪽. (1973년 초판 간행)

「어느 날, 난 마흔 세번이나 석양을 보았어!」
- 혜림출판사판 황현산 옮김본, 29쪽. (1986년 초판 간행)

「어느 날인가는, 해 지는 걸 마흔 세 번이나 봤지요!」
- 고려원판 오증자 옮김본, 28쪽. (1987년 초판 간행)

"어느 날 나는 해가 지는 걸 마흔세 번이나 보았어!"
- 신新 문예출판사판 전성자 옮김본, 26쪽. (1999년 간행)

"어느 날은 해 지는 걸 마흔세 번이나 본 적도 있어."
- 문학동네판 김화영 옮김본, 35쪽. (2007년 간행)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1999년 출간된 갈리마르 출판사의 폴리오folio 문고판에는 이런 일러두기avertissement가 붙어 있다: "우리는, 앙뚜안 갈리마르와 함께, 폴리오 문고판의 하나로 출간하게 되어서, 그리고 어린 왕자의 완전판l'édition intégrale을 처음으로 출간하게 되어서 기쁘다." ...무슨 소리인가. 『어린 왕자』는 1943년 작가가 살아 있을 당시에 이미 초판이 간행되었는데!

1943년 쌩떽쥐뻬리는 미국에 있었고, 아마 전시戰時였기 때문이겠지만 프랑스 출판 편집자들과는 연락을 취할 길이 없었다. 해서 그는 '레이날과 히치콕Reynal & Hitchcock'이라는 출판사에서 『어린 왕자』의 초판을 발간하게 된다. 정작 프랑스에서는 약 3년 뒤 1945년에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첫 판이 발간된다. 문제는 이 때 갈리마르에서는 작가의 원본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상태에서 작업했다는 것이다.

폴리오 문고판의 일러두기는 그래서 그간 불어판에 있었던 오류의 목록을 보여주고 있다: 천문학자가 망원경을 통해 바라보는 별이 사라져 있고, 사업가와 천문학자의 노트나 그림에 차이가 있으며, 어린 왕자 목도리의 윤곽에서부터 꽃들의 꽃잎과 꽃받침, 가로등 아래의 태양 광선, 바오밥 나무의 뿌리에서부터 야자수의 가지가 다르다; 또한 어린 왕자가 본 해넘이의 횟수가 다르다.

한편, The Publication History of The Little Prince는 각국의 번역 판본들과 떽스뜨, 이미지의 차이를 상세하면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폴리오 문고판에서 지적하지 않은 두 가지 사항들을 더 지적하고 있다: 하나는 어린왕자가 입은 가운의 색깔이 초록색green이냐, 어두운 파랑dark blue이냐, 아니면 바다색navy blue이냐 하는 논란이 있어왔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소행성 B612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천문학자들이 별에 이름을 붙이는 방식을 설명하면서 '소행성325'를 예로 드는데 이 숫자가 일부에서는 '소행성3251'로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린왕자의 가운 색깔

불어판과 영어판, 그리고 두 한국어역본 사이의 가운 색깔이 모두 다르다


Il l'appelle par exemple : « l'astéroïde 325 ».
- 갈리마르 출판사 폴리오 문고판, 22쪽.

He might call it, for exemple, "Asteroid 325."
- 하코트 브레이스판 캐서린 우즈 옮김본, 11쪽.

예를 들자면 <소혹성(小惑星) 3251>하는 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 구舊 문예출판사판 김현 옮김본, 23쪽.

이를테면, '소혹성 3251호'라는 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 신新 문예출판사판 전성자 옮김본, 17쪽.

가령, '소혹성 제325호'라는 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 문학동네판 김화영 옮김본, 23쪽.

어린 왕자가 해가 지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는가와 '나'가 예로 든 소행성 이름이 무엇이었는가는 그래도 단순한 편집 판본 상의 차이일 뿐이다: 마흔 세 번과 마흔 네 번이라는 차이가 작품 내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상한 일은 '신원'이라는 출판사에서 내 놓은 책은 엉뚱하게도 어린 왕자가 본 해넘이의 수를 "46번"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민한 작가가 언젠가 고쳐 쓴 뒤 어느 판본에 적용을 하지 않았거나 무던한 편집자가 실수를 했거나 했을 것이다. 물론, 어린 왕자에게 있어서 해넘이가 갖는 의미는 무척 각별하다. 슬픈 날에 마흔 몇 번이나 해넘이를 보았다는 것이나, 왕이 소원을 빌라고 하자 망설임 없이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싶다고 한 것, 그리고 24시간 동안 해가 1440번 진다는 이유로 점등인의 별을 떠나고자 하지 않은 점, 그리고 조종사인 '나'에게 해지는 것을 보러 가자고 무의식 중에 떼를 쓴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텍스트를 자세히 살펴보면 어린 왕자가 해넘이를 43번이 아니라 44번 보았다는 것을 확정해주는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 어린 왕자는 별들이 즉각 복종한다는 왕의 권능을 부러워하며 이렇게 생각했다고 화자는 전한다:

어린 왕자는 그토록 대단한 권능에 감탄했다. 만약 자기에게도 이러한 권능이 있었다면 의자를 뒤로 물려놓을 것도 없이 해지는 광경을 하루 마흔네 번만이 아니라 일흔두 번, 아니 백 번 이백 번이라도 구경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문학동네판 김화영 옮김본, 55쪽.)

그럼에도 이것은 작자가 처음에 의도한 해넘이의 숫자를 밝혀주는 것일 뿐 44라는 숫자 자체가 어떤 고도의 시적 울림이나 상징성을 가진 유의미한 것이 아님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에 있어서는 문제가 좀 다르다: 그림이 좀더 바랜 것에서 시작해서 그림 자체에 있어야 할 것이 빠진 것도 있다. 이는 작가의 원판 그림이 미국 출판사들에서 프랑스 출판사들로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문학자①"

천문학자가 망원경을 통해 별을 보고 있는 것이 맞는 그림인데, 별이 아예 빠져서 편집되어 있다.

"천문학자

천문학자가 설명하는 칠판의 도형이 조금 다르다. 가령 원의 중점에서 1사분면으로 나가는 선의 각도가 누락되어 있다.

"바오밥나무"

바오밥나무의 뿌리가 좀더 단순화되어 있다.

"점등인"

가로등 아래의 태양광선 하나가 없다.

서점에서 살펴본 결과, 해넘이 떽스뜨와는 달리 대부분의 책에서 작가가 그린 그림의 문제는 없었다. 몇몇 번역 판본이 예전 그림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어린 왕자가 해넘이를 마흔세 번 보았나 마흔네 번 보았나가 아니라, 어린 왕자의 떽스뜨가 어떻게 정확히 확정될 것인가이다. 마흔세 번과 마흔네 번이 갖는 차이는 크지 않겠지만, 어린 왕자가 느꼈을 쓸쓸함을 표현하기 위해 마흔 몇 번을 100번이나 200번으로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어린 왕자 - 8점
생 텍쥐페리 지음, 김화영 옮김/문학동네

어린왕자 - 8점
생 텍쥐페리 지음, 전성자 옮김/문예출판사

Posted by 엔디
강연의 시작은 박맹호 대표의 유년시절의 추억이나 전란 당시의 상황, 그리고 대학 졸업 후의 '낭인浪人'생활 같은 개인적인 문제로 시작했지만 마땅히 이어갈 말이 없었던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박맹호 대표는 연대기에 따른 출판에 대해 조금씩 이야기했다.


그가 출판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대부분의 책은 일본어 중역본이었다고 했다. 내용뿐 아니라 장정·디자인도 일본 책에서 그대로 베껴 글씨만 한글로 바꾸었다고 했다. 그는 거기서 '창피함'을 느꼈던 것 같다.

1950년대의 우리나라 출판은 '구루마くるま' 즉 수레에 끌고 다니며 출판사를 경영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책이 거의 일어판 중역이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때부터 시작한 출판사로 계몽사나 삼성출판사, 금성출판사 등을 예로 들었다. 그렇지만 50년대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대학도 '전시연합대학'이라는 것을 만들어 교육할 때니 보다 상업적일 수밖에 없는 출판업이 어찌 할 수 있었을까.

1960년대부터는 출판업계가 화려한 신장을 맛보게 되었었나보다. 그런데 그 '화려한 신장'이라는 것이 대체로 세일즈를 통한 책 구매였던 것이다. 흔히 말하는 그 '교육열'이 '나는 이래도 아이들만은…'하는 생각에 외판원의 언변까지 맞물려 읽든 안 읽든 전집류를 한두 질씩 들여놓게 되는 과정은 안 봐도 뻔한 일이다. 우리 집에도 예전에 그런 전집류가 두어 질 있었고, 어느 집에를 놀러 가도 다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하지만 단행본 시장의 성장없이는 진정한 출판업계 신장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박맹호 대표의 지론이다. 그는 "단행본은 각 분야의 꽃"이라고 했다. 옳은 말이다. 단행본은 건전한 출판문화의 밑거름이 되는 동시에, 그 속한 분야에 대한 가장 거짓없는 평가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신념을 가진 그가 왜 지금 다시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에 매달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에도 분명 건질 책이 많기는 하다. 하지만 기존 번역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기왕에 다른 번역본이 있는 책을 중복 출판하는 관행이 되풀이되고 있다. 괴테나 헤세, 셰익스피어는 이제 제대로된 전집이나 선집이 나올 차례지 문학전집에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세계문학전집은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오는 '대산세계문학 총서'가 될 것이다. 신뢰할 만한 번역이 없는 책이나,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책은 단행본으로 내는 것보다 전집류에 포함시키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민음사 창사가 1966년이니까, 그의 출판사 창사는 대략 앞에 언급된 정도의 토양에 바탕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전집류가 아닌 단행본을 먼저 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위기가 왔었다고 했다. 책을 팔 곳이 없었던 곳이다. 서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남아 있는 서점은 학습참고서, 월간지, 대중소설 위주였다고 한다. 단행본을 내도 그것을 전시하고 팔만한 공간이 없었으니 처음에 위기가 닥쳐올 밖에. 그러나 곧 '종로서적'이 생기면서 단행본 시장의 그 숨통이 트이고 다행스럽게도 단행본 출판이 활성화되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박맹호 대표에 따르면 민음사에서 처음으로 만든 책은 '세계시인선'이었다. 당시 일어 중역판 시집에 많이 진저리가 난 모양이다. 마침 해외유학파 소장 학자들이 그 즈음에 대거 귀국해 각자의 어문전공에 따라 번역을 맡길 수가 있었다고 했다. 번역에 혹 문제가 있을까봐 책은 원문原文과 역문譯文을 함께 실었다고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다음으로 만든 책은 '오늘의 시인 총서'였다. 해방 이후 활동한 시인으로 기준을 정해놓고 김수영, 김춘수, 정현종, 황동규, 강은교 등 다섯 시인을 먼저 택해 1차분을 내놓았다. 당시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2000부였는데 다섯 종이 각 2000부씩 일만 부 첫 쇄가 일주일만에 매진되었다고 했다.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새로운 시에 목말라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인 것 같다. '오늘의 시인 총서'는 그 외에도 '최초의 가로쓰기 시집', 국판 판형에서 벗어나 '현재의 판형(국판 30절)으로 제작한 최초의 시집' 등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즐거운 자랑을 늘어놓았다.

1974년에는 김수영 전집을 발간했고 김수영 문학상은 그 인세로 주는 상이라고 했다.


당시 출판은 소설이 먹여살렸다고 하는 게 옳은 말인듯 하다. 그는 당시 회자되던 "출판의 대종大宗은 문학이고 문학의 대종은 소설이다"라는 말을 언급하며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당시는 유주현, 정비석 등의 대중 소설들이 날개돋힌 듯 팔렸던 때였다고 했다.

그런데 당시의 젊은 작가들과 젊은 비평가들에 힘입어 그런 현상은 조금씩 극복되어 나갔다고 그는 말했다. 당시에 최인훈, 조해일, 김승옥 등의 소설이 있었고 김현, 염무웅, 김치수 등의 평론가가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같은 계간지를 만들어 동시대의 작품들을 싣고 비평하게 되면서 '보이지 않는 혁명'이 일어났다고 박맹호 대표는 이야기했다. 기존 잡지 『현대문학』등이 문예진흥원 기금을 받으면서 발간되었던 데 비해 이런 계간지들은 문예기금도 없이 시장을 석권했다고 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민음사도 『세계의 문학』을 창간했다. 당시 편집인은 김우창 선생과 유종호 선생님이었다. 그 분들은 당시 40대이셨다고 했다. 편집인이 바뀌고서 『세계의 문학』도 이전같지 않다는 은사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이런 계간지는 당시에 효과적으로 기능했나보다. 예전에는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만 하면 역사에 이름이 남고 소설가니 시인이니 할 수 있었지만 계간지 이후로는 지속적으로 계간지에 글을 써야 독자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지속적인 글쓰기가 없이는 독자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풍토가 생겼다고 했다. 신춘문예가 결과에서 과정으로 바뀐 것이다.

어쨌든 소설에 있어서 민음사는 '오늘의 작가상'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첫 수상작인 한수산의 『부초』에서부터 그는 말머리를 떼었다. 당시 30만 부나 팔린 이 책에 힘입어 한수산 씨는 집도 없던 사람이 집을 사고 지금도 부자라고 그는 우스개를 섞어 이야기했다. 2회, 3회 수상작인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과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도 그의 입에 올랐다. 노출판인의 멋진 자랑거리 아닌가!

80년대 이후로는 소설과 비평의 위기라고 하지만 사실 그때 교보문고가 등장하고 하면서 출판시장 전체는 다종 출판의 시대가 열린다고 그는 구분하고 있었다.


도서정가제에 대한 한 학생의 질의에 박맹호 대표는 자신은 찬성한다고 밝혔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파나 온라인 서점에서 파나 출판사 입장에서의 마진은 같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온라인 서점이라고 출판사로부터 책을 싸게 가져가기는 힘들 것이다. 내 생각에는 오히려 현찰거래를 하는 온라인 서점이 어음거래를 하는 오프라인 서점보다 출판업계에는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어차피 출판사는 정가의 60-70% 정도를 받고 서점에 넘기는 것이다.


앞으로의 계간지의 역할에 대한 질의도 있었다. 그는 앞으로는 계간지로 상업적인 성공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계간지는, 외국의 경우처럼, 각 전문 분야에서 동호同好를 가진 사람들끼리의 잡지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7,80년대에는 계간지와 단행본은 불가분의 관계였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그는 판단했다.


출판 산업이 어려우신데 견딜만 한가? 하는 질문에도 그는 웃으며 답했다. 우리도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본래 "출판은 전 산업의 얼굴"이라고. 불경기 때에도 잘 되는 산업이 있다면 그와 관련된 책은 또 나간다는 것이다. 가령 조선업이 잘 되면 조선업 관련 책이 나가고, 반도체가 잘 되면 반도체 관련 책이 나간다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는 신간이 나올 때마다 느끼는 "쾌감" 때문에 후배들에게 물려주지도 않고 여직껏 욕심내어 계속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희열은 고통을 극복한다"며 학생들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당부했다. 긴 시간의 강연은 이 질의를 끝으로 마감을 지었다.

잦은 절판으로 화를 돋우던, 그래서 내가 많은 책을 갖고 있음에도 늘 나의 질타를 받던 민음사에 대한 감정은 많이 누그러졌다. 솔직히 인정하자. 민음사는 가장 좋은 출판사 중의 하나이다. 김우창 전집이 절판되었다지만 애초에 민음사가 아니면 어디서 김우창 전집을 내겠는가.
Posted by 엔디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