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요정’ 김연아 어쩌나

김연아 '올인'에 대해서 우려했던 사태가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 나는 황우석 사건과 비교하여 김연아 올인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했었는데(링크), 그때만 해도 '그럴 우려가 있으니 조심하자' 정도였지 정말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선택과 집중'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 비근한 주식 투자만 해도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금언인데도, 다른 부분에서는 흔히 무시된다.

김연아 선수에 대한 '올인'은 그런 '대박 기대 투자'와는 또다른 해묵은 문제 하나를 더 갖고 있으니: 이는 스타 만들기다. 전체주의가 강한 국가일수록 스타 만들기에 전념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모쪼록 김 선수의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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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올인’…딴 요정은 어쩌나 : 스포츠일반 : 스포츠 : 뉴스 : 한겨레

빙상연맹이 김연아 선수에 대해 '무한 지원'을 약속하면서, 다른 선수들에게는 지원금을 전혀 지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스포츠에서도 '선택과 집중'은 중요하다. 아마추어가 아닌 바에는 소질이 있는 선수를 집중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여기서 '형평성'이나 평등이라는 가치를 들고나올 생각은 없다. 다만 나는 '경험'에 대해서 한 마디 하려고 하는 것이다.

국가 대표 선수 한 사람에게 지원금 '올인'이라. 가만,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연전에 우리는 '국가 과학자'라는 명목으로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에게 어마어마한 연구비가 지급되었으며 앞으로도 지급될 것이라는 소리를 매일 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황 전 교수가 뭔가 큰일을 해낼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도대체 황 전 교수의 그 큰일이 자신과 무슨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러나 황 전 교수의 실험은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것임이 드러났고, 자신들이 '국민'이라고 믿는 시민들은 당혹해했으며, 그 사이에서 기자들만 취재열을 올렸다.

나는 김연아 선수가 황우석 전 교수처럼 '사기'를 쳤다거나, (그런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앞으로 갑자기 다쳐서 선수 생활이 어려워지거나, 갑자기 결혼을 발표하고 선수 생활을 접는다거나 할 것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결혼을 했다고 선수 생활을 접는 것은 더더구나 옳지 않은 선택이다.) 다만 나는 '경험'에 대해 한 마디 하려고 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이미 황 전 교수와 관련된 '진실'을 들은 탓에 과학에 대한 무기력증을 경험하고 있다. 그 무기력증은 지금 이미 도를 넘어서 "그래도 황우석이 대단했는데." 내지는 "그래도 국가를 위해서는 황우석 다 용서하고 재기용해서 투자해야 하는데." 따위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로서는 황 전 교수가 최선이라는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황 전 교수가 최고인 이유는 수년간 나라에서 대는 과학 연구 지원금이 황우석 전 교수에게 '올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과학 유망주'들은 설 자리가 없었다.

게다가 국가 연구비 지원 당시는 현실적으로 황우석 전 교수의 연구가 상당한 의학적 실용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되므로, 국내외 대기업에서 상당한 수준의 지원을 이끌어내기도 쉬운 상황이었다. 또, 그 인도주의적 유용성 덕분에 상당한 기부금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의 지원금은 늘어만 갔으니, 아무리 '선택과 집중'이라고 해도 그 정도가 지나쳤던 것이다. 그건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단편적인 지원이자, 대표적인 전시 행정일 뿐이다.

내가 염려하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는 자주 '전시 행정'을 경험한다. 김연아 선수 정도면 스폰서를 구하기도 어렵지 않을 것인데, 김 선수에게만 '올인' 투자한다며 이는 예산 낭비이자 전시 행정이 아닐까? 만약 김 선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빙상 연맹의 '올인' 투자는 '오링'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Posted by 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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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 Marching in the street

Tariq Ali & Susan Watkins, 안찬수·강정석 옮김, 삼인.
2002년 12월 13일 초판 4쇄 발행.


스포츠: 잘 잰 시간의 감옥
멕시코 올림픽 사보타주


스포츠는 비정치적 활동이라는 관념만큼 비판을 받지 않은 격언은 없다. 내가 아는 한 모든 스포츠 행사가 전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토론의 주제로 삼은 적은 결코 없다.

일반적으로 스포츠에 이의를 제기할 만한 이유로는 적어도 네 가지가 있다.

1. 스포츠는 '경쟁심'을 고취한다.

2. 오늘날 대회가 개최될 때 스포츠는 민족주의의 가장 원색적인 형태를 고취한다.

3. 육체적인 건강함을 강조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군국주의적이다.

4.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육체에 깃든다"는 (아름다운 것이 좋은 것이라는 관념을 함축하고 있는) 관념은 파쇼적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스포츠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할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다. 즉 스포츠는 민중의 아편으로 주요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껏해야 스포츠는 노동자 계급에게 고통스러운 일에서 벗어나는 거짓 '탈출구'를 제공해 줄 뿐이다. 일류 선수들이 대개 '성공'을 이룬 노동자 계급 출신의 젊은이라는 사실이 지적될 때에도 자기 만족적이며 대체로 반동적인 성격을 지닌 그들은 거의 놀라지 않는다. 옛날에 성공한 사람들은 술집이나 스포츠용품점을 얻었다. 어쨌든 한 단계 올라선 것이다. (북아일랜드 축구 선수) 조지 베스트Geroge Best의 부티크는 종류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스타일이 바뀌었을 뿐이다.……

하지만 몇몇 출세한 사람들만이 스포츠 제도를 정당화하는 데 익숙할 뿐이다. 가장 노골적인 것으로 리 트레비노Lee Trevino가 올해의 미국 골프 오픈American Golf Open에서 우승했을 때 신문 기사들에는 상금을 받은 기쁨에 대한 이야기가 넘쳤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던 스포츠의 또다른 영역인 올림픽이 마침내 공격 대상이 되었다. 미국 올림픽 팀의 흑인 선수들이 제안한 올림픽 보이콧에 동참하고 차선책으로는 무하마드 알리의 복권 운동에 동참하는 인권을 위한 계획Project for Human Rights은 스포츠 영역에서 근거없이 내세워졌던 '인종 차별 폐지'라는 주장이 거짓임을 드러냈다.

흑인 선수 가운데 성공을 이룬 사람들은 아주 소수다. 그러나 유쾌한 한때를 맞이하려고 수많은 선수들이 자신들의 귀중한 청춘을 낭비하고 있다. 그리고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흑인 스타일과 자기 자신을 관련 지어 생각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자기 자신을 거세하고 있다.

한 명의 흑인 육상 선수가 올림픽 팀에서 이탈하거나 또는 그외 방법으로 멕시코 올림픽 경기를 혼란시킨다면 그에게 마구 비난이 쏟아질 텐데 비난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일 것이다. 그런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 결국 너무 힘에 겨운 일로 판명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백인 언론인은 그 운동이 허장성세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백인 언론은 틀렸다. 흑인 선수들의 제안이 던져 준 충격은 이미 표면적인 파문을 넘어섰다.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우롱당할 수만은 없다는 그들의 메시지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스포츠를 좋아하는 미국 기성 사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는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비정치적인' 스포츠가 지금까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혁명을 발화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역설적인 일일지는 몰라도 결코 놀라운 일은 아니다.

고든 피터스Gordon Peters
『블랙 드워프』, 1968

(290쪽)
Posted by 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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