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이고 밤이고 혼자였던 시절, 외로움이든 무엇이든 밀려오면 소설을 읽었었다. 으례 소설은 읽히는 것으로 여겼었고, 그 예외라면 스토리 위주가 아닌 『낯선 시간 속으로』정도를 들었다.

이문구의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는 스토리 위주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스토리가 상당히 살아있는 단편집인데도 나를 오래도록 붙들고 놓아주질 않았다. 책 뒷표지를 보았다. "여기에서 말은 이미 말 이상이다." 말이 말보다 윗길에 있다면 그의 소설이 시詩라는 말이 된다. 이문구는 시를 썼던가.

책을 다 읽고 나서의 자답自答은 '그렇다'였다. 그가 충청지방의 토속어로 소설을 썼다, 고 대체로 말하겠지만 사실은 그가 충청지방의 토속어를 썼더니 그것이 소설이 되었다고 하는 게 더 옳을지도 모를 정도로 그의 소설은 말과 동화되어있다. '내용과 형식'이라는 상투적인 낱말을 빌려 설명하자면, '그의 소설의 내용은 바로 그 형식'이라는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가령 "성님이사 워디가 워떠시간 그류, 아녈 말루 우루과이라운드라구 해두 좋구 새 신미앵요라고 해두 좋구, 좌우간 핑계 하나 딱 부러지는 짐에 그 지긋지긋한 늠의 지게공학과 좀 졸업해번지구 남은 여생일랑 여벌처럼 사시면 구만이신디."에서 충청도 사투리를 빼면 "형님이 어디가 어떠셔서 그러세요? 우루과이 라운드든 새 신미양요든 이 참에 농사 그만 두시고 여생은 여벌처럼 사세요."가 되는 것이 아니다. 거기서 충청도 사투리를 빼면 남는 것은 백지가 남는다. 내가 엉터리로 옮긴 표준어표기와 원문을 대조해 읽어보라. 표준어표기에 '내용'이라는 것이 담겨있는가를.

요컨대, 이문구의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에서의 토속어는 그것 자체가 하나의 화구畵具인 것이다.

또, 이 책은 대체로 '나무 연작'을 싣고, 「더더대를 찾아서」를 덧붙인 형태이다. 여기 나무는 한 눈에 알 수 있듯이 모두 쓸모없는 나무이다. 장자의 「材之患」은 무용無用의 용用을 말하고 있다. 장자의 어감과는 좀 다르더라도 무용한 듯 무용하지 않은 소중한 개개의 나무들을 이문구는 하나씩 하나씩 형상화하고 있으며, 그 형상화된 개개의 나무들은 모두 토속어이다.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 왔다
이문구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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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지 히또나리의 『냉정과 열정사이』도 결국 얼마간 연애소설을 벗어난 체하는 트랜디 연애소설일 뿐인 것 같다. 쥰세이의 직업이 독특해서 몇몇 전문적인 단어들이 등장하고 그것이 소설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것이 소설의 축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하나의 지엽으로 그칠 뿐이다.

작기는 때로 神에 비견된다. 소설은 사실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이고 소설의 등장인물 역시 실제로는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작가는 신이어서는 안 된다. 상상력은 망상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신의 거짓말'처럼 본래부터 모순되는 개념이다.

소설은 삶을 담아야 한다. 그러나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몇 달, 몇 년, …, 몇십 년까지 다루는 소설에서 삶의 세목들을 모두 다룰 수는 없다. 작가는 무엇을 더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뺄 것인가를 더 주의깊게 생각해야 한다. 밥을 먹었다, 화장실에 갔다, 잠을 잤다는 것이 세세하게 묘사된다고 생각해보라.

조반나의 이야기, 메미의 아버지, 쥰세이의 어린시절은 소설의 줏대되는 이야기에 그다지 개입하지 못하고 떠돌고 있다. 그런 것들은 '밥을 먹었다'와 그리 먼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냉정과 열정사이 - Blu
쓰지 히토나리 지음, 양억관 옮김/소담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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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이라는 전작 저술이 있는줄로 알았다. 전에 한두페이지 읽다가 치우고 읽다가 치운 책을 이틀에 걸쳐 읽었다. 글이 씌어질 당시의 정황이나 다른 희곡 작품들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글들도 조금 있어서 수월치는 않았다.

전체적으로는 지루했다. 전작 저술이 아닌 까닭에, 같은 내용이 여러 편의 논문이나 강연록에 자주 비슷한 형태로 노출되었다. 지속적으로 그가 강조하는 것은 '감정이입'에 대한 비판과 '낯설게 하기 효과Verfremdungseffekt'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감정이입에 대해서 그가 가진 불만은 이렇다. 배우가 연기를 잘하면 잘 할수록 관객들은 그 역할에 감정이입되어 자기가 '그'인 것으로 느끼기 때문에 여러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관객은 자기가 같이 느낀느 주인공이 보는 만큼만 볼 수 있을 것이다."(59) "관객이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이 되도록 그는 가능한 한 개인적인 특성을 갖지 않는 유형적인 인물이어야 했네. […] 감정 이입을 위해 준비된 인물(주인공)은 관객의 감정 이입을 위해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있어 상당한 손상을 입게 되네."(168) "자네들이 자네 관객들을 이미 파블로프의 개처럼 병들게 해놓았단 말이네."(177)

브레히트는 감정 이입을 일종의 최면이나 마약으로 취급한다. 그의 주장에 공감이 가는 것은―당시 연극도 연극이지만―요즘의 영화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는 점점 싫어하고 아무 생각없이 듣기만 할 수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생활이 하도 각박하고 힘들어서 극장에서조차 '박터지게' 생각하는 것은 너무 잔혹하다는 사람도 만나보았다. 그들은 정말 파블로프의 개가 된 것이 아닌가. 한차례 울어주고(Katharsis!), 나와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답답하다.

브레히트는 감정이입의 대안으로 낯설게 하기 효과(생소화生疎化효과)를 든다. "새로운 기법의 원칙은 감정이입 대신에 관객에게 생소감(Verfremdung)을 불러 일으키는 데 있다."(61) 그것은 관객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려는 의도이다. 낯설게 하기 효과가 잘 발휘될 때, 관객은 왜 주인공은 '이렇게 행동하지 않고 저렇게 행동할까'를 고민하게 된다. 때문에 '새로운 기법'은 관객을 직접적으로 염두에 두게 된다. 기존의 연극은 '제 4의 벽vierte Wand'이라 하여 무대의 뚫린 면, 즉 무대와 관객 사이의 공간에 벽이 있어서 나머지 세 막힌 면처럼 교류가 없다고 전제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브레히트는 이 '제 4의 벽'을 없애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가 낯설게 하기 효과를 위해 제안한 새로운 연기기법은 이렇다. "1. 3인칭 화법의 도입, 2. 과거 화법의 도입, 3. 지문과 주석도 함께 읽기"(72)

배우는 관객에게 직접 말해야지 과거처럼 능청스럽게 '독백'을 해서는 안 되고, 그 자신이 맡은 역할에 몰아沒我하게 되면 안 된다. 그는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해 "반대 의견을 표하는 자세"를 취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그는 "그가 하지 않는 행동이 그가 하고 있는 행동 속에 포함되"(71)도록 해야한다.

브레히트가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작가나 배우 스스로가 작품에 대해 코멘트하는 것과 관계있지 않을까 싶다. 가령, 그의 교육극「예외와 관습」의 마지막 코러스는 "여행 이야기는 / 그렇게 끝납니다. / 당신들은 듣고 보았지요. / 일상적인 일, 늘상 일어나는 일을 당신들은 보았지요. / 우리는 그러나 당신에게 요청합니다. / 생소하지 않은 일을 의아하게 생각하시오! / 평범한 일을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시오! / 일상적인 일이 당신들에게 놀라움을 자아내야 하오. / 관습으로 알려진 일이 악습임을 깨달으시고 / 그리하여 악습을 깨달은 곳에서는 / 구제책을 강구하시오!"이다. 일상적이고 관습적인 일을 모사한 이 극은 그것을 낯설게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작가는 거기에 대해서 '이게 이런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과연 좋은 효과만을 낼까? 극이나 영화가 소설보다 대중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효과들은 소설에서도 적용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렇다면, 소설에서도 이런 코멘트들을 적용해야할까? 그것은 예술성의 희생이 아닐까? 브레히트가 실제 연극에 적용한 것들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볼 일이다. 그것이 예술성의 상실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다른 부분에서도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서사극 이론
마리안네 케스팅 외 지음, 김기선 옮김/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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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러의 『독서의 기술How To Read a Book』은 기술적인 독서법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여기서 독서를 초급 독서, 점검 독서(골라 읽기 혹은 예비독서), 분석 독서, 신토피칼 독서로 나누고, 신토피칼Syn-topical 독서의 유용성을 말하고 있다. 능동적인 면을 갖고 있지만 대개 수동적이기 쉬운 독서활동이 신토피칼 독서에 이르면 거의 능동적인 태도로 바뀐다고 한다.

그의 독서론이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다. 가령, 논문이나 에세이를 하나 쓴다고 할 때, 누구나 그가 말하는 신토피칼 독서를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독서는 대개가 그 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도 그것을 '신토피칼 독서의 패러독스'라고 하며 인정하고 있다.

신토피칼 독서의 패러독스(역설)에 대해서는 앞에서 말하였다. 즉, 읽어야 할 책을 모르면 신토피칼하게 읽을 수는 없으며, 신토피칼하게 읽지 못한다면 무엇을 읽어야 좋을지를 모른다. 이것은 신토피칼 독서의 근본 문제이다.



덧) '신토피칼 독서'라는 용어는 '주제통합적 독서' 정도로 옮겼으면 좋았을 것이다.


독서의 기술
모티머 J.애들러 외 지음, 민병덕 옮김/범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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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일간 틈나는 대로 복거일의 『소수를 위한 변명』을 읽었다. 아마 출판해인 1997년 이전에 신문이나 잡지에 게제된 글을 모은 책일 것이고, 그런 글들이 시사時事적인 부분과 관련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현재적으로도 꽤나 중요한 글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각각 독립된 글들이라 중복되는 부분도 얼마간 있었지만 책 전체를 꿰뚫는 생각은 자유주의와 합리성이었다.

모든 분야를 경제적 자유주의와 합리주의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일관성이 있고, 끌리기까지 했다. 교장의 권위주의적인 태도가 문제가 되어 기간제 교사가 피해자인 것이 분명한 사건임에도 죽음 앞에서는 시야가 흐릿해지는 사회를 보면서 많이 답답해져 있던 터라 그런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화는 더 잘 이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거부감이 드는 측면도 있었다. 교육도 수능점수를 토대로한 배급제에서 완전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나, 대통령 후보로 외국인은 어떤가 하는 의견들은 쉽사리 받아들여질 수 없는 부분이다. 사회의 구성원들을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합리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경제인으로만 구분짓는 것 같아서 조금 기분이 나쁜 면도 있었다.

아마 그의 '영어공용어화'는 그런 의미에서 접근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어를 배우는데 엄청난 비용이 듦에도 그것이 국제사회에서의 통용율은 거의 0%에 가까운 상황이니 경제적인 측면만 생각하면 그것은 낭비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 것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거기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합리적인 사고인 이상 비판할 수는 있지만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런 선택은 그가 제목으로 내세운 '소수'를 배제하기 쉽다는 생각은 든다. 어떤 재화가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만 소비된다는 것은 그 재화가 효율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재화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적은 것이다. 때문에 수익성만을 가지고 그것을 재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닐까 한다. 물론 그는 그렇다면 그 수요가 적은 재화는 가격을 올리면 된다고 시장의 논리를 말하겠지만, 생필품이 아닌 이상 그 재화가 가격탄력성이 적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정치나 사회준거에 관계된 글들은 무척 재미있게, 탄복하면서 읽었지만 뒤로 갈수록 경제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와 지루하긴 했다. 그것은 내가 경제에 무관심하다기보다는 무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때가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복거일의 『소수를 위한 변명』은 약간의 거부감을 인정하고서라도 좋은 책이고 이 시점에서 꼭 필요한 책이라고 하고 싶다.

소수를 위한 변명
복거일 지음/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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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를 왜 읽는가" 하는 것은 어리석은 물음이다. 묻는이가 만화를 한 번도 읽지 않았다면 모르되 그도 만화가 재미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화가 왜 재미있는가' 하는 물음은 쉽게 대답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프랑스 만화 '아스테릭스'에는 유쾌한 재미가 있다. 그 재미는, 우데르조의 표현대로라면, 대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데서 얻어지는 재미이다. 누가 만화가 상상력을 저하시킨다고 했던가? '아스테릭스'의 즐거운, 뒤집힌 상상력은 창조적 사고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아스테릭스'의 특징은 무엇보다 명언과 속담과 관련된 언어유희와 역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행하는 패러디, 그리고 캐릭터 강한 인물들의 반복되는 행동에 있다고 생각된다. "'아스테릭스'가 왜 재미있는가" 에 대한 답은 이 세 가지 특징이 모두 대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데서 얻어진 결과라는 것을 생각하면 자명해질 것이다.


본래 프랑스인들은 유머와 기지, 위트가 풍부하다고 전해진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유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그들에게는 말[言語]이라는 훌륭한 도구가 있다.

프랑스인들은 같은 회문回文palindrome이나 <나의 첫 번째 것은 수다스럽습니다. 나의 두 번째 것은 새입니다. 나의 세 번째 것은 까페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셋을 모두 합치면 과자가 됩니다. 나는 무엇일까요?>하는 샤라드 게임 등과 같은 언어유희를 즐긴다. 특히 샤라드 게임은 『글래디에이터가 된 아스테릭스』편에 그대로 실려 있다. <작을래의 반대. 여동생이 나보고 이거!, 그리고 줄리어스 카이사르는 이것을 아주 좋아해. 이것은 뭐게?>

그 밖에 <거 알렉상드랭을 읊는군.>에서 볼 수 있는 동음이의어pun를 이용한 언어유희도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아스테릭스'에서의 언어유희의 백미는 속담과 명언을 이용한 언어유희라 할 수 있다. 그런 언어유희는 '아스테릭스' 시리즈의 첫 페이지에서부터 시작된다. 라는 라틴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병사(<무슨 소리야?>)를 그려내면서 <라틴어를 잊어버리다y perdre son latin.>는 불어속담의 기원을 나름의 유머로 해석해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나 <주사위는 던져졌다Alea Jacta Est!>같은 표현은 1, 3권에서만 각각 두 번씩 인용되면서 그 말의 무거운 역사성을 털어버리고 일상성을 획득하기도 한다. 심각한 말을 천박하고 풍자성짙게 패러디하면서 대상을 희화화시키는 것이다. 마치 60년대 초 우리나라의 "국민이 원한다면, 내가 한 잔 사지."하는 유행어처럼 말이다.

또 <괜찮군! 그러나 맨날 옆모습만 보는 게 지긋지긋해! 다른 각도 없나? / 하지만 현대미술은…>하는 클레오파트라와 이집트 화가의 대화는 고대(?) 이집트 미술의 '정면성의 원리'를 한 컷으로 설명하면서 유머감각을 발휘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언어유희들은 고대를 무대로 하여 진행되는 '아스테릭스'의 적극적인 역사 개입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만화 '아스테릭스'는 고대의 문명을 그대로 재현representation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스테릭스' 자체가 새로운 문화의 표현presentation이기도 하다. 때문에 '아스테릭스'의 수많은 텍스트들이 앞서의 명언이나 속담의 패러디텍스트로 기능하는 것으로, 그것은 또한 '아스테릭스' 내에서 새로운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상호텍스트성intertexuality을 환기하고 있기도 하다.

가령 <피라미드 꼭대기에서는 2000년의 세월이 우릴 내려다보고 있다!>는 파노라믹스 사제의 말은 사실 나폴레옹의 명언에 대한 패러디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만화의 배경은 나폴레옹 시대보다 2000년이나 앞선 것이므로 만화의 서술을 따라간다면 나폴레옹이 파노라믹스 사제의 말을 패러디하고 있는 것이 된다. '명언'과 '명언의 패러디'가 상호텍스트성을 가지고 서로의 텍스트를 전경화시키고 대화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만화의 대전제마저도 허구이다. <때는 기원전 50년, 로마군이 골족의 땅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 …하지만 모두를? 천만에! 못 말리는 골족 전사들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 하나만은 아직도 침략자 로마군을 향해 끈질기게 저항하고 있었으니[…]>하는 시리즈 각 권의 서두는 거짓이다. 실제로는 골족의 땅 전체가 지배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만화를 읽는 누가 작은 마을 하나가 남아 끈질기게 저항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 수 있을까. 우데르조의 표현대로 '아스테릭스'는 고대 역사의 한 패러디―'아스테릭스' 버전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오벨릭스가 스핑크스의 코를 부숴뜨리는 장면도 그 유머러스한 패러디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스핑크스의 코를 오벨릭스가 망가뜨렸을 리는 없다. 오벨릭스는 허구의 인물이니까. 하지만 『아스테릭스, 클레오파트라를 만나다』를 읽고 난 독자들은 스핑크스의 코를 오벨릭스가 부숴뜨렸다는 유머를 유머러스하게 '믿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역사에의 개입을 통한 패러디는 등장인물들의 강한 캐릭터에 의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스테릭스'의 등장인물들은 침략자 로마군과 싸우는 전사의 이미지에 걸맞는 캐릭터는 갖고 있지 않다. 재능이 의심스러운 음유시인 아쉬랑스투릭스를 비롯하여 먹을 것만 찾고 말썽만 부리는 오벨릭스는 물론이고 가장 근엄해야 할 사제도 로마군을 속여 곯려주는데 일조하기?하고(<딸기를 구해오라고 하신 것도 압권입니다>), 위풍당당한, 마을의 우두머리 아브라라쿠르식스마저 '하늘이 무너질까'하는 기우杞憂에 두려워한다. 주인공 아스테릭스도 안마사를 때리는 등의 황당한 일을 저지른다.

그러나 이런 모자란 것 같은 캐릭터들이 만화 속에서는 오히려 효과적으로 기능하여 줄거리를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앞서 예로 든 스핑크스의 코가 부서진 이야기는 오벨릭스의 악동같은 캐릭터에 의존하고 있는 패러디이다. 또 아쉬랑스투릭스는 재능이 의심스러운 음유시인이지만 『글래디에이터가 된 아스테릭스』는 그 아쉬랑스투릭스가 잡혀감으로써 벌어지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캐릭터들은 우리가 전사라는 데서 상정하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들이다. 아마도 이런 캐릭터들이 등장한 이유는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는' 데서 얻어지는 재미때문일 것이다. 우데르조 스스로 유머작가humoritste는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만화는 재미있다"는 명제를 반박할 근거를 우리는 여럿 가지고 있다. 흔히 '교양만화'라는 면죄부 하에 만들어지는 유익하지만 재미없는 만화를 이미 몇 번 보아왔으니까. 그렇다면 이쯤에서 명제를 바꿔보면 어떨까? "만화는 재미있어야 한다."

'아스테릭스'는 유익한 교양에 대해 지시적인 설명을 그치고, 대신 그것을 배경으로 나름의 역사와 나름의 말, 나름의 캐릭터를 그려내고 있다. '아스테릭스'가 여타의 '교양만화'와 대비되는 점은 바로 그것이다. 만화 '아스테릭스'는 가르치려는 만화가 아니라 즐거움과 재미를 위한 만화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창조적인 상상력에서 비롯된 즐거움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지. 심각한 표정과 심각한 말투를 하고 등장하는 억압기의 문학작품들은 식상함과 지겨움만을 줄 뿐인데, 이쯤에서 좀 다르게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지는 않을지. 새로운 문화의 제시presentation가 나올때는 되지 않았는지.

*문학과지성사의 '아스테릭스' 독후감공모에 응모한 글
일반인부문 당선


골족의 영웅 아스테릭스
르네 고시니 글, 알베르 우데르조 그림/문학과지성사

Posted by 엔디
'작가 이문열'의 이름이 씌어진 소설을 사는 것은 내게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옛적에 읽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금시조」따위의 소설들의 화려한 내용들 사이에서도 상상력을 결한 그의 작품들은 내게 관념을 주입하기에는 이로웠을 지 모를 정도의 소설이었다. 실제로 「금시조」를 가지고 '미학입문'강의에서 B정도의 학점을 따낸 기말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매 수업시간마다 잠을 자고 노트필기는 커녕 교재도 제대로 읽지 않은데다가 기말시험에 30분이나 늦었던 것을 헤아린다면 내 보고서가 강의자의 마음에 썩 비켜가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 보고서는 하드디스크 오류로 사라져버렸다.)

실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가진 허무함 때문에 오랫동안 이문열 독서를 기피해왔었다. 그것은 내게 어떤 빚으로 자리잡았던 것 같다. 이문열에 대한 가당찮은 칭찬이 나올 때에도 나는 그에 동의하지 못하면서도 반론을 내지 못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시를 쓰는 한 학우와의 대화 중에 이문열에 대한 칭찬이 들릴때에 나는 평소 자주 논리성을 결한 채 발설되는 그의 말을 이래저래 반박한 적이 있었는데, 그 학위가 내세운 당위의 방패는 이런 것이었다. "읽고 말하라."

그래서 숨책에서 『젊은날의 초상』신판을 발견했을 때, 부랴부랴 사두었던 것이다. 그러고서도 건드리고 싶지 않아 두었다가 어느 날 역시 시를 쓰는, 내가 늘 아까의 학우와 닮았다고 느끼는 후배에게 심심풀이로, '무얼 읽을까'하고 물었던 것인데 대답이 이 책이었다.

그러나 학우의 당위의 방패를 넘으려는 부지중의 내 노력이 있었는지, 내 성에의 이문열의 위상은 그대로이다. 내가 보기에 『젊은날의 초상』은 작가가 자신의 관점에 대해 늘어놓는 장광설의 변辯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있어, 이러이러한 일과 이러이러한 일과 이러이러한 일을 겪고서 이러이러한 것을 겪었으니 당연히 그 사람은 이러이러한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겠는가."를 길고 흥미롭게 늘여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한데, 그것은 참 위험한 생각이다. 위험하다 함은, 작가가 그 작품 구성을 언제부터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작품을 쓸 당시에는 자기 나름의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립한 후이기 때문이다. 다들 알겠지만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기란 생각과는 달리 엄청나게 힘들다. 소소한 문제, 이를테면 미감味感취향에 있어서도 자신의 자기에 대한 생각은 그다지 옳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생각에 자신을 갖고만다. '나는 생선을 싫어해'라는 거듭된 자기 암시는 진실로 그를 생선혐오자로 만들어버린다. (이건 내 경우이다. 어릴 적부터 가자미와 갈치를 좋아했던 나는 어느 때부터인가 이유없이 저런 자기암시를 걸었고 지금의 나는 회를 제외한 생선은 거의 먹지 않는다.)

일종의 연작소설로 볼 수 있는 『젊은날의 초상』은 「그해 겨울」의 발표 연후에 「하구」→「우리 기쁜 젊은 날」의 순으로 발표된 것이다. 발표연대순으로 읽으면 현재 자신의 관점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경치를 먼저 보여 독자들의 끄덕임을 이끌어내면서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그 성급함을 보완하려고 앞의 소설들을 발표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신세이야기를 즐기는 어떤 사람이 이러저러한 말을 내뱉고나서, 누군가의 어떤 지적에 "아, 맞다, 이걸 빼먹었다."하며 앞의 이야기를 그제사 던져주는 모습말이다. 실은 이것은 나처럼 말재주없는 사람의 전유물인데 이문열은 그걸 아주 훌륭하게 흉내내고 있다. 게다가 그걸 줄거리순으로 주욱 꿰었을 때에 주는 느낌은 더욱 강렬하다.

허망함. 이 주였다, 작품의 꼬리에 붙일 말이란.

다만, 책의 뒷편에 더부살이하는 중편「들소」는--물론 몇 가지 한계를 접어준다는 전제하에서--아주 흥미로웠다. 앞의 세 작품에서 느끼지 못했던 상상력이 거기에는 보였다. 실상을 말하면 「금시조」도 여기 뭉뚱그려 비판받을 그런 작품은 아니다. 훌륭하다.

젊은 날의 초상
이문열 지음/민음사

Posted by 엔디
- 정소남은 난의 노근을 드러내어 亡宋의 한을 그렸고, 조맹부는 훼절하여 元에 출사했지만, 정소남의 난초만 홀로 향기롭고 조맹부의 송설체가 비천하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未堂徐廷柱西紀二千年十二月二十四日聖誕節前夜死去. 當時我年二十一也.

서정주는 흔히 '생명파'로 명명되는 시인이다. 과연 그의 시에서는 생명에 대한 집착과 열의가 지속적으로 나온다. 생명이라는 것에 대한 계속되는 탐구는 우리 삶의 의미를 밝혀줄 것도 같다. 그의 초기시에 보이는 여러 시어들은 젊은 날들의 타오르는 생명에서 점차로 나이먹어가는 생명의 모습을 보여준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기퍼도 오지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뿐이었다.
 어매는 달을두고 풋살구가 꼭하나만 먹고 싶다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 아들.
 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도라오지 않는다하는 外할아버지의 숯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눈이 나는 닮었다한다.
 스믈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
 어떤이는 내눈에서 罪人을 읽고가고
 어떤이는 내입에서 天痴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찰란히 티워오는 어느아침에도
 이마우에 언친 詩의 이슬에는
 멫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꺼있어
 볓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
 병든 숫개만양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

              - 「自畵像」 全文

서정주의 첫 시집인 『花蛇集』은 그 강렬한 이미지와 시어들 때문에 인상적이다. 강렬한 이미지는 주로 시각적 이미지, 그 중에서도 붉은 색의 이미지들이다. 그 이미지를 대표하는 개별어들은 [피, 석류, 능금, 입술(입설), 도화桃花(복사꽃), 오디, 볽은 댕기, 볽은 꽃밭, 볽으스럼한 얼굴, 닭벼슬, 붉고 붉은 눈물, 붉은 우름, 진달래꽃, 산호珊瑚]들이다. 이에 대비되는 흰 색의 이미지나 푸른 색의 이미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붉은 색의 광기어린 지배에서 이 시집이 벗어나는 것 같지는 않다. 이런 붉은 색은 대체로 젊은 시절의 강한 성욕의 지배를 내보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성욕의 표현들은 「花蛇」에서 "石油 먹은 듯…… 石油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로, 「桃花桃花」에서 "푸른 나무그늘의 네거름길우에서 / 내가 볽으스럼한 얼굴을하고 / 앞을볼때는 앞을볼때는 // 내 裸體의 에레메야書 / 毘盧峰上의 强姦事件들."로, 「雄鷄(下)」에서 "어찌하야 나는 사랑하는자의 피가 먹고싶습니까" 등으로 나타난다. 이런 강렬한 성욕은 대체로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기에 마련이다. 그것도 "사랑하는 자의 피가 먹고 싶"을 만큼 강렬하다면 그 죄책감은 더하리라. 「문둥이」에서는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우름을 밤새 우렀다.

        - 「문둥이」 全文

로 표상되어 있다. 하지만, 그 죄책감에도 불구하고 문둥이는 애기를 먹는다. 그것은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편에서 그의 강렬한 붉음을 조절하는 장치가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桃花桃花」에서의 "나의微熱을 가리우는 구름이있어 / 새파라니 새파라니 흘러가다가"나 「水帶洞詩」에서의 "흰 무명옷 가라입고 난 마음 / 싸늘한 돌담에 기대어 서면 / 사뭇 숫스러워지는 생각, 高句麗에 사는듯 / 아스럼 눈감었든 내넋의 시골 / 별 생겨나듯 도라오는 사투리."이 대표적이다(강조 인용자). 무섭고 강렬한 붉은 작용에 푸르고 흰 반작용이 있었기에 서정주는 페시미즘에 침윤되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의 붉은 강렬함은 두 번째 시집 『歸蜀途』에 가면서 "하눌ㅅ가에 머무른 꽃봉오리ㄹ 보아라", "뺨 부비며 열려있는 꽃봉오리ㄹ 보아라", "가슴같이 따뜻한 삼월의 하눌ㅅ가에 / 인제 바로 숨쉬는 꽃봉오리ㄹ 보아라"로 마무리된다.

두 번째 시집 『歸蜀途』에서 서정주는 한恨의 정서로 빠져들고 있다. 아마도 그의 강렬함이 충족되지 않아서, 아니 충족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리라. 그는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牽牛의 노래」)라는 한스러운 말을 내뱉고 있다. 표제시인 「歸蜀途」나 「푸르른 날」 역시 별리의 정한을 노래한 절창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처 단풍 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 「푸르른 날」 全文

하지만, 이러한 한 속에서도 그의 생명력만은 고스란히 간직되고 있다. "이 세상 밖이라면 어디에라도"라고 외치는 페시미스트들과는 사뭇 달리, 또 "죽지 못해 산다"는 한 섞인 체념과도 다르게 서정주는 여직껏 끊임없이 삶에의 욕구를 달려 왔던 것이다. 이런 삶의 욕구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한과 이별과 슬픔이 미치도록 자신을 지배했음에도 서정주는 어디에서 살아야할 이유와 목적과 당위를 찾았던 것일까?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라는 긴, 시의 제목에서도 서정주는 자문自問하고 있다. 그가 살고 싶어하는 이유는 "꽃으로 문지르는 행위" 때문이다.

 눈물로 적시고 또 적시어도
 속절없이 식어가는 네 흰 가슴이
 저 꽃으로 문지르면 더워 오리야

 아홉밤 아홉낮을 빌고 빌어도
 덧없이 스러지는 푸른 숨ㅅ결이
 저꽃으로 문지르면 도라 오리야

       - 「門열어라 鄭道令아」 부분

꽃으로 문지르는 행위, 그것은 한과 이별과 슬픔의 해소를 뜻하는 바, 치유를 말하고 있다. 『花蛇集』에서 보여졌던 흰색의 이미지와 푸른색의 이미지가 여기에서 또다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이 시가 서정주 시의 근원적인 무언가를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가 아픔을 안고서도 살아가려 애쓰는 이유는 그 아픔이 계속 치유되기 때문이며 그 자신도 치유에의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절망은 결국은 페시미즘으로 몰고갈 수도 있지만, 인간은 죽기 전까지는 배수진背水陣을 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결국은 죽기까지 희망을 간직한 채 사는 셈이 된다. 이장희를 비롯한 페시미스트들이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마지막 절망인 죽음을 택하는 것과는 다른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서정주는 이런 자신의 삶에의 욕망을 확인하고서 다음 시집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그제서야 그에게는 일말의 평화랄 것이 찾아오고 안정을 찾는다. 그의 생명지향은 드디어 나이먹기 시작한 것이다.

『徐廷 柱 詩選』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은 안정감이다. 그는 이제 「菊花 옆에서」나 「無等을 보며」 같은 작품을 내어놓는다. 마음에 안정과 깊은 사색이 없으면 쓰지 못할 내용들이라 생각한다. 그는 이제 자신을 비우는 법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시방 제 속은 꼭 많은 꽃과 향기들이 담겼다가 븨여진 항아리와 같습니다."(「祈禱 壹」) 자신을 비우면 세상 모든 것이 조화롭게 보인다. 그는 드디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새로 알게 되고,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그 사랑은 자연과 별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요 조화에 대한 경탄이요 감화다. 그는 슬픔을 알고 있지만 슬픔을 가르치지는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上里果園」). 그가 얻은 결과가 너무 상투적이고 예사롭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그가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서 얻은 결과일테니까.

 신령님…….

 처음 내 마음은
 수천만마리
 노고지리 우는 날의 아지랑이 같었읍니다

 번쩍이는 비눌을 단 고기들이 헤엄치는
 초록의 강 물결
 어우러저 날르는 애기 구름 같었읍니다

 신령님…….

 그러나 그의 모습으로 어느날 당신이 내게 오셨을때
 나는 미친 회오리 바람이 되였읍니다
 쏟아져 네리는 벼랑의 폭포
 쏟아져 네리는 쏘내기비가 되었읍니다

 그러나 신령님…….

 바닷물이 적은 여울을 마시듯이
 당신은 다시 그를 데려가고
 그 훠―ㄴ한 내 마음에
 마지막 타는 저녁 노을을 두셨읍니다.
 그러고는 또 기인 밤을 두셨읍니다

 신령님……

 그리하여 또 한번 내위에 밝는 날
 이제
 산ㅅ골에 피어나는 도라지 꽃같은
 내 마음의 빛깔은 당신의 사랑입니다

          -「다시 밝은 날에」全文

미당 시전집 1
서정주 지음/민음사

Posted by 엔디

"모던Modern." 근대로 혹은 현대로 일컬어지는 말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가 "모던"일까? 언제부터가 "현대(혹은 근대)"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시대일까? 현대성의 형성이라는 이 테마는 울분섞인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비단 우리의 근·현대사상 문제일뿐만 아니라 "양이洋夷"의 침범에 무릎꿇고 말았던 동아시아 전체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얼마 전, 사이덴스티커Edward Seidensticker가 쓴 『도쿄이야기(原題:Low City, High City)』 가 출간되었다. 야마노테(동경 중심부)와 시타마치(동경 외곽의 서민 거주지)를 나누어, 메이지유신과 메이지 천황으로 상징되는 일본의 근대화를 작은 문화상文化象에서부터 그려내고 있었다. 당시 일인들이 개항을 받아들이는 태도에는 데카당스decadence한 것들이 묻어나 있기도 하였고, 전통에 대한 혐오로까지 전이된 근대화에로의 열망같은 것도 나타나 있었다. 예를 들어 도쿄에 대지진이 났을 때, 어느 작가는 이렇게 생각했다고도 하였다:

나는 그 대지진 때에, 자신이 살았다고 깨달은 찰나 요코하마에 있는 처자의 안부를 걱정했지만 거의 같은 순간에 '어이쿠, 이제는 도쿄가 좋아지겠구나!' 하는 환희가 솟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샌프란시스코는 10년이 지나자 예전보다 훌륭한 도시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도쿄도 10년 뒤에는 멋지게 부흥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야말로 상하이 빌딩이나 마루노우치 빌딩처럼 외연한 대건축물로 전부 채워지게 될 것이다.
한데, 이러한 현재의 시각에서 본다면 상당히 삐뚤어진 듯한 시각은 도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서울에도 똑같은 모습이 있었다. 그것을 "현대성(근대성)"이라고 부른다면 1910-1930년대가 바로 우리에게 있어서의 "현대성(근대성)의 형성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광수의 『무정』에서 볼 수 있듯, 당시의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바로 모더나이제이션이였다. "신新", "신흥新興", "모던" 등에서 보여지는 모습이 바로 그런 것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근대화"라는 것이 제국주의를 통해 유입된 진보사관 때문인지 오로지 서구화만을 의미할 따름이었다. 당시의 개명한 사람들은 그래서 계몽적으로 그것들을 주입하기에 바빴고, 초조해하기까지 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저들을…… 저들이 아니라 우리들이외다. 저들을 구제할까요?"
하고 형식은 병욱을 본다. 영채와 선형은 형식과 병욱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병욱은 자신이 있는 듯이,
"힘을 주어야지요! 문명을 주어야지요!"
"그리하려면?"
"가르쳐야지요! 인도해야지요!"
"어떻게요?"
"교육으로, 실행으로."

이광수, 『무정』
영국에 『London』이 있는 셈으로 조선에 『서울』이 생긴 것을 나는 몹시 반가워하였다. 이 우연한 일이 아니오 뜻이 깊은 것이라 생각하였다. 이 무슨 이상한 좋은 징조가 아닌가 하였다.
< 서울>이여 <서울>이여. 네 부디 영국의 런던처럼 되어라. 너 <서울>로 말미암아 조선을 영국처럼 되게 하여라. 그를 문명과 자유와 평화로 뒤덮게 하여라. <서울>이여 <서울>이여 너는 하늘로 하강한 천사로다.

추호, 「서울잡감」, 『서울』1920년 4월호.
이러한 초조함의 원인은 무엇일까? 진화란, 진보란 어떤 종류이든 그 나아감evolution에 대한 근거를 갖게 마련인데, 그렇다면, 나아가는 대로 가만히 두면 될 것이 아닌가? 어째서 이렇게도 초조해하는가? 그것은 근대화가 제국주의 논리와 얽혀있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의 계몽운동이나 문명론은 "사회진화론이라는 사상을 간접적으로 수용한 측면"이 짙었다. 그런데, 이 "사회진화론"이라는 것이 사실 "제국주의에 침략의 논리를 제공했던 사상"이었다. 이에 따르면 "조선은 정복당해야 할 운명"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개화 지식인들은 조선의 문명화, 근대화를 급박하고 초조하게 이루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한 문명화, 근대화는 곧장 물질문명과 과학문명으로 나타났다. 중절모, 기차, 축음기, 자동차로부터 수풍댐으로 상징화되던 전기, 천리 밖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던 라디오 등은 물질-과학 문명의 총아로 생각되었다. 따라서 당시에는 마치 "우리의 살길은 과학"이라는 듯이 잡지에 하루가 멀다하고 과학 이론과 원리를 설명하는 글이 실렸다. 심지어 가장 최첨단이라 할 수 있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相對律公理)까지 실렸다. (당시는 아직 히로시마 원폭 이전이었다.) 1922년 6월 『신생활』에 실린 신태악의 「대화 신흥물리」에서는 정치인과 과학자를 대비시켜 과학자의 우월함을 내비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학문물과 신문기사들은 과학을 받아들이고 대중화하는데 성공했지만, 그러나 그 근본적인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그것은 "자생적인 물질의 생산과 과학에 대한 연구가 부진했던 식민지적 상황 속에서 현대가 주었던 가장 놀랍고 찬란한 빛은 항상 밖으로부터 비추어지기만 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서양에 경도되기만 할 꺼리일 뿐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식인들은 소위 데카당스에 빠져 허우적대기 일쑤였다. "식민지 지식인"이라는 명패가 주어진 그들은 "치자痴者, 약자弱子, 비겁한 자, 무능력한 자"라는 욕을 들으면서도 "이 세상에는 나 이상의 재자才子도 없고 강자强者도 업다"고는 "혼잣말"로밖에 중얼거릴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반면 대중은 이미 물질 문명에 중독되어 "활동사진 배우의 프로필"이 그들 대화의 중심이었으며 식민 지배자들은 이런 상황에 맞게 이데올로기 전파의 수단으로 활동사진을 활용했다.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되 하위 문화에만 침윤되어 있는 이 모습들에서 서구에 대한 오도를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의 서구란 「모던 심청전」에서 보여지듯 하나의 "색향色鄕"일 따름이었다.

여성의 경우에는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해 교육을 받은 탓인지, 서구에 대한 위와 같은 오도는 적은 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도 페미니즘을 수용하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그 근원지인 서양을 지나치게 동경하고 우러러본 탓으로 서양을 과대평가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나혜석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구미여자는 대체에 있어서 동양여자에 비하여 색이 희고 키가 크고 코가 높고 눈이 깊으며 그 행동은 분명하고 진취성이 많으며 행동이 많고 상식이 풍부하며 매사에 총명하다... 동양남성은 딱딱하고 거칠은 반대로 서양남성은 부드럽고 친절하다. 동양여성은 의지가 박약한 반대로 서양여성은 의지가 강하다. 동양남성이나 여성은 몰상식한 반대로 서양남성이나 여성은 상식이 풍부하다.

나혜석, 「반도여성에게」, 『삼천리』1935년.

한국 여성 해방의 기수라 할 만한 나혜석의 이 글에서 강조된 부분을 보면 당시의 신여성들이 서양을 얼마나 환상적이고 유토피아적으로 인식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는 탄원서는 몇 가지 점에 있어서 당시의 사회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첫째, 기생과 다방마담 등을 포함한 새로운 인간군들이 지녔던 첨예한 현대적 의식과 행동. 둘째, 현대화를 위한 투쟁의 대상이 봉건왕족이나 보수적 권력이 아닌 식민통치자였다는 비참한 현실. 셋째, 현대화의 준거가 분명히 서구(혹은 일본)에 있었다는 점이다. 이 중, 첫째와 둘째는 해방 이후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할 수 있지만 세 번째의 경우는 아직까지도 계속되는 점들이 보여진다.


20세기초의 우리 사회의 여러 상황들을 살펴보다 보면 놀라우리만치 현재와 닮아있다. 그러니까 20세기초의 근대와 오늘의 우리, 즉 현대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발견된다. 그것은 몇 가지 특징적인 것으로 요약가능한데 첫째로는 준거 집단reference group이 구미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서양 나라의 도시들과 서울을 비교하는 것에서부터 서양의 남녀가 우리 남녀보다 우등하다고 느끼는 것에까지 퍼져있었던 사상이다. 그것은 오늘날까지도 없어지지 않고 소위 "선진국"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는 것이 보여진다. 그것은 다음 인용한 기사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연세대의 경우 9월경 두뇌한국21사업단장 등 7명으로 인사평가위원회를 설치해 연구업적에 따른 보상제도를 실시키로 했다. 또 승진기준을 강화해 부교수의 경우 해외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수를 현행 2편 이상에서 10편 이상으로, 정교수는 3편 이상에서 20편 이상으로 각각 높이기로 했다.

『동아일보』, 1999년 7월 26일.
인용문의 요지는 "해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으로 교수를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즉 "선진국"의 학자들이 보는 잡지에 논문을 많이 게재하면 우수한 교수이고 그렇지 않으면 우수하지 못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논문의 "게재수"로 교수를 평가하겠다는 것은 얼치기 서양 흉내내기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학자들이 지난 5년간 발표한 논문 가운데 70퍼센트는 발표 후 한번도 인용되지 않았다."(연세춘추 2000년 11월 20일)

둘째로는, 지식인들의 계몽주의이다. 이광수의 『무정』이후로 "몽매"를 깨우기 위한 지식인들의 지난한 노력은 문맹률이 3%라는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다. 학자들은 외국의 이론을 배워와서 이론의 "선교사" 노릇을 하고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자기가 아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책을 낸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관념적 개조론을 부르짖던 1900년대 초반처럼 학생들의 "정신을 개조"하려고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셋째로는, 대중들의 하위 문화에의 깊은 침윤이다. 당시 지식인들의 안타까움 속에서도 대중들이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것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당시의 여학생들처럼 지금의 여학생들도 영화배우·가수 등의 "꿈의 직업"을 장래 희망으로 쓰고 있다.
영화가 보다 대중적인 장르로 확산되자 '조선의 나이어린 여성들은 하등의 민족적으로나 계급적 의식이 없이 공상적 푸치뿌르(쁘디 부르주아) 심리에서 스크린에 나타나는 미모와 고흔 목소리에 유혹되여' 영화배우로 나서려 했다.

김진송,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 현실문화연구, 1999, 164쪽.
MBC 청소년 라디오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가 최근 서울 중고교생 5백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학생들 47%가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개성 발휘 62% △화려해서 27% △짧은 시간에 큰 돈을 벌어서 9% 순.

『동아일보』1997년 12월 8일.
이러한 키치Kitsch에 대한 집착은 상당부분 첫째의 서구문화에 대한 경도에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그것도 당시와 현재의 공통점이며 둘을 잇는 끈이다. 이에 관련하여 지식인들은 그때도 지금도 키치 비판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를 통하여 살펴본 것은 흔히 "근대"라고 불리는 1900년대 초반의 모습과 "현대"로 구분짓기도 하는 현재의 모습이 실상은 놀랄만큼 똑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에 우리가 가졌던 근대의 이미지는 '척화비', '불평등조약', '개항', '시민의식의 성장', '자본주의 문물의 수입'이라는 문구와 말로 대표되는 매우 추상적인 모습이었다. 현대와 구별되고 그렇다고 봉건시대인 중세나 근세와도 같지 않은 정체불명의 시대였다. 현재까지의 근대화, 현대화에 대한 연구는 이런 현상들과 담론들을 그대로 담아내지 못하였다.

최근 '신문화사the new cultural history'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역사 연구의 바람이 불고 있다. 실제로 우리 역사의 근대는 어떤 관점에서는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의 비분강개한 흐느낌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황성신문』에 줄기차게 반복된 비로드와 중절모의 광고라는 또다른 코드로 주목되는 것이 마땅하게 느껴진다. 기존에 다루어졌던 근대화의 코드는 매우 논리적이지만, 또 관념적이기도 하기 때문에(관념과 논리 또한 근대화의 한 양상이다) 실제적인 사회학적 시각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보다는 오히려 "되도록 일상적이며, 구체적인 현상들에 대한, 시답지 않게 보이거나 시시껄렁한 것으로 취급되는 … 글자료"가 "근대성"을 더 잘 말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근대성"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대성"과 이음동의어로 취급될 수 있으므로 그들 "글자료"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현재를 바라보는 코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피터 버거도 역사학과 사회학의 구별은 매우 어렵다고 말하고 있기도 한데, 그것은 아마도 과거와 현재의 보이지 않는 끈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김진송 지음/현실문화연구(현문서가)

Posted by 엔디
** 이 글은 『한국의 정체성』(책세상)을 읽고 저자인 탁석산 氏에게 보낸 메일입니다.

메일을 보내고 한참동안 답이 없어 결국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홈페이지(폐쇄됨)"회원 게시판"에도 올렸으나 탁석산 氏는 "지쳤다"고 하시며 아직 답이 없으십니다. 탁석산 氏가 빨리 회복되시길 빌며, 오늘 갑자기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제목: 탁석산 선생님, 『한국의 정체성』을 읽고 질문드립니다.



참 늦게 읽었습니다. 요즘들어 한국적인 것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와 한국인으로서 한국적인 것에 대한 궁금함이 없을 리 없기에 무엇 하나 집어들고 싶었던 차에 선생님 책이 나왔습니다. 진작 읽었어야 했는데, 이 책을 누군가가 저에게 선물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늦게 읽게 되었습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다만, 한두 가지 제 생각과 맞지 않는 부분이나 질문이 필요하다 싶은 부분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1. "세계적"의 의미

제가 보기에 『한국의 정체성』은 한국의 정체성을 찾는 데에 그 본질적인 목적을 가지고서,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잘못된 "한국의 정체성"을 비판하는 방법을 채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첫 부분에서 (물론 필요에 의한 것이겠지만) 정체성의 의미와 순환논리의 오류를 경계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고 나서 결국 보편성에의 공격으로 현재 "한국의 정체성"의 주류를 이루는 생각들을 비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2장 말미에 가서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에서 "세계적"이라는 것은 사실은 "미국적"이라는 말의 위장명칭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몇 가지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제 생각은 그 말의 "세계화"는 "미국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의 "세계화"는 그야말로 '실재하는 개별자의 묶음' 그 자체의 세계화라고 생각합니다. 실재론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자랑스러이 소위 "세계화"라고 말하는 성공사례들이 그렇다는 뜻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바의 뜻은 이렇습니다.

우리나라의 대중문화를 상업적으로 혹은 내셔널리즘적으로 지배해나가는 언론들과 광고자들이 말하는 "세계화"란 비단 미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 아닌 모든 세계를 의미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춘향뎐』을 예로 들 수 있겠군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은 53회 깐느Canne 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한국 최초로 진출하였습니다. 그를 보고 한국의 언론은 『춘향뎐』을 극찬했습니다. 또, 최근 미국의 메이저 배급사가 이를 수입 배급하여 미국에서 상영되기도 하고 『LA타임스』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지요. 중요한 것은 이 두가지에 한국이 다 열광한다는 겁니다.

-- 여기서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는데요, 책에서 『카게무샤』가 깐느(칸) 영화제에서 수상했다고 이를 "미국적인 것에 부합했다"(127-128쪽)고 말씀하신 부분이 있는데 이는 잘못이라고 봅니다. 이는 유럽적인 것에 부합했다고 보는 편이 옳습니다. 실제로 유럽은 미국적인 것에 지속적으로 반발하고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EU도 그 중 하나일 것이고, 세계(?) 3대 영화제라고 하는 깐느,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 역시 유럽적인 것의 "보루"라고 보여집니다. 특히 프랑스는 자국어에 대한 거의 집착에 가까운 열심을 보여, 방송에서 영어를 쓰는 것조차도 규제(뚜봉Toubon 法)할 정도입니다. Franglais(프랑글레=Francais+Anglais=French+English)라는 조소섞인 풍자어도 생겼습니다. 실상 프랑스어는 과거 유럽공용어로 써도 될만큼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기도 하였고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카게무샤』가 깐느에서 수상했다는 것은 미국적인 것에 부합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도 아카데미에 외국어영화상 부문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미국적인 것을 비판하시면서 깐느와 베를린 영화제를 이와 대조시키심(129쪽)으로써 이를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계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라면과 소주의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두 제품이 모두 일본이나 동남아 등지에서 큰 호평을 받고 잘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동남아에는 가짜 한국라면이 판을 치고 있다고하는 보도도 접했습니다. 라면의 경우는 러시아나 남미에서도 인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이를 프랑스 포도주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문화 상품으로 봅니다. 라면은 본래 일본이 개발한 것이고, 소주는 아랍권에서 고려시대 들어온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만, 선생님 말씀대로 시원(始原)을 따지지 않고 이를 우리가 받아들여 좋은 상품으로 발전시켰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라면은 매운 음식을 잘 먹는 우리의 입맛에 딱 맞도록 발전된 라면입니다. 라면의 대중성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연령층에 관계없이 그런 것 같습니다. 소주도 마찬가지입니다. 헌데, 이는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일본과 동남아 그리고 러시아와 남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론과 광고자들은 이를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입니다.

『춘향뎐』과 라면, 소주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세계적"을 말하면서 미국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아닌 어느 나라에서 인정받더라도 그것을 자랑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상업적 목적을 위해 만든 "한국의 정체성"이라면 책에 쓰신 대로 미국적인 것에 대한 분석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미국적인 것과 부합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75쪽)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선생님이 생각하신 "우리가 생각하는 '세계적'이라고 말의 솔직한 뜻은 '미국적'인 것이다"라는 말에 그 근거를 두고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시장 규모가 가장 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흔히들 말하는 "세계적"이라는 말은 사실 "미국적"이 아니라고 하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세계화가 미국화를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에 저항하는 문화도 있습니다. 한때, 사회를 휩쓸었던 드 소쉬르F. de Saussure나 레비-스트로스C. Lévi-Strauss의 구조주의나 현대 철학과 문학, 문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포스트-구조주의는 모두 유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까? 유럽은 그런 의미에서 미국과 같은 유로 묶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미국의 영향력 그 자체는 충분히 인정할만 합니다. 실상 우리가 포스트-구조주의를 받아들인 것도 실상은 미국으로부터였다고 들었고, 심지어 제3(?)세계의 책들을 읽고자 하여도 영역된 것의 중역으로 읽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흔히들 하는 말대로 "인종의 전시장"이며, 때문에 다양한 관심과 생각들이 얽혀 있는데다가 막대한 경제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책의 경우만 해도 이런저런 것들이 죄다 출판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 모든 것들을 미국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누구도 미국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고, 미국인들 스스로도 그러하리라 짐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시장(특히, 지식 시장)의 요구에 따라 그것들을 만들었을 뿐입니다.


2. 한국적인 것으로서의 '한恨'과 '정情' 그리고 '흥興', '해학諧謔'

선생님께서는 '한'(69-70쪽)과 '정'(115-116쪽)을 한국적인 것으로 보는 데 대해 부정적이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한', '흥', '정', '해학'을 한국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한'을 한국적으로 보지 않으신 것은 김홍도의 그림을 보시거나 서울올림픽 식전 식후 행사를 보시고 그렇게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볼때도, 아니, 누가 보아도 거기엔 '한'이 없습니다. 김홍도의 그림은 '해학'을 가지고 있고, 서울 올림픽 식전식후 행사는 '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경우는 어떨까요? 서편제를 보면 거기에는 분명히 '한'이 있지 않습니까? 소설가 이청준 씨는 이를 채택하여 『서편제』에서 구현하였고, 임권택 감독은 영화 『서편제』에서 이를 영상화하였습니다. 거기에는 분명히 한이 있지요. 또, 우리 민요의 가락이나 이를 차용한 소월의 시에는 분명히 '한'이 담겨 있습니다.

또 선생님께서는 '정'이라는 것이 우리의 정체성이 될 수 없다고 하시면서 그 근거로 "만약 알래스카인이 우리 못지 않게 정이 많은 민족이라면"이라는 가정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은 발견해 내기도 어렵고 말하기도 어려운 만큼 한 마디로 단정지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이것'이다." 라는 말은 파시스트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저는 "우리의 정체성은 이것과 저것과 그것과 … 즉, '이것들'이다" 라는 말이 정확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제가 생각하는 바로는 "우리의 정체성은 한과 정과 흥과 해학"입니다.

한과 정과 흥과 해학은 물론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만큼 한을 가진 집단이 있고, 우리만큼 정이 두터운 집단이 있고, 우리만큼 흥있는 집단이 있고, 우리만큼 해학적인 집단이 또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우리와 같은 한, 정, 흥, 해학은 갖지 못할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중국의 애니메이션을 수묵의 농담으로 표현한 중국적인 색채가 물씬 풍기는 것으로 인식하셨습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수묵의 농담은 중국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수묵화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선생님께서 그것을 중국적인 것으로 보신 것은 그것이 수묵의 농담을 매개로 하여 표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적인 것과 무언가 다르다고 느끼셨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니까, 같은 수묵화도 중국의 수묵화와 한국의 수묵화는 다르다는 것이지요. 설령, 선생님께서 그것을 못느끼셨다고 하더라도 전문가가 보면 둘을 구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91쪽) 그렇다면 한, 정, 흥, 해학은 한국적인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혹시 선생님께서 한이나 정을 우리의 정체성으로 인정하기 싫으신 이유는, 그것이 내용적인 것이라는 데서 비롯된 것인지요? 선생님께서 중국의 수묵화를 말씀하시면서 내용이 아니라 형식도 중요하다 하신데서(71-72쪽) 저는 선생님이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문화에서 형식적인 것의 고찰도 적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서편제』와 『아름다운 시절』등의 영화에서 흔히 보여지는 롱테이크 기법 등이 동중정動中靜에서 정靜에 해당하는 한국적인 형식을 도입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헐리우드 영화를 동動에 비유할 수 있겠지요. 내용이란 늘 형식과 연계되는 것일 겁니다. 저도 중국의 한 애니매이션을 보았는데, 전체적으로 수묵채색화의 형식을 갖고 있었고 자연 친화적인 내용을 갖고 있었습니다(가령 목동이 피리로 새와 노래를 겨루었다든가 하는…). 생각해보면, 붓글씨로 로마자 알파벳을 쓰는 것은 어색하기만 합니다. 물론, 익숙해지면 괜찮아지겠지요. 컴퓨터 자판이나 펜글씨같은 것도 한글이나 한자를 위한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은 수용자의 측면이고 우리가 우리의 내용을 추구한다면 필연적으로 형식도 이를 좇아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3. 대중성과 정체성의 미래

선생님께서는 대중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아마도 다른 학자들과의 이견이 여기에서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생각인데요, 제가 보기에도 대중성이 중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만큼 대중성이 그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과거 복원이 중요하다는 것은 선생님께서도 인정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109-110쪽).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대중이 그것을 지지하지 않을 경우 그의 유지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요를 예로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민요는 조선시대 백성(대중)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였습니다(107쪽). 그런데, 지금의 대중들은 민요를 즐겨 부르지도 않고 이를 배척하기까지 하는 형편입니다. 실상 민요 애호가들은 현재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럴 경우 우리가 굳이 민요에 지속적으로 지원과 후원을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현재만을 생각했을 때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정체성"에서는 현재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과거나 미래 또한 경시되어서는 안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통탄할 부분이 있다면 바로 "전통과의 단절"일 것입니다. 이는 임화林和 등의 이식문화론을 비판한 이론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선의 근대화는 두 가지로 이루어졌는데, 그 하나는 일제에 의한, 일제를 위한 근대화였고, 다른 하나는 이를 이기기 위한 민족주의적 근대화였습니다. 이 둘은 모두 성급하게 이루어졌는데 전자는 조선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막무가내였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고, 후자는 아마 일본을 이겨야 했기 때문에 급해서 그랬을 겁니다. 이 과정에서 "전통과의 단절"이 일어났습니다.

이 "전통과의 단절" 때문에 우리의 민요는 사라져버리고 그 자리는 일본풍의 엔까(트로트)와 구미의 팝이 자리했습니다. 본래는 「꼴망태 아리랑」, 「둥글둥글 삽시다」등의 신민요가 당시 유행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북의 경우에는 이들 신민요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오데로 가 오데로 가~" 하는 노랫말로 유명한「벌목부의 노래」와 남쪽에서도 전국적으로 유행한 「반갑습니다」 등의 노래를 낳았습니다. 북은 나름대로 "전통과의 단절"을 비교적 잘 극복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는 민요의 대중적 지위가 매우 낮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전통 부활을 외치고, 이를 대부분 사람들이 따르는 때가 오지 않으리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민요는 과거 우리 정체성의 총체를 이루던 것이라고 보여지는데, 격세유전하는 것으로 알려진 문화는 언젠가 민요를 또다시 필요로 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민요부흥론을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의 유지보존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는 데에 민요의 구실이 극미하다는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만, 우리 문화의 풍부함을 지키고, 후에 있을 지 모를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또 과거의 우리의 정체성의 보존을 위해 민요나 판소리 등을 유지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정체성이라는 것?오늘날의 정체성과 전혀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란 두부처럼 갈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4. 마치며

선생님의 글 중에서 제가 이해할 수 없거나 제 생각과 맞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제게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질문이 거칠어 읽기 어려우실지 모르겠습니다.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5. 질문 한 가지 더

한국의 정체성과는 직접적으로 관계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건 잘 몰라서 하는 질문입니다. 한국의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가 샤머나이즈되었다(100-103쪽)고 하신 것을 읽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것을 한국인 정서의 핵심이라고 보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는 어떤가 하는 게 제 질문입니다. 다른 나라는 샤머니즘화되지 않았는지요? 한국의 샤머니즘이 유별난 것인가 하는 것이 제 질문의 중점입니다. 만약 우리 말고도 여러 나라에서 샤머니즘화되었다고 한다면, 샤머니즘은 우리 정서의 핵심으로 볼 수만은 없기에 드리는 질문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기복祈福은 누구나가 바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동서를 막론하고 대부분이 행복을 바라지 않습니까? 성서에서도 창세기에서 축복을 재산과 자식으로 일컫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P.s. 질문이 너무 많지요? 죄송합니다. 여담입니다만, 『한국의 정체성』 표지 마음에 드시는지요? 탈춤이 나와서... 대중성을 강조하는 선생님과는 안 맞는 듯 합니다만... ^^;; 이만 줄입니다.



한국의 정체성
탁석산 지음/책세상

Posted by 엔디
1.

인위적인 10진법의 수를 가지고 시대를 구분하는 일이란 항상 무리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일년year과 십년decade과 백년century이라는 단위가 실제 사람들의 시간 인식에 보편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으므로 10진법을 기준으로 한 시대 구분도 타당한 면을 지니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버릇삼아 '여성의 시대'라 일컬어지는 21세기가 왔다.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다.'라는 명제를 기준으로 20세기(와 그 이전 시대)를 바라보면 20세기(와 그 이전 시대)는 '남성의 시대'가 된다. 오랜 기간 동안 남성 우월주의(혹은 남성 중심주의)의 한 형태인 가부장제에 여성은 눌려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세기에 들어오면서 페미니즘의 노력으로 가부장제라는 옳지 못한, 억압적인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시도되었다.

한편, 20세기는 남성의 시대이면서 동시에 '국민 국가'의 시대였다. '제 2차 세계대전'으로 극명하게 나타나듯이 내셔널리즘이 활개를 치는 시대였던 것이다. 제국주의 열강(동맹국)과 연합국, 그리고 피해국 또는 식민지국가로 나뉘어지는 국민 국가의 시대에 내셔널리즘이라는 이데올로기는 국가와 개인의 방향을 한 길로 잡아버렸다.

그렇다면 기존의 억압적인 상태와 내셔널리즘의 관계를 알아보고 이것을 '젠더'와 연관시켜 살펴보는 시각이 생기는 것은 '여성학' 또는 '여성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당연한 일일 것이다. 국민 국가의 성립과 그에 따른 '국민화 프로젝트'에서 보여지는 내셔널리즘과 '젠더'로 일컬어지는 페미니즘의 입장이 그간 어떻게 협력되는지 혹은 갈라졌는지.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문제점을 가지는지. 또 그것이 현재에 이르러 갖는 의미는 무엇이며 현재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 문제들은 현재의 페미니즘 담론에서 중심에 위치하는 문제들일 것이다. 더욱이 2차 대전과 '젠더'를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문제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지어 20세기의 페미니즘과 내셔널리즘을 고찰하는 것은 현 상황에서 필수적인 문제라고도 보여진다.

2.

우에노 찌즈꼬 『내셔널리즘과 젠더』는 이와 같은 입장 속에서 '젠더사'라고 불리는 '역사 재해석historical revision'에 성공하고 있다. 저자는 먼저 일본 페미니즘사를 고찰하였다. 일찍이 서양문물을 들여온 일본에서는 페미니즘의 역사도 길었다(우에노 찌즈꼬 1999, 4). 하지만 근대 일본의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을 정리해보고 고찰해본 결과 '유감'스러울 정도로 참담한 결론이 내려졌다. 그것은 "일본의 페미니즘은 역사상 국민 국가를 초월한 적이 없었다"라는 것이다(우에노 찌즈꼬 1999, vi). 아마도 그 사실은 근대 일본의 위치와 관련되어 있을 듯 싶다. 일본은 당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이기고 "신세기를 구미 열강과 어깨를 겨룰 동양의 유일한 신흥국"으로서의 흥분과 열광에 싸여 있었다(백영서 1999, 8). 그러한 분위기가 일본과 일본인을 내셔널리즘에로 과도하게 기울게 하였고 페미니스트들도 결국 이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의 내셔널리즘이라는 것은 최근에 와서 '역사의 재심'이 이루어지면서 조망받게 된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의 전쟁협력이 최근 '텍스트 다시 읽기'를 통해 속속 발견되고 있다. 이치카와 후사에, 히라츠카 라이쵸, 다카무레 이츠에 등 일본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일본부인단체연맹'을 통해 전쟁에 협력하거나 '우생優生 사상'에 기초한 글이나 이나 '천황 찬미 문장'을 쓰면서 사상가로서 전쟁에 협력하였던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러한 페미니스트들의 궤적은 크게 '참가형integration'과 '분리형segregation'으로 나뉘어지는데, 그 둘 모두가 내셔널리즘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설정된 것이기 때문에 결국 진정한 의미의 여성 해방과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갖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분리형'은 동맹국들이 취했던 방식으로 '젠더'를 중심으로 총력전 체제하에서도 남녀의 역할분담을 무너뜨리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남성과 여성으로 국민 국가에서의 젠더 경계를 명확하게 함으로써 여성을 국민 국가의 '2류 시민'으로 묶어두게 된다. 즉, "'국가를 위해 죽을 수 있는 명예를 가진 사람'과 '국가를 위해 죽을 수 있는 명예를 갖지 못한 사람'으로 나뉘어, 전자만이 '국민' 자격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일본의 경우 여성 위생병이나 정신대를 통한 여성의 '봉사 기회'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후방 지원 등의 보조 업무를 위한 것이었다. 페미니스트들 중에서도 '차이파'는 '차이 있는 평등 different but equal'이라는 수사에서 보여지는 바대로 '분리형'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가형'은 연합국에서 적극적으로 채용했고 여성 또한 이에 응했다. '참가형'은 여성 징병이라는 특정한 제도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여성이 전투에 참가함으로써 '국가를 위해 죽을 수 없는 2류 시민'에서 '국가를 위해 죽을 수 있는 명예를 가진 진정한 국민'으로 위치를 바꾸려는 시도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전투에 참가하는 것으로 전시 중의 젠더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이것이 옳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참가형'의 한계는 분명하다. '남성과 동등하게'를 표방하는 '참가형' 입장에서는 기존의 남성 권력적인 억압형태에 편입되는 것으로 '1급 시민'이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저자에 따르면, 그렇게 된다 해도 스스로의 '여성성'의 상실이라는 크나큰 손해를 입게 되므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여성해방'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바로 여기서 '참가형'과 '분리형'의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는 페미니즘의 딜레마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 딜레마가 생겨나게 되는 원인을 저자는 내셔널리즘으로 보고 있다. 국민 국가라는 틀 속에서의 여성해방이라는 개념은 필연적으로 '국가에 참가함' 통해 '국가에 통합'되어버린 일본 페미니즘 역사의 전철을 밟게 될 뿐이다.

저자는 "그러므로 페미니즘의 목적은 '국민 국가의 초월'"이라고 보고 있다. 그것은 "'근대·가부장제·국민국가'라는 틀 속에서는 '남녀 평등'이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다 궁극적인 목적은 '여성'의 해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젠더' 경계를 허무는 것을 뜻하므로 '남성'의 해체와도 같은 뜻이 된다.

그러한 일본의 페미니즘 역사와 관련하여 가장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은 바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이다. 기존에 '위안부'는 범죄로 인식되지 않았거나 '젠더' 개념을 빼고 '민족' 개념만을 적용한 범죄로 인식되었다. 그러한 인식이 나타나게 된 배경에는 '가부장제' 아래의 한일 내셔널리즘이 관계하고 있다. 또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패러다임들이 제시되어 '위안부' 문제를 왜곡시키거나 축소시켰다.

대표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민족의 치욕'이라고 인식하는 '가부장제 패러다임'이 있다. 이 패러다임은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인식하여 '위안부' 여성들을 일본의 '전리품'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다. 이런 패러다임 하에서 한국 남성들은 '위안부' 문제를 '창피한 과거'로 인식하여 '위안부' 여성들이 과거의 사실을 말하는 것에 대해서 '민족적 자존심이 상처받는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 반대하는 경향조차 있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가부장제 패러다임'의 전형적인 모습이며 그 자체로 '위안부'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또하나의 성폭력이라 할 수 있다. 또, 이 패러다임 하에서는 '위안부' 여성들의 개인보상조차도 불가능하게 된다. 일본 정부가 "1965년 한일 조약으로 보상이 모두 해결되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의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스스로에게 속한다는 주체성이 인지됨에 따라 '가부장제 패러다임'의 모순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 밖에도 '위안부' 문제를 "우발적이고 비조직적인 '전시 강간'"으로 파악한 '전시 강간 패러다임', '강제 징용' 여부와 '위안부' 여성들의 '금전 수수'에만 초점을 두고 이를 '매매춘賣買春'으로 왜곡시킨 '매춘 패러다임', '매춘 패러다임'에 대항하려다 피해자의 '임의성'을 부인하는 딜레마에 빠진 '성 노예제 패러다임' 등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패러다임도 '위안부' 문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집어내지는 못하였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위안부'가 일본군에 '봉사'하였다고 인식하기도 하였다.

저자는 "그렇다면 이 '위안부' 문제의 '진실'은 무엇인가"를 묻고 그에 답하기를

단지 하나의 '정사(正史)'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역사 속의 소수자, 약자, 억압당한 자, 버림받은 자들……. 그것이 단 한 사람일지라도 '또 하나의 역사'는 씌어질 수 있다.

라고 말한다. 즉, '진실'이라고 여겼던 '위안부'를 보는 기존의 시각들에는 일정부분 모순이 있음이 여기서 밝혀졌다는 것이고, 이제 '위안부' 여성들의 증언에 따라 새롭게 씌어지는 '역사'가 등장할 차례라는 것이다. 이 부분이야말로 역사의 '재심'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여성사에 대해 기술할 때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젠더'이다. 어떤 사람은 '여성사'가 지나치게 '편향적'이라는 지적을 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현재까지의 역사 기술은 모두 남성 중심적으로 '젠더화'된 시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모든 역사는 '편향적'이고 '정치적'이다."라는 명제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얼핏 보기에 '정사'란 '젠더 중립적'인 역사를 이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남성 중심성이 있다. 그러나, 여성사의 패러다임 전환 이후 여성이 '역사의 주체'로 인식되면서 여성의 '가해 책임'이 문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가해자 사관' 조차도 국민 국가를 초월하지 못하여 매저키즘으로 끝나버리게 될 수도 있다.

저자는 이런 의미에서 "내셔널리즘은 극복되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너무 쉽게 개인과 국민 국가를 동일시하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것은 '순수한 감상'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그보다는 '다른 회로'를 발견해야할 필요가 있다. 개인과 국가의 동일시란 내셔널리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우리"라는 개념은 하나의 억압 구조로 작용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지속해서 페미니즘의 국민 국가 초월을 주장해온 저자는 마지막으로 "페미니즘은 근대의 산물이 아니라 근대를 물어 찢고 나온 '근대의 이단아'이므로 '일국 페미니즘'을 지양하고 국가를 초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자매 연대의 전지구화 Sisterhood is global'이라는 낙천적 보편주의는 비현실적인 것이지만 "내"가 집단과 대비해 갖고 있는 수많은 "차이"에 대한 생각을 통해 '여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것처럼 '국민'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나"를 인식하는 것이 스스로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며 적어도 그런 인식이 보편화되어가는 것이 약자 또는 소수의 입장에 서는 페미니즘의 입장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3.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한 저자의 논의의 방식은 시의적절하고도 명쾌하다. 그러한 논의의 중심에는 '젠더' 개념과 '내셔널리즘'이 위치하고 있다. 그간 지속적으로 '젠더 중립성의 신화'를 깨기도 하고 '내셔널리즘'을 집요하게 비판해온 저자의 입장이 전체를 관통하고 있어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돋보인다.

그러한 논의방식으로 저자는 일본군 '위안부'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모든 패러다임을 다양한 논리로 비판하는가 하면, 그런 패러다임에 반대하여 나온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도 '가부장제'의 요소를 찾아 비판하고 있다. 그러한 비판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실천성이다. 저자가 "여성학은 이론 그 자체가 실천"이라는 말을 하고 있기도 하지만, 저자의 논조는 더더욱 실천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것은 그가 "'위안부' 문제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일"이라고 하는 데서도 충분히 짐작해 낼 수 있는 내용이다. 역사학자가 아닌 사회학자로서의 저자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방법론상에서 보여지는 저자의 역사관은 "상대주의" 사관이라고 보여진다. 소위 '역사적 진실'이라는 것이 절대성을 가지지 않고 '역사의 재심'을 통해 상대화될 수 있다는 시각은 적어도 '위안부'와 관련하여 알려진 '진실'에 관해서는 적절한 대응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오럴 히스토리'가 '문헌 자료'보다 열등한 종류의 자료가 아니라는 것을 조목조목 반증함으로서 '위안부' 여성들의 '증언'에 무게를 실어준 점도 저자의 공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내셔널리즘에 대한 비판에서도 저자의 뛰어난 인식은 잘 드러난다. 극단적으로는, 흔히 말하는 집단주의의 일종이라고도 볼 수 있는 내셔널리즘에 대한 고찰을 통해 저자는 내셔널리즘 그 자체야말로 여성을 포함한 약자나 소수집단의 인권을 침해할 공산이 크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흔히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로 번역되는 내셔널리즘은 "나"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우선 순위에 놓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말은 "우리"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으며 "우리"라는 말 속에는 필연적으로 다수집단 중심의 세계인식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거대담론 앞에서 "나"의 인권은 온전히 살아남지 못한다(정현백 2000, 100). 이러한 입장은 이미 사회주의 페미니즘에서의 "여성 문제가 계급 문제에 종속된다"는 주장에서 익히 경험했던 여성 문제에 대한 경시이다(한국여성연구소 1999, 41-44). 저자는 어떠한 종류의 억압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여성학자이면서 끊임없이 마이너리티에 관심하는 저자의 방향성이 잘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다.

4.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내셔널리즘과 젠더』는 아주 민감한 사안을 다루고 있다. '위안부' 문제가 관련된다면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듯이 '역사의 재심'이 그 첫 번째 문제라 할 수 있다. 저자의 집요한 논증과 근거 제시에 "정사(正史)"가 상대화되었다. 그러면서 "어떠한 마이너리티도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유(類)의 말을 저자는 하고 있다. 상대주의란 소수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아주 필요한 것이고 인권적인 것이라 할 만하지만, 지나친 상대주의는 어떤 면에서 비인권적인 부분까지도 인정하는 오점을 남길 수 있다. 즉, 현재까지 정사(正史)라고 믿어져 왔던 것들이 상대화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 자리에 '새로운, 마이너리티를 위한 역사'가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동시에 기존의 '정사(正史)'까지도 부정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 진실'이 상대화될 수 있다는 명제 하나에만 지나치게 이끌려 '역사 재심' 그 자체에만 경도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 상대주의는 니힐리즘으로 빠질 수 있는 위험한 사상이기도 하다. '어떠한 역사도 옳을 수 있다'는 명제는 결국 '어떠한 역사도 옳지 못할 수 있다'는 명제로 환원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는 「서문」에서 이에 대해 "니힐리즘이라기보다는 그렇기 때문에 소리 높이는 것을 단념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마이너리티의 권한을 위한 주장이었습니다."라고 나름의 변명을 내세우고는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더 심각하다. '소리 높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결국 소수집단이나 약자보다는 다수집단이나 강자의 논리(소리)가 더 잘(크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본의 아니게, 기존 체제의 유지를 돕는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저자는 제국주의의 내셔널리즘은 물론, 피해국(한국)의 '대항 내셔널리즘'조차도 비판하고 있는데, 저자 나름대로는 "내셔널리즘이란 '이룰 수 없는 약속'으로 마이너리티를 동원하기 위한 상징"이므로 '대항 내셔널리즘' 내에서도 여성이란 마이너리티에 지나지 않는다는 저자의 인식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민족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당위적으로 그것보다 우위에 있어야 할 민주주의나 약소집단의 인권 등이 과소평가될 위험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동아시아에 있어서는 '민족 문화'라는 이름으로 가부장제와 봉건적 유제를 포함한 지난한 과거의 인습들이 재현되거나 강화될 수도 있다(정현백 2000, 100-101). 하지만 "민족"이 가진 힘의 효과라는 것도 또한 엄청나다는 것이 20세기를 통하여 밝혀진 것도 무시 못할 사실이다. 그 가장 큰 예로 동서 독일의 통일을 들 수 있다. 그들이 통합의 즈음에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다 Wir sind ein Volk'라는 구호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저자도 들고 있는 예이지만, 그만큼 민족이라는 개념이 할 수 있는 일은 엄청나다는 것이다. 또, 공통의 언어·문화·경험·상징·역사 등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사회적 의사소통 능력을 보더라도 저자의 탈민족주의는 민족주의의 폭발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강만길 외 2000, 53-57). 민족주의의 폭발력이 엄청나다면 민족의 그 폭발력의 방향을 바꾸어 여성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이 지나친 희망적 언설이라고는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5.

마이너리티는 어느 집단에서고 있게 마련이다. 수천 수백 년간 역사의 마이너리티가 바로 '여성'임을 생각할 때 저자가 노력하고 있는 젠더사에 대한 의의는 분명하다. 성의 구별없이 전 정사(正史)를 '젠더화'하려는 노력이 결실을 맺어 그간의 역사란 모두 남성사였다는 것이 밝혀진 참이다. 역사적으로 보이는 '젠더 중립성의 신화'가 깨어진 것이다. 또, 20세기 근대 내셔널리즘 하에서의 마이너리티이기도 한 '여성'의 입장에서는 '내셔널리즘을 젠더화Engendering nationalism'하는 입장을 취하여 근대 국민 국가에서의 '젠더 중립성의 신화'를 격파하였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그 중에서도 역사의 끊임없는 현재성을 강조하였던 점은 무엇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21세기를 살아갈 여성이 고민해야 할 가장 큰 부분이 바로 '내셔널리즘'과 '젠더'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 책의 의의는 새삼스럽게 다가올 것이다.


참고서적

우에노 찌즈꼬. 1999. 『내셔널리즘과 젠더』. 이선이 옮김. 박종철 출판사.

강만길 외. 2000. 「좌담: 통일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창작과비평』 2000년 가을호.
백영서. 1999. 「20세기형 동아시아 문명과 국민국가를 넘어서 - 한민족 공동체의 선택」. 『창작과비평』 1999년 겨울호.
정현백. 2000. 「통일운동과 여성주의」. 『창작과비평』 2000년 가을호.
한국여성연구소. 1999. 『새 여성학 강의』. 동녘.



내셔널리즘과 젠더
우에노 치즈코 지음 | 이선이 옮김/박종철출판사

Posted by 엔디
꽤나 두꺼운 책을 가지고 몇 번 낑낑대다가, 엊그제서야 다 읽었다. 이 책을 추천했던 학교 앞 서점 '오늘의책'의 리뷰誌나 여러 신문 서평들의 저자들과는 달리 나는 이 책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체 게바라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전혀 모르는, 이른바 '문외한'이었다. 때문에 '체'라는 이름이 그들에게 가져다 줄 향수를 나는 공유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장 꼬르미에는 그런 나에게도 배려를 했던가보다. 게바라의 삶에 나는 깊은 감동을 지고, 이 감동은 아마도 꼬르미에에게 빚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꾸바의 혁명에 뛰어든 에르네스또 게바라의 용기와 신념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미 제국주의의 사주를 받은 바띠스따 정권을 몰아내기 위해 지병인 천식에도 불구하고 체는 혁명 전선에 뛰어들었다. 처음에 의사신분으로 참전했던 그는 특유의 성실성과 탁월한 전략 등에 힘입어 대장의 계급까지 올라가게 된다.

그러나 그의 혁명 투쟁은 그에 그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의 혁명 성공의 기준은, 국민 의식의 변화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진정 농민들과 함께 살아 가는 사람이었다. 게릴라 시절 체가 몇 번 농민들에게 속아, 적의 침입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것은 명백히 실수라 할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이것이 오히려 그가 진정 농민을 아끼고 함께 살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게릴라들이 농민을 '이용'하려 했던 것과는 차이가 보인다.


마오쩌둥의 대장정에서 그는 농민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밥을 얻어 먹었거든 마을에 우물을 파주고 오라는 식으로 농민에게 부당한 신세를 지는 걸 막았다. 그런 점에서 체는 마오의 사상적 적자이다. 하지만, 마오가 자국의 안녕에 치우쳐 타국을 도울 여념이 없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체는 내셔널리즘을 뛰어넘은 위인이다. 그의 편지 말미에 항상 적혀 있던 문구는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영원히 전진

이었다. 그러나, 이 편지는 그가 꾸바의 장관으로써 보냈던 편지이다. 그가 태어난 것은 아르헨티나인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아마도 그의 고향은 라띤 아메리까 전체... 그리고 크게는 전 세계였던 것이다. 홍세화씨가 만난 사람중에 가짜 인종주의자가 있다고 하는데, 그는 자기는 철저한 인종주의자이지만, 세상에 한 종류의 인종밖에 안 보인다고 말했단다. 바로 인류라는 인종이란다. 체의 마음속에는 분명 세계라는 조국이 있고 인간이라는 민족이 있을 뿐일 것이다.
체를 따라 외쳐본다.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영원히 전진!

작년 여름에 썼던 이 글을 다시 읽고서...



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실천문학사

Posted by 엔디
TAG 서평,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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