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의 시작은 박맹호 대표의 유년시절의 추억이나 전란 당시의 상황, 그리고 대학 졸업 후의 '낭인浪人'생활 같은 개인적인 문제로 시작했지만 마땅히 이어갈 말이 없었던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박맹호 대표는 연대기에 따른 출판에 대해 조금씩 이야기했다.


그가 출판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대부분의 책은 일본어 중역본이었다고 했다. 내용뿐 아니라 장정·디자인도 일본 책에서 그대로 베껴 글씨만 한글로 바꾸었다고 했다. 그는 거기서 '창피함'을 느꼈던 것 같다.

1950년대의 우리나라 출판은 '구루마くるま' 즉 수레에 끌고 다니며 출판사를 경영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책이 거의 일어판 중역이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때부터 시작한 출판사로 계몽사나 삼성출판사, 금성출판사 등을 예로 들었다. 그렇지만 50년대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대학도 '전시연합대학'이라는 것을 만들어 교육할 때니 보다 상업적일 수밖에 없는 출판업이 어찌 할 수 있었을까.

1960년대부터는 출판업계가 화려한 신장을 맛보게 되었었나보다. 그런데 그 '화려한 신장'이라는 것이 대체로 세일즈를 통한 책 구매였던 것이다. 흔히 말하는 그 '교육열'이 '나는 이래도 아이들만은…'하는 생각에 외판원의 언변까지 맞물려 읽든 안 읽든 전집류를 한두 질씩 들여놓게 되는 과정은 안 봐도 뻔한 일이다. 우리 집에도 예전에 그런 전집류가 두어 질 있었고, 어느 집에를 놀러 가도 다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하지만 단행본 시장의 성장없이는 진정한 출판업계 신장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박맹호 대표의 지론이다. 그는 "단행본은 각 분야의 꽃"이라고 했다. 옳은 말이다. 단행본은 건전한 출판문화의 밑거름이 되는 동시에, 그 속한 분야에 대한 가장 거짓없는 평가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신념을 가진 그가 왜 지금 다시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에 매달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에도 분명 건질 책이 많기는 하다. 하지만 기존 번역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기왕에 다른 번역본이 있는 책을 중복 출판하는 관행이 되풀이되고 있다. 괴테나 헤세, 셰익스피어는 이제 제대로된 전집이나 선집이 나올 차례지 문학전집에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세계문학전집은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오는 '대산세계문학 총서'가 될 것이다. 신뢰할 만한 번역이 없는 책이나,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책은 단행본으로 내는 것보다 전집류에 포함시키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민음사 창사가 1966년이니까, 그의 출판사 창사는 대략 앞에 언급된 정도의 토양에 바탕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전집류가 아닌 단행본을 먼저 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위기가 왔었다고 했다. 책을 팔 곳이 없었던 곳이다. 서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남아 있는 서점은 학습참고서, 월간지, 대중소설 위주였다고 한다. 단행본을 내도 그것을 전시하고 팔만한 공간이 없었으니 처음에 위기가 닥쳐올 밖에. 그러나 곧 '종로서적'이 생기면서 단행본 시장의 그 숨통이 트이고 다행스럽게도 단행본 출판이 활성화되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박맹호 대표에 따르면 민음사에서 처음으로 만든 책은 '세계시인선'이었다. 당시 일어 중역판 시집에 많이 진저리가 난 모양이다. 마침 해외유학파 소장 학자들이 그 즈음에 대거 귀국해 각자의 어문전공에 따라 번역을 맡길 수가 있었다고 했다. 번역에 혹 문제가 있을까봐 책은 원문原文과 역문譯文을 함께 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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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만든 책은 '오늘의 시인 총서'였다. 해방 이후 활동한 시인으로 기준을 정해놓고 김수영, 김춘수, 정현종, 황동규, 강은교 등 다섯 시인을 먼저 택해 1차분을 내놓았다. 당시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2000부였는데 다섯 종이 각 2000부씩 일만 부 첫 쇄가 일주일만에 매진되었다고 했다.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새로운 시에 목말라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인 것 같다. '오늘의 시인 총서'는 그 외에도 '최초의 가로쓰기 시집', 국판 판형에서 벗어나 '현재의 판형(국판 30절)으로 제작한 최초의 시집' 등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즐거운 자랑을 늘어놓았다.

1974년에는 김수영 전집을 발간했고 김수영 문학상은 그 인세로 주는 상이라고 했다.


당시 출판은 소설이 먹여살렸다고 하는 게 옳은 말인듯 하다. 그는 당시 회자되던 "출판의 대종大宗은 문학이고 문학의 대종은 소설이다"라는 말을 언급하며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당시는 유주현, 정비석 등의 대중 소설들이 날개돋힌 듯 팔렸던 때였다고 했다.

그런데 당시의 젊은 작가들과 젊은 비평가들에 힘입어 그런 현상은 조금씩 극복되어 나갔다고 그는 말했다. 당시에 최인훈, 조해일, 김승옥 등의 소설이 있었고 김현, 염무웅, 김치수 등의 평론가가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같은 계간지를 만들어 동시대의 작품들을 싣고 비평하게 되면서 '보이지 않는 혁명'이 일어났다고 박맹호 대표는 이야기했다. 기존 잡지 『현대문학』등이 문예진흥원 기금을 받으면서 발간되었던 데 비해 이런 계간지들은 문예기금도 없이 시장을 석권했다고 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민음사도 『세계의 문학』을 창간했다. 당시 편집인은 김우창 선생과 유종호 선생님이었다. 그 분들은 당시 40대이셨다고 했다. 편집인이 바뀌고서 『세계의 문학』도 이전같지 않다는 은사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이런 계간지는 당시에 효과적으로 기능했나보다. 예전에는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만 하면 역사에 이름이 남고 소설가니 시인이니 할 수 있었지만 계간지 이후로는 지속적으로 계간지에 글을 써야 독자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지속적인 글쓰기가 없이는 독자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풍토가 생겼다고 했다. 신춘문예가 결과에서 과정으로 바뀐 것이다.

어쨌든 소설에 있어서 민음사는 '오늘의 작가상'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첫 수상작인 한수산의 『부초』에서부터 그는 말머리를 떼었다. 당시 30만 부나 팔린 이 책에 힘입어 한수산 씨는 집도 없던 사람이 집을 사고 지금도 부자라고 그는 우스개를 섞어 이야기했다. 2회, 3회 수상작인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과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도 그의 입에 올랐다. 노출판인의 멋진 자랑거리 아닌가!

80년대 이후로는 소설과 비평의 위기라고 하지만 사실 그때 교보문고가 등장하고 하면서 출판시장 전체는 다종 출판의 시대가 열린다고 그는 구분하고 있었다.


도서정가제에 대한 한 학생의 질의에 박맹호 대표는 자신은 찬성한다고 밝혔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파나 온라인 서점에서 파나 출판사 입장에서의 마진은 같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온라인 서점이라고 출판사로부터 책을 싸게 가져가기는 힘들 것이다. 내 생각에는 오히려 현찰거래를 하는 온라인 서점이 어음거래를 하는 오프라인 서점보다 출판업계에는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어차피 출판사는 정가의 60-70% 정도를 받고 서점에 넘기는 것이다.


앞으로의 계간지의 역할에 대한 질의도 있었다. 그는 앞으로는 계간지로 상업적인 성공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계간지는, 외국의 경우처럼, 각 전문 분야에서 동호同好를 가진 사람들끼리의 잡지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7,80년대에는 계간지와 단행본은 불가분의 관계였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그는 판단했다.


출판 산업이 어려우신데 견딜만 한가? 하는 질문에도 그는 웃으며 답했다. 우리도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본래 "출판은 전 산업의 얼굴"이라고. 불경기 때에도 잘 되는 산업이 있다면 그와 관련된 책은 또 나간다는 것이다. 가령 조선업이 잘 되면 조선업 관련 책이 나가고, 반도체가 잘 되면 반도체 관련 책이 나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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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신간이 나올 때마다 느끼는 "쾌감" 때문에 후배들에게 물려주지도 않고 여직껏 욕심내어 계속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희열은 고통을 극복한다"며 학생들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당부했다. 긴 시간의 강연은 이 질의를 끝으로 마감을 지었다.

잦은 절판으로 화를 돋우던, 그래서 내가 많은 책을 갖고 있음에도 늘 나의 질타를 받던 민음사에 대한 감정은 많이 누그러졌다. 솔직히 인정하자. 민음사는 가장 좋은 출판사 중의 하나이다. 김우창 전집이 절판되었다지만 애초에 민음사가 아니면 어디서 김우창 전집을 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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